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 현대미술혼란스러웠던 19세기가 지나고 새로운 20세기가 대두했다. 한 세기가 바뀐 만큼 여러 방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 미술에서의 변화는 전 세대 것을 계승, 발전시키기 보다는 전에 것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는 미학운동이 전개되었다. 1900년을 시작으로 한 20세기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과학과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해 사회변화가 어느 때보다 급격했던 때이다. 사회적 변화가 급격한 만큼 미술에서도 어느 때보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때였다. 빈이 세계 흐름의 중심지역할을 한 이때는 세기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왕이 지배하는 문화가 대부분이여서 여러곳에서 과거의 양식이 쓰이고 있었다. 건축에서 고딕양식와 바로크 양식이 쓰이고 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창조가 억압되는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미술가들은 새로운 세계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듯한 사실적인 19세기 미술이 아닌 파격적이고 개성적인 미술이 막을 열었다. 20세기 미술을 추상미술의 등장, 고급미술과 대중문화의 경계 허물기, 대중화....라고 특징짓는 것을 보면 이전과의 차이점을 알 수있다. 지금부터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연 20세기의 미학운동에 대해 알아보자.첫 번째 주자는 Art Nouveau 이다. 새로운 미술 이란 뜻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나타난 운동이다. 아르누보는 전통적 예술에 반발해 예술을 재정립하려는 당시 미술계의 풍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전통으로부터의 이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수주의를 깨부수는 단순하고 자연주의 적인 느낌이 강했다.비디오에 나온 알루미늄소재로 만든 건물은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현대적감각이 뛰어났다. 네모반듯한 건물이 아닌 1층은 반만 걸물이고 반은 비어있어서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하는 멋진 건물이었다. 내부구조도 단순하지 않고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하게 되어있었다. 이렇게 아르누보는 건축면에 까지 영향을 끼쳤다. 자연형태에서 모티브를 얻어 유연하고 유동적인 선을 건축에 도입하고 특이한 작품들이 아닐 수 없었다.브뤼케파는 독일제국주의 세대에 탄생한 것으로, 유럽인들의 낡은 취향을 벗기위해 원시로 돌아가자는 족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파이다. 그들은 현대와 미래를 연결짓는 다리역할을 한다고 해서 다리파 라고 불렸는데, 이 화파는 부르주아 중심의 낡은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앞에나올 야수파와 비슷한 강렬한 원색과 고의적인 형태변형에서 읽을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 Kirchner는 날카로운 선과 강렬한 원색이 어울어져 강한 호소력을 지닌 작품이 많다. 게르다 반신 초상 이란 작품에서는 거칠게 잘려진 얼굴의 특징이 아프리카가면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구성의 강렬함, 거친 채색과 스케치가 융합되어 추상적 공간에 의해 더 역동성을 띠게되었다. 그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되, 색감과 구성면에서 전의 것들과 달랐다. 앞서 언급한 작품에서처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원주민의 원시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그 기법들을 이용하면서 원시로 되돌아가소 싶은 자신의 맘을 표현했다.얼마나 현실에 각박함을 느꼈으면 원시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미술로 표현했을지 그의 갈망이 느껴졌다.20세기 반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야수파(Fauvism)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외화의 혁신운동이다. 젊은 화가들의 정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난 이 운동은 강렬한 색채를 자유분방한 터치로 여과 없이 대상을 재현한 충격적 이기까지한 대담성이 주를 이룬다. 이들의 첫 전시를 보고 비평가들은 자유분방하고 거칠어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야수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야수파는 색채의 해방 이라는 말에 너무도 딱 맞게 색채의 자율성이 극도로 잘 표현되어있다. 안 어울릴 듯 한 원색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색채로서 모든 것을 표현했다. 대표적인 화가 Matisse는 색의 마술사 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색채 표현이 뛰어났다. 야수파를 대표하는 그림 모자 쓴 여인 에서 어두운 색으로만 표현되던 그림자를 초록색 선으로 펼쳐져 있다. 그림속에 그림이 있는 화중화 인 것이다. 이 작품은 마티즈의 화려함이 잘 나타나있다. 비너스를 형상화 한 환희, 고요 는 나체인 세 여자가 물을 뒷배경으로 한 여인을 숭배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처럼 단순화 되어있는 구름, 산등성이가 인상적이었다. 오달리스크 시리즈에서는 여성의 관능성이 잘 표현되 있고, 동양적 병풍과 힌두인 오달리스크 들에서 느껴지듯이 이국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마티즈를 알 수 있었다. 빛을 뚜렷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어디선가 세어들어오는 듯한 오묘한 명암처리가 훌륭하다.이상의 작품들에서 마티즈는 대담한 색채를 거침없는 터치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했고, 명암이나 빛의 처리에서도 종전과는 다른 식의 기법이 그 만의 특징이다. 하지만 자유속에서의 조화랄까? 색깔뿐아니라 모든 구성요소간의 조화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잘 이루러져 있다. 말년의 마티즈는 종이를 오려 붙이는 파피에 데쿠페 라는 기법을 써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야수파의 또 다른 화가 드렝은 마티즈와 공동작업도 하고 길을 같이 간 사람으로서 원시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마티즈의 여러작품에서 알아보았듯이 인상주의는 빛에 의한 명암법을 거부하고 적, 청, 녹, 황의 4원색을 강렬한 필치로서 병렬하는 대담한 수법으로 격렬한 개성적인 표현을 시도하였으며 형태는 극도로 단순화시켰다. 인상주의는 즉물적인 감수성을 배제하고 회화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전통적인 기법을 재현하여 발전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색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이러한 해석은 구질서로부터 이탈하고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고를 강조하고 있다.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회화개념을 부정하고 자연주의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색채 그 자체의 표현을 강조하는 근대 미술의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미술사의 전환점 역할을 하는 입체파(Cubism)는 파편같은 작은 형태들의 조각으로 구성되어 여러면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화가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이 크다. 앞에서 언급한 입체파의 특징인 종래의 것을 모두 버린 인물이 바로 피카소 이다.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입체파의 화두를 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비뇽의 아가씨 는 20세기 최초의 현대적인 그림으로 꼽히고 있다. 5명의 여자가 서있는 모습인데 몸은 극도로 각이 지고 조각이 나있고 반쪽면의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반쪽면은 측면을 향하는 흉측한 모습을 하고있고 무슨 가면을 쓴듯한 모습도 있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그림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하는 이유는 멀까?일단 너무 특이했다. 사실적인 19세기의 그림도 아니였고, 야수파처럼 색채의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니였고, 아르누보의 신섬함도 아니였다. 원시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먼가 많이 파괴된 듯 한 느낌을 받았다. 파괴라는 것에서 피카소만의 독자성을 볼수가 있다. 그림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과감히 무시해버린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세계에도 몇 개의 시대로 나눠 볼 수 있다.청색 시대와 장밋빛 시대가 그것인데 피카소 자신의 개인적인 변화시기에 맞춰 그림들도 다른 분위기로 표현되었다. 청색 시대는 그림들의 배경이 하나같이 푸르스름하다. 시원한 느낌의 푸른색이 아닌 음산하고 싸늘한 느낌의 푸른색... 이 당시의 피카소는 몹시 가난하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거지와 부랑자들의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그들의 인간본연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곡예사 가족,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깡마른 기타를 든 노인, 우울함을 상징하는 푸른색이 그의 힘겨운 마음을 대신해 준 것 같다. 장밋빛 시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난 자신을 발견하고 그림 또한 청색시대와는 확연히 다르게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는 여자를 꾀 아름답게 표현했고 가장 정상적인 그림들을 그린 시기이다. 콜라쥬 작품은 신문지 조각을 직사각형, 동그라미 등의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낸 것인데 대중문화처럼 덧없는 세태를 비판한 작품들이다. 즉흥적으로 선과 여러모양의 면으로 되어있고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 한 것처럼 유유히 리듬을 타고 있다. 단순한 여러 색깔의 선, 면이 아닌 추상적 의미를 내포한 서정적인 음악과 어울어진 특이한 방식이다.절대주의(Supermatism)는 기하학적인 순수 추상 회화로 대상을 극도로 간략화하고 순수감성을 절대시하는 회화 양식이다. 자연형태 그대로를 묘사대상으로 하지 않고 기하학적인 색채평면 형태만을 묘사했다. 색채와 표면의 모습만이 중요하며 추상적 경향은 형태의 제로 에서 출발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절대주의는 예술운동이라기보다는 실존의 양면성을 반영하는 정신적 태도로 여겨지면서 구성적인 기계미, 기하학적 공간구성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예술적 측면의 것들이 있는반면 절대주의는 전쟁으로 피바다가 된 세계를 비판했다. 붉은 광장 은 절대주의를 잘 표현하면서도 종교적 경외감이 묻어났다. 길게 장례행렬이 이어지는 그림도 있었는데 전쟁 때문에 생긴 사상자를 후송하는 당시 베를린의 모습과 같았다. 후기 인상주의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말레비치는 자연형태 그대로를 묘사대상으로 하지 않고 기하학적인 색채평면 형태만을 묘사했다. 처음에는 흰바탕에 네모꼴로 기하학적인 것을 표현하다가 이어 원, 십자가, 세모를 추가해 더욱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한 면의 색깔을 일률적으로 칠하지 않고 짙은 곳에서 옅은 곳으로 나아가듯이 자연스런 색깔의 변화를 한 면 한 면에 나타내었다. 그는 환경에 의한 어떠한 다른 반응도 깨뜨리고 ‘자연 그 자체의 실제와 같이 의미 있는’ 새로운 실제를 창조하려 했다. “예술에 있어서 순수한 감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던 그는 감성의 극한적인 극점으로서의 추상을 주장했다. 다소 이해가 안가는 어려운 부분인데 그림을 보니 금방 그의 뜻을 읽을 수 있었다.다다이즘(Dadaism)은 세계1차 대전 말엽부터 유럽과 미국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다다는 전통에 반대하고, 합리적인 것에 반대하며, 제도에 반대하고, 모든 것에 반대한다. 그 기본적 원칙은 부정이다. 이런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