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 우드 주연의 이 영화는 몇 년 전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한번 본 기억은 있어 내용을 대충 기억하지만 레포트를 쓰기에는 세부적인 사항까지 기억할 수 없어서 영화를 다시 한 번 봤다. 솔직히 그 당시에 영화를 볼때는 그렇게 의미를 두고 보지는 않았다. 그저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이라던가 불륜이라던가 그런 단순한 의미로만 영화를 봤지 특별히 집중을 해서 보지는 않았다. 특히 여주인공 메릴 스트립은 너무 못생겼기 때문에 못생긴 여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는 집중해서 보지않는 나의 성격상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그런데 이번 과제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거나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이유 때문에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깨고 집중을 하고 다시 볼 수 밖에 없었다. 전에 봤을 때하고 이번에 봤을 때하고 틀린 점은 메릴 스트립이 못생겼어도 레포트의 중요성 때문에 그녀의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거다.영화는 처음 프란체스카의 죽음으로 인해 변호사로부터 그녀의 아들과 딸이 장례식 준비와 그녀의 유언을 듣게 되는 부분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유언은 그녀를 화장해서 로즈먼 다리에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죽기전까지 자신의 묘자리까지 다 사두었던 그녀의 유언을 자식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왜 그녀는 로즈먼 다리에서 자신의 재를 뿌려달라고 했고 그 유언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그녀는 자식들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 그리고 그녀의 편지에서 무엇인가를 알게 된 아들과 딸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을 보게 된다. 여기서부터 그녀가 유언을 남기게 된 이유의 설명이 시작된다.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에서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과거의 사건을 알게 된 아들과 딸. 아들은 어머니의 외도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흥분을 보이고 딸은 의외의 침착한 행동을 보인다. 그냥 지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왜 여자인 딸은 침착하고 남다. 그런데 그냥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다리까지 동행을 한다. 차를 타고 가며 그들은 이름, 출생지, 일상생활 등의 평범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남자가 담배를 꺼내기 위해 차의 서랍을 열 때 남자의 손이 여자의 다리를 스치고 여자는 다소 움추러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이 움추러드는 행동이 그냥 단순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들 둘의 사이에 무슨일인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작가인 로버트는 로즈먼 다리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에 왔다. 다리에 도착해 로버트가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의 위치를 잡는 동안 그녀는 다리위에서 몰래 그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냥 바라볼 수도 있는데 왜 그녀는 소녀가 좋아하는 남학생을 숨어서 몰래 보듯 그런 식으로 바라봤을까? 여기서도 벌써부터 그녀에게 로버트가 그냥 사진촬영을 위해 그곳에 온 사람이라는 느낌보다는 어떤 다른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사진을 찍기위한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집에 들려 둘은 아이스티를 마신다. 저녁까지 얻어먹은 로버트는 자신이 예약해 놓은 숙소로 간다. 둘은 어색한 헤어짐을 한다. 그녀는 로버트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로즈먼 다리에 그에게 저녁초대에 대한 글을 남겨놓는다. 다음날 로버트는 사진을 찍다가 그녀가 남긴 메모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연락을 한다. 그리고 로즈먼 다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점심식사를 하던 마을 식당에서 로버트는 다른 남자와의 불륜에 빠진 여자의 소문을 듣게 되고 또 그 여자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냉담하고 차가운 행동들을 보게 된다. 로즈먼 다리가 있는 고장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작은 만큼 소문도 빠르다.그 일로 인해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걱정의 전화를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런 일에 대해 견딜 각오를 한 것 같았다. 저녁이다. 둘은 식사를 마치고 음악에 따라 춤을 춘다. 그리고 그들은 섹스를 한다. 이 부분까지의 일기를 읽다가 아들은 화가 나서 뛰쳐나간다. 하지만 딸은 다시 일기를 읽는다.섹스 후 남과 여의 사랑을 설명한다. 그리고 로버트는 그녀에게 같이 떠나자고 한다. 그녀는 같이 떠나기 위해 짐을 쌓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결국 가족 때문에 로버트와 이별을 한다. 로버트는 다시 그녀에게 결정권을 주고 떠나고 가족들은 돌아온다. 가족들은 아무도 이 4일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프란체스카는 다른 남자와 불륜에 빠진 여자와 친구가 된다. 그녀와 자신이 같은 처지의 상황이란걸 알기 때문일까? 그리고 며칠 뒤 비오는 날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생활용품을 사러 시내로 나간다. 그 비내리는 거리에서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본다. 로버트의 차가 앞에 가고 남편의 차가 뒤에 따른다. 신호가 걸리고 로버트는 그의 차 백미러에 그녀가 준 목걸이를 걸어 놓는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며 심한 갈등을 느낀다. 신호가 풀려도 로버트는 떠날줄을 모른다. 그녀는 몇 번이나 차에서 나가기 위해 손잡이를 꽉 잡았지만 결국은 남편과 가족을 택했다. 빗속에서 멀어지는 로버트의 차를 보며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눈물을 남편은 아무 의심 없이 바라볼 뿐이다.일기를 다 읽은 아들과 딸은 프란체스카를 이해한 듯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한 듯 그녀의 유언에 따라 그녀의 재를 로즈먼 다리 아래 강물에 뿌린다. 그리고 순조롭지 못한 각자의 부부관계에서 아내 그리고 남편과 화해한다.영화는 여기에서 끝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타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이런 사랑을 해본적도 없고 본적도 들은 적도 없고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내용이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단지 사흘간의 교제와 섹스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 둘의 가슴속에 계속 남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이별 후로 둘은 다시 만나지도 연락을 자주 하지도 않았지만 항상 서로를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드라마가 ‘애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도 그것이 불륜이냐 아니면 이다 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랑쪽에 손을 들고 싶다.하지만 아쉬운 점은 영화에서 사랑의 확인이 꼭 섹스와 연관되어야 하느냐에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확인이 꼭 섹스여야만 할까? 영화에서는 다른 묘사로는 그들의 사랑이 잘 느껴지지는 않는다. 단지 ‘사랑일까?’라는 미묘한 느낌을 주는 부분-프란체스카가 로버트의 작업을 몰래 숨어보는 장면, 그에게 저녁초대를 위해 로즈먼 다리에 메모를 남기는 장면, 오아이오주의 외곽으로 소풍을 가는 장면 등-만 보여지고 사랑을 하니까 섹스를 한다는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한 생각을 줄 뿐. 만약 그들의 사랑이 섹스로 표현되지 않고 다른 상황으로 표현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섹스로 인해 둘의 사랑이 불륜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 느낌이다.또 하나 아쉬운 점은 아들의 행동이다. 어머니의 불륜(아들의 생각)을 알게 되고 나서 흥분과 화를 참지 못하던 아들이 마지막에 너무 쉽게 어머니를 이해하는 부분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침착한 행동을 보인 딸이었다면 어머니를 이해하는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겠지만 일기들 다 읽고 난 후의 아들의 180o 달라진 모습은 나로써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이해 했다고 봐야 할까? 마지막에 원만하지 못한 자신의 부인에게 사랑을 말하는 것을 보면 이해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짧은 기간동안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다는 부분만큼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하는 부분도 나에게는 어려운 부분이었다.다시 둘의 사랑에 대한 부분으로 가서 얘기 하겠다. 프란체스카는 사랑의 징표로 어렸을 때 이모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로버트에게 주고 로버트는 죽고 나서 프란체스카에게 팔찌를 선물로 남긴다. 이 장면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에 남고 또 둘의 사랑을 잘 나타냈다고 느꼇다. 사랑하고 선물하고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둘은 선물-목걸이와 팔찌-이라는 객체를 통해 그들의 사랑을 확인 할 수 있었다.섹스에 관한 얘덕한 여자일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면과 유교적인 면(보통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보면 남편을 속이고 외간남자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뻔뻔하고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 찍힐 수도 있지만 한 남자의 아내로써 그리고 자녀의 어머니로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도 떠나지 못한 불쌍한 여자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 중반부에 프란체스카의 딸이 그녀의 오빠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프란체스카의 딸도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봐왔던 그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프란체스카의 삶처럼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남편을 떠나지 못한다는 부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회적 환경과 주변 환경이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이별을 당연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그러나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따라가지 않았지만 로버트를 소유했고 로버트도 항상 프란체스카와 함께 있었다. 둘은 그렇게 사랑한 것이다. 특히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 ‘나는 살아있을 때는 남편과 너희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이제는 죽어서 로버트에게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라는 부분은 둘의 사랑이 단순한 짧은 순간의 불장난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상당히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었다.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짧은 사흘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진정한 사랑을 느꼈고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표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진정 사랑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 시대가 많이 변해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고 표현한다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도 우리가 모르는 일상적인 틀에 박혀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볼 때 한명은 한가정의 아내와 어머니요 다른 한명은 이혼남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의 둘의 사랑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도 그들처럼 불륜의 여지가 있는 상황의 사랑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