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간 군사 기업들은 냉전 종식 이후 일련의 미국 대외 정책에 발맞추어 재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 부시 행정부의 신세계질서 전략에서 클린턴의 개입과 확대 전략, 현재 부시 행정부의 신군사안보 전략까지 미국의 대외 정책은 국제 지역 분쟁에 적극적 개입을 일관되게 수행하고 있다. 일련의 미국 대외 정책은 인종과 종교,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21세기 국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 분쟁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미군은 군사혁신을 필요로 하였다. 97년 QDR 보고서를 바탕으로 2015년까지 단행될 군사혁신은 재래식 무기와 병력은 줄이고 최첨단 무기체계를 강화하며 전투 중심의 군과 나머지 군 용역은 민영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군수업체들은 여기에 따라 재편되고 있으며 9.11 테러 이후 급증한 국방비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은 군수산업체의 재편에 힘을 실어주었다. 군수 업체의 재편 방향은 크게 최첨단 무기 체계의 개발과 생산 중심으로 움직이는 쪽과 미 병력 감축과 따른 미군 용역 민영화에 치중하는 쪽으로 나눌 수 있다. 최첨단 무기 체계의 개발과 생산은 갈수록 민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술적 전문 역량을 필요로 한다.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양상이 정보 지배 전술이며 이런 전술은 민간의 지원을 더욱 필요로 한다. 미 군 감축과 관련된 용역 민영화에서 민간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미국의 민간 군사 기업은 합병과 인수를 통해 기존 군수업체에 빠르게 흡수되어 점차 군산복합체화 되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민간 군사 기업은 무시 못 할 속도로 번지고 있는 안보 분야에서의 민영화에 최일선에 서 있으며, 이는 변화하고 있는 21세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민간 군사 기업의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민간 군사 기업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 제일 중심은 민간 군사 기업을 다루기 위해 적용 가능한 국제법의 정의와 체제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전쟁에서 활동하는 사조직에 대한 국제법은 단지 개별 용병 집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며 이마저 모호하면서 제한적인 조건으로 되어 있다. 그 결과 어디에서도 이 모든 기준에 들어맞는 용병을 찾기 불가능하며 민간 군사 기업에 대해 적용할 수도 없다. 특히 법적 정의가 명확해 지고 민간 군사 기업에 대한 국제법이나 협약이 만들어진다고 하여도 이러한 법을 시행하거나 집행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메커니즘도 전무하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리고 현 민간 군사 기업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민간 군사 기업에 대한 규제 메커니즘은 미약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미국의 경우, 자국에 소재한 민간 군사 기업들이 해외 무기 이전을 포함한 하청 계약을 수행할 때 ‘국제 무기 교역 규제법’에 의거하여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인허가 절차가 매우 불투명하다. “인허가 절차를 관장하는 국방부와 국무부의 부서가 계약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며, 기업이나 민간 입회인 모두 이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지 못한다.” 게다가 현재 미국의 법률 아래서는 계약 총액이 5천만 달러 이하이기만 하면 어떤 미국 군사 기업도 의회에 전혀 통고하지 않은 채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다. 또 민간 군사 기업이 일단 인가를 받기만 하면 이 기업이 계약을 실제로 어떻게 수행하는 지를 감독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요건도 전무하다.
자본주의 - 무엇을 위한 생산인가?서론맑스)는 자본주의를 ‘완전히’ 부정한다. 그 방법은 치밀하고 과학적이다. 기존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부분적 현상만 파악하여 설명함으로 각자의 난점에 봉착했었다. 맑스는 그들의 논리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자본주의의 원리를 설명했다. 그 뒤, 자본주의 전제 자체의 문제점과 자본주의 확대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는 부분, 자본주의가 진행되었을 생기는 문제점등 자본주의의 모든 것을 비판한다. 한마디로 기존 학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논리를 완전히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했다는 것은 최소한 이진경이 보는 맑스의 입장이다.본론자본주의는 ‘상품은 인간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가치를 가지며 거래는 동등한 가치로서 교환된다’에서 시작한다. 중세 이후, 상품은 생산의 중심이 되어 왔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치와 거래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부분적인 현상만으로 정리하다보니 몇 가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남겼으며 그들의 생각은 통일되지 못했다.당시의 정치경제학자들 중에 리카도는 상품의 가치와 거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상품에는 인간의 노동이 투영되어 있다. 상품의 가치는 여기서 발생한다. 시장에서 상품은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등가로 교환된다. 만약 시장에서 총 1자루가 노루 2마리와 교환된다면 총 1자루와 노루 2마리에 투여된 노동시간이 같다는 것이다. 거래가 등가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면 반복해서 일어나기 힘들다는 현상을 분석한 것이다.그러나 현실의 시장에서는 이것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즉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가격은 노동시간이라는 가치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총 1자루 만드는 시간이나 노루 2마리 잡는 시간이나 똑같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항상 1자루가 2마리와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아담스미스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상품의 가치가 노동에서 발생하는 것은 인정하나 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은 상품의 공급과 수요의 균형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결국, 두 학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난점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가치와 가격의 괴리이다. 맑스는 이 난점을 해결한다. 개별 상품의 가치는 투여된 노동시간이고 가격은 가치에서 끊임없이 괴리된다. 그러나 사회에서 생산된 상품의 총생산가격은 상품의 총가치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노동시간은 가치와 시장에서 가격으로 환원가능하다.이렇게 가치 공리계 내에서 자본주의의 원리를 설명한 후, 맑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럼 모든 노동은 시장에서 가치를 가지는가? 인간이 노동을 통해 만들어 내는 모든 것들이 시장에서 상품이 될 수 있는가? 그건 명백히 아니다. 어떤 예술가가 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예술작품에 투자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시장에서 제값에 거래되지 못한다면 그는 시장에서 가치를 가지는 게 아니다. 상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상품거래가 지배하는 사회라면, 상품의 가치만이 최상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가 된다면 그는 전혀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된다.상품의 가치가 노동에서 발생한다는 논리는 언뜻 우리에게 상품은 신성한 것으로 보여 진다. 왜냐하면 상품은 땀 흐린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상품은 노동을 선택한다. 상품이 될 수 있는 노동은 시장에서 가치를 가지는 것 만이기 때문이다. 시장 중심으로 사회가 변해감으로 노동은 점차 상품에 종속된다. 그래서 맑스는 시장에서 가치를 가지는 노동을 노동력이라 정의하고 노동과 분명하게 구분한다.자본주의의 전제에서 상품이 중심이기 때문인지, 자본주의 과정에서 역시 철저하게 노동(자)은 배제되어 있었다. 노동가치론(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있다는 의미)에서 노동의 가치는 시장에서 상품화될 수 있는 노동만이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보았다. 노동가치론이 점점 우세해져 가는 과정(자본주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는 결코 다수 인간,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으며 노동자들에게 (그 남아)돌아오는 혜택은 시장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두 가지 면에서 나는 배제되었다고 본다.중세에서 근대 시장체제로 넘어가면서, 농노는 노동자화 되어야 했었다.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기존 다수 농노들이 노동자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환경, 기존의 생산수단을 박탈해야 했다. 또 다수 농노들은 노동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장이 조성되어야 했다.영국에서 일어났던 엔클로저 운동은 농노들을 그들의 땅(생산 수단)에서 그들을 쫓아내었던 사건이었다. 또 종교개혁 과정에서 교회는 교회 소유의 땅을 차지농업가와 도시 부르조아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기는데, 이 때에도 대량으로 소작인들이 축출된다. 이렇게 자신의 생산 수단에서 축출된 농노들이 “새로운 환경의 규율에 순응할 수도 없”)었다. 그 역할은 유혈입법과 감금이 담당했다. 15세기 말~16세기 전체에 이르기까지 믿을 수 없는 잔혹한 피의 입법들이 만들어지고 시행되었다. 또 17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수용소가 만들어지고 엄청난 규모의 감금이 행해진다. 농노들에게서 토지수탈은 대규모로 일어났지만 이들을 고용할 자본의 성장은 미미했기 때문이다.노동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장의 확대는 시장의 역동성이 아닌 국가의 요구와 맞물려 있었다. 역사적으로 시장은 시장의 확대에 대해 배타적이다. 왜냐하면 시장 안에서 형성된 이익이 시장의 확대와 맞물려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확대는 당시 절대국가체제의 중상주의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 상품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국가의 부와 연결시키려는 정책에 의해 시장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혜택이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라면 가만히 두어도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자본주의 과정에서 다수 노동자가 지금 정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왔다. 그 좋은 예는 노동시간의 감소를 들 수 있다. 앞서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가치가 형성된다는 것(가치론의 공리계 내에서)을 보았다. 산업화 초기에 노동시간은 생산의 양과 직결(아직 절대적 잉여가치가 생산의 중심이었다)되어 있었다. 노동시간의 절대적 연장이 노동법)에 의해 보호 받고 있을 때, 노동자는 그들의 힘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다.아이러니하게도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노동자의 투쟁 과정은 결국 상품 생산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발전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품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이득은 결코 다수 노동자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맑스는 이렇게 얘기한다. 만약 상품의 가치가 노동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다수의 노동자가 노동(자신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을 통해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러한 배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운동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내에서 생산된 상품이 끊임없이 소비되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상품이 계속되어 생산되기 위해서는 생산된 상품이 모두 판매되어야 한다. 하다못해 자본주의 이론에서 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부분 역시 맑스는 큰(?) 공헌을 한다.맑스는 생산물을 소재에 따라 생산수단 부문과 소비수단 부문으로 분할하여 두 부문 간의 교환을 통해 자본주의 내 생산되는 모든 상품이 소비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의 소재적 형태에 따라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부문(1부문)과 소비재를 생산하는 부문(2부문)으로 나누어 단순재생산이든 확대재생산)이든 균형조건을 제시한다.맑스는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난점 없이 무한히 계속하여 확대재생산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맑스의 증명-이는 가치론의 공리계 안에서의 증명이다-을 현실에 대입하면 문제를 일으킨다. 시장에서는 이론처럼 완전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산된 상품이 판매되지 않고 쌓이는 순간이 있다. 사회 전체에서 상품이 판매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 그래서 불균형(상품이 판매되지 않는 순간)을 조정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황)’이다.
개인과 사회, 국가서론몇몇 사람들은 “다원주의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그것이) 독점적 중요성을 가진다”는 점에 반대한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원주의가 “개인간의 경제?사회적 관계에 대하여, 특히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정치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특정한 가정”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다.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가정”이란 다원주의가 공동선(Common Good)이라는 명분으로 사회 내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것을 의미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원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회 내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개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나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나는 다원주의 이론이 사회와 국가 내 불평등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정리하려 한다. 먼저 다원주의 이론적 배경을 알아보면서 다원주의 이론의 특징-간과하고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불평등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사람들의 입장을 정리해 볼 것이다.본론현대의 정치와 정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홉스, 로크, 루소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시는 기존의 질서들이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들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그들은 국가나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자연상태)과 그 상황에서 인간이 필요했던 것을 생각함으로써 국가나 사회가 무엇인지 정의하려 하였다. 결국 당시에 요구되던 새로운 질서들-시장을 통한 상품 생산, 개인의 자유, 국가의 역할 등-은 현재 정치?경제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았으며 홉스, 로크, 루소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정의는 오늘날 우리가 국가나 사회에 대한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홉스는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자연권)을 가지는데 각자 자연권을 무한히 발휘하다보면 서로의 생명까지 위협하게 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이것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권을 절대적 힘(국가)에게 양도하는 계약(사회계약)을 맺게 된다. 홉스의 가치는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로크의 자연상태는 홉스의 자연상태와 조금 다르다. 로크의 자연상태는 “평화, 선의, 상호원조 및 종족보존”의 상태이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위해 상대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상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다만 재산에 대한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재산에 대한 존중의 의무가 사회나 국가의 강제력 아래에서 보다 완벽해 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계약을 맺게 되며, 사회계약에 의해 생겨난 국가는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해야만 하고 그것이 제일의 의무이다.반면 루소는 앞선 홉스와 로크의 생각과는 또 달랐다. 루소는 엄격하게 사회와 국가를 구분)하였다. 루소의 자연상태는 모든 인간이 풍족하게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상태이다. 갈등은 몇몇 사람이 나머지의 몫까지 소유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루소에게 있어서 사회란 다른 사람의 몫까지 소유하는 몇몇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 루소가 말하는 국가는 무엇인가? 루소에게 있어서 국가란 모든 시민이 계약을 맺는 당사자로 모든 시민을 위한 일정한 역할을 가진 힘(권력)이다. 루소가 국가에 대해서 말하는 구절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만약 국가가 그 구성원들의 결합에 그 생명이 달려 있는 하나의 도덕적 인격체이고 또 국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국가 자체의 보존에 대한 관심이라면, 국가는 전체에 가장 크게 이익이 되도록 각 부분을 가동시키고 배치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보편적이고 강제적인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계약론에서)” 이를 국가는 일반의지를 가진다고 표현된다.로크와 루소의 공통점은 사회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것-기존의 국가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계약을 파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로크는 개인의 재산권을 국가가 제대로 보호하지 않거나 국가가 뺏으려 할 때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소는 국가가 일반의지를 실현하지 못할 때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많은 재산을 가진 소수를 보호하는 사회와 달리, 국가는 사회 내 불평등은 없애거나 줄이는 쪽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국가는 부정될 수 있는 것이다.로크의 이러한 관점은 아담 스미스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 로크의 관점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개인 재산에 대한 국가(또는 사회)의 보호가 집단(국가나 사회)의 이익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 문제를 해결한 듯 보였다. “보이지 않는 손”은 도덕성(정직, 성실, 근검 등)을 바탕으로 개인에 의해 추구되는 욕구가 개인의 부를 축적 가능케 하고 개인의 축적된 부가 다시 국가의 부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에게 국가는 개인의 도덕성을 키우는 교육과 시장을 보호하는 기능만 담당하면 되었다.아담 스미스의 경제적 관점은 벤담과 밀에 의해서 정치적 관점의 국가 역할을 만나서 형식적으로 완전함을 이루게 된다. 아담 스미스의 국가는 “‘인간에게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장을 제공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벤담의 법률학은 이 점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벤담은 법이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통해 강조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J. S. 밀은 “대의정치론”이라는 논문을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이론화하였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대의제를 이론화하였는지는 불분명할 수 있으나, 결국 대의제가 소수의 시민 집단에 입법권을 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은 명확하다.아담 스미스, 벤담, J. S. 밀에 의해 이루어진 사상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이다. 경제부분에서는 개인의 경쟁을 강조하고 국가의 강제력(그 중에서 법)은 시장을 깨는 움직임을 제한하고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리(입법권)는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사회 내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크다. 빈곤은 개인의 부도덕성(게으르고 불성실하고 정직하지 못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평등 역시 1900년 초반에 가야 보통선거가 이루어지는 것을 봐서도 등한시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현재 우리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전신이다.현재,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는 다원주의 정치이론이라 볼 수 있다. 다원주의적 민주정치란 상호 경쟁적 이익집단과 대중들이 공공정책을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는 토론의 중립지역으로 간주하고, 선출된 국회의원과 임명된 공무원이 일을 주도해 나가지만 동시에 그들은 공중의 요구를 반영하며 적어도 현안문제에 관심을 갖는 대중을 위해 기능한다. 그리고 비록 국가 관료는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일반대중은 선거를 통하여 정부의 결정에 대한 궁극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다원주의자들은 생각한다. 이는 다원주의가 개인의 자유라는 기반으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그러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로크의 관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형태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것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이는 정치적 불평등 문제와 연결된다고 보여진다)를 국가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크와 달리, 루소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으며 이 고민을 계승하여 이론화한 사람이 마르크스이다.마르크스는 먼저 사회에서 “왜 불평등이 발생하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불평등의 원인은 소수 사람들이 생산 수단을 독점하기 때문이라 보았다. 생산은 생산력에 의해 가능한데 생산력은 생산 수단과 노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소수의 사람들은 생산 수단을 독점함으로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도 다수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 발생하는 생산의 이익을 착취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사회 내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한다.이렇게 사회에서 발생한 불평등은 다수의 불만으로 연결될 수 있는데 이를 제한하는 것이 국가이다. 국가는 법이라는 명분과 강제력(군대)을 보유하면서 다수일 수 있는 시민(재산의 소유가 상대적으로 없는)을 제한한다. 대의제를 통해 법의 제정은 소수의 기득권들에게 맡겨져 있으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교묘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 법을 기준으로 국가는 강제력을 행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국가는 재산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구인 것이다.레닌은 기득권의 국가를 뒤엎어 루소가 생각한 불평등이 없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해 옮겼다. 레닌이 말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란 "혁명전위당"을 중심으로 기존의 국가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레닌은 기존의 국가와 새로운 국가는 폭력으로 상충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았다. 기존의 국가 뒤에 존재하는 세력들은 결코 그들의 이익을 그냥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민중은 혁명전위당 아래 결집하여 소수의 기득권에 대항하는 것이다.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서론사회과학 중에서 국제관계학은 페미니즘 관점이 늦게 수용된 학문에 속한다. 이는 크게 외교, 전쟁, 국정운영술과 같은 국제정치가 정치가와 군인들의 세계를 상기시키며 '남성'이라는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게는 국제정치경제의 분석 단위를 국가-시장의 관계나 지배-착취의 구조에 둠으로써 여성 또는 ‘젠더’ 문제가 배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국제정치가 대립, 경쟁, (군사)안보와 (힘과 위협으로 행사되는)권력이란 용어로 설명되다보니 젠더 문제가 국가 내의 문제로 밀려나서 사회학이나 정치학의 문제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시아 엔로(Cynthia Enloe)는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1989년)”라는 질문으로 페미니즘 관점을 본격적으로 국제관계학에 도입한다.본론세계정치에서 여성주의에 관한 연구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산드라 하딩(Sandra Harding)의 분류)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첫 여성주의 물결은 여성주의적 경험주의)라 할 수 있다-에야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엔로)는 세계정치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여성들은 세계정치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값싼 공장 노동자, 군사 기지의 매춘부 혹은 외교관의 부인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문제는 전통 국제이론의 관행에서 이런 여성들의 활동을 덜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다.여성주의적 경험주의가 세계정치에서 여성의 위치를 발견했다면, “젠더(여성성/남성성)는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으로 인식”을 국제관계학에도입한 것은 여성주의적 관점론자(이하 여성관점론자)들에 의해서였다. 여성관점론자들은 지식이 사회, 정치, 이념, 역사적 배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으며 젠더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들의 목표는 현실을 여성 중심의 시각으로 재기술하는 것이었으며 현실에 대한 여성적 버전을 발전시키려는 것이었다. 젠더의 습득과정에서 부여받은 남성의 가치와 다른 여성의 가치는 국제 관계에서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여성주의적 세계관은 홉스적 세계관(남성중심적 세계관)보다 좀더 협력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그래서 관점론자들은 여성의 경험과 관점으로 세계를 볼 것을 제안한다.여성관점론자들은 통일된 하나의 여성주의 시각이 존재한다는 가정으로 인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세계정치의 주요이론들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를 보여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예를 들어 현실주의의 ‘대부’인 모겐소로부터 발전된 ‘정치 현실주의의 여섯 가지 원칙’을 티크너(J. Ann Tickner)가 다시 공식화한 것이다. 티크너는 모겐소가 제시하는 ‘객관적’ 규칙들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남성적인 가치와 정의를 반영하는지를 보여주었다.여성주의적 탈근대주의론자(이하 여성탈근대론자)들은 실증주의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여성적 경험이나 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경험주의나 관점론과는 차이를 보인다. 여성주의적 탈근대주의는 사회적 현실을 왜곡하는 양자택일적 이분법)을 거부하며, 특히 남성/여성, 남성성/여성성의 이분법이 가지는 억압적인 효과에 주목했다.여성관점론과 여성탈근대론의 차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설명에서 나타난다. 평화에 대한 여성주의 시각은 주로 여성관점론자들에 의해 먼저 제안되었다. 이들은 성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인 설명을 거부하면서도 여성적인 것과 평화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여성이 가지는 모성의 경험이, 그리고 공적 권력으로부터 여성이 역사적으로 배제되어 온 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평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고 설명한다.그러나 여성과 평화를 등치시키거나 여성의 평화적 우위성을 주장하는 관점론적 시각에 대해 크리스틴 실베스터(Christine Sylvester)와 같은 여성탈근대론자들은 “여성성=평화성”이라는 일원론적 해석에 대하여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여성들도 호전적일 수 있다는 사례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방식은 여성들을 일원화되고 수동적인 타자로만 인식하고 ‘성적 차이의 가부장제적 구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가진다고 비판)한다.여성탈근대론자들은 여성과 평화의 문제를 여성관점론자들의 평화 개념을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으로 환치시키면서 비판, 수용한다. 적극적 평화 개념이란 직접적 폭력뿐만 아니라 구조적 폭력)을 제거해야만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조적 폭력이란 빈곤, 기아, 억압 등을 가리키는 폭력으로 사회적 약자로 많은 종류의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은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생각은 첫째, 기존의 젠더 구성 방법에서 여성과 평화를 등치시키는 본질주의적 접근을 극복하며, 둘째, 기존 권력 관계에 대한 여성적 변화의지를 표출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 여성에 의한 좀더 적극적인 평화의 모색은 남성위주의 사회질서에 대한 배반과 전복을 포함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세력화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강점도 가진다.또한 ‘전쟁과 평화에 대한 확대개념’은 안보를 위협하는 주된 요소가 국가 간의 폭력 행사 및 그 위협이라는 현실주의 견해에 도전하게 한다. 일반 국민들이 위협을 당했다고 느끼는 정도는 사실상 각 개인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또는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세계경제의 불안정, 빈곤과 영양실조,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인종 갈등, 정치적 억압, 인권 침해, 종교?인종?성별에 기초한 박해 등에 의해 안보를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 국제관계론자들은 안보위협요소를 ‘국가 간의 폭력 행사 및 그 위협’보다 더 폭넓게 정의한다.여성주의 국제관계론자들은 젠더가 세계경제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970년대부터 각국 여성운동의 주요 논제로 다루어졌던 ‘여성과 개발’ 문제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들이 채택했던 근대화 및 경제개발 정책이 여성에게 차별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경제개발이 남성위주로 이루어지면서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상실한 채 경제개발에 의하여 남성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여성관점론자들은 기존의 개발개념 자체가 남성적이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에 기초하고 있으며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즉 남성적 개발은 여성과 자연을 대상화하고 착취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탈근대론자들은 특정 사회의 맥락 속에 놓여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행위와 전략을 강조하면서 주어진 상황과 사회 속에서 여성의 자원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허용하거나 막는지에 관심을 보인다.젠더가 국제노동분화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밝힌 것도 여성주의 국제관계론자들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성의 노동은 결혼 전에 이루어지며, 남편의 수입을 보조하는 임시직이며 대부분 비숙련 노동으로 간주되어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무역 경쟁이 심화되고 노동 규제가 완화될수록 현저하게 나타난다. 자본, 노동,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주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주변부화된 노동력은 더욱 증대된다는 것이다.
문명충돌론냉전 종식 후, 세계정치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들 중에는 문명)을 분석 단위로 하는 이론들이 있다.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상이한 문명들 간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문화적 갈등이 세계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요약)된다. 첫째, 냉전 종언 이후 세계정치에서 문화와 문명적 요소가 갈등의 주된 원천으로 부상하고 있다. 둘째, 이와 함께 서구문명의 상대적 쇠퇴와 이에 따른 문명간의 권력이동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셋째, 그 결과 서구문명에 대항하여 중국과 이슬람 문명이 강력히 부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문명충돌의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헌팅턴은 세계정치가 8개의 주요 문명-서구(유럽과 북미대륙의 국가),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러시아를 핵심국으로 한) 정교문화,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념이나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문화적 정체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또 서구문명의 상대적 쇠퇴와 권력이동은 비서구사회의 문화적 자긍심과 서구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키면서 서구와 비서구 문명 사이에서 문화적?종교적 충돌을 첨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명충돌의 가능성이 가장 큰 사례로 서구, 중국,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를 세 문명의 문화적 특징-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으로 설명한다.「현대 국제관계이론과 한국」에서는 현실주의적 면에서 문명충돌론의 적실성을 알아본다. 현실주의 관점과 문명충돌론 관점을 비교하기 위해, 문명과 국가 중 어느 편을 세계정치의 중요한 행위자로 보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설명을 위해 문명적 가치 및 이익과 국익 중 어느 것이 국가의 행위를 더욱 강력하게 지배하는가를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문명충돌론의 핵심 가정은 문명이 국가보다 상위의 우월한 행위자로서 세계정치의 주역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국가의 약화는 일차적으로 그보다 상위의 실체인 문명 또는 핵심국의 권력 강화를 수반하거나 또는 그것에 의해 초래되어야 마땅하지만, 「문명의 충돌」에서는 문명이나 핵심국의 강화로 개별 국가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설명이 없다.문명적 가치 및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국민국가에서 문명단위(유럽연합)로 이전하고 있는 유럽에서 개인의 충성심은 여전히 이전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1991년에 일어난 서방 연합군과 이라크간의 전쟁에서 아랍지역들이 후세인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 2003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에 같은 문명권의 프랑스와 독일이 강력 반발한 점을 들어 자국의 이익이 문명의 가치나 이익보다 앞선다는 것을 주장한다.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세계정치를 설명하는 데에 문명충돌론은 적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헌팅턴의 생각이 현재의 세계정치를 설명하는 이론틀이라기 보다는 냉전 이후 새로운 적을 찾아 미국의 패권적인 대외정책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미국 내 강경보수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적 고안물이라고 해석한다.문명충돌론이 중화-이슬람 연합 문명과 서구 문명 간의 대결 구도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문명의 패권과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신 냉전 질서의 구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세 가지 이유에서 설명한다. 첫째, 문명충돌론은 과거 냉전적 사고를 고수하고 있다. 둘째, 헌팅턴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셋째, 국제사회의 새로운 관심사에 대해서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헌팅턴은 ‘문명 충돌’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미국이 세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서구 사회에서 오는 위협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하며 과거 냉전 시대의 정책틀(미일동맹, 보스니아 지지,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다문명 경제통합안의 추진)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는 반대로) 중국과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서는 가상의 적으로 설정, 새로운 ‘봉쇄’를 제시한다는 점은 헌팅턴이 과거 냉전적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 헌팅턴 역시 충돌의 근본적 원인이 국익과 패권의 추구라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 유전의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을 가상으로 만들어내면서 베트남이 중화문명의 핵심국인 중국에 ‘편승’하지 않고 국익(유전 영유권)에 의해 (미국 쪽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국제 상황과 과거 냉전과의 유사점을 집어내는 반면 냉전 종언 이후 새로운 관심사(비서구의 기아와 빈곤의 문제, 지구 생태계 파괴와 책임, 핵문제와 군비 축소를 통한 평화와 복지)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