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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과 문화재] 인간과문화재
    얼마 전, 증조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기에 주말을 이용해서 아버지, 동생과 함께 친가에 다녀왔다. 친가댁은 전남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이다. 마을의 시조께서 금안장을 얹은 말을 타고 금의환향했다고 해서 금안리라고 한다했다. 어릴 적, 시골에 가면 우리 어린아이들이 하는 놀이라야 딱 두가지 였다. 마을이 가구수도 많고 , 사람도 많고 , 집성촌인까닭에 모두들 친척이라 아는 이들도 많았지만 역시 시골이라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에겐 그저 심심한 곳일 뿐이었다. 열댓명이나 되는 친척아이들끼리 심심한 시간을 때우는 놀이로는 여름철엔 고둥잡기와 강당에서 뛰어노는 일이 최고였다. 무릎께 밖에 오지않는 냇가에서 첨벙대며 바닥이며 돌들을 새까맣게 덮고 있는 고둥을 건져 할머니 께서 주신 찌그러지고 낡은 그릇에 한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가면 그날 저녁은 무조건 고둥된장국(다슬기 된장국)이었다. 고둥으로 국물을 우리고 시래기를 넣어 국을 끓여 밥을 먹고 바닥에 남아있는 고둥을 건져 주시면 식사후 모두들 둘러앉아 탱자나무 가시로 (손가락 한마디 정도나 되는 길이다. 제법 튼튼해서 부뎌지지도 않아 고둥을 먹을 땐 그만이다.) 빼먹는 맛이란! 어른, 아이 할것없이 손끝이 짭쪼름 해질 때까지 먹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가지 우리의 일은 일명 강당 이라 불리는 나무로 된 정자에서 뛰어노는 것이었는 데, 나무로 되있어서 여름에도 무척이나 시원했다. 나무로 이어진 바닥의 선을 밟지않고 술래잡기를 하거나 지상에서 일미터 정도나 떠있는 건물밑으로 들어가 숨기도 하고 옆에 서있는 커다란 고목나무에 열리는, 먹으면 입이 까매지는 열매를 따먹기도 하며 놀았다. 우리가 강당이라 부르며 쿵쾅대고 뛰어다니던 그 건물에도 엄연히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건 불과 얼마전이다. 그냥 동네에 하나쯤 있는 정자인줄만 알았는 데 고려새대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러고보면 정자 이름이 한문으로 써있는 걸 본 기억도 있긴했다. 어렸을 그 당시엔 저게 한문이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지만.이번에 시골에 내려간미고있는 걸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내가 알고있던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일단 할머니 댁으로 갔다. 오메, 우리새깽이들. 오냐~?배고프지야? 로 시작되는 할머니의 한결같은 인사말이 정말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게 했다. 이일단 절을 드리고 증조할머니께서 계시는 사랑방으로 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편찮으셨다. 많이 마르셨고 이제는 자리보전을 하고계신다 했다. 치매가 있으신지 꽤 되셔서 나와 내동생은 물론이고 그 많은 손자들 중에서 직접 기른 단 한명, 우리 아빠조차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알아보는 건 며느리인 할머니뿐이라고 하신다. 아빠가 좋아하는 쑥떡을 준비해놓으셔서 시장기도 달랠 겸 먹고 셋이 집을 나섰다. 대문을 나가자 바로 왼편으로는 대밭이 우거져있고 오른쪽은 사나운 개가 사는 유명한 집이다. 바로 그집 담이 끝나면서 냇가가 있다. 어릴적에 보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냇가는 길에서 계단을 여서일곱개 정도 내려가야 비로소 물이 있고, 빨래터가 있다. 냇물과 지상이 약 120cm정도의 차이가 있다. 냇물은 마을 위쪽에 있는 방죽에서 내려오늘 물이 원류인데 여름에 비가 오면 그 계단이 다차고 길로 물이 넘칠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냇가를 지나 4~50m쯤 가면 강당이 나온다. 냇가위로 놓여져있는 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고목과 그 그늘 밑에 서있는 강당, 쌍계정이 언제나 그렇듯 당당하게 서있다. 쌍계정앞에는 이젠 제법 그럴듯한 표지판이 서있다.시도유형문화재 34호나주 쌍계정 문화재명 나주쌍계정(羅州雙溪亭)지정일 : 1973년4월 21일소재지 : 전남 나주군 노안면 금안리 251번지쌍계정은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1274∼1308, 재위) 때에 문정공(文靖公) 정가신(鄭可臣)이 건립(建立)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쌍계정은 문정공과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 문현공(文顯公) 윤보(尹珤) 등이 모여 학문과 인격을 연마하던 처소였으며 세칭 삼현당(三賢堂)이라고 불려오기도 했다. 그후 조선(朝鮮) 세조(世祖)로부터 선조실이 있었는 데 남,녀 두칸으로 된 그 화장실은 겉모습은 고궁에 있는 화장실 못지 않았지만 문을 열자 사용하지 않은 지 꽤 된 듯 먼지며 흙들이 쌓여있었다. 하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그런 화장실이 무슨 소용이있으랴. 다들 자기집으로 갈 것을. 문화재로 지정만 할 뿐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 지질 않는 것 같다. 앞으로 졸업하고 유물관리를 할 예정인 동생은 문화재는 많고 관리자는 적어서 그런다며 자기가 그런일을 하게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내게 다짐을 한다. 아빠도 한마디 거드신다. 화장실 지붕은 요즘의 기와처럼 찍어낸 것이 아니라 직접 구워낸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때깔이 조금 다른 것 같긴하다. 서운한 마음을 걷어내고 둘러보자 정말 정성들여 지은 것임을 알수 있었다. 화장실에 먼지가 쌓이고 물도 나오지않고 변기위엔 빗자루와 호스들이 널려있었지만 화장실을 실제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그런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동생의 설명을 들으며 바깥쪽에서 바라본 쌍계정은 정말 조금은 초라해 보였다. 앞쪽은 현판도 있고 번듯해 보였지만 뒤쪽에서 바라보자 막힌 곳없이 휑하니 뚫려 쓸쓸해 보이기 까지 했다. 정말 옛날의 그 학자들은 이런 뻥 뚫린 곳에서 사방에서 불어보는 바람 다 맞으며 티키에서 본것처럼 한문을 외워댔을까.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었겠지만. 내가 궁금해 하자 아빠가 옆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곤 기둥에 파여진 흠을 가리키셨다. 예전엔 이렇게 뻥뚫린 곳이 아니라는 증거라시며. 기둥을 삼등분 했을 때 그 기준점 부분 두곳에 세로로긴 직사각형의 홈이 있었다. 이곳에 기둥을 끼워 측면쪽에 방이 있었다고 하셨다. 지금 남아있는 모습처럼 뻥뚫린 정자의 모습이 아니라 양쪽에 방이 있는 공부방의로의 기능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과연 측면두곳, 모두 여섯 개의 기둥에는 같은 크기와 모양의 직사각형홈이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작아져 버렸지만 예전에 방까지 있었을 때에는 아마도 지금의 두배에 달하는 커다란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신 아빠의 말씀은 아빠가 어렸을 때 못 냈을 것이다. 하물며 신숙주가 공부하던 곳이라는 데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학자들이 공부하는 곳에 아녀자가 들락거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런 말을 하자 아빠께서 지금 우리집 자리가 신숙주의 생가터라고 하시질 않는가. 집 뒤쪽 냇가와 담이 만나는 곳에 대밭이 있는 데 그곳이 신숙주의 생가터라고 한다. 정말이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그도 났고, 내가 뛰어놀던 곳에서 그가 학문을 닦았다니. 시공을 초월해서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셈이다. 지금껏 신숙주라 하면 국사책에서 사육신과 생육신, 신숙주와 성삼문.. 에서 본 것과 엄마와 시장에 갔을 때 숙주나물을 사면서 숙주나물의 이름이 신숙주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정도가 전부인데 그와 내가 이리 연결이 되어있었다니, 전생에 내가 신숙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감히 해본다.몇 년만에 마주한 쌍계정은 이미 어린 시절 내 기억속의 그 곳과는 다른 곳이 되어있었다. 더 이상 동네의 정자가 아니라 문화재로서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존경심까지 느끼게 했다. 그 장대한 세월의 흔적을 뒤로하며 훗날을 기약했다. 해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을 의심치 않으며.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 행정구역상 미아동일뿐 수유동과의 경계라 오히혀 수유동에 살고있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초등학교도 수유를 나왔고 중학교도 삼각산 자락에 있는 수유여중을 나왔다. 동네의 여자아이들은 죄다 수유를 다녔기에 아침마다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떼를 지어 학교로 향하곤 했다. 처음 학교에 가기 시작했을 때 무서움에 떠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 정문이 화계사 입구와 나란히 있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란히 있었다. 학교에 가려면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지나 한참을 올라가야 했는 데 산인지라 언덕의 경사가 조금 심했다. 겨울에 얼음이라도 얼라치면 학교담을 붙잡고 조금씩 걸어올라가 학교 정문에서 학생주임 선생님이 손을 당겨서 끌어올릴 시에도 (시줏돈이 상당했기에 절을 들어가는 입구에 엄청난 문을 세우고 규모가 대단했다) 대단했지만 몇 년이 흐른 사이에 정말 커다란 사찰 이 되어있었다. 교문이 초라해 보이는 커다란 문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비석. 그 커다란 비석은 그냥 서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거북이가 등에 이고 있었다. 거북이는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한 쪽 발을 들고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없던 건물이 하나 입구에 들어섰는 데 절을 찾는 이들을 일종의 센터 인듯했다. 왠만한 화랑처럼 안을 꾸며 놓았길래 처음엔 무슨 전시관인줄 알았다. 길을 따라 절로 가까이 갈수록 정말 잘 꾸며놓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잘 닦아 놓은 길이며 예전엔 맘대로 자라던 나무며 풀들까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솔직히 화계사 입구까지는 가본적이 몇 번있지만 절안으로 들어가기는 처음이라는 말에 동생은 놀라워 했다. 자기는 학교다닐 때 절밥을 얻어먹으러 오기도 하고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연등을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본 절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건물이 많았다. 이렇듯 큰 절인줄 몰랐기에 놀라움은 점차 커졌다. 익숙한 듯 대웅전으로 안내하는 동생을 따라 가는 동안에 본 그 많은 승려들과 보살, 시주, 관광객들 까지도 그 규모에 모두 익숙한 듯 행동을 했다. 혼자 놀라워 하는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조용히 부도며 탑, 승방등을 바라보며 지나갔다. 대웅전은 앞문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역사학도 다운)말을 듣고 옆문으로 향했다. 초파일이 가까워서 인지 원래 이렇듯 사람들이 많은 건지 사람들이빼곡히 앉아 열심히 경들을 외고 있었다. 왠지 들어가기엔 죄송스러워 주위를 돌아보기로 했다.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스님이 지은 절로 원래는 고려 광종(재위 949∼975) 때 법인대사가 삼각산 부허동에 보덕암을 짓고 이어져 내려오던 것인데, 신월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크게 짓고 화계사라 이름지었다한다. 그 후 광해군 10년(.
    인문/어학| 2003.03.05| 8페이지| 1,000원| 조회(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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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람기] 미술관 감상문
    관람장소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정한 건,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우리 집은 안산) '국립'이라는 말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곳이니 만큼 전시물들의 수와 종류도 상당할 것 같다. 적은 수의 미술품을 봐도 감상은 느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왕 감상하는 것 몇 점 보느니 많이 보는 게 낫지 않은가. 평소에 접할 기회도 없고^^;.4호선 대공원 역, 소풍을 나온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유치원과 고등학교 수십 군데씩에서 온 것 같았다. 조금 뻥쳐서 발에 채일 정도로 왔다. 우유냄새 풍기는 아이들과 섞여 코끼리 열차를 타고 미술관 앞에서 내렸다. 동·식물원에서 내릴 줄 알았던 꼬맹이들이 같이 내려서 불안(?)하긴 했지만 미술관으로 향했다. 입구로 걸어 올라가자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건 족히 3m는 될 것같은 '자이언트!'였다. 말 그대로 자이언트 였다. 선명한 은빛을 띠는 그 거인은 거대한 다리를 지상에 고정시킨 채 차렷 자세로 서 있었는 데 그렇게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걸, 거대한 턱을 움직여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름대로 일정한 음이 있겠지만 내가 듣기엔 저 멀리서 포효하는 거인의 절규(!)였다. 그 거인에 어울리는 소리를 붙여 준건가. 제목이 뭔지 궁금했지만 그게 서있는 잔디밭까지 들어가기에는 너무 더웠다.미술관 입구에는 다양한 주제의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 데 검은 돌로 만든 비석들을 죽 모아놓은 작품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규모도 규모지만 그곳과 안 어울린다고 여겨졌기 때문 일거다. 소풍 온 유치원 아이들도 있었고 야외촬영을 온 예비 신랑·신부도 세 쌍이나 되었으니까. 인간의 삶이란 생명의 탄생(유치원 아이들)과 생활(예비부부)을 거쳐 죽음(비석)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세 가지 모습이 하나로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옆쪽에는 커다란 은빛 구를 청동의 사람들이 사방에서 받치고 있는 작품이 있었는 데 , 그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다. 세계의 화합 같은 것을 말하는 줄 알았는 데 제목은 "각축"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의 상황으로 본다면 우리 나라를 두고 세계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받치고있는'것이 아니라 '밀치고있거나' '당기고있는'것인가) 입장권을 구입하려하자 상설전시냐, 일반전시냐를 물었다. 가격차이가 나기에 (중요한 부분이었다..-_-;) 일반전시를 택했다. 처음 들어서자 검은 모니터들이 모여있는 작품이 있었다. 백남준 틱한데..라는 생각을 다가섰는 데 역시나 백남준이었다. 다니던 영어학원의 1층 로비에도 백남준의 작품이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구경하던 중에 그에 대해 관심이 생겨 여기저기 찾아보고는 했었기에 여기서 만나게 되었을 때 아는 사람을 만난 양 반가웠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인 모니터가 무려 1003대나 사용되었다는 이 작품은 88년 올림픽에 맞춰 제작한 것으로 10월 3일 개천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모니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1003개의 화면은 '하늘이 열렸다'는 개천절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지만 (체조복을 입은 남자와 (←올림픽과는 연관이 있는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래픽들의 난무 등 (←이 부분이 '백남준 틱'하다)), 그런 거대한 (나선형 계단 사이에 서있는 그 작품은 약 3층 높이였다. 아마 10m 3cm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_-;) 작품을 만들어낸 거장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감탄을 하며 돌아든 코너에는 원뿔형의 석조물이 서있었다. 위쪽엔 모니터가 있었고 그 모니터를 꽉 채우는 눈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제목은 'Right'. 과연 계속 나를 바라보는 그 눈은 오른쪽, 여자의 오른쪽 눈이었다. 어떤 의도인지 설명이 없어 모르겠으나,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이지만 해석하는 것을 관객'이라고 했던가. 내게는 우리의 "오른쪽 제일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우리(일반적인 의미의 우리 나라 사람을 칭하는)는 참으로 오른쪽을 좋아한다. 옛 부터 왼쪽은 흉한 것, 오른쪽은 길한 것으로 여겨졌다. 또 왼쪽은 음, 오른쪽은 양을 음은 여자, 양은 남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결국 여자는 흉하고 남자는 길하다는 말이다. 여자가 나서면 보기에 좋지 않다 거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첫 개시에 여자가 물건은 사가면 하루종일 재수가 없다고 소금을 뿌리거나 아예 물건을 팔지 않기도 한다고 한다. 예전부터 내려온 이런 생각의 대표적인 건 '오른손잡이'다. 아이들은 어릴 적엔 양손을 골고루 사용하다가 자연스레 한 쪽 손이 주로 사용하는 손이 되고 그에 따라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로 나뉜다. (물론 양손을 다 쓰는 스위치 타자도 있긴 하다) 자기의 주로 쓰는 손은 두뇌발달과 연관이 되므로 아이가 주로 쓰는 손을 그대로 두는 게 좋은 데 아이가 왼손을 쓸 경우 '억지로' 오른손으로 쓰게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도구를 사용할 때 (연필, 수저!) 왼손으로 잡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엄마(혹은 할머니)의 손. 오른쪽으로 바꿔 쥐어 준다. 마치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처럼. 요새는 세상이 좋아진 건지 의식이 바뀐 건지 왼손을 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글씨만 오른손으로 쓰고 밥을 먹거나 색종이를 오리거나 할 때 등은 왼손으로 하는 아이가 꽤 있었다. 엄마가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쓰라고 했다면서.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고 분명히 좌측통행임에도 불구하고 앞사람과 부딪칠 것 같으면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피해버리는 일들. 그게 다 '오른쪽 눈(남자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관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그런 시도로, 일종의 도전으로 '흉한 여자'가 '오른쪽'눈으로 보고있는, 강자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약자의 눈. (이왕 도전할 거면 여자의 왼쪽 눈으로 보았으면 좀더 강한 효과를 냈겠지만 나의 감상이나 생각은 작가의 그것과는 다를 테니까)윗 층엔 내가 찾던 '현대미술'이 있었다! '한국의 현대미술'이라는 제목으로 전시관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전시관은 '추상화'. 원래 두리뭉실하고 명확하지 않은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고역이었지만 어쩌랴 나의 문화적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몇 번없는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장담할 수 없는..-_-;;) 기회이기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현대미술'이라지 않는가!! 처음 몇 작품은 그저 색깔의 나열 혹은 겹침 등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대 순으로 걸려있는 작품은 시간이 근대에서 현대로 올수록 좀더 구체적인 형상등이 표현이 되었다. 계속 작품에 대한 느낌과 제목은 맞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무엇인지 알 것같은 작품이 나타났다. 동그란 달이 떠있구나 했는 데 제목은 'moon'. 이럴수가. 미술장님인 내게도 보이는 작품이 있다니. 그 작가의 작품이 두 개정도 더 있었는 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제목은 각각 'two moon'과 'moon and cloud'. 제목과 내용이 완벽히 일치하는 작품이었다. 70년대 근처까지 오자 점차 구체화되었던 작품들이 극히 단순화해지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미술화풍의 흐름 어쩌구 할 땐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가 되질 않더니 이렇게 시대 순으로 놓고 보니 그 흐름이 눈에 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첫 번째 전시관의 거의 끝 부분에는 미술시간에 배웠던 '구성'같은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자로 그은 듯 정확히 선이 나뉘어 있고 (가까이에서 보니까 정말로 연필로 그은 선이 남아 있었다) 그라데이션을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시대상이나 작가개인의 감정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정말 색칠 잘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단순히 내가 그림을 보는 눈이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맞은 편에 있는 두 번째 전시관은 첫 번째에 비해 편안했다. 첫 작품부터 초상화였기 때문이다. 역시 애매하게 무엇을 뜻하는 것보다는 정확히 지칭하는 것 쪽이 내게 맞는 듯하다. 작가는 모두 달랐지만 거대한 인물화가 몇 점이나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 '보통의' 인물화가 끝이 나고 또 무언가를 묻는 듯한 작품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의 세 가지 포즈를 그려놓은 연속적인 세 작품. 생각을 하고 머리를 감싸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내 표정도 아마 그 작품과 같았을 거다. 두 번째 전시관의 특징은 주제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소녀의 인물화에서 우리나라지도를 많은 인물들로 채워 넣은 (그것도 고통받고 소외 받는 이들만을) 작품까지. 80년대쯤의 작품부터는 시대상의 반영인지 고통스러운 민중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었다. 80년대에 태어났지만 그 시대를 직접 겪지는 않은 세대인 나는 그런 작품을 보며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5.18이나 학교에서 매년 뜀박질을 하며 기념하자는 4.18이나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일본등의 또래 젊은이들에 비한다면 우리 나라 젊은이들은 역사에 관해 많이 알고있는 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 시대 등의 과거에 한정되어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5.18이나 4.3사건의 진상, 아니 그 날짜가 뜻하는 바도 몰랐다. 멀지 않은 과거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감추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사건들에 관련된 주 세력권이 아직 정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 걸까.
    독후감/창작| 2003.03.05| 3페이지| 1,500원| 조회(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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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essay] My interests
    I like to go to the movies. My favorite kind of cinematic adventure being comedy. I also like SciFi and have enjoyed (gasp) an action flick in my day (I would say the choice to see a movie of that genre often depends on the star). For the most part, foreign and independent films are what I enjoy most cinematically. I like a movie that makes me think, and I just don't think Hollywood is good at churning out that kind of film. Now don't get me wrong; I think Hollywood has made some fine films, but these days...I dunno you tell me. OK what else....Did I tell you that I really find men interesting?...Oh yeah, already covered that
    인문/어학| 2002.10.13| 2페이지| 1,000원| 조회(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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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레포트
    One weekend night last summer, Father came home late from work. When I ran out to greet him with Mother, I saw he had an unusually worried look. When Mother asked him if there was anything wrong at work, Father silently invited us to sit on the living-room sofa. After a while, Father said in a feeble voice, "Today the boss announced that the company has been in serious financial difficulty and half the workers must leave the employment. Fortunately, I shall stay at work, but I shall have my salary cut down by a third. I am sorry to say that the future looks so gloomy."
    인문/어학| 2000.12.02| 2페이지| 2,000원| 조회(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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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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