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18회 정기연주회인 ‘아리랑’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아리랑 모음곡 형식의 공연이었다. 총 1개의 협주곡(대금협주곡 “새로움”)과 3개의 합주곡으로 구성되었다.이번 공연을 위해서 우리 단원들은 보름 이상을 연습하였으며 처음 접해보는 두 곡 외에는 꽤 대중적이며 국악전공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곡들이라 연습하는데도 큰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잘 해낸 듯 했다. 우리 단은 최근에 전체적인 음고를 예전보다 낮추려는 노력을 했었는데, (즉, 대금 5관청을 Eb 440정도에 맞추려고 했었다.) 세 번째 협주곡의 협주자의 악기음정 때문에 별 수 없이 예전의 Eb 445 이상의 음정으로 올라가서 이번 공연의 전체적인 튜닝을 높게 했던 것이다.올해의 연주 일정이 작년에 비해 상당히 빽빽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정기연주회 할 때마다 예전의 의욕과 활기가 넘치는 때에 비해 지루하고 따분한 감이 없지 않다. 혹, 필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 한곡 한곡씩 분석을 해보겠다.아리랑 접속곡이곡은 그 유명하신 박범훈 선생이 작곡하신 곡임에도 불구하고 국악전공자들에게 있어 관현악이나 실내악곡의 입문곡 정도로 생각되어져 왔다. 이름에서와 같이 지역별 아리랑을 이어서 만든 곡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긴아리랑으로 시작해서 밀양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으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아주 밋밋한 흐름으로 보아 박선생님이 초기에 쓰신 듯 하다. 최근에 작곡되는 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악기들의 화려한 울림이나 관현악기들의 부드럽고 화사한 멜로디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반복이 많아 지루한 감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다이내믹과 악보상 악상기호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었다. 곡 구성은 처음과 끝이 개인적으로 꽤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곡의 하이라이트이자 종곡인 진도아리랑은 세마치의 흥겨운 남도가락에 메기고 받는 부분이 절묘하다.관현악곡 “아리랑”작곡자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분이 아닌 이북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새롭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필자에게 상당히 흥미로웠던 곡이 아닐 수 없었다. 예전에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에서 했었을때 평이 좋았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연습 때 합주를 해보고 나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떠한지 또, 양악 오케스트라의 원곡의 느낌이 어떠했을지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타악기의 심벌계열 악기나 가야금의 쓸어내리는 주법을 사용하여 화려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곡의 느낌이 자신의 가슴에 와 닿았을 때야말로 그 곡을 자신의 감정대로 표현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결국 합주도 훌륭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음악에 심취되고 매료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마찬가지로 관객도 그 음악에 빠져들고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연주자와의 동질감이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을 감상하면 왜 ‘아리랑’이 외국인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되었는지 알 수 있을 법하다.대금협주곡 “새로움”이 곡은 연주자들 자체도 곡의 흐름을 해석하기가 상당히 난해한 곡이었다. Eb조에서 Ab,Db조로 변조되는데, 조와 상관없이 출현음 자체가 전통음악과는 또 다른 음계로 이루어져 있어서 분위기도 묘하며 애매한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대금의 임재원 선생이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음악 자체가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연주당일에 그렇게 큰 호응은 얻지 못했다. 리듬형태는 전통적 장단을 초월하여 현대적 감각의 새로운 리듬을 주로 사용하였고 3악장에 가서는 사물과 함께 엇모리와 자진모리를 주고 받는 형태의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곡은 듣고 즐기는 곡이라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대금의 연주 어법과는 다른 현대음악에서의 대금의 확장 가능성 및 서양음악적 기법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곡이라고 본다. 고난도의 기교를 요하는 곡이라는 것은 듣고 알수 있었으나 우리 정서나 가슴에 와닿는 곡은 아니어서 뭔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남도아리랑이 곡은 원래 오케스트라 아시아(한·중·일 민족악단)를 위한 곡으로 이번 곡은 국악관현악편성에 맞게 재구성한 곡이다. 전주시립국악단에서도 그 전에 몇 번 연주했었던 곡이라 꽤 어려운 곡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괜찮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원래 서양음악을 전공하신 백대웅 선생이라 화성 진행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모듬북을 비롯한 타악기들의 화려한 대목이 많고 전통 장단이 아닌 빠른 템포의 무속리듬이나 째즈풍의 리듬으로 잘만 연주하면 정말 멋지고 관중들의 갈채를 받기에 충분한 곡이다. 하지만 이번 연주 땐 예전에 이상규 객원지휘 때보다 좀더 다이내믹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시작부분과 끝부분의 느린 템포에서 다이내믹을 극도로 살려야 했었는데 조금 미흡했었고 중간의 6박자의 빠른부분에서는 해금과 소금이 액섹트나 흘려내리는(퇴성)음을 적절히 표현을 못했었다고 볼 수 있겠다.이번 공연은 타이틀에 맞게 우리가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아리랑’이라는 우리 음악을 현재 많이 연주되어지는 국악관현악 형태의 곡으로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에도 적절했으며 중간에 대금협주곡과 같은 구성도 무난했다고 본다.
이번 공연은 저번에 이상규 선생님이 객원지휘 한 이래 두 번째로 전주시립국악단의 객원지휘인 셈이다. 공연을 위한 연습기간은 일주일 정도 였으며 단원들 모두에게 다소 부담되는 공연이었다. 왜냐하면 전곡들이 모두 시립에서는 처음 하는 곡들이었으며 또, 곡 자체가 난해한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추상 이나 남도아리랑 과 같은 새로운 곡들은 첫 연습날 초견하기에는 무척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일주일간 우리는 외부에 창피하지 않기위해서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공연 당일 날, 본 공연이 시작하기 전 객석은 우리 기대보다 훨씬 비어있었다. 보통 객원지휘 연주회는 관객들이 더 많이 와야 정상이겠지만, 의외로 우리 보통 정기연주회 때의 분위기였다. 날씨가 갑자기 너무 추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한곡 한곡 평가를 해보자.1. 합주곡 1번우리 국악관현악의 초기 작품인 김희조의 1번 합주곡이다. 시나위의 계면조를 주조로 하기 때문에 전통음악의 맛이 곳곳에 스며있다. 이곡은 그나마 연습 때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서 첫 막을 여는 곡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신명나는 엇모리 뒤에 다시 느린 굿거리의 처음 주제선율과 함께 조용히 끝맺는다.2. 17현 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꼬마각시꼬마각시라는 어원이 꼭두각시에서 나온 것일까?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꼬마각시라는 말은 아마 꼬마신랑이 꼭두각시 춤을 추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박범훈의 새산조 와 얼핏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법적인 면에서 전통 산조 주법을 그대로 쓰면서 현대적인 양손 주법을 썼으며, 따라서 선율의 스타일 또한 비슷했다.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마지막 휘몰이에서는 전통 꼭두각시 음악을 주제로 한 우아하면서도 코믹스러운 합주가 일품이었다.3. 남도아리랑원곡이 국악관현악을 위한 곡이 아니라 한중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라 곡의 참 맛을 내기가 더욱 난해했다. 작곡자가 원래 서양음악을 전공한 만큼 반음 화성 진행이 많아서 음정을 정확이 지키기도 어려웠고, 잘 쓰지 않는 6박자나 10박의 무속리듬을 주로 쓰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신경을 바짝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제대로만 연주하면 정말 멋진 곡인데, 긴장탓인지 우리는 연습때보다 더 맞지 않았었다. 특히 파트솔로 부분이나 시작과 끝의 크레센도, 디크레센도가 연습때보다 훨씬 맞지 않아서 지휘자께도 죄송하고 아쉽다.4. 추상예전에 이곡을 듣고 감상만 했던 시절에는 추상 이라는 곡의 뜻도 잘 모르고 있었다. 추상 의 사전적인 뜻만해도 10가지 안팎이다. 이번 연습을 통하여 지휘자께서 추상, 즉 가을 생각의 의미 대로 가을하늘과 여유를 생각하면서 곡에 임하라는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곡이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단원들 모두들 이곡을 조금은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관중들도 가장 기대를 했을만한 곡이었을 것이다. 이애라씨는 이곡을 초연했던 기량있는 주자라고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은 리허설까지 딱 두 번 맞춰보았지만 역시 대단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역시 음악인들은 자기 전공의 실력이 바로 자존심이요 가장 내세울만한 우선순위1번 항목일 것이다. 김애라씨의 해금 소리에 우리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좀더 긴장하고 연습해서 실수를 연발하지 않도록 우리 개개인은 노력했다. 실제 공연을 연습때와 비교하자면 연습때보다 약간 모자란 듯하다. 협연자인 김애라씨도 솔로때 손이 조금 꼬였다는 것을 듣고 알수 있었다. 이경섭 특유의 반음계적 화성진행이나 화려한 리듬의 이곡은 관객을 다소 흥분하고 열광케 했다.
1.서론2.국악은 과연 살아 남을 것인가?가.이제 국악은 없다나.전통문화예술의 진흥은 국가의 책무다.민족음악의 지평을 향하여3.국악의 장래성과 전망1.서 론작년 (古)김철진 교수님 방을 정리하면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제목이 바로 눈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를 통하여 정독하게 되었다. 현재 국악인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최근에 출판된 책이 아니라 다소 현 실정과는 맞지 않는 것도 있겠으나 크게 오차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해방 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국악의 발전 현황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으므로, 94년에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만큼 국악인들의 필독서라고 추천한다. 책이 글 모음집 형식이라 체계있게 정리가 되지 않았으므로 이 감상문의 목차는 필자 임의로 정하였다.최근 국악에 관한 대중매체나 공연들이 많아짐으로 인해 그에 관한 평론들도 천차만별이다. 기자나 일반 평론가, 교수, 강사, 교사 등 많은 계층들이 하는 평들도 각각 다르다. 필자 눈으로 보는 국악계의 현 상황은 다른 여러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과도기적으로, 내부비리, 대중화의 어려움 등 여러 문제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제 국악은 없다'에서는 현 국악계 상황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실태를 여러 글을 통해 제시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 방안에 관해서는 미약하게나마 제시되고 있다.제목에서의 '국악은 없다.'라는 뜻은 국악을 말살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국악을 국악 양악의 이분법적이 아닌, 그리고, '양악을 가미한 국악'이나 '국악을 가미한 양악'이 아닌, 우리 식의 음악으로 이해시켜야 하며 국악이란 말을 소멸되며 그 자체가 바로 우리의 음악으로 새로 탄생시키기 위함이라 할 것이다.2.국악은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가.이제 국악은 없다저자 '김용만'은 먼저 초 중 고의 교육과정에 있는 음악에 대해서 비판한다. 일제 치하에서 억제되고 탄압받던 국악을 70년 전까지 전혀 발전이 없이 쇠퇴시켰으며, 최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교과서의 음악들이 거의 양된 국악'이라는 말을 이와 비교해 보면 재삼 강조하는 이유를 짐작 할 수 있는데, 문제가 '우리'라는데 있는 만큼 우리의 음악에 있어서는 국악의 가치에 대해서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현대화라는 명제를 내세웠다면 국악은 더 이상 국악이 아니라 '우리 음악'으로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우리 역사에서 비교적 음악활동이 꽤 활발했던 이조 초기, 당시의 음악은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었다.지난 100년간 우리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 심한 변화를 겪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들, 예를 들면 잘린 국토, 인종, 언어, 문자, 음식 등을 남겨 놓고는 적어도 외면상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는 우리 스스로의 필요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밀리면서 되지못하여 맞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진행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를 체계적으로 받아들일 수 가 없었고, 그 결과가 앞에서의 화합되지 못한 두 이질 문화의 혼합공론이다. 어쨌든 우리는 역사전의 우리와 전혀 다르다.우리는 당시의 생활과 불가분리했던 음악는 어떻게 관계지을 수 있을까? 그 음악이 우리 생활속으로 불가분리하게 참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며 그런 국악은 고전음악으로서, 당시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출발할 수 밖에 없다.우리가 또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은 소위 양악이다. 각급 학교에서 배우는 음악의 체계는 대부분이 양악의 체계로 국악과 찬송가와 거의 모든 대중가요, 거의 모든 동요가 양악의 체계를 따른 것 들이다. 말하자면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어와 있는 것은 최소한 국악이 아닌 음악인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활에 수입된 문물이 파고든만큼 수입된 음악이 파고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수입된 문물이 아직 우리생활을 완전히 개조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입된 음악도 그러하다. 재래음악이 재래문화도 그렇겠지만, 발을 디딜 만큼은 여유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변화에도 남아있는 여유이니 만큼 변을 살펴보면 '문화'라는 말이 범람하는 만큼 무화국가인양 보이는 면도 있으나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일반인은 물론 학자나 문화예술인도 우리나라가 어떠한 문화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별다른 실천적 모색을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필자는 우리 민족이 문화민족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한국은 외래문화, 그것도 나쁜 저질 문화의 범람으로 문화의 개념에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혼란과 혼미는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헌법에서 밝힌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은 바로 이러한 혼란속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맥을 찾고 바람직한 민족문화를 이루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통이나 민족문화 지상주의를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문화는 세계속에 있음을 알고, 진 선 미가 동일 지평에서 상호소통되는 보편적 가치 아래서 자기 성찰을 통하여 발전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문화 영역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현재 현저히 낙후돼 있는 전통문화예술의 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것이다.우리는 성과있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향상은 그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높은 경제성장과 정치성장을 이루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은 어느 것의 전후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 경제 문화는 항상 동일지평에서 동시적으로 발전되어야 진정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으며 어느 하나의 불균형적인 발전은 그에 따는 모순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점이다.문화부의 신설은 정부차원의 문화지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상징으로 앞으로는 문화부를 통하여 정부의 새로운 문화창달을 위한 실천적인 뒷받침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화국가의 실현이 정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국민 스스로가 문화적으로 교양되고 승화되어 국민문화를 성숙시켜야 한다. 정부는 문화육성에 있어 간섭과 통제의 역할아적인 그리고 세계적인 시각으로, 우리의 문화이면서 동시에 세계속의 문화로써 전통음악문화를 재인식하자.다.민족음악의 지평을 향하여근래에 와서 통일에 관한 뜨거운 논의와 함께 민족 음악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지고 있다. 사실 이 둘 사이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통일이 안된 상태에서는 진정한 민족음악이 이룩될 수 없고 민족 음악, 나아가서 민족 문화의 수립없이 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이 민족음악의 기본은 바로 민요가 된다. 그러나 민족 음악의 수립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민족음악의 수립에 큰 장애가 되는 많은 요소들이 우리 음악계의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순수주의적인 태도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라 하겠는데 이러한 순수 음악적 사고 방식은 음악인들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고 음악의 미적인 측면에만 전념하도록 만들어서, 한 나라의 음악은 그 나라 문화의 소산이요, 그문화는 바로 그 민족 삶의 한 부분이라면 우리 시대 음악인은 나라 없는 이방인의 처지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민족의 삶과 동떨어진 음악은 도대체 공감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 이전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삶에 대한 의식이 앞서야 하고 그러한 의식속에서 음악의 구체적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때야 비로소 민족의 삶에 기여하고 나아가 통일에도 도움이 되는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 되는 것이다. 우리민요연구회의 필요성,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3.국악의 전망과 최근 경황현재 한국 음악계에서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은 그야말로 미미하기 짝이 없다. 특히 10대 20대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외면당하고 있다. 서양의 클래식과 팝뮤직 그리고 국내의 대중가요산업에 밀려 국악은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몇몇 창작국악을 제외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경로당음악'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왜 그런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음악 즉 국악의 주요 내용은 조의국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농본農本사회가 아니고 자본주의사회라는 것이다. 유교국가가 아니라는 것은 한문 투의 유교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고, 농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은 계절에 따른 농사일이 온 국민의 주된 생활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국가라는 것은 극소수의 특권계층이 전 국민의 사고와 정서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라는 것이고, 현대 자본주의사회라는 것은 소비문화가 상품생산과정에 매우 깊게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는 것을 뜻한다.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그나마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국악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전통음악의 보존이요, 다른 하나는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주류는 보존의 측면이 강하고, 창조적 계승의 측면은 아주 미약하다. 보존(특히 성악계통의 음악 즉 가곡 가사 시조 민요 판소리 등등)이란 곧 과거의 사고와 정서를 그대로 오늘에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보존은 나름대로의 존재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든 창조적 계승의 계기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보존이 보존으로만 그친다면 그것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과 다를 바 없으며, 이는 소중한 무형문화재로서 계속 잘 보관만 하면 된다. 말하자면 유물 자체가 대중의 소비상품으로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매체를 통해 이를 그냥 소비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니 자유민주주의와 서구적 가치관에 길들여지고 도시적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현대의 젊은 문화소비자들이 그것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 수 없다.크고 작은 국악공연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공연은 대부분 유료. 보통 일반 관람객의 티켓 값은 8천원 선이고, 어린이, 군경 등의 할인이 적용된 티켓 값은 4천원 정도다. 특별히 기획되거나 인기 있는 연주자의 경우는 2, 3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