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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무역론] 아세안과 한국
    서론1. 문제제기ASEAN은 정치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ASEAN은 미국, 일본, EU에 이어 한국의 제 4위 교역상대로서 위치를 유지하고 있고 해외투자 부문에서 또한 미국에 이어 제 2위 투자 대상 지역으로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ASEAN은 한국의 제 1위 해외 건설 수주 지역으로 부상중이다. 이러한 국제정세와 ASEAN의 성립 배경과 활동을 살펴보고 아세안 자유무역, 즉 AFTA를 중심으로 한국과의 자유무역 가능성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2. ASEAN의 개요(1) 아세안의 성립현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캄보디아,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의 10개국을 회원으로 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은 과거 미?소 양극체제의 국제정치무대에 적응하기 위한 약소국의 정치적 결함체로서 지난 67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의 다섯 나라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새로운 국제질서에 따라 경제적 결합체로서의 전환을 시도하여 84년 브루나이, 95년에 사회주의국가인 베트남을, 97년 라오스, 미얀마와, 99년 캄보디아의 회원 가입을 승인함으로서 동남아 전역의 경제 통합체로서의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1967년 방콕선언이후 베트남의 공산화, 미국의 아시아로부터의 후퇴, 그리고 중국과 소련의 각축 등 동남아의 새로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76년과 1977년 각각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정치적 중립과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국제정치 무대에 등장하였다. 또한, 1975년 인도차이나의 공산화로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된 동남아는, 이후 1976년부터 자체정비와 지역 내 결속을 다짐하였으며, 그 결과 'ASEAN의 강화' 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ASEAN은 1967년 창설 후 인도차이나 공산화 이전까지는 별다른 움직임도AN 정상회담. 지역의 평화와 안정, 경제?사회 발전, 그리고 지역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ASEAN 협정(ASEAN Concord) 및 동남아 우호협력조약 서명. ASEAN 사무국 설립에 동의▲ 1977. 8. 4 - 5 (쿠알라룸푸르)-제2차 ASEAN 정상회담. ASEAN 탄생 10주년 기념, 발리선언(1976) 이행 재확인▲ 1984. 1. 7. (자카르타)-브루나이 가입 승인▲ 1987. 12. 14 - 15 (마닐라)-제3차 ASEAN 정상회담. 마닐라 선언(Manila Declaration) 서명. ASEAN Plan for Action 설립. 동남아 우호협력조약 수정 : 파푸아 뉴기니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본 조약 가입을 가능케 하기 위함.▲ 1992. 1. (싱가포르)-제4차 ASEAN 정상회담. 싱가포르 선언(Singapore Declaration of 1992) 서명. ASEAN 경제협력을 위한 기본협정(FAEAEC) 서명. AFTA 창설을 위한 공동효과특혜관세(CEPT) 협정 서명▲ 1992. 7. 21 - 22 (마닐라)-라오스 Phoun Sipraseuth 외상과 베트남 Nguyen Manh Cam 외상이 객원으로 제25차 아세안 각료회의(AMN)에 참석. 동남아 우호협력조약에 대한 베트남과 라오스의 가입 수용▲ 1994. 10. 17.-베트남, ASEAN 가입 신청서 제출▲1995. 7. 28. (반다르 스리 버가완)-베트남, ASEAN의 일곱 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캄보디아, 옵저버 자격 획득. 캄보디아 (Ung Huot 외상)?라오스(Somsavat Lengsavad 외상) 옵저버로 제 28차 AMN 참석. 미얀 마(Ohn Gyaw 외상) 객원 자격으로 제28차 AMN 참석▲ 1995. 12. 14 - 15 (방콕)-제5차 ASEAN 정상회담. ASEAN 7개국 및 非회원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수뇌부 참 석. 10개국 정상, 동남아 비핵지대 협약(Southeast Asia Nuclear Weapon-Free Zone 결성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던 것이다.결론적으로 AFTA는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ASEAN 자체의 시장규모가 점차로 확대되고 있고 AFTA를 통해 역내국가와 역외국가에 차등관세를 적용하게 되므로, 총 4억 8,600만 명의 인구가 1995년의 경우 5,700억 달러 규모의 생산성을 지닌 아세안이 포함된 동남아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선진국들은 향후 이 지역에 생산 및 판매거점의 확보를 위한 직접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한편, 아시아 전체로 볼 때 NAFTA가 역외 아시아 국가들에게 개방적이지 못하고 EU 또한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에 폐쇄적이 된다면, 결론적으로 ASEAN이 포함되는 아시아 보호무역지대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본을 주축으로 한 ANIEs가 그들의 해외투자 대상으로 ASEAN을 보다 더 집중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2. AFTA의 협정내용ASEAN은 이미 1977년부터 특혜관세제도를 실시해 왔으나 각 회원국들이 실제적인 시장개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제도는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어 왔다. 따라서 ASEAN 정상들은 보다 실질적인 역내 경제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향후 15년 이내에 AFTA를 창설하기로 합의했는데, 2008년까지 ASEAN 역내관세율을 0∼5%로 인하하고 동시에 각 회원국의 비관세장벽도 점차로 철폐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AFTA의 주요협정내용은 다음과 같다.(1) 대상분야 : 관세인하 및 비관세 장벽 철폐(2) 대상품목 : 공산품만을 대상(자본재 및 농산물 가공품 포함)(3) 관세인하방법 : 원칙 - 협정시행후 15년간(2007년까지) 공산품 전체관세율 0∼5%로 인하하고 협정시행 후 5년에서 8년 이내에 (1997년에서 2000년까지) 관세를 20%로 인하- 실시방법은 각회원국이 결정하여 협정실시 때 발표- 5년에서 8년이내에 인하비율은 균등인하 권장- 매년 인하율을 최저 5%로 권장- 각회원국은 민감품목을 시아는 2012년, 필리 핀은 2016년까지 관세철폐 완료계획, 베트남 등 후발 4개국은 5년간 유예할 듯ⅱ) 일본-2002년 11월 일-아세안과 포괄적 경제협력안 체결.-중국이 아세안 전체와 FTA를 추진했던 것과는 달리 아세안 회원국과 개별적으 로 양자간 FTA를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음-9월초 개최된 아세안각료회담(프놈펜)에서 일본과 ASEAN은 FTA 체결 교섭을 2005년에 시작하기로 합의-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선발 6개국과는 2012년까지, 베트남 등 후발 4개국과는 2017년까지 협상완료 후 2020년 자유무역지대완성 로드멥 제시중국 및 일본의 ASEAN FTA 추진 일정구 분협상 완료통합 완료ASEAN 선발6국후발 4국*선발 6국후발 4국AFTA1992199920102015중국-ASEAN2*************15일본-ASEAN*************020* 각 자료 종합, 추진 일정에 따라 일정이 변경될 수 있음** 후발 4개국은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ⅲ) EU-금년 4월 양 블록간 무역 및 투자 확대를 위한 기본 협정인 TREATI(Trade-Regional EU-Asean Trade Initiative)를 체결하기로 합의-TREATI는 향후 아세안-EU FTA를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8월 싱가 포르에서 개최되는 차기 고위급경제관료 회의까지 실행계획을 세우고 내년까지 는 TREATI 체결을 위한 작업을 개시하기로 합의ⅳ)인 도-2002년 11월 인도-아세안 정상회담(프놈펜)에서 양국간 공동성명의 형태로 FTA 추진을 공식 발표-2003년 9월 현재 프놈펜에서 개최되고 있는 ASEAN각료회담에서 밝혀진 ‘인도 -ASEAN간 FTA초안’에 따르면 2006년부터 관세인하를 제안-2003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개최예정인 ASEAN 정상회담에서 인도 -ASEAN FTA가 보다 구체화될 전망ⅴ)기타-지난해 ‘Enterprise for ASEAN Initiative’를 발표한 미국은 금년 모델을 원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ASEAN 모델의 장점은 다양한 참여국간 초보적 신뢰구축을 이룩하는데는 매우 유용하지만, 주요 정치, 경제적 민감한 이슈들에 대한 합의 도출이 어렵기 때문에 본격적인 역내협력과정을 제도화해 나가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기존의 ASEAN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협력 틀을 창출해 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협의체를 지향하는 경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과 동남아 ASEAN 10개국으로 구성된 동아시아지역의 내부적 역학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동북아와 동남아간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국가들도 동남아 ASEAN에 상응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협의체 혹은 적어도 그와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협의채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만일 이러한 협의채널이 부재한 가운데 동아시아 지역협력체를 추진할 경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국가들은 항상 ASEAN의 이니셔티브에 끌려 다닐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동북아 3국간 협의채널을 형성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1999년 제3차 동아시아 정상회의시 최초로 개최된 동북아 3국간 정상회동은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향후 3국간 협의채널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책연구기관간 합동연구작업의 수준을 넘어 경제, 외교, 환경, 에너지 분야의 각료급 또는 고위급 회동으로 확대, 정례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협의채널 구축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정치, 경제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있는 동북아국가의 협의체 형성으로 자신들의 전략적 지위가 위협받을 것을 경계하는 동남아 ASEAN 국가들이 이에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자연스럽게 유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3)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추진검토한국은 동아시아지역 경제협력과 관련하여 핵심적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역내 자유무역지대 설치 문제와 실이다.
    경영/경제| 2005.04.15| 11페이지| 1,000원| 조회(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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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과 정의] 대중운동의 성격과 역할 대중사회의 의미
    대중운동-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협력하여 벌이 는 사회운동.대중사회-대중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분야에 진출하여, 그 동향을 좌우하는 사회상황 또 는 사회형태. 대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 진출하여, 그 동향을 좌우하 는 사회상황 또는 사회형태.위의 정의는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찾은 대중운동과 대중사회의 의미이다.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은 건조한 의미 뒤에 숨겨진 대중운동과 대중사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곱씹을 수 있는 좋은 특강을 들었다. 참여연대의 박영선 사무처장님의 특강이 그것이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대중운동을 위와 같은 의미 이상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대중 운동의 의미 속에는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엘리트와 대중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고 직면하는 현실 사회는 개혁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다. 부정과 부패가 팽배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하면서도 평생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시민의 무지를 일깨우고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엘리트와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과정이 대중운동인 것이다. 박영선 사무처장님은 이러한 대중운동의 의미를 말하시면서 NGO의 역할 또한 강조하셨다. 대중운동은 개인적인 것으로는 의미가 없다.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사회 전반의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힘들 뿐 아니라 운동이 지속적이기도 힘들며 엘리트와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엘리트 집단의 설득을 이끌어 내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산발적인 개인행동은 오히려 그들이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더라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문제만 반복적으로 제시만 할 뿐 근본적인 해결방법으로 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대중운동은 집단을 이끌 수 있는 리더를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엘리트 집단과 맞설 수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을 연합하게 만들고 나아가 집단을 구성하여 대중운동으로의 참여를 유인하는 것이 NGO와 같은 단체의 활동 목표중 하나이다. 그 예가 바로 박영선 사무처장님이 들어주신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참여연대는 많은 부속기관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경제 개혁센터에서 재벌 개혁운동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참여연대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아들에게 자신의 주식을 불법적으로 승계하려는 것을 알고 이를 제지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그 운동이란 것이 소액주주권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만 듣고는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생각보다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큰 힘을 작용했다. 참여연대는 생면부지의 소액주주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어 그들이 구체적인 활동 내용과 소액주주들도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킴으로써 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였다. 비록 그 과정은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겠지만 소액주주들로 하여금 그들도 재벌기업의 결정 참여자로써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결국 참여연대는 1%의 소액주주들을 모으는데 성공하였고 주주총회에 참여하여 장장 13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참여연대의 재벌개혁 운동은‘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이러한 대중운동이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이것이 엘리트 집단에게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때 새로운 대중사회가 시작된다. 위의 정의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아직 대중사회는 아닌 듯싶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문제는 있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군사정권을 겪었고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문화적으로도 이러한 상황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국민적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대중운동의 시작도 늦었고 대중사회로의 변화 시기 또한 늦은 것이 아닌가 싶다. 대중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은 끊임이 없다. 아직 그 영향력은 미비하다 하겠지만 박영선 사무처장님의 말씀처럼 국민발안제가 시행되고 배심제가 발휘되면 대중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대중사회로의 변화에는 대중운동이 얼마나 엘리트 집단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대중운동의 모습으로 현재 얼마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그 대답이 부정적이라 하겠다.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도 절대적으로 적을뿐더러 시민을 이끄는 대중운동 리더들이 전문성이 부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 대중운동이라 하는 것이 큰 시민단체가 문어발식으로 많은 영역에 걸쳐 관여하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작은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민의 많은 참여는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단체에 주어진 중요한 문제들을 우선 해결해야 대중사회로의 진일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첫 번째 문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중운동 핵심의 인프라로 구축하는 일이다. 현재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넓은 층에 걸친 전문 인력의 구축은 대중운동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데 기본이 될 것이다. 법률, 언론,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 걸쳐 많은 인력을 확보하고 그들을 연결하여 원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중운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중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활동에 견고한 신빙성을 제공하며 따라서 그만큼 설득력도 높이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5.04.15| 3페이지| 1,000원| 조회(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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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 정책론] 노무현 대통령의 세계관 평가C아쉬워요
    정책 결정자의 세계관은 외교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개인적 성장 배경, 콤플렉스, 성격 등에 기초한 전반적인 세계관이 정책 결정자의 취향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의 세계관을 알고 분석하는 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외교 정책과는 어떠한 영향이 있으며 앞으로 전개될 외교 정책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알게 하는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의 세계관은 어떠한 모습일까? 그의 성격적 특성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다.노무현은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에서 빈농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59년 경남 김해 대창 초등학교, 1963년에 경남 김해 진영 중학교를 거쳐 1966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생활 기록부에 기록된 학창시절의 노무현은 친근하고 성실한 성품에 통솔력과 지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어 있다. 가정형편은 초등학교 기록부에는 '소농으로 생활은 하류이나 교육열은 많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몸이 약해 결석이 잦았다. 노무현의 어린 시절은 늘 가난에 대한 열등감으로 휩싸여 있었다. 노무현 자신도 자전 에세이집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나는 상당히 반항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열등감이 심했던 것 같다. 가슴에 한과 적개심을 감추고 있기도 했고, 쉽게 좌절하기도 했다. "소년 노무현은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그는 반항아인 경우가 더 많았다. 3.15 부정선거 직전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우리 이승만 대통령' 이라는 제목의 작문 과제를 내주자, 그는 반장이었지만 오히려 백지 동맹을 선동했다. 이러한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어린시절을 가난하게 자랐고 서민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학창시절을 지냈으며 누구보다 소신 있는 일에 뜻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한 큰형 영현씨는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고시 공부를 했으나 실패하고 70년대 초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는 대학생 때 집에서 친구들과 시국토론을 자주 벌여 어린 노무현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고, 노 후보가 가장 좋아하고 따랐던 인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린시절을 토대로 그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정치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누구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으며 그 것이 다름 아닌 그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그러한 상황적 불운을 극복하고 현재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신의 의지와 소신이 얼마나 강한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곧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고시 합격과 연결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식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여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를 지내다 197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1981년부터 인권 변호사로 변신해 민주화에 적극 참여했다. 이와 같은 노무현의 경험도 현재 그의 세계관과 밀접한 영향을 가졌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민주화 운동은 과거 군사정권의 독재에 반대하고 음지에서 소외 받는 계층을 위한 운동이었으므로 다분히 진보적이었고 보수적인 정치판의 대세와는 분명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무현의 세계관이 지금까지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양상을 띨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현재 그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심지어 공식적인 자리의 연설 한 구절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그의 성격에 관한 좀 더 체계적인 분석을 보면 그의 세계관을 짐작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마음 신경 정신과의원 김종석 박사는2003연말 학술대회에서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을 토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성격을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성격유형은 외향적 사고 감각형이고 노대통령은 원칙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외향적 감각형은 현실 상황에 판단을 잘하고 현실 적응 능력이 뛰어난 반면 자극에 예민해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외향적 사고 감각형 리더십은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정책을 선택할 수 있고, 위기 상황에서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는 반면 권위적으로 흐르기 쉽고 당장 성과가 눈에 띠지 않는 문화, 예술, 교육 등 정책 분야를 소홀히 하며 갈등을 조장하고 인사정책에 혼선을 빚을 수 있는 위험성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그가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성격의 주 내용이다.나는 아직 어리고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이 재대로 갖추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이 지금까지 역임했던 대통령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 이유까지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도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에 불과하겠지만......노무현 대통령은 엘리트의 정석을 밟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아니다. 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나이와 비교해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나이도 매우 어리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만은 너무도 뚜렷하고 곧다. 그것이 설사 즉각적인 국민의 동감이나 국가의 이익과는 연결되지 못한다 해도 그는 신념을 굽힐 줄 모른다.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세계적 위상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듯 하다. 대한민국을 동북아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나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맞서는 ‘자주적’ 협력 외교를 외침이나 모두 이 같은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계의 경험이 많지 않아 섣부른 신념에 불과 하다라는 말도 있으나 어쨌든 이것이 그의 세계관인 것이다. 즉 선천적으로 가진 진보적 성향에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까지 더해져서 독립적이고 조금 과장을 보태어 말하면 전투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이다. 이러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에 탄핵위기의 크나큰 사건도 경험했고 경제위기 가지 더해져 그의 세계관이 주춤하는 듯 하나 고질적 문제와 부합된 그의 세계관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세계관은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장중요한 문제점으로 충돌된다. 자신은 한번도 미국에 가 본 적이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미국의 관계는 그다지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의 대통령인 부시와의 관계도 순탄치는 않다.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에 따라 우리나라의 외교 정책 노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세계관을 미국이 얼마나 잘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현 시점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외교 관계의 핵심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2005.04.15| 3페이지| 1,000원| 조회(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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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여행] 4대문명 평가A좋아요
    황하 문명중국의 장구한 역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의뜻을 보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방에서도 신비롭게 여기며 가까운 우리나라만 해도 중국의 문명은 중화사상의 영향으로 압도적이리 만큼 훌륭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중국이 공산주의시기를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뒤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은 미국을 따라 잡을 만큼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기원전 오천 년 전의 황하의 문명을 재실현 하듯이 중국의 발전을 날이 거듭할수록 눈부시기만 하다.황하문명은 황토로 인한 문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서풍을 타고 온 미세한 황토들이 황하 주변의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었으며 그를 바탕으로 한 문명은 후대에 손을 꼽을 만큼 훌륭한 것이 되었다.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그네들의 문명 또한 그 규모 면에서도 놀라운데, 그 놀라운 것들 중 하나가 진시황릉, 병마용갱이다. 그 규모도 규모이지만 진시황을 지키는 병사들의 인형이 하나같이 키와 표정이 다 달라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문가들은 도자기 인형들의 얼굴생김과 덩치가 다 다른 것으로 보아 실제 진시황을 지키던 병사들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렇게 놀라운 규모의 능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강력한 왕권이었을 텐데 아미 기원전 수천년전에 그러한 절대 왕권을 가지고 국민을 통합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중국의 넓은 지리적인 특성이 넓게 뻗어나가는 왕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국민성은 그 나라의 총체적인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넓은 자기공간을 가지고 풍부한 자원을 이용한 윤택한 생활, 말을 타는 민족, 먹을 것을 귀하게 여기고 즐기는 관습은 중국인 특유의 국민성에 작용하였고 수천 년 전에도 그 영향은 있었음이 틀림없다. 비록 이면에 분서갱유에서 보여지는 강압적인 모습이나 불로초를 찾아 헤맨 어리석은 모습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진시황이지만 그가 이룩한 황하문명의 일부는 후대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훌륭한 것이다. 현재 중국은 병마용갱의 발굴을 미룬 상태인데, 그 이유가 너무도 겸손하다. 지금은 중국이 문화재를 발굴하여 보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개발하면 엄청난 관광수입을 벌어들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러한 단호한 태도는 우리나라도 배울 만 하다. 마구잡이로 발굴된 우리나라의 귀중한 유적들이 훼손되어 가는 것을 보면 중국의 결단력 있는 이러한 태도가 부럽기까지 하다.중국의 역사는 세계가 기억한다. 동영상으로 본 중국은 중국이라는 나라 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의 문화인 동시에 수많은 문화를 포함하는 성장하는 유기체이며 이는 황하문명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끝나지 않는 발전이다. 중국이 겪은 사회주의 시대만 보고 중국을 얕잡아 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의 모습은 황하문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뿌리부터 이해하는 것이 중국을 이해하는 것이다.이집트 문명이집트는 유럽여행을 계획하면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미스테리한 것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매력적인 여행 동기가 된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영화, 소설 등의 문화적 재료로 삼을 만큼 위대한 문명이었던 이집트 문명이 왜 지금은 시들어져 버린 파피루스같이 그 명맥을 잇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궁금증을 강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나일 강은 주기적으로 엄청나게 범람하는 골칫덩이 강이었으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일 강이 범람하여 가져다 준 진흙에는 많은 영양분이 있었으므로 그들이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건이 바로 나일 강의 범람이었다. 그들은 강을 버리고 비옥한 농토를 버리는 대신에 측량법을 개발하여 그들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문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자연의 재해도 자신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여유가 이집트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집트의 가장 큰 업적이 바로 세계 불가사의들 중에 하나인 피라미드이다. 동영상을 보기 전에는 그냥 투탕카멘의 저주로 잘 알려져 있던 피라미드, 즉 왕의 무덤으로서의 피라미드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피라미드 건설 이면서 숨겨진 이야기는 나의 생각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나일 강이 범람하면 농민들은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집트의 현명한 왕들은 피라미드 축조를 목적으로 온 나라의 농민을 모아 일자리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농한기에 농민들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이집트라는 나라의 존재자체를 흔들리게 하는 커다란 문제였으므로 고대 이집트 왕들은 기지를 발휘하여 전국가적 사업으로 피라미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학설은 피라미드 주변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했던 노동자들이 살았던 거주지가 발견됨에 따라 제기되었고 매우 설득력이 있다. 피라미드들이 나일 강이 범람하는 경계를 따라 만들어 졌다는 곳만 보아도 신빙성을 충분히 입증된다. 놀라운 기술력도 존경스럽지만 고대 이집트 왕들의 현명함에도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그러나 현대 이집트는 과거 그들의 역사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나일 강이 범람을 멈춘 후부터가 시작이다. 나일 강에 거대한 댐이 축조된 이후에 더 이상 범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집트 사람들은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수는 있지만 더 이상 나일 강이 가져다주는 비옥한 흙을 쓸 수 없었다. 또한 나일 강 주변에는 높은 건물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현대문명들이 고대문명의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는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멈추게 된다. 나일 강 주변의 농부들은 댐이 축조되기 전 범람을 일삼던 나일 강을 그리워 한다. 자연은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을 용서하지 않았고 이집트에서 풍요와 번영을 되가져 갔다. 지급 이집트는 더 이상 범람으로 고통 받지 않는 대신 과거의 위대한 문명은 역사로만 기억하게 되었다.인더스 문명친구가 인도를 여행하고 온 후에 인도사람들의 태평함에 혀를 내둘렀다는 말이 생각났다. 버스가 고장이 나서 두 시간을 멈춰 서 있어도 누구 하나 불평을 하지 않아서 너무도 답답했다는 것이었다. 인도 사람들의 특유한 염세적 성격은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매력적인 성격이라고 느꼈다. 그에 반해 내가 알고 있는 인더스 문명의 지식은 인도에서 발생했다는 것 외에는 전무했다. 그러나 동영상을 통하여 알게 된 인더스 문명은 다른 문화에 뒤지지 않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놀라움에서는 다른 문명들과 비슷했지만 문명의 형태는 다른 문명들과는 차별적이었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인 모헨조다로 말고도 인더스 문명을 이루는 많은 유적지들이 있다. 그 중에 동영상에서 심도 있게 다룬 부분이 지금은 사라져 버린 전설 속의 강 하류 끝의 섬에 위치한 돌라비라라는 유적지이다. 성채와 도시 중심, 그리고 십여 개의 저수지가 유적지의 기본 골격이었다. 다른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들과 같이 상수도 시설이 발달하였고 공중 목욕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독특한 저수지의 발달과 빗물의 저장, 가장 큰 우물들이 이 유적지의 대표적인 유물들이다. 돌라비라 사람들은 장마철에 오는 비 때문에 불어나는 강물을 댐을 건설하여 막아 도시 주변에 만든 인공 저수지에 담음으로써 일년 내내 물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채 가운데에 있는 우물은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들에서 발견된 우물 중에 규모가 가장 크다. 돌라비라가 위치한 섬의 다른 곳은 온통 소금밭인데 돌라비라 한가운데에서 샘솟는 우물은 담수가 가득하였다니 정말 신비스러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규모의 인공 저수지를 지형적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축조한 기술 또한 감탄을 자아낼 만한 것이었다. 그들의 발달된 문명뿐만 아니라 정치 구조 또한 독특하였다. 인더스 유적지 어디에서도 절대 권력자가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강력한 지도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단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더스 문명을 이룩한 사람들에게는 위협과 압제로서의 문명의 수용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진취적인 사상이 주된 것이 아니었을까. 전쟁의 흔적이나 화재와 파괴와 같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매우 의문스러운 일이다.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켰음에도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인더스 문명을 누렸던 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축복받은 일이었는가. 한반도, 작은 땅덩어리에서 오천 년의 역사를 겪으며 수없이 전쟁을 치렀다고 배웠고 그 한을 국민성으로 물려받은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가 인더스 문명처럼 평화로움을 지속했다면 지금보다 발전된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인도 사람들처럼 염세적이 되어 지금의 발전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지금 인도는 엄청난 인구와 국토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염세적인 국민성 때문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거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고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도 부강했던 인더스 문명의 맥을 언제쯤 인도 사람들은 잇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메소포타미아 문명
    사회과학| 2005.04.15| 6페이지| 1,000원| 조회(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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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외교 정책론] 주한 미군 철수에 따른 국방비 증액 반대
    -주한 미군 철수에 따른 국방비 증액 반대1. 전력은 양보다 질. 그러나 어디까지가 가능한가?미국은 한국에 주둔해 있는 미군의 단계적인 축소와 동시에 남아 있는 미군의 전력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미군으로 인해 생긴 한국의 국가적 안보를 대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미군 숫자의 감소가 전력의 감축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인 것이다.2004년 10월 6일 중앙일보경량화, 첨단화를 통해 주한미군 전력은 증강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올해부터 3년간 우리나라 연간 국방예산의 80%가 넘는 110억 달러(14조 3천억 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미국의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방안이 자리 잡고 있다. 작년 5월 말 미국은 이례적으로 스트라이커(Stryker)로 불리는 신속기동여단의 한반도 순환배치 등을 포함한 주한미군의 전력증강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스트라이커 부대는 고성능 경장갑 차량과 전자지휘체계를 운영함으로써 신속기동능력과 전투력을 동시에 강화한 첨단부대다. 미국의 주한미군 전력증강 방안 발표 시기는 미측이 주한미군 1만2천 명 정도의 감축의사를 전달한 작년 6월초 제2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와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작년 5월의 미국의 주한미군 전력증강 방안은 GPR 계획 구상에 따른 미측의 합리적 대응책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울러 미국은 새로운 안보환경에 대비해 제2사단도 기동성과 독립성, 생존성, 치명적인 살상 능력을 갖추고 테러진압과 지역분쟁, 소규모 국지전과 전면전 등 모든 영역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부대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미 2사단은 정찰기능을 갖춘 기갑사단, 통신, 포병, 화학, 정보, 기계화, 항공지원부대로 구성된 기존의 사단급 부대에서 화력, 통신, 정보, 공병, 무장정찰부대로 구성된 미래형 사단(UEx)으로 개편될 전망이다. 또 1만2천500명의 주한미군이 감축된다고 하더라도 북한군 장사정포에 대응하는 다연장로켓(MLRS) 2개 대대와 대포병레이더(ANTPQ) 등의 대화 력전 전력은 감축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울러 북한 특수전부대 침투와 기갑사단의 남하를 저지할 아파치 헬기부대는 1개 대대만 철수하되 나머지 2개 대대는 최신 롱보우(델타형) 헬기로 교체해 화력이 크게 보강된다. 참여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 방안은 자체의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해 향후 10년간 국내총생산(GDP)에서 국방비의 비율 3.2% 정도에 해당하는 연간 20억 달러(2조4천억 원)씩을 투입해 각종 첨단무기들을 도입한다는 게 골자다. 이 방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올해에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도입사업(2 조원 규모)에 착수하고, 내년에 차기 대공미사일(SAM-X) 사업(2조5천억원)과 중앙방공통제소 노후장비 교체(1천342억원), F-15K 전폭기 도입사업(5조5천500억원)을 시작한다. 또 2006년부터는 군 위성통신도입(5천600억원), 중고도 무인정찰기 개발(4천400억원)에 나서고, 2007년 대형 상륙함 건조(9천500억원), 장거리 대잠어뢰 개발(2천400억원)을, 2008년 이지스함 건조(3조원), 공중급유기 도입사업(1조2천억 원)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2009년에는 첨단 무기를 장착하고 기동화된 미래정보형 사단(디지털 사단)을 실전에 적용하는 등 2010년 이후에는 자주국방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계획으로 완료된다.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입장은 많은 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국내 총생산의 3.2%인 국방비를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현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국내 총생산의 2.8%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3.2%까지 국방비를 증가 하겠다고 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는 데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내년 국방비는 20조8000억원이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평균 7%를 넘은 9.9%다. 이 가운데 자주국방을 위한 전력투자비는 9조원 정도다. 이 액수로는 계속사업으로 추진 중인 이지스함, 조기경보기 등을 도입하기 위한 투자비만도 빠듯하다. 게다가 이 사업들의 완료시기는 대개 2010년 이후다. 국방비는 덩치가 클 뿐 아니라 투자기간도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수준으로는 또 다른 신형무기 개발을 위한 자원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주국방은 경제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 경제가 국방비를 댈 수 있을 만큼 뒷심이 있어야 한다. 말로 자주국방을 되뇔 것이 아니라 이런 돈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청사진을 이제는 밝혀야 한다. 특히 유한한 재원 중 국방비에 투자가 많아지면 사회복지 등 타 분야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도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추상적 말만 내세운다면 그것은 정치선전에 불과하다.2. 정보는 완전히 독립적인가?노무현이 주장하는 협력적 자주 국방을 위해서 미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전력 보강의 일환으로 우리는 정보력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2004년 10월 2일 조선일보 사설‘자주 국방’은 독자적인 정보능력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다. 미국이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정보력의 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정보력의 우위는 정밀성, 기동성, 치명성, 그리고 고도의 훈련 등과 같은 특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능력, 즉 인공위성군, 정보수집을 위한 항공대대, 그리고 표적선정 정보자료실, 컴퓨터 뱅크 및 수많은 정보 수집·분석 요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의 의미는 앞으로 우주를 기반으로 하는 대단히 진보된 정보시스템을 운용하려 하는 국가라면 정보능력이 뛰어난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드웨어적인 부문과는 달리 정보지식은 결코 재래식 무기 체계처럼 역설계되거나 조립하여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적의 공격을 일단 방어한 뒤 반격작전을 전개하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 우주 기반 정보시스템의 이용은 피할 수 없다. 현재 우리 군은 주한미군의 도움 없이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국가적 차원의 지휘시설), 작전적(북한의 공중방어망과 군 작전본부), 전술적(공·지·해에 전개되어 있는 전투부대) 수준의 표적을 선정할 능력조차 없다. 따라서 외부정보에 의존하는 방어전략과 군 구조를 가진 한국 같은 국가는 그것을 제공하는 국가, 즉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에 필연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체적인 정보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노력할 때, 미국의 막대한 도움이 없이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단순히 정보수집 센서들만 획득한다고 해서 전략정보 능력이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ISR체계(정보, 감시, 정찰체계)에 토대를 둔 분석요원들을 교육시키는 데 동맹국인 미국이 아니라면 누구를 통해서우리가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정보 분석 요원까지 완벽하게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군이 앞으로 첨단의 정보통신기술에 토대를 둔 지식기반의 진보된 군사전략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더 많은 부분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5.04.15| 4페이지| 1,000원| 조회(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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