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의 기점1.문제의 제기우리 문학사에서 근대문학의 기점을 어디로부터 어떻게 설정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문학 연구가 시작된 이래 줄기차게 지속되어 온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근대 문학이란 무엇이며 언제 시작되었는가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첫째, 고대·중세·근대 등 시기 구분 없이 문학사 기술은 불가능하다. 즉 문학사 기술의 전제 조건으로는 근대라는 시기 설정은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오늘의 우리 문학과 조선조 이전의 우리 문학을 단절된 것으로 보느냐 혹은 연속된 것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 달리 말하여 그것은 오늘의 우리 문학을 서구 문학의 이식으로 보느냐 혹은 주체적 계승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연구되어 있다. 셋째는 오늘의 우리 문학에 대한 가치 평가 역시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바람직한 오늘의 우리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이 문제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17·18세기 기점론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우리 문학의 연속성에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며, 개화기 기점론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대체로 서구 문학 인식론을 수용하는 사람들이며, 아직도 근대문학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보는 논자들은 근대를 역사적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치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말 할 수 있다.근대문학의 기점 문제가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학 신문사가 주최한 「한국근대문학의 기점」이라는 좌담회(1971)에서부터였다. 이 좌담회에서 최초로 근대문학의 기점을 영·정조로 소급하자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와 근대문학을 민족의 자체 역량에 의한 결과로 보려는 것이며, 백철·임화 등의 문학사 기술방식이 전적으로 서구에 편향함으로써 우리의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오류를 낳은 데 대한 반동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관점은 김윤식·김현 교수의 『한국문학사』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후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이 계속적으로 제기됨으로 해서 근대문학의 기점문제에 대한 논란이 크게 야기된 바 있다.김윤식 교수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는데 그는 이원조·임화·백철 교수등이 주장한 바와 같이 개항에 의해서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외적 자극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했다기보다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수용하여 우리 문학을 발전·변모시켰다고 하였다.그러나 이러한 설득력있는 견해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갑오경장이 위로부터든 밖으로부터든 과연 어느 정도나 근대화가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됨으로써 차츰 근대문학의 기점에 대한 논의는 영·정조 기점설로 기울어지고 있다.2.근대문학의 기점에 대한 몇가지 견해우리가 근대문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기점에 대하여 이제까지 몇가지의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그것들을 다섯 가지 견해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ㄱ 근대를「근세」와「최근」혹은「최근세」로 나누어 전자는 조선의 건국, 후자는 갑오 경장 이후라는 설(조윤제)ㄴ 조선조 후기라는 설(김태준)ㄷ 1860년 개화기 이후라는 설(황패강, 장덕순)ㄹ 갑오경장 이후 즉 신문학과 동일한 개념이라는 설(임화, 이혜정, 백철,김용직, 조연현, 박영희, 김사엽)ㅁ 18세기라는 설(김일근, 김윤식, 김현, 오세영)그 외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크게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해 이렇게 다섯 가지 견해로 정리될 수 있다. 위의 다섯 가지 견해는 두 가지의 큰 갈래로 나누어 질 수 있는데, 갑오경장 기점설과 영·정조 기점설이 그것이다.3. 갑오경장 기점설이 학설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우리 근대문학의 형성에 서구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서구의 영향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의 정도 차이에 따라 다시 이 견해는 두 가지의 입장으로 구분된다. 첫째, 우리의 근대문학은 그 이전의 것과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서구문학의 이식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있는데 임화·백철·박영희·조연현 등이 여기에 속한다.임화는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신문학사의 대상은 물론 조선의 근대문학이다. 무엇이 조선의 근대문학이냐 하면 물론 근대정신을 내용으로 하고 서구문학의 장르를 형식으로 한 조선의 문학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전대의 우리 문학을 무의 상태로 바라보고 외국문학의 수용을 단순히 이식사적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다.백철 교수도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임화의 견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는 『신문학사조사』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물결이 한국문학사에 등장한 것은 직접 근대사조라는 세계역사의 물결이 한국에 밀려들어온 것이 동기가 되었으며 그 근대사조의 변천에 의하여 한국의 신문학이 성장되고 발달되어 왔다고 함으로써 전통단절론과 이식사관을 노정했다.이러한 발상은 우리의 근대화는 곧 서구화를 의미하며 따라서 한국근대문학은 서구의 것을 모범으로 하여 그것을 추종한 문학으로 이해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임화·백철 등은 후대의 문학사가나 연구가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게 되며,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견해는 그 나름대로 충분히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러한 까닭에 많은 문헌연구가들이 그들의 견해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극복하여 비난의 여지를 좁혀준 바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를 김용직 교수의 「한국근대문학의 사적정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문화와 문학이란 새 것 아닌 남의 것을 받아들여 소화하는 과정에서 상호 교류·방사·수용이 가능하며 이를 통하여 부단한 지양과 극복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근대와 근대문학이 타문화의 충격을 입었다는 것은 조금도 수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체적인 입장에서 타문화의 충격을 수용하여 자국의 문학을 발전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용직 교수는 백철·임화 등이 지닌 문제점을 극복했다고 하겠다.하지만 김용직 교수의 이런 주장은 아직도 많은 논거들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그러한 논거들이 마련되지 않는한 갑오경장 기점설은 영·정조 기점설에 잠식될 우려가 있다. 최근들어 영·정조 기점설이 활기를 띠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3. 영·정조 기점설영·정조를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잡는 설은 종래에 가장 보편화되고 일반적인 갑오경장 기점설을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문학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 설령 그것이 외적인 것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내적 질서는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하여 내재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전통의 계승적인 면을 강조하고 이식문화론을 부정한 것은 당연한 논리라고 하겠다. 이러한 입장에선 대표적인 문학연구가로 정병욱ㆍ김윤식ㆍ김현ㆍ조동일ㆍ김명호ㆍ오세영 교수 등을 들 수 있다.김윤식·김현 교수는 『한국문학사』에서 갑오경장 기점설이 지닌 문제점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첫째, 구라파 문화를 완전한 모델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둘째, 이식문학론과 전통단절론은 이론적으로 극복되어야 하며, 셋째, 한국문학은 그 나름의 신성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김윤식·김현 교수의 주장은 김명호의 「근대문학론의 기본쟁점」에서 더욱 심화된다. 그는 이 글에서 백철 교수의 견해를 비판함으로써 영·정조 기점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그는 서구사회와 우리 사회가 별개의 역사 주체임을 망각하고 서구 근대문학은 곧 세계 여러 민족문학의 유일한 모범이며 이를 추종하는 것이 세계문학사의 필연적인 대세라고 판단한 백철 교수의 견해는 비판받아 마땅하며 식민주의사관에서 말하는 한국전통사회의 정체론과 타율적 근대화론에 상통한다는 것이다.조동일 교수는 「한국근대문학 형성과정론 연구사」에서 갑오경장의 기점설을 검토한 후 영·정조에 있어서 문제점을 검토한다. 갑오경장은 개화를 정착시킨 근대적 개혁이었기에 당대의 문학을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설정한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근대화를 밖으로부터의 근대화 또는 위로부터의 근대화로 보고, 문학보다는 주위의 조건을 더욱 중요시한 것이며, 근래에 전개된 광무개혁론을 둘러싼 논쟁은 갑오경장과 더불어 밖으로부터든 위로부터든 어느 정도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는 점에서 그 결함이 노정된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영·정조로 기점을 소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문학사의 시대구분론{1. 시작하며국문학의 전반적인 모습을 이해하자면 국문학사와 국문학 개론이 필요함은 당연한 문제이다. 국문학은 역사적 이해이고 국문학 개론은 체계적 이해이다. 역사적 이해를 하자니 시대구분이 우선 문제되고, 체계적 이해의 틀은 갈래 또는 장르 구분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문학사의 시대구분과 국문학의 갈래 구분은 국문학 연구가 시작된 후 오늘날까지 줄곧 논란거리가 되어 왔으며, 그 결과 상당한 성과도 있었지만 편의상의 처리에 머무르고 만 미흡한 점 또한 적지 않다.국문학사의 시대구분에 대한 깊은 관심은 국문학 연구의 의의와 과제를 자각할 때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날의 전통적인 문학과 근래의 신문학이 어떤 기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서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문제삼자면 시대구분론에서 논의의 단서를 얻어야 한다. 문학이 우리 문화 전체에서 어떤 위치와 구실을 구현했던가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피는데 있어서도 시대구분은 핵심적인 의의를 가진다.특히 왕조의 흥망성쇠, 민족의 분열과 통일, 그리고 주요한 외침과 외세의 영향은 민족문화에 변화나 발전과 위기를 초래했으며, 또한 자생적이고 자율적인 문학 장르들마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원리로써 발생·변화했고 퇴화했으므로, 그것들의 시간적 추이에 따라 국문학 전체의 양상을 고찰해 봄은 필수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문학을 하나의 정신적 유기체로 본다면 역사 속에서 다양하고 의미있는 변모를 고찰할 수 있는데, 어떠한 기준으로 덩어리지어 우리에게 심오한 양상을 보이느냐 하는 물음은 국문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항상 품어야 할 문제이다.그런데 동아시아 대부분의 민족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은 서양의 문화·문학사적인 전통과는 달리 시대구분에 많은 방법론과 이견으로 분분해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조동일 교수는, "서양의 문학사적 전통의 경우 시대구분의 논의를 그리 심각하게 해오지 않았고 그들의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방법론이 인정이 되었고 논의에 편리한 이론적 준거 시대구분을 하는 것은 일견 무의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문학의 실정에 맞게 몇 가지 매듭지을 수 있는 방법론이 있으니, 바로 왕조교체에 따른 시대구분, 문학자체 혹은 사상에 기준을 둔 시대구분, 사회 경제사의 시대구분의 적용 방법이 그것이다. 더욱이 이런 기준들도 다소 하위개념의 세세한 방법론들까지 산파했으니, 가치 함축적 문학 양식을 다루는 이러한 연구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여기에서는 특히 우리 문학사 기술에 있어서 뚜렷한 연구 업적과 지침을 선보이고 있는 조윤제와 조동일의 문학사 시대구분을 비교해 나가겠다. 덧붙이건데 조윤제는 문학적 사상에 의한 방법론을 채택했었고, 조동일 교수는 각 방법론의 절충 및 포괄로써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2.1 조윤제의 문학사 시대구분 및 서술 방법론왕조교체에 의한 시대구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학의 독자성을 옹호하고, 문학 자체의 현상을 집약해서 시대구분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착상이 시대구분의 방법으로 쉽사리 구체화되지 않는다. 기존의 작업을 비판하는 데는 유용한 주장이지만 새로운 시대구분을 마련하는 데 무력하다. 그 이유는 문학 그 자체를 막연히 옹호하다가는 '문학사'를 '문학'과 '사'로 분리시켜, 문학의 역사적 전개를 논할 근거를 상실하고 문학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이해해서, 시대구분을 하는 방법이 막연해지고 만다. 정치사는 배제하더라도 문학을 정신사 또는 사상사의 산물로 보는 관점을 견지해야 시대구분의 방법을 마련 할 수 있는데, 그 정도에까지 이른 성과가 흔하지 않다.독자적인 시대구분의 방법으로 한국문학사를 서술한 대표적인 연구자는 조윤제이다. 조윤제는 문학의 기본양상과 문학사의 전개를 통괄해서 논하기 위해 민족정신을 내세우고, 문학사를 서술하는 기본 시각을 민족사관이라고 일컬었다. 문학을 민족정신의 구현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학작품의 내적 통일성, 동시대 문학의 총체성, 문학사의 연속성을 해명하는 데 핵심적인 의의가 있다. 문학을 이질적인 요소들의 잡다한 집합문에 커다란 의의가 있고, 문학사 서술의 과정 또한 그만큼 중대하다고 여겼다.그런데 조윤제는 내적 대립을 배제해야 총체성이 온전해진다 하고, 상하층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은 국민문학이 나타나야 위축되어 있던 민족정신이 소생한다고 했다. 그러기에 부분들의 대립적 총체가 아닌 추상적 관념을 내세워 문학의 실상과는 어긋난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결의 발전적 전개를 인정하지 않으니, 변화는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생긴다해서 민족사의 주체성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결과에 이르렀다. 문학사 전개의 필연적이거나 보편적인 과정을 생각할 수 없어, 한국 문학사를 민족문학사의 한 모형으로 이해해서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 연구를 하고 공통점을 찾는 거점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그 한계라 하겠다.{2.2 조동일의 문학사 시대구분 및 서술 방법론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에서는 문학사의 시대구분을 위해서 여러 겹의 기준을 제시했다. 언어 선택, 문학갈래 체형성, 문학담당층의 교체, 사회경제구조의 변화가 각기 소중한 의의가 있다하고, 그 상관 관계를 파악하려 했다.언어선택은 구비문학을 하는가 한문학을 하는가 국문 문학을 하는가 하는 것으로 구체화되는 문학 행위의 기본 양상이다. 언어를 선택하고 문학 갈래 체계를 형성하는 주체는 문학 담당층이므로 문학 담당층의 교체를 밝혀 내야 시대 구분의 근거가 입체화되고, 나타난 현상의 원인을 알 수 있다. 문학 담당층의 교체는 사회경제구조가 변하는데 따라서 생겨났다고 보아 그 저변까지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언어, 문학갈래, 문학담당층, 사회경제구조 가운데 우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을 기지수로 삼아 미지수를 풀어 나갔는데, 기존 작업에서 그렇게 하지 않아 무리하게 되었던 데에 비하면 조동일의 방법론은 매우 의가 큰 것이라 할 수 있겠다.그러한 방법에 의한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우선 언어 선택을 보면 구비문학만의 시대가 있다가, 한문학과 국문문학이 공존한 시대를 거쳐, 국문문학의 시대에 이르렀다. 한문학과 국문문학이 공존한 시대를, 다른 로 하급귀족의 지위를 유지하는 신라의 육두품 같은 문학 담당층이 문학활동의 주역으로 등장했으나, 자기들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런 세력이 지배층으로 등장해 문벌귀족이 되면서 고려전기의 문학이 전과 다른 양상을 띠고, 중세 보편주의를 중국과 대등하게 구현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고려 무신란 이후에는 지방의 중소지주 출신인 사대부가 대두해 주관적인 관념론과 구별되는 객관적 관념론의 의식으로 문학을 하면서, 서정시와 교술시를 함께 가꾸고 이상과 현실을 아울러 중요시하고, 중세 보편주의를 독자적으로 구현하는 데 힘썼다. 그래서 중세후기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문학이나 이념이 공허한 권문세족과 대결해 이긴 사대부가 조선왕조를 이룩해 지배자가 되자 내부적인 분열이 불가피하게 일어나, 관인문학과 사림문학의 노선이 갈라지고, 방외인 문학이 생겨났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된 조선후기에는 위로는 사대부의 몰락과 각성으로 인해, 아래로는 민중의 자각과 광대의 활동에 힘입어 새롭게 조성되는 현실 인식과 민족주의 지향의 문학을 시민층이 더욱 풍부하게 하고 흥미롭게 했다. 사대부 문학과 시민문학의 경쟁에서 시민문학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외세 침략에 맞서 민족을 수호하자는 시대적 사명이 널리 자각되면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이 두 번째 시기로 들어섰다."{언어선택구비문학만의 시대한문학과 국문문학이 공존한 시대국문문학의 시대시기구분고대중세 전기중세 후기근대문학갈래영웅서사시서정시서정시+교술시소설(서정시,소설,희곡)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조동일은 문학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적 전개와 사회 요소와 그 변화에 따른 관련양상을 주의깊게 고찰했으며, 문학에의 필연적 변화요인을 설명해 내는데 매우 성공적인 작업을 해내었다. 문자생활에서나 왕조 교체의 양상이 중국과 일본의 것과 사뭇다른 형편에서 우리의 보편성을 추출해 내었을 뿐 아니라 그 착안점이 세계적 보편성을 창출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3. 기존 국문학사류의 시대구분 비교{시기(1)(2)(3958)등이 한 시대구분인데, 왕조교체를 그 기준으로 삼고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2)는 장덕순(한국문학사,1975)의 견해인데, 한문학사를 그 기준으로 했다. 왕조교체에 따른 시대구분을 수정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시대2를 고려 건국부터라고 한데서 차이가 있다. 김준영(1971)의 (3)과 김석하(1975)의 (4)는 좀더 수정을 해서 조선시대의 문학을 임진왜란을 계기로 해서 전후기로 나눈 점이 주목된다.2> 사회경제사의 모델(5)는 이명선(조선문학사,1948)의 경우이다. 세계사는 노예제사회·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의순서로 전개되어 왔으므로 국문학사의 시대구분 또한 이러한 보편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봉건사회의 개념을 일단 인정하더라도 신라 통일이 그 시발점이라고 본 데서 구체적인 난점이 생긴다.3> 국문학 자체(6)은 이병기(국문학전사,1957)의 견해이다. 국문학사의 시대구분은 국문학 자체로서 해야 한다면서, 훈민정음 창제를 새 시대 시작의 결정적인 계기로 본 점에서 아주 특이하다. 그러나, 시대를 다시 나누면서 시대 1에서는 왕조교체를, 시대 2에서는 시가시대와 산문시대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삼았으므로, 표기형태에 의한 시대구분 방법을 수립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으며 국문 고전문학사와 한문 학사를 별개의 것으로 서술하면서 시대구분에서의 관련마저 다루지 않은 데서 한계가 더욱 확대되었다.文學史의 方法論 중 가장 決定的이요 또 중요한 部分은 각 時代의 特徵的 性格을 體系化하는 時代區分의 方法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한 民族의 文學史란 항상 明瞭하지 않은 因果關係를 明瞭하게 하고자 하고, 無關係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關係있는 事實로 바꿔 놓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모든 文學的 事實銀 끝없는 多樣性과 放散性으로써 얽혀 있는 것이다……(중략)…… 卽 時代區分에 있어서도 機械的으로 時代的인 期間이나 王朝의 更秩같은 데 依據하지 않고 文學作品의 內容과 형식상의 주특징을 중요하게 參照하면서 文學史的 劃期性을 敍述하는데 주력을 가한 것이다.다음에 .
{개화기 문학의 배경과 특징1. 시대 개관작가와 작품의 현실적인 토대에 기반을 두면서도 문학이 지닌 상대적 자율성 속에서 제 문학현상들을 파악함으로써 문학사 자체의 합법칙적 발전과정을 규명해야 한다는 원칙 속에서 근대민족문학사를 시기구분해 볼 때, 그 첫째 시기는 개항 이후 세계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기 시작하는 19세기말부터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지는 1910년까지로 민족공통어의 형성과 더불어 근대민족문학이 성립되는 때이다. 그 이전부터 서서히 준비되어오던 근대화의 지향이 봉건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개화 라고 하는 근대사회에의 구체적인 지향으로 틀지워지는 시기인 것이다.(1) 역사·사회적 배경1860년대 이후 일본 제국주의 및 서구 자본주의 열강들이 침탈해오는 가운데 봉건사회는 해체의 위기에 직면했다. 봉건적 지배계급과 농민을 중심으로 한 민중 사이의 모순이 격화되면서 우리나라는 봉건 사회로부터 반식민지 사회로 점차 전환되어갔다. 봉건양반 출신이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뜬 일부 개화파들의 개혁운동인 갑신정변이 1884년에 발생했고, 농민들의 반외세·반봉건투쟁인 동학농민전쟁이 1894년에 일어났다.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계기로 국내 봉건 지배 계급은 드러내놓고 외세와 결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농민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그에 결탁한 봉건지배계급을 반대하는 반외세·반봉건 투쟁을 전면적으로 수행하였다. 동학농민전쟁 후 전국에서 탄압을 피해가며 활동을 벌이고 있던 농민군들은 다시 반일 의병투쟁을 벌여나가기 시작한 것이다.동학농민전쟁 이후 새롭게 전개된 반일 의병투쟁과 더불어 이 시기 우리 민족운동에서 특히 근대 민족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흐름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문화 운동이다. 민중들의 반외세·반봉건 투쟁을 지지하는 양반출신 개화파와 계몽적 지식 청년들은 외세의 침탈이 더욱 심해가고 국내봉건통치계급들이 노골적으로 외세와 손을 잡고 국권을 팔아먹는 심각한 현실에서, 과거와 같이 몇몇 뜻있는 관료들의 개혁운동으로는 더 발표된 창가를 비롯하여 창극·신소설·개화가사·역사전기소설·시사토론소설 등을 들 수 있다. 독립협회에서 발간하던 《독립신문》에 실린 창가에서 비롯된 이들 문학은 1905년 이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발전한다. 이는 정치운동이 반식민지화로 인해 불가능해지자 문화운동을 통해 싸우고자 했던 당시 계몽적 지식인들의 전략적 의도와도 관련을 가지는 것이다. 몇 편의 창가와 창극운동이 전부이던 이전의 문화운동이 1905년을 넘어서면서 신소설을 비롯한 다양하고 풍부한 문학작품의 산출로 이어져 본격적인 근대 민족문학의 면모를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하였다.2. 문학장르의 개관(1) 창가개화기에 유행했던 가사로 과거의 3.4조나 4.4조의 가사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거기에 찬송가나 민요의 형식을 받아들였다. 개화 계몽 사상, 애국 독립 정신의 고취, 정치 및 사회 비판을 그 주요 내용으로 했으며 근대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용우의 [애국가]와 이중원의 [동심가] 등이 대표적이다.(2) 신체시개화기에 쓰여진 새로운 시가 형태로 신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古詩歌나 개화 가사, 창가의 정형적 율격에서 벗어나 시문체(時文體 - 새 시대와 새 사회의 분위기를 수용한 문체)로 문명 개화를 노래했다. 따라서 그 형태상으로도 정형률과 반복적 리듬을 지양하고 구어체를 사용했으며, 개화 사상, 신교육 고취, 남녀 평등 사상, 자주 독립 등 계몽적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창가와 마찬가지로 근대시로 가는 과도기적 형태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데, 최남선의 [海에게서 소년에게]가 그 첫 작품이다.(3) 신소설개화기에 성행했던 계몽문학의 하나로 고대 소설과 현대 소설을 잇는 과도기적 소설 양식이지만 작품 구조상으로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으므로 고대 소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습 타파, 자주 독립, 신교육 권장, 자유 연애 등이 주제로 나타나지만 인물의 정형성, 우연성의 남발, 권선징악적 요소 등은 신소설의 한계점으로 지적된다.대표작으로는 이인직의 [을 중시하는 문학의 효용성을 강조한 중세 문학관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비평은 본격적인 근대 문학비평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1910년대 후반에야 가능해지는 근대 비평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3, 결어멀리 상고시대의 문학에서부터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학사를 통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때 개화기 문학의 발생은 중요한 문학사적 전환을 이룬다.다시 말해서, 조선시대의 왕권 사회제도가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을 타고 서서히 붕괴되어 감으로써 기존의 문학 질서도 새 시대의 의식구조에 발맞추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무학적 변이현상은 한국 문학사상 이른바 '개화기 문학'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문학기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개화기 문학은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보아 두 개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대의 조선왕조 문학의 소멸과 근대문학의 태동이란 문학사의 과도적인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여 생성한 문학이란 점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로, 밖으로부터 밀어닥치는 외세에 대응하여 민족 자주의 정신 확립이 긴요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수용하면서 전근대적인 사회 체제를 혁신시켜 가야만 했던 과제를 부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의 문학이란 점이 그것이다. 개화기 문학은 우리 근대문학의 탄생에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으며, 여기에 그 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참고 자료】김재용 외, , 한길사, 1993.尹柄魯, , 명문당, 1991.{http://www.dankook.ac.kr/~korean/sub-3/hyundae/1880/list.html{http://www.naramal.com/01munhak/mun_detail.htm{http://my.dreamwiz.com/itrue{http://dongseo.kaywon.ac.kr/f_main.htm{http://user.chollian.net/%7Efly12/pk.htm【부 록】- 개화기 문학 작품애국가대조선국 인민들아이사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구완서를 만나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워싱턴에서 공부하던 옥련은 극적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어 구완서와 약혼한다. 한편 평양에서는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의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꿈만 같이 기뻐한다.이인직의 줄거리완고한 홍참의 집에 이 판서의 딸이 백돌에게 시집와 살면서 후실 시어머니 김씨와 시누이의 구박 때문에 눈물짓는다. 그나마 위로를 주던 남편 백돌이 개화에의 의지로써 장인의 도움을 입어 일본으로 유학간 뒤 시어머니는 혼자 남은 며느리를 간부(姦婦)로 오해하여 치악산으로 내쫓는다. 거기에서 이씨 부인은 최지운·장 포수의 겁탈위기를 벗어나고 마침내 승려가 되지만 그 또한 미모로 인하여 파문을 당하자 우물에 빠져 자살을 기도한다. 한편 그의 몸종 검홍이는 복수를 계획하고 귀신 장난을 벌여 홍잠의 집안을 쑥밭으로 만들어 만드는 데에서 상편이 끝난다. 하편에서는 홍참의는 집을 나와 방랑하다가 우연히 며느리임을 모른 채 여승 하나를 구출하게 되고 집에 돌아와 김씨 부인을 내쫑는다. 목숨을 건진 이씨 부인을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고 유학을 마친 백돌은 처가 죽은 줄 알고 장인의 중매로 혼인하게 되나 신부가 이씨 부인임을 알고 기뻐하고 이후 모두 화목하게 살게 된다.이인직의 {작품읽기이 작품은 1908년에 출판되었으며, 표지에‘신소설 은세계'라 하고 상권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하권은 출간되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현재는 미완성 상태의 소설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표지는 신연극(新演劇)이라는 글자들의 집자로 이루어져 있다. 즉'新 演 劇'이라는 글자들의 나열로 표지 글씨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08년 11월 중순부터 당시 신극 극장으로 설립된 원각사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었다.작품 제목인 '은세계'는 '은처럼 하얀 세상'이라는 뜻으로 눈덮인 세상을 이야기한다. 수록 부분은 이 작품의 시작 부분으로 바로 이러한 눈덮인 세상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푸른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그 눈이 쌓여 갔다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영국 사람인 스미드 박사가 영창을 구해서 본국에 데리고 가서 공부시킨다. 한편, 이시종은 민란이 일어난 후 초산 지방으로 가 봤으나 김승지 일가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정임의 부모는 정임의 나이 열다섯이 되었을 때 다른 혼처(婚處)를 정해 결혼시키려 한다. 그러나 정임은 영창과 결혼키로 약속한 몸으로 두 남자를 섬길 수 없다고 버틴다. 계속되는 부모의 강요에 마침내 정임은 집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 여자 대학에 입학, 음악을 전공하여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그런데 평소 정임에게 마음을 두었던 강한영(姜漢永)이 유학생으로 가장하고 정임에게 접근해서 어느 날 밤 우에노 공원(上野公園)에서 정임을 칼로 찌르고 도주한다. 그 때 공교롭게도 영국에서 귀국하여 이 공원을 지나던 영창이 그녀를 구하나, 살인 미수범으로 재판을 받는다. 결과는 무죄로 석방되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신식(新式)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 여행차 만주에 갔다가 어느 청국인(淸國人)에게 체포되어 어느 집에 끌려갔는데 거기서 우연히도 죽은 줄만 알았던 영창의 부모를 만나게 되어 행복하게 산다.{신채호의 이 작품의 원제목은 「대동(大東) 사천재(四千載) 제일대위인(第一大偉人) 을지문덕」이다. 이 작품은 역사연구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한민족이 가장 강성했던 고대사를 각별히 중시했던 신채호가 민족 최대의 영웅으로 간주했던 을지문덕의 생애를 기술한 작품이다. 서론에서 신채호는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국가와 을지문덕과 같은 뛰어난 위인이 우리 역사상에 있었음을 강조하고 "과거의 영웅을 그려 미래의 영웅을 " 기대코자 이 작품을 썼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당시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적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의 전투적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요동과 비사성의 전투에서 고구려가 패퇴하는 수나라 군을 추격하여 중국땅을 한국 것으로 만들 기회를 놓친 것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지만, 서사적인 이라.
문학사란 무엇인가?문학사의 정의는 국어사전에 다음 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문학―사(文學史)[―싸][명사]1.문학의 역사.2.문학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문학사의 사전적인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문학사는 역사라는 요소와의 상보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사는 문학과 역사를 동시에 포용해야 한다. 이것은 문학사가 창조적이며 예외적인 작가의 상상적 창조력과 과거의 집적물로서의 작품을 다같이 진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문학사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1. 문학사란 문학의 역사이다.문학사가 문학적인가 또는 역사적인가 하는 문제는 문학사 연구에서 한 번은 봉착되기 마련이다.문학사가 문학적 이라는 말에서 영원 불변적 가치가 있는 이라는 의미를 지향하고 역사적이라는 말에서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면 불변과 변화라는 두 의미의 상극을 한데 묶어 문학사를 기술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난점은 역사가 과거의 사실을 시간적 계열에서 조망하고 이를 그 영향 관계에 따라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반면, 문학이 언어와 문자에 의한 인생의 예술적 표현으로 감동과 향유라는 주관적 차원을 배제할 수 없다는 서로 상반된 특성에서도 나타난다.역사는 주관적 차원을 배제하고, 문학은 주관적 차원을 요구한다. 따라서 균형 있는 문학사 기술을 위하여 문학사는 문학이 지닌 비합리적, 심리적, 어구적, 미학적 측면과 역사가 지닌 이성적, 합리적, 사실적, 논리적 측면의 이질성을 동시에 포용해야만 한다.문학사는 역사적 측면이 지니는 실증성과 문학적 측면이 지니는 미학성을 동시에 수용함으로써 문학의 내적, 외적 측면을 모두 포괄한 종합적 문학사 기술을 가능하게 한다.문학과 역사의 복합체로서 문학사는 상호 긴밀한 연계에 의한 유기적 사건·사조들의 형상적 전개가 아니라, 문학사가의 측정한 시각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편 타당한 의미를 부여받는 차원에서 기술된 하나의 문학적 총체라고 할 수 있다.2. 문학사는 문학 외적 사실에 자율성과 의존성을 동시에 공유한다.문학사가 문학 외적 사실에 대해 자율성과 의존성을 동시에 공유한다는 사실은 문학사가 일반사로부터 유지하는 거리 문제로 집약할 수 있다. 즉 문학사는 문학 내적 사실들의 상호관계, 문학 내적 사실들과 외적 사실들의 상호관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시간적 변화 관계를 고려하면서 기술된다. 따라서 문학사는 일반사가 사회 전반을 다루는 데 반해 문학을 중심으로 한 특수 영역만을 한정하여 다루게 됨을 의미한다.먼저 문학 내적 사실들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한 문학사는 영역론·장르론·율격론·미의식론·문체론·소재론·서사론·구성론·사상론 등으로 나타나며, 내적·외적 사실들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한 문학사는 주로 배경론이나 전통론· 민족문학론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시간적 변화 관계를 중심으로 한 문학사는 시대구분론·시대명명론 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문학사가는 문학 내적 사실, 문학 외적 사실, 그리고 시간을 세 축으로 하여 다양한 문학사를 기술하게 된다. 그러나 문학사가 시간을 기본 축으로 문학적 사실을 꾀는 작업이라고 할 때, 실제 문학사 기술에서 문학사가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문학 내적 사실과 외적 사실들이 맺는 상호관계에 대한 고려 여부이다.문학사가는 사상적 요소(종교적·윤리적·정치적)를 고찰함으로써 사상가가 되어야 하며, 일반 사회생활상(관습·풍속·가치·표준 등 한 시대, 한 장소의 사람들의 생활양식 등)을 고찰함으로써 민속학자, 경제학자가 되는 것이다. 또 정치, 사회적 제도와 전통·신화, 즉 정신적 신념은 물론 문학사의 원천 중 가장 중요한 작가의 전기까지 고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문학사가는 문학 내적 사실은 물론 외적 사실을 수용, 그 상호관계에 주목하여 보다 폭넓은 문학사 기술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3. 문학사는 특수성에 보편성을 압축시킨다.문학사는 현재 의치에서 과거 문학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다. 이때 역사의식은 현재에 대한 강한 의식에서 과거 사실을 조망할 때 생겨날 수 있다. 문학사 기술에서 현재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인 역사적 재구성은 인간의 의식 구조상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과거를 현재 위치로부터 거꾸로 꿰뚫어 보자는 이른바 투시주의가 등장하였다. 즉 문학사는 공시적·통시적 측면에서 동시에 쳬계적으로 서술되어야 하며, 이때 문학사가 입장에서의 사관과 문학이론가 입장에서의 문학관이라는 두 개의 입장이 정립되는 데서부터 문학사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