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1. 작품의 내용 정리1771년 5월 초순. 젊은 변호사 베르테르는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조그만 마을에 상속 사건을 처리하러 왔다가 백작가(家) 법관의 딸인 로테를 알게되고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다. 그러나 로테에게는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잊기위해 공사(公使)의 비서가 되어 먼나라로 떠나지만 그는 속무(俗務)생활과 공사의 관료 기질 등 인습에 반항하다 파면되고 사교계에서도 웃음거리가 된다. 결국 그는 다시 귀국하게 되고 로테를 단념하지 못해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 이미 알베르트와 결혼해 있었던 로테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민 그녀의 따뜻한 보살핌은 베르테르의 고독감을 더욱 깊게 했다. 베르테르는 사람을 시켜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리러 보내고 로테는 권총의 먼지를 털어 내 빌려 준다. 1772년 12월 22일 밤 베르테르는 그 권총으로 자살한다.Ⅰ-2. 편지 형식마음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출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인 빌헬름과 애인인 로테에게 보내는 독백적인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서간체의 소설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분량은 약 120페이지 정도로 비록 적지만 그 구성은 아주 극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건이 처음부터 파국에 이르기까지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을 취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텐데 어쩌면 괴테의 자서전적 특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실제로 대학을 나와 변호사가 된 괴테는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작별인사도 없이 마을을 떠났었다. 그리고 또 다른 유부녀를 사랑하던 중 예루잘렘에서 친구가 유부녀를 사랑하다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 사실을 연결시켜 작품을 썼다고 한다.우리는 일기를 쓸 때조차 차마 적지 못하는 비밀을 갖게되고 거짓으로 꾸미게되는데 이러한 소설의 형식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어 더 솔직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 나는 소설로조차도 꺼내놓을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Ⅱ-1. 이성과 감성이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성과 감성의 문제를 끄집어 낼 수 있다. 먼저 첫째로 베르테르의 사랑과 자살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 하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고 둘째로 알베르트와 베르테르라는 두 인물간의 성격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먼저 베르테르의 사랑과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성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적극적인 사고와 소극적인 사고로 나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자면 -물론 이러한 생각은 과거 봉건적 틀 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는 전제하에- 약혼자가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한 남자에의 귀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좀 더 자신있게 대처했더라면 로테도 사람인데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결말은 우리에게 위대한 사랑이라는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했을지도 모른다.둘째로 소극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괜한 소모전에 불과한 게임을 왜 시작했는가 하는 질책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정해진 게임을 시간 아깝고 몸 축나면서 까지 굳이 해야했을까. 또한 여자 하나 때문에 말도 안되게 목숨까지 버려야만 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다음으로 감성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너무 극단에 이른 결과를 초래하기는 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볼 때 솔직히 로테가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나 역시 감정은 이성이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 맘 내킬 때, 시기를 정해놓고 그때에 가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서 누구도 남자로 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생각을 버렸다. 그런 생각은 사랑을 해보지 않았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와서 내린 결론은 사랑은 아무때나 찾아오고 쉽게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이성의 지배는 아주 미미하다. 그러므로 베르테르를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이다.알베르트와 베르테르의 성격을 중심으로 정리하자면, 규칙과 사회적 규율을 중요시하던 봉건 사회에서 알베르트가 대변하고 있는 이성이라는 측면은 최고의 가치로 평가되어지고 있는 반면 베르테르로 대표되어지는 감성이라는 측면은 무시되고 봉건적 사고 속에 드러내 보일 수 없는 부분으로 인식된다. 알베르트는 당시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이성의 측면을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인간본연의 자연적인 감성이 이성보다 앞선다고 주장한다. 이 대립은 두 인물의 자살에 대한 대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자신을 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은 인간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만 해도 역겨워져요.”“어떤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면 곧장, 이것은 어리석다, 저것은 현명하다, 그것은 좋다, 그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을 해야만 속이 시원하지요. 하지만 그런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그 행위 속에 깊이 감춰진 사실을 찾아냈습니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나야만 했는지 그 원인을 확실하게 알아낼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당신같은 사람들이 그처럼 성급하게 판단하지는 않을 겁니다.”베르테르가 살고 있는 봉건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감정에 의해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봉건적인 제도와 사회의 인습과 윤리, 규범으로 대표되는 이성에 맞서는 베르테르의 감성은 작품의 전반에서 대립적인 가치체계를 이루고 있다.Ⅱ-2. 사회 윤리(인습)와 자연적 사랑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하는 감정은 윤리라는 이성과 대립되고 있다. 베르테르와 로테의 사랑은 이성이라는 명목아래 인습과 규범, 윤리를 강요하고 있는 봉건사회의 벽을 허물기 위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베르테르는 이성보다 감성을, 귀족보다 시민을, 윤리보다 사랑을 택함으로써 커다란 사회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베르테르가 살고 있는 시민사회에서 자신이 감정에 의해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테와의 사랑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의 관습과 규범, 윤리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 그는 고뇌하고, 그가 괴로워하던 한계성이 죽음으로부터 극복되고 있으나 이것은 소극적인 방법으로 이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는 어려운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베르테르의 사랑이 감동을 주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인 커다란 벽 앞에서 강하게 부서지는 사랑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록 벽을 뚫고 지나가지는 못했지만 그 앞에서 다시 되돌아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약간 확대 해석 하자면 더러운 세상 내가 안보면 될 것 아니냐 하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굽히지 않는 저항이라는 점에서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다.Ⅱ-2. 단락의 구분 (Segmentierung)베르테르의 사랑이 결말을 맺지 못하고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계절 또한 함께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랑이 봄과 여름 그리고 짧은 가을의 따뜻하고 밝은 계절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시했다면 죽음의 자연은 차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으로 나타나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표현된 의도적이니 설정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자연의 모습은 작품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베르테르의 모습을 대신해 주고 있다. 도시생활 속에서 절망했던 그에게 발하임의 자연은 그에게 그런 마음을 위로하는 존재이며 로테와의 사랑의 감성을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있다.Ⅲ-1. 인습에 대한 반항
입시 교육 속에 가려진 아이들- 수능을 중심으로-‘나는 축구선수가 될 거야’, ‘나는 조종사가 될 거야’ 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는 이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지’, ‘연 봉이 3000은 돼야 하지 않나’ 하는 식의 사고에 익숙해진 채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좋은 대학, 그리고 돈 많이 버는 직업. 이것이 과거 ‘훌륭한 사람’이라고 꿈꿔왔던 우리의 장래의 모습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다가 이다지도 많이 변하게 된 것일까- 물론 성적이나, 재물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조금 덜 불편할 수 있는 하나의 방패로 아주 긴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어린 세대에게 강요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만 7세가 되면서부터 생활하게 되는 학교는, ‘행복한 삶을 누리라’는 말 대신 ‘공부하라’는 말만 하는 곳, 획일적 규율에 따라 무수한 아이들이 사육 당하는 곳이 되어버린 지금, 학생들은 입시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차별과 배제를 내면화한 인간)으로 길러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학생들의 집단적인 기준을 따르는 순응적 태도로 설명되어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 평생의 삶이 결정되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 다만 학생들은 학교교육의 내용보다는 졸업장 획득이나 입시에서의 성공 여부가 보다 중요한 가치로 인식된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가 교육 내용의 사용가치보다는 졸업장이라는 교환가치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학력사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질서를 벗어난다는 것이 개인에게 있어서 어떤 희생적 가치를 수반하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에 적응하고, 너무도 세심하게 길들여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다양하고 특이한 사고를 하던 어린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은 ‘같다, 다르다’의 개념이 아니라 ‘맞다, 틀리다’의 개념이다). 학교는 ‘교과서’라제시하는 지식과 가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교과서는 국가가 인정하는 유일한 진리와 가치의 매개물이며, 입시에서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정복’해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시험은 바로 이 교과서의 권위를 정규적으로 아이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장치이다. 이러한 질서 형태는 권력과 자본의 기획이지만, 입신출세주의에 사로잡힌 학부모와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을 꿈꾸는 학생들의 공모(conspiracy)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렇다면 이제 대학 입시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입시 교육이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대학 입시제도는 대학의 자율성 존중ㆍ질적 수준 향상,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 모색 등의 이유로 대학별 단독출제ㆍ국가 연합고사ㆍ내신제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실시되면서 변천)되어 왔다. 그 중에서 현재 실시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과거 학력고사 시절의 단순 암기식의 교육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학습을 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던 과열과외를 줄여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초의 과열과외를 줄여보자는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어려워진 대입 시험에 적응하기 위해 과외를 받는 학생수가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결국 또다시 문제에 봉착하게 되자 점차적으로 수능시험의 난이도를 낮추게 되었고, 초기에 교과서 밖에서 나왔던 문제들은 거의 줄어듦에 따라 과거의 학력고사와 어느 정도 유사하게, 교과서 내용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입시가 진행되어 왔다. 이는 단적인 예로 지난 2001 수능과 2002 수능을 비교하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다. 지난해의 수능은 그야말로 얼마만큼 학생이 실수를 하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대학의 당락이 결정되었던 데 반해서 올해의 수능은 (비록 아직 정확한 점수의 발표는 없었지만) 사고를 요하는 문제-주어진 문제에 조금만 더 응용하거나 변형을 시키면 풀 수 있는 문제가 소수 출제되어 이미 쉬운 문제에 익숙해져 있던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가져한 문제를 푸는 해결능력이 적었던 탓도 있지만 입시 교육이 무조건 정답을 많이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다보니 어떤 과정을 거쳐 답을 찾아내었든지 간에 빨리,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학생들 또한 여기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것도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이번 수능은 난이도 문제(지난해에 비해 너무 어려웠던 데다가 그간 계속해서 이번 수험생들은 누구나 다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주입시켰던 탓에 난이도에 대한 불만이 많다.)를 앓고 있는데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결코 고등학교 3학년의 수준을 고려하여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닌 만큼 난이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잘못 된 것 같다.) 오히려 여기에서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아래로부터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주도에 의해서 급하게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기차는 떠났다. 기차는 유턴을 하지 못한다. 속도를 조절하면서 안전장치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말처럼 이미 시작된 제도를 급하게 수정시켜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든 우선 반성해야할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수능은 기본적으로 학생 선발의 기능과 교육적인 선도의 기능,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국민 대다수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는 것은 전자이다. ‘학력’ 이 휘두르는 힘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학부모를 비롯한 학생들은 친구를 경쟁자로 의식하는 경향이 짙다. 어차피 교육의 결과는 서열화로 보여지고 이 최종 판정은 평생을 좌우하는 방향키가 되기에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라는 식으로 친구를 외면하고, 이왕이면 공부 잘하는 아이와 짝이 되기를 바라고, 공동 과제가 있을 경우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와 한 조가 되면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이 기뻐한다. 12년 동안 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역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성적에 대한 경쟁은 알고자 하는 욕구도 없이, 무엇보다도 뚜렷한 목표의지 않는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잠이 안 오기 때문에 학원에 다닌 일은 중3, 2학기가 전부였는데 전국적으로 사교육을 받는 학생은 보통이 아니다. 부잣집의 자녀야 맘 놓고 교육을 받지만 가난한 집의 자녀는 두 배로 부모님께 죄를 짓는 마음을 갖게 되는 지금의 교육의 모습이 그래서 나는 싫다. 한달 수입으로는 생활비만 대기에도 빠듯한 형편에 사교육이라는 것은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맘을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외를 없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불가능하다.각자의 소질이나 적성을 무시한 채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남들보다 실력 있는 사람이 되고, 그래야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여건에서, 수능에서 영어를 만점 받아도 영문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자신이 잘하는 과목보다는 못하는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모순된 입시제도하에서 어떻게 과외를 없앨 수 있겠는가.또한 ‘대학. 대학. 공부. 공부.’ 그야말로 왠수 같은 입시지옥 속에서 학생들은 적어도 이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오늘날 격심해지는 경쟁위주의 능력 사회에서 학교교육은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기보다는 교육의 물질적인 투자성 및 수익성에 우선하고 있으며, 개인의 내면적인 자유를 얻기 위한 가치규범의 전달보다는 하나의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단순한 기능적 지식의 전달기능이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학생들의 바람직한 인간성 함양은 소홀해 지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붕괴현상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면, 한 마디로 입시교육에 압도되어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 입시의 시기가 가까워지는 상급 학교로 진학함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그것은 고등학교까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학할 수 있었으나 대학교는 그 양적인 면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인하여 입시 위주 교육이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살벌한 경쟁을 초래하고 있다.우리는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든, 아니면 대충 시간 때우기 식으로 교실에 붙어있었던 사람이든 대개 고등학교 때 얻어야할 경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또한 무작정 공부만 시켜놓고 적성에 맞는 대학, 학과를 선택하라고 하는 12월 말부터 1월 동안 원서를 쓸 때는 정말이지 적성조차도 적응하면 안 될 게 없다는 식으로 선택해 버리게 된다. 이제 입시 교육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는 알게 해주고 공부를 시켜도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몇 달이 지나면서 학생 노릇에 싫증을 내고 학교에 안가도 되는 날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급기야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이 점점 ‘철이 들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소리를 쉽게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상급학교로 갈수록 학교가 가고 싶은 곳으로 바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갖는 위력을 체험하게 되고 부모와 사회의 현실적 기대에 부응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이 인용문은 우리의 현실을 실감나게 설명해주고 있다. 자기 의지에 의해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에서 사회적인 요소들을 격리시키는 것 또한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일 뿐이다. 학생들에게 선택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수긍하고 따를 뿐이다. 그러다보니 대학에 와서 자신의 견해를 기술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이제 제발 학교교육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을 구별하고 싫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야 하는 이유를 자기 스스로 찾아가는, 교육의 주체로서 학생도 자리매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참 고 자 료David Elkind, 김성일 역, 『다컸지만 갈 곳 없는 청소년』, 교육과학사, 1994.김대유,『지금 아이들은 우리 곁에 없다』, 내일을 여는 책, 1997.김진성,『교육,
미국교육과 아메리칸 커피-주입식 교육을 중심으로-세대가 거듭될수록 경제적ㆍ사회적인 발전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교육 상황은 사회 변화에 부응하고 있는가 생각해볼 시기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교육이 절실한 것은 비단 사회적 조류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소외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학벌’지향적인 의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명문대를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한 개인의 학벌이라는 게 정해지는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만큼 우리는 오로지 대학을 위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나온 책이 바로『미국교육과 아메리칸 커피』이다.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아메리칸 커피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교육이 그 자체의 속성ㆍ본질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미국의 교육이론들을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정의하여 보편화하고 있다는 것, 우리 나라에는 맞지도 않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제도상의 문제에 대해서 작자는 미국의 교육현장에서 느꼈던 한국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작자는 교육에 관한 한,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고 시행에 옮길 때는 현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새로운 교육 정책이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깊이 고려, 연구한 끝에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 한국의 교육이론가들은 현장에서의 경험이 결여된 경우가 많아 현실에 바탕을 둔 교육정책을 만드는 것에 소홀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형태의 이론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다가 외국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철저한 검증도 없이 시행함으로써 ‘예상된 실패’를 향한 개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를 바람직한 것으로 이끄는 것은 한국 교육학자들의 현장 경험에 바탕을 둔 연구가 기반이 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론 10개를 아는 것보다 그 이론을 상황에 맞게, 다. 그러한 세심한 배려가 전제된 교육이야말로 ‘참교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아이들다운 것. 아이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기성세대)처럼 통일된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는 획일화 경향을 보인다. 특정개인(개성을 가진 사람)을 죽이고, 알게 모르게 ‘다양성’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면서 우리의 아이들도 또한 기성세대처럼 ‘단답형 문제같은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일률적인 것보다는 그것을 앞서갈 만한 창의력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고방식. 남들과는 다르게 사물, 현상을 보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획일화된 사고는 비판적인 의식을 방해하므로 버려야할 것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교육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고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기존의 연구 결과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거기에다 세상에 새로운 것을 내놓음에 자연히 따르게 되는 두려움을 극복할 만한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두려움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두려움을 감수할 수 있을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유행을 무조건 쫓는 우리의 행동 또한 반성해 볼 필요가 있겠다.)앞으로의 시대는 단순지식을 아는 것보다는 그 지식을 활용하여 창의적,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이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기 때문에 창의성과 사고력, 문제 해결력을 가르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따라서 교사는 기본적으로 교과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교수 방법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학제적 접근을 들 수 있다. 학문간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하여 각 교과 교사간 협동식 수업을 하는 것을 이르는데 이를 통해 ‘종합적 사고력’을 키우게 된다. 이는 세계와 사회를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그런데 현재 우리는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입학을 기점으로 한 개인의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어 버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학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느냐, 사회에 나와서 얼마나 실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느냐에 따라 ‘일류’가 되고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중심의 암기를 충실히 한 사람이 ‘일류’가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수능(수학능력시험)이라는 단 한번의 시험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작자는 '대입이 교육 논의의 핵심이 되고 대학이 늘어가는 것으로 ‘학벌’을 정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비효율적인, 후진국형의 사고방식'(pp.68~69.)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이 같은 작자의 말은 다분히 미국을 선진국형 교육이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우리의 교육을 후진국형이라고 비하시키는 미국 우월 의식이 보이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들 중에서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교육 논의의 중심을 대입해서 대학교육 자체로 옮겨야 한다는 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열심히 입시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아침부터 밤늦도록 씨름하는 내용이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데만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이야기지만 자식들의 성적에 그토록 민감한 학부모들의 최종적인 관심은 자식의 지적ㆍ인격적 성숙이 아니라 일류학교에 들어가고 그렇게 함으로써 장래의 사회적 경쟁에서 자식들이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만들려는 데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나라의 학력은 날로 상승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학력의 상승은 단순히 보아도 이 말은 자명해진다. 초등교육, 중등교육을 마치고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에도 우리는 벼락치기로 시험을 보고 단순지식을 암기하는 일에 혈안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암기는 이해)를 동반하지 않음으로 인해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잊어버리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아니 답안지에 답을 적기도 전에 깨끗이 잊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졸업장)을 목표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반해 미국의 대학생들은 많이 읽고 쓰게 한다. 많이 읽히고 토론시키고 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쓰게 하는 훈련을 시킴으로써 자연히 주체적인 사고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이러한 사고는 초등교육에서부터 계속적인 훈련을 받음으로써 완성된다. 앞서 말한 창의력과 종합적 사고능력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는 이유도 이처럼 교육은 지속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이제 대학교육을 위해서는 초등, 중등교육이 선행되어져야함은 설명이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력상승과 교육의 질적 향상이 동반되어야 함 또한 인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교육과 관련하여 초ㆍ중등 교육에 대해 살펴보겠다.미국의 교육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블락 스케줄링’이었다. 매 교시마다 해야하는 숙제검사나 학습내용 정리 등으로 인해 버려지는 시간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수업시간을 120분에서 150분 정도로 조정하는 것을 블락 스케줄링이라고 하는데 처음에 이러한 제도를 시행한다고 했을 때는 ‘45분도 앉아있으려면 지겨운데 어찌 견디누’ 싶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오히려 낙관적인 결과를 가져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보다 수업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교수 방식에 변화가 필요했을 터인데 미국에서는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하는 수업, 실험을 하는 과학시간, 시청각 자료를 이용하는 수업시간 등에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하루에 3교시 분량의 숙제를 하는 것으로 숙제의 분량을 줄여줌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그 3과목에 대해서는 고차원적인 것을 요구하는 숙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선 수업을 위한 교재와 자료가 부족하고 주입식 교육에 젖어 있는 교사들에게 교수방식을 바꾸기를 요청하는 일 또한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국어시간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도 발표수업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한 일이 많았다.) 한번쯤 적용해 볼 만한 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그리고 우리가 졸업한 이후에 생긴 수행평가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을 가졌다. 가끔 동생에게서 수행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는데 고등학교의 수행평가(적어도 동생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는 말만 그럴싸한 시험이었다. 국어수업의 경우, 시 20편을 암기해서 교사가 그 중 아무 것이나 5개를 골라 물었을 때 막힘 없이 낭송을 해야 한다든지, 보고서 형식의 작문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 수행평가의 전부였다. 결국 ‘수행평가’라는 교육제도가 도입됨으로 인해 지겨운 시험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수행평가는 수업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이다. 여기서는 예를 통해서 그 방식을 제시했다. 수업은 토론으로 이루어졌고 토론이 있기 전에 교사를 통해서 받은 ‘그룹 프로젝트 평가의 기준’을 중심으로 학생들은 더 토론해야할 항목들, 교과 내용을 일일이 체크해서 토론하고 마지막으로 레포트를 결과물로 제출하는 것이다. 그 동안 교사는 학생들의 자율적 토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참여정도를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학습의 장점은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교사의 가이드라인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이러한 연습과정을 통해 고등교육 과정을 수료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그룹 프로젝트 평가의 기준’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대개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졸업하면 얼굴도 마주치기 싫어하는 학습자가 태반인데 수행평가를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의 주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므로 교사와 학생간에 불신이 생긴다면 실패한 교육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다.
1 특성: 성장의 시기1-1 위기 속의 십대들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사회는 급속한 변화 속에서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빠르게 적응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러했고 정보화 사회가 그러하다- 그리고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히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성인들은 자신의 직업적 기능을 재연마 하느라 청소년(교재의 10대와 청소년을 같은 개념으로 보고 청소년이라는 용어로 통일하도록 한다)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를 상실하게 되었고 사회 변화에 압도되어 쫓기듯 살아간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혼란을 겪는 것은 비단 성인들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과거의 과도기 혹은 청년기가 형식상으로만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부담과 스트레스로 인해 방황하고 있다. 실제로 아동기에서 성인기로의 변화는 많은 시행착오를 가져오게 되고 청소년기는 그러한 착오적 실수(단점과 무절제)를 용서받고 이해를 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연히 성인(책임과 예의)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이에 합당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이제 청소년은 자신의 힘으로 성인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 우리는 흔히 이 시기에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자기완성(가치관 형성)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청소년은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적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시간은 여가나 자유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이 없는 시간이며 성인에게 부과되는 책임이 없는 시간이다이렇게 일찍 부여된(조숙한) 성인기는 청소년들에게 두 가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중 하나는 개인적 정체감을 형성하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 정체감을 갖는다는 것은 청소년의 과거에 의미를 부여해주며 미래에 대한 지도와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속적인 자아의식을 갖게된다는 것이다. 자아 또는 개인적 정체감에 대한 확실한 의식은 청소년에게 내적ㆍ외적 요구를 일관성있고를 형성한 사람은 자기 존재의 깊숙한 내면과 접촉하지 못한다. 따라서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된 자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역할, 다양한 특성과 능력, 청소년들의 개인적인 기호, 정치적 및 사회적 태도, 종교적 성향 등을 인식함으로써 정체감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1-1-1 자아의식의 확립에 대한 견해헤세는 “인간은 서로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각자가 지니는 고유의 뜻을 아는 것은 자신뿐인 것이다”라고 했다.(데미안 서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쩌면 한 순간도 지금의 내 모습이 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하는 자아와 그 자아를 지켜보는 자아가 구별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 여기 있는 게 진짜 내가 맞나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인간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은 삶의 목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자아 정체감의 형성이 성인이 되는 관문이라니 나는 몸만 커버린 청소년인가보다.요즘 들어 괜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 가치관의 부재가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절대 굽힐 수 없는 확고한 가치가 있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속태우는 일은 없을텐데 말이다. 동아리 모임과 학과공부, 그리고 대인관계 속에서 어느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지를 몰라서 3월 한 달을 울면서 보냈는데 여전히 무엇이 내게 있어 중요한지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입에 바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면서 정작 하는 것은 없고, 무엇에 쫓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우는 것밖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울음이 소극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면.1-2 새로운 사고방식우리는 흔히 청소년들이 짜증이나 심술 또는 다른 스트레스의 징후를 보일 때, 그러한 반응을 급속한 신체발달의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체적 변화보다 더 극적인대한 오해가 있을까’ 거의 매일을 고민했었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는 개인적 우화라는 것도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혼자서 모든 걸 해야한다는 불안감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나처럼 불행한 사람도 없을 거야’ 하는 식의 사고만 해왔으니 말이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 때문에 생긴 것 같은 미안함과 나약함이 내 사춘기의 전부였다.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물론 아직도 대인관계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무섭다고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내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상상적 청중을 무시할 수도 없겠지만 너무 집착해서도 안된다. 상상적 청중은 어차피 한 사람이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니까 말이다. 이왕이면 통크게 상상적 청중을 한번쯤 모른 척 하는 것도 삶에 여유를 가져오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억지로 힘든 걸 참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지만 필요없이 힘들어하는 것은 소모전 밖에는 될 수 없다는 게 요즘 내가 도달한 마음 편히먹는 법에 대한 결론이다.1-3 사춘기의 위기걱정은 새로운 양식의 사고력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 정서이다.(p55) 청소년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형식적 조작능력의 결과인)을 갖게 될 때 걱정을 하기 시작하며 사춘기는 한 두 가지가 아닌 많은 걱정거리를 제공한다. ‘사춘기’가 가지고 있는 특성상 이 시기는 미지의 변화가 많은 시기이고 따라서 그 고민의 수도 대단히 크다. ‘내가 어떻게 다른가? 나는 어떻게 같은가?’라는 의문과 분화와 통합의 원리를 통한 성숙의 단계에서 청소년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러한 외모의 변화가 남들과 같지 않음이 열등감으로 작용하게 되어 그들은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은 여성의 예뻐지고자 하는 욕구와도 흡사하다. 상상적 청중이 나만 보고있다는 믿음에 근거해서 자신의 내적, 외적 모습에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1-3-1 사춘기의 성(性)현재는 학교마다 성교육시간이 있어서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사춘기에 나는 체육 통해 청소년은 일시적인 유행을 쫓게 되고 일종의 클럽이나 패거리에 소속된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을 경제적 여건이나 기호적인 문제로 인하여 무시하게 되면 자연히 그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또래 집단은 아동기와는 달리 사회적 지위와 배경 같은 특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적인 소외는 배척의 충격으로부터 온다. 클럽은 회원 상호간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회원이 아닌 사람을 배척함으로써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할 수 있다. 회원과 비회원간의 “세밀하고 엄격한 차별”은 이전에는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강력한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배척이 기준이 된다.또한 자신의 신뢰와 충성 또는 관용이 보답받기 보다는 이용당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청소년은 배신의 충격을 경험한다. 어떤 개인적인 이득을 얻기 위하여 정보를 유보ㆍ획득ㆍ제공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계략적 관계를 맺게되는데 상대의 의도(정보 획득)를 모르는 상태에서 정보를 정직하고 자유롭게 교환할 때 가장 많이 느끼는 충격이다.마지막으로 현실적 조작능력의 습득을 통해 완벽하게 보였던 심취대상(이성)이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되면서 청소년은 환멸의 충격을 느낀다.(p83-85) 우리는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현실에)이나 낭만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이성이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 이들을 이상화하고 경험에 의해 수정하면서 우리는 사춘기를 보내게 된다. 우리가 선택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할 때 나타나는 밀고 당기기 현상이 그것이다.(p101) 환멸의 충격은 청소년들이 신체적 매력과 개인적 적합성을 식별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학습 경험이 될 수 있다.1-4-1 충격- 배척ㆍ배신ㆍ환멸의 충격-배척ㆍ배신ㆍ환멸이라고 충격을 심리적으로 나누어놓고 보니까 마치 정상적인 사춘기를 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말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서로 하교길에 노래도 같이 부르고 가끔씩 집에 놀있듯이 가족의 재구성이란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혹은 재혼으로 인해 가정의 근본적인 질서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에 성인은 대개 권위와 성숙의 표시인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녀와 부모의 역할이 전도된다거나 형식적 조작능력(이상주의와 비판적 태도)을 통해서 자녀들은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에서 엇나간 부모에 대한 반발이 생기기 때문이다.부부관계의 재조직은 우선적으로 자녀들에게 충격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고 환경적인 변화(친구나 교사, 친척과의 관계)로 그들의 지위는 흔들리게된다. 그로 인해 청소년들은 정체성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양식의 사고력으로 인하여 이혼의 충격, 즉 정서적ㆍ개인적ㆍ사회적ㆍ재정적 영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모는 공개적 논의를 기피함으로써 가족 내에서 소외를 느끼게 하고, 우리의 청소년들은 무거운 스트레스의 부담만 지게 되었다.그렇다고 혼합가정이 무조건적으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가족의 새로운 구성은 청소년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이혼 전의 가정에서는 이룰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면에서의 성숙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합가정의 큰 문제점은 청소년시기에 필요한 안정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혼란은 잘못된 방향으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어 이러한 상황에서의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청소년이 변화된 위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집밖에서 조화시키는 것은 집안에서의 자신의 변화된 위치에 적응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p145)2-3 부끄러운 학교현대 학교의 심각한 문제는 교육적 욕구와 청소년들의 정체감을 형성하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사회의 가치와 긴장 및 스트레스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형식적인 교육(강의)과 저절로 학습하게 되는 교육을 통해 성숙해 가게된다. 과거 학교라는 공간은 현실 세계의 압력을 받지 않고 개인적ㆍ사회적ㆍ직업적 성숙의 다.
Ⅰ. 독일 행정통합의 내용1990년 10월 3일 독일은 40여년의 분단을 마감하고 마침내 통일이 되었다. 그러나 통일의 기쁨은 잠시뿐이며 독일은 이후 통일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민족의 완전한 내부통합을 위한 힘든 작업에 착수해야만 했다. 통일독일의 체제통합과정 중에서 특히 행정통합은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것은 국가의 정부체제와 관료체제 그리고 행정수요에 대한 정부의 기본정책이 정해진 후에 기타 다른 분야의 통합업무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통일 전 동서독 양국의 행정체제는 매우 달랐다. 서독은 고전적-유럽식 행정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동독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행정체제의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서독은 민주적인 행정체제로 직업공무원제를 채택하여 공직자의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등을 강조하였으며, 지방화와 분권화의 원칙하에 연방제와 지방자치제 등을 실시하였다. 반면 동독에서는 사회주의통일당의 절대적인 권력하에 행정기관은 당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구에 불과했다. 또한 동독의 공직자도 신분상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공무원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국가기관의 종사자’로서 당의 정치적 결정을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했다.독일의 행정통합이란 동서독의 상이한 행정체제가 통일 이후 하나의 행정체제로 합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행정체제란 동서독의 행정체제와는 별개인 제3의 행정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통일이 동독의 붕괴에 따른 이른바 ‘흡수통일’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행정통합이란 결국 서독의 행정체제가 구동독지역에 확대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이 동독의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이었다고 해서 행정통합이 서독의 독단적인 결정에 따라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행정통합은 통일 전 동서독이 합의한 ‘통일조약’의 틀아래서 구동독의 관료와 주민의 이익과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실시되었다.독일 행정통합의 주요 내용은 구동독 공직자의 감축과 재임용을 통한 새로운 관료제의 구축, 신연방주 행정구축을 위한 지원, 주행정체제의 도입, 지방자 부여했다. 또한 이들에 대한 근무조건과 임금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구서독지역 공직자와 평준화하였다.2. 행정인력 지원통일 후 구동독지역의 행정체제가 하루빨리 정비되어 행정이 제 기능을 발휘해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동독의 공직자는 이를 수행할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자유민주주의 행정관료로서 요구되는 전문능력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공직자가 사회주의통일당은 물론 국가보위부에 관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통일정부는 다수의 구서독 공직자를 구동독지역에 파견ㆍ전출시켜 이들로 하여금 중요한 행정임무와 행정체제의 구축업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통일 후 구동독으로 파견ㆍ전출된 구서독 공직자의 전체 숫자는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통일 후 매년 약 35,000명 정도가 상주하고 있었다. 구동독지역 행정지원인력의 선발은 원칙적으로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이들에게는 진급, 보수, 연금상 혜택이 주어졌다.구서독에서 파견ㆍ전출된 행정지원인력은 구동독지역에서 행정수요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또는 행정체제구축 자문단의 일원으로 주지사를 보좌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행정기관의 폐쇄와 이관에 관한 사항, 주정부 구축의 종합계획, 인력감축 및 재임용방안, 연방과 주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방안 등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주정부 부처의 수, 인원, 임무, 예산 등의 사항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이들은 재임용된 공직자와 신규채용된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훈련업무도 담당하였다.3. 州 행정체제의 도입1990년 7월 22일 동독의 인민회의는 1952년 동독에서 폐지되었던 연방제의 부활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동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됨에 따라 브란덴부르크, 작센, 작센-안할트, 메클렌부르크-포폼메른, 튀링엔의 신연방 5개주가 신설되었다. 연방제의 부활은 단순히 권력의 분산과 민주화 그 자체로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독과의 동일한 국가구조 확립함으로써 조속히 통일을 이룬다는 동독국민의 의사표시라고 볼 수 있다.각 주가 형분석해 본 결과 독일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일내에 안정된 행정체제를 구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독의 민주주의 행정체제와 동독의 사회주의 행정체제의 통합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두고 독일정부는 서독 행정체제의 동독지역 확대적용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구동독지역에 특별한 통치기구를 구축하지 않고 연방제와 지방자치제를 부활하여 주지사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장의 책임 아래 새로운 행정체제를 구축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정부는 신연방주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독일정부는 통일 후 구동독 공직자의 해임과 재임용에 관한 명백하고도 엄정한 기준을 마련하여 대대적인 인력감축을 단행하여 신속한 행정구축을 시도하였다.그러나 독일의 행정통합은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킨 것도 사실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1. 구동독시 인권탄압 종사자 및 국가보위부 관련자 색출작업에 따른 문제점통일조약에 따라 통일정부는 구동독 정권의 핵심자로서 인권탄압에 관련된 자와 국가보위부 관련자는 해당사실이 밝혀지면 즉각 해직시킨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신분을 위장하거나 轉職을 통해 통일 후에도 공직자 신분을 유지하며 주요 기관에 계속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이들이 구동독 시절 행했던 사실을 입증할만한 명백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들 해고에 대한 규정이 각 州에서는 물론 州 내부에서도 상이하게 적용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2. 인수한 공직자의 교육에 따른 문제점연방정부는 통일 후 구동독 행정기관으로부터 인수한 인력은 물론 구동독지역에서 신규채용된 공직자들이 업무를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교육을 실시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교육은 통일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으며 그 효과도 미비했다. 이는 교육을 시킬 장소 및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강사, 교육 프로그램 등이 전혀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유는 정부가 파견ㆍ전출되는 구서독 공직자에게 현지사정이나 주민과 공직자의 행태에 대해서 아무런 교육을 실시하지 못한 데에 있다. 구동서독 공직자 상호에 대한 지식 부족은 결국 편견과 갈등을 낳은 것이다.4. 행정제도 구축에 따른 문제점동서독 행정제도의 통합이란 구동독 사회주의 행정제도가 청산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행정제도의 통합이란 구동독지역에서 이전의 중앙집권적인 행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연방제와 지방자치제의 실시 그리고 이에 필요한 민주적 행정관청이 신설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과에 못지않게 문제점 또한 많이 발생되었다. 그것은 연방주 경계 설정에 따른 지역간의 갈등, 주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취약성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방자치구역 개편에 따른 주민간의 갈등, 구동독 공직자의 능력부족에 따른 행정의 비효율성 등이다. 특히 이들 문제 중에서 행정구역의 경계설정에 따른 주민간의 갈등은 행정제도 구축에 따른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결론적으로 독일의 행정통합은 통일 후 7년이 지난 지금 구동서독행정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확보하였으며 수많은 행정수요에 적절히 대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성공적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으며, 아직까지도 해결할 많은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특히 행정의 내부통합, 다시 말해서 구동서독 공직자와 국민들간의 갈등해소와 의식의 통합은 통일된 독일이 하루빨리 달성해야 할 과제이다.Ⅲ. 독일의 경험과 한반도 통일시 행정체제 구축 방안한반도가 북한의 급속한 붕괴로 통일되었을 경우 행정통합은 어떻게 할 것이며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독일의 행정통합 경험은 다음과 같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1. 북한지역 통치방안독일의 경우 통일과 동시에 구서독의 기본법을 구동독지역에 확대적용하였다. 다시 말해서 독일은 구서독지역과 마찬가지로 구동독지역에도 연방제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여 주지사를 비롯해 각 지방자치단체장의 책임하에 행정업무를 수행케만 차선책으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되 단체장을 중앙에서 임명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2. 북한지역 행정조직 개편방안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최고인민회의,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 등 북한의 중앙기관은 물론 사회안전부, 국가안전보위부 등 주민통제기구와 지방행정조직인 지방인민위원회, 지방행정경제위원회의 폐지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타 단순업무를 담당했던 행정조직들은 적어조 과도기 동안이라도 기존의 편제대로 존속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들 조직들도 궁극적으로는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지방자치 단위로 재편되어야 한다. 통일 후 북한의 행정구역과 지방행정계층은 원칙적으로 남한의 행정체제에 맞게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북한이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와 공산주의 사상의 고취를 위해 변경하였던 각 지명도 원래대로 복구되어야 한다.3. 통일 이후 북한출신 공직자의 해고, 재임용, 재교육, 퇴직공직자처리 방안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북한의 공직자에 대해서 대대적인 감축작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북한출신자에 대한 임의적이며 무조건적인 인원감축은 심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시 통일정부는 감축대상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정하여야 하며, 대상자의 과거행적, 적성, 전문성 등을 심사하여 해임하거나 재임용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출신 공직자 해고와 재임용에 관한 기준을 독일의 예를 참고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해당사실 발견 즉시 해고되어야 할 자- 노동당, 최고인민회의,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 등 당과 정부의 고위관료- 재판소와 검찰기관의 고위관료, 군부의 장성, 고급 외교관- 사회안전국, 국가안전보위부 등 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자로 북한 사회주의체제 수호에 적극 참여했던 자와 인권탄압에 관여했던 자- 일정한 유예기간 후에 해고되어야 할 자- 재교육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지식의 부족이나 개인적성의 부적합으로 업무요청에 부응 하지 못한 자- 소속기관에서 더 이상 행정수요가 존재치 않아 필요치 않는 자- 기관이 해체되었거나 기타 다른 기관과의 통폐합 또는 다른 기관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