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학습지 시장상황{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학습지 시장 규모는 전체 사교육비 시장의13%인 1조 9천 500억원 정도다. 회원 수는 약 6백만명에 이른다. 이런 만만치 않은 시장을 놓고 대교(눈높이), 재능(스스로 학습), 구몬, 웅진(씽크빅)의 '빅4'를 비롯, 200여개 업체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업계에서는 이들 4개 대형업체의 회원 수는 회사 당 50만명~2백10만명으로 전체 시장의 70%(4백10만명)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이들 중 대교의 시장점유율이 50% 정도로 으뜸이고, 그 뒤를 재능이 뒤따르고 있다. 학습지 경쟁의 주무대는 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국어·영어·수학·한자 등 단일학습지를 파는 시장으로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학습지 시장1.9513%기타학원(예체능 관련)5.87339%보습학원(입시학원등)7.42548%계15.248100%▶전체 사교육 시장 분할 구도◀{전체 사교육시장에서 학습지 시장의 규모는 13%에 달한다. 학습지가 단지 보충교재의 위치가 아닌 중요 학습수단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합계20*************67918**************************35*************997*************41619*************1854819*************084921994*************71*************22**************************19914*************7*************22*************7*************980*************821▶연도별 초 중 고 생수(잠재적 사교육 대상 학생수)◀♣92년 발표된 5차~7차 교육과정의 기본 방향1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2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3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4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수학학력평가 실시1989.11. '재능스스로 학습법' 출시1986. 5. 회원수 1만 3천명1993.11. '재능스스로국어', '재능스스로영어' 출시1992. 3. 미국현지법인 J.E.I.America 설립1998. 4. 사고력 전문 학습교재 '생각하는 P!zzaa'출시1998. 3. 교육전문 재능스스로방송 (jn23TV)운영1997. 12. 호주.중국지점 설립1997. 10. 초등학교 영어교과서 합격 회원 1백만명돌파2001. 1. JEI재능교육으로 기업CI변경2001. 10. 전국 초.중학교 종합 학력 올림피아드 개최2000. 3. '재능스스로 국어. 영어' 출시◈대교눈높이1. 대교눈높이의 기본전략(1)학생들의 사고와 수준에 맞는 교육방식 채택(2)기존 주입식 교육에서의 효율성 확립(3)어린이의 관점에서의 교육방식 연구2. Positioning☞기본적으로 학습지의 선택의사결정자는 학부모임을 감안-초기 : 학원비 부담을 덜고 싶고, 맞벌이 부부로 초,중생을 둔 가정교사등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만 강요되던 교육과정에 부정적 생각을 가졌던 가정수학교재 중심으로 초,중생 교재-최근 : 조기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와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유아교육전문 제품 또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학습시스템으로 인터넷과 방송, 전문교사가 결합 된 교육 프로그램 도입3. 4P분석-Procuct, Promotion(1)Product교사등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던 교육과정에 맞서 수요자인 학생들의 관점에서 능동적인 학습동기 유발을 유도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컨셉을 제공-교육시스템첫째, 개인별 능력별 학습이 가능한 시스템형식적 학년에 관계없이 개개인의 학력수준에 따라 학습내용이 정해지는 개인별 학습이러한 특성은 동일공간, 동일시간에 동일한 내용을 다수의 학생에게 가르치는 공교육을 보완하는 시스템둘째,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가정학습눈높이 선생님과 학생의 1:1 학습이 이루어지며 학부모가 학습 참관자로서 학습에 관여 하게 되어 삼위일체의 교육셋째,st-I눈높이 Test-i는 전국단위의 학력 평가를 통해 개인의 강약점을 파악하여 학습방향을 제시, 수준별 학습을 가능하게 해주고 인성과 적성을 파악하여 개개인의 능력과 소질중심의 학습을 가능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최근 조기교육에 대한 관심 증가와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인식 되면서 눈높이 유아용수학, 눈높이한글, 눈높이영어 수퍼톡톡에 이어 유아교육전문 제품인 '한글땅 재미땅'을 출시했다(2)PromotionT.V광고 뭔가 겁먹은 듯한 아이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고, 누군가가 아이의 눈을 가린다. 어리둥절해 하며 방향을 잃고 헤매는 아이의 모습과 함께 강요하는 듯한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다. 광고의 후반부에서 시청자들은 아이가 아무도 없는 체육관 링 위에 서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어른의 생각 속에 아이를 가두지 마십시오"라는 메시지와 함께 광고가 끝난다. 광고의 의도는 아이의 잠재력에 대한 관심과 자율성에 대한 인정을 표현한 것이다.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외치거나 응용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광고의 기본 메시지인 것이다.-학습교재 Copy눈높이 수학 : "학습자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해주는 수학클리닉 눈높이 수학! 이제 수학에 자신이 생깁니다. T.V광고와 Copy에서 보듯이 수준에 맞는 단계별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창의력, 응용력보다는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양질의 교육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해오는 일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것이다. 미국 초등학교의 한교사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가르쳐야 한다'면서 아이들과 키를 맞추기 위해 꿇어앉은 자세로 그림을 설명했다는 것. 눈높이가 처음 광고되고, 출시되었을 땐 그 동안 하향식 주입식 교육에만 젖어있던 학부모에겐 정말 신선한 충격이였다. 이에 많은 회원수를 확보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업계 1위를 고수해오고 있다.◈재능교육1.재능교육의 기본 전략(1)스스로 학습법이라는 모토(2)능동적이고 합리127.98.200.8100경남15.661.416.56.500100전남17.256.218.97.700100제주19.476.13.60.60.30100초기 : 학원비 부담을 덜고 싶고, 맞벌이 부부로 초,중생을 둔 가정단순 복습을 위한 학습지중기 : 아이들 공부를 봐줄 수 없는 가정, 기존 받아 보기만 하는 학습지에 대한 불신이 있던 가정학습지 이면서, 개인교습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가정최근 : 일대일 학습법에 창의력 사고력을 길러주고 싶어 하는 초,중,고생을 둔 가정학습지 시장의 강점은 저렴한 가격과 가격대비 우수한 서비스를 들 수 있다. 이는 날로 증가하는 사교육비의 부담을 어느정도 덜어줄 수 있다는 메리트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지역별로 표본 설문조사를 통해 사교육비의 소비 지출현황을 살펴보면 상당수의 가정이 적지 않은 비용을 사교육비에 투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습지 시장의 기본적 타겟인 초등학생-중학생 자녀를 둔 교육에 관심이 많은 중산층 즉, 월평균 5-30만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가정을 대상으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효과는 물론 저렴한 학습지를 통해 절감된 교육비를 제2, 제3의 교육비로서 활용 할 수 있을 것이다.3. 4P분석-Procuct, Promotion(1)Product어린이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발적 본성에 기초하여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육성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법 개발1.스스로 학습법의 특징1 개인의 능력에 알맞게 학습하는 개인별·능력별 학습법-오답사례별·내용별로 무엇을 몰라서 왜 틀렸는지 문제 틀린 원인까지 정밀 분석-개인별·능력별로 학습할수있는 기초를 마련-오답사례별·내용별 분석은 표준화된 12,759가지 케이스로 분석-오답사례별 분석을 통하여 회원에게 가장 알맞는 개인별·능력별 학습진도를 월별, 주차별로 제공예)오답 사례별 분석75+17=?의 결과를 묻는 질문에 1)82 2)92 3)93 4)81의 문항이 나와 있다.예시된 문제에서 4번으로 답한 아이는 받아올림을 하지 않고 있는지를 1주일 단위의 형성평가를 통해 점검하고 결과를 월별 진도상담기록부를 통해 알려준다.2 개념과 원리이해를 중시하는 학습법입니다.기존 하향 주입식교육, 단순 암기교육에서 벗어나 개념과 원리이해에 중점을 두어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줌3 진단-형성-총괄평가의 과학적인 평가시스템에 의한 학습법입니다.학습목표가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 학습성취도를 점검하고, 후속학습에 대한 비전과 학습동기를 부여6 스스로학습시스템, 재능 스스로선생님, 학부모가 삼위일체된 학습법세 가지 요소가 삼위일체되어 학습자에게 올바른 학습환경을 조성한다. 이때 비로소 어린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게 된다.2.스스로 교재-스스로 수학수학의 모든 영역을 골고루 학습하여 수학이 튼튼해 집니다.개인별로 수준에 맞추어 학습하므로 스스로 원리를 깨우칩니다.단순반복이 아닌 원리를 이해하여 응용력과 창의력을 길러줍니다.원리이해에 창의력이 더해져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풀어갑니다-스스로 한글유아가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친숙한 낱말을 사용하였습니다듣기테이프의 창작동화와 동요로 상상력과 사고력을 길러 줍니다학습의 효율성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부모님 지도란 을 두었습니다-스스로 리틀 피자수,언어,공간지각,기억하기,분석하기,논리형식,창의적사고,문제해결등 사고력의 전 단계를키워주는 전문 학습 교재(2)promotion■ 모델주부 아나운서 정은아를 모델로 내세워 현명하고 똑똑한 엄마의 이미지를 통해 학습지 선택 대상 부모들에게 자신의 선택은 올바르고 현명한 것이며, 재능교육의 학습지를 선택함에 있어 자신도 현명하고 똑똑한 엄마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비교, 암시광고정은아와 똘똘해 보이는 여자아이 - 창의력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스스로 학습지할아버지와 둔해 보이는 남자아이 - 기존의 암기와 주입식 교육방법이렇게 대조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기존 학습지나 학습 방법으로는 최근 창의력과 수리력을 중시하는 입시 방향에 적절히 대처 할 수 없고한다.
◈여의도 샛강공원 탐방기Ⅰ.샛강 생태공원의 개요* 위 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면 적 : 182,000㎡ (약 55,000평)* 조성목적- 방치되어있던 샛강과 인접 한강변의 친환경적 정비- 자연학습장소와 친수공간 제공- 천변 저습지를 활용한 생물 서식처 (비오탑)조성- 한강과 서울공원과 연계된 생태통로 확보* 개 장 : '97년 9월 25일 개장 (국내최초의 생태공원)* 관리운영 : 한강관리사업소* 주요계획내용- 기존의 양호한 생물 서식처 보존 (갈대밭과 버드나무 하반림)- 지하철 배출수와 한강 본류수를 이용한 생태연못과 저습지 조성- 생물종의 서식환경 (비오탑) 조성- 생태학습공간 및 프로그램 도입-생태공원의 조성 목적508,000㎡(156,700평)의 여의도샛강의 조성의 근본적인 취지는 방치된 샛강과 인접 한강변의 친환경적으로 하천을 정비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하천생태계에 대한 학습장소 및 친수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추후 조성될 여의도광장생태공원과 한강과 샛강 그리고 한강 본류와 연계된 징검다리식 생태통로 조성이다. 한편 생태적인 지형기반으로 이 일대의 하상구조는 불규칙한 모래언덕이 산재한 상태로 저습지와 갈대가 우점한 습초지 상태를 이루고 있어, 다양한 수생식물 및 수서곤충의 생태적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얕은 만이 형성되어 어류의 산란 및 치어의 서식에 활발한 수환경을 형성하고 있다.Ⅱ.내가본 샛강 생태공원{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대방역에서 내려 여의교 북단 진입계단을 통해 샛강생태공원으로 입장했다.여의교 북단 진입로에는 장애자용 경사로까지 만들어 놓는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여의교 북단에서 내려오자마자 생태공원쪽을 가리키는 푯말이 나타났고 포장되지 않은 오솔길이 나타났다. 생태공원은 여의교부근부터 서울교에 걸쳐 조성된 생태공원 인데 1997년 조성되어 올해로써 개장한지 6년째가된 생태공원이다.여의교부근을 자주 지나다니긴 했지만 서울 도심 한가운데 이런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푯말을 따라 조성된 산책를 통해 생태공원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고 샛강변을 따라 포장된 산책로가 따로 조성되 있다.이곳 생태공원에는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되도록 인공적인 구조물설치를 자제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관찰 마루랄지 마루다리등의 나무 구조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인공적으로 조성된 수초수로나 저습지등은 돌로 주변을 꾸며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샛강 부근에는 사행천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사행천 부근에는 크지는 않았지만 습지도 군데군데 형성이 되어 있었다. 1시간 30여분동안 생태공원을 돌아보면서 공원에 서식중인 생물들을 볼 수 있었다. 흰빰 검둥오리와 돌아가는길에 우연히 눈에띈 왜가리였다. 일부 저습지에서 자그마한 물고기들을 관찰 할 수 있었으며 안내표지판에 언급되어 있는 곤충류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표지판에는 수중 지표생물과 물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곤충들 그리고 조류등을 소개하고 있었다.{공원을 둘러보면서 간간히 웅덩이가 나타났는데 웅덩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녹색조류가 바닥에 끼어 있었다. 웅덩이 가까이로 다가가자 약간의 냄세가 코를 자극했다. 물이 썩어가고있는 듯 했는데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조성된 생태공원이니 만큼 조금더 세심한 관리가 더해 졌으면 하는 바람이 었다.공원관리사무소가 보일쯤 오리 연못이 나타났는데 이름은 오리연못인데 실제로 오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몇종류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했는데 개체수가 그리 많은것같아 보이지는 않았다.{양화대교로 향하는 도로가 아주 가깝게 붙어 있었는데 공원 안내판에는 여러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도로주변의 소음이 심한 환경에서 새가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대부분의 생태공원에는 완충지역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샛강공원은 도로와 공원경계가 불과 10m도되지 않은 상태였다. 차후 여건이 개선되면 이런 완충지역을 넓혀 생물이 서식하기에 조금더 나은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어린이들이 현장학습장으로 사용되는곳이라 그런지 만약에 일어날 안전사고에 대비해 오리연못중간에 구명장비까지 갖추어 놓고 있었다. 서울시내 최대의 생태공원인 만큼 크고작은 것에 남다른 배려를 한 것 같아 보기 좋았다.{또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관찰을 위한 시설물이 생물들이 서식하는 서식지와 너무 가깝게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찰을 위해 관찰다리를 왔다갔다하면서 발생하는 소음과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발생하는 크고작은 소음들이 생물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고 있고 또 서식지 이탈 원인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식지 부근은 되도록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일정한 거리를두고 관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야생화 둔덕에는 여러 가지 야생화를 인공적으로 재배하여 옮겨 심거나 혹인 자연적으로 서식이 가능하도록 바이오톺(Biotope)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소홀탓인지 아니면 개화시기가 아니어서인지 야생화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한종류의 야생화가 피어 있었는데 제비꽃이란걸 실제로 처음 보게됐는데 이마저도 군데군데 몇 포기씩 옮겨 심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중간중간의 수초수로를 건너야하는 길이 나오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자연학습장제공이 목적이라면 좀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들었다. 또 고개만 돌리면 수많은 갈대들이 쉽게 눈에 띄는데 이곳이 서울시내 한복판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생물의 보호와 서식지로서의 목적을 가진 생태공원이었지만 도시인들의 휴식처로서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생태공원 전체를 둘러보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는데 182,000㎡ (약 55,000평)의 엄청난 면적이라하니 생태공원으로서는 규모나 시설면에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몇가지 아쉬운점이 있었지만 기존의 버려진 샛강이 이렇게도 환경 친화적이고 여러 가지 생물서식지로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Ⅰ.서론선경(SK)은 1953년 직물회사로 설립되어 제품개발과 수출에서 많은 기록을 세우며 급성장해왔다. 선경의 역사중 앞부분인 1953년부터 1973년까지는 형 최종건이 일으켰고 그 뒤로는 동생인 최종현의 제 2창업시대로 일컬어진다. 재계의 수장(首將)으로 경제 선진화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부었던 SK(선경)의 최종현 회장. 그는 항상 당당했다. 그래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최종현회장은 소신이 분명하고 굽힘이 없었다. 행동과 사고가 독창적이고 비전과 신념이 강해 독립적이며 단호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사물, 사람, 상황을 조직하고 구조화하여 한국경제의 성장에 큰 몫을 하였던 최종현 회장. 그는 일생을 한국경제의 성장과 같이 해온 재계의 큰별이였고 그리고 한국 재계의 간판 경영인이자 매출액 45조로 SK그룹을 일으킨 주인공이였다. 1998년 8월 26일 세상을 타계하기전까지 한국경제의 한 기업인으로써 그의 생애와 경영이념에 대하여 조명하고자 한다.Ⅱ.본론1. 최종현의 생애와 업적(1) 최종현의 출생과 어린시절최종현은 1929년 11월 21일 경기도 수원시 평동 7번지에서 아버지 최학배와 어머니 이동대 사이의 8남매 중 형 최종건에 이어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상으로는 생년월일이 1930년 4월 20일로 되어 있는데, 부친이 일제에 협력하기 싫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뒤늦게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원에서 세류초등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경기공업학교로 진학했다. 그때는 일제 말엽이라 공업학교에 가야 징용에 안끌려갈수 있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경기공업학교 기계과로 진학해서 수원에서 기차통학을 했다. 수원 농림학교 임학과로 간 것도 별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편입을 하려니까 거기에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택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당시의 상황에 따라 청소년기의 중요한 진로결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원 농림시절에는 달리 공부에 재미를 못붙이고 그럭저럭 축구나 하면서 지냈다.(2) 최종현의 청년시절과 유학생 한두번의 찬스가 올 때마다 최종현은 그것을 적시 안타로 만들어냈다. 이런 몇 개의 안타들이 모여 선경그룹을 오늘의 재계 랭킹 5위안으로까지 진입시킨 것이다.1960년대의 적시 안타는 미국에서 귀국한 후 개발에 성공하여 선경을 섬유업계의 강자로 부상하게 만든 이른바 깔깔이 개발이다. 당시 마당8000원씩인 수입품 가격의 10분의 1 가격으로 선보인 이 깔깔이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나이론과 폴리에스테르 혼방 제품인 이 깔깔이의 성공으로 선경은 섬유업계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다.1970년대의 안타는 선진국에서도 개발하기 어려웠던 폴리에스테르 필름의 개발이다. 그당시 선경의 자금 사정으로는 무리였는데도, 최종현은 특유의 집념과 뚝심으로 밀어붙여서 마침내 1977년 12월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독자적으로 개발한다. 이 필름은 오디오, 비디오 테이프는 물론 공업용 소재에 이르기까지, 선경의 주력 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5) 회장취임후의 기업활동 ( 1980년대-1990년대 )선경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만루 홈런을 터뜨린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 고 표현되는 유공인수를 성공시킴으로써 1970년대 말 무리한 계열사 확장에 따른 경영상의 어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재계 서열 5위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선경의 유공인수는 최종현이 구상해왔던 석유에서 섬유제품까지 의 예정된 코스 진행이었다. 유공인수는 8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1973년 선경유화를 설립한 후, 선경은 일본 이토추 데이진과 합작으로 울산에 하루 15만 배럴의 정유공장을 짓기로 합의한다. 그런데 공장부지를 확보했을 무렵 중동전쟁이 일어나 석유금수조치가 내려지는 바람에 정유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그러나 유학시절 친분이 있던 사우디 왕자들과 교류하면서 그간 안정적 원유확보 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았던 최종현은 국가가 나서도 어려웠던 원유도입을 2번이나 성사시키면서 원유도입능력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결국 1980년 10월 동자부는 유공민영화 방향을 확정발표하는데, 그 되어 있다가. 경영기본이념경영기본이념으로는 기업관, 기업경영의 정의, 기업경영의 목표, 경영원칙의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첫째로, 기업관이란 경영인들은 기업에 기여해서 기업을 존속, 발전시켜야 하며, 회사의 발전에 기여한 개인에게는 성과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둘째로, 기업경영의 정의란 기업을 오래 갈 수 있도록 이익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셋째로, 세계일류수준의 상품을 만들자는 것이 기업경영의 목표이고마지막으로, 경영원칙은 인간위주의 경영, 합리적인 경영, 그리고 현실을 인식한 경영이 경영원칙이다. 경영기본이념은 이처럼 경영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1)회사구성원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것, 2)이윤극대화, 3)세계적 일류회사를 만들자는 것에 대한 합의라 하겠다.경영원칙은 기업경영의 임의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기업 흥망의 기준이 되는 요소중 가장 중요한 다음의 세가지 요소를 포함한다.첫째 인간위주의 경영이다. 기업경영의 주체는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을 사람답게 다루어 구성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의욕적이고 자발적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인 Super Excellent 수준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의욕적이고 자발적으로 두뇌활용을 높이면 구성원들의 능력이 커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회사의 이익극대화에 기여하여 회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된다.둘째는 합리적인 경영이다.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예술이 모두 검토되어 합쳐진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건물을 짓는 경우 자연과학적으로 건물의 기능을 분석하고, 사회과학적으로 건물의 용도 및 주위와의 관계를 검토하여, 멋(Art)있고 조화로운 건물의 모양을 결정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합리이다.세째는 현실을 인식하는 경영이다. SKMS는 처음부터 이론이 아닌 현실에 기반을 두었다. 합리적인 경영은 현실을 인식한 경영을 포함하나 실제 경영에서 너무나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따로 떼어놓고 강조하는 것이다. 현실을 인식이다. 의욕이란 사람에게 아주 다양하게 작용되는 요소이다. 따라서 개인의 의욕에 관계된 일은 부서장이 그 개인의 특성에 맞게 관리할 수 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적요소로 채택하였다. 의욕관리를 위해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관리, 일에 대한 보람, 기타 심리적인 요소들을 잘 다루어야 한다. 이들 요소를 부서장이 부하들 개인개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잘 관리하면 구성원들의 의욕수준이 높아져서 자발적 ·의욕적으로 경영 활동에 참여하게 되어 높은 경영성과를 얻을 수 있다.둘째, 관리역량관리란 경영자의 일처리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심신의 조건을 잘 관리하고, 일을 다루는 요령을 기르는 것이며, 이렇게 하여 신장된 관리역량을 경영성과의 극대화에 활용 하는 것이다. 개인의 관리역량에 따라서 다룰 수 있는 업무량이 결정되고 일처리가 효율적이냐 비효율적이냐가 좌우된다.일을 부하직원에게 맡길 때에는 조직운영의 묘를 잘 살려야 하는데, 이는 가능한 한 많은 일을 부하에게 맡겨서 운영하되 방임이 되지 않도록 잘 챙기면서 맡기는 것을 말한다. 상사가 부하에게 일을 많이 맡길수록 상사와 부하의 역량이 동시에 신장될 수 있다. 일을 맡긴다는 것은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말하고 챙긴다는 것은 집권화(Centralization)를 뜻하는데 기업에서는 인체조직과 같이 양자가 예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세째, Coordination관리는 조직을 유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Cooperation과 Coordination 을 잘 하는 것이다. Cooperation은 같은 부서내에서 힘을 합하는 것이므로 비교적 잘 이루어지지만, Coordination은 서로 다른 부서간에 상호협조 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한층 더 어려움이 있다. 자기부서의 일을 먼저 앞세우고 타부서와의 협조관계를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아 Coordination 이 잘 안 이루어지는게 통례이다.네째, Communication관리는 조직구성원 상호간에 의사전달이 충분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추구법이다. SKMS가 경영 원리라면 SUPEX 추구법은 실천 방안인 것이다.1979년 SKMS를 정립하고 이를 잘 실행하면 Super Excellent 수준의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 하였으나 그동안 구성원들이 SKMS의 실천을 어려워 했기 때문 에 이윤극대화의 측면에서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Super Excellent 수준의 성과를 직접 추구하는 SUPEX 추구법이 SKMS 실천방안으로서 1989년에 도입되었다.SUPEX 추구도 도입 직후 한동안은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구성원들이 명확한 일처리 방법을 갖고 있지 않거나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들이 SUPEX 추구에 적합한 일처리 방법으로 「일처리 5단계」를 만들게 되었다.「일처리 5단계」를 적용하고부터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Marketing(M), 생산(p), 연구개발(R) 중 어느 하나가 SUPEX 추구를 통해 성과를 내도 다른 쪽에서 같이 참여하지 않으면 SUPEX 추구가 곧 벽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 성과는 이윤극대화에 지속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상품별로 M,P,R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MPR 조직운영법이 제시되었다.MPR로 SUPEX 추구를 해보니 상당한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MPR이 일선에서 열심히 뛰려 해도 Supporting 부서와 임원층(Top Management)이 이를 충분히 Lead, Help, Check 해주지 않을 경우 MPR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MPR에 S, 그리고 T의 힘까지 모으는 MPR/S/T의 조직운영법이 추가되었다.SUPEX 추구가 진행되면서 SUPEX 추구의 성패에 부서장의 리더십과 지식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 하였으며, EMD(Executive Management Development)를 통해 이를 뒷받침 하도록 하였다.이처럼 SUPEX 추구법은 SKMS 실천 방법으로 등장한 이래 현장에서의 실천 경험을 거치면서 그 내용이 계속 보완·발전되어 왔다.(3) 일처리 5단계1. 입체적 Locat다.
1. 움베르토 에코(Umberoto Eco) 볼로냐 대학교수·기호학자볼로냐 대학의 기호학 교수이자 의사소통 학문연구소 소장인 움베르토 에코는 1932년 토리노에서 동쪽으로 65킬로미터 떨어진 피에몬테주 알랙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토리노 대학에 입학해서 실존주의 철학자 니콜라이 아바노(Nicola Abbagnano)밑에서 공부했고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라는 졸업논문을 썼다. 그것을 계기로 중세사오 사상에 대하여 평생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는 이탈리아 국영 라디오·텔레비전 네트워크인 RAI의 문화 편집자로도 일했고 이를사직한후 미라노에 이Tss 폼피아니 출판사에 수석 논픽션 편집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1960년대의 과격 지식인그룹인 그루포 63 의 창립 회원이기도 했다.61년에는 봄피아니 에 그대로 근무하면서 토리노 대학의 미학강사가 되었다. 그 뒤 밀라노 포리테크닉에서 기호학을가르쳤다. 그리고 1975년에 볼로냐 대학의 기호학 교수로 임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기호학은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학문이라 생각된다. 기호학이란 언어의 기호체계에 대한 이론으로 정의 되는데『기호학 이론』을쓴 에코는 이를 좀더 확대하려한다.즉, 기호학은 모든 형태의 의사소통을 탐구한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에코는 철학의 핵심적인 쟁점은 이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가 등이다.그의 저서 「칸트와 오리너구리」에서는 특정화자으 erhdehdcp 내에서는 그 공동체의 협상 결과에 의해 단어가 의미를 획득한다고 결론짓는다. 즉, 사물과 화자는 신이 주신 정체성의 꼬리표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약속과 합의에 의해서 정체성을 수여받는것이라 말한다.에코는 철학은 상식의 포기혹은 상식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는 일반적인 명제를 부정하고 있는데, 철학자가 남들이 당연시하는 사실이나 사상을 의문시한다는 점에서 철학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뛰어넘는다고 해서 배척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또 상식을 뛰어넘는다는였다. 그는 1960년 할아버지의 뱅골어로된 『흰두교』라는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센은 타고르의 영향을 받은 영국학교엔 달팅턴에 다녔고, 타고르가 주장한 인생에서의 학과 외의 더 많은 것이 있음을깨닫도록 교육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학교에서는 예술교육과 개인적 성취를 더욱강조 했다.센은 야학에서 오지마을 사람들에게 읽기, 쓰기, 산수 등을 가르쳤다. 이때부터 문맹퇴치에 관심을 쏟았고, 그로인해 그는 인생의 다양성에 눈뜨게 되었다. 그는 1943년 벵골의 대기 근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고 이러한 경험은 그가 경제학을 선택하게된 계기가 되었다.그는 대학시절 구강암에 걸리는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의 정력적인 활동에는 멈춤이 없었다. 그의 학자로써의 경력은 다양한 학분적 솬심만큼이나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는 델 리 경제대학원에 근무하면서 그곳을 인도의 유수의 경제연구 센터로 만들어냈다. 또 런던의 경제대학원에 봉직하다가 1977년 옥스퍼드대학으로 옮겨가 드러먼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철학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87년에는 하버드대학의 경제학과 철학담당교수로 재직하게 된다.1998년에는 켐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으로 돌아오게 된다.그는 다른 인도계 학자들과는 달리 항상 인도 시민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에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도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 학부시절 이래 한 번에 인도를 6개월이상 떠나 있은 적이 없엇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분위기 속에서의 학문연구도 좋아합니다. 그게 옥스퍼드가 되었든 런던 경제대학원이 되엇든 하버드가 되었든 말입니다. 그는 그의 명성 못지않게 그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6.노엄 촘스키 ; MIT 석좌교수·언어학자전세계적으로 그이 강연회에 사람드링 꽉 드렁차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 때문에 그는 대체세력을 표방하고 나선 젊은이 그룹의 공격목표가 되고 일부 학자와 정치가의 숭배대상이 되고 다른학자와 정치가들의 맹렬한 공격대상이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 때문에 컴퓨터가 등장하고 감정을 가진 소프트웨어, 인간화된 로봇, 가상의 애완동물, 디지털 인형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대상이 생겨나면서 로르샤흐 패러다임 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컴퓨터대상은 더 이상 정서적 중립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와 제스처를 통해 컴퓨터와 관계를 맺을수 있고, 컴퓨터의 정서를 파악해야하고 내제된 과정과 관련하여 그 기계를 존중하고 대신 그 기계를 인터페이스 가치로 인정해줘야한다는 것이다.터클은 다른 사회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상에 대한 정립이 매우 힘든 연구였다. 다른 유명학자들의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어떤 사상체계를 적립할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문제였다. 최소한 그녀자신에겐 말이다. 교과서적인 사상이나 철학이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물리적 공간의 개념이 약간은 퇴색된 이런 시점에서는 당연히 사상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데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만이 그렇게 생각하고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인간이 컴퓨터 해독자로서의 역할을하고있고 그러한 매체를 통해 인터페이스를 파악하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내제가치를 파악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예로 컴퓨터 게임을 하던 소녀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분명 설득력 있는 주장일수 있다라는 것이다.10.프랜시스 후쿠야마 ; 조지메이슨대학교수·정치학자프란시스 후쿠야마 그는 정치학자로서 악동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자본주의 극예찬론자, 자유민주주의 예찬론자로서 그의 명성은 세계적이다. 그는 요즘 항상 즐겁다. 무엇보다도 즐거운 것은 정치적 정상에 오른나라들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때문이리라. 낙관론자라는 비난 속에서도 교묘한 화술로 그 논쟁의 방향을 자신에게서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음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책 『역사의 종언』에서는 1989년 시카고 대학의 강연에서 출간된 것이다. 당시 서구의 몰락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요청 받았습니다한 몽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에대한 해명에 들어갔고 그의 주장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철저한 과학적 상식을 기초로 한 그의 소설을 반박하고자 했던 그 과학자는 클라크의 과학적 지식에 다시한번 놀랐다. 클라크는 그 과학자는 우주 엘리베이터의 구조에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말하면서 탄소섬유의 강도를 간과했다고말한다. 그의 그런 답변에 NASA의 엔지니어가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는데 클라크가 제시한 구조물은 건물이 아니라 압축된 타워 라고 강조했다. 그것은 강한 장력을 가진 케이블이다. 라고 말이다.클라크는 자신의 소설을 그저 책으로 출판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소설에서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그는 황당무계하고 몽상적인 과학소설가가 아니다. 정확히 미래를 예측하고 현실화할수 있는 실현가능성의 판단을 누구보다도 돋보이게 할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 미래학자라 불리워야 마땅할것이다.14.대니얼 골먼 ; 인성교육연구가·EQ연구EQ 라는 것을 모르는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대니얼 골드먼 그는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1995)은 나오자마자 대히트를 쳤고, 골먼은 그 즉시 순회강연 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 책은 그후 4백만부가 팔렸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세계적으로 깊이 뿌리내려 있는 IQ 집착을 교정했다.그의 책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발생하는 감성지능의 사례와 불감증 사례들을 제시했고 그에대한 다양한 예를통해 독자들을 설득시켰다. 그는 IQ와 감성지능이 서로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하기위해 올 A 학점을 받은 학생이 자신의 물리학교사를 B 학점을 주었다는 이유로 칼로 찌른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그는 이런 인간심성의 상식적 이해를 더욱 확실히 조망하기 위해 신경과학적인 발견사항들도 인용한다. 수백건에 달하는 과학적 조사결과 두뇌의 두부분- 감성적 두뇌 와 이성적 두뇌 -이 서로 연결되어 감성지능르 책임지는 신경회로가 형성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즉 인간의 원초적 충연구를 잘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일이지만 거기다 여성의 역할모델이라는 딱지까지 붙으면 그건 정말로 말할수 없이 어려운 문제이지요. 라고 말한다.그뿐아니라 마걸리스는 여성학이라는 별도의 학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난 그게 다 가짜라고 생각해요 실제 학문에서 성공할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 핑곗거리예요. 여성의 역사라는 것은 없고 단지 역사만 존재하는것일 뿐이죠.내 딸은 나를 벽장에 숨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만 난 결코 페미니스타가 아니에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단지 그녀는 과학자이자 동물학자일 뿐이지 패미니스트도 그무엇도 아닌 그저 뛰어난 과학자일 뿐이다. 이런 그녀를 벽장속의 페미니스트다라고 내모는건 페미니스트들의 그런 시각이 불러일으킨 환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18.스티븐 제이 굴드 ; 하버드대학교수·생물학자그가 생물학적인 마인드를 갖게된 계기는 아버지와함께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해 디노사우르스를 보게된후부터였다. 그는 뉴욕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유대계 선생님들과 아일랜드게 선생님들에 대해여 좋은 초억을 가지고 있다. 학새시절 그는 화석얼굴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그것은 그가 고생물에대한 관심도가 높아서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근ㄴ 앤티오크 대학을 나와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 이래 하버드이 지질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아가시 비교동물학 박물관의 큐레이터를 맡아보고 있다. 디노사우르스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이 고생물학 전공은 달팽이이다.그의 학자적 경력주엥서 핵심논쟁사항은 진화의 장기적 역학(力學)에 관한 것이다. 1972년 굴드는 동물학자 나일스 엘리드와 함께 단속평형설 을 내놓았다. 이이론에 의하면종는 상당히 오랜 기간도안 벼하지 않고 그래도 잇다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격시 발달하여 새로운 종으로 변형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급속히 짧은 기간동안에 가장 진화적인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이는 그의 주장이 오랜세월에 걸친 꾸준한 진화와는 이론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이런 과격한 주장을뒷받침하는 심리학자
발해의 역사와 그 문화발해의 역사와 그 문화목차 서론 1.역사의 미아 본론 1. 발해의 건국 2.신라·당과의 전쟁 3. 발해의 흥망성쇠 4. 발해의 외교 5. 발해의 문화와 종교 결론 1. 현시점에서 발해의 재조명서론1.역사의 미아 역사적 사료의 부족 발해사에 대한 연구환경열악 발해사 연구에대한 관심 부족 발해사는 한국사뿐만 아니라 중국사 러시아 극동사에도 포함1.역사의 미아왜?? 1)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당한뒤 유민들이 강제로 요동반도에 이주되고, 수도인 동경성은 불타버려 발해인들이 자기의 역사를 후세에 전해줄 길이 없었다. 2)발해는 현제의 만주 동부지역에 중심둔 국가 남쪽한반도 북부지역 북쪽흑룡강(러시아의 아무르강) 서쪽요동 즉,중국의 만주, 러시아의 연해주, 북한의 대부분지역을 포함한 대제국1.역사의 미아발해에 관한 여러 진술 《구당서(舊唐書)》 발해말갈전 발해를 말갈의 나라라고 기록,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는 본래 고구려의 별종(別種)이었다. 발해사를 고구려를 계승한 독립국사1.역사의 미아발해에 관한 여러 진술 《신당서(新唐書)》 발해전 발해를 말갈의 나라라고 기록.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는 속말말갈인(粟末靺鞨人)이었다. 발해왕이 당으로부터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의 책봉. 발해(지배층)의 언어가 중국어(漢語)를 사용.본론본론 1. 발해의 건국 2.신라·당과의 전쟁 3. 발해의 흥망성쇠 4. 발해의 외교 5. 발해의 문화와 종교1. 발해의 건국696년 영주 이진충의 난대걸걸중상(대조영의 아버지) 대조영세력의 반란 가세천문령 대첩1. 발해의 건국1. 발해의 건국한반도의 동북부 지역과 만주 지역은 힘의 공백 상태 대조영 집단은 고구려 멸망 후에도 자치적으로 고구려인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는 이들 지역에 정치적 구심점 역할 천문령 대첩을 계기로 30여년의 시간이 지난 698년 발해라는 새 나라가 건국2.신라·당과의 전쟁2대 무왕의 즉위 독자적인 연호를 쓰면서 급속한 팽창 정책으로 당과 일전 8세기초 당에게 유리한 국제정세 전개 당의 발해 견제정책 발해는 대장 장문휴의 지휘하에 발해의 정예부대는 압록강구을 떠나 당의 등주를 기습 등주성이 함락되고 자사 위준은 발해군에게 살해2.신라·당과의 전쟁신-당연합군의 결성 당나라는 등주 전투의 패배에 보복하기 위하여 733년 문예를 유주에 보내 군사를 동원하여 발해를 공격하라고 명령 동시에 신라 왕족 김사란을 신라에 귀국시켜 신라군이 발해의 남쪽을 공격 연합군은 수차례 공격을 감행하지만 발해군에게 폐전3. 발해의 흥망성쇠1)발해의 발전 팽창 정책은 문왕때 이르러 일단락되고,내부 정비가 시작 수도를동모산에서 300리 떨어진 상경용천부(대흥 18년:755년) 국토의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5경15부 62주라는 행정 조직을정비 문왕 시기에 발해는 일본에 자주 사신을 파견하면서 신라를 견제3. 발해의 흥망성쇠1)발해의 발전 - 당시 일본이 신라협공계획(758)을 제안하였으나 발해는 일본의 파견 사신을 무관(759)에서 문관(762)으로 바꾸어 사실상 신라 협공 계획을 포기 - 문왕(790)적대국이던 신라에서 사신이 파견 - 문왕은 대흥48년(785) 수도를 동경용원부로 천도 - 문왕 말기의 귀족들과 왕족들간의 내부 투쟁3. 발해의 흥망성쇠2)발해의 혼란 문왕 말기부터 시작된 정치적 내분은 문왕의 사망 후 더욱 심화 문왕 이후 25년 동안 왕이 6명이 바뀌는 등 정치적인 혼란 성왕때 수도를 동경 용원부에서 다시 상경용천부로 천도상경용천부 출신의 귀족(국인 세력)들이 강력히 반발 일부 지방 세력은 중앙 정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해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3. 발해의 흥망성쇠3)해동성국3. 발해의 흥망성쇠3)해동성국 - 819년 간왕이 죽은 후,고왕(대조영)의 자손이 아니라 고왕의 동생 대야발의 자손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발해 중흥으로 대표되는 10대 선왕(819-830년)이다. - '건흥'이라는 연호에 맞게 선왕은 대.내부적으로 발해국을 정비하면서,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 요동 지역을 다시 확보하고,무왕 이후 독자 노선을 유지하던 흑수 말갈 및 여러 종족들을 복멸망 15왕 229년동안의 발해전성기는 역사속으로 사라진다.4. 발해의 외교1)발해의 대외적 외교관계 --229년간 발해는 중국.일본.중앙 아시아 국가와 외교 관계 -초기의 외교 관계는 정치.군사적인 의미 -중기에 들어오면서 경제.문화적인 교류의 폭이 커졌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 -요와의 전쟁이 불리해지자 발해는초기의 외교 성격으로 돌아가 정치.군사적인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4. 발해의 외교2)중국과의 외교관계 정치적관계발해 건국 초기 적대관계당의 고립으로 우호적 외교적책719년 고왕 사망후 대립적 관계로3대 문왕 우호적관계로 선회 사회-문화 교류안록산의 난 계기로 중립적 위치4. 발해의 외교2)중국과의 외교관계 -경제적관계조공 형태를 띈 궁실 무역과 일반 상업 무역이 성행713년 발해 고왕의 요청으로 당과의 첫교역등주에 발해 교관선이 정박 발해관 설치4. 발해의 외교2)중국과의 외교관계 문화적관계문왕의 적극적인 수용 정책에 당과의 문화적 교류가 번성유학생들이 당의 태학에 입학발해의 유학생들의 당 관료진출4. 발해의 외교2)중국과의 외교관계 문화적관계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는 당의 장안을 참조하였으며,행정 조직 역시 당의 조직을 모방하는 등 적극적인 당 문화 수용은,발해 후기 독자적인문화를 꽃 피우는 배경이 되었다.4. 발해의 외교3)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치적관계 발해 2대 무왕 시절 고립된 국제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동해를 건너 일본에 사신을 파견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의 배후 지원이 필요 일본의 적극적인 외교 정책은 757년 전후,신라침공 계획을 착수하면서 발해에 특사4. 발해의 외교2대 무왕대에 첫 사신 파견신라의 견제를 위한 목적으로 일본 포섭발해의 일방적인 사절파견경제적 관계에 집중정치적 관계가 소멸된 후, 발해는 경제적 이익 일본은 명분적인 관계에 치중발해의 신라정벌포기 표명 직후4. 발해의 외교3)일본과의 외교관계 경제적 관계 발해와 일본의 정치적 관계가 퇴색하면서 경제가 국교에 우선 6대 발해 사절단이 무관에서 문관으로 바뀌면서 이러한 경로를 추측할수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1)발해의 문화 발해의 한시 외교 문서와 정혜.정효 공주묘비 (발해 3대 문왕의 딸) 및 9편의 한시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일본 [경국집],[문장수려집],[입당구법순례행기] 중에 발해인이 쓴 시 9수가 전례 발해 대사였던 이들은 ,공적인 직무 외에문화 사절로서 발해의 문화적 우위를 과시5. 발해의 문화와 종교정효공주묘비 탁본과 [경국집]5. 발해의 문화와 종교2)발해의 유적5. 발해의 문화와 종교만주 유적지 돈화는 대조영이 당의 추격군을 격파한 후,자신의 연고지였던 요동을 포기하고 다시 나라를 열었던 곳 상경 용천부가 자리하고 있던곳. 아시아에서 당나라와 함께 발해는 최고의 수도5. 발해의 문화와 종교동모산 -산 위에는 성산자산성(성산자: 산 위에 성터 가 남아있다는 뜻)이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영승유적 영승 유적은 동모산에 있는 성산자 산성과 한 조를 이루는 유적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육정산 고분군 초기 나라를 이끌어가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 육정산 고분군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성자산성 성산자 산성은 대조영이 당의 군대를 격파하고 이 곳으로 와서 처음으로 쌓은 산성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주작대로 상경용천부로 들어가는 도로 마차 12대가 지나갈 수 있는,폭이 100m정도 되는 도로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성벽,석등 상경용천부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그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발해 석등이 있으며,남벽이나 북벽등이 지금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궁궐터 외성과 내성으로 구성된 상경용천부는 내성 안에 궁궐을 두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우물 제 2궁전 동북쪽에 발해 시대의 우물이 남아 있다.우물벽은 현무암을 깎아 쌓아올린 것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성문 상경용천부의 성문 중에는 남문이 잘 남아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인공호 발해 문왕 시절,대규모 토목 공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호수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용두산 고분군 용두산 고분군은 정효 공주 묘를포예프카 성 발해 시대 수공업의 중심지였던 노보고르제예브까 성은 작은 야산 ( 해발 78m ) 위에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그라스키노 성 발해 시대 동경용원부에 속했던 지역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아브리코스-카프이또 절터5. 발해의 문화와 종교코르샤코프카 절터 유물-봉황새가 부조된 막새 기와가 발견되었다.현지에서는 불사조로 표현하고 있으며 연꽃이라기보다는 자작나무 잎사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북한 유적 북한 지역의 발해 유적은 80년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발굴되었다.60년대 이후 민족적 감정으로 인하여 중국 지역의 발해 유적 발굴이 힘들어지자,북한 지역으로 눈을 돌렸고 북청을 중심으로 함경도 지역에서 발해 유적.유물을 발굴,남경남해부 위치를 확고히 하는 고고학적 성과를 거두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북청토성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위치하고 있다.성의 둘레는 1.6km정도이며 성벽과 치가 발견되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오메리 절터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북동쪽으로 13km 떨어진 432m의 압해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부거고분군 북한에서는 부거석성이 동경용원부라고 주장하며,팔련성설을 부인하고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명수리 고분군 함경남도 북청읍 명수리에 위치한 발해 시대 고분군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3)발해의 종교 I.무속 신앙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낸 사실 등은,고구려 인들이 천손 사상을 바탕으로 천신과 시조신을 가장 크게 숭배5. 발해의 문화와 종교II.불교 -발해에서는 불교가 크게 성행하였다.특히,3대 문왕의 존호가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었는데,문왕은 자신이 불교를 지키는 수호자였던 것이다. -상경용천부에는 현재 10여군데의 절터가 발견되며,이 외에도 연해주,북한 지역에서도 불교 유적.유물이 발견되고 있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발해 영광탑 장백 조선족 자치현에 있는 탑이다. 5층 벽돌탑이며 평면이 방형이고 높이는 13m 정도이다5. 발해의 문화와 종교III.경교 - 중앙 아시아와 교류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