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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생활과 법] 천사의 분노 평가B괜찮아요
    I. 들어가는 글법률가라면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법을 집행할 것을 맹세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의 법률가들이 돈이나 명예 등 여러 가지 유혹에 넘어가 그렇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 시드니 셀던은 제니퍼 파커라는 여류변호사를 통해서 법률가의 야누스적인 양면성을 다룬 점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초창기(1부)의 제니퍼 파커는 정의에 불타는 교과서적인 변호사 였다. 그러나 아들 죠슈아의 납치사건으로 이후(2부) 마이클 모레티와 깊은 관계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 마피아의 전담변호사가 되었다. 작품 속의 그녀의 활약상은 가히 극적이다. 이 부분에서 시드니셀던의 진가가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앞으로 그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볼까한다.II. 속의 사건들1. 죽은 황금 카멜레언 사건마이클 모레티를 구속시키기 위해 벼루고 있던 열혈검사 로버트 디 실바는 검사시보인 제니퍼 파커의 사소한 실수로서 일을 망치고 만다. 마이클 모레티에게 결정적인 불리한 증언을 할 카멜리오 스텔라는 제니퍼 파커가 전달한 죽은 카멜레온 때문에 증언하려는 마음을 바꾼다. 이일로 인해 법률가로의 청운의 꿈을 가진 제니퍼 파커는 치명적인 고난에 빠지게된다. 로버트 디 실바검사와 로렌스 월드맨 판사는 그녀를 자격박탈 소송을 아담 워너에게 맡기게 되었고, 단순히 처리 될 줄 알았던 이 사건은 아담의 성의 어린 조사로 제니퍼 파커는 자격박탈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또한 이일을 계기고 둘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제니퍼가 스텔라에게 한 행위에 대해서 TV를 통해 방영도 되었고 로버트 검사에 의해 법률방해, 중요사건의 증인교란, 공모 등의 혐의 로 기소되었다. 직권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형사소송체계에 의하면 제니퍼는 구속되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검사의 권한이 약한 미국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은가 한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 작가의 상대적인 비약이 있는 것 같다.2. 에이브리햄 윌슨 사건켄 베일 리의 사무실에 얹혀 어렵게 살던 제니퍼에게 기회가 왔다. 그전까지 켄 베일 리가 소개시켜준 소환장을 전달하는 일과 손님의 대부분이 보잘것없는 창녀나 빈민가의 사람들의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밤낮 없이 열심히 자신의 일에 충실히 살았다. 물론 에이브리 햄 윌슨 사건도 돈이 되는 사건이 아니었다. 라이언신부의 부탁으로 이일을 착수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다지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았는데도 정의에 불타는 마음으로 이일을 받았다. 살인으로 복역중인 죄인이 교도소 내에서 다시 살인을 저지는 이 사건은 누가 보아도 가망이 없는 사건이었다. 처음 제니퍼가 에이브리 햄을 면회 갔을 당시 에이브리햄은 제니퍼에게 성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했다. 상당히 불쾌했을 텐데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남다른 통찰력으로 사건의 진실의 실마리(푸줏간용 칼)를 찾았다. 그런데 상대검사가 바로 로버트 디 실버 였다. 심적으로 많은 부담이 있었을 텐데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형소법의 경우 증거신청은 공판기일 전까지 신청해야한다. 비숫한 예로 작품 속에서는 이 있다. 불리한 입장에 있던 제니퍼는 결정적인 증인 및 증거(교도소부소장)를 신청하지 못했다. 로버트 검사가 신청을 해서 법정에 출두는 했지만 말이다. 이를 그녀 특유의 기지로 자신의 증인으로 채택하고 증거를 제시함에 있어 능청스런 연기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극적인 승리를 이룰 수 있었다. 삶을 포기한 채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찼던 에이브리햄은 제니퍼의 열의로 이루어낸 결과에 만족해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이 사건에서의 승리는 TV와 신문에 보도되었고 제니퍼는 어느덧 유명인사가 제기의 발판을 마련했다.3. 로리타 마샬 사건부계확인 소송이다. 오늘날이라면 유전자 검사로 싶게 판명이 될 문제인데 작품이 쓰여진 1980초는 이것이 불가능 했나보다. 피고 남성 커티스 랜들3세는 상당한 재력가 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로리타 마샬은 부자인 커티스를 통해 아기의 양육비나 챙기기 위해 소송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커티스가 아버지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 다만 로리타의 육감에 의해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게다가 켄 베일 리가 조사한 자료만도 그녀가 관계를 가진 남자가 10명이 넘었다. 또한 아이는 커디스를 전혀 닮지도 않았다. 이러한 불리한 입장에서 그녀 특유의 기지(옥수수시럽)을 통해서 배심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재판과정에서는 생각할 수 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판결이 전적으로 배심원들의 판단에 달려 있는 미국의 법정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어떻게 보면 일종 쇼라고도 볼 수 있다.4. 헬렌 쿠퍼사건익명의 전화 재보자를 통해서 알게된 이 사건은 사위(전 빌딩관리인)가 40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장모를 금치산자로 매도시켜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고 재산을 가로챈 사건이었다. 제니퍼는 아직까지는 정의감에 불타고 있어서, 몸소 정신과 의사를 불러와 검진시켜 앞서의 판결을 파기시켜 헬렌 쿠퍼를 구해 주었다.5. 코니 가레트사건이 사건 역시 라이언 신부가 소개해준 사건이다. 교통사고로 24세인 코니 가레트는 두손과 두다리를 절단한 불운한 아가씨였다. 정의감에 불타는 제니퍼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사건의 해결 실마리를 찾으려 전 변호사를 만나 보았으나 최종판결에서 완전히 패소한 사건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점심을 먹고 오다가 트럭에 치일뻔 했다. 순간 트럭의 후미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네이션와이드 자동차회사 라는 글씨를 응시하면서 사무실로 간 그녀는 이 사건을 재판에 붙이기로 결심했다.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 의해서 다시 소를 제기할 수 없건만 나로서는 생소한 에 의해 소를 제기한다고 한다. 책의 설명을 빌리면 이란 완전한 소송을 위해서는 쌍방이 수집한 모든 관련 사실들에 대한 상호간의 인식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수속원칙에 입각하여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라고 한다. 하여튼 제니퍼는 네이션와이드 자동차의 담당변호사인 패트릭 매기어를 만났다.패트릭은 순순히 응해서 일이 잘 처리되는 줄 알았으나 이는 패트릭이 소송제기 기한을 넘기기 위한 더러운 속임수였다. 이만하면 누구나 포기를 했을 건만 시드니셀던이 만들어 낸 제니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요함과 기지가 다시 한번 발휘하여 시차가 있는 하와이에 제소를 하여 재판지변경신청의 방법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모면했다. 지난 번 소송으로 심신이 지친 코니 가레트는 법정에 참가하지 않았고, 변론에 있어서도 배심원들을 감동시킬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느슨해진 패트릭의 허를 찌르는 일격을 가했다. 코니 가레트의 하루를 영화롤 만들어 배심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 배심원들을 감동시키기에 효과가 컸다. 배상금으로 제시한 5백만 달러가 아닌 6백만 달러라는 배상금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우리 民訴法의중 量的同一에서 양적 상한이 적용되어 이러한 판결은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이 원칙이 적용될 것으로 보는데 이 부분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시드니 셀던의 기교일 것이다.6. 비 오는 날의 강도사건라이언 신부의 친구는 범죄가 많은 것 같다. 폴 리처드라고 비 오는 날 레인코트를 입고 은행에서 15만 달러를 훔친 죄로 기소된 사람이었다. 제니퍼는 언제나처럼 라이언 신부의 부탁으로 폴 리처드를 만났다. 50대로 순진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10년전 전과에 의해 컴퓨터로 분석한 자료에 의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구금된 것이었다. 이 사건 역시 번뜩이는 제니퍼의 기지로 제니퍼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폴 리처드가 답례로 내놓고 간 과자상자로 제니퍼가 이용당했음이 밝혀졌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다시 소를 제기하여 그를 구금상태로 놓았을 것 같은데 제니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2부에서 전개될 마이클 모레티(마피아)와 관련된 사건을 해결해주는 또 다른 제니퍼의 모습의 복선이 아닐까 한다.7. 죠슈아 납치사건법률구조협회의 클라크 홀맨이라는 변호사로부터 의뢰받은 사건이다. 잭 스캔론이라는 사람이 네 살짜리 여아를 유괴 몸값을 요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찰의 몽타쥬 사진에 의해 검거되었다. 잭 스캔론은 언변으로 제니퍼를 속였고 보석으로 나오게 되었다. 로버트 디 실버검사를 통해 그녀가 속았다는 것을 알게된 제니퍼는 그의 변호를 포기하였다. 이에 잭 스캔론은 앙갚음으로 제니퍼의 가장 소중한 죠슈아를 납치하여 엽기적인 행위를 가했다. 궁지에 몰린 제니퍼는 마이클 모레티에게 도움을 청하고 극적으로 아들을 구할 수 있었다. 이일을 계기로 제니퍼는 마이클과 가까워졌고, 본격적으로 마피아의 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법학| 2002.05.30| 5페이지| 1,000원| 조회(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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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학] 영화 로망스를 보고서
    영화 로망스를 보고서...제목으로 처음 느꼈던 나의 느낌은 낭만적이면서 분위기 있는 멜로물, 더하면 약간은 지루할 것만 같은 영화로 다가왔다. 점점 더 지켜보면서 과감한 섹스씬이 나오면서 단순한 에로물이라고도 느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는 여성의 성에관한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느낌을 많이 받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 성적인 존재로써 그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였다. 더불어 사회적인 면과도 관련지어져 만들어진 영화였다.영화 속에서, 여성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면서 사랑과 성적 욕망을 일치시키려고 하지만, 남성은 여성과 달리 사랑과 성적인 욕망을 나누려고 한다. 이러한 차이를 머리 속에 두고서 영화를 지켜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물론 자신의 입장과 경험까지도...젊고 아름다운 초등학교 교사인 마리는 폴과 동거 중이다. 마리는 폴을 미칠 듯이 사랑하지만 폴은 언젠가부터 섹스를 거부하고 있다. 절망과 치욕을 느끼는 마리에게 사랑한다는 말로 위로하지만, 그는 나르시즘에 빠진 모델로 정복할 다른 여자만을 찾고 있을 뿐이다.폴에게 마리는 1주일 이상 한 여자와 섹스를 지속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한달이나 섹스를 한 신기한 상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도 폴을 떠나지 못하는 마리는 점점 절망하고 우울해 한다. 그러면서 남자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성적인 욕망 사이에서 혼돈을 느끼게 된다.폴이 그들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는 동안, 마리는 그의 컨버터블 메르세데스를 타고 파리 시내를 배회한다. 근처의 한 술집에서 그녀는 폴에게는 없는 모든 것을 가진 듯한 파올로를 만난다. 파올로는 마리를 성적으로 어떻게 만족시켜야 할 지 알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마리는 그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 로베르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섹시하거나 잘 생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흥분시키는 묘한 능력을 지닌 남자이다. 로베르는 마리를 또 다른 쾌락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된 마리는 집 앞 불량배에게 갖은 모욕을 들으며 몸을 팔기에 이른다.마리의 탐구욕은 점점 커지게 되고, 폴은 다시 그녀를 원하게 된다. 단 한번의 정사로 아이가 생기고 풀은 결혼을 제의하지만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폴. 결국 마리는 그를 떠나는 방법을 선택하게된다. 흔히 남성은 사랑과 성이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여성은 사랑과 성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이러한 메시지를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 같다.
    인문/어학| 2002.05.30| 2페이지| 1,000원| 조회(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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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스] 스트레스 해소
    스트레스와 스트레스 감소방법스트레스란 우리 심신에 자극이 가해지면 우리의 심신이 이에 대응하기위해 긴장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해로운 인자나 자극을 스트레써(streesor)라 하고, 이때의 긴장 상태를 스트레스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연휴후 몸이 나른한 것이나 일요일에 쉬고 월요일에 직장에 나갈 때 불쾌하고 긴장되는 심신의 컨디션을 월요병이라 부르는데 이 또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본다. 개인차는 있지만 긴장이 지나친 경우 예를 들어 회사에서 브리핑이나 업무실적보고 또는 대학원 논문발표등을 할 때 긴장이 지나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손이 떨리고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경우 빈뇨, 설사 등을 동반하고 초조 불면증까지 나타나는 신경증을 일으킬 수 있다.오늘의 현대인들은 불평, 불만, 불안, 불쾌, 초조, 무력, 자조 등의 심리적 압박이 점차 가중되면서 노이로제로 발전하고 모든 대부분의 신경증이 스트레스에 의해 만들어 진다고 볼 수 있다.어떤 사람은 감기 몸살도 스트레스와 관계있다고 말하고 있고 중년에 많은 성인병도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농촌보다는 도시인에게, 도시인 중에서도 직무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인들에게 더욱더 많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우리 생활에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현대사회는 도처에 스트레스가 널려있다. 직장문제, 가정문제 등 문제투성이다 보니 우리의 몸은 탈진상태에 도달하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만성피로증후군, 위장병, 심장질환, 고혈압 등 우리가 흔히 정신 신체질환이라고 부르는 질병이 생기는 것도 탈진상태이다.생활양상이 복잡해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현실상황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시험, 실직과 해고, 질병, 이혼, 교통체증......, 등 수없이 많은 스트레스는 우리의 몸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신체리듬을 깨트리고 감정의 이상현상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의 기능을 약화시켜 병을 일으킨다. 머리카락이 동전 크기 만하게 한 웅큼씩 빠지는 원형탈모증에서부터 밤에 자신도 모른는 사이에 이를 갈고 괜히 화를 내고, 잠이 안오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그렇다면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는 직무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암암리에 심리적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심리적 방어기제란 불편한 감정이나 느낌을 없애려는 심리적 전략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에는 합리화, 부정, 전위 등이 있다.합리화는 자신의 어떤 행동이 사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고 정당하며 누구나 인정할만한 것으로 꾸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승진을 못한 사람이 “승진했더라도 책임만 늘고 부하들을 감독하느라 귀찮고 신경만 쓰였을텐데 오히려 승진 안된 것이 잘되었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승진못한 데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암암리에 합리화 책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부정은 자신이 싫어한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예컨대, 승진을 못한 사람이 자신이 능력이 없어서 승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운이 없거나 노력을 안한 탓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이다.전위는 어떤 대상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다른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꾸중을 들은 사람이 집에 와서 자기 자식들이나 부인에게 화풀이를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경우이다.이러한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함으로써 어느정도 직무스트레스에서 벗어 날 수 있겠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 자체를 해소하지 못하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안정제 등을 복용하는 것도 일시적으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한국인의 경우는 성인남자의 40%가 술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잠, 운동, 음악등이 스트레스를 푸는 현명한 방법이다. 외국인들 사이에선 직장 동료들과 농담을 나누는 방법이 가장 많고 커피나 담배로도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스트레스를 풀려면 우선 이를 효과적으로 승화시키는 요령을 익힐 필요가 있다.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가벼운 산책, 여행, 운동을 하거나 따뜻한 물(섭씨38도)로 목욕이나 샤워를 하면서 긴장된 근육을 풀고 흥분을 가라앉힌다. 울화가 치밀면 속으로 열까지 센다. 따뜻한 차를 천천히 마셔 부드러운 온기와 향기를 음미한다. 만족감을 느낄수 있는 일을 갖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이다. 낮잠도 피로회복에 특효약이다. 하루에 10∼20분 정도 낮잠을 자거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본다.
    의/약학| 2002.05.30| 3페이지| 1,000원| 조회(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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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 조동관 약전
    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조동관 이란 사람보다 똥깐 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그를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똥깐에겐 이란성 쌍둥이 형인 은관이가 있었다. 그 역시 똥깐이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 폭군이었다. 은관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을 좋아했고 합기도 삼단, 유도 사단 태권도 삼단의 면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조십단 이었지만 사람들은 쉽게 그의 별명을 부르지 못했다. 똥깐은 성장함에 따라 아무도 건들 수 없을 정도의 개망나니 짓으로 명성을 쌓아갔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척의 불세출의 깡패로 우뚝 서게 되었다. 똥깐은 열 여덟 살 이후 자신의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인 역할로 기차를 들 수 있다. 그는 항상 무임승차를 하였고 그런 똥깐을 말릴 수 없었다. 똥깐은 언제나 그렇게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여학생을 관찰하며 범하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어느 날 똥깐이가 어여쁜 아가씨를 데리고 은척읍으로 돌아왔다. 집에선 그들에게 방을 마련하여 주었고 똥깐은 그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잠하던 똥깐이 다시 나오게됐는데 바로 그 아가씨가 떠난 것이다. 똥깐은 떠나는 그녀를 바라본 후 홧김에 역전 앞에 있는 파출소까지 쳐들어가 모든 기물을 파손 시켰고 감옥에 가게되었다. 똥깐이 정작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또 한번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후에 똥깐은 출감하여 예전의 망나니 짓 보다는 그녀의 행방에만 전념한다. 하지만 형인 은관의 결혼과 자신의 깨달음으로 인해 예전이 그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어느 날 마을의 경찰 서장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여기 사정을 잘 모르기에 일이 일어난 것이다 똥깐이가 은관과 술을 먹고 있었을 때 경찰 서장이 마을을 둘러보러 왔고 이때 똥깐 형제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화가 난 똥깐은 서장을 붙잡고 망신을 주었고 서장은 화가 치밀어 똥깐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은관은 쉽게 잡혔지만 똥깐은 후에 똥깐이 바위와 똥깐이 굴로 불려지는 곳에 숨었다. 똥깐은 먹을 것도 없이 추위에 떨며 그렇게 오랬동안 버텼다. 이렇게 똥깐이는 얼어 죽어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경찰들을 원망했다. 서장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부패와 독직 혐의를 받아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똥깐이 있었던 바위와 굴 그리고 비석을 똥깐바위, 똥깐굴, 똥깐비석이라 부르게 되었고 훌륭한 깡패를 꿈꾸는 소년들은 모두 이 바위와 굴, 비석에 순례를 떠나야 한다는 전통이 생겨날 정도였다. 똥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달구어지고 오늘날의 조동관 약전으로 남게 되었다.
    인문/어학| 2002.05.30| 1페이지| 1,000원| 조회(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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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십] 이순신장군의 리더십 평가B괜찮아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1998년 12월 16일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순국한지 꼭 400주년 되는 날이다. 400년전 인 1598년 음력 11월 19일. 그는 노량해전에서 일본 함선 500여척과 접전, 200여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전투가 한창일 무렵 열심히 싸움을 지휘하다가 적의 흉탄을 맞고 선상에서 산화했다. 이 해전으로 7년에 걸친 임진왜란(1592-1598)은 일본의 패배로 막을 내린다. 이순신 장군은 구국의 영웅, 민족의 은인만은 아니다. 동 북아에 유례없는 대규모 국제전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를 극복할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노병천(43. 육군 중령) 미국 지휘참모대학 교환교관은 최근 발행한 " 완전한 승리-이순신의 18해전과 7대 전승 비결 " 에서 그의 군사전략가로서의 탁월함을 이렇게 지적한다. " 적선을 359척이나 격파하고 적군을 3만4,000명이나 도살해놓고도 아군은 단 한 척의 배도 손실이 없었던 전투가 과연 이 세상사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이순신은 1592년 네 차례의 출전에서 정확히 33일동안 왜선 359척을 박살 냈고 왜군 3만4,000명을 손상시켰다. 그러면서도 단 한 척의 배도 왜군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은 세계 어느 해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보물과 같은 기록이다. " 이순신 장군의 탁월함은 일찍이 외국인들도 인정한 바이다.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1905년 2월 대마도해협에서 러시아 발트 함대를 무찌른 뒤 이를 축하하는 피로연 자리에서 자신을 영국의 넬슨과 조선의 이순신에 비겨서 칭찬하는 축사를 듣고 답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나를 넬슨에게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도고는 일본 근세사상 최고의 해군명장으로 꼽히는 인물. 또 영국학자 G.A. 발라드는 " 해양이 일본 정치사에 미친 영향 "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이라는 저서에서 " 영국 사람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될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한번도 패한 일이 없고 전투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이순신의 탁월함의 비밀이야말로 우리가 찾으려는 IMF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슬기다. 정치가든 기업가든 직장인이든 각기 맡은 분야에서 그의 지혜를 얼마든지 빌릴 수 있겠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인화를 중시했다. 정신적 에너지까지를 포함해 인적 역량의 집결이 발휘하는 놀라운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늘 아랫사람의 의견을 잘 듣고 최대한 중지를 모았다. ' 아무 소리말고 나를 따르라 ' 는 식이 전혀 아니었다. 한산대첩과 명량대첩 전날의 작전회의는 규율있는 토의문화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일단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이론을 달거나 따르지 않는 부하들은 엄벌로 처단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나기 1년여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정3품으로 전라좌도 지역 해군사령관)로 부임하자마자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휘하 장수 나대용이 태종때 구선(龜船)을 만들어 임진강에서 왜구의 배와 모의접전한 사실이 있음을 들어 거북선 건조를 건의했다. 이순신은 이 건의를 흘려 듣지 않았다. 즉시 온갖 지혜를 짜내 돌격용 거북선을 건조시켰다. 거북선 건조는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조총을 개량한 것과 함께 끊임없이 무언가를 개선하고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는 그의 혁신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다.이순신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인물이었다. 1592년 3월 5일자 난중일기를 보면 당시 좌의정 유성룡으로부터 ' 증손전수방략 ' (增損戰守方略)이라는 중국의 새 병법서를 선물받고 " 만고의 기서 "(奇書) 라고 감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이런 병서를 통해 평소 육전, 해전, 화공전(火攻戰) 등의 전술을 깊이 연구했다.혁신은 전술 면에서도 이루어졌다. 노 교관은 순수 함포전을 이순신의 혁신적인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하고 " 후일 일본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의 니미츠 제독이 사용했던 원거리 함포사격 방식과 비슷하다 " 고 지적한다. " 원거리 함포전은 가까이 붙어서 접전을 하지 않으므로 조선의 전함이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단 한척의 배도 망실당하지 않았고 백병전없이 결말을 보아 병사들의 희생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특히 함포전을 하되 집중사격권을 형성했다. 이 권내의 살상범위 안에 적이 들어오면 그야말로 묵사발이 되도록 무서운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러한 집중사격 방식이 진가를 발휘한 해전이 바로 명량해전이었다. " 연구와 혁신 없는 승리는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적보다 먼저 생각하고 적보다 먼저 움직여서 유리한 위치에서 적을 유인해낸 뒤 느닷없이 들이쳤다. 그러기 위해 그는 지피지기에 철저했다. 늘 적정을 정탐하고 척후를 띄우고 전투지형파악에 열심이었다. 그는 한번도 기습을 당한 적이 없다. 적의 기습시도는 그때마다 철저히 분쇄했다. 적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명량해전에서는 울돌목의 좁은 지점에서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시점을 절묘히 이용해 13척의 배로 200척의 왜군을 물리쳤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이 누구시던가. 나라엔 충성하고 부모엔 효도하고 형제들과 우애있고 자녀들을 사랑하고 백성을 보살피고... 한 그런 위인 아니신가? 완벽한 인간의 표본처럼 인식돼온 그의 인간적 면모는 후세인들이 덧붙인 그 화려한 온갖 찬사의 느끼함만 빼면 전혀 사실 아닌 것이 없다.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그렇게까지야 했겠느냐 할 수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윤리적 실천을 중시하는 유교 교육이 몸에 밴 당시 조선의 관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았던 조선의 할아버지들을 얼마든지 꼽을 수 있다. 다만 그런 면모를 후대인들이 너무 미화하다보니 원균 장군과의 불화 같은 사소한 인간관계의 측면조차 오히려 선선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감이 있다.
    사회과학| 2002.05.30| 3페이지| 1,500원| 조회(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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