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영역의 확장- 로잘린드 크라우스1. 조각영역의 확장지난 십여 년간 다소 생소한 작품들이 조각분야에서 발생해 왔다. 끝에 텔레비젼 모니터가 놓인 좁다란 복도, 시골길의 도보여행을 기록한 대형의 사진들, 평범한 실내에 이상한 각도로 설치된 거울들, 사막을 가로지르는 일시적인 선 따위가 그것이다.전후 미국 미술을 주도해 왔던 비평 활동들은 이러한 조각을 위해 힘써왔다. 이러한 비평 활동을 통해 회화와 조각의 범주들은 혼합되고 신장되고 왜곡되어졌다. 조각과 같은 용어를 이와 같은 신축성 있게 공공연히 전위주의 미학이라는 이름아래 수행되어 왔다.① 새로운 것, 조각으로서의 정당화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바닥 위의 한 무더기 실로 된 쓰레기 또는 화랑으로 들어온 톱으로 켠 삼나무 둥치, 사막에서 퍼내온 수톤의 흙더미, 불구덩이로 둘러싸인 말뚝 울타리들이 '조각'이 되면서부터, '조각'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역사가와 비평가는 놀라운 재주를 펴나갔으며, 그것의 역사적 계보를 찾기 위해 몇십 년 전 정도가 아니라 수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스톤 헨지, 나즈카의 선로, 톨텍의 구기장 등이 이 새 작업의 역사적 관계를 증명하고 조각으로서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일 수 있었다. 물론 스톤헨지와 톨텍의 구기장은 엄밀히 말해 조각이 아니었다. 이러한 작업에 대한 특이한 증거물로서의 이들 선사시대의 유적들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세기 초부터 행해진 원시화된 작품경향들이 이제 그 다양성을 요구하게 됨으로써 속임수는 여전히 행해지게 되었는데.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도 극단의 과거와 현재를 중계하는 의미의 작품이었다.② 의미가 모호해진 조각이 모든 과정 중에서 우리가 아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조각'이라는 개념이 의미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군의 개별적인 조각들을 보장하기 위해 보편적인 범주를 사용할 것을 고려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범주는 지금처럼 수많은 이질성을 포함하도록 강있다. 그래서 우리는 땅속의 구멍을 바라보면서 조각이 무엇인지 알기도 하겠고 모르기도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2. 조각 고유의 법칙① 조각의 상징적 재현과 특별한 의미/사건을 가진 장소의 표식이 법칙은 기념비의 논리와 불가분의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특정한 장소에 놓여지게 되고, 이에 따라 그 장소의 의미와 용도를 상징적인 언어로서 말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바로 그 같은 경우의 기념물이다. 캄피돌리오 광장의 중앙에 놓여 있는데, 그 상징적 존재를 통해 고대 로마 제국과 근대국가로서의 르네상스 로마정부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베르니니의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교황권의 중심부로 연결하는 바티칸 궁전 계단아래에 놓여있다. 그것은 조각의 다른 예로서 특별한 의미/사건을 가진 특정한 장소를 표지한다. 이렇게 재현과 표시의 논리에 관련해서 기능하기 때문에, 조각은 보통 구상적이며 수직적이다. 또한 좌대는 실재의 장소와 재현적인 상징 사이를 중개하므로 구성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이 관계에는 신비스러운 요소가 전혀 없으며, 이 관계들은 서구예술에서 수세기 동안 수많은 조각품을 탄생시킨 원천이 되었다.② 기념물 논리의 쇠퇴19세기말에 서서히 기념물의 논리가 쇠퇴해 가는 것을 보게된다. 두 가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는데, 기념비적 작품들로 알려진 로댕의 [지옥문]과 [발자크상]이 그것이다. 지옥문은 1880년에 파리장식미술관 정문으로 주문되었고, 발자크상은 1891년 문학적 천재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파리의 특정장소에 세우도록 주문되었다. 이 두 작품은 정작 원래의 장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념물로서는 실패하였다. 이 두 개의 조각 프로젝트로 인해, 종래의 기념비적 논리를 넘어서서 가히 그것의 부정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 탈위상성, 탈귀속성, 장소성의 완벽한 상실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모더니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조각물을 생산하는 모더니스트 시기는 추상으로서의 기념물,, 거의 자기 지시적인 추상적 형태로서, 혹은 순수표지 및 받침대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3. 모더니즘에 들어선 조각① 조각의 위치, 의미와 기능모더니스트 조각의 두 가지 특징이 바로 조각의 위치, 그리고 본질적으로 떠도는 것으로서의 그 의미와 기능을 말해준다. 좌대가 작품의 일부로 간주됨에 따라 좌대를 작품 속에 흡수하고, 실제 장소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조각의 재료성과 그것의 구축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조각은 그 자체의 자율성을 드러낸다. 브랑쿠시의 [수탉]과 같은 작품에서 받침대는 작품의 형상적인 한 부분을 이루는 형태로 조각의 요소가 되고, [카리아티즈]와 [끝없는 기둥]에서 조각은 모두 받침대이다. 한편, [아담과 이브]에서는 조각작품이 받침대와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다. 이와 같이 받침대는 운송 가능한 것, 조각 속으로 완전히 통합되어서는 작품이 귀속될 곳이 없음을 표지해 준다.인체의 부분을 철저히 추상화된 단편으로 표현하려는 브랑쿠시의 의도는, 결국 또 다른 장소성의 상실을 입증한다. 이 경우 좌대가 인체의 부분의 몸통과 같은 위치로서 브론즈나 대리석 두상을 지탱하고 있다.② 비건축과 비풍경1960년대 초기부터 나타나는 가장 적절한 사례들로서 로버트 모리스에 의한 작품들이 있다. 하나는 1964년 그린 갤러리 전시 작품으로, 조각으로서의 위치를 갖는 의사건축적인 완성체들이 단순한 결정체들로 거의 완벽하게 축소되어, 실제 방이 아닌 방안에 설치되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거울이 부착된 상자의 야외전시이다.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들은 시각적으로 풀과 나무가 연속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풍경의 실제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배경에서 구분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조각은 조각에 대한 그 반대 논리의 상태에 들어섰고, 순수 부정적인 형식이 되었다. 이제 조각은 더 이상 긍정적이지 않고, 이제 건축이 아닌 것에 풍경이 아닌 것을 덧붙인 결과로 탄생된 범주이다.이제 조각이 조각으로서의 비범주의 조합, 즉 비-건축과 비-풍경의 총체로서 일종의 존재론적 상실이생된 용어들 자체가 서로 어떠한 관련성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용어들은 구축적인 것과 비구축적인 것, 문화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에서 엄격한 대립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조각가들 사이에서 차례로 나타나기 시작한 문제들도 이러한 비 범주에 해당하는 조형요소들의 외적 한계에 초점을 모으는데 주력하였다는 점이다. 그같은 용어들은 한 쌍의 부정적 용어로 표현된 반대를 표현한 것이라면, 그것들은 단순한 뒤집기에 의해 같은 축의 반대로서 변형되지만 긍정적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건축이 아닌것'은 일종의 확장 논리에 의해서 '풍경'이라는 용어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일 수 있고, '풍경이 아닌 것'은 단순히 '건축'이 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언급하는 확장의 개념과 관련되는 그룹으로는 매우 정밀한 작업을 행하는 클라인그룹과 또 다양한 다른 그룹들 중 인문과학 작용을 도해하는데 관여하는, 구조주의의 방법론을 취하는 피아제 그룹이 있다.③ 복합성클라인 그룹에서는 조각이 비-풍경과 비-건축 사이의 중립적인 용어로 귀결되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복합성'으로 연결되는 두 개의 대립되는 용어 -풍경과 건축-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복합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예술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왔던 두개의 용어, 즉 풍경과 건축을 다시금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같은 경향은 이념적으로 금기시 되어 왔기 때문에 그런 복합성도 후기 르네상스예술이 종결된 이래 줄곧 제외되어 왔었다. 비록 다른 문화권내에서는 복합성이라는 용어를 아주 쉽게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서구의 문화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복합성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궁과 미로는 풍경이자 건축이다. 일본식 정원은 풍경이며 건축이다. 고대문명에서 의식을 행하는 장소와 가무의 장 또한 이 같은 의미에서 복합성의 의심할 바 없는 결정체였다. 물론 그것들이 초기의 미분화된 다양한 형식으로서의 조각이었다는 사실은 두말은 문화적인 공간의 일부분이었으며, 조각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단지 또 하나의 부분이었다. 아무튼 서구의 역사주의자들이 생각하였던 것처럼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복합성 곳에는 추구되는 목표와 쾌락은 자신이 대립적이고 상이하다는 그 점이었다.④ 확장된 영역의 합의확장된 영역이라는 것은 모더니스트의 범주에서 조각이 그 사이에 위치하게 되는 반대되는 항을 문제시함으로써 발생된다. 한번 문제시되면, 그리고 이러한 확장으로의 길을 생각할 수 있게 되면, 논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세 가지 범주가 생기게 된다. 세 범주 모두 장 그 자체의 상태이며, 어느것도 조각과 유사하지 않다. 왜냐하면 '조각'은 더 이상 조각이 아닌 두 가지 것 사이에서 특권을 가진 중간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조각'은 다르게 구성된 다른 가능성들이 있는 하나의 장의 표면 위에 있는 단 하나의 용어이다. 그리하여 이 다른 형식들을 규정하기 위한 합의가 이루어 졌다.1968년-70년 무렵 많은 예술가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확장된 장에 대한 합의, 또는 압력을 느꼈음이 거의 확실하다. 그들은 로버트 모리스, 로버트 스미드슨, 마이클 하이저, 리차드 세라, 월터 드 마리아, 로버트 어윈, 솔르윗, 브루스노먼 등이며, 차례로 그 논리적 상황이 더 이상 모더니스트라고 이야기 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다. 이러한 역사적 단절과 그것을 특징짓는 문화적 장의 구조적 변형을 이름짓기 위하여, 비평의 다른 영역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용어, 포스트모더니즘에 도움을 청하였다.4.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장된 장우리가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간에 그 용어에는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로버트 스미드슨은 1970년에 부분적으로 매장된 목재를 제작하면서 복합적인 축을 다루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 스미드슨이 네델란드에서 나무와 잔디로 전망대를 만들때 로버트 모리스도 함께 작업했다. 그 이후 다른 많은 예술가들-로버트 어윈. 앨리스 에이코크, 존 메이슨, 마이클 하이저, 메리 미스, 찰스 시몬즈-은 .
나무꼭두옛날 우리 아이들에겐 별다른 장난감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인형'이라고 불리는 것은 더욱 드물었다. 자연 친화적인 놀이가 있었으니 '풀각시놀이'가 그 예이다. "아가씨들이 풀을 뜯어다가 머리채를 만들고 나무를 깍아 그것을 붙인 다음 붉은 치마를 입히는데 이를 각시라 한다. 이부자리와 병풍을 쳐놓고 놀이하기도 한다."(동국세시기). 옛적과 다름없이 시골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놀이의 하나이다.앞서 언급한 '인형'에 해당하는 옛 우리말은 '꼭두' 또는 '각시'이다. 꼭두는 중국 한말 꼭두극에 등장하는 대머리 꼭두인 곽독郭禿(중국 지배층에서는 '꿔투'라고 발음하지만 황하를 중심으로 한 한족들의 발음은 '곡독'이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꼭두각시란 의미는 배후에 있는 남의 조정에 의하여 주체성 없이 행동하는 자를 일컬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오늘에 전하고 있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도 여러 꼭두를 번갈아 내세우고 무대 위층에서 조종하고 있는 민속극의 하나이다.꼭두 중에서도 나무꼭두는 부장품으로 넣기도 했지만 대개는 상여의 난간에 꽂아두었다. 분류를 하자면 여인꼭두와 남자꼭두, 동자와 동녀꼭두, 재주를 부리고 있는 꼭두, 말· 호랑이· 표범 등 동물을 타고 있는 꼭두가 있다. 자그마한 이 꼭두들은 세월의 흐름을 견디느라 칠이 벗겨지고, 긁히고, 새롭게 손질을 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투박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자귀로 거칠게 깍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조형성을 무시한 채 뭉턱하니 잘린 어깨선에서 단순미와 절제미를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다섯 손가락을 하나하나 조각한 것이라든지, 머리채를 길게 땋아 내린 뒷모습이라든지, 말꼬리에 털을 붙여 놓은 것 같은 아름답고도 섬세하게 조각한 꼭두가 적잖다. 때로는 신비스럽게 보여지는 것도 있고, 민화적인 요소가 배어있는 것도 있다, 귀신을 쫑기 위한 꼭두의 얼굴은 괴기하게 그려져 있어 앞에 서면 압도당할 정도로 기운이 전달되어져 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도록 하면서도 묘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상여장식의 꼭두상여의 난간을 장식했던 나무 꼭두는 영원한 저 세상으로 향하는 길에 잡귀신을 쫑고 서광을 비춰주는 호위병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죽음을 다시 살아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믿었다. 그래서 죽음에 의한 이별도 극락세계에서보다 축복된 새로운 만남으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자리에 상여, 즉 죽은 사람을 묻어야할 곳, 장지葬地까지 나르는 제구祭具가 있다. 죽음의 집으로 가는 길의 상여는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것은 살아서 누리지 못한 부귀영화일지언정 죽어서는 기꺼이 가지고 가르는 듯이 아닐까. 혼례를 '대례'라 하여 가장 높이 치지만 상여와 비할 바 못 된다. 대례 때 타는 꽃가마는 기껏해야2인교나 4인교인 반면, 상여는 적어도 12명에서 많을 땐 30명 전후의 상두꾼들이 메어야 하는 가마이다.상여에는 건축미가 깊이 배어있고 갖가지 장식물로 치장되어 있어 예술적 가치가 풍부하다. 상여는 못을 쓰지 않고 목재조각을 조립식으로 만들었다.상여의 장식에는 청룡·황룡·정자룡丁字龍 등 용머리 모양은 상서로운 짐승으로 등천왕생登天往生) 승천, 이승을 떠나 저승에 다시 태어남.의 뜻을 지닌 것이고, 봉황의 머리와 주작 등도 등천왕생의 뜻과 함께 명운冥運(저승에서의 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청조靑鳥는 도교 신선사상에서 나온 행운을 가져다 주는 새이다. 선녀 및 동자상, 십이지十二支 모형은 도교적인 사상과 옛날 삼천궁녀를 거느린 화려한 행차로서 가히 발상된 길상의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다. 그 외에 문살모양의 아자亞字·만자卍字·정자井字무늬와 구름·당초무늬 등은 화려함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네 귀 봉화의 머리끝에다 요령(풍경)을 단 것은 상여꾼이 그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평온한 운구를 바라는 뜻이 담겨져 있고, 산중에 들어가서는 맹수를 쫑기 위한 금속성의 장식물로서 뜻이 내포된 것이다.목재로 제작하는 상여의 재료는 주로 버드나무나 자작목, 피목 같은 잡목을 쓴다. 이 잡목들은 오래 되어도 터지기를 덜 하고 틀어지는 성질이 적어 연장발을 잘 받아 조각하기에 수월하다고 한다. 상여도 가난한 집에서는 주로 꽃상여를, 부잣집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목제상여를 썹다. 동리마다 상조계 모임이 있어 상여를 구입하거나 제작하여 마을 공동으로 '상여집' 또는 '곳집'이라고 부르는 작은 집에 상여를 분해해서 보관해 두었는다.
꽃 담1. 꽃담의 기원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집의 벽체나 담장에 여러 가지 무늬를 놓아 독특한 치례를 하였다. 그렇게 치례한 벽체나 담장을 꽃담이라고 한다.지금도 볼 수 있는 옛 궁궐 꽃담은 화려하되 야하지 않고 은근한 멋을 풍긴다. 두메산골 토담집 주인이 투박한 솜씨로 토담에 꾹꾹박아 놓은 기왓조각의 질박한 무늬에 구수한 한국인의 심성이 그대로 배어 있어 그윽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삼국사기」에 "진골계급 주택의 담장은 석회를 발라 꾸미지 못한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성골 곧 왕족은 석회를 발라 집을 치장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꽃담이 멀리 삼국시대에 이미 싹텄음 짐작할 수 있다.고려시대에 장가장이라는 유명한 꽃담이 있었다. 이 꽃담은 고려의 서울인 개경에서도 뛰어난 꽃담으로 손꼽혔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검소한 것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화려한 꽃담은 저절로 그 기세가 꺽이게 되었다. 화려한 꽃담 대신에 수수하며 은은한 꽃담이 집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골집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돌, 기와나 그 파편들이 꽃담을 꾸미는 재료가 되었다. 천연이 주는 재료를 써서 멋지게 구조해내는 재주를 부렸고 깊은 생각과 적절한 지혜가 그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2. 꽃담의 재료㉠ 진흙과 모래㉡ 돌 : 벽면에 쌓거나 무늬를 놓을때 쓴다. 이런 돌은 자연석을 그래로 쓰기도하고 다듬어서 쓰기도 한다.㉢ 기와 : 무늬를 놓을때 쓴다.㉣ 전돌 : 여러 가지 크기의 종류가 있으며, 무늬가 없는 것과 무늬가 있는 것이 있다.㉤ 석회 또는 삼화토 : 화장줄눈을 칠 때 쓴다.㉥ 석비레 : 삼화토용㉦ 여물 : 흙을 이길 때 섞어 쓴다.㉧ 새끼줄 : 사고석을 묶을 때 쓴다.㉨ 목재 : 토담을 쌓을 때 거푸집을 짓는데 쓴다.㉩ 단청도료 : 무늬를 칠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쓴다.3. 꽃담의 구조와 치장벽체나 담장의 벽면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을 '무늬 놓는다'라고 하며 무늬를 놓아 장식한 벽면을 통틀어 꽃담이라고 한다. 문헌에는 회면벽(繪面壁), 회벽화장(繪壁華墻), 화문장(華紋墻), 영롱장(玲瓏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말로는 이들을 모두 꽃담이라고 하나 한자어를 차용해서 화담, 화초담, 화문담이라고도 하며, 혹은 무늬담, 그림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돌각담바닥에 굵은 돌을 놓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완성시키는 담장이다. 돌만으로 쌓아 올리다가 중간쯤에서 수키와 둘을 맞대어 둥근 구멍을 내어 밖이 내다보이게 하기도 한다. 이것을 규칙적으로 몇 번 계속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장식이 된다.㉡ 토담토담을 쌓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둥글게 흙덩이를 빚거나 틀에 넣어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로 만들어 쌓아 올리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널판지로 거푸집을 만들고 고정시킨 뒤 거기에 흙을 채워 밟아서 잘 다지고 어느 정도 굳으면 그 위에 다시 거푸집을 만들어 또 흙을 채워 다져 이를 단계적으로 연속해서 완성시켜 나가는 방식이다.토담을 쌓을 때는 알맞은 돌을 쌓거나 깨진 기와를 넣어서 변화를 준다. 그러면 질박하면서도 멋진 장식 효과가 있다. 이것을 '눈박이한다'라고 한다.㉢ 토석담토석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용하는 돌이 자연석일 경우와 인공적으로 다듬은 돌을 쓰는 경우이다. 토석담은 이런 돌과 진흙 혹은 굴림백토 등과 엇바꾸어 쌓아올려 키를 맞추기도 하고 그 사이에 기왓조각을 넣어 변화를 주기도 한다. 토담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짚이나 억새, 이엉으로 덮기도 한다.㉣ 사고석담돌의 크기를 일정하게 다듬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방 한 뼘 정도의 크기로 반듯하게 다듬어서 표면이 정방형이 되게 한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단단히 박히게 하기 위해 몸체를 길게 다듬는다.㉤영롱석담맞담의 영롱석은 자연석의 판석을 쓰는 수가 많다. 면이 고른 산석을 골라서 크고 작은 돌들로틈을 맞추어 싸게되는 방식인데 돌의 간격이 거의 밀착되도록 다듬어 사용하기 때에 화장줄눈의 두께가 일정하게 된다. 화장줄눈은 사고석담에서와 마찬가지로 돌 면보다 돌출되도록 두껍게 싸바른다.㉥ 화문장소나무나 십장생무늬가 생동감 있게 표출되어 있는 꽃담이다. 돌을 쌓은 부분 위쪽에 사벽질을 해서 담장의 표면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구분하여 부른다. 일종의 벽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담은 전돌로 쌓는 꽃담에 비하면 건축비가 덜 든다.
장석과 자물쇠1. 장석의 의미장석이란 목공품같은 생활 용품을 제작할 때에 기능의 필요성에 의해 몸체에 부착되는 금속재의 장식을 통틀어 말한다.장석이란 말은 금, 은, 동, 철, 백동 등 여러 금속재료 가운데 주로 동과 주석의 합금재를 사용하여 제작된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장석의 장인을 예전에는 두석장(豆錫匠)이라 불렀다. 쓰임새에 다라 각기 다르게 택하여진 목재의 색감과 무늬결의 미감은 소박한 자연의 미를 소중히 여겼던 선조들에 의해 조형적으로 고안되었고, 금속제 장석들은 가구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모양과 문양이 적절히 표현되어 전체 의장을 더욱 품격 있는 조화로 이끌고 있음을 볼 수 있다.일반적으로 목가구는 나무의 결점인 수축, 팽창을 막고 짜임새나 이음새의 복합적 기능을 고려하여 제작되었다. 곧 판재로 구성된 전면을 쇠목) 장롱의 앞쪽 두 기둥 사이에 가로 건너 대는 나무이나 동자등의 골재(骨材)로 분할하여 머름칸이나 쥐벽칸, 복판 등 좁은 면들로 재구성하였는데 이들 무늬결을 이용한 판재의 뒷면에는 수축, 팽창이 별로 없는 오동나무나 소나무 판재를 엇결로 붙였으며 골재와의 결합은 사개) 상자 따위의 네 귀퉁이가 꼭 물리도록 가로나무와 세로나무의 끝을 들쭉날쭉하게 파낸 부분, 또는 그런 짜임새. ...물림이나 손가락물림 등 홈에 끼우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힘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기능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조선시대 목가구 제작의 특징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의 장인들은 목재 자체의 짜임과 이음의 보완말고도 더욱 완벽한 기능의 강화를 위하여 금속제 장석을 고안해낸 것이다.장석에는 경첩, 돌쩌귀, 들쇠, 고리, 자물쇠 등의 기능을 위한 장석들과 감잡이) 1.기둥과 들보를 검쳐 대고 못을 박는 쇳조각. ... 2.대문의 문장부에 감아 박는 쇠., 자물쇠 앞바탕, 귀잡이, 통귀쌈, 광두정, 앞바탕 장식등 구조적 보강 장치를 위한 장석들을 제작하여 목가구에 부착하였다. 재질에 의한 이음새와 짜임새 등의 구조에 역학적인 보강장치와 기능성은 주석, 거멍쇠, 백동의 금속제 장석만이 갖는 중요한 구실인 것이다. 한편 장석은 이러한 본래의 목적말고도 목공품의 완성미를 돋보이도록 하는 금속의 장식적인 기능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나뭇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은은하고 화사로운 정감을 느끼게 한다.2. 장석의 역사우리나라에서 금속을 장석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상고시대의 유물이 거의 없어 확실히 규정짓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철기시대 이후 여러 가지 금속재의 제조 기술과 가공법이 발달되면서 각종 기물 및 생활 용품이 제작되었을 것이며 여기에 기능이나 보강 목적으로 자연히 금속제 장석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고조선 지역에 설치된 낙랑으로 유입된 한대(漢代)의 금공술은 한반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금속 기술로써 제작되는 장석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리라 추정한다.6세기 초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칠관잔편(漆棺殘片)에 부착되어 있는 금동고리는 관의 측판과 마구리판) 나무토막 따위의 마구리를 다른 면과 직각이 되도록 깎는 틀에 달려있는데 국화형 받침쇠에 배목) 문고리나 삼배목(三排目)에 꿰는 쇠.[못처럼 생겼으나, 대강이에 구멍이 있어 자물쇠를 꽂게 되었음.]을 박은 뒤 둥근고리로 연결하였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에 철제 농기구 사용이 일반화됨과 동시에 단순한 철제 장석이 많이 사용되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3. 장석의 이름과 기능여러 종류의 공예품에 부착되어 있는 장석은 그 가짓수도 다양하거니와 각기 형태와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장석은 목공예품에 부착되어 있는 부품으로 그 세부 명칭이 있게 마련이다.장석의 제작은 기능적 필요성에 의하거나 구조적 보강을 위하여 만들어 졌으므로 기능에 따라 경첩, 돌쩌귀, 들쇠, 고리, 자물쇠와 같은 기능위주가 있는가 하면 광두정, 감잡이, 앞바탕, 귀장식 등은 목재의 결구를 보강하기 위하여 붙이는 것이다.① 경첩대칭이 되는 두 개의 금속판 기둥 축을 중심으로 서로 맞물리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장치를 경첩이라 한다. 경첩은 문판을 몸체에 잇대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로 여닫이문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장치이다. 이러한 경첩은 큰 가구 및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어진 것으로 다른 어느 것보다도 완벽한 기능이 요구된다. 예전에는 두 개의 금속판이 겹쳐지면서 문이 열린다하여 노출형 경첩'경첩'이라고도 하였다.경첩의 원리는 예부터 거의 변화됨이 없이 제작되어 왔으나 대칭되는 몸판의 형태는 구조물의 형식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장식성이 풍부하게 제작되었다. 또한 구조적인 기능에 따라 왼쪽, 오른쪽 또는 위 아래로 여닫을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부착된 외형에 따라 노출형 경첩과 숨은 경첩으로 분류된다.경첩의 일종에 돌쩌귀라는 것이 있다. 돌쩌귀는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암짝은 문설주)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끼워 닫게 한 기둥에, 수짝은 문에 박아 서로 맞추어서 꽂게된 것을 숨은 경첩말한다. 이는 경첩과 기능은 같으나 제작 및 부착방법이 다르며 문짝을 떼어 내기 쉽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방법은 한옥의 건축 시공 방법 및 절차에 따른 지혜로 보여지며 대체로 대문, 창문등 대형의 문짝을 이 방법으로 고정시켰으며 찬탁이나 책장 등 무거운 내용물을 넣거나 얹는 목공품에 부착되고 있다. 이 형은 경첩의 역할 가운데 고형이긴 하여도 입체적인 견고성과 특색있는 형태로 그 미가 돋보인다.② 들쇠 돌쩌귀목공품의 위 판이나 큰 가구류의 좌우에 부착되어 손으로 잡아서 들어 올리거나 서랍이나 문짝에 부착되어 잡아 당길수 있도록 장치된 손잡이를 통틀어 들쇠라고 한다.들쇠란 들어 올린다는 기능에서 명칭되었으리라고 보며 역시 장식성보다 기능적인 역할이 중요하므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기물의 좌우에 부착된 경우가 많다. 들거나 잡아당기는 기능에서 볼 때 대체로 고리는 작은 손잡이요, 들쇠는 좀 큰 손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기물이나 서랍 들쇠는 들쇠 받침위에 다양한 형태와 더불어 강한 장식성에 베풀어진 경우가 많다. 따라서들쇠와 받침은 상대적으로 미적 보완 관계를 유지하여 연결되어 있다. 또한 들쇠가 닿는 부분에 배꼽 장식이라는 광두정을 부착해 목재의 마모성에 대비하는 미적, 기능적 역할에 배려를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들쇠는 들쇠받침 위에 배목을 박아 연결한 것이 대부분이나 몸체에 직접 박은 것들도 있다.박쥐형 들쇠 받침과 활형들쇠③ 고리고리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된 장석의 형태로서 철기시대 이후 각종 기물에 부착되어 왔다. 환봉이나 각봉 등의 금속재를 구부려 만든 작은 손잡이를 고리라고 한다.고리는 기본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으면서 큰 대문, 분합문(分閤門), 창문, 각종서랍, 목가구의 여닫이문의 자물쇠 앞바탕 위에 매달려지며 개폐기능의 자연스런 형태로 고안되어 쓰여지고 있다. 천도형 고리④ 앞바탕손잡이와 자물쇠가 부착되어 있는 바탕이 되는 금속판을 말하며 앞받침이라고도 한다.앞바탕은 목물의 몸판에 부착되어 고리나 자물쇠 등이 붙고,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보조, 보강하는 구실을 한다. 일반적으로 대롱 자물쇠가 달리는 자물쇠 앞바탕이 대부분이며 은혈 자물쇠 앞바탕, 두껍닫이 자물쇠 앞바탕으로 분류하며 그 밖에 장식적인 역할을 위주로하는 장식 앞바탕이 있다. 원형 자물쇠 앞바탕대체로 자물쇠 앞바탕은 목가구 전면 중앙에 위치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므로 장석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형태와 그 위에 표현된 문양이 매우 다양하다.⑤ 뻗침대뻗침대란 위아래로 여닫는 목물(木物)의 중앙에 붙어있는 긴 막대형의 금속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함이나 궤, 반닫이 등의 뚜껑이나 위판에 붙어 몸판과 연결되며 여닫을 때 들쇠의 기능과 함께 자물통을 끼울수 있도록 보조 역할도 한다.대체로 뻗침대에는 간간한 줄무늬를 새기거나 기하학적인 형태의 문양을 장식한 것이 많으며 길이에 따라 끝부분에 화형, 물형등으로 변화를 주며 입체적으로 장식 형태를 만들고 있다. 태극형 뻗침대와 몽땅 뻗침대⑥ 광두정광두정은 못의 일종으로 시각적인 장식성과 구조적 기능의 보강역할을 하는 장석이다.장식적인 광두정은 일반적으로 반닫이) 궤의 한 가지. 앞부분의 위쪽 절반이 문짝으로 되어 있어서 아래로 젖혀 여닫음.의 전면에 부착되며 형태나 크기에 따른 공간 구성을 고려하여입체적으로 장식되고 있다. 이는 평면을 시각적으로 풍성히 하여 주며, 목가구 장석의 완성된 목공품에 있어 못자국 이나 흠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작은 목물이나 함 등의 바닥에 부착되어 밑받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광두정⑦ 감잡이목가구에 있어 구조상의 접합 부분이나 모서리 부분의 보강을 위하여 부착시키는 장석을 감잡이라 부른다. 조선조의 목공품은 제작상 전면의 윗부분과 천판의 옆부분, 곧 가로맞춤은 사귀물림 으로하고 각 부재(部材)) 철재·목재 등 구조물에 쓰이는 재료.의 세로맞춤은 갑풀이나 민어풀을 사용하여 대못으로 고정하여 맞댄이음, 수문장이음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감잡이는 판과 기둥, 기둥과 기둥, 판과 판 등 짜임이나 접합 부위를 양면으로 튼튼히 잡아 기능의 보강을 하고 있다. 따라서 목재의 경제성과 견고한 부착성, 모서리 마무리의 감잡이미관성 등을 모두 해결한 것이 감잡이이다.감잡이라는 이름은 감아서 잡아 준다는 의미에서 비롯한 것 같기도 하며 형태에 따라 거머리 같은 모양이라 하여 거머리 장식, 또는 가락지 장식이라고도 부른다.
재료(材料)에 관하여Ⅰ. 서 론조각은 어느 때부터인가 과거의 전형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어왔다. 점토, 석고, 브론즈를 통해 casting되거나 나무, 돌등을 통해 carving되어지던 조각은 종래의 단일재료 기법의 양상을 벗어나 혼합재료와 산업사회의 발달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특성의 재료들과 전통적 조각의 개념에 환경이라는 커다란 영역까지 도입하고 산과 들, 사막과 바다에까지도 예술의지를 표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며, 조각의 외형적 형상 역시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 비구상적 형태와 추상적인 형태의 조각들이 등장하였고 특정재료들을 구성하거나 구축하는 조각, 바람에 움직이는 조각, 물을 뿜어내는 조각, 또 빛을 발하거나 소리를 내기도 하며, 기계장치를 하여 조각 스스로가 움직이게 하는 조각까지도 등장하였으며, 계곡에 거대한 커텐을 치거나, 사막에 도랑을 파거나 주워 모은 돌과 흙더미로 시냇물을 역류시키거나 거대한 광선 또는 발광성 기체로 작업을 하는 형식까지 도입되었다. 이에따라 재료와 조각과의 관계를 각 재료의 특성을 통해 그 영역을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 론1. 전통적 조각재료1 석재{석재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첨단의 산업사회인 지금 역시 석재는 가공물이 아니라 자연의 재료라는 측면으로 그 매력이 더욱 돋보인다.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여자의 형상을 한 석회석은 이시기에 제작된 최초의 석조에 속한다. 이렇듯 문화의 발생기부터 사용되어온 석재는 지역적으로 생산되는 석재의 특성에 따라 조각적 표현의 양상이 달라지는데 석재가 carving하기 쉽고 부드러운 성질을 갖고있으면 그 지방에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조각이 제작되고(그리스, 로마), 정교한 caving이 불가능한 석재가 생산되는 곳은 조각이 단순한 형태로 제작되었다.현대에 이르러서 석조조각은 그 영역을 더욱 넓혀 석재가 가지는 특질의 표현 그 자체가 조각가의 목적이 되는 영역까지도 발전하였고 석재와 다른 재료를 혼를 맺어왔다. 건축, 생활공예, 조각 등 우리생활에 한시도 없어선 안될 광범위한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목재의 장점은 공급이 풍부하며 가공이 쉽고 비중이 작으며 열전도율이 적고 온도에 따른 신축이 비교적 적다. 또한 목재가 갖는 자체의 결 무늬와 각기 다른 천연의 색, 가공에 따른 다양한 표현 등을 들 수 있다.단점으로는 유기체적인 재료이기 때문이 부패성이 있고 가연성이 있으며 약한 내구성으로 오랜기간 보존은 어려운 점등이다. 그러나 많은 조각가들은 여전히 깍고 새기고 형태를 내는데 수월한{목재를 많이 애용하고 있다.다양한 종류의 편리한 작업공구와 외국산 수입목 등으로 사용 가능한 영역이 더욱 넓어졌고 표현 기법 역시 과거의 목재를 깍아 형태를 만드는 방법에서 더욱 진보되어 서로 다른 색깔, 형태, 재질의 나무를 다양하게 혼합하여 사용하고 접합하고 끼워 맞추기, 표면부식, 긁고 문지르고 태우고 파내는 등의 방법으로 목재가 가질 수 있는 표면의 텍스춰도 다양하게 시도되어지고 있다.본인의 작품 날씨 맑음{3 흙흙의 유연성은 만지는 사람의 의지가 어려움 없이 전달될 수 있어서 매우 취급이 용이하며 조각의 매체로서는 쉬운 재료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류가 최초의 조형을 시작한 때부터 점토는 중요한 조형재료로 등장했을 것이다. 그리스의 청동조각들도 다루기 쉬운 점토를 주물의 원형을 만들어 내는데 사용했었고, 요즘도 점토는 많은 조각가들에게 형상을 만들어 내는 재료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미술의 발달에 의해 점토가 가지고 있는 본성 자체를 탐구하는 형식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또 그것이 첨단화 될 수록 점토는 그것이 가지는 자연적 본질성 때문에 더욱 탐구되고 새롭게 표현될 가능성이 많은 재료이다. 호시노 사토루 고대녹지4 동(Bronze){동(Bronze)은 조각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램을 실현시켜왔다. 로댕의 생명감 넘치는 아름다운 조각들은 적당한 광선으로 인해 그 표면의 유기체적 특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청동에 브론즈의 특성에 맞는 합금과 색채를 결정, 제작하고 주조된 후에 광택이 나는 부분과 부식되어 퇴색된 부분 그리고 원형 제작시 많은 텃치가 있는 부분들의 처리를 서로 다르게, 브론즈의 특성에 맞게 제작되고 있다. 또한 채색방법도 발전하여 작품의 경향과 성격에 맞춰 채색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조각재로서의 「동」은 예술의 표현의지와 적적히 부합되는 훌륭한 재료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로댕의 설교하는 성 요하네2. 새로운 재료의 도입근대에 이르러 회화는 추상으로 그 영역을 넓혀 갈 때 조각은 자연물을 깍아서 다듬는 작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카소가 목재, 판지, 종이, 끈 이밖에 다른 물질로 이룬 대담한 구성 작품들로 인해 조각은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었다. 피카소의 이러한 노력은 철을 소재로 추상작업을 시작한 Gonzalez에게 이어졌고 또 Smith에게 이어져 비로소 조각에 추상적인 작품이 제작되게 하였으며 그들은 자연형태와 순수형태사이의 생물학적 상징들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들을 추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조각은 새로운 영역으로 그 자리를 넓혀가게 되었고 때마침 산업사회의 발달과 기계문명의 발전은 이러한 진보적인 조각에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안겨주었으며 철, 석고, 시멘트, 플라스틱, 유리, 섬유, 피혁, 종이 등도 이러한 시기에 조각에 도입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재료들은 조각가들에게 새로운 재료가 보여줄 수 있는 형태상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실험을 하게 했고 결국 그러한 노력들은 빛과 형태의 움직임, 투명함, 반사, 재료들의 대비효과 등의 새로운 조각요소들을 태동시켰으며 새로운 재료의 사용은 새로운 조각을 하게 한다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1 철재1926년 이후 철판 조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한 Gonzalez로부터 금속조각은 현대에 더욱 애용받는 재료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다. 조각재료로서 금속이 갖는 장점은 고도의 견고성, 강력한 힘, 내구성, 광택 등을 들 수 있으며 그러한 가치는 합금기술을 통해 더욱 보강되어졌다. 결국 이러한 철제조된 시멘트는 조각재료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제작과정에서는 유동성이 있으며,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 수 있고 재질감도 많은 효과를 표현 할 수 있다. 조각의 공공성과 야외에서 조각 본래의 자태를 볼 때에 시멘트는 이미 필요 불가결한 소재임을 알 수 있다.본인의 작품 壓-出3플라스틱{플라스틱은 오늘날 산업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 여러 방면에서 고르게 쓰여지고 있다. 가볍고 강하며, 착색이 용이하고 부식이 전혀 없으며 가공기법의 다양함에 따라 형태를 만들어 내는데 수월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조각의 재료로서도 그 가치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플라스틱은 인공적 재료로서 어떤 인공적 특성도 부여할 수 있고 어떤 색깔도 낼 수 있다. 이것은 재료에의 성실성에 의존하던 시대의 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낳게 해 준다.오늘날 조각가들의 노력에 의해 플라스틱은 점점 더 그 효능을 높여가고 있으나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낸다는 영역에서의 이용가치만 있을 뿐이고 플라스틱 그 자체가 예술적 형태로서의 표현은 미미한 상태로서 앞으로도 많은 연 본인의 작품 中구와 실험이 필요한 영역의 재료라고 할 수 있다.4 유리유리는 투명하고 내구성이 있다, 광선을 굴절시켜 빛의 투과 효과를 증가시키는 것은 다른 재료에서{볼 수 없는 특질인 것이다. 유리를 조각에 도입한 작가들로는 이태리의 미래주의 조각가들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이런바 대리석이나 브론즈의 고상함을 파괴하기 위한 방책으로 유리, 마분지, 시멘트, 콘크리트, 말총, 헝겊, 거울 등을 사용했다. 그리고 Archipenko, Gabo에 의한 유리와 셀룰로이드 같은 재료들의 이용과 함께 조각은 새롭고 투명한 피부로 발전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조각의 오래된 한계점을 와해시켰다.유리는 그 재료의 특성상 주조법이 가능한 관계로 소수의 작가들이 작품을 유리로 제작하게도 한다. 근대에 들어서 유리를 조각에 도입하는 경우 존리틀턴&케이트보젤의 관조는 유리가 지니는 재질을 그대로 조출시켜 그 재료의 본질적 물성을 탐구쭉 펼쳐져 있다. 현대판 만리장성인 이 거대한 칸막이는 조각가 크리스토의 거작이며 그 재목은「달리는 벽」이다. 이처럼 현대조각은 예측불허이며 재료와 주제 그리고 표현기법까지도 그 영역의 확장에 있어 놀랍게 변해가고 있다.크리스토의 달리는 벽조각에 있어서 섬유의 사용이 빈번하지는 않지만 근래 들어 설치와 야외전시의 형태에서 점점 그 사용이 늘어가고 있으며 그 사용영역도 커져가고 있다. 가볍고 바람에 날리며 그 사용이 타 재료에 비해 용이하고 봉제완구를 만들 듯 여러 가지 형태로도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층 더 가능성이 있는 재료라 할 수 있다.{6 종이조각에서도 종이는 Archpenko와 Boccioni등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그들은 20세기 조각에 형식을 제공하는 새롭고 근대적인 재료의 이용을 촉구했다. Boccioni의 최후의 작품 Horse'와 지금은 없어진 Depero, Balla, Marinetti의 자소상에서 종이, 천, 마분지 같은 가장 무른 재료들이 이용되었으며 그것은 조각의 기능인 영속성 에 일격을 가했다. 이처럼 종이는 종이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이 있으므로 조각가들은 브론즈 조각이나 철 조각처럼 종이조각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종이는 물리적 특성과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는데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한 영역의 재료라고 할 수 있다. Clyde connell의 종이작업3. 조각의 영역확장과 새로운 조각오늘날의 조각은 새롭게 제시된 형상으로 주제와 대상사이의 형이상학적 표현거리가 없어졌고, 눈과 정신의 저울질이거나 눈과 정신의 상호보완적 논리로서 바라보는 대상과의 관계와 거리가 이제 직접적인 충돌이 나타났다. 이러한 조각은 관객을 직접적으로 참여시키거나 육체적으로 반응하게 하고 단순히 시각적, 지각적 문제를 넘어서 보는 이의 신체와 정신을 보다 주체적인 감각으로 참여시키며 예술대상을 보는 것에서 경험케 하는 것으로 진전시켰고, 조각은 주로 특정기능을 가진 대상을 직접 조각에 도입하거나 과학문명의 소산물인 기계, 네온, 음향, 영상 등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