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1.문제제시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문제 말고도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우리와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는 창조주가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주가 없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이외에 는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없다. 만일 창조주가 있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 뜻에 맞게 사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만일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될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진화론의 영향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사는데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바른 인식은 기독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다.2.연구 방법이 내용은 우리가 단지 기독교인으로써 만의 고집으로 창조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각으로 이러한 창조론을 바라보고 서술할 생각이고 양재섭교수님의 자료를 토대로하여 생각하고, 좀더 그와 비슷한 문헌자료들을 통해 진화론과 창조론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우리가 배우고 써왔던 진화론의 부정적인 측면과 또한 그의 나의 생각을 서술할 것이다.창조론과 진화론의 의미창조론 대 진화론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생명체는 진화한 인가? 어떤 사람은, 만물이 저절로 진화했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건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일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원에 관한 개인의 신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와 궁극적 운명에 관한 견해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즉 기원에 대한 인간의 입장은 그의 생활철학을 바로 세우게 하는 표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생활 철학은 다시 인간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인간의 직면한 문제들(사회적, 정치적, 인종적, 생태학적)은 인간 행동의 직접 적인 결과이다. 인간 행동은 세계관의 표현, 즉 세계관의 역동적 표출 과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세계관이 공해산업도 괜찮다면, 자연이 오염될 것이며, 인종주의가 옳다고 하면 그는 인종을 차별하는 자가 될 것이다. 문제들과 행위, 세계관 그리고 기원관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문제에 대한 해결은 적절한 행동의 변화에 의하며, 적절한 행동은 올바른 세계관을 갖는 변화를 필요로 하고, 올바른 세계관은 기원에 대한 바른 입장을 요구한다. 한 개인은 근본적으로 기원에 대해 두 가지 입장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다. 하나는 창조주가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주가 없다는 것이다. 또 진화론이 기원을 설명해 준다는 것과 설명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창조 대 진화 , 유신론 대 유물론 혹은 자연주의, 그리고 계획 대 우연의 양자택일이다.생물학적 고찰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진화론과 창조론의 주장에서 크게 다른 점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첫째 창조론자는 생명체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진화론자는 원자에서 화학진화를 하여 우연히 생명체가 생기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둘째 창조론자는 생물체는 처음부터 기본 종류대로 만들어 졌으므로 기본종은 불변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진화론은 한 종(種)에서 보다 진보적인 종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진화론의 첫단계는 원자에서부터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다루는 화학진화로서 밀러의 실험,폭스의 실험, 오파린의 이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실험 및 이론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두번째 차이점 즉,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의 주장을 중심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어떤 한 종의 집단내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이를 소진화라 말하고 한 종에서 새로운 종이 생겨 더 고등 생물체의 종으로 변화되는 것을 대진화라 부른다. 진화론자들은 소진화가 점점 쌓여 대진화가 일어나서 지구상에 이처럼 다양한 생물군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카이스트의 창조론 연구회(http://www.racs.org/kaist/)진화론의 자연도태자연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유익한 돌연변이 형질은 선택하고 해로운 것은 도태하여 오랜세월이 지나면 한 종류의 생물체가 결국 더 진보된 다른 종류로 된다는 것이다. 생물체가 환경에 잘 적응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원칙은 진화론뿐 아니라 온 생물체 존속의 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자연도태, 적응등은 환경이 생물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진화했다는 소위 대진화를 보여주지는 않는다.지난 40여년간은 집단생물학 및 집단 유전학으로 다윈설을 설명하는 현대적 종합이론이 생물학계를 지배해 왔다. 현대종합이론에서는 점진적으로 진화된 종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화석이 보여준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화석학자들은 화석이 이것을 보여 주기는 커녕 오히려 종은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것으로 남아 있음을 계속 증거해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참고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카이스트의 창조론 연구회(http://www.racs.org/kaist/)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이 진화를 이용하여 이 우주와 생명을 창조하셨다는 이론이다. 일부 기독교인들 진화론과 창조론의 타협으로 이 이론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론도 결국은 진화론이다. 성서 적으로 볼 때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내용이 여러번 강조되고 있다. 즉, 처음부터 완전한 종류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이다. 또한, 진화론의 내용인 "적자생존"의 개념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성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유신론적 진화론도 창조론에 반대되는 이론이라 볼 수 있다.유신론적 진화론이란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진화론의 취지는 사물의 기원을 자연적인 과정에 의하여 설명하려는 것이고, 창조론은 초자연적인 과정에 의하여 그것을 설명하려 는 것이다. 따라서 그 둘을 동등시하는 것은 말뜻의 혼동이다. 유신론적인 진화론은 진화를 일으키는 자연과정의 배후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진화론은 모두 동일한 진화론적 역사의 틀과 동일한 진화론적 메카니즘을 상징하며, 따라서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적 판단기준이 아닌 신학적 판단기준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반면에 창조모델과 진화모델은 엄밀하게 과학적인 판단기준을 근거로 비교되고 평가될 수 있다. 창조론자들은 엄밀하게 과학적인 판단기준을 근거로 해서, 진화론은 우주의 기원에 관한 매우 빈약한 과학적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 서론 -1. 문제제기구약의 스바냐, 나훔, 학개, 이 세권의 짧은 책들은 요시아와 여호와김의 통치 기간 동안에 나온듯하다. 예레미야 또한 고대 근동에서 가장 혼란했던 시기들 중 한 시기에 살고있던 예언자중 하나였다. 우리들은 이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의 말씀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주제에 쏠려있다. 즉 하나님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앗수르나 바벨론같은 나라들을 사용하시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다. 일생동안 사람들에게 이해 받지 못하고 박해를 받으며 심지어 그의 가족들에게 조차 사랑 받지 못했던.. 이러한 사람들 이들이 느껴야했던 이러한 고독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했다. 이같이 예레미야와 같은 그런 삶, 곧 하나님에 대한 소명을 갖고 준비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그러므로 '눈물의 선지자'예레미야에 관해 논문 외의 참고문헌으로 그의 생애를 새롭게 이해,정리해 보려는 것이 본 글의 목적이다.2. 연구범위 및 방법예레미야의 관한 이해와 정리를 위해서 2장부터 예레미야 시대적 상황의 내용을 서술 할 것이고 주로 어려운 그 시대적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어떠한 소명을 받았고 또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어떠한 반응으로 발전하고 주의 일을 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예레미야가 환란과 역경 속에서 그가 고백했던 고백록부분과 하나님과의 새 언약에 관한 내용을 주석적 해설로 알아 볼 것이고 오택현 교수님의 강의 내용에 기초하여 예레미야를 분석, 이해하려한다.1. 시대적 배경1) 예레미야서의 시대적 배경(1) 저자와 기록연대본서의 기록연대는 예레미야의 사역기간만큼 길게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본서의 기록연대는 요시야 13년 곧 (B.C.627년)부터 예루살렘 멸망(B.C.586년) 이후 유다인들이 애굽에 이주하여 정착한 B.C. 580년경까지로 상정할 수 에 종속되었던 바벨론은 이틈을 이용하여 나보폴라살(Nabopolassar, B.C. 625-605년)의 지휘하에 앗수르로부터 독립하였으며 점차 근동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남왕국 유다에서는 요시야 (Josiah, B.C. 640-609년)가 즉위하여 앗수르와 바벨론이 대적하는 사이에 앗수르로부터 완전 독립을 획득하고 그 세력을 과적 북이스라엘이 차지했던 팔레스탄 북쪽지역까지 확장하게 된다.한편 앗수르로부터 바벨론의 독립을 쟁취한 나보폴라살은 드디어 B.C. 612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정복함으로써 신바벨론 제국을 창설하고 계속하여 앗수르의 잔존 세력을 제거해 나간다. 이에 앗수르의 잔존 세력은 하란을 거점으로 하여 바렐론과 싸워 세력을 만회하고자 하는 한편 애굽의 지원을 요청한다. 이에 애굽의 바로 느고(Neco.B.C. 609-594년)는 이 기회를 이용 근동지역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메소포타미아로 향하게 된다. 한편 유다 왕 요시야는 모처럼 획득한 유다의 독립이 앗수르가 다시금 재기함으로써 상실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메소포타미아로 향하는 애굽 군대를 므깃도에서 저지하게 되는데 불행히도 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게 된다. 그리고 유다에서는 여호아하스 (Jehoahaz. B.C. 609년)가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즉위 3개월만에 애굽 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고 대신 여호야김(Jehoiakim, B.C. 609-598년)이 느고에 의해 왕으로 세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여호야김은 친애굽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여기서(B. C. 605년)경 바벨론에 의해 완전 패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탄 지역은 애굽과 바벨론의 각축장이 되게 되는데 이러한 각축은 B.C. 605년 갈그미스전투에서 판가름나고 말았다. 즉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 전투에서 느고가 이끄는 애굽 군대를 대파함으로써 근동 지역의 명설 상부한 패자가 된 것이다.그리고 같은 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 전투에서의 승리의 여부활시켰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참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하나님의 예언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이은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왕도 결코 그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악했다.) "예레미야·예레미야 애가", 그랜드 주석(제자원 출판)2) 생애와 사역본서의 저자인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약 5 km 정도 떨어진 '아나돗(Anathoth)'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제사장직이 영구적인 세습직임을 감안하라 때 그 역시 제사장 출신 선지자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시기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었던 므낫세 통치 기간(B.C. 697-642년)이고, 이런 암울한 시대적 상황은 예레미야의 선지자 롯의 출생이 필연적이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가 선지자로서 소명을 받았던 때는 약20세 정도가 되었을 때인 요시야 왕 13년 곧 (B.C. 627년)이었다. 됴시야 왕은 우상숭배를 철저히 거부했을 뿐 아니라 에루살렘 경내에 있는 이방신의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모두 철거해 버리는 과감한 종교 개혁 정책을 추진해갔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에서 예레미야의 구체적인 역할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5년 후에 즉 요시야 왕 18년(B.C.622년)에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고 이로 말미암아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가일층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는 바 여기에서 우리는 요시야의 개혁 정책에 예레미야가 어떤 방식으로든 협조를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요시야 왕의 므깃도 전투에서의 전사 이후 예레미야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개혁의 중심인 요시야 왕을 잃은 유다의 쓰러져가는 우명을 자신이라도 지탱해야 한다는 선지자적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요시야 이후의 왕들인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는 한결같이 예레미야의 경고의 권면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길로 들어가기만 했으며 결국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B.하다'라는 뜻으로, '지킨다'라는 말과 음이 비슷하다.② 팔레스틴에서 살구나무의 특징은 다른 나무들보다 일찍 싹이 튼다는점이다.③ 성경본문의 살구나무 가지를 '징계하시는 막대기'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12절과의 연결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④ 따라서 이 환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깨어 있어서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끓는 가마 환상①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과 그땅의 모든 거민에게 있을 재앙' 이 환상의 주제이다.② 여기에서 '끓는 가마'가 바벨론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칼빈(Calvin)은 '가마를 달구는 불'을 바벨론으로, '가마 속에서 끓는 물'을 유다로 보았다.③ 여하튼 이 환상의 주제는 재앙은 북에서부터 오는 전쟁이며, 이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이라는 사실이다.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해석을 듣게 된다.2. 예레미야의 고백록1) 고백록의 배경예레미야는 B.C. 626년에 시작하여 B.C. 587년, 즉 바빌론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 후 얼마동안까지 활동하였는데, 예레미야의 고백록이 나오게 된 당시의 배경을 보면, B.C. 608년에 에레미야가 성전 어귀에서 설교하고(각주) B.C. 605-604년에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한 신탁들을 바룩을 통하여 처음으로 두루마리에 적게 하였는데 그 글이 몇몇 청중이 모인 자리에서 읽혀진다) 예레미야 7장 1절- 8장 3절. 이때 유댜는 바빌론과 에집트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호야김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여호야김은 이 두루마리를 불태워 버린다. 예레미야는 대중의 적이요 왕에 대한 반역자로 취급되어 한때 은둔생활을 한 것 같은데, 바로 이 '침묵의 시기'에서 예레미야의 고백론이라는 서정시가 나온 것 같다. 이 서정시는 예레미야가 여호야김 피해 은둔해 있을 때 바룩에게 불러주었을 것이다) 성서신학 황재홍 선사학위 논문 "예레미야의 고백론에 관한 성서 신학적 고찰" 24쪽.2) 고백록의 내용고백록은 다섯개의 구조로 살펴볼 수 있다.(1) 첫 번째 고이차적이고 편집적인 삽입이 이루어진 것으로 다루기도 한다.(3) 세 번째 고백록(17장14절-18절)세 번째 고백록은 17,14-18)로서, 이 고백록에서는 에레미야의 영혼을 괴롭히는 고뇌의 격정이 지속된다.O'Connor는 이 부분을 다으모가 같이 분석하고 있다.14절 - 직접적 언사, 신뢰의 말15절 - 불평16절 - 결백함을 주장함17절 - 청원세 번째 고백록은 개인 탄원시편의 요소들 중 앞의 두 고백록에서는 보이지 않는 야훼께 대한 신뢰의 말이 14절에서 보인다.(4) 네 번째 고백록(18장 18절-23절)네 번째 고백록은 18장,18절-23절로서 예레미야의 행동이 종교 지도자들(사제, 예언자, 현자)에게 파괴적인 행동으로 비쳐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백성을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도 그들이 이런 음모를 꾸미자, 그들을 용서하지 말고 멸망시켜 달라고 야훼께 기도했다. 즉 에레미야는 자신의 고유 역할인 하나님 곁에서의 배경의 중재역과 적대자가 되어 버린 청중들의 태도 사이의 대립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네 번째 고백록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18절 - 다음에 이어지는 시에 대한 배경 제시19절 - 들어가는 말20zb, 22cd, 23a절 - 불평20cde절 - 결백함의 선언21-23절 -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청원네 번째 고백록에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고백록의 형태를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신뢰의 말은 들어있지 않고 청원의 요소가 이 고백록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5) 다섯 번째 고백록(20장7절-18절)마지막 다섯 번째 고백록은 20장,7절-18절로서, 여기서 예레미야는 예언자의 직무수행에서 비롯되는 비웃음과 치욕 때문에 큰 소리로 외치면서 거의 신성 모독에 가까운 말로 하나님께 이야기하지만, 야훼의 이름으로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결국 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고백록들과는 달리 이 고백록은 자신에 가득 찬 신뢰와 찬양의 어조로 끝난다. 그리고 20장,14절-18절의 고백록에서있다.
-서론-1. 문제제기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증명하려 할 때 자주 자신의 정서적 상태를 말한다는 것을 정서들은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근로자들은 "일하고 싶지 않다"라고 그들의 느낌을 말하면서 일하는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학생들은 "우리는 공부하고 싶지 않다" 라고 하면서 수업을 빠진다. 어떤 연인들은 "우린 더 이상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라고 설명하면서 파혼을 한다. 모두들 느낌으로 그들의 행동을 표현하려 한다. 정서 또는 감정 (사람들은 두 용어를 상호 교양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은 생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가끔 정서 또는 감성은 우리의 사고를 방해하여 비논리적인 행동으로나 혹은 자기파멸의 길로 이끌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생에 묘미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면 정서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만큼 정서를 표현하고 조절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불안과 분노, 죄의식과 같은 고통스러운 정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2. 연구범위 및 방법정서를 공부하기 앞서 과제물인 것을 감안하여 우선 실질적으로 정서를 정의하고 그에 따른 기본적인 정서의 내용을 알아 보려한다. 또한 우리 정서 속에 나타나는 가장 좋아하는 정서와 싫어하는 정서(사랑, 미움)를 비교연구 할 것이고, 사랑과 미움을 말로다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두 가지의 정서가 아닌 심리학에서의 그러한 정서를 공부할 생각이다.또한 김충열 교수님의 강의 내용에 기초하여 다양한 사례(명언, 시, 예화, 사전적 의미등)를 들어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모아서 사랑과 미움을 표현분석, 이해하려한다.Ⅰ. 정서란 무엇인가?정서란 용어와 개념은 일류가 존재해 온 이래 계속 사용되어 왔을 것으로 간주되는 바, 시대 정신의 변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천되어 왔을 것이다. 문헌상으로 기록된 인지의 발달은 srmfltm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흔히 감정과 동일시되는 정서도 그 당시부터 언급되어 온 것으로 나타나 있다.정서가 , 신체의 실제적 장소(예컨대 두근거리는 , 찔렸을 때의 등)에 국소화시키려 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신체적 용어로 감정을 국소화시키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브라운은 감정을 신체 현상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귀결을 초래한다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귀결 가운데 하나는 감정과 인지가 두 개의 양립되지 않는, 즉 별개의 다른 능력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며, 또 다른 귀결은 감정과 신체 현상을 동일시하는 것은 감정을 형성하는 많은 경험들을 간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감정은 의식적. 무의식적인 형태로 지적. 신체적. 정서적 경험의 다양성과 연관된 것이라는 주장이다.이와 같은 브라운의 지적은 라일의 개념보다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감정에 대한 언어적 표현의 유형 및 종류 또 그와 관련된 유추는 과제로 남아 있다) (Kovecses, 1990)5)정신의학에서의 정서 개념정신의학에서 란 용어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되고 있다. 하나는 상위심리학metapsychology의 수준에서 일상 생활에서 정서가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신의학적 맥락에서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샤퍼Schafer(1976)는 정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법과 정서를 개념화하는 방법에 관한 패러다임을 만드는 데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가장 좋은 방법은 정서를 일상적인 언어 표현과 같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정서 연구의 변천역사적으로 보아서 정서 연구와 정서이론은 주로 정서의 생성 문제와 정서 내용의 다양성을 차원화시키려는 시도에 집중되어 왔다. 예컨대 다윈 이후에, 분트는 정서를 세 가지 차원의 결합 체계, 곧 쾌-불쾌, 흥분-진정, 긴장-이완으로 보았는데, 이는 정서연구의 고적 정서, 감각적 정서, 그리고 성격적 정서로 분류했다.슐로스버그 Schlosberg(1953)의 분류는 정서를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트렉슬 Traxel(1962)는 인간이 직접ctal 공격성을 나타내는 환자들에게서 화난 것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도 면접을 해보면 분노 감정이 아니라고 한다. 해마에 근접되어 있는 장소는 급발적 공격적 행동을 나타내는 곳으로 직접적인 행동을 나타내며, 그와 관련된 정서감은 곧 망각하게 만든다. 진화론적 조망에서 보면, 분노의 소질anlage은 아무런 경고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2)공포공포는 여러 가지 피질 자극에 의해서 유발되는 유일한 정서적 상태이다(Penfield & Jasper, 1954). 윌리엄스는 공포는 측두엽의 전반부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포 정서를 나타내는 인지적 차원은 회상-망각 차원과 관련된 것으로 제안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포와 회상 사이의 관계는 위협을 주는 사람을 기억하는 생각에 관한 것이다. 인지적 수준에서 회상은 전에 갈등을 일으킨 기억을 억압한 것에 대한 주체의 반응이다. 공포 정서와 회상의 인지적 요소는 플라칙이 기술한 보호 범주 행동의 원형 차원과 관계된 것으로 켈러만은 동일시하고 있다.3)기쁨강한 기쁨의 상태는 환희로 기술되기도 하는데 공포와 우울보다 덜 나타난다. 기쁨, 환희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약물을 사용한 뒤에, 예컨대 아편 복용 뒤에는 변연 체계를 통해서 수용기가 가장 집중된다. 특히 편도의 중추핵과 핵분계조 및 측좌핵(nucleus accumbens)의 근처에 있는 뉴로 펩티드 체계(neuropeptide system)의 끝 부분에 기쁨을 느끼게 하는 중추가 있다. 기쁨 정서를 나타내는 인지 차원은 목적성- 무목적성으로 명명되고 있다. 기쁨 정서의 파생적 형태로서 목적성의 인지적 요소는 완성의 형태로 대상을 소유하는 행동 연속의 한 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기쁨 정서의 맥락에서 목적성은 플라칙이 기술한 재생산 행동의 원형 차원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 될 수 있다. 목적성의 주요특징은 대상의 소유이다.4)슬픔슬픔은 상실감과 계속적인 불행한 우울감에 뒤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편도의 부위가 이에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타적 사랑(Unselfish Love)이것은 무조건적 그리고 헌신적 사랑의 표본으로서, 사랑은 나보다 상대방의 필요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순교자적 사랑이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이란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며,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행복과 복지를 위하는 것이며, 상대방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나를 희생하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아무리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랑은 상대방이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길때 끝난다.(6) 유희적 사랑 (Game-playing Love)사랑이란 하나의 시합이며 즐기는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이다. 여기에서 헌신이니 책임이니 장래에 대한 언약이니 하는 것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게임의 목적은 어떻게 재미있게 놀이를 진행하는가 하는 것뿐이며, 친밀감을 조장하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한 상대와 너무 오래 사귀지 않으며, 너무 정이 들려고 하면 관계를 깨어 버리며, 질투를 가장 유치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같은 사고방식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상처를 주는 사랑의 형태라 할 수 있다.3.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들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고민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나의 가치를 몰라보는 멍청한 타인들에게 있는가? 아니다. 그 주된 원인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4. 완벽한 사랑의 추구(1) 완벽한 상대사랑을 못하는 사람들이 고통 적으로 하는 말은 사랑할 적당한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좀 괜찮게 보이는 사람이면 이미 정해진 상대가 있거나 기혼자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원치 않은 사람들뿐이란다. 누구는 키가 작고, 누구는 학벌이 문제고, 누구는 직장이 나쁘고, 또 누구는 코가 못생겼고 그래서 한 사람도 쓸만한 사람이 없다.흔히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들은 자긍심이 낮은 사람들이며하다.매력적인 여성은 더욱 매력적으로 덜 매력적인 여성은 더욱 매력 없게 보인다.-포르노에 의해 각성이 유발된 정도가 강해졌다. 급류 위에 A라는 위험한 흔들다리와 튼튼한 시멘트 다리 B가 있다. 두다리 끝에는 같은 여성을 있게 하고 남자들로 하여금 건너가게 해보자.-흔들다리를 건널때의 흥분이 신체적 각성 정도를 높여 여성에 대해 훨씬 매력을 느낌.1)운동역시 각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영화 중경 삼림에서 주인공이 운동으로 연인을 잊으려고 하는데----더더욱 사랑하는 이가 생각남.2)사랑에서 실패한 경우의 반응 2가지1. 단념, 포기2. 더더욱 사랑: 모욕감이라는 것이 더더욱 각성을 일으켜서.......-사람들은 각성의 이유을 금방 잊어버림, 그런데 그 효과는 더욱 지속됨.그래서 더욱 사랑하게 됨.3)로미오와 줄리엣 효과----격리시킬수록 더욱 사랑하게됨.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생각, 행동한다고 여김. 때문에 반대 상황에 더욱 반발하게 되고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게됨.ex>남.녀가 서로 사랑하나 부모님의 반대로 둘을 떠어놓으면 일은 더욱 안풀림. 그냥 시간을 두고 지켜봄.--->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경우가 많음.-동반자적 사랑과 호감과는 구별하여야 함.동반자적 사랑 :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인 표현이 많다. 주로 성숙한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여겨짐.4)Sternbery의 8가지 유형의 사랑 분류기준 1. 상대방과의 친밀도-->감정2. 신체적인 매력의 유무-->열정3.관계유지의 노력-->의지친 밀 감열 정의 지내 용1XXX가식적인 사랑, 언어적으로만 표현2OXX우정3XOX육체적인 매력에만 끌림-->광적인 사랑4XXO단지 결혼만 하려는 것 -->공허한 사랑5OOX첫사랑. 낭만적인 사랑.6OXO우애적인 사랑 7XOO눈먼 사랑8OOO완전한 사랑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완벽하게 8가지로 나누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바뀌면서 유지됨.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양태가 달라짐.1)우리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정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