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 펠트로우. 한때는 유명한 브래드 피트의 애인으로, 또 에서 귀족적인 아름다움으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헐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패션피플들에게는 90년대 후반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배우이다.그녀가 고전극에서 더욱 멋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극히 고전적인 외모와 그에 어울리는 기품 덕분이다. 아울러 그는 "디자이너들이 가장 옷을 입히고 싶어하는 배우"라는 패션지 '보그' 평가가 말하듯, 무척이나모던한 이미지도 함께 갖고 있다. 찰스 디킨즈의 낡은 이야기 '위대한 유산'이 깔끔한 새 옷을 입을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현대적 감각 덕이 컸을 것이다.그녀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세련됨으로 정리되어 질 수 있다. 이 세련됨으로 지나치게 가꾸지 않아도 늘 돋보이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에서 보여주었던 로맨틱한 향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 , 등에서 보여주는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잔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에서 에스텔라로 분한 그녀는 도나카란의 싱그런운 녹색 수트를 너무도 멋지게 소화해냈다. 뒤이어 에서 보여준 지적이면서도 청순한 이미지, 즉 캘빈 클라인의 의상 속에 두 가지 사랑이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는 모습에서 뛰어난 스타일링을 감상할 수 있다. 도회적인 캐리어 우먼 룩과 심플한 캐주얼 스타일은 뉴요커의 미니멀한 감각을 과장없이 보여준다. 또한 에서는 뉴욕 상류층의 기품있는 모습을 쿨한 섹시함 속에 적절하게 조화시켰다.이승연. 탁월한 패션 감각과 아이템으로 세련되고 지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배우이다.1989년 인하공전 항공운항과를 졸업한 뒤 대한항공에 스튜어디스로 입사, KAL국제선 승무원으로 2년간 비행기를 탔다. 당시 KAL여승무원 1천 5백 명을 대상으로 한 `미소여왕 선발대회`에서 스마일 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다 1992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 `92 미스코리아 미(美)`를 수상하게 되는 영예를 안았다.이승연의 실제 성격은 방송에서처럼 깐깐하고 어렵지 않다. 물론 그녀 특유의 똑부러지는 성격이나 프로다운 매너가 상대에 따라 긴장감을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현실 속의 그녀는 생각만큼 어렵지도 까다롭지도 않다. 그녀가 입는 옷 스타일이 이 사실을 증명해준다. 브라운관에서의 포멀한 이미지와 달리 평소 그녀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평범한 캐주얼 웨어와, 니트와 스트링 팬츠 위주로 코디하는 이지 웨어를 즐겨 입는다. 값비싼 명품 브랜드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했을 뿐 특별한 스타일은 찾아볼 수 없는 스타들과 달리 그녀는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분명한 스타일을 가진 셈이다. 그래서 그녀의 옷장에는 실용적인 티셔츠와 니트 풀오버, 블루진과 스포티한 보드 팬츠들이 종류별로 가득하다. 이중에는 값비싼 아이템들도 많지만 그녀가 압구정 보세골목이나 동대문 시장을 돌며 직접 고른 저렴하고 실용적인 아이템들도 아주 많이 섞여있다. 스타니까 모두 비싼 옷으로 코디할 것이라는 상상과 달리 그녀는 명품과 보세를 적절히 믹스할 줄 아는 감각을 가졌다.Luxury look이란 예전처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90년대 들면서 자리잡은 고급스러우면서 세련된 옷차림을 뜻한다. 미국 상류사회의 기품을 담은 깔끔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스타일이다. 둘 사이의 가장 큰 공통점을 찾는다면 지나치게 페미닌하지 않으면서 도시 여성의 지적인 우아함을 나타내는 luxury look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블랙의 우아함과 시크함: 영화 속의 기네스 펠트로우나 드라마 속 이승연이 자주 선택하는 의상의 색상은 단연 블랙이다. 기네스 펠트로우의 시상식 의상이나 평소에 입는 즐겨 입는 블랙 터틀넥 등은 톤다운된 고급스런 색상을 즐겨 입는 세련된 그녀의 스타일을 말해준다. 영화에서 프라다 풍의 롱코트와 블랙니트의 조화는 우아함의 절정이고, 통이 넓은 팬츠와 부츠 등으로 이지적인 느낌을 강조한다.그리고 이승연 역시 더 말할 것 없는 블랙 매니아다. 그녀 스스로 블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블랙을 소화해내는 스타일 감각이 어떤 스타보다 뛰어나기도 하다. 그녀에게 유독 블랙이 잘 어울리는 건 그만큼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졌다는 증거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펑키한 재킷과 스커트부터 구찌의 조금은 매니시한 블랙 팬츠 수트, 행사 때 종종 입는 미니멀한 저지 원피스나 드레시한 실크 드레스까지, 그녀는 늘 블랙을 세련되고 시크하게 연출할 줄 알고, 가끔은 큰 키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과감하고 섹시하게 연출하는데 미니멀한 블랙을 이용할 줄도 안다. 아마 블랙이라는 고정된 컬러 안에서 그녀만큼 다양하고 자유롭게 변신할 줄 아는 스타도 없을 것이다.-자연스러움: 어떤 스타일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색한 느낌을 준다면 자칫 더 촌스러워 보일 가능성이 있다.기네스 펠트로우가 화장기 없이 샌들 차림으로 산책하는 것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 그 불완전한 개성이 90년대, 2000년대 패션의 특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그녀는 영화 에서도 나오듯이 누빔이 독특한 자켓 아래 스커트를 입지 않는 대신 통이 넓은 팬츠를 입고 롱부츠를 신어 한층 편안하며 세련되게 연출하는가 하면, 정장을 입더라도 완벽한 화려함보다는 심플하고 단아한 멋을 추구한다. 영화 에서 상류사회의 파티 때 입고 나오는 이브닝 드레스보다 커다란 무늬가 프린트된 셔츠에 소매를 걷어 부치고 보트에 오른 모습이 훨씬 인상 깊게 보이는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이승연 또한 스타일링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편안한 자연스러움에 있다. 딱 떨어지는 정장 느낌보다는 약간은 헐렁한 느낌의 옷을 이승연 식대로 멋스럽게 연출한다. 니트와 매치하는 니렝스 팬츠, 찢어진 블루진과 가벼운 스니커즈 등 캐주얼한 의상들도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아이템들로 그녀는 평범한 캐주얼 의상도 매니시하게 소화해낸다.
Team ReportPUMA Korea Marketing 전략 분석의상학과 1998000000 이상민의상학과 2001312235 이희연아동학과 1997312235 황준호PUMA Korea Marketing 전략 분석목차Ⅰ About PUMAⅡ PUMA Korea Marketing 전략분석1. STP(1) 시장 세분화(Market Segmentation)(2) 표적 시장 선택(Market Targeting)(3) 포지셔닝(Positioning)2. 4P(1) 상품(Product) 전략(2) 가격(Price) 전략(3) 촉진(Promotion) 전략(4) 유통 및 상권(Place) 전략3. 브랜드 자산의 관리Ⅲ PUMA의 CEO{Ⅰ About PUMAPUMA endeavors not only to be one of the most desirable sports brands in the world, but also to be the first truly virtual sports company.PUMA는 세계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sports brand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진정한 최고의 스포츠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We will achieve our goals by continuing to do what we have always done - harnessing our resources and experiences to provide our consumers with innovative products that successfully fuse the creative influences from the worlds of sport, lifestyle and fashion.목표 달성을 위해 언제나 해왔던 방식을 사용한다 - 소비자들에게 스포츠와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패션의 세계로부터 영향받은 창조물을 성공적으로 융합시킬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자산과 경험을 이용한다.1. Vision스포츠와 운동 경기 수행에 있어서 그 위치를으로 이전. 2002년 중 이대, 압구정, 강남역 등 젊은 여성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 신규 매장을 열어 매장을 현재 72개에서 110개까지 확장할 계획.2) 인구통계학적 변수1 성별에 의한 세분화과거 남성적 브랜드 이미지의 스포츠 브랜드 PUMA에 패션성을 적극 도입하면서 유행에 가장 민감하며 구매력이 있는 여성으로 주요 타겟으로 선정2 나이에 의한 세분화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층을 주요 고객으로 선정3) 심리 도식적 변수1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그 동안 정체되고 낡은 이미지로 인해 시장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세대들에게 어필하는 힙합 마케팅을 도입하면서 자유롭고 적극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주어 성공하였다.2 성격유행에 민감하며 격식보다는 자유로운 사고를 중시하는 진취적인 성격을 가진 개인을 위한 브랜드 추구(2) 표적 시장 선택(Market Targeting)젊은 여성 인구의 표적 시장을 선택하여, 이를 집중 공략하기 위해 차별적 마케팅 전략 수행한다. 과거 주 타겟이었던 20대의 남성들은 의류 구매에 수동적이고 유행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푸마가 저 가격 브랜드가 아니란 점을 감안할 때, 가격이 주 결정 요인인 20대 남성들을 공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푸마가 추구하는 이미지와도 들어맞지 않았다. 이에 반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유행에 매우 민감한 층이다. 또한 구매력이 풍부하여 새로운 것을 비교적 쉽게 수용하고 시도해 보는 경향을 나타낸다.(3) 포지셔닝(Positioning)1) 경쟁적 강점1 제품 차별화(Product Differentiation)각 종 스포츠 팀 및 스타들과의 용품 계약과 그 성능의 증명으로 고 기능의 스포츠 브랜드임을 부각2 서비스 차별화(Service Differentiation)모든 제품의 교환과 환불 그리고 수선은 모든 매장에서 가능하며 제품을 구입한 매장이나 또는 인근의 가까운 매장에 가셔서 의뢰를 하시면 즉시 문제를 해포츠 의류 주고객 층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정체성을 겪기 시작했다. 점차 메이저 스포츠 브랜드 대열에서 밀려나 마이너로 전락할 즈음 PUMA Korea는 일대 브랜드 혁신에 나섰다.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늘어나고 스포츠 의류도 점차 패션화하는 경향을 감안, 주고객 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기고 90년 말(혁신 전) 20대 중반 이상이 70%, 남성이 90%이던 주고객 층을 20대 초반 이하와 여성 고객이 각각 80%인 브랜드로 바꿔놨다. 또한 의류의 상징인 컬러를 기존의 ‘그린’에서 역동적인 이미지의 ‘레드 로 교체하고 매장의 내부 인테리어도 금속적인 느낌이 드는 ‘실버’컬러와 스틸소재를 사용해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이 같은 브랜드 혁신과 이에 따른 신 마케팅 전략은 시장에서 그대로 적중했다.작년 가슴에 커다랗게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여성용 ‘푸마 로고 티’는 총 14만장이 판매하는 경이인 기록을 남겼다.스니커즈 운동화인‘Avanti 역시 중·고생들의 통학용과 직장인들의 세미정장용으로 불티나게 팔려 품절 되는 사태가 속출하곤 했다. 작년 스니커즈 운동화만 총 10만 켤레가 판매됐다. 주고객 층의 구성비 율도 극적으로 변화됐다. 기존 30% 비중에 불과했던 23세 이하의 비율이 80%로 늘어났고 10%에 불과했던 여성 고객의 비중 역시 80%에 달하게 됐다. 남성복에서 여성복으로 변한 셈이다. 매출도 폭발했다. 작년 푸마 코리아의 매출은 2000년 대비 3배 증가한 340억 원, 영업이익은 10배 이상 증가해 70억 원을 기록했다.1 상징 색상의 변화 : 그린(green) → 레드(red)2 제품 구성군의 변화 : 남성 라인 중심 → 여성 라인 강화3 주고객 층의 변화 : 20대 중반 이상의 남성 → 20대 초반 이하의 여성과 남성2) 기능성 강화브랜드 혁신을 통해 제품의 디자인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그를 실천하는 마케팅을 벌였지만 footwear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성을 강화하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190,000원2 Adidas{{{Masterpiece Superstar Metal Superstar 2G Denim149,000원125,000원99,000원3 PUMA{{{GV Special Street CatLeather California Crystal105,000원 110,000원118,000원(3) 촉진(Promotion)전략1) 힙합 마케팅푸마 코리아는 2000년 브랜드 혁신을 단행하면서 10대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마케팅 전략도 전면 수정했다. 10대들이 좋아하는 문화코드인 힙합을 테마로 설정해 국내 힙합 댄스 팀에 용품을 지원하고 프로 힙합 댄서들의 축제인 Street Dance Field 를 주최했다. 그 외 힙합 전문지에 지속적으로 광고를 게재하는 등 프로모션을 실시했으며 유통망도 재구성했다.2) 스포츠 마케팅1 모델에 의한 마케팅{독일의 푸마 본사는 현재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를 발굴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지금까지 두 번의 U.S.오픈 우승을 차지했으며, 롤란드 캐로스와 윔블던을 포함해 2002년에만 세 번 연속해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세레나는 1996년의 같은 해에 세 개의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슈테피 그라프 이후 같은 해에 세 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여자 선수로 매우 유명하다. 현재 그녀의 스폰서로서 푸마는 지속적인 지원으로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또한 지난 4월 푸마 코리아는 안정환과 계약금 1억5000만원에 1년간 전속 모델 계약을 맺고, ‘안정환 신드롬’이 확산되자, 지난 22일 ‘안정환 티셔츠’를 만들었다. 안정환 선수의 백넘버 ‘19’와 영문이니셜이 새겨진 축구복 스타일의 이 티셔츠는 장 당 2만7000원이지만, 하루만에 1500장이 모두 다 팔리는 진 기록을 세웠다. 특히 안정환 선수는 경기 때마다 공식 스폰서 업체의 축구화가 아닌 푸마 제품을 신고 뛰어 홍보에 있어 보다 효과적이었다. 푸마 코리아는 1만8000여장의 추가 생산작업에 들어가는 등 마케팅 전략에 성공을 거두었으며, 안정인매장], 청량리, 코엑스 등을 비롯한 32개의 매장이 각 중심 상권마다 분포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현재 경기도(24)와 강원도(4), 경상도(20), 충청도(6), 전라도(7), 제주도(1)에 전국적으로 약 93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2) 프랜차이즈 시스템푸마 코리아는 그 동안 단행했던 브랜드 혁신에 관해 “무엇보다 33명의 단출한 푸마 식구들이 추진해온 ‘제로 베이스(Zero Base) 마케팅’ 덕분”이라고 말한다. 제로 베이스 마케팅이란 새롭게 창업한다는 입장에서 모든 걸 원점부터 출발해 대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뜻이다.현재 푸마는 디자인, 마케팅, 기획, 생산관리 등만 33명의 직원들이 맡고, 각 매장 관리는 대리점 업주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고유의 독립성이 유지됨과 동시에 매장의 표준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3) 인테리어매장의 내부 인테리어도 금속적인 느낌이 드는 ‘실버’컬러와 스틸소재를 사용해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힙합 마케팅의 표적이 되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었다.3. 브랜드 자산의 관리1) 브랜드 인지도PUMA의 브랜드 역사는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런 오랜 전통만큼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푸마는 그 인지도로 인하여 고려 대상 군에 우선 포함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과거 남성 중심적의 단순하고 투박한 디자인으로 외면을 받던 시기도 있었으나, 최근 전면적인 변혁으로 기존의 인지도에 더하여 새로운 역동적 이미지를 쌓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고객 중심의 마케팅 철학으로 가장 근래에는 슛(Shoot)도(道) 라는 창의적인 광고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2) 브랜드 이미지 관리PUMA가 추구하고 있는 세련된 이미지의 유지를 위해 세계적으로는 세레나 윌리엄스와 같은 대형 스타들의 스폰서 쉽과, 카메룬 국가 대표팀의 유니폼 제작, 그리고 한국에서는 축구 선수 안정환을 모델로 기용했으며, 기존 외곽의 재래상권에 있던 10∼20평 규모인 매장의 80%를 닫아버리고, 명동·코엑스·대학로 같은 신흥
......훌륭한 생각은 모두 단순하다. 목적은 오직 하나 저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악인들이 그 목적을 달성키 위해 힘을 합치듯이 선인들 또한 그와 같이 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존재한다는 것이다. 얘기는 그토록 단순하다...........톨스토이의 는 1864∼1869년의 작품으로, 전 4편과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나는 예전에 이 소설을 영화로 먼저 접했으며, 그 당시 조금은 지루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거의 끝맺음의 저 구절이 매우 인상깊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그리고 행복에 대한 생각들을 인물들에 의해 하나씩 풀어놓고 있다.또한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입이라는 조국의 운명을 사건 대 사건을 소재로 해서 황제로부터 일개농민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의 인물을 등장시켰으며, 역사의 참된 주인공은 야심이나 자기주장과는 관계없는 겸허한 사람들, 즉 민중이라는 것을 입증하려했던 장편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사실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수가 무려 500여명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인물들을 통해 아마도 톨스토이 는 그 시대의 반영을 철저히 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서 객관성도 유지하고, 더욱 사실적인 사회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그 모습이나 성격을 작가가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그에 대한 반응, 그리고 대화나 행동을 통해서 한 인물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바로 작가의 의식이 나타나며, 인물로 대표되는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따라서 이 작품은 역사소설과 예술소설의 훌륭한 융합이다. 아래에서는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살펴본 다음, 각 각 역사소설과 예술소설로서의 작품 내용을 감상해보았다.광대한 러시아 대평원을 중심으로 이 이야기는 펼쳐진다.니꼴라이는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퇴역하여 영지경영에 전념하고 그의 누이 나타샤는 전쟁에서 부상한 안드레이 공작을 지극히 간호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또 다시 전쟁터로 나간 안드레이는 마침내 전사한다. 비탄에 빠진 나타샤는 열렬한 나폴레옹 숭배자였다가 마음을 돌리고 그를 죽이려다가 실패한 어리숙한 청년 삐에르와 결혼하여 다시 행복을 찾는다. 한편 러시아에 침입한 프랑스군은 구뜨조프 장군의 교묘한 전술과 러시아 민중의 궐기로 대패한다.#역사 소설로서의 감상이 작품은 1805년의 제1차 나뽈레옹 전쟁 직전부터 1812년의 대 나뽈레옹 조국 전쟁, 1825년의 이른바 제까브리스뜨 들의 혁명 운동을 낳게 한 자유주의적 사회기운이 팽배하기 시작한 1820년까지의 15년 동안에 걸친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재현한 것으로, 여기에서는 보로지노 벌판에서의 노·불 양군의 대회전, 나뽈레옹의 모스크바 점령, 모스크바의 대화재, 프랑스군의 퇴각 등 러시아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대 사건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의 노·불 두 황제를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상의 실제 인물과 모델에 따른 작중 인물, 완전히 창작된 인물들이 등장하여 독자의 눈앞에서 활약하는 등, 그 규모의 웅대함은 참으로 세계 문학 가운데서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을 찾아 낼 수 없을 만큼, 또 재래의 장편 스타일을 깨고 역사 소설과 가정 소설, 역사 비판과 전쟁 철학을 한데 시도한 문학 형식을 창조하였다. 아래에서는 그 방대한 소설의 내용에서 역사적 배경의 영향의 받았을만한 요소들을 찾아보았다. 남녀간의 사랑이나 젊은이들의 슬픔과 기쁨, 고뇌 등의 소설적 요소들도, 역사적 배경과 그 시대의 가치관을 밑받침으로 하여, 훨씬 큰 감동과 깊은 공감을 가져올 수 있었다.-자유주의와 합리주의이 작품에서는 역사적 배경의 영향을 받아 두드러지고 있는 사상이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자유주의 를 들 수 있는데, 그것은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과 관련된다. 이때 모든 국민들 사이에서경험과 결론으로 가능하였으며, 하늘과 땅, 신과 세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부단히 단축되고 알력이 감소됨으로써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실에 이상성을, 이상에는 현실성의 부여함으로써 양자의 동일성과 불가분의 통일을 철학은 이행하고 인식하게 되었다.두 번째로는 합리주의 를 들 수 있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 이루어진 마지막 사태의 발전은 문제를 더욱 뚜렷이 거의 결정적으로 해명하고 말았으며, 18세기와 프랑스혁명의 합리주의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는 이성과 역사의 대립, 그리고 역사는 이성의 빛으로 볼 때 천하고 비난받을 것이라는 견해가 비판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판은 유한과 무한, 긍정과 부정을 분리시키지 않는 변증법에 의해 합리주의 사상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었다.-개인주의과 인간주의세 번째는 개인주의 이다. 누구나 한 사람의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대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를 바라보면서 동시대 사람들은 아직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면 사람은 누구나 개인으로서 제한되어 있는 까닭에 때로는 그 시대에 제거되어 이미 해결된 문제 중에서도 자기 체계에 집어넣지 않은 것이 생기게 되고, 그리하여 진부하고 오류에 찬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이다.마지막으로는 인간주의 를 들 수 있다. 자유의 역사적 형태의 의미에서는 미와 재생, 그리고 젊은이들이 가진 용기와 대담성으로 기름지게 되었던 역사적 형태를 형성하였다. 육체화한 정신성, 이와 반대로 정신화한 육체성의 의미는 자유가 지향하는 목표, 즉 인간성이 더 마음대로 숨쉬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목표에서만 찾을 수가 있었다. 전세기의 추상적 인간주의에 반대하고 민족과 조국의 이념을 되살리면서 외국 침략에 대한 방관을 옳지 못한 것으로 여기며, 내셔널리즘의 고양이야말로 인간성을 구체적, 개념적, 개별적 형식으로 발현시킨다고 규정하였다. 실상 개인이나 그룹이나 공통의 기원, 기억과 풍습 및 태도에 의해서 결합된 것이며,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앞으로 활동이 기약되든 민족이라는力)을 강조하는 독자적 숙명론을 사관(史觀)의 밑바닥에 깔고 있으며, '검의 영웅' 나폴레옹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그와 대조시켜 플라톤 카라타예프라는 한낱 농부를 '정신적 영웅'으로서 찬양한다. 등장인물은 수백 명을 헤아리는데 그들은 나폴레옹(惡)과 카라타예프(善)를 양극으로 하여 그 사이에 배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그의 역사관은 한 마디로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개인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의지일 뿐이라는 일종의 숙명론적인 역사관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등장인물을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곧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에너지는 민중으로부터 나오며, 민중 의지의 총화야말로 역사의 필연적 힘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으로 볼 때 전쟁과 평화 의 주인공은 안드레이 공작 도 피에르 도 아니다. 그것은 민중, 러시아의 민중이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 작가는 위선과 허위에 찬 귀족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러시아를 지탱하고 있는 민중에 대해 끊임없는 신뢰와 사랑을 보내고 있다.(이것은 안나 카레리나 에서 안나 와 레빈 의 대조와 흡사하다) 이러한 점에서 전쟁과 평화 는 톨스토이 사상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작품인 것 같다.#예술 소설로서의 감상#역사소설로서의 감상에서 살펴본 요소들 외에도 작가는 여기에 보르콘스키와 로스토프 양가의 귀족을 중심으로 각각 작가가 사랑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각자의 슬픔·기쁨·고민 등 많은 생활을 통하여 유례없는 가정 소설적인 요소를 짜넣음으로써 이것이 이 소설로 하여금 한낱 역사소설의 영역을 넘어서 세계 최고의 고전적 지위를 점하게 하였다.-구원의 여성상인 나타샤어떻게 보면 역사소설, 전쟁소설처럼 보이는 이 소설에서 인간적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여인이 바로 나타샤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지조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젊은 마음은 우리의 마음을 끌게 한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의 생명 긍정의 사상을 체현(體現)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명력의 충만에서 오는 여성의 본능이라고 본다면, 안드레이 공작을 간호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는 그녀 속에 감춰진 모성을 읽을 수 있었다. 여성과 모성, 이것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우리는 비참한 여인들을 발견한다. 삐에르와 결혼한 후에도 방종을 즐기다 생을 바친 엘렌에게서 전자를 발견한다면 여성의 모든 미를 버리고 오직 자식에게만 신경을 쓰는 여인들에게서 후자를 발견한다. 후자에서 우리는 일차원적인 아름다움으로서의 여성의 미보다는,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숭고함이나 고귀함과 같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타샤는 그 둘을 알맞게 갖춘 현대 젊은이의 이상이자 톨스토이의 표현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난생 처음 무도회의 기쁨, 크리스마스날 밤에 눈 덮인 숲을 썰매로 달리는 정경, 오페라 극장에서의 매혹적인 미소에서 연인 같은 그녀의 모습과 포근함을 느끼며 빈사의 연인을 간호하면서 느끼는 사랑과 괴로움, 범할 수 없는 고귀함을 느끼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구원의 여성상이자, 여성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나타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완전한 가상의 인물인 그녀를 완전하게 표현한 톨스토이에게 깊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안드레이와 피에르의 삶에 대한 관점 비교톨스토이는 이 책에서 안드레이와 삐에르를 통해 두 가지의 인간상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안드레이는 러시아의 귀족 사회에 회의를 느끼는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 아마 그는 그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전장으로 나갔는지도 모른다. 아내 처자의 애원과 안정된 위치를 버리며까지 죽음이 찾아드는 전장으로 달려간 그의 심리는 무엇 때문일까? 세속적 지위, 명예욕, 부가 그를 전장으로 이끌었을까?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온 안드레이는 아이의 탄생에 대한 아내의 고통을 보고 태어난다는 것이 도대체 뭘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그 후 아내가 죽고 그는 또다시 삶의 회의를 가지게 된다. 그로 인해 그는 봄, 사랑, 행복 그런 것들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에게는 봄의 생명력이 거짓한다.
-목차-#들어가면서#상트페테르부르그 근대문화의 특징들1. 제도개혁-절대군주의 공(公)개념의 형성2. 새로운 일상 생활3. 건축-네프스키 대로-겨울 궁전-표트르 궁전-표트르 1세 기마상-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4. 종교5. 예술-무용-음악-미술#나가면서#들어가면서-뻬쩨르부르크 시대 개관뾰뜨르 대제는 북방으로 눈을 돌려 서유럽으로 가는 창구를 확보하려 했다. 그리하여 세워진 도시가 뻬쩨르부르크이다. 뻬쩨르부르크는 1703년부터 1712년에 걸쳐 네바강 하구 늪지대를 개척하여 수많은 민중의 죽음 위에 세워졌다. 뾰뜨르 대제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뻬쩨르부르크로 옮기고, 이로서 발트해로 가는 출구를 획득하였다.뾰뜨르는 사회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전문학교를 세우고 유럽의 문명을 과감하게 수용하도록 하였다. 과학과 인쇄술이 발전하였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 정규군이 창설되었고, 계급군주제에서 절대군주제로 전환이 완료되었다. 귀족회의 대신 원로원이 생겨났고, 교회가 국가에 예속되었으며 전국을 황제가 임명한 현 지사에 의해 통치 되도록 하였다. 뾰뜨르에 의해 수행된 개혁은 진보적인 성격을 띠었고, 러시아의 발전과 서구화가 촉진되었으나 러시아의 후진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18세기 말 예카테리나 예제 재위시 러시아는 서쪽으로 영토를 더욱 확장시켰으며, 흑해 카프카스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18세기를 통해 전제정치와 농노제의 토대를 확고히 한 러시아는 19세기에 들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상트-뻬쩨르부르그 근대문화의 특징들1703년 표트르 1세가 스웨덴에서 탈환한 뒤 러시아 절대왕정의 새로운 수도, 즉 ‘유럽으로 열린 창(窓)’을 건설하기로 하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세운 것이 뻬쩨르부르그의 기원이라고 할수 있다. 이어 1712년 수도가 모스크바에서 이전해 오면서 장대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이 진행되고, 이후부터‘유럽으로 열린 창’이라는 말 그대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가 되었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심장’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러시아의 머리’라고 일컬어 ·연극 ·발레 등에서도 국내의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였다.1. 제도개혁-절대군주의 공(公)개념의 형성정치제도의 개혁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절대권의 강화였다. 1703년부터 네바강변에 서유럽식의 새도시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 사업에는 엄청난 노동력이 동원되었으며, 1712년 새도시 건설이 끝나는 동안 100,000명의 노동자가 작업도중에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새도시가 바로 뻬쩨르부르그며,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수도를 모스크바로부터 이곳으로 옮겼다는 사실인데, 이는 뾰뜨르 대제 때 와서 비로서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틀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했다.뾰뜨르의 개혁정치는 새로운 관료제도의 마련으로 이어졌다. 그는 상비군을 창설하고 자질에 바탕을 둔 새로운 관료제도를 안출하는 등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새로운 상층계급을 만들어 구귀족을 견제했다. 군대와 법원 및 문관에 14등급의 계급제도가 마련되었고, 승진은 가장 유능한 이에게 주어졌다. 그는 또 1711년 원로원(senat)를 창설했다. 그것은 모든 사법적, 재정적, 행정적 업무들을 감독하기 위한 최고 국가기관으로서 설립된 것이었다. 위원들의 숫자는 처음에는 9명으로 정해졌고, 그 다음해에는 10명으로 늘어났다. 1717년에는 기존의 행정기관을 폐지한 다음 위원회(collegia)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관청들은 처음에는 그 숫자가 외무, 육군, 해군, 재정적 검사와 통제를 비롯한 9개였다. 나중에 채광업, 토지, 도시조직을 다루는 3개의 분과가 더해졌다. 여러 부서들에 의한 정부는 의견이 보다 큰 다양성과 상호작용을 보장해주며, 합법적이며 올바른 국사처리에 도움이 되었다. 1720-21년에 뾰뜨르 대제는 발전된 유럽 경향들을 따라 지방자치적인 개혁을 도입했으나, 지방의 타성과 무지 때문에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1708년 개혁이후에 이 나라는 8개, 10개, 마지막에는 11개의 거대한 지방정부들로 나누어 지게 되었다.2. 새로운 일상 생활뾰뜨르는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관습 가운데를 신봉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있어, 턱수염은 종교적 신앙과 자기존경의 기본상징이었다. 뾰뜨르의 아버지 알렉세이는 원하는 사람은 턱수염을 깎아도 좋다고 선언했지만 턱수염을 깎는 이는 거의 없었으며, 러시아인들은 턱수염을 깎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아니라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분위기에 맞서 뾰뜨르는 자신의 턱수염을 깎았고, 스스로 면도기를 들고 측근 고관들의 턱수염을 깎아주었을 뿐만아니라 성직자와 농민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턱수염을 깎아야 한다는 법령마저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타협안으로 일정한 세금을 낸 사람들에게는 작은 동메달을 주어 턱수염깎기 단속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또한 러시아 귀족들이 즐겨 입는 외투에 긴 옷자락을 자르고 그 대신에 유럽식의 의복을 입게 하였다. 뾰뜨르는 이어 일종의 사교모임인 '야회'를 권장했으며, 스스로 야회에 자주 참가해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었고 이야기와 농담을 나누었다. '젊은이들의 교훈서'를 발간해 젊은 귀족들의 행실을 서유럽화시키고자 했다.뾰뜨르는 귀족들에게도 교육을 강요하여, 글을 깨우치는 것은 물론 해외로 보내 선진학문을 배우게 했다. 또한 글자에도 개혁을 가져와 복잡한 교회 슬라브어 문자를 간편한 문자로 바꿨으며, 1703년에 러시아 최초의 신문을 발행했다. 그리고 최초의 대학을 세웠으며,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도 장려하여 최초의 자연·역사 박물관을 세웠다3. 건축-네프스키 대로: 동궁 광장에서 동쪽으로 뻗은 전장 약 4.5km의 대로(大路)로 시 건설 초기 이래 상트페테르부르크 제1의 중심가가 되어 온 거리이다. '청동 기마상'이 서 있는 '원로원 광장'의 심장부에서부터 뻗어나가는 3개의 방사선 도로 중, 도스또옙스끼가 안장된 '알렉산드르 넵스끼 수도원'까지 이어지는 뻬쩨르부르그의 대동맥이라고 할수 있다. 고골, 도스또옙스끼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그 말단부의 네바강 강변에 알렉 산드르네프스키 수도원, 그 가로변에 스트로가노프 궁전 ·카잔 수도원 ·아니치코프 궁전 등을 비롯한 역사년에 걸쳐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에 의해 지어진 러시아 바로크 양식의 전형적인 걸작이다. 역대 러시아 황제의 저택으로서 크레믈린에 못지않은 호화로운 건물이다. 1905년의 `피의 일요일 사건'은 이 궁전 앞의 광장에서 일어났으며, 1917년 10월에는 케렌스키 임시 정부의 마지막 각료 회의가 이 곳에서 열렸다.-표트르 궁전: 시내의 서쪽에 있는 표트르 궁전은 1709년에 표트르 1세에 의하여 기획되어 건설된 이궁(離宮)으로, 광대한 부지에 대궁전을 중심으로 20개의 궁전과 크고작은 대리석 석상(石像) ·분수(噴水) 등이 수목 사이에 안배된 7개의 공원이 있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이나 빈의 쇤부른 궁전과 맞먹는 호화로운 궁전이다. 러시아 제국의 발트해 진출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가운데 대궁전은 겨울 궁전과 마찬가지로 바르톨로메오 바스트렐리가 설계하였다.-표트르 1세 기마상: 푸슈킨의 시(詩) 《청동의 기사》로 알려진 데카브리스트 광장에 있는 작은 기념물이다. 뻬쩨르부르그의 기원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고 볼수 있다. 뻬뜨로빠블롭스끼 요새에서 1703년부터 시작된 뻬쩨르부르그 도시 건설을 기념하고, 자신이 뾰뜨르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예까쩨리나 여제는 1782년 프랑스의 조각가 팔코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네바 강을 응시하고 있는 뾰뜨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을 원로원 광장에 건립케 한다. 계몽주의자 디디로의 친구이기도 했던 팔코네는 말 탄 '성자 게오르기(St-George)'가 창으로 용을 무찌르는 중세의 이콘 성상화의 모습처럼, 바위를 딛고 앞발을 공중에 들고 있는 말과 그 안장 위에서 오른 손을 앞으로 쳐들고 있는 뾰뜨르 대제의 모습을 청동으로 주조했다.-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 표트르 대제의 발트해 진출에 따라 요새로서 1703년에 기초가 만들어졌다. 그 후 화강암판으로 보강되어 그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 요새의 건설을 시작한 1703년 5월 16일은 페테르부르크시 탄생일이 되었다. 요새의 벽내에 목조의 '사 페테로와 바보로 교회'가 있던 여 있다. 섬 전체는 18∼19세기 요새건축의 앙상블이 되고 있다. 로마네프가의 문장으로 장식된 표트르 문은 수리되지 않은 유일한 기념물이다. 중앙건물은 1712년 건립된 러시아 바로크의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사원이다.내부에는 금박의 나무로 둘러싸여 장식된 아름다운 제단이나 표트르 대제에서 알렉산드르 3세까지(1991년 망명지인 파리에서 사망한 울라드미르 러마네프 대공도 매장되어 있다) 황제의 아름다운 석관이 있다. 특히 알렉산드르 2세의 석관은 알타이의 녹색 벽옥, 황후의 것은 우랄의 핑크색 각옥, 모두 5톤 한장짜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원의 122m 탑은 크렘린의 이반 황제의 종루보다 높게 만들어졌다.후에 요새는 파리의 바스티유 같이 정치범의 감옥이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아들 알렉세이를, 에카테리나 2세는 남편 표트르 3세의 살해 반대자를, 니콜라이 1세는 농노제에 반대하는 장교인 데카프리스트를 가두었다. 혁명가 레닌의 형인 우리야노프, 고리키, 도스토에프스키들도 수감되었던 곳이다.4. 종교뾰뜨르의 개혁정치는 러시아 정교의 조직개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국가로부터 독립된 총주교의 강력한 일원적 지휘체제 아래 놓여있는 러시아 정교를 짜르에게 복속시켜야 한다고 일찍부터 마음먹고 있었는데, 1721년에 종교령을 제정하고 공포하여 러시아 정교의 총주교구를 폐지하고 자신이 임명한 민간인 행정관인 대사장의 감독을 받는 신성종교행정회의로 대치시킨 것이다. 이로써 짜르에 대한 교회의 예속을 공식화함을 성공했다.5. 예술러시아의 문명화는 문학, 음악, 발레 등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예술은 정치적 독간과 부딪쳐 순수한 러시아적인 예술의 형태와 편하지 않은 관계로 어울려졌다. 천년 역사의 러시아 문학은 러시아인의 문화, 정치, 언어적 혁명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현대에는 문학이 러시아인의 생활을 모든 면에서 나타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8세기 이래, 러시아 음악은 교회음악과 포크송, 춤곡으로 이루어졌다. 1700년대 이태리, 프랑스, 독일의 오페라가 .
1. 들어가는 말: 사회 구성주의적 접근에 대하여사회 구성주의적 접근방식은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객관적으로 현실적이거나 필수적인 것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이는 많은 것이 실지로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행동을 통해서 '구성된다'고 보고 있다.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는 미디어, 대중문화, 과학의 연구를 혁명화하였고, 새로운 연구분야인 수용이론을 형성하고, 조직행동의 기초적 원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사고의 기반은 공동체이며 의미는 공동체 구성원들간의 대화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지식은 외부세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내부 세계 즉, 학습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지식은 오직 주관성과 객관성의 사회적 상호 작용에 의해서 존재한다. 사회 구성주의 철학의 주요 인물들인 쿤, 기어츠, 로티 등의 이론을 살펴보면, 사회구성주의가 전통적인 인식론에 비해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사회 구성주의는 反定礎主義를 지향한다. 둘째, 사회 구성주의는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거부한다. 셋째, 실체는 특정 공동체의 언어적 표상이며, 언어는 지식 공동체를 형성한다. 넷째, 사회 구성주의에서 지식활동의 기반은 지식 공동체와 그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언어이다. 이렇듯 사회 구성주의는 철학적 인식론의 변화를 바탕으로 수사학, 언어학, 심리학 등 인접 학문과의 연계 속에서 급속도로 확장되어 새로운 패러다임된다.이러한 사회 구성주의적 입장들 중 버거와 루크만은 주로 함축적 문화의 사회적 구성(사회적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유럽이론가들은 기록문화의 형식들이 계급, 성, 인종과 같은 사회적 역할을 구성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미디어, 지식, 과학과 같은 표현문화가 사회적 구성임을 강조하였다.이렇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사회 구성주의적 방식을 적용하여 볼 수 있는 데, 여기에서는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당연시 되어온 '근친상간 금기'가 자연적으로나 본능적으로 이루어이 나타난다. 근친상간의 금지에 대한 이유는 학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근친상간의 결과는 개인과 가족뿐만 아니라 한 집단의 비극적 파멸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근친상간의 금기는 오래 전부터 사회적으로 다루어져 왔고, 여러 작품들 속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간단히 살펴보면,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작품 세계에서 근친상간의 문제는 초기작인 『모기(Mosquitos)』에서부터 『먼지 속의 깃발(Flags in the Dust)』, 『성역(Sanctuary)』,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As I Lay Dying)』, 『압살롬, 압살롬!(Absalom, Absalom!)』, 『내려가라, 모세여(Go Down, Moses)』, 그리고 『기사말 미끼(Knight's Gamit)』 등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다루어진다. 리 젠킨스(Lee Jenkins)는 『압살롬, 압살롬!』과 『내려가라, 모세여』에 나타난 근친상간의 문제를 언급하며, 이것을 인종문제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그는 남부의 정서로 보았을 때, 근친상간과 혼혈혼은 혈통의 고귀함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며 혼혈혼에 대한 백인들의 혐오는 어둡게 억압된 그들 자신의 근친상간적 욕망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56-57). 콘스턴스 힐 헐(Constance Hill Hall)은 요크나퍼토파(Yoknapatawpha)의 많은 가문에서 근친상간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가정의 파탄과 소외된 인간 관계가 근친상간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가 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포크너의 소설을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죤 밀튼(John Milton)의『실낙원(Paradise Lost)』과 비교하며, 포크너의 작품 세계에서 근친상간은 한 가족의 몰락이 아닌 남부 역사의 몰락이며 동시에 인간의 몰락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근친상간의 금기에 대해서 . 인간의 특성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연을 부정하고 노동을 하는 인간이고, 두 번째는 동물성을 부정하는 인간이며, 마지막으로는 죽음을 인식하는 인간이다. 여기서 두 번째 특성인 동물성의 부정을 보자.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물적 욕구를 부정하고 대부분의 금기들은 여기에 관계한다. 따라서,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의 공포는 성관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삶에 있어서 서식을 따르지 않는 동물과 우리 인간을 결정적으로 구별하려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Sigmund Freud2) 프로이트( Sigmund Freud ):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충동부친살해가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척도이다. 인간은 거기에서 기원한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부인이나 딸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금기를 부과하고 아들들을 마구 부린다. 그러면 형제들은 서로 질투 또는 견제를 하면서 금기를 유지한다.《 근친상간 모티프 : 프로이트에 의해 일반화된 용어인데 프로이트는 인간을 "아비의 목을 비틀고 어미와 동침하고자 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즉, 부친 살해 충동과 근친상간 충동은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 충동의 한 가지 양상이라는 것이다. 이 모티프가 가지는 방향성은 때때로 텍스트 속에서 엄밀하게 분리되지 않은 채로 드러나는데, 특정 텍스트 속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와 아들, 오빠와 누이동생 사이의 성 관계는 순수하게 성적인 욕구나 충동의 측면에서 금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심리를 반영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대체로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후에 자신들의 관계를 확인함으로써 회한스러운 비극적 운명에 빠지고 마는 일종의 원죄 의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이러한 성적인 심리의 표현과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티프가 반영된 작품으로는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 등이 있다. 》3)웨스터마크 ( Edward Westermarck ): 인간의 천성근친교배의 기피가 영장류 일반에 관찰되는 현상임을 지적했다. 이것은 '근친상간의 금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근친상간의 금기가 생겼다는 이론이다.4. 사회 구성주의적 접근방법으로 살펴보기지금까지는 '근친상간 금기'가 자연적으로나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당연시 되어온 입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래에서는 이 금기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사회구성 주의적 관점에서 근거를 제시해 보았다.1)사회마다 동일하지 않은 금기의 범위: 사회적 구성의 영향근친상간금기는 인류의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관습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근친상간이 적용되는 근친의 범위가 사회마다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회에서는 4촌간의 성행위 및 혼인이 금지되고 있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허용되거나 오히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강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고대 이집트, 잉카 제국 및 고대 하와이의 왕실에서 형제자매간에 결혼이 허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근친상간이 허용된 문화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 시대에 신라의 계급 내 혼제를 답습하여 동성혼 내지 근친혼이 성행하였다. 동성혼, 근친혼은 고려 왕실 내에서는 물론 양반 계급에서도 널리 행해져서 재종 자매(再從姉妹), 질녀(姪女), 이성 자매(異姓姉妹)의 혼인까지 행하여졌었다.2)레비-스트로스의 이론: 외부적 교환과 규칙의 필요성: 혈연관계가 결혼금기 또는 결혼의 조건을 결정하는 규칙으로 작용한다.- 형, 누나, 오빠(평행적 사촌들)등등으로 호칭되는 같은 계통의 방계 사촌들이 있고 서로 다른 한편에는 다른 혈통과 성씨를 가지고 태어나는 방계사촌들이 있고 서로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전자는 상호간에 결혼이 불가능한 한편, 후자는 상호간에 결혼이 가능하다. 평행적 사촌관계보다 교차적 사촌간의 관계는 결혼에 특권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 부계의 교차적 사촌관계보다 모계의 교차적 사촌관계가 더 많은 특권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여자들의 물질적 유용성을 강조하는데 여자의 물질적 의미는 이따금 교환 회로에서 다. 레비-스트로스는 결혼제도의 구조를 고대 세계의 활력소였다고 할 수 있는 교환충동과 결부시킨다. 교환이 원시사회에서는 거래의 형태보다는 상호증여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고대의 교환의 증여원리는 대개 의식을 거쳤다. 예를 들어 축제에 있어서 샴페인은 그 자체로서 여느 때와는 다른 순간을 말해주며, 다시 말해서 이는 무한정 흘러 넘치는 소비를 지배하는 축제의 원리이다. 교환에 의한 결혼은 상업정신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고대 결혼은 여자를 상거래나 이해 타산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고대 결혼의 축제의 일환이었다.- 여자의 경제적 의미여자의 증여에는 교환의 조건으로서의 이해관계와 축제의 본질인 트임과 넘침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증여-교환'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포트래치(potlatch) 라는 이름의 제도와 비교될 수 있다. 또한 여자는 효용적인 측면, 물질적인 가치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물질적 측면을 강조한 결혼에 있어서 탐욕의 대상인 여자의 분배는 동시에 부의 재분배를 보장해준다.Charles Robert Darwin표3) 다윈 ( Charles Robert Darwin )과 아트킨슨: 사회적 관계에 의한 난교 금지 규정다윈의 가설에 의하면, 인간도 원시군(原始群)으로 살아왔는데, 나이 많은 남성의 질투로 원시군내에 난교가 방지되었을 거라는 연역했다. 아트킨슨은 다윈 학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나이 많은 남성의 질투로, 추방당한 남자들(자식들?)도 유사한 무리를 형성하고, 동일한 난교 금지 규정을 만들었으리라 추정하는 것이다. 이런 규정들이 계속 꼬리를 물게되어, '한 울타리 내 사람과의 성교 금지'라는 규칙 확립되었고, 토테미즘 성립 후, '한 토템내 성 관계 금지'로 발전했다는 이론이다.Emile Durkheim4) 에밀 뒤르켐 ( Emile Durkheim ): 토템이라는 사회적 관계토테미즘에서 기원하는 이론으로 토템이 동일한 여성과의 성교 금지라는 규범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토템은 피의 금제(여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