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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서에 나타난 기독론적 윤리
    로마서에 나타난 기독론적 윤리(로마서 6:1-23에 나타난 직설법과 명령법을 중심으로)전주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라황용차례1. 바울 윤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전제1.1 바울 윤리의 기독론적인 기초1.2 바울 윤리의 성례론적 기초1.3 바울 윤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전제2. 바울의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2.1. 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 관계의 연구사2.2. 본문의 자리 매김2.3. 롬 6:1-23에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2.3.1. 요약적 본문 석의2.4. 신학적 결론3. 결론1. 바울 윤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전제그리스도인이 "믿음 없는 행위자나 행함 없는 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신약성서의 윤리, 특히 바울서신의 윤리를 살펴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연구 과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을 드러나게 강조하는 바울조차도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서로 나눌 수 없는 통합적인 관계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를 밝히기 전에 바울의 윤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전제들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1.1 바울 윤리의 기독론적인 기초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에 관한 위의 서술이 보여 주듯이 바울 윤리의 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최종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행하셨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종말론적인 구원 사건"이 바울 윤리의 근거이다.이러한 바울 윤리의 기독론적인 기초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바울의 한 해석인 칭의론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바울이 로마서 서두에서 언급하는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살전 3:2; 고전 9:12; 고후 2:12; 9:13; 10:14; 갈 1:7; 롬 15:19; 빌 1:27)인 바로 "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다(롬 1:16-17).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믿음의 의이다(롬 3:23). 바울의이 찬가의 윤리적 의미를 부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는 그리스도의 삶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는 성육신(成肉身)에서 나타난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이 윤리의 기초라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순종하였던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순종과 비하가 요구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된 것같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 받을 것을 요구하고(고전 11:1), 또 주님을 본 받은 자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에 대해 기뻐한다(살전 1:6-7).1.2 바울 윤리의 성례론적 기초뿐만 아니라 몇 바울서신에서, 특히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 윤리의 기독론적인 기초와 함께 성례론적인 기초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기초는 각각 독립적인 기초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성례론적인 기초는 기독론적인 기초 아래 놓여 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성례는 그리스도 사건의 현재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례는 바울 자신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 바울 이전에 이미 초기 기독교회 안에서 성례가 행해지고 있었다. 바울은 그것을 기독론적으로 강화하고 심화하였다.우선, 성례 중 세례의 윤리적 의미를 살펴 보자. 이 주제 연구에 대한 '전형적인 성경 본문'(locus classicus)은 로마서 6장이다. 세례를 통해서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결합하게 된다(롬 6:3). 칭의자는 세례를 통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 하나됨은 어떤 '신비적인 합일'(unio mystica)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례로써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가 된다(롬 6:4-9). 그리스도와 수세자의 이러한 하나됨은 "함께 장사되었고"(4절), "연합한 자"(5절),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6절), "그리스도와 함께"(8절), "함께 살 것이다"(8절)로 표현된 '함께'-공식문(suvn-Formel)에서 드러난다(갈 3:27. 29 참조). 세례 사건 안에법-명령법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2. 바울의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구원의 은총에 대한 '직설법'과 인의자에게 부과되는 의로운 삶의 요구인 '명령법'의 관계가 바울 윤리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먼저, 문제 제기에서 현재의 논의 국면에 이르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사를 간략하게 언급하고, 그런 다음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밝혀줄 표준적인 본문인 로마서 6장 1-23절의 석의적 의미와 신학적인 의미를 살펴보자.2.1. 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 관계의 연구사바울서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곳곳에서(갈 5:25; 고전 5:7-8; 롬 6:12ff; 빌 2:12f 등) 직설법과 명령법이 함께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갈 5:25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직설법)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명령법)라든가, 고전 5:7에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직설법)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명령법)처럼 직설법과 명령법이 동시에 한 문장에서 언급된다. 직설법과 명령법의 이러한 공존(共存)을 처음으로 바울 윤리의 논의 주제로 삼은 사람은 스위스 바젤의 신학자 베른레(Paul Wernle, 1872-1939)였다. 그는 이미 일어난 구원 약속인 직설법과 사도 바울의 권고인 명령법의 관계를 '모순'으로 규정하였다). 이로써 양자의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 이상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이렇게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조화롭지 않은 모순으로 이해한 베른레와 다르게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양자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공속(共屬) 관계에서 해명을 시도한다. 즉 불트만은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내용적으로 불가피한 "이율 배반" 혹은 역설로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직설법과 명령법이 형식적으로는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나, 내용적으로는 빌 2:12f에서와 같이 서로 공속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명령법은 인의(認義)의 사실 위에 세워져 있으며 직설법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설명된다이 주제들은 직선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인의(認義)의 현실이라는 보다 큰 주제 안에서 불가분(不可分)으로 공속(共屬)되어 있다. 바울은 5장에서 주장한 세상에서의 종말론적인 삶을 세상의 일상, 교회, 개인 실존의 현실로부터 설명한다.이를 위해 바울은 믿음의 의로서 하나님의 의의 현실적인 의미를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로 규정하고, 인의자에게 옛 시대에서 새 시대로의 시대 전환(Aonenwende)을 굳게 붙잡을 것과 이에 부합된 주권(통치권) 교체(Herrschaftswechsel)를 요구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6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서 "바울은 죄로부터의 해방을 단지 죄의 권세로부터의 분리로만이 아니라 즉각적인 새로운 순종 관계로의 편입, 곧 새로운 존재 안에서의 영의 섬김으로 묘사"한다. 바울은 전해 받은 세례 전승 본분(롬 3:25f; 4:25)에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관점으로부터 인의 진술을 강조한다. 인의자는 수세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속죄 죽음의 효능에 참여하게 되며, 그분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며, 살아 계신 주님이시요 화해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에게 있어서 "세례, 인의, 성화는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Miteinander)"이다. 이러한 직설법과 명령법의 불가분성은 성령의 권세 안에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다루는 7-8장의 명제적 요약 구절인 7장 5-6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이렇게 볼 때 5-8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죽음의 권세로부터의 자유',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성령의 권세 안에서의 자유'라는 주제들이 단순하게 직선적으로,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인의에 대한 현실적 해명이라는 과제 앞에서 통합적으로 설명되는 불가분의 한 덩어리이다. 특히 구원의 직설법을 묘사하는 세례 본문(6:1-11)은 인의자에게 "거룩함에 이르라"(6:19)는 권면으로 요구되는 명령법 진술인 권고 본문(6:12-23)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통일성 있는 한 '동등, 일치'란 뜻이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6절) "죄의 몸"(toV sw'ma th'" aJmartiva")에서 "죄의"는 여러 속격의 용법에서 '성질의 속격'(genitivus qualitatis)이다. 바울의 경우 죄를 지었던 인의자의 몸은 동시에 "죄로 죽을 몸"(12절)이다. 세례 받은 인의자는 더 이상 이 몸으로 하여금 죄에게 '종 노릇하지'(douleuvein) 못하게 해야 한다.(8-9절)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된 자인 수세자에게 사망이 다시 '주인 노릇할'(kurieuvein) 수 없기 때문이다.(10절) th'/ uJmartiva/는 '대항의 여격'(dativus incommodi)이며 tw'/ qew'/는 '호의의 여격'(dativus commodi)이므로 여기서는 각각 '죄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위하여'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분의 죽으심은 '죄에 맞서서' 단번에 죽으심이며, 그분의 사심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신 것이다. 특히 9절의 "다시 죽지 아니하고"(oujkevti ajpoqnhv/skei)와 "다시 주인 노릇하지 못함"(oujkevti kurieuvei)과의 맥락에서 볼 때 "단번에"(ejfavpax)가 강조되어 있다.(11절) 이 구절에서 이제 6장 전반부를 마감하는 필연적인 결론(conclusio)이 내려진다. 그러므로 수세자는 이제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하나님을 위해서는 산 자로 여겨야 한다. 여기서 '여기다'(logivzesqai)는 단순하게 '생각하다'는 뜻이 아니라 고린도후서 5장 14절처럼 '판단하다'(krivnein)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2절) 세례를 다루는 앞 단락(1-11절)에서 바울은 수세자가 이미 죄의 권세에 대하여 죽었음(2. 6절)을 말한 다음 (교리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삶을 위한 권면의 단락(12-23절)의 첫 머리에서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mhV basileuvetw)"고 말한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 구절에서 바울은 '죄
    인문/어학| 2005.06.20| 13페이지| 2,000원| 조회(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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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권으로 읽는 12소선지서(폴 하우스의 구약신학을 중심으로)
    한권으로 읽는 12소선지서???? 12소선지서 신학세미나 / 박경철교수 ?????????????????????? ????◇ ◇??????????????????????????????????????전주대학교 선교신학 대학원 라황용한 권으로 읽는 12소선지서(폴 하우스의 구약신학을 중심으로)전주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 구약전공 라황용참고도서: 폴 R. 하우스, 『구약신학』, 장세훈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619-721.본인은 약 1002page에 달하는 폴 R. 하우스의『구약신학』을 읽는 기회가 있어 책을 읽어갔다. 그는 최종형태의 본문을 히브리 정경의 순서로 읽는다. 그러던 중 12소선지서의 대목을 읽는 중에 폴 하우스도 12소선지서를 한권으로 읽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더욱 관심있게 읽게 되었고, 이 부분을 요약할까 생각하다가 이 부분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각권의 서론적으로 언급된 전문을 소개하였다. 물론 중간 중간에 주제별로 된 단락은 생략하였다. 폴 하우스는 12소선지서를 한권으로 “제14장 약속을 준행하시는 하나님”란 주제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제14장 약속을 준행하시는 하나님)12선지서서론)영어 성경과 히브리 성경의 본문 배열 가운데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선지서 말미에 이르러 드러난다. 영어 성경은 12선지서를 개별 예언서들로 간주하며, 이 책들을 소선지서라고 칭한다. 이러한 명칭은 그 책의 중요성보다는 그 분량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반면 히브리 성경은 이 책들을 열두 부분으로 전재된 단일 예언 작품으로 간주한다. 더욱 애매한 사항은 이 같은 두 종류의 12선지서 배열이 수 세계에 걸쳐 전해 내려왔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 순서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더욱 힘들게 되었다는 점이다.히브리 사본들은 이 책들을 영어 성경의 순서와 동일한 위치에 배열시킨다. 헬라 전승은 후반부의 6권을 똑같이 배열시키는 반면, 전반부의 6권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고 있다: 호세아, 아모스, 미가, 요엘, 세아는 아내의 외도로 말미암아 깊은 고뇌의 심연에 빠져든다. 자신은 이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의 사랑을 외면하는 여인의 불성실을 통해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배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사랑을 그들에게 증거한다. 이러한 사랑은 두 개의 기본 단락 속에 묘사되고 있다.1-3장은 우상숭배와 간음으로 물든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는 반면 4-14장은 부패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인내를 설명해 준다. 그렇지만 선민의 모든 죄악들은 간음과 같이 신앙의 배신으로 간주되며 그로 인해 이 간음 이미지를 호세아 신학 연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본문은 호세아의 사역이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및 히스기야 시대(약 주전 767년-687년)에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본문은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약 주전782-753년)에 사역했다고 진술함으로써 그 배경을 좀더 명확하게 소개하고 있다.아마도 여로보암에 대한 언급은 이스라엘을 위한 호세아의 사역이 번영의 시대에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이 시대는 주전 722년 앗수르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끈 정치적 격변이 발생하기 전 시대를 말한다. 정경에서 유일한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알려진 호세아는 아직도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시간이 남아 있음을 선포하면서 임박한 이방 나라의 침략을 저지하려고 애쓴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역사적 장면을 설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경적으로 말하자면 역사적 배경은 독자들에게 예언의 말씀이 심판의 선포를 위해 주어진 것만큼이나 심판의 저지를 위해 주어진 것임을 말해 준다. 이미 열왕기하 17장과 같은 본문은 이 같은 점을 분명히 해두었다.호세아의 소명은 그 특이한 특성 때문에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부정한 자식”을 낳으라고 말씀하신다(1:2). 많은 학자들은 여호와가 과거의 문제를 지닌 여자와 혼인하 설명해 나간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시내산 언약 위반과 열방의 보편의 언약 위반을 다함께 다루는 광범위한 접근을 시도한다. 선지자 아모스는 죄악된 행실을 거듭 비난한다. 본문은 일련의 단락들과 아울러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정죄 아래 놓일 즈음 또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즉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정죄에서 제외된다. 아모스와 같이 이 남은 자들은 그 시대를 오염시킨 더러운 죄악의 그물에 사로잡힌 희생자들이 아모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에 대해 격노하시며 그것을 제하시려고 결심하신다. 죄인을 향한 여호와의 인내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화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심판이 곧 전개될 것이다.아모스는 호세아와 같은 시기에 사역했다. 아모스의 표제는 아모스가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와 유다 왕 웃시야의 통치 때 예언을 선포했다고 소개한다. 아모스는 주전 760년경 북 이스라엘 왕국의 벧엘과 사마리아에서 예언을 선포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아마도 최초의 “문서 선지자”일 것이다. 비록 정확한 년도가 소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앗수르 정복 3, 40년 전에도 북이스라엘을 위해 예언을 선포한다.호세아와 같이 아모스는 민족이 파멸을 모면할 수 있도록 회개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백성들은 아모스의 경고 대신 죄악의 길로 점차 빠져들다. 이러한 죄악들은 12선지서 전반부(6권)에 회화적으로 묘사되어 있다.아모스는 다섯 개의 두드러진 단락들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각 단락들은 죄에 대한 12선지서의 비난을 한층 강화시켜 주며 그 죄를 지적하는 아모스의 능력을 입증해 준다.아모스 1-2장은 아모스 선지자 그의 주요 주제들 및 그 메시지의 위력과 중요성을 소개한다. 여호와는 죄에 대해 격노하시며(1:2), 이스라엘, 유다 및 주변 열국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려는 분으로 묘사된다(1:3-2:16).아모스 3-6장은 주로 북이스라엘의 타락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언약 백성들을 통해 지속되어 온 죄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요엘에서와 이 사건에 나타난 기적의 개연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 기사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 학자들은 요나와 엘리야 및 엘리사 기사들 간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요나서의 양식이 유사한 기사들의 양식과 비슷하다고 결론짓는다. 더욱이 선지서의 기적 기사들은 표현 방식 상 같은 책에 기술된 타 사건들과는 구별된다. 그러므로 구약 연구의 다른 여러 이슈들과 마찬가지로 요나서에 대한 해석은 그 해석자들의 신학적 사상에 따라 결정된다.비록 요나의 물고기 사건의 역사성에 대한 이슈가 중요한 사안이며 본서가 그 실제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해도 이 이슈에 집중하는 태도는 요나서의 신학적 본질을 공정하게 취급하지 못하는 것이다. 학자들의 두 번째 주요 관심사, 즉 요나가 니느웨의 멸망을 예고했으나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로 말미암아 그 예언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대해 집착하는 태도 역시 바람직한 자세가 되지 못한다. 예언이 실패했는가? 요나는 신명기의 조항에 따른 거짓선지자인가? 이런 방식으로 요나를 해석하는 태도는 정경적 예언의 주요 진의를 무시하는 셈이 된다. 요나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우리의 관심을 선지자로부터 그를 파송하시는 하나님에게로 돌릴 필요가 있다.요나서는 산문체식 구조 안에서 깔끔하게 전개된다. 첫째, 1:1-6은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소명으로부터 벗어나는 선지자의 도주를 소개한다. 여기서 부르시는 하나님은 니느웨의 죄를 설명하기 위해 그들을 충분히 배려하시는 하나님이다. 둘째, 1:17-2:10은 물고기 배속의 요나와 니느웨를 향해 선교 사명을 감당하려는 그의 결심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은 선지자를 강권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큰 물고기라는 매체를 통해 그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으로 그려진다. 셋째, 3:1-10은 앗수르인들을 향한 요나의 사역을 소개한다. 지극히 적은 노력으로 이루어진 선지자의 성공은 백성들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역을 강조해 준다. 넷째, 4:1-11은 여호와의 긍휼하심에 대구조를 보여 준다. 선지자 하박국은 먼저 하나님의 계시를 구한다. 하나님은 선지자가 제기한 질문에 응답하신다. 그러나 역사적 정황은 그리 구체적이지 않다. 믿음의 위기가 찾아온다. 그렇지만 역사적 정황은 그리 구체적이지 않다.믿음의 위기가 찾아온다. 그렇지만 백성 중에 속하지 않는 이 선지자는 그 위기를 견디어 낸다. 하나의 뚜렷한 찬양시는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모든 사항들은 하박국을 독창적이고 독특한 예언 작품으로 특징지어 준다.동시에 하박국은 이미 소개된 전대 선지자들의 수많은 신학 사상들을 사용하거나 재활용한다. 예를 들면 하박국은 민족과 열국의 죄악들을 선고한다. 하박국은 강하고 사악한 민족(바벨론)을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의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여호와를 소개할 뿐 아니라 선지자와 여호와간의 교제에도 초점을 둔다. 여기서 하나님은 계시자, 심판자, 위로자, 지시자, 구원자 및 절대적인 역사의 주로 사역하신다. 여호와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며 지탱케 하는 분이다. 특별한 성품이 섞여 있는 이러한 공통된 사상들은 하박국으로 하여금 설득력 있는 신학적 기술 즉 어떻게 여호와가 죄를 심판하며 신실한 자를 구원하시는가를 설명하도록 이끌어준다.하박국은 네 개의 뚜렷한 단락으로 구분된다.첫째, 1:2-11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벌하지 위해 바벨론을 보내심으로써 그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증거 한다.둘째, 1:12-2:11에 여호와는 바벨론이 그 죄로 인해 심판 당하듯이 신실한 자들의 믿음을 고대하신다.셋째, 2:12-20은 여호와가 우상숭배자들을 파하실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스라엘도 바벨론도 우상 숭배함으로써 한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넷째, 3:1-19은 여호와가 항상 신실한 자들을 위해 일하신다고 선포한다.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의 권능 아래 안식한다.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주관하지 전 주전 605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주전 587년 예루살렘의 패망과 주전 539년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니느웨가 나훔에서 맛보았던 동일한 운명, 곧다.
    인문/어학| 2005.06.20| 19페이지| 3,000원| 조회(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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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S 차일즈의 구약정경개론-12소선지서를 중심으로
    B.S 차일즈의 “구약정경개론-12소선지서”를 중심으로???? 12소선지서 신학세미나 / 박경철교수 ?????????????????????? ????◇ ◇??????????????????????????????????????전주대학교 선교신학 대학원 라황용차일즈의 구약정경개론(12소선지서를 중심으로)전주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 구약전공 라황용참고도서: B.S. 차일즈, 구약 정경 개론, 김갑동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9. 353-474.B.S. 차일즈의 구약 정경 개론 중 12소선지서는 각권을 전면에는 주석서 소개와 참고문헌 소개하였고, 마지막에는 주석사를 소개하였는데 각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할 것이다. 나아가 각권을 역사비평적 문제들, 정경적 형태, 신학적, 해석학적 의미들로 구성되었다. 본인은 이 단락을 읽으면서 특히 각권의 신학적, 해석학적 의미들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였다.호세아호세아서의 신학적, 해석학적 의미들)은 (1) 우리는 호세아서가 한 신앙공동체 내에서 권위있는 문서로 기능하면서 발전한 역사를 추적하려고 시도하였다. 우리는 편집비평의 도구들을 사용했지만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목적을 위하여 곧 정경적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곧 정경적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 역사적인 차원은 이 맥락을 보다 분명한 초점으로 가져오는 데에 가치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편집단계들은 언제나 이 책이 현재 지니는 정경적 기능에 종속되어 있었다. 호세아서의 경우에 있어서 현재의 정경적 기능은 이 책의 역사적 발전의 여러 다른 단계들과 상호 관계가 없었다.편집비평과 정경적 접근 사이의 방법론적 대조는 R.E. 클레멘츠의 통찰력 있는 논문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내가 제시한 편집적 분석은 대체적인 윤곽에 있어서 클레멘츠의 그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클레멘츠는 지금 제안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 책 발전의 여러 단계들을 회복시킨다. 그는 여전히 호세아의 메시지의 주된 분석될 수 있는 다른 역사적 집단들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구약성서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사회학적 접근은 요엘서의 경우에 있어서 집단들 간의 이러한 역사적 차이들을 심히 불분명하게 만들어서 그것들을 규범적인 문헌으로 대치시킨 내적인 정경화 과정을 고려하지 못하면 완전하지 못하게 된다. 정경의 의의는 이 거룩한 책들이 신앙공동체 내에서 종교적 동질성을 측정하고 허용될 수 있는 긴장의 정도를 확정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원래의 사회학적 집단화가 하나님의 백성의 구성 요건에 대한 신학적인 정의 보다 하위에 두어졌다는 것이 정경화 과정의 특징이다. 이 관찰은 역사적인 연구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연구에 너무 의존하지 때문에 정경적 형태의 문헌 자체가 하는 명백한 증언을 간과하는 주석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3) 요엘서의 정경적 형태 또한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의 유형론적인 관계가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증언한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훼손이 겨로 아니다. 사실상 그것은 순종을 위한 세상 속에서의 투쟁이라는 신앙생활의 대표적인 특성을 끌어냄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확증한다.(4) 이 예언적인 말씀은 요엘의 이야기를 되풀이함으로써 현실화된다. 메뚜기 재앙과 이스라엘의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메시지가 청중들 앞에서 펼쳐진다. 요엘의 메시지를 그 형식으로부터 추출해 내는 데는 어떠한 기술도 필요치 않다.필요한 것은 오직 참된 증언을 하는 것뿐이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세대에 고할 것이니라”(1:3).아모스아모스서의 신학적, 해석학적 의미들)은 (1) 아모스의 설교에서 높은 수준의 역사적 특정성이 보존되었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예언적인 사역은 보다 큰 구속사의 구조 안에 특별한 한 자리를 배정받았다. 아모스의 역할은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특정한 역사학적 의미들)은 (1) 오바댜서의 주석 역사에 있어서 대개 신학적인 문제들에 민감한 C.F.카일과 같은 고지식하게 보수적인 학자들까지도 역사비평적인 방법의 해석학적인 원리를 충분히 나누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모든 예언은 그것들이 생겨난 세대에 속한 뚜렷하고 구체적인 관계와 상황들에 의하여 야기된다”는 것의 기초 위에서 오바댜에서 어떤 대표적인 특징을 찾는 것에도 반대하였다. 이 원칙이 어느 정도의 진리는 포함하고 있기는 할지라도 그것은 계속되는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성서의 새로운 역할을 위한 원래적인 자료의 결정적인 정경적 재정리를 고려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이 정경적 세력은 성서 본문의 최종 형태에 그 원칙을 적용시키는 것의 정당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승을 옮겨 놓았다.(2) 오바댜에 대한 연구의 역사는 또한 구약성서에 속한 하나의 책에 대한 정경적 이해에 비평적 학문이 미친 중요한 하나의 간접적인 효과도 예증해 준다. 오바댜에 예레미야 49장 사이의 문서적 관계는 아무런 큰 정경적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오바댜의 해석은 독자가 문서적 관계를 인식하는 것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것은 유사한 본문이 다른 배경에서 어떻게 정경적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흥미로운 실례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올바른 비평적 분석은 작자에 관한 논리적인 추론으로서 성서 본문 자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대신하려고 하는 카일과 클라이너트의 해석적 경향을 차단시키는 데 있어서 간접적인 한 중요한 역할을 가진다. 대체로 합리주의적인 평면적 이해와 참된 정경적 해석 사이의 차이점이 이 작은 책에서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요나요나서의 신학적, 해석학적 의미들)은 (1) 요나서가 그 정경적 맥락 안에서 하나의 “비유 같은” 이야기로서 구실을 한다고 판정함으로써 그 이야기의 역사성에 관한 이전의 곤경은 하나의 신학 문제로서 지나치게 된다. 그 책이 유비의 역할 안에서 정경적으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마찬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역사적 기획이 신앙공동체가 그 전승들을 어떻게 들었으며 그것들을 축적하는 바로 그 과정 안에서 그것들의 권위를 어떻게 증거했는가를 이해하는 주석적 임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미가서의 연구는 또한 역사적 연대 규명의 문제들에 대한 관심의 집중이 책의 정경적 기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주된 방해물이 되는 것으로 확장된 구조가 잘못 해석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역사적 발전의 이론들을 도입함으로써 근본적인 신학적 형식들이 왜곡되었다.(2) 이사야와 함께 나눈 신학적 구조 안에서 미가서를 편집하는 편집 과정은 성서의 정경 안에서 통일된 예언적 자료에 대한 점증하는 이해력의 증대를 시사해 준다. 다만 희미하게만 인식될 수 있는 많은 역사적 요소들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었을지라도 자료의 부분들을 연결하는 과정은 임의적으로 균형을 잡은 행위는 아니었음은 충분히 명백한 듯이 보인다. 오히려, 정경화 과정은 그 두 예언서가 나눈 기본적인 유사성을 발전시키고 연장시키고 확장시켰다. 게다가, 예배의식적 구조는 정경화의 과정이 예언적 자료의 실제적인 사용에서 일어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최종의 정경적 형성은 단순히 거기에 부과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승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자료의 기능을 반영했다.(3) 우리의 연구가 형성 과정에서의 예배 의식적 요소를 강조했을지라도 이 관찰의 해석학적인 의미가 반드시 계속적인 예배의식의 사용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요한 신학적인 특징이다.정경적 형태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을 서술하는 것이 이 요소들 자체가 정경적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후기의 공동체에게 규범적인 것은 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을 반영하는 성서들이가. 저작들은 역사적 과정과는 별도로 정경적 통일성을 소유한다. 실로 정경적 형태는 빈번하게 작용하는 역사적 요소들을 제외시키거나 종속시켰다. 정경적 권위를 역사적 과정으로 이전시키는 것은 성서의 정경화 배후의 전체적인 의도에 상반되는 것이다. 그렇비평적인 연구는 본문 내의 역사적 문서적 긴장들을 지적해 내는 것과 안이한 심리적 화합에 저항하는 것에 의하여 유용한 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하박국의 정경적 역할의 열쇠는 바로 이 긴장들을 해결한다기보다는 이해하는 데에 있다.(2) 하박국의 신학적인 메시지는 여러 가지 다른 방향으로 후기의 세대들을 위하여 성서 안에서 현실화되어 왔다. 고백의 자서전적 문체를 통해서 예언자 자신은 종말의 약속과 그 도래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의 신실한 반응을 보여주는 본보기로서의 구실을 한다. 2:4의 예언이 지니고 있는 격언적인 형식의 무시간적인 성격은 믿음에 대한 요구로써 개인과 전체 공동체 둘 다에 말하는 데 있어서 유동성을 허용한다(1:5과 3:16의 복수를 관찰하라).(3) 하박국서는 나훔과 유사한 방식으로 특별한 정경적 규율을 따르도록 재정리되었다. 그 형성 과정은 종종 원래적인 역사적 역할을 제외시키는 새로운 한 신학적 초점을 포함한다. 예언자의 메시지의 범위를 비평함에 있어서는 대단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말하면 그는 그의 백성에게 회개를 설교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정경 안에서 그 책에 할당된 특별한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스바냐스바냐서의 신학적, 해석학적 의미들)은 (1) 자료의 구성에 있어서 신학적인 중심은 편집자들이 성서적 증거의 완전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역사적인 관점을 유배 이전에서 유배 이후와 또는 그 이상으로 변경하도록 허용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과거와 미래 둘 다를 포괄하는 그의 속성 때문에 이스라엘의 잇다른 모든 각 세대는 심판과 구원의 예언적 메시지에 나아가는 직접적인 발판을 발견했다.(2) 자신의 목적을 홀로 이루시는 데 있어서의 하나님의 종말론적 성격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중심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편에서의 신앙의 응답 또한 간과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는” , “곤궁하고 가난한 백성”(3:12)을 불러낸다. 성서적인 관점에서 종말론과 윤리는 않는다.
    인문/어학| 2005.06.20| 10페이지| 2,000원| 조회(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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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최종형태 구성으로 본 요엘서 연구
    최종형태 구성으로 본 요엘서 연구전주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구약신학 전공 라황용1. 서론최종형태의 히브리어 요엘서의 명칭은 ????(요엘=하나님은 야훼이시다)) 이다. 우리는 브두엘의 아들 예언자 요엘에 대해서 최종형태의 요엘서에서는 그의 이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12소예언서를 연구해 나가고 있는 중심점은 지금까지의 연구가 12소예언서를 각 권으로 보았는데, 이를 12권으로 보지 않고 한권으로 볼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다.본 연구를 위하여 먼저, BHS 본문 비평과 사역을 하고자 한다. BHS의 Apparatus criticus(비평장치) 전부와 소 맛소라, 대 맛소라 일부를 다루었다. 범위는 요엘서 1장-4장까지)를 다루고자 하였다. 방법론은 통시적 방법인 본문비평과 공시적 성서연구방법으로서 최종형태의 구성비평의 방법으로 연구하고자 하였다.하지만 본인의 시간의 한계성 때문에 요엘의 1-4장까지의 본문에 대한 사역은 마쳤으나 본문비평 작업을 다 마치지 못하였고 계속 진행하고 있는 중에 있다. 본인은 진전된 부분까지를 다루고 계속 기말까지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따라서 본인은 최종형태의 본문으로 12소예언서 중에 앞뒤 책들과의 연결고리가 되는 단어와 중요한 주제인 “야훼의 날”이 요엘서 자체에 여러 번에 걸쳐 나오는데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12소예언서가 한권이라는 하는 면을 구성비평을 통해 다루고자 한다.2. 최종형태의 본문으로 본 12소예언서 전체 중에 요엘서가 가지는 의의호세아 다음에 등장하는 연대기적으로 요엘서 4세기이고 8세기 문서인 호세아와 아모스 중간에 들어가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요엘서를 따라서 호세아와 아모스 중간에 위치해놓고 있지 않은가?1. 연결고리가 되는 단어1. 호세아서와의 연결고리가 되는 단어호세아연결고리가 되는 단어요엘호 2:2????(그 땅=이스라엘)욜 1:2, 2:1, 3:3, 4:16호 14:10???(지혜로운자)-???(나이많은자)욜 1:2, 2:16호 8:1??? ????(야훼의 집)욜 1:9호 :1:14,172:11,148:2f9:9,13말라기3:231:42:63:7,18,243:19-213:22-243. 주제 및 신학적인 연결1. ???(슈브: 돌아오라)전장의 표를 통해 보듯이 ???(돌아오라)라는 주제는 학개서를 제외한 모든 12소예언서 모든 곳에서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돌아오라)는 주제는 중요한 것 같다. 바로 전장인 호세아서의 단골 메뉴(호 2:9,11; 3:5; 4:9; 5:4,15; 6:1,11; 7:10,16; 8:13; 9:3; 11:5,9; 12:3,7,10,15;14:2f,5,8)이며, 이어서 요엘서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듯 하다(욜2:12ff ; 4:1,4,7).요엘서는 "들으라!"(욜1:2)는 외침이 한 예언자에게 임한 “야훼의 말씀”이라는 형식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예언자에 대해서 우리는 단지 그의 이름이 브두엘의 아들 요엘(1:1)이라는 것 밖에 알 수 없다. 과거에 일어난 적이 없는 풀무치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갉아먹었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자벌레가 갉아먹었고(???) 자벌레가 남긴 것을(???) 황충이가 갉아먹는(???)(1:4) 재앙이 온 땅을 뒤덮었고, 이 일로 곳곳에서 울고, 통곡하는 일(5)이 일어나게 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구원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라 약속하셨던(호 2:24)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이 모든 것이 다 없어져 버렸고(1:10), 포도 가지는 못쓰게 되고, 무화과 나무는 시들었고, 석류나무, 종려나무, 그리고 사과 나무는 다 말라(12)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그래서 예언자는 자기 앞에 섰던 호세아가 이미 반복하여 말했던(2:9,11,3:5,4:9,5:4,15,6:1,11, 7:10,16, 8:13,9:3,11:5,9,12:3,7,10,15,14:2f,5,8)바와 같이 다시 한 번 돌아서기를 그리고 회개하기를 촉구(2:12ff, 4:1,4,7)하고 있다. 특히 “너희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라!”말을 강조하고 있다(욜 2:(호 11:8) 하나님의 “후회(???)”라는 단어가 여기 또 다시 나타나고 있다. 요엘은 회개를 촉구하는 자신의 목소리에다, 이스라엘 역사 초기 심각했던 위기의 때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 앞에서 자기 이름을 알렸던: “왜냐하면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이 풍성하시다”(13, cf. 출 34:6)라는 본문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 “그가 재앙까지 돌이키신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회개의 촉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고,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라”(15)고 하며 시온에 있는 성전에서 회개와 탄식을 위한 대 성회를 갖도록 이끌고 있다. 백성과 노인과 아이들과 젖먹이, 신랑과 신부까지라도 불러 모으라(16)고 명령한다. 이들이 모여서 급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은 이렇다: “오 야훼여,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당신의 유산을 결딴나게 하지 마소서.”(17) 주님의 소유가 결딴나는 이유는, 이방 민족들이, “너희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17)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이제 하나님은 자기 땅이 당한 심한 고통에 대해 격분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며(18), 더 이상 자기 백성을 이방인들 앞에서 수치가 되도록 하지 않겠다(19). 그러나 야훼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셔서(20,21) 들의 목초지가 다시 푸르게 되고,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무화과와 포도를 수확하게 되고(22),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 차고, 독마다 포도즙과 기름이 흘러 넘치고(24),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지난번처럼 적당하게(23)내려 주셔서 그가 땅을 다시 풍요롭게 하실 것이며, 손해를 보았던 그 년수 만큼 땅의 거민들이 다시 배불리 먹고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26).하지만 이것은 단지 저들이 배만 부르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한가운데 있다는 것과 너희의 하나님 야훼가 되고 다른 신이 없다는 것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 “왜냐하면 시온과 예루살렘 안에 구원(????? 살아남은 무리)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물론 야훼의 이름을 부른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문맥상으로 구원받는 자들은 온 민족들, “모든 육체들” 가운데서 나온 자들일 수 있고, 이들이 곧 하나님의 영의 부음을 받은 자들이며, 이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곧 이들의 외침에 대답하신다. 끝맺는 말에 있는 것처럼,?“남은 자 중에 야훼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다.”?3. 야훼의 날에 대한 세 번째 용법최종형태 본문인 요엘서 4장에서 요엘서에는 “???? ???(욤 야훼: 야훼의 날)”이 한 번 더 다른 측면으로 나타난다. “???? ???(욤 야훼: 야훼의 날)”은 곧 이스라엘과 유다의 적들에 대한 심판의 날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나의 백성이며, 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4:1-15). 민족들은 모두 “여호사밧(??????,야훼가 판결하신다)의 골짜기”(12)로 불려 들여지고, 거기에서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것이다(12). 그리하여 야훼의 날이 이르면 이는 “판결의 골짜기”(????? ???)(14)로 되어진다. 심판이 이루어지고, 야훼가 “시온(????)에서 부르짖으면”(16a), 비로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며, 요새가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 또 다시 확장된 알게됨(???)의 공식구(17, cf. 2:27)가 나타난다.여기서는 하나님의 거처(??? ????)가 시온(????)이며, 예루살렘이 거룩한 곳(???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의 아름다운 “낙원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18-21). 이는 야훼의 날의 또 다른 한 측면을 보여준다.4. 야훼의 날이라는 주제와 12소예언서한걸음 나아가, 12소예언서 중에서 요엘서가 앞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 ???(욤 야훼: 야훼의 날)”이라는 주제는 전체 12소예언서에 위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선, 이것은 밀접하게 관서공회, 1977.성경전서, 공동번역개정판. 서울:대한성서공회, 1999.성경전서, 현대인의 성경. 서울:생명의 말씀사, 2004.COMPUTER BIBLEDeluxeBible디럭스바이블BibleWorks 5 바이블 웍스5.0Dulos Bible둘로스 바이블SKTHOTThe Stephen Korean Text of the Hebrew Old Testament스테판원어성경 구약(상)(하)SHKCStephen Hebrew-Korean Concodance 스테판 원어성구사전 구약(상)(하)BOOKSDavidsonA. B., 히브리어 문법(제26판), 이영근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Gesenius W., 게제니우스 히브리어 문법, 신윤수역, 서울: 비블리아 아카데미아, 2003.Rolf Rendorff, 구약신학, 박경철 역, 인터넷자료.Weil Gerard E., MASSORAH GEDOLAH, Romae:Pontificium Institutum Biblicum. 1971.Weingreen J., 구약성서 히브리어 완성, 김재관역, 서울: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9.강병도, The Charis Bible Commentary, 서울: 기독지혜사, 2003.김경래· 함현주, 성서당 히브리어·한글사전, 전주대학교출판부, 1999.안영복, 성경 히브리어 문법, 서울: CLC, 1985.한동구, 히브리성경(BHS)용어사전, 서울: 도서출판 미크로, 1998.최근 한 권으로 보는 12소예언서 연구 참고문헌Bosshard, Erich, Rezeptionen von Jesaia 1-39 im Zwoefprophetenbuch. Untersuchungen zur literarischen Verbindung von Prophetenbuechern in babylonischer und persischer Zeit. (Orbis biblicus et orientalis 154). Freiburg, Schweiz: Univ.-Verl. u.a. 1997.Bosshard,3
    인문/어학| 2005.05.15| 10페이지| 3,000원| 조회(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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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갈라디아서의 “믿음(피스티스)” 연구 평가B괜찮아요
    바울의 복음갈라디아서의 “믿음(피스티스)” 연구라황용Ⅰ. 서론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믿음을 표면적으로는 율법의 대칭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즉, “율법이냐 믿음이냐”는 명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표면적 의미는 그 안을 들여다볼 때 다양한 색깔의 의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여러색깔의 믿음을 설명해주고 있는 듯 하다.이신칭의의 사도로서 바울이 ‘믿음’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눈여겨보는 것은 그의 서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적대자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바 믿음이 무엇이며,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예민한 이슈였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믿음(pistis)을 연구함으로 바울의 ‘믿음’이 무엇이었는가를 아는 것은 갈라디아서의 키를 제공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본 리포트에서는 갈라디아서 전체에 나타난 믿음의 관련용어를 살펴보고 바울이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가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갈라디아서에 등장하는 여러 믿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것들이 갖는 공동체적(6:10) 의의를 결론적으로 유추해냄으로서 “갈라디아서의 믿음”에 대한 근시안적인 해석을 극복해보고자 한다.Ⅱ. 단어연구1. 빈도수(1) 명사 π?στι?(pistis) : 22회1:23; 2:16(2),20; 3:2,5,7,8,9,11,12,14,22,23(2),25,26; 5:5,6,22; 6:10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2:20),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3:2,5)을 의미하며 그것은신자의 삶에서 생활의 지표가 된다.(3:9)(2) 동사 π?στε?ω(piste?) : 4회 - 2:7,16; 3:6,222. 특수성(1) pistis은 그 의미상 두 가지 주체를 가진다. 즉 예수의 믿음과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그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여러 믿음의 의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①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 - Historical Even 된 것은 또한 신뢰할 만하다”라는 연유에서 “신실”(충성, 진실, faith fulness 갈5:22)이라는 뜻도 있으며, 이러한 뜻의 용례가 자주 언급되어 있다. “믿음”과 및 “신실”(충성, 진실)이라는 개념의 용어들은 대체적으로는 “피스티스”(pistis)라는 헬라어 용어와 및 이 용어와 관계되는 다른 용어 들로 구별지을 수 있다.)Ⅲ. 분류 및 연구1. 여러 믿음의 의미 분석(1)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Christ)갈 2:16에서 바울은 분명히 “예수그리스도의 믿음”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을 나누는 문제는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같은 믿 음의 대상이지 믿음을 소유해야 할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이라 는 해석을 인정할 경우 예수그리스도 자신도 우리와 같이 믿음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전락하 게 된다. 동시에 이것은 신자의 구원이 “오직 은혜(Sola Gratia)"라는 종교개혁의 근본사상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점은 바울이 믿음의 대상을 언제나 그 리스도가 아닌 하나님으로 국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믿음은 “복음에 대한 응 답”(갈3:35)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수단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인간의 믿음은 목적이며 응답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믿음은 인간에 대한 메시아적 기능을 가진다.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운명은 곧 모든 인간의 삶과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다.그렇다면 “예수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복종의 표현이며 이것은 곧 십자가의 사건이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이란 예수의 믿음이 모든 인간을 구원케하는 통로가 된 것 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하나님 측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구원의 창구”이며 우리의 측면에서 는 하나님과 만나 그의 세계에 동참할 수 있는 “참여의 장”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믿음” 은 그리스안된다.)신자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위에 세워졌다. 갈라디아인들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믿음 즉 십 자가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어리석은 행위였다(3:1).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위에서 만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알고 그것이 삶속에서 사랑으로 나타나는 믿 음(5:6)이 바로 “바른 믿음”이다. 갈1:4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가 인간의 죄를 위해 “자기 몸을 드리는 것”이라고 암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믿음이 그의 죽 기까지의 순종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 속하여 있으며 그에 따라 그의 순종에 동참하는 자들을 가리킨다.)(3) 계시된 믿음주목할 것은 바울 자신이 복음 전체를 설명하기 위해 그 근원을 “하나님의 의의 계시”에서 취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 출발점은 그리스도이다(1:1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인간과 자신과 이 사이에 설정하신 새로운 관계를 정의하는 바울의 구속교리에 들어 있는 개념들에 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모든 비밀의 계시가 그 내용을 그리스도로 하는 것이 사실인 것처 럼, 하나님의 의의 계시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사하심을 받을 근거로서, 그리스도안에서 일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복음전체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그 핵심으로 하는 것과 마 찬가지로, 믿음에 의한 칭의의 복음(the gospel of justification)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의의 이 러한 계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모든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화목제물로 삼으셨고, 이런 방법으로 그의 죽음안에서 그 의의 (vindicating righteousness)를 나타내셨다.)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의의 계시인 동시에 바울복음의 시작이다. 또한 그것은 바울이 믿음에서 난 의를 말하는 근본된 토양이 된다. 바울의 경험이 그랬듯이(1:12) 누구에게 나 십자가의 사건이 효력을 발휘하게 될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 따를 때뿐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대표적인 씨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모든 축복의 약속들은 합법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참 이스 라엘이다.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성실과 믿음의 태도이다. 아브라함이 하나 님을 믿고 그에 대한 자신의 성실을 지킨 것처럼, 그의 씨인 그리스도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 하였다. 결국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갈2:16)을 통해 실현되었다. 그리스도를 신 뢰하고 그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모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의 약속들을 이어받은 그의 자손들이며 참 이스라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본래 주어진 축복 의 약속들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개하는 유일한 상속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로 믿는 기독교인들의 믿음과 구약시대의 아브라함의 믿음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다 는 것을 지적하려고 하였다.2. 믿음과 율법유대교에 대한 바울의 대립은 결정적인 주제 즉 자유를 명하는 신의 요구에 결부된 조건에 관련된 주제에 있다. 이 조건은 유대인에게 자명한 것인바 율법의 실천, 율법이 명하는 “일 들”의 실천이다. 이에 대해 바울의 주제는 우선 부정적이다. 율법의 마지막은 모든 믿는 자를 위한 의로서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주장이 유대교주의자들 즉 그리스도교 신앙을 율법의 행 위와 결합하려는 자들에 대하여 전개되고 있다.(2:16; 3:11,21; 5:1) 만일 율법의 행위로 인하여 의가 온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으셨다(2:21). 의롭게 됨을 얻음에 있어 행위로 인정받을 사 람은 아무도 없다. 그 까닭에 칭의는 “은혜”라 부른다. 만일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사 람은 스스로 그리스도 밖에 있음을 시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행위로 의롭게 되고 자 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졌고, 은혜에서 단절되었다고 말한다(5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순수한 은혜의 사건으로서 계시되어진 다. 그런데 그 은혜는 자발적이고 무동기적이며 인간의 편에서 볼 때는 아무 공로 없이 받은 것이다. 그 응답이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반사이며, 그 사랑에 의 해 ‘동기가 주어진’ 것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는 또 다른 이름이 부여 된다. 즉 Agape가 아니라 Pistis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사랑안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순종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그것은 이웃사랑이다(5:13-14).)(2) 믿음의 식구들(공동체)바울에게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로써의 구원의 개념은 생소하다. 세례와 주의 만찬 역시 모두 단체적인 행위들이다(갈3:27; 고전10:16-17). 그리스도안에, 주안에,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의, 성령의 공동체 속에 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권면한 다 :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고, 기독교인의 하나님에로의 “노예됨”은 그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여야 한다는 명령속에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기독교인의 사랑 안에서 매 여있는 이웃은 우선 그리스도안에 있는 형제이다. 하지만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는 (6:10) 바울의 호소는 사랑의 책임의 최대 한도가 아니라 최소한도만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 권면도 사랑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사랑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배제된다면 그 성격을 잃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믿음의 가정이 사랑의 출발점만을지시한다는 사실은 또한 아마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 욱 많아 넘쳤으면 하는 바울의 희망(살전 3:12)을 암시하는 것이다.)4. 믿음의 결과들(1) 칭의 얻음(2:16; 3:6-9,11)하나님의 의는 계약을 맺으시고 그 계약을 존속시키시려고 끊임없이 애쓰시는 하나님의 능력 의 표현이다. 바울이 3:15절 이하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하신 언약의 신실성은 바 로 이와다.
    경영/경제| 2005.05.15| 7페이지| 2,000원| 조회(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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