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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평가A+최고예요
    Ⅰ. 들어가면서이번 보고서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 강의 교재 1장을 읽어보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주제가 없었다. 몇 가지 선정하기는 했지만 모두 다 인터넷 속을 한 시간정도 돌아다니면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주제들을 보고서로 쓴다면 아무런 수고도 들지 않을뿐더러 후에 남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하여 경제학의 성서 라 불리는 『국부론(國富論)』을 읽고 리포트를 쓰기로 하였다. 경제학을 더 깊이 공부하기 전에 한번 읽으려고 했던 책이니 만큼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국부론』은 수많은 경제학분야의 고전(古典)중에서 가장 학파를 초월하여 널리 읽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책이다. 아담 스미스는 1776년에 『국부론』을 저술함으로써 자유방임주의적 경제이론의 틀을 마련하고 고전학파 경제학의 기초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내용으로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는 방법은 첫째, 분업의 이점을 살리는 것과 둘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방임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자유무역을 통한 각국의 이익 증진이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본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고 『국부론』에 나타난 아담 스미스의 사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조사한 아담 스미스의 사상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할 것이다. 또한 짧은 기간동안 『국부론』이라는 커다란 책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나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이 보고서를 완성하였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Ⅱ. 아담 스미스(Adam Smith,1723~1790)1. 아담스미스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아담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의 커칼디에서 탄생하였다. 아버지는 세무관리였으나 스미스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는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737년 글라스고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그곳에서 약 3년 동안 공리주의(功利主義)의 권위자인 허치슨 교수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스미스의 뛰어난 지력은 재학 중에 이미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자연권에 어긋나는 법률의 시행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이 지체되고 있었지만 영국에서는 그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상당히 진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담 스미스이래 자연권으로부터 정치경제가 독립되어 이를 대상으로 하는 독립된 정치경제학이 성립할 수 있게 되었다.2) 다윈의 진화론과 아담스미스의 경제이론다윈에게 영향을 준 사상이나 인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당시 위대한 경제학자였던 아담 스미스이다. 아담 스미스와 다윈의 이론을 비교해 보면 다윈이 1776년에 출판된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영향을 받은 점이 얼마나 많은가를 잘 알 수 있다.다윈의 생각에 우선 커다란 자극을 준 것은 노동분업론이다. 노동분업론은 노동의 분업에 의하여 같은 수의 직공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업제를 이용한다면 생산고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윈은 이런 경제변동을 생물계의 이론에 도입시켰다. 사회학적으로 아무리 우수한 통찰이라 하더라도 자연과학과는 어차피 물과 기름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자연과학자로서의 다윈은 출발점에서 커다란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다윈은 '생존경쟁은 얼핏 보기에 잔혹하고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진화하고 발전을 향해 나간다'고 말하는데, 이것도 경제 시장에 있어서의 아담 스미스의 이론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유 경쟁의 경제시장에는 항상 전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수요와 공급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그것에 맡겨 놓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없는 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적당히 유지해 준다는 이론이다. 다윈은 무엇인가 그것을 닮은 법칙이 자연계에서도 작용하여 번영하는 자와 멸망하는 자와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이와 같은 사회과학이론을 받아들인 다윈은 자연도태에 맡겨 놓으면 모든 것는 확고한 토대를 놓은 것을 말한다. 아담 스 미스를 정치경제학의 시조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Ⅲ. 국부론(國富論)1. 국부론이란?국부론은 1766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집필되었는데 이는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 천체분량은 910페이지이나 국부론을 인정받게 한 부분은 처음의 두 권이며 분량은 4,5권이 압도적으로 많다.국부론 의 원제는 제 국민의 부의 성질 및 원인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이러한 제목에서 스미스가 부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 역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제목 자체부터가 스미스를 계몽주의 전통의 중심에 올려놓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더욱 확실하게 계몽사상을 답습하고 있는데, 스미스는 경제분야의 각 배역들 을 지배하고 이끄는 법칙들을 설명하고 이러한 행동의 법칙들이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하루종일 아무런 경제활동도 하지 않는 사람이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스미스의 연극무대 위로 올라가는 셈인 것이다.국부론의 주요 논점은 다음과 같다. 각 개인이 자신의 생산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자본을 투자, 운영하는데 최대한 노력하고, 그리하여 제품이 최대의 가치를 확보하도록 생산 활동을 운용한다면, 각 개인은 결국 사회 전체의 연간 소들을 올리는데 그 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가 얼마나 공익의 증대에 기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이 아니라 자신의 생산 활동에 노력을 기울여 오직 자기자신의 삶의 안정만을 보장하려 하고, 자신의 제품이 최대의 가치를 확보하도록 하여, 생산도 다른 수많은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보이지 않는 손 에 이끌려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공익 증진의 결과를 갖는다. 각 개인은 자신의 자본을 투자할 만한 생산 활동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최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관해서는, 당사자것이다. 제2편에서는 노동의 생산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자본축적이라고 보고 저축과 투자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제1장과 제2장에서 자본의 성격과 화폐의 역할을 규명하고, 제3장에서는 자본의 축적이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그는 자유와 안전만 보장되면 경제는 계속 발전하여 국민의 윤택한 생활이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중상주의정책이 얼마나 불필요한지를 논증하고 있다. 제3편에서는 부의 자연적 축적 과정을 논하였는데, 이를 위해 그는 당시 유럽의 중상주의가 얼마나 부의 축적을 제약하였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그가 주장한 이론들이 어떻게 부를 축적하게 되는가를 밝히고 있다. 제4편에서는 중상주의정책이 불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발전에 있어 그것이 얼마나 유해한가를 논증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그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제 5편에서는 조세론과 공채론 등 재정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였다.3. 국부론에 담겨있는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1) 분업론(分業論)부의 원천을 노동에서 찾은 스미스는 부의 대소(大小)를 결정하는 것으로 노동생산력과 유용노동의 크기를 들고 있으며 특히 전자를 중요시하고 있다. 계속해서 스미스는 노동생산력의 크기를 결정해 주는 요인으로는 분업을, 유용노동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자본축적을 들고, 이 두 요인은 국부의 증가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한편 스미스는 제1편 1장에서 노동생산력의 최대의 개선과 노동의 숙련, 기교, 제단의 대부분은 분업의 결과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라고 하고 구체적인 분업의 효과를 핀 제조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즉 그는 분업이 어느 특수제조업에서 어떤 모양으로 작용하는가를 고찰한다면 보다 잘 이해될 것이다. 라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핀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 직공은 그가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하더라고 하루하나의 핀을 만드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본 다면, 그 전체의 작업이 하나의 특수한 직업이 될 뿐만 아니라몇 개의 소부분으다른 일로 신속하게 옮아간다는 것은 그것이 서로 다는 장소에서 전혀 다는 도구로써 행해질 때는 불가능하다. 조그마한 농장을 경작하고 있는 직조공이 자기의 직기(織機)에서 농장으로 또 농장에서 직기로 옮기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만 한다. 이 두 가지 직업이 동일한 작업장에서 행해질 수 있을 때에는 시간의 손실은 훨씬 적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손실은 상당하다. 인간이한 어떤 종류의 일에서 다른 일에 손을 옮길 때에는 약간 빈둥거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가 새로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아주 예민하여 열성을 다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래서 얼마동안 좋은 성과를 거두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는 오히려 그저 단순히 만지작거릴 뿐이다.셋째, 적절한 기계를 응용함으로써 얼마나 노동이 촉진되고 또 단축되는가를 누구나 느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기계의 발명도 원래는 분업 때문이다. 인간이란 주의력을 여러 가지 많은 사물에 분산할 때보다는 그것을 단일목적에 기울일 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 쉽고 빠른 방법을 발견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런데 분업의 결과로서 각인의 주의의 전부는 자연히 어떤 극히 단순한 목적에 기울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일의 성질상 개선의 여지가 있을 때는 노동의 특정부문에 각기 종사하는 여러 사람은 자신의 일을 더 쉽게 신속하데 할 수 있는 제방법을 찾아내리라는 것이 자연 기대된다. 분업이 가장 세분화되어 있는 제조업에 이용되고 있는 기계의 대부분은 보통 직공들이 발명한 것이다. 그들 각자는 어떤 극히 단순한 작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자연히 그 일을 수행하는데 더 쉽고 더 신속한 방법을 찾아내려는데 그들의 사고력을 기울이게 된다. 최초의 화력엔진은 그렇게 해서 발명되었다.그러나 모든 발명이 기계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던 사람들에 의하여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기계의 발명은 철학자 또는 사색가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에 의하여도 이루어졌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각 부문은 철학자들의 특별한 계층 또는 계급에게 직업을 마련해준다. 철학에
    독후감/창작| 2003.07.22| 11페이지| 2,000원| 조회(2,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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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파리와 이를 만든 프랑스인
    후 나폴레옹의 원정으로 이집트와 유럽각지에서 수집된 유물들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제 2제정 파리 시장에 임명된 오스만 남작은 황제의 지원 아래 파리에 대대적인 수술을 가하였다. 1936년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프랑스의 역사적 전통과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결합해 문화정책에 반영한 '문화의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했다. '문화의 민주화'는 1959년 앙드레 말로가 초대 문화부 방관이 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각지에 '문화의 집'이 세워 지역문화의 발전을 도모했으며, 문화재 보존을 위한 여러 장기정책을 확립하였다. 이후 1981년 미테랑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 된 자크 랑은 문화부 예산을 늘리고, 이는 다양한 문화사업의 활성화에 이용되었다. 특히 신개선문,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오르세 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 관련 건축물들 즉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 - 대형건축물)가 미테랑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지어졌다.
    인문/어학| 2003.07.22| 14페이지| 1,500원| 조회(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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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키]스키의 역사와 타는법 평가B괜찮아요
    1. 스키의 역사1) 스키의 기원인류 최초의 스키로 추정되는 것은 기원전 삼천 년 경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눈신 모양의 것으로서, 스웨덴의 듀가르덴(Djugarden)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것은 눈이 많이 내리는 산악지방에서 살던 조상들의 보행, 사냥, 운반 등 교통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라 여겨진다. 고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은 설원의 교통이나 수렵할 때 생활의 도구로 스키를 사용하였다. 노르웨이의 신화 속에서는 스키를 타고 수렵하는 "울"이라는 남자 신과 순백색 옷을 입고 빛나는 얼음 헬멧을 쓴 "스카디"라는 여신 등이 나온다. 또 북부 노르웨이에서는 스키어의 모습을 새긴 석기가 발견되었다. 스키의 어원은 '얇은 판자'라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Ski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진 학설은 없지만 고대 북부지방에서 사용된 눈 위에서 신는 신발의 뜻으로 사용된 노르웨이 말과 영어의 skid, skip, skiff, 및 skate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의 단어들은 모두 '미끄러지는 동작'과 관계가 있다.2) 근대 스키의 역사스키는 아주 오래 전부터 추운 지방 사람들의 사냥과 이동, 운반, 수단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고 BC 3000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발견된 스키로 보아 스키는 기원전에 북유럽 지방과 아시아 산악지방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생활양식의 변화와 함께 스키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1860년 노르웨이 왕실이 스키대회 승자에게 상을 주고 나서부터 생활 용구로서의 스키는 스포츠로서 시작되었고, 드디어 국가적 스포츠가 된 스키는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활발해 졌다. 1888∼1889년에 노르웨이 극지 탐험가로 유명한 프르쵸프 난센이 스키로 그린랜드 횡단에 성공하여 그 기행문에 "스키는 모든 스포츠의 왕자다"라는 명문은 사람들이 스키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이것이 난센이 근대 스키의 정신적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이유이다. 1890∼1896년 오스트리아인 마샬 즈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그 경기는 2㎞, 4㎞, 8㎞경주와 회전경기, 소년부 1㎞경주, 여자부1㎞ 경주 등을 개최하였나 선수는 일본인들이었다. 1931년 2월15일에는 경원선 삼방 약수터에서 일본인의 조선스키 구락부, 철도구락부 공동 주최의 제 1 회 조선스키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출전 선수는 거의 전부가 일본인이고 우리나라 선수는 임영순, 오병희 선수가 참가한 것이 시초이다. 이 때 두 선수는 5위와 3위에 각각 입상함으로써 처음 수확을 거두었다. 이렇게 하여 스키경기는 점차적으로 보급되어왔다. 1946년 4월 정부수립에 따라 조선스키협회는 대한스키 협회로 개정되었다. 당시의 선수들은 대학생과 고교생, 해병대 스키부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1958년부터 우리 나라도 전문적으로 스키선수를 양성하기 시작했다.군대 스키도 1958년 1월부터 육군 3군단 산하에 를 창설하여 진부령에 주둔시켜서 진부령 스키장을 개발시키는 한편, 그 곳에서 훈련하게 하였다. 당시 부대장 유기주 대위와 김춘석 중위, 이석환, 조장휘, 김진호 등이 복무당시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이후부터는 육군공수부대가 대대적으로 스키훈련을 시켜왔다.대한스키협회 주최로 1947년 2월에 제 1 회전국스키선수권대회가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리고, 제 2 회 대회는 서울 광장리 광율성에서, 제 3 회 대회는 울릉도 성인봉에서, 제 4 회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제 5 회는 6.25사변으로 유산되고, 제 6 회는 태백산 정거리에서, 제 7 회(1953)부터는 계속 대관령에서 개최되어 오다가 제 25 회(1971)대회가 강원도 고성군 진부령 스키장에서 처음 열리게 되었다.4) 스키 경기의 역사스키 경기는 1830년대 후반 노르웨이에서 주로 크로스 컨트리 경기와 점프 경기가 많이 개최되었으며, 알파인 경기는 턴기술의 발전과 함께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노르웨이 Telemark 지방의 S. Norheim 선수가 개발한 기술이 오늘날 Telemark로 불리우고, 그 의 라이벌이었던 크리스챠니아 지방의 두 선수가 개발한 턴 면 무리한 동작으로 버티지 말고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중심을 이동시킨다.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무릎을 약간 구부려 뒤로 주저앉듯이 넘어진다. 이 때 엉덩이를 약간 들어 스키 위로 주저앉지 않도록 하고 슬로프 위로 넘어지도록 한다. 눈 위에 주저앉은 다음에도 관성에 의하여 계속 아래로 미끄러지므로 팔을 들어서 손목이 다치지 않도록 하고 점차 속도가 느려지면 팔꿈치를 사용하여 제동을 건다. 스키는 처음 이동방향과 수직이 되도록 하여 이동 속도를 줄인 다음 점차 폴 라인에 수직이 되게 하여 완전히 멈춘다.넘어질 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1 스키 위로 주저앉지 않도록 한다.2 넘어지지 않으려고 폴을 앞에 짚지 않도록 한다.3 스키를 나란히 해서 가능하면 경사면에 직각이 되도록 하여 넘어진다.4 앞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그림 1] 넘어지는 법3. 일어서는 법넘어졌을 경우 오래 앉아 있으면 눈이 녹아 옷이 젖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스키 활동에 불편을 주므로 되도록 빨리 일어나는 것이 좋다. 일어서는 방법은 폴 라인과 수직이 되도록 스키를 놓고 슬로프 위쪽에 앉는다. 만약 스키가 산쪽에 있고 몸이 계곡쪽을 향하고 있다면 누운 자세에서 스키를 들어 엉덩이를 축으로 180도 회전하여 스키가 계곡쪽으로 향햐게 한다. 이 자세로부터 일어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첫째, 양 손에 폴을 각각 쥐고 일어서는 방법인데 엉덩이와 상체를 폴 라인의 윗쪽에 두고 등 뒤로 폴을 짚고 일어서면 된다.둘째, 두 개의 폴을 함께 모아 쥐고 옆으로 짚으며 일어서는 방법인데 이 방법은 체중이 무거운 사람에게 적당하다.일어서기를 실시할 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1 폴을 너무 멀리 짚지 않도록 한다.2 스키를 평행으로 두도록 한다.3 폴 라인과 스키가 수직이 되도록 한다.[그림 2, 3] 일어서는 법{{4. 오르기스키를 타는 동안 경사진 설면을 올라가야할 경우가 있으며 특히 초보자들에게는 스키 적응력과 기본 동작을 정확히 배우도록 오르기을 실시하며 선수들에게는 준비운동으로 경조금씩 이동시켜서 목적 방향에 이르면 정지한다. 이 때 스키를 옮기는 폭은 약 30cm 정도가 적당하다. 폴은 이동하는 동안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한다.{[그림 6] 스타 턴[그림 7] 스타 턴의 유의점{2) 킥 턴(kick turn)슬로프 위에 서서 미끄러지지 않고 180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기술은 유연성과 균형 감각이 많이 필요하며 세 개의 지지점이 확보되어야 한다. 즉, 두개의 폴과 하나의 다리로 지지하고 발을 옮길 때는 가급적 빨리 움직여야 한다.● 킥 턴을 실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1스키를 폴 라인에 수직이 되게 나란히 놓고 양옆으로 폴을 짚고 스키에 엣지를 가한다. 2산쪽 스키에 체중을 싣고 계곡쪽 스키 앞을 들어올려 다리를 쭉 펴 스키가 설면에 수직 으로 서게 한다.3그리고 난 다음 즉시 계곡 쪽 폴을 산쪽 스키 뒷부분에 짚고 체중을 폴에 옮기면서 계곡 쪽 스키의 방향을 반대로 바꾼다.4두 스키의 방향은 완전히 반대로 향하고 있어서 다리가 매우 불편한 모양을 하게 되며, 이것이 킥 턴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5계곡 쪽 스키에 체중을 옮기고 산 쪽 스키를 들어올린다.6엉덩이를 돌리면서 무릎을 구부려 산 쪽 스키의 방향을 바꾸고 폴을 옮겨 짚는다.● 킥 턴을 실시할 때 유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1계곡쪽 스키부터 방향을 바꾼다.2등은 산 정상 쪽으로 향하고 턴한다.3스키를 옮길 때 스키가 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폴을 약간 멀리 짚는다.{[그림 8] 킥 턴3) V자 턴이 기술은 경사진 설면을 V자 등행으로 올라가다가 스키의 방향을 90도 변경하여 사등행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사용한다. 앞 넓힌 스타 턴과 같이 옆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은 같지만 스키가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항상 엣지를 가하여야 한다.6. 활강 자세1) 직활강(Schuss)직활강이란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 폴 라인 방향으로 똑바로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이 때의 자세는 스키를 약간 벌려 나란히 놓고 체중을 두 스키에 나누어 실어 스키 바닥이 모두게 선 자세이다. 이 때 스키에는 엣지를 가하고 특히 계곡쪽 스키에 체중을 많이 싣고 엣지도 많이 가한다. 팔은 옆으로 약간 벌리고 앞으로 내민 형태이며 폴은 뒤로 향하게 둔다. 산쪽 어깨를 계곡쪽의 어깨보다 앞으로 내밀고 상체를 계곡쪽으로 기울이면서 엉덩이는 산쪽으로 내미는 보디 앵귤레이션을 실시하면 된다.사활강을 하다가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폴라인에 수직이 되도록 스키의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나무가 많은 숲속의 좁은 길이나 얼어붙은 설면에서는 산쪽 스키 뒷부분을 넓혀서 반 프루크 자세로 감속한다. 사활강 중 정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계곡쪽 스키의 뒷부분을 의도적으로 넓혀서 반 플루크 자세를 취하고, 업힐 스키는 가하지 않은 채로 다운힐 스키와 평행하게 옮기면서 폴 라인과 수직이 되도록 하여 멈춘다.{[그림 9] 사활강7. 플루크 보겐(Pflug Bogen)스키에 제동을 가하고 한쪽 스키에 힘을 많이 가하여 [그림 10] 플루크 보겐{회전하는 기술을 일컷는 말이다. 플루크 보겐은 슬로프를 따라 연속적으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내려올 수 있는 비교적 쉬운 턴 기술이므로, 초보자들에게 많이 지도하고 있는 기술이다. 뿐만아니라 스템 턴이나 패럴렐 턴 기술을 익히게 하기 위한 기본 기술로서,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하면서 훈련하는 동안 몸의 무게 중심의 이동 방법과 폴을 짚는 시기와 방법을 배우게 할 수도 있다.플루크 보겐은 슬로프를 따라 연속적으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내려올 수 있는 비교적 쉬운 턴 기술이므로 초보자들에게 많이 지도하고 있는 기술이다. 뿐만아니라 스템 턴이나 패럴렐 턴 기술을 익히게 하기 위한 기본 기술로써,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하면서 훈련하는 동안 인체 중심의 이동 방법과 폴을 짚는 시기와 방법을 배우게 할 수 있다.플루크 보겐은 플루크 기술로 방향을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 플루크 기술을 사용하여 방향을 바꾸는 것은 스키의 뒷 부분을 넓힌 채 한쪽 스키에 힘을 많이 가함으로써 이동 방향을 바꾸는 것이지만 플루크 보겐은 사활강, 플루크된다.
    예체능| 2003.07.22| 15페이지| 1,500원| 조회(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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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송가황조를 보고
    『송가황조』를 보고이 영화를 처음 접할 때에는 강의 시간에 보여주는 영화라서 딱딱한 역사물인줄 알고 재미보다는 감상문을 위한 내용파악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느껴지는 매력과 재미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어릴 때부터 선진 교육을 받은 송씨 가문의 세 딸인 애령, 경령, 미령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 세 자매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중국의 근대사를 보여준다. 특히 경령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앞부분에도 나오듯이 세 딸은 각각 돈, 중국, 권력을 사랑한다. 그리고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중국의 대부호인 공상희, 중국의 국부로 칭송받는 손문, 국민당의 위원장인 장개석과 결혼하여 남편을 도우면서 중국의 근대사를 주도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경령의 행적에만 초점을 맞추고 애령와 미령은 보조인물, 혹인 반동인물로 비춘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이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발 이다. 손문은 중국의 모든 사람이 어릴 때부터 신발을 신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맨발은 바로 힘없고 돈없는 나약한 민중을 상징하는 소재로 쓰인다. 곧 신발은 신는다는 것은 생활고의 탈출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문명국가로의 재탄생, 더 나아가 사상과 이념에 관계없이 신발을 신는다는 의미로 국가내의 단합과 화합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 내에서 전족을 한 여인이 비추어진다. 경령이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하여 뛰쳐나올 때 하인들은 전족을 하여 그녀를 쫑지 못한다. 여기서 전족은 중국의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적인 상징을 뜻하고 전족을 하지 않는 경령은 근대화된 신여성임을 나타내는 것이다.그리고 첫 중국제 비행기의 시승식 때 비행기 앞부분에 알파벳으로 새겨진 로고를 자주 보여준다. 이는 미국을 타도하고 제국주의를 몰아내자는 자부심이 강한 중국 지도자들의 주장과 대치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주장과 실제의 행동이 모순되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선거 기간인 한창인 지금의 우리 나라 후보들이 내거는 슬로건도 한번 의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송씨 가문은 그 당시의 중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송씨 가문은 번영을 꾀하지만 가정 내의 분열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된다. 그 당시 중국 사회도 근대화를 꾀하지만 외적으론 제국주의, 내적으론 공산주의 타도라는 문제로 인해 혼란한 상태로 빠진다. 흩어지고 멀어졌던 송씨 가문의 세 자매가 다시 모여서 화해를 하는 시점을 기하여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는 점을 봐도 그렇다. 그리고 어머니가 위중할 때 세 자매는 다시 보여 서로에게 쌓여있던 앙금을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협주를 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그들의 얼굴과 어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며 어머니는 안도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장면은 서로의 가치관과 이념을 인정하지 못하여 대립되었던 감정이나 사고의 차이도 그들의 가슴속에 지는 따뜻한 정과 추억으로 극복할 수 있고, 이러한 가족애, 동포애, 나아가 인류애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라는 점을 보여준다.영화가 후반 부분에 이르면서 많은 사건이 자막을 통하여 순식간에 몇 십년이 자나가는 바람에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경령을 제외한 두 자매의 활약상이나 기여한 점이 빠져있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이전에는 미쳐 몰랐던 중국의 근대사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고 뚜렷한 가치관과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처음 송가황조 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딱딱한 역사물이라고 생각하여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감상문을 쓰기 위해 펜과 노트에만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필름이 돌아갈수록 한편의 커다란 서사극과 같은 이 영화 속에 빠져들었고, 결국은 펜을 놓고 말았다. 이 영화는 송씨 집안의 세 딸의 일생을 빌어 근대 중국사를 조관하고 있다. 청조가 붕괴된 후, 중국은 많은 혼란과 격동의 시대를 맞게 된다. 손문과 그의 친구인 송사리는 혁명을 통해 중화민국을 수립한다. 송사리에게는 애령, 경령, 미령이라는 세 명의 딸이 있고, 송사리는 송씨가 지배하는 천하를 위해 딸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 진보된 교육을 받게 한다. 그 후 세 자매가 각각 중국의 내노라하는 남자들과 결혼하고 계속되는 중국 사회의 불안정 속에서 이 세 자매의 모습을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사를 살펴보는 것이다.이 영화는 나에게는 세 딸이 있다. 한 명은 돈을 사랑하였고, 한 명은 권력을 사랑하였고, 다른 한 명은 중국을 사랑하였다. 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세 자매는 이 말대로 유학을 마친 후 돌아와서 각각 대부호인 공상희,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손문, 국민당의 위원장인 장개석과 결혼하게 되고 세 자매의 탁월한 능력으로 그들의 남편을 도와 중국의 근ㆍ현대사를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초점을 맞추는 인물은 경령이다. 애령과 미령은 그 역할이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동인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경령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범인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는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로 나타나는 반면 애령과 미령은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의 소유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애령은 상당한 사업가로, 미령은 대외적 로비스트로 많은 활약을 했다. 이러한 두 자매가 기여한 점이 축소되거나 잘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독후감/창작| 2003.07.22| 2페이지| 1,000원| 조회(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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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사상][A+]프리드만의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비판 평가A+최고예요
    1. 서론이번 리포트는 프리드만의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비판 을 주제로 잡았다. 하지만 프리드만의 모든 이론을 이 리포트에서 다루기엔 내 능력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교재 14장에서 다루는 스테그플레이션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힌 케인즈 학파의 이론을 반박하는 것을 초점으로 삼았다. 이하의 서론 부분에서는 간단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본론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첫 번째 부분에서는 케인즈 혁명에 대해서 다룰 것이도 두 번째 부분에선 1960년대 이후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케인즈학파에 대한 프리드만의 비판을 다룰 것이다.20세기 초반 세계경제가 공황상태에서 허덕일 때 케인즈는 불황과 실업의 문제를 당시의 핵심적 과제라 보았으며, 그 구조적 모순을 총수요의 시각에서 접근하려 했으며, 이에 대처하기 위한 유일한 정책수단으로서 총수요관리를 위한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을 설파했다. 이 정책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적이었고 60년대까지 세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였다.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주요국가에서는 격렬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날이 갈수록 경제적 불안정이 심화되어 갔다.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심이 초미의 경제문제로 부상되었고, 정책논의는 실업문제로부터 인플레이션문제로 그 조준이 바뀌어졌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세계경제는 불황과 인플레이션의 해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때까지 볼 수 없었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의 이상현상이 나타났었던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은 제2의 난제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이다.프리드만은 사실상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경제학이 무력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이미 1956년에 《화폐수량설-재고》라는 논문에서 화폐수량설을 통하여 인플레이션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었다. 또한 케인즈 이론이 학계를 풍미하고 있던 1969년 프리드만은 화폐수량설을 개량하고 검증한 논문들을 펴냈다.프리드만은 철두철미한 반케인즈적 입장에서 케인즈 혁명에 대한 반혁명의 기치를 들고 케인즈 경제학에 정면으로 반격을 가했으며, 화폐만이 중요하다 (only m하기에 이른 것이다.2. 본론-프리드만의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비판1) 경제학의 제1의 목표와 케인즈 혁명1930년대 이르러 자본주의경제는 세계대공황의 회오리 속에 심각한 위기국면에 함몰되어 그 심도는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러나 당시의 고전파 경제학으로는 그 심각한 위기상황을 명쾌하게 해명하고 그에 대처할 아무런 정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고전파의 전통적 교의는 신뢰를 잃어 갔으며, 그 패러다임은 퇴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경제학의 제1의 위기 가 도래한 것이다.케인즈의 일반균형은 당시의 경제적 상황으로는 비길 수 없는 금자탑으로 평가되었다. 케인즈는 이미 1920년대 중반기부터 자본주의경제학의 내부구조의 변화과정을 통찰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세계공황의 요인을 추적하고, 그 내적 모순을 진단하여 자본주의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한 경기조정적 총수요증가정책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일반균형이 출간되자 그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치열했으나 시간이 경과됨에 따란 많은 젊은 경제학자들이 그를 신봉하고 추종했으며, 비단 학계만이 아니라 정책입안자들에게 널리 확산되어 갔다.클라인은 케인즈혁명 에서 케인즈의 학문적 업적을 경제학의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그 후 케인즈혁명은 경제사상사에 있어 어떠한 경제사상에 비길 수 없을 만큼 세계경제학계에 침투되었고 그 영향력은 심대했다.케인즈경제학은 케인즈 자신이 예고한 바와 같이 일반균형이 출간된 지 겨우 10년이 경과되기 이전에 세계경제학계를 풍미했다. 케인즈경제학은 현실에 대한 관찰을 매우 중시했고, 실업과 불황을 절실한 현실문제에 대한 정책적 해결을 깊이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의 학 또는 정치경제학 으로서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자유세계의 주요국가에 널리 침투되어 갔다.케인즈경제학은 어느 한정된 상황에 대한 분석과 정책논리에 그치지 아니하고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 상황에 확대 적용될 수 있는 이론과 정책방법을 추구하는 일반이론이었기 때문에 급속하게 널리 침투되어 갔다.케인즈혁명의 성공은 그 패러다임이 과학혁명의 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므로 케인지언 패러다임은 사회사상에 있어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이와 같은 일반이론은 경제학에 혁명을 일으켰고, 그 패러다임과 정책논리의 영향력은 심대했고 광활했다. 20세기의 경제학설사에 있어서 일반이론처럼 심대한 영향을 미친 업적은 없었다. 해리스는 케인즈는 하늘의 계시를 받은 경제학자였다 고 평가할 만큼 케인즈는 위대한 경제학자였다. 분명히 케인즈혁명 의 지적풍토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이다.케인즈이론에 의하여 1960년대 전반까지 경제학이론은 거의 총수요의 분석에 집중되어 왔다. 케인지언은 경제활동의 수준은 오직 총수요에 의존한다는 유효수요의 원리를 충실하게 신봉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유효수요원리의 배후에는 명목임금과 가격은 경제외적 요인에 의하여 고정되고, 또한 총수요량이 결정되면 공급은 수동적으로 수요와 균등하도록 대응된다고 상정했다. 따라서 경제학의 이론적 중심과제는 총수요를 구성하는 요일을 분석하는데 있었다. 다만 그 분석과정에서 주요한 논점으로서 소비, 통화의 이자율탄력성의 문제가 끈질기게 논의되어 왔으며, 이것이 프리드만과 케인지언과의 논쟁의 한 중심적 테마가 되었던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논쟁의 쟁점은 인플레이션의 문제였다.초기 케인지언과 같이 명목임금과 가격이 하방경직적이리고 상정한 견해로는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해명할 수 없음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므로 총수요가 어떤 요인에 의하여 변동했을 때, 생산과 가격의 변화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분석하는 총공급과 가격이론이 너무나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케인즈 모델에 있어서는 가격이 고정된 일정치이거나 그 모델 밖에서 결정된다고 상정하고 있다. 즉 가격, 임금은 경직적이므로 이론상 일정치라 상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델인 가격이나 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방정식 하나가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프리드만이 정곡을 찔러 방정식이 하나 빠져있다고 지적한 바로 이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케인지언이 절실하게 요청했던 총공급이론과 가격이론의 결정적이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은임금은 비로소 내생적으로 결정되며 케인즈 모델에 빠져있던 방정식 하나가 보완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현상의 해명을 위한 돌파구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명목임금의 변화율과 물가의 변화율과의 관계를 관찰한 결과 양자 사이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필립스곡선의 종축을 물가상승률로 변환하여 이 곡선은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과의 상층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물가는 비로소 내생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후 주요 선진국에서 실증결과에 의해서 관찰한 결과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는 안정적인 상층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필립스곡선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경제이론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었던 것이다.케인지언으로서 많은 연구업적을 쌓아온 오쿤은 그의 논문에서 필립스곡선과 자신이 제기한 오쿤의 법칙을 연관시킴으로써 총공급과 물가상승률과의 일정한 관계를 도출시켰다. 그리하여 총공급과 실업률을 연관시키고 이를 확대해석하여 종축에 물가상승률, 횡축에 총공급을 나타내는 좌표에서 정의 기울기를 갖는 필립스곡선을 도출하고 있다. 이 곡선은 필립스곡선을 오쿤의 법칙 에 따라 변환시킨 것이며 기본적으로 필립스곡선의 개념과 동일하다.필립스곡선은 케인즈경제학의 결정적인 결함을 보완하는 더 없는 복음이었으며 경제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정책입안자에 있어서도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것은 안정적인 필립스곡선이 성립한다면 총수요증가정책을 실행함에 있어서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움직일 수 없는 구조적인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정책을 입안하면 실업률의 상승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며, 실업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에는 인플레이션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필립스곡선은 고용증대와 인플레이션의 진정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의 동시적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들 양자 가운데 어느 한가지의 해결을 정책적으로 택일하지 않으면 안 지지하는 논리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케인즈정책은 정책수립가에게 깊이 침투되었고 1960년대의 고도성장과 번영은 케인즈의 정책적 공로라 인식했고 케인즈혁명 의 영광은 최절정에 이르렀다.2) 스태그플레이션과 경제학의 제2의 목표원래 필립스곡선은 이론적인 연구결과에서 착상된 것이 아니고, 필립스가 영국에 관한 실증자료를 근거로 한 통계적인 결과에서 발견한 곡선이었다. 필립스곡선이 지닌 정책적인 의의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이 곡선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업률과 명목임금율 사이에는 안정적인 상관관계가 성립한다는 필립스곡선의 혁명적인 결론은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이르러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경제의 인플레이션에 관한 데이터는 필립스곡선이 지니고 있는 정책적 함의에 대한 모든 신뢰와 확증을 산산이 붕괴시키고 말았다. 1970년대에 이르러 주요국가에서 출현된 양상은 실업과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아무런 예측 가능한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다.프리드만은 1956년부터 1975년까지 과거 20년동안 주요 선진 7개 공업국의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변화에 관한 다음과 같은 실증적 데이터를 제시하고 도표를 작성하여 필립스곡선의 붕괴를 선언했다.미국에 관한 추이를 살펴보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에 상층관계는 완전히 붕괴되고 있으며,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독은 실업률은 거의 수직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프리드만의 자연실업률이 마치 이 수준에서 이행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난맥의 연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캐나다는 1970년대 후반부터 고율의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 같이 나타나는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다. 영국은 실업률은 증대되면서도 인플레이션은 진정되어 가는 추세를 보였으나, 슬럼플레이션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주요국가에 있어서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에는 아무런 상층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명.
    경영/경제| 2003.07.22| 6페이지| 1,500원| 조회(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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