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부영양화와 이에 따른 영향은 20세기 중, 후반의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도시 집중화, 산업, 농업에서의 비료의 과대 사용과 폐기의 결과로 인한 인위적인 부영양화를 말한다. 그러나 부영양화는 인간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수계에 있어서의 어떤 변화도 호소나 강의 생물학적 상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부영양화(eutrophication)는 일반적으로 수계생태계에서 질소, 인 때로는 실리콘, 칼리, 칼슙, 철이나 망간같은 식물 영양의 증가를 일으키는 생물학적인 영향과 효과를 말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부영양화는 호소, 강이나 하구 등의 영양상태를 중영양화(mesotroophic)나 빈영양화(oligotrophic)라 불리우는 낮은 영양상태의 수계에 대한 상대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부영양화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부영양이란 말은 독일 식물학자 Weber(1907)가 이탄습지의 증가 실험에서 초기상태를 결정짓는 영양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말은 12년 후에 스웨덴의 식물학자 Naumann(1919)이 담수호를 인, 질소와 칼슘이 높은 농도, 중간 농도 또는 낮은 농도의 3종류로 분류하면서 다시 사용되었다. 이 분류방법은 각각의 농도는 기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Naumann은 호소의 식물 플랑크톤의 증식이 나타난다. 중영양 호소는 이 둘의 중간 상태를 나타낸다. Thienemann(1925)은 독일 Eifel지역에서의 호소를 계절적인 용존산소량과 호소 바닥의 동물상의 차이를 가지고 구분, 분류하였다. 깊고 비생산적인 호소의 저층에서는 상층에서 계속 침강되는 유기물이 부패되어 일어나는 여름철 산소부족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며 다양한 생물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름철 유기물 생산량이 큰, 깊지 않은 호소에서는 유기물이 부패되면서 저층에서 산소가 부족하게 된다. 이 때는 낮은 산소농도에 견디는 수종만이 특징적인 생물상을 형성하게 된다. Lindeman(1942)은 이제는 고전이 된 수중 먹이그물의 다양한 단계에 따른 에너지 흐름의 개념을 전개시킨 논문에서 부영향화는 호소 발달과정에 있어서 자연적인 과정이며 유역으로부터 풍화, 침식되어 흘러 들어온 유기물은 호소 자체의 생산대사로 생성, 축적되어 간다고 하였다. 낮은 생산성의 빈영양 단계에서 시작되는 빙하시대의 일반적인 얕은 호소는 영양물질이 축적됨에 따라 아주 급격히 생산성이 증가되며 결굴 부영양화된 평형상태에 이른다. 이는 아주 긴 기간(수천년)이 걸릴 것이며 호소는 더욱 얕아져서 조류는 잘 자라지 못하고 유기물이 축적되고, 영양물질이 재순환되는 과정이 방해받으며 끝내는 습지나 늪지로 변할 것이다.과학자들이 20세기 산업활동의 결과에 호소에 유입되고 축적되는 식물 영양원이 과거 자연적으로는 수백년이나 그 이상 걸렸을 변화를 불과 수십년 안에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부영양화란 말은 1940년 말부터 좀더 널리 쓰이기 시작되었으며 1970대부터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각국에서 부영양화 기준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UN에서는 1980년대를 물의 10년(Water decade)이라고 명명하였고 공식적으로는 국제 용수공급 및 처리의 해라고 정하였고, 최근까지 호소 부영양화의 관리 및 기술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2. 일반적 개요2-1. 자연상태에서는 빈영양호→부영양호→늪→습원→육지의 천이는 긴 세월에 걸쳐 일어난다.2-2. 인위적인 원인으로 대량의 영양염의 공급이 있으면 단기간에 부영양화가 촉진되어 수질오염이 심각해진다.2-3. 호저에 축전된 영양염의 용출, 회귀 등이 더해지면 부영양화는 가속적으로 진행된다.2-4. 영양염의 발생원인자 연 부 하수 역유입하천에서 운반되어온 것, 특히 홍수시에 현저하다대 기강수로 토양에서 수역으로 유출인 위 부 하생 활 하 수미처리 또는 처리한 하수, 분뇨 잡배수산 업 폐 수제 1 차 산 업농업, 임업, 축산업, 수산업등제 2 차 산 업약품, 발효, 섬유, 석유화학, 화학비료, 식품등의 공업제 3 차 산 업숙박업, 음식업, 레저시설, 세탁업3. 성상3-1. 물리적 성질(가) 물 색 : 녹색이나 갈색(나) 투명도 : 5m이하3-2. 수질(가) pH : 중성에서 약알카리성(여름철에 표층이 강알카리성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나) 용존산소농도 : 표수층은 포화 또는 과포화, 심수층에서는 현저히 감소한다. 산소의 소비는 주로 플랑크톤의 사체의 산화에 의한 것이다.(다) 현탁물질 : 플랑크톤 및 그의 사체에 의한 현탁물질이 많다.(라) 영양염류 : 다량존재, N>0.2ppm, P>0.02ppm3-3. 생물상(가) 생산력 : 높다, 200mgC/㎡/day 이상(나) 클로로필 a : 5 - 140 mg/㎥, 20 - 140 mg/㎡(다) 식물성 플랑크톤 : 풍부, 윤형동물류 증가(라) 동물성 플라크톤 : 풍부, 윤형동물류 증가(마) 저서생물 : 종류수 감소, 산소부족에 내성이 강한 종류가 우점(바) 어류 : 양이 많다. 붕어, 잉어, 장어 등의 暖水性 어종이 풍부(사) 연안식물 : 풍부, 얕은 곳에만 생긴다.3-4. 저질 : 유기물이 많고 부식저질4. 부영양화 기준호소의 영양상태를 분류하는 것은 영양염류의 공급도와 이에 수반되어 식물의 유기물생산을 주 원인으로 일어나는 호소내 여러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호소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호소가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 따라 다르며 계절적으로도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호소의 영양상태를 판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표 1.에 나타낸 바와 같이 호소의 영양상태를 분류한 기준은 유기물의 유입, 호소가 위치하고 있는 지형적인 특성, 호소내의 식물의 생산성, 수리학적인 체류시간 등의 여러 가지 인자와 호소 고유의 특성 및 각 연구자가 조사한 호소군의 특수성과 개별적인 판단에 있어서 개인적인 주관차에 의해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표 1. 부영양화 기준지 표빈 영 양중 영 양부 영 양ReferenceT-P(mg/㎥)5 - 1010 - 3030 - 100Vollenweider 196720US EPA 197624Carlson 1977
Ⅰ. 서 론최근에 우리나라의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가 탄력과 활기를 잃고 국제 수지의 적자폭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80년대 아시아의 4마리 용 에 손꼽히던 한국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지렁이 가 되었다는 혹평도 듣고 있는 실정이다. 한물 간 운동선수 꼴이 되어 버린 우리나라. 왜인가?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는 과연 사회발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1) 사회 발전의 의미일반적으로, 사회 발전은 보다 나은 사회로 가는 사회 변동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즉, 사회 발전이라는 용어에는 가치 판단과 방향성의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요즈음에는 모든 개발 도상국이 국가 발전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사회 발전을 국가 계획과 연관시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 발전의 개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며,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한참 근대화론이 우세할 때에는 근대화는 바로 사회 발전을 뜻하기도 하였다.사회 변동 중에서 지난 40여 년 간 세계적으로 크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근대화이다. 근대화라는 용어는 선진 사회에 대해 사용될 때와 개발도상국의 사회 변동이나 발전과 관련하여 상용될 때, 그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본래 근대화는 서구의 선진 공업 사회에서 경험했던 혁명적 사회 변동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오늘날 근대화에 대한 논의가 선진국의 과거나 현재의 사회 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근대화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나타난 신생 독립국들의 발전 과정을 근대화라고 보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들 대부분의 나라가 서구 사회를 모형으로 삼아 국가의 발전을 추구하였으므로, 후진 사회의 근대화는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진국들이 모색했던 발전의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근대화의 내용에는 사회의 모든 측면이 다 포함된다. 근대화를 추진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일반적으로 경파괴, 사회계층간의 긴장의 격화 등이 그 대표적인 사회의 문제이다. 이런 문제의식과 더불어 경제발전에 이룩한 성장의 이득이 적절히 배분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3) 사회 발전의 목표국제연합의 사회기획분과에서는 사회발전의 개념을 생활수준의 향상, 생활수준의 유리한 변화를 조성하는 사회체제(社會制度. 社會的 態度)의 능력향상, 그리고 소득, 부 및 기회의 보다 균등한 배분 이라 정의했다.사회발전은 경제발전과 보완적 관계에 있고, 결과적 목표를 형성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즉, 경제개발과정에서 야기되는 문제점과 역기능을 해소하여 균형있고 통합적인 발전을 구성하는 수단적 측면인 동시에, 경제발전을 통해서 이룩되어야 할 궁극적이 사회가치를 실현하는 목표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사회발전은 사회적 형평성 즉, 혜택의 공평한 배분과 국민복지 혹은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다.Ⅱ. 본 론(1) 우리나라의 현실한국의 발전을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진전이 답답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잘 되어가던 경제마저 1997-98 공황을 겪으면서 그 취약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치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답보상태다. 사회는 개개인들의 높은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 수준이 매우 낮다. 특히 예의 경제공황 타개를 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 실시이후 사회가 큰 손상을 입은 결과 사회적 균열이 전에 없이 뚜렷하다.경제성장의 후발 주자로서 1960년대에 공업화를 추진한 우리나라에서도 근대화에 의한 성장 은 국가의 최우선 목표였다. 빈곤으로부터의 타파를 위한 우선 과제로서 경제개발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경제개발에 발맞추는 개인행위, 사회구조, 문화양식만이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생산과 건설의 확대로 한국의 경제는 생산의 디딜방아(treadmill of production) 로서 끊임없는 생산의 확대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체질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물질 지상주의, 성장 우선주의에 의해 왜곡된 분배, 허 열악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국 가사회보장관련 예산교육비보 건의료비사회보장및 복지주택및지역 사회 개발합 계중진국그 리 스7.4413.421.2722.138.50아르헨티나*1.9950.700.2452.934.73칠 레11.5533.705.6150.8613.36체 코18.0226.302.0046.3210.96멕 시 코3.0222.152.7627.9325.88말레이시아5.646.015.4517.0019.99평 균7.9425.382.8836.2013.90선진국카 나 다4.6641.241.0346.9320.75미 국17.1029.122.6348.852.00일 본1.6036.8013.7652.156.03네 덜 란 드13.7337.993.5555.2610.18프 랑 스21.7139.281.1462.137.05호 주12.6432.851.6047.097.45영 국13.7831.252.7147.744.43독 일**16.7945.290.5862.650.79평 균12.7536.723.3752.845.08한 국0.969.991.2412.1921.44 IMF 기준에 의한 국제적인 비교( 93년도 기준)주 : 1) * ; 1992년도 수치임.2) ** ; 1991년도 수치임.(출처: IMF, Governmnet Finance Statistics Yearbook, 1995)그리고 사회복지비를 OECD 기준으로 볼 때도 위의 에 있듯이 OECD 국가들은 1993년 현재 대부분 GDP의 30% 안팎에 달하는 복지비 지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복지 지출비는 노령 및 장애급여, 산재(직업병), 상병급여, 노인 및 장애인 서비스, 유족급여, 가족급여와 서비스,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 실업급여, 주택급여, 보건, 기타로 구성된다. 1993년도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의 경우 OECD 가입 국가의 1/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며, 경제 수준이 우리보다 못한 터키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경제적 측면이건 정치적 측면이건 한국이 한 단계 높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공영역으로서의름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많은 시민사회론자들이 주목하듯이, 1987년 6월 시민항쟁은 시민사회 본격적 등장의 계기로 그 역사적 의미가 심대하다. 또한 한국의 정치 민주화에 있어서도 87년 6월 시민항쟁은 이정표를 이루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성경륭, 1993). 권위주의하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의 대립이 정치사회내 정당간의 경쟁으로 제도화되지 못할 경우 정치갈등의 양상은 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갈등으로 전면화하는 데, 한국의 경우 그 갈등은 87년 6월 항쟁에서 절정에 달했다 (김호기, 1995: 19-320).87년 6월 시민항쟁은 대학생, 교수, 신부, 변호사, 대학원생, 의사, 약사 등 광범위한 지식인 계층과 사무직 노동자, 중소상인이 초계급적.계층적인 시민운동연합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 6월 항쟁이후 시민사회의 형성과 연대는 다시 분리되거나 파편화했지만, 시민사회 활성화의 지표인 자유화와 민주화는 사회 각 영역과 부문에 시민권, 정치권, 사회경제권을 확장해 갔다 (이수훈.여현덕, 1993: 40).과거 민주화운동이 시민사회 활성화와 사회운동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87년 6월 항쟁이후 과거 민의 한계를 조직된 시민사회운동이 메우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후 시민사회의 성장을 보여주는 증후들이 한국 사회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각 분야에 걸쳐 많은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이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90년대 들어 기초와 광역 지방의회 선거, 그리고 총선. 대선을 치르면서 민간단체들이 공명선거 감시운동을 펼쳐 정치과정에 개입했다.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두산그룹'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징후들을 시민사회의 일대 약진으로 해석하기에 족할 만큼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했다8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반공해. 환경운동은 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여러 종류의 공익 활동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 운동, 여성단체들의 여권신장. 남녀평등 실현을 위한 움직임,내실화라는 차원에서는 부정적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오늘날 한국의 시민운동이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자책 (손혁재, 1999)을 받고 있고, 그 주요 단체인 '경실련'은 집행부 퇴진 "운동"으로 인해 뜻밖의 내홍을 겪고 있는 바 언론플레이에 치중한 저간의 운동 경향의 귀결이 아닌가 싶다. 지금 '참여연대'도 유사한 길 (운동-언론-정부당국 3자간 폐쇄회로적 소통구도)을 가고 있는 듯한 데, '경실련'의 체험을 교훈삼을 만하다.우리나라의 경우 1992년 여름 리우환경회의가 한국 시민운동으로 하여금 지구적 시민사회에 눈뜨고 또한 본격적 참여의 중요성을 인지한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환경생태운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시민사회 일반이 이 지구적 사건을 통해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우리만이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모든 사회들이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체험했다. 지구적 시민사회를 한국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인식하고 또한 참여하기 시작한 분기점을 92년 리우환경회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1980년대 말을 한국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기점으로 잡을 때 한국 시민운동은 겨우 10년을 넘긴 정도의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짧은 역사를 갖는 운동을 놓고 성패의 평가를 내리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타난 시민운동의 폭발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시민운동의 활성화와 숙성을 위해, 이런 저런 점검이 필요하기도 하다.다양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시민운동단체들이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주요 집단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으며,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김호기, 1999). 금융실명제 실시, 토지공개념 도입, 낙동강 페놀방출 사건, 동강댐 건설 반대 등의 예에서 보듯이 사회의 공공선을 추구하는 개혁적이고 점진주의적인 운동을 통해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다. '경실련', '환경련', '참여연대' 등 대표적인 시민운동 단체들은 90년대를 한
남한강 수계 원주천의 수질오염 현황 및 분석양형모·민경환·송용섭·박서경·정연정연세대학교 환경공학과(2001년 10월 15일)90년대를 접어들면서 정부에서는 맑은 물 공급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상수원 오염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세계적으로 볼 때 물 부족국가 대열에 속해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있는 원주천의 수질오염현황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수질오염 방지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원주천 상류인 금대리부터 섬강합류 지점까지 BOD, COD, 탁도, pH, NH3-N, NO2-N, NO3-N, T-P, PO43- 의 측정을 통해 수질현황을 분석한 결과, 남부시장과 하수종말처리장 방류수와 미처리수의 수질은 하천수질기준 5등급의 심각한 오염도를 나타내어 가장 큰 오염원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는 섬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원주 하수종말처리장이 원주시 하수발생량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영양염류인 인, 질소의 처리가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원주천은 부영양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하수종말처리장이 2001년 12월 완공예정으로 증설공사를 하고있지만 처리 용량에서의 증설이기 때문에 영양염류인 인, 질소의 제거는 기대할 수 없다. 서울시민의 상수원인 남한강의 수질개선 및 상수원 처리효율 향상을 위해서라도 하수종말처리장의 처리공법에서의 기술적인 개선을 요하는 바이다.key words : 물 부족 국가, 원주천, BOD, COD, 탁도, pH, NH3-N, NO2-N, NO3-N, T-P, PO43-, 하수종말처리장, 하천수질기준, 영양염류, 부영양화1. 서 론지구상에서 존재하는 물 중에서 음료나 농업 용수, 공업용수, 생활 용수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담수는 약 2.5%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 중 비교적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하천이나 호수, 지하수의 물은 겨우 0.8%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제한이 되어 있는 반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물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또한 WS12구 주산교WS6치악교 위WS13신 주산교WS7치악교 아래WS14섬강 칠봉유원지Table 1. 각지점의 위치의해 영향을 미칠 수중보 아래(WS7), 지점9는 쌍다리 밑 고수부지(WS8), 지점10은 남부시장 오수 유입수, 지점11은 영진 아파트 옆(WS9), 지점12는 하수처리장으로 우회 유입되는 학다리 하류 단계천, 지점13은 학다리 하류(WS10), 지점14는 자연형 하천 시범구간인 흥양천 유입수, 지점15는 흥양천 합류후 하류 지점 (WS11), 지점16은 하수종말처리장 방류수, 지점17은 하수종말처리장 미처리 방류수, 지점18은 하수종말처리장 부근 고속도로 아래 구 주산교(WS12), 지점 19는 주산교아래 신주산교(WS13), 지점20은 원주천과 섬강 합류후 칠봉 유원지(WS14). 지점21은 원주천과 합류되기 전지점인 섬강교 아래이다.현장 조사는 8월 1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행하였다. 현장 조사 항목은 수온, pH, DO, 탁도 이였으며, 실험실 분석항목은 BOD, COD, NH3-N, NO2-N, NO3-N, T-P,{ PO}`_{4 } ^{3- }등이었는데 시료는 4℃ 에서 냉장 보관했다.현장 조사항목중 수온은 용존물질과 함께 용존산소량을 지배하므로 수질 판정상 중요한 인자가 된다. 또한 하천에서 수온의 분포를 확인함으로 이질의 물이 들어오는 가를 추정할 수 있거나 물의 운동을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하천에 고온의 폐수가 배출되면 수온이 상승하고, 어류의 생존환경을 혼란시키므로 어류의 생육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수온의 상승에 의해 세균의 발육이 촉진되고, 오염이 심한 경우에는 용존산소를 감소시켜 혐기성 상태로 되어 악취를 발생시키거나 H2S를 발생시킨다. 수온은 기온의 영향을 받으므로 측정시간에 따른 변화가 크며, 또한 수량이 많을 때에는 기온의 변화가 있어도 급격한 수온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⑴물의 pH는 일반적으로 pH 7부근의 중성 범위를 나타내고 있으나 대체로 자연수, 가정 하수 및 산업폐수들은 주중지되고 황화수소(H2S), 메탄가스(CH4), 암모니아(NH3) 및 수소(H2)등을 발생하여 악취를 내게 한다.⑵화학적 산소 요구량(Chemical Oxygen Demand : COD)은 물 속의 오염물질(산화가능성물질)이 산회되어 주로 무기성 산화물과 gas로 되기 위해 소비되는 산화제인 KMnO4나 K2Cr2O7에 대응하는 산소량을 ppm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폐수나 오수에 함유되어 있는 유기물 및 환원성 물질을 탄산가스와 물로 산화시키는데 소요되는 산소의 총량을 나타낸 값으로써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시킬 수 없는 유기물까지 모두 산화시킴으로써 BOD값보다 일반적으로 높은 값을 나타낸다.⑵자연계에 존재하는 암모니아성 질소(NH3-N)는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동시에 발생하는 CO2와 결합해 (NH4)2CO3의 형태로 존재한다. 암모니아성 질소(NH3-N)는 동물의 배설물 중에 유기성 화합물의 분해과정에 있어서 무기화의 제1보이다. (NH4)2CO3이 다량 생성되는 것은 위생적 의의가 있다. 또한 요중의 요소에서도 암모니아성 질소로 변환되기 쉬우므로 암모니아성 질소의 검출은 분뇨오염 지표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황산암모늄 [((NH4)2SO4]에 의한 암모니아성 질소의 비료가 용해되어 오염되는 수도 있으나 직접 분뇨오염 외에도 하수도 분뇨처리장의 폐수, 가축의 사육폐수 등이 문제가 된다.⑵물 속의 아질산성 질소(NO2-N)는 주로 대, 소변 하수의 혼입에 의한 암모니아성 질소(NH3-N)의 산화 등에 의해 생기므로 물의 오염을 추정할 수 있는 유력한 지표가 된다. 물에 아질산성 질소(NO2-N)가 검출되면 무해의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 한 오염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⑵질산염의 주 용도는 비료, 화약, 화학공업에서 산화제나 식품방부제 등이다. 자연환경중에 있어서 질산염의 일부는 토양 중에서 공중 질소가 고정되는 것이지만 토양 중에 함유된 유기질소 화합물이 분해되어 암모니아를 생성하며 질산화성균이 이 암모니아를 산화하며 질산염이 되는 것이다. 물 중에서 NO3d의 phenate method에 대한 변법이다. NO2-N(아질산성 질소) test tube에 HACH사의 NitriVer 3 Nitrite Reagent Powder Pillow를 넣고 15분 후 파장 585nm에서 흡광도를 측정하여 농도를 계산하였다.4. 결과 및 고찰4.1. 수온 (Temperature)Figure 3 . Variation of water temperature at each sampling site of wonjuchon원주천의 수온은 현장 측정결과 21℃∼28℃로 상류에서 하류까지 서서히 증가하는 것을 보인다. 수온은 기온의 영향을 받으므로 측정시간의 따른 변화로 보인다. 측정구간 내에서는 특별한 온배수의 유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4.2. pHFigure 4. Variation of pH at each sampling site of wonjuchon원주천의 pH는 pH7.0 ∼ pH7.9를 나타냈으며 이는 우리나라 하천기준인 pH6.0 ∼ pH8.5 범위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산성 혹은 알칼리성 폐수의 유입이 없는 것으로 보이나 WS6지점, WS12지점은 pH가 7.2와 7.3, DO는 7.6ppm과 6.54ppm으로 낮게 나타났다. 이것으로 보아 질산화 과정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즉 오염물질 유입으로 인한 (NH3-N) → (NO2-N) →(NO3-N)으로 변하는 과정에서{H}^{+}증가, 용존 산소 농도의 감소로 질산화 과정이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다.4.3. 용존산소 (Dissolved Oxygen : DO)Figure 5. Variation of DO at each sampling site of wonjuchon원주천의 DO의 전체적인 범위는 현장 측정한 결과 6.16ppm ∼ 8.45ppm으로 나타났으며, WS12와 WS13지점에서 각각 6.54ppm, 6.16ppm로 가장 낮게 나왔다. 이는 고도처리가 안되고 있는 하수 종말 처리장 시설에서 다량의 유기물이 원주천으로 유입되면서 조류의 성장이 활수중보로 인해 혐기성 오염물질이 번식하여 COD가 높게 검출된 것으로 보인다. WS9지점 이후로 점차 COD농도가 낮아짐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WS11지점 전에서 상류수 수질과 비슷한 수질을 보이는 흥양천의 물이 원주천으로 함류되면서 희석작용과 자정작용을 거쳐 농도가 낮아진 것으로 생각된다. WS11지점을 기점으로, COD농도의 급격한 상승을 볼 수 있으며 WS13지점에서 최고임을 알 수 있다. WS11지점과 WS13지점 사이에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방출되는 방출수와 미처리수가 함께 유입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특히, 하수종말처리장 미처리수에 의한 오염물질의 유입으로 COD농도가 16ppm으로 검출되었다.4.7. 암모니아성 질소 (NH3-N)Figure 9. Variation of NH3-N at each sampling site of wonjuchon암모니아성 질소(NH3-N)의 전체적인 범위는 0.065ppm ∼ 3.4ppm으로 전반적으로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갈수록 암모니아성 질소의 양은 증가하는 것을 보인다. 특히 암모니아성 질소가 WS8 ∼ WS11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WS11 ∼ WS14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WS8 ∼ WS11 부분에선 남부시장의 생활오수 및 가정내의 분뇨의 유입으로 그 수치가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지천인 흥양천의 유입수로 대부분 희석된다. 그러나 WS8 ∼ WS11부분에선 단계택지 (NH3-N의 농도 11.9ppm)에서의 생활오수 유입수가 하수종말처리장의 미처리수(NH3-N의 농도 12.65ppm), 고도정수처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하수종말처리장 방류수 (NH3-N의 농도 9.16ppm)와 함께 방출됨으로 인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원주천이 합류되기전 0.007ppm인 NH3-N의 농도가 원주천과 합류된 후인 WS14지점에서는 1.94ppm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하수종말처리장 방류수와 미처리수의 영향이 섬강에 까지 미친 것으로 사료된다.4.8. 아질산성 질소 (NO2-N)아질산성 질소는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문화 역시 어찌보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이란, 삼국지(三國志)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통해 얻어진 상상력에, 교과서에 실린 단편적인 자료를 더한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중국문화에 심취할 자료를 구해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때문에 그것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기회가 더 적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북연(北燕)과 고구려(高句麗)는 수천년의 동양역사중에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의 인물들을 살핀다는 것은 역사가 갖는 대표적인 오류일 것이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과 풍발(馮跋), 장수왕(長壽王)과 풍홍(馮弘)이라는 인물로 대신할수 있는, 고구려(高句麗)와 북연(北燕)의 관계를 그들의 업적과 세력권을 토대로 역순으로 조사해 나간다면, 그들의 역학적관계와 주변상황까지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역사의 일부분이었던 고구려(高句麗)에서 벗어나 북연(北燕)으로의 시점의 이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우리편이 아니면 테러리스트" 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식의 이분법적인 논리적 허술함을 조금이나마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것을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발생하는 자연적인 현상일 수 있다.풍발(馮跋)로 대표되는 북연(北燕)의 초기모습은 왕실의 모습을 갖춘 견고한 형태로 출발하게 된다. 북연(北燕)의 고운(高雲)이 시해되고 당연히 부자세습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풍발(馮跋)이 북연(北燕)의 천왕(天王)자리에 오르게 된다. 천왕(天王)자리에 오르기 위해 고운(高雲)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과 결탁함에 있어, 마치 고려시대의 궁예와 왕건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이 쿠데타이건 혁명이건간에,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천명(天命)임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것이다. 물론 역사의 기록자와 재해석자의 특권을 빼 놓고 생각할 수는 북연(北燕)은 중앙집권체제의 국가였다. 단 후에 군현제도와 지방분권제인 봉건제도가 병존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집권말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화되어 가고 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그에 반해 비교적 정당한 절차를 밟고 왕위에 오른 광개토대왕은 이름을 담덕(談德)이라 하며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이다. 북연(北燕)과는 비교적 중간정도의 외교관계를 유지하였고, 거슬러 올라가 후연시대의 모용 희(慕容熙)와는 적대관계에 있었으며, 후에 모용 희(慕容熙)를 죽이고 자립한 고운(高雲)과는 수교를 맺기도 하였다고 한다. 북연(北燕)과 고구려를 단순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고구려가 모든면에서 북연(北燕)을 앞섰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 같다.풍발(馮跋)의 막내동생 풍홍(馮弘)은 형과 비슷한 형태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북연(北燕) 풍발(馮跋)집권 말기 임금이 병상에 눕고 후계자인 태자가 왕위를 계승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풍홍(馮弘)은 계략으로 북연의 천왕자리에 오른다. 그 옛날 모용희의 시해사건부터 고운과 형인 풍발(馮跋)을 지켜보면서 만년 2인자의 한을 끝내 풀어버리고 만 것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영웅 뒤에는, 언제나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가 2인자로서 만족을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어떤면에서 보면 영웅보다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결코 모든면에서 영웅에게 뒤쳐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모든 이들은 그를 1인자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웅은 하늘이 내려주었다는 규명하기 어려운 이유, 즉 오늘날의 카리스마 때문일 것이다. 1등과 2등 사이엔, 백지장 1장 만큼의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엄현히 존재하기 때문이리라.이런면에서 형과 아우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풍발(馮跋)이 흔들림없이 천왕주(天王主)에 즉위할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형제들간의 든든한 결속력이었다. 견훤의 아들들이 세력타툼을 했던 것과 비유하여, 수많은 왕조들이 왕권과 권력을 더 차지하들과 두터운 신망을 쌓았고, 자신이 즉위하는데 공이 컸던 관료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고, 종실의 불화문제가 발생하자 종실우대정책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후연(後燕)의 모용 희(慕容熙)가 지나친 부역과 학정으로 멸망하였다는 교훈을 되새겨 백성들에게 부역(賦役)을 경감하고, 조세경감정책을 실시하는 등 백성들의 민심을 얻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려시대의 왕건과 궁예는 방법은 달랐으나, 백성들의 민심을 얻기위해 불교를 이용했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불교를 장려하여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백성들에게 선망이 있는 승려들을 위해 베풀어주어, 결국 백성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왕실로 스며들게 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풍발(馮跋) 역시 혈민정책을 사용하여 농업을 중시하며 효(孝)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강조하는 유교(儒敎)적 정책으로 민심을 얻는데 성공한다.교육정책 역시 후연(後燕)과 마찬가지로 태학(太學)을 설립하여 태학생(太學生)중에서 관료를 선발하는등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선거정신(選擧精神)을 표방하였다고 한다. 가정에선 효(孝)를 중심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가르치고, 학교에선 바른 교육정책을 일관하니 내실이 부강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동생 풍홍(馮弘)의 집권초기를 형과 비교해보면, 풍홍(馮弘)이 집권한 시기인 북연(北燕)말기는 북위(北魏)를 중심으로 세력권이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풍홍(馮弘)은 집권직후 연호를 바꾸고, 모용씨(慕容氏)를 왕후로 삼는등 집권초기부터 왕실의 결속에 다소 불안감을 나타냈다. 당연히 그에 불만을 품은 원비(元妃)들은 북위(北魏)에 항복하고 들어가 풍홍(馮弘)의 왕실은 내부적으로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정비(正妃)인 왕씨와 세자(世子) 몰아내고, 모용씨(慕容氏)를 총애한 이유가 후연(後燕)의 잔존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으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그 정도의 차이였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의도는 좋았으나 그 방법과 과정이 좋지 않았다는을 편애하면 아무리 유능한 선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 팀은 단합되고 강한 팀이 될 수가 없다.이런 내적인 불안을 가지고 시작된 풍홍(馮弘)의 북연(北燕)은 대외적으로는 고구려(高句麗)와 남조(南朝), 심지어 대립적 관계였던 북위(北魏)와도 빈번한 통교(通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북연(北燕)이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던 근본적인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북위에 대한 견제에 있었다고 한다. 동맹국을 맺음으로써,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위(北魏)는 중원을 휘어잡고 있는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북연(北燕)은 국가방위를 위해서 주변 동맹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했음은 자명했을 것이다. 이 당시 고구려(高句麗) 또한 주변으로 계속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던 터라, 북위(北魏)가 함부로 대할수 없었던 것을 북연(北燕)의 풍홍(馮弘)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북연사(北燕史)에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했던 풍홍(馮弘)이기에, 집권전의 모습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후연(後燕)의 모용 희(慕容熙)를 시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풍홍(馮弘)은, 이어 고운(高雲)을 북연주(北燕主)로 즉위하는데 역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에 고운(高雲)에게 높은 관직을 받았음은 뻔한 이치였다. 이어 고운(高雲)이 시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형인 풍발(馮跋)이 천왕에 즉위하자 형을 도와 왕실을 굳건히 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다. 풍발(馮跋) 집권초기 관작의 형평성 문제로 내부의 반란이 일어나자, 반란군 토벌사령관으로서 형을 도운다. 형인 풍발(馮跋)은 막내동생인 풍홍(馮弘)에게 극진히 대함과 동시에, 여러 아우들을 함께 돌보는 형평성을 유지함으로써 내실을 굳건히 하는 리더쉽을 보인다. 그것이 형과 아우의 가장 큰 차이점요, 북연(北燕)의 흥망과 성쇠의 열쇠였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옛말에 형보다 나은 아우가 없다라고 하였으니...내적으로 왕실의 결속과 백성들의 민심을 모으는데 성공한 풍발(馮跋)은 고구려와도 친선정책으로 일관한다)와는 조금은 껄끄러운 관계였을 것이고 훗날 적대적인 관계로 나아갔다고 한다.남중국의 동진(東晉)과는 비록 사이에 북위가 있어 통과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신교류도 활발히 이뤄지는등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시점의 이동을 고구려(高句麗)로 잠시 옮겨보면, 다소 혼란스러웠던 고구려(高句麗)와 북연(北燕) 북위(北魏)의 관계가 정립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고구려(高句麗)에 초점을 맞춰 시대를 내려가다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우리것이 좋은것이여"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정신으로, 이웃나라 일본과 유사한 사고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구려의 서쪽에는 모용씨(慕容氏)의 후연(後燕)이 있었다. 후연(後燕)과는, 사절을 파견하는 등 한동안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400년 후연왕 모용성(慕容盛)이 소자하(蘇子河) 유역에 위치한 고구려의 남소성(南蘇城)과 신성(新城)을 침공해옴으로써 양국관계는 파탄에 이른다고 한다.이에 왕은 후연에 대한 보복전을 감행하여 402년에는 요하를 건너 멀리 평주(平州)의 중심지인 숙군성(宿軍城)을 공격하여 평주자사(平州刺史) 모용귀(慕容歸)를 도망치게 했고, 404년에도 후연을 공격하여, 이러한 과정에서 요동성(遼東城)을 비롯한 요하(遼河) 이동지역을 차지한다. 그리고 후연왕 모용희(慕容熙)에 의한 405년의 요동성 침입과 406년의 목저성(木抵城) 침입을 물리침으로써 요하 이동지역에 대한 장악을 더욱 확고히 한다.고구려왕은 남연(南燕)의 왕 모용초(慕容超)에 대하여 천리마 등을 보내면서 후연을 견제하고, 자신의 세력을 더욱 확고히 하는 외교정책을 쓴다. 여기서 천리마와 천리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 또한 고구려인의 유목민적 특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고구려의 지정학적 위치상 말을 잘 타야 했고, 강인함과 끈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험난한 산악지형이 많아 빠르게 이동 할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후 후연이 멸망하고 북연(北燕)이 나타나자 우선은 친선정책을 사용하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