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ment Greenberg와 추상 표현 주의1.그린버그의 존재, 모더니즘 혹은 순수성.그린버그는 현대의 미술을 논 함에 있어 그 중심에 선 거대한 기둥이라 할 수 있다.현재 우리가 그의 비평를 찬양하든, 비평하든간에 우선은 그의 존재와 그 가치를 분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 보자." 모더니즘을 경험과 문화 속에 들어있는 어떤 특별한 질 또는 가치로 보는 관념은 19C 프랑스로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이 용어가 미술 비평의 논쟁 속에서 특별한 반항을 획득한 것은 상당분분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저작과 그의 저작이 야기시켰던 다양한 반응들 덕분이다." (internet발췌)위의 인용문 그대로 모더니즘미술은 그린버그가 가치를 둔 것들, 즉 순수한것들의 형식적 설명들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Kant의 자기비판( Self-criticism ), 자기 비판의 가속화를 통하여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추구하는 형식주의자였다.그의 모더니즘 비평론에 드러나는 장황한 사조들- '아방가르드'니 , '반스탈린주의', '反키취', '칸트의 자기 비판' 등등-을 감히 단 한 단어로 잘라 표현 한다면, 그건 순수함 이라는 모더니즘의 거대한 미학적 율법일 것이다.2.순수함..그리고 평면성.(Flatness)그린버그가 엄격히 얘기 하고 있는 '순수함'이란 바로 모더니즘 미술이 매체의 고유한 본성에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화가 가지는 매체의 고유한 성질은 '평면성'이란 2차원적 공간 이였다."평면, 그 2차원성은 회화 예술이 어떤 다른 예술과도 공유 할 수 없는 유일한 조건이며, 따라서 모더니즘 회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평면성 그 자체에로 향하는 것이다" (모더니스트 회화)그린버그가 강조하는 모더니스트 회화는 주제보다도 회화 자체를 구성하는 형식적인 요소인 점, 선, 면, 색채, 빛, 스리고 물감과 캔버스등에 충실한 것이였으며, 또한 회화는 본래 이차원적인것이므로 더 이상 삼차원의 일루션(illusion)을 창조하고자 하지 말고 회화자체의 본질인 평면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쟁점 이였다.3.추상 표현 주의.. 그린버그 와의 만남.'추상 표현 주의'란 운동은 처음부터 확고한 이념을 가진 운동을 아니였다.미래파나 초현실 주의와 같이 예술가에 의한 선언을 내세워서 시작 되었던 것이라기보다는, 비평가 쪽에서 전개 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편이 옳다. 그린버그는 바로 이 추상 표현 주의의 전개를 생각 할 때 가장 중요한 비평가이다. 그린 버그의 비평은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회화관에 입각하여 있다. 그가 아방가르드를 옹호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전통에 근거한 독창성만을 인정하였다. 18C 칸트로부터 시작된 미적 영역의 자율성이란 표방 아래, 순수화만을 추구하는 예술은 드디어 추상 예술의 탄생에 이른다. 추상 표현 주의의 회화성, 즉 느슨하면서도 빠른 붓놀림, 선명 하지 않은 얼룩지고 흐린 형상, 커다랗고 뚜렷한 율동감과 분할된 색채, 물감의 불균등한 채도와 밀도, 붓자국과 나이프, 혹은 손가락 자국 등은 바로 그린 버그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에 부합 하였다. 그는 새로운 것만이 불려지는 시대의 경향을 비판 하면서 추상 표현 주의야 말로 모더니즘의 정당한 계보 라고 주장하고, 여기서 퇴폐적 유럽 회화에 대한 진보적 미국 회화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선언 한다. (Handbuch der Kunstwissenschaft)
서론고구려는 우리 한민족이 세운 가장 광대하고 강력했던 제국이다. 또한 문화적인 면에서도 삼국시대의 다른 나라들을 앞서서 이끌고,영향을 끼쳤던 나라이다. 그 문화는 호방하고 진취적이며 활력에 넘치는 것이었다.지역적으로는 중국과 서역의 문화를, 종교와 사상적으로는 불교와 도가 사상을 수용하는 등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면서도 지극히 독자적인 독특한 문화를 창출 하였다. 고구려의 이러한 문화적 양상과 특성을 우리에게 가장 적나라하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고분의 내부 벽면에 그려진 벽화이다. 고구려는 그 수도였던 국내성일대이 통구지방, 즉 현재의 중국 集安지역과 평양 및 그 주변 지역에 수많은 고분들을 남겨 놓았는데 그 중의 일부는 내부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현재까지 약 80여기의 벽화 고분이 확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벽화 안에는 死者에 관한, 또는 그를 위한 생활 풍속이나 소망하는 바가 많이 담겨지게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겨진 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고구려인들의 기질과 기상, 종교와 사상, 우주관, 생활상과 풍속, 예절, 남녀 인물들의 복식과 관모, 꾸밈새와 화장법, 각종 기술과 문물, 건축양식과 실내장식, 회화의 기법과 발달정도, 문화의 성격과 변천, 외국문화와의 교류양상 등등 수많은 것을 엿볼 수 있다.즉 고구려의 벽화는 문화적 보배인 동시에 고구려문화의 내용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이해하게 하여주는 소중한 역사적 사료인 것이다. 이러한 의의를 지닌 고구려의 고분벽화안에서, 특히 여기서는 인물이 입고있는 복식습속을 살펴보고 그 복식습속을 통하여 그 시대 고구려의 대외 교류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본론우선 먼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고구려인들의 복식습속을 살펴보기로 하자.고구려 복식의 특징은 대개 서북방 기마민족들이 입던 호복(胡服)계통의 의복으로 호복은 서호(西胡)지역 사람들이 입던 옷이다. 호복은 양팔을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좁은 소매통의 웃옷인 습(褶)과 양다리를 민첩하게 활동할 수 있는 좁은 바지인 고(袴)로 구성되어 있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벽화가 있다. 고구려복식 연구의 보고 라고 불리워지는 삼실총 제1실 남쪽 벽의 이다.1)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틀어 북한 수산리의 에 등장하는 인물군상 다음으로 많은 남녀 인물들이 그려진 이 벽화에는 11명의 인물이 모두 각각의 복장을 하고 있으므로 고구려인의 복장을 설명하는데 적합하므로 이 를 중심으로 고구려 남녀의 복식습속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행렬도의 11인 모두에게서 관찰되는 것은 옷깃의 방향이다. 저고리의 옷깃이 모두 왼쪽을 향하는 좌임식을 하고 있는데, 왼쪽으로 여미는 이러한 좌임직령형은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였다. 그 밖에도 곧은 깃을 교차시키지 않고 가슴 앞에서 마주보는 위치에서 대를 매는 맞섶의 형식인 합임직령형이 있는데, 이는 후기로 갈수록 많이 나타나는 형태이다.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맨 앞의 시종 뒤의 두 인물이 특히 크고 화려하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들이 바로 이 무덤의 주인공 부부인 듯한데, 우선 무덤 주인인 남자를 살펴보면, 머리에 책을 쓰고 있다. 이와 같은 책 은 종2품 이상의 관료나 귀인들만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저고리를 보게되면, 옷깃은 두가지 이상의 색으로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했고 소매의 통도 넓다. 바지통 또한 넓은통을 하고 있는데, 이처럼 활동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귀족 신분들이 주로 입던 넓은통의 바지를 대구고 라 불렀다. 주인공 남자의 바로 뒤에 있는 여인은 그의 부인인 것으로 보이며, 역시 귀족의 복장을 하고 있다. 머리모양은 올린머리형 을 하고 있는데, 이처럼 올린머리형은 주로 무덤 주인의 부인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그 뒤 시녀들의 머리형을 살펴보면,모두가 내린머리형(드리운머리형) 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올린머리형 은 대부분 신분이 높은 층에서 하던 머리모양이였고 내린머리형 은 신분이 낮은 일반 부녀자나 미혼 여성이 하던 머리모양으로 보인다. 이 귀부인의 복장을 살펴보면, 역시 두 가지 색으로 장식된 옷깃의 넓은 소매 포를 입고 있다. 치마는 주름이 많은 폐슬 을 길게 늘어뜨렸는데, 폐슬은 왕과 왕족만이 신분표시용으로 사용했던 장식물로 보인다. 신발은 역시 왕과 왕족만이 신는 고두리 를 신었다.전반적으로 고구려인들의 복장은 신분과 계급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왕은 다섯가지 색깔이 오채복에 금은을 장식하였고, 귀족들도 비교적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의복에 옥(玉)등의 장신구로 치장 하였다. 반면, 일반 평민은 단지 하나의 색깔을 사용하였고 무늬도 단조로운 꽃무늬, 구름무늬, 십자무늬, 점박이무늬 등이였으며 옷감도 조악한 것으로 갈의가 대부분이었다. 상.하복의 색깔은 다른 색깔로 엇갈리게 입은 것이 특징이다.위 에서는 삼실총의 를 모델로하여 남녀 고구려인의 복식습속을 전반적으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제 이러한 복식을 근거로 하여 그 시대 고구려의 대외 교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같은 시기의 주변 국가들과 비교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다.우선 이 시대 문화교류적 측면을 다루는데 있어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실크로드 의 존재이다.중국의 가장 중요한 상품 가운데 하나인 비단이 서역을 지나는 교역로의 대명사가 되어 이름 붙여진 실크로드 는 동서 문물교류의 중요한 통상로(通商路)가 된다. 실크로드의 성립과 역사, 그 실크로드 주변의 국가들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교류의 장을 열고, 어떤 모습으로 그 교류의 모습을 드러내는지 살펴보고 그 후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의 영향이 주변국가들과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복식을 중심으로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서역(위구르 자치구)의 역사적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서역은 지리적 위치의 특성상 중국과 서방의 여러나라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道程은 서방의 카슈가르에서 롭노르를 지나 동쪽의 돈황에 이르는 길이었다. 신강 위구르자치구의 중앙부는 대부분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로 덮여 있는데, 옛부터 동서를 잇는 대간선 도로가 이 땅을 지났기 때문에 그 남쪽과 북쪽 기슭을 따라 여러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이 성립하였다. 이들 通商路구려의 이와 같은 북조(北朝)문화는 서역미술을 흡수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북위는 위의 과정에서 보듯이 서역의 주요지역인 타림분지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조식 양식 은 곧 타림분지를 장악했던 북위의 서역적 요소의 흡수 가 보여주는 양식이였으며, 따라서 북위왕조는 그 문화적 성격에서 중국 것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돈황벽화에 나타나는 천인(天人)의 복식표현의 특징인 서역적 요소 -의복의 끝단과 천의(天衣)자락이 톱날형으로 예리하게 처리되어진 것-가 고구려 6세기 때의 무용총,오회분 벽화등의 제신(諸神)과 천인(天人)의 복식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교류적 측면을 잘 뒷받침하고 있다. 고구려에서 4세기 소수림왕 때 국교로 지정되어 지배적인 종교문화를 꽃피웠던 불교도 또한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계통의 영향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상인과 함께 인도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하여 중앙아시아에 이르고 다시 중국에까지 갔던 승려에 의해서 전파되었으며, 고구려의 불교는 중국의 북방민족과의 교류에서 비롯되었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10세기 이 전의 서역, 그리고 중국과 고구려에서 불교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가 양식과 내용에서 뿐 아니라 불교문화의 전개나 성격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북조 중국과의 연관성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도, 북위(北魏)-동위(東魏)-북제(北齊)로 이어지는 북조(北朝)와의 교류가 끊이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배경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보살상(菩薩像)에서 보여지는 동일한 양식을 통하여 북위와 고구려의 교류적 측면을 살펴보겠다. 고구려 5세기경의 장천1호분에서 보여지는 벽화2)는 불교적 색채를 짙게 풍기는 보살상의 벽화이다. 이를 북위 458년의 보살상3)과 비교하여 보자. 가슴 위에 대각선으로 걸쳐진 두 줄의 연주문처럼 이어진 영락장식과 양쪽으로 뻗친 천의(天衣)옷자락, 둥근장식이 있는 보관의 모습이나, 두광의 형태가 동일한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벽화를 보게되면은, 고구려 입체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양식은 한마디로 中國과의 연관성보다는 오히려 서방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한편 키질의 말기 벽화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이 두드러지는데, 너풀거리는 머리리본, 의복의 세부, 대칭적인 배치, 공양자 남녀의 복장 등은 분명히 페르시안적이다. 이러한 문화적 입장은 7세기 중엽에 사산조에 대한 이슬람의 파괴를 피하여 달아난 이란의 망명자들에게 쿠차가 베푼 후대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중국 키질석굴에서 보여지는 서아시아적 특징이 의복으로 드러나는 예는 키질석굴에서 수집된 목판그림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판 한가운데의 여래입상을경계로 그 위에는 크고 작은 불상을, 그 아래에는 여러 여래와 시주자를 그린 그 목판그림5)에서 묘사되어진 남녀 시주자와 시종의 복장을 살펴보면 서아시아풍의 복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서역적 요소가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 복장에서 나타나는 예는 고구려 5세기경 삼실총의 에서6),7)이다. 천장의 네 모서리를 떠받들고 있는 力士의 모습을 그린 이러한 그림은 그리스,인도,중국 등 동서의 동서문명권에서는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신화적 개념의 소재이다.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연꽃이나 다리를 휘감고있는 뱀 등의 존재는 모두 우주적인 힘과 생명 창조력을 상징하는 소재로, 불교와 함께 유입된 서역계 문화요소로 해석된다. 인물들의 복식을 살펴보면, 짧은 소매의 둥근 저고리와 짧은 잠뱅이를 입고 있는걸 볼 수 있다. 깃의 형태는 둥근 네크라인에 앞이 트이지 않은 통형식인 곡령 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깃의 색깔도 다르게하여 장식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매단은 연꽃잎 무늬로 장식하여 역시 불교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으며, 방금 아라비안나이트의 동화책에서 뛰쳐 나온것처럼 서역의 복식차림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대칭 형식으로 양쪽으로 뻗어있는 옷자락도 서역과 서역의 영향을 받은 北魏에서 나타나는 보살상과 같은 형식이다. 이 力士의 얼굴을 보게되면, 큰 눈과 귀, 수염, 붉은색을 띈 얼굴을 된다.
포스트모던의 욕망이론과 소비의 사회자본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는 라캉의 욕망이론 에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지금부터 다룰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에 관한 이론은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욕망이론적 성격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은 소비문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소비는 욕망과 일치하며 타자의 소비욕망을 모방한다. 장 보드리야르의 1970년 저서 소비의 사회 는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는 여기서 현대사회의 맹점을 소비 라는 화두로 해부하고 있다.이 새로운 문화에서는 일류 식료품점과 화랑, 플레이보이지와 고등생물학개론 사이에 어떤 차이도없다.이것이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가 갈파한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넘쳐나는 사물들의 세계, 각종 매스미디어와 텔레비젼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세계, 그 괴물같은 현대를 순환시켜주는 최대의 비밀의 바로 소비다. 그는 중세사회가 신(神)과 악마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현대사회의 균형은 소비와 그 해부 사이에서 이뤄진다는 가설을 대전제로 삼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가 노동과 생산에 의해 성격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의해 계급이 구분되며, 소비는 인간과 사물 사이의 욕구뿐 아니라 인간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다고 보았다.즉, 우리가 매일 접하는 상품이란 공해, 레저, 섹스, 광고, 대중매체 등이며 현대인들은 그런 재화의 소비를 통해 성공과 지위를 과시하고 즐기며 , 따라서 이제 상품은 효용성으로 구분되지 않고, 지위와 위세를 나타내는 일종의 기호(記號)로 작동하게 되어 결국 현대사회에서의 소비란 자신이 사회적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물화(物化)의 핵심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소비는 욕망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내고 있다는 것이 현대 포스트모던이라는 욕망의 시대에 있어서 그가 정의한 소비의 대체적인 개념이다. 그는 현대의 소비문화를 광고와 텔레비젼 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기호가치의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일반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라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기능하는 사회적 이미지, 즉 기호를 소비한다는 게 그의 기본 입장이다.소비사회의 기호학- 사물의 체계와 시뮬라시옹그의 또 다른 대표작 사물의 체계는 소비의 사회, 기호정치학 비판과 더불어 소비사회의 기호학 이란 하나의 틀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그는 자동차 문화 를 논하면서 집이 안겨주는 습관적인 구속에서 해방시킴은 물론 강렬한 자유를 지닌 영역이지만 그것은 죽음 만큼이나 삭막한 형식적 자유에 불과하다 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이런 관점은 시계,의자,애완동물 등 모든 일상의 소비재, 즉 사물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져 간다.이를 위해 그는 소비주의의 특질들을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기호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이러한 기호가 현실에서 이미지화를 통하여 자율성을 확보한 현상을 그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 부르며 현시대를 시뮬레이션(모사)의 시대 라고 규정한다. 기존 산업사회에서는 생산이 핵심적인 요소였지만, 오늘날에는 시뮬레이션의 과정이 사회지배적으로 된다고 보았다. 시뮬레이션이란 대상물이나 사건들의 재현 혹은 복사를 가리키는데, 이 개념은 양이 확대되고 수가 늘어남으로써 생기는 키치(kitsch)의 범람으로 창출되는 시뮬레이션의 미학 이라는 중간계급 대두의 결과를 지칭하기도 한다. 오늘의 모든 삶은 정밀한 시뮬레이션 속에서 분해되는 동시에 재생산되어지며 이 때의 모사물은 비현실의 모습을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만들어진 하이퍼리얼리티 의 외양을 띈다. 이제 현재는 위조와 생산이 아니라 코드에의해 지배되는 시뮬레시옹의 시대가 온것이다.포스트모던에서의 광고와 보드리야르의 광고청바지 광고를 하는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고 유리창이 깨어지며서 하느님같은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화면엔 청바지 브랜드 하나만 남는다. 이 광고는 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일까?미디어는 더 이상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메시지이며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메시지가 전하는 이미지의 부차적 가능성들(계속되는 새로운 이미지의 추구)이다. 포스트모던에서의 광고는 이미지만을 전한다. 병적으로 끌어모은 관련성 없는 것들을 조각조각 이어놓기도 하고, 현실과 기호의 세계를 혼동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소비자가 그들의 전략(호기심 유발과 새로운 이미지의 계속적인 구축)을 소비하도록 유혹한다.보드리야르는 현대의 소비문화를 광고와 텔레비젼 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기호가치의 개념을 빌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제 그가 말하고있는 광고를 살펴보자.앞에서 보았듯이 사물들은 기호이며 그 각각의 의미와 기능을 전체 기호체계 안에서 부여바든다면, 소비 의 개념도 역시 그 기호체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럴 경우에 소비는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된다. 오늘날 신제품,신기능, 자동기구, 기발한제품 등으로 대변되는 기술혁신은 이제 우리의 일상을 이루게 되었다.일반적으로 사용자들도 점차 이와같은 혁신의 노름에 동참하게 되어 온갖 가전제품으로 집안을 가득채우게 되고,더 편리하고 신기한 선택사양이 장착된 자동차로 바꾸지 못해 조바심을 내게 되었다.이렇게 되기까지는 매스컴과 광고의 역할이 컸으며, 사람들은 거기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사물에서 또 다른 사물로, 사물에서 그 이미지로, 다시 사물의 이미지에서 사물에 대한 담론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일반 사용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엄청난 물량과 경이로운 기능들 앞에서 갈피를 잃고 말았다. 사물들의 새로운 질서를 파악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사물들과 생산품들과 이미지들이 단지 다양화되고 완벽해진 것만이 아니라, 그것들의 의미가 바뀌어버린 것이다.오크재와 티크재가 차이나는 이유는 그 원산지나 자연재질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분위기를 위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렇게 오크재가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것은 오크재가 본래 고상함을 간직한 물질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고상함의 문화적 기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현대 실내장식이라는 체계에서 고상함 의 기호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오크재는 바로 그 체계에 의해서 나름의 의미와 기능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제 사물들은 전체에 동화되는 능력에 의해서만 그 가치가 평가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생산자는 더 이상 소비자의 필수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물건들을 생산한다. 생산이 소비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게 됨에 따라 대중매체는 소비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광고를 통한 기호의 창출에 나선다. 결과적으로 이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광고상품이 아니라 기호 그 자체가 된다. 구성원들이 기호를 욕망하고 기호를 소비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사회가 바로 소비의 사회 인 것이다.
그것은 충격이였다.차가운 충격.superrealism이라 불리는 극 사실화 의 말 그대로 극대화된 사실화는,마치 사진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의 섬세한 묘사로 날 놀래키고, 하나의 커다란 감동으로 가슴을 쳤다.사실,수업을 들으며 보아온 슬라이드 속의 극사실화 는 내겐 약간의 추상적 이미지를 가졌었다. 전에 보았던 바네사벨이나 던컨그란트의 작품들은 단순화 되어진 차가운 개별성을 띔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추상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비해 현대 작가들의 극사실화 는 어디에서도 그 난해함 을 찾을 길이 없다.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는 듯, 그들의 작품 속에선 찰칵 하는 소리 마저 들리는 듯 하다.이번 전시회를 관람하며 내겐 좀 특별한 것이 있었는데,그것은 함께 관람하던 관람객들의 반응 이다.Post Modernism이 시작되면서 그 난해함으로 일반 대중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던 작가의 극대화 된 주관적(나는 감히 독선적이라 부르고 싶다.)작품들이 대체의 미술관을 도배 하면서, 우리 미술 학도들 처럼 어떤 사조(思潮)라는 이론 없이 그러한 작품들을 대할 대중들의 기분이란 어떤 것 일까 난 의심해 왔다. 확실히 현대의 미술은 예술 이란 거대하고 높은 탑 속에서 우리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높고 고귀한 귀족인 듯 하다.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번 극사실화 전 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전과 다르게 친밀하고 은근 하다. 똑같다 , 사실이다 , 또는 닮았다 라는 것의 의미는 사람의 맘을 편하게 만드는 듯 한데, 그것은 아마도 조금의 의심 할 여지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내 놓는 그들의 정체 때문일 것이다. 와~우! 이거 사진 아니야? 라는 말들이 여기 저기서 들려 온다. 그 어지러울 정도의 지독한 사실성이 작가의 피와 땀을 돋보이게 한다. 피와 땀 이라고 하면 어떤 뜨거운 열정 따위를 떠올리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어디에서도 뜨거움 따위는 없다. 그것은 철저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기계적이어서 차가운 금속성의 냉소 마저 떠 돈다. 화면은 있으되 내용이 없구나.작가는 정치적,혹은 심리적 가치 같은 것은 애초에 없는 사람 마냥,하나의 재현(representation)'만을 해 놓았을 뿐 이다. 바로 그 것이 내게는 충격이였고,감동 이였다. 차가운 것을 본 후의 뜨거운 감동.극사실주의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미국적 사실 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 이다.그러나 Pop Art가 만화,쓰레기,코카콜라 병처럼 공장에서 다량 생산 된 일상의 Objet들을 작품 안에 도입 하고 있는 것에 반해 극사실 주의 작가들은 이 것들을 극히 억제 된 것 으로써 아무런 coment도 없이 정확히 그대로 그려 내고 있다.인물을 그려낸 그들의 작품을 보라!우리가 평상시 누군가의 얼굴을 볼 때 실례를 무릎 쓰고 그토록 자세하고 꼼꼼하게 들여다 본 적이 있었던가?육안으로 조차 식별 할 수 없었던 작은 점 까지, 머리로 가리고자 했던 흉터 하나 까지 잡아 내고 있는 의도 되어진 잔혹성.그것을 들여다 보는 나,즉 관객은 그 극사실화 된 예술 작품을 바라봄과 동시에 그들의 사실주의에 드러난 역설화 된 허구를 경험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