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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성
    들어가는 말사람은 먹으려는 욕망과 사랑하려는 욕망 두 가지를 본능적으로 지니며 살아간다. 사람이 매일 살아가는 데 식욕이 필수적 생존욕구라면, 성욕은 한 집단이나 사회 또는 인류가 지속하는 데 꼭 필요한 본능이다. 식욕과 성욕은 사람과 동물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생존본능이지만, 이를 충족하는 방법은 사람과 동물을 가장 잘 구별해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개나 소는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씻지도 않고 식기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동물들은 이성간에 관계를 맺기 위해 연애를 하거나 약혼, 결혼과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또한 식욕과 성욕은 인류의 공통된 욕망이면서 사회와 집단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프랑스인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을 알아보고자 한다.청소년의 섹스와 동성애얼마 전 신문에는 프랑스인들이 섹스를 매우 많이 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실제로 프랑스인은 아시아 사람이나 심지어 미국인과 비교해보아도 섹스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프랑스 부모들은 자녀들이 청소년기에 성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일부 개방적인 집안은 아이들이 대학생 시절에 이성 친구를 집에 데려와 같이 자는 것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이미 1978년 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의 51%는 여자아이가 18세가 되기 이전에 피임약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적극적으로 또는 대체로 찬성한다고 답변하였다. 당시 이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문화적 자유주의를 측정하기 위한 여러 질문 중 하나였다. 여자아이의 피임약 복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자유롭고 개방된 사람들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여년 뒤 이러한 질문은 변별력이 없어져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지금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점을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허용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이들은 오히려 놀라면서 되물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성인이 되면서 서로 성관계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는 것보다는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만일 피임약을 먹지 않는다면 임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임신하고 나면 양자택일의 길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아이를 낳아 키우든지 아니면 낙태를 하든지....그러나 원치 않은 아이를 생활력이 없는 십대가 키우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낙태를 한다면 도덕적인 죄책감과 건강에 해로운 일이기에 쉬운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프랑스인들은 청소년의 성에 대해서만 관대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변태'라는 시각을 가지고 보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이성을 사랑하지 않고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의 선택에 대해 국가나 사회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사랑하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일부가 동성을 사랑하는 운명으로 태어났다면 그들의 삶도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이다.현재 프랑스에는 오십만명에서 백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명 '호모 커플'을 이루고 산다. 호모 커플이란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가 같이 사는 커플을 지칭한다. 그렇다고 형제가 같이 살거나 모녀가 같이 사는 것을 호모 커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같은 지붕 아래서 한 침대를 쓰면서 성관계를 가지는 남-남 또는 여-여 커플이 바로 호모 커플이다. 이러한 '특별한 취향'의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호모들은 1970년대 동성애의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매우 적극적인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인사들은 자신이 호모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힘으로써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호모들의 소외감을 덜어주는 데 기여하였다.당시까지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정신병'의 일종으로 취급하였는데, 이 운동을 계기로 프랑스 정부는 1980년대 초반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을 더 이상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형법상에 존재하는 호모에 대한 차별 규정도 없앴다. 당시 프랑스 형법은 이성간의 관계는 15세를 성년으로 규정한 반면 동성간의 관계는 18세로 정하여 차별을 두고 있었다. 16∼17세의 소년이나 소녀가 18세 이상의 성인과 자발적으로 이성관계를 맺을 경우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았지만 동성관계를 갖게 되면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받는 상황이었다.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에 대해서 바다같이 넓은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여전히 동성애의 취향이나 동성 커플은 프랑스에서도 소수일 뿐이다. 이들은 이성을 좋아하는 다수의 프랑스인들로부터 자주 농담이나 야유 또는 편견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손가락질 받는다.그럼에도 불고하고 프랑스에는 자신의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용기있는 유명인사들이 있다. 호모 커플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들의 성적 취향을 공격하거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악용하기보다는 인간의 기본권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언론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기존 정치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10여년간 입법활동을 벌인 국회의원들도 있다.프랑스는 프리섹스의 천국인가프랑스는 절대로 프리섹스의 나라가 아니다. 프리(free)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자유롭다고, 둘째는 공짜라는 의미이다 프랑스에서 섹스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만난 남녀가 섹스를 하러 직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빠리에 가서 프리섹스를 즐기겠다는 생각은 프랑스 사회에 대해 무지한 착각에 불과하다.한국과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면 프랑스인들은 성생활 자체를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청소년들은 평균 17세 정도에 첫 성경험을 갖는다. 남녀 평균 사이에도 별 차이가 없는데 남자는 17세, 여자는 17.5세이다. 1930년대 조사에 따르면 당시 여자는 평균 21세 정도에 첫경험을 가졌다고 한다. 첫경험의 연령이 상당히 낮아진 셈이다.다른 한편 평생 동안 성관계를 맺는 파트너의 수는 남성의 경우 평균 12.1명이고 여성은 3.2명이다. 이 같은 남녀간의 차이에 대해 조사를 담당한 사회학자는 남자가 평균적으로 더 많은 수의 파트너와 관계를 맺지만, 여성의 경우 한두 번만 관계를 맺거나 오래 지속되지 않는 관계는 제외하고 답변한 것으로 분석하였다. 이런 통계에서 남자가 수를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자는 수를 낮추어 말하는 심리가 있다는 사실을 통해 프랑스 같은 개방사회에서도 아직 남아 있는 폐쇄적 성의식을 엿볼 수 있다.1990년대의 프랑스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로 동거하는 상대방과 성관계를 갖는다. 물론 한국처럼 같이 산다고 해서 모두 결혼한 관계는 아니다. 결혼하지 않고 단순히 동거하는 남녀가 4백만이나 되니 말이다. 같이 살지 않는 사람과의 성관계는 프랑스인에게도 일종의 모험인 셈이다. 그리고 남녀를 불문하고 이성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충실함'이다. 여기서 충실함이란 파트너 이외의 사람과는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자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것은 용기다프랑스에서도 과거에 동거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상류층은 결혼을 하는 반면에 사회의 기층을 형성하는 노동자들은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한다고 비난받았다. 아니면 돈 많은 부르주아가 젊은 여자를 첩으로 두고 같이 사는 동거의 경우도 빈번했는데 이 역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서민들이나 불륜관계에 있는 남녀의 동거양식이 지식인들을 통해 일반화되었다. 68 사회문화혁명은 동거가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 그것을 가치선택의 문제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동거라는 형식의 남녀관계가 반드시 복잡한 이성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잘 맞지 않으면 몇 개월만에 청산하는 동거관계도 있지만 대개는 수년간 유지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년간 지속되기도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동거하는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제약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2002.11.10| 5페이지| 1,000원| 조회(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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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인생관 평가C아쉬워요
    나의 인생관광활한 우주 속에 은하계가 있고 그 속에 태양계, 또 그 속에 자그마한 지구가 있다. 지구라는 축복 받은 행성 위에는 여러 생명체가 살고 있으나, 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이 버티고 있다. 인간은 이성이라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강한 무기를 이용해서 문명을 일구어 냈다. 권력이 발생하고 자연히 나라를 만들어 자기들만의 영토를 지닌다. 각자 인간들은 자신이 속한 나라, 지역, 집단 속에서 자신만의 철학 즉, 인생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인간은 우주의 광활함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존재이지만 허공을 무질서하게 떠다니는 공기 분자들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란 인간은 내가 속한 환경 속에서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떠다니고 있는 것일까.인생관이라 함은 태어나자마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의 입장이 미래에 어떻게 바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내가 살아온 과거를 살펴볼 때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4살부터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집 주변이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다. 물론 부모님을 따라서 멀리 나가본 적도 많고 TV를 통해 외부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간접경험을 했지만 집 주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 속에서 동네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만이 당시 나의 삶의 질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며 인생의 목표였던 것 같다. 유치원 시절에 나는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인생은 죽음을 행해 달음질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어 진정한 동료들과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우리집은 무엇보다도 교육을 중시한다. 부모님은 물론 친척분들 대부분이 일류대학을 나오셨기에 나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인생관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쳐왔으며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있는 듯하다. 여하튼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삶의 가치는 어떤 대학을 가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 왔다. 비참하게도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인생을 대학 진학에 걸어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대한 회의를 심하게 느껴서 삶의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고 누구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하늘을 찌를 때가 있었지만 그건 단지 순간의 도피의식에 불과 했던 것 같다. 정말로 대학에 들어오고야 만 후에 난 삶은 즐기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후회가 없을 정도로 난 즐겼고 군대에 들어갔다. 그 후 지금까지 앞으로 살아갈 것을 걱정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복학생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본다.이제부터 나의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인생관을 서술하고자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삶은 덧없는 것인가? 아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죽어 왔지만 인류는 건재하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삶은 번식이다. 종족의 번성과 유지를 위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생물이 모두 그와 같을진데 그렇다면 인간의 삶은 무엇이 다른가. 인간은 살아가는 것 자체보다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삶 즉, 인생인 것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목한 가정과 넉넉한 재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 또한 사회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 할 수 있다.넉넉한 재화를 얻으려면 성공을 하여야한다. 성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기초에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교육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또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여러 가지 지식의 습득과 간접 경험을 얻을 수 있어서 짧다면 짧은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또한 성공을 하려면 남들 보다 뛰어나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것은 아닌 듯 싶다. 그래서 나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날 수 있도록 가치를 두는 것이 있다.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능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전자가 자신감이 있는 경우이다. 또한 자신감은 사람을 돗보이게 한다. 모든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한다. 마음은 육체를 지배한다. 마음이 어두우면 몸도 힘이 빠지게 마련인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은 흥겨움을 주고 그 흥겨움은 삶을 추진하는 힘이 되어준다. 초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자신감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삶에 있어 여러 번의 실패는 겪을 수밖에 없다. 실패를 초연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해만 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상이 내가 인생에 있어 성공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자세이다.
    사회과학| 2002.11.10| 3페이지| 1,000원| 조회(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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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평가B괜찮아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고...들어가는 말사람은 살면서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또한 여자친구가 있고 결혼을 생각할 만큼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달콤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서로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신기하게도 트러블이 생기고 싸우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법이지.', 혹은 '싸우면서 정드는 거지.'라는 말로 웃고 넘기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 될수록 의문점이 생겨났다. '과연 이 여자가 나의 짝이 맞을까?', '정말,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녀가 나의 짝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여자가 나와 맞을까?'하는 것들이다. 결국 이 책을 읽고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는 사실, 즉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차별이 아닌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녀의 차이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사랑을 키우고 지키는 데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남자와 여자는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남녀는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반응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달리한다. 어떤 때엔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남자들은 화성에서 오고, 여자들은 금성에서 왔다고 상상해 보자. 그들은 지구로 내려와서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고, 따라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로의 차이점들이 기억에서 모두 지워지면서 그들은 충돌하기 시작했다.여자들이 남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느끼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보통 여자가 말을 하면 그냥 무시해 버리든가, 아니면 몇 마디만 듣고 자기 마음대로 문제가 무엇인지 판단하고는 그녀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자가 이 사랑의 표시를 별로 고맙게 여기지 않는 듯하면 그는 어리둥절해한다. 여자는 공감을 기대하는데, 남자는 그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자기의 느낌을 남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나누는 일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을 느낀다.남자들이 여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느끼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여자들이 늘 그들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녀는 그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 라고 느끼고, 그때까지의 그의 생활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면서 여자는 자기가 그를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남자는 조종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남자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남자에게 그가 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해주는 것은 곧 그가 일을 앞에 놓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거나, 아니면 혼자서는 해낼 수 없으리라고 여긴다는 것이 된다. 남성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는 능력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남자와 여자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화성인들은 기분이 언짢을 때 무엇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에 조용히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그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해결책을 찾고 나면 기분이 한결 좋아져서 동굴 밖으로 나온다. 반면 금성인들은 낮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다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자기가 믿는 사람을 찾아가 그에게 자기 문제를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감정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들은 아까보다 한결 기분이 풀린다. 즉, 남자들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 긴장이 해소되는 반면, 여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문제들을 이야기함으로써 한결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남녀는 서로 다른 동기 부여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어떤 관계이든 상대가 자기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으면 남자는 점점 더 힘을 잃고 위축된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는 그 관계 속에서 베풀 줄 모르는 소극적인 사람이 된다. 그러나 반면에 그가 상대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그 노력을 고맙게 생각하면 그는 더욱 힘을 얻어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 금성인들은 자기가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이 움직이고 의욕이 솟는다. 관계 속에서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여자는 그것이 자기 탓일 거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상대에게 무작정 모든 것을 베푸는 일에 스스로 지쳐 버린다. 반면에 자기가 애정과 존중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은 여자에게 더 없는 만족감을 줄 뿐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게 한다.남자들은 흡사 고무줄과도 같다. 그들은 도로 잡아 당겨질 때까지는 최대한 멀어지려는 특성이 있다. 즉,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경우에도 때로 그녀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행동은 독립과 자율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로부터 충분한 거리까지 떨어지고 나면 그는 불현듯 사랑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도로 제자리로 돌아올 때 그는 멀어지기 이전의 친밀감을 자연스럽게 회복한다. 여자는 이처럼 멀어지려고 하는 남자의 본능적 욕구를 효과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마치 고무줄처럼 그를 자기에게로 되돌아오게 만들 수 있다.여자의 사랑은 마치 파도처럼 리듬 있게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정말 기분이 좋아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바뀌면 그녀의 파도는 사정없이 곤두박질친다. 맨 밑바닥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녀의 기분은 어느 새 바뀌어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좋은 감정을 갖게 된다. 그녀의 파도는 저절로 위를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파도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여자의 곁에 있는 남자는 이를 저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 파도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후에야 다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자들은 감정의 대청소를 하게 된다.
    사회과학| 2002.07.11| 4페이지| 1,000원| 조회(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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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현대 중국을 통치한 5인 평가A좋아요
    Ⅰ. 들어가는 말역사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기록되고 연구되는 것이므로, 역사 연구에서 인물 연구가 중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전통시대에 동양의 역사는 거의 전적으로 인간의 활동상을 기록하고, 인물의 선악시비를 비평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 그러나 근대 역사학은 인간의 활동이나 사상보다 사회 전체의 구조나 변동 양상 및 경제적 조건 같은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 특히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 등장한 이후에는 사회 경제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이른바 과학적 역사로 간주되어 개별적 인물의 활동이나 사상을 연구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여기게 되었다. 역사의 중심이 인간인가 사회·경제적 조건인가 하는 해묵은 논쟁은 접어두고라도, 역사 연구에서 인물의 탐구는 언제나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대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를 생동하게 하는 것으로 기술하자면 인간을 빼고 서술하기 어렵다. 인간은 물론 특정 사회의 소산으로 경제를 비롯한 여러 환경들 위에서 생존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역사를 살아가면서 문화를 창조하고 각자의 사유를 통하여 사상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한 사상은 당대나 후세의 역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적 환경과 창의적 사상은 일종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사에서 인간의 활동이나 사상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여기서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하여 근현대 중국의 인물들을 살펴보려 한다. 흔히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도 하며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고도 한다. 그처럼 당대 중국사는 그 속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들과 함께 변하여 왔다. 이제 근현대 중국을 통치한 5인의 지도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를 창조해 나간 개인들에 대한 서술이 되겠지만, 또한 이는 당시 격동하는 근현대 중국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Ⅱ. 근현대 중국을 통치한 5인1. 손문 손문이 서거했을 때 전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거나 그를 제압하려는 모든 것에 그는 도전하였다.그는 조강지처를 버렸고, 많은 친구를 잃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의 혁명을 성공하려는 집념의 희생물이었다. 그러나 인생을 끝내면서, 손문은 정신적으로 성장하였고 중국이 이루어야 할 이상을 국민들에게 남겨주었다. 모든 것에 실패한 손문이지만 민족의 앞길을 열어놓는 데 그는 기여하였다. 손문은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깊이 신봉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위는 중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손문의 정치사상은 대만과 중국에서 공히 중요시하는 사상이 되었다. 그는 또한 중국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설적 존재가 되었다. 결국 손문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서양의 격언을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세계에 입증한 20세기의 위대한 인물이다.2. 장개석 장개석은 격동의 한 시대를 장식한 위대한 인물이다. 절강성의 시골에서 태어나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를 통치하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명석했으며 일본 사관학교에 시험을 봐 선출되어 입교하였다. 군인으로서 작전에 능숙했고, 용기가 있었으며 전략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장개석은 낙후한 조국을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손문의 삼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장개석은 손문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나 그의 손문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은 대단했다. 손문에 비해 장개석은 정직하고 성실한 인간이었다. 인간적인 의리도 강했고, 대단한 용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장학량에게 포로가 되었으나 오히려 그를 호통쳤고, 대만으로 철수할 때 보좌관이 뒷문으로 숨어서 탈출하라고 권유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당당히 정문으로 나가서 차를 타고 비행장으로 떠난 인물이었다.장개석은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에 존재하던 군벌이 국가를 분열시키고 봉건주의 잔재를 유지하게 만든다고 믿었기에 군벌을 정복하려고 하였으나 종말에는 군벌들의 이탈로 수십 년 쌓은 전 사항에 연유하였기에 장개석과 같이 위대한 인물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대만으로 철수한 후에야 그는 중국정치를 깨닫게 되고 대만의 근대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게 된다. 아마도 큰 짐을 지고 세상에 나온 그였지만, 대만 정도의 국가를 통치할 능력을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천운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장개석 총통은 항상 본토의 회복을 꿈꾸었고 기회만을 기다리면서 대만 군을 근대화했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고령으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3. 모택동 프랑스의 지성인인 앙드레 말로가 지적했듯이 모택동은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정치인의 하나다. 모택동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을 새로운 사회로 만들었다. 물론 모택동이 없어도 중국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존재했고,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택동이 있었기에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정권을 획득할 수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모택동이 없이는 중국의 공산주의 운동이 이같이 특징이 있는 운동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모택동이 중국에서 공산주의를 성공시킨 데는 물론 행운도 따랐다. 장개석이 홍군을 섬멸시킬 가능성만 있으면, 일본군의 침략으로 장개석은 홍군과의 전투를 중단하곤 했다. 즉 모택동의 성공은 제국주의 일본의 간섭, 소련의 간섭, 나중에는 미국의 내정의 간섭으로 혜택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혁명에 있어서 모택동의 탁월한 지략과 능력을 간과할 수는 없다. 모택동은 책을 많이 읽고 자수성가한 인물로서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기에 중국의 특수한 환경을 잘 이해해서 혁명을 성공시켰다.중국을 통일한 인물로서 모택동은 중국 역사상 당 태종이나 한 고조에 비유할 수도 있다. 세계의 역사 속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고 낙후한 중국을 통일하고 건설하여 세계의 강국을 만든 인물로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고 보겠다.모택동은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찬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산업사회가 이루어진 후에야 공산주의 혁명이뚜렷하게 예시하고 있다.모택동은 역사 속의 위인들이 그러했듯이 인간적으로는 무척 불우한 사람이었다. 혁명의 와중에 그의 부인과 자식이 처형당하고, 그의 형제는 또한 전투중에 전사하거나 정적에게 처형당하기도 했다. 2만리의 대장정에서 자식을 잃고 많은 동지를 잃었다. 늙어서는 너무나 야심이 강한 젊은 부인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그의 주치의가 밝혔듯이 그는 늙어서 방종한 성생활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물론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모택동은 인간이 또한 시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드문 위인의 한 명으로서 영원히 기억되리라.4. 주은래 중국의 정치는 정통과 혁명, 유교와 공산주의, 급진적 현대화와 순리적인 근대화라는 괴리 속에서 요동했다. 주은래는 이미 출신 성분에서부터 전형적인 유학자 가문에서 자라기도 했지만, 그의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들은 유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공자가 백성과 부(富), 교육을 강조했던 것처럼 주은래도 기술과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언제나 주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무리하게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였고 합리주의자였다. 또한 그가 평생 거의 일관되게 취했던 중립적이고 절충주의적인 태도는 유학의 중용적 입장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로 하여금 언제나 극단적인 주의주장을 지양하여 온건하고 균형잡힌 사고 성향의 지도자가 되게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주은래를 일단 '유교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결코 배타주의적인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일본과 프랑스 유학시절, 그리고 이후 서구세계의 지도자들과 잦은 교류를 통해 근대적인 지식과 안목, 유럽적인 감각을 섭렵할 수 있었다. 그는 서양과 동양의 신구사상을 조화롭게 체득하여 겸비한 '개방적인 공산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갈등과 대결보다는 화해와 타협을 모색했으며, 그의 이와 같이 온건하고 성실한 자세는 냉전시대의 서구 지도자들에게조차 신뢰를 얻기에 그의 뒤에서 묵묵히 그러나 꼼꼼하게 보필했던 참모요 내조자였다. 주은래야말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 최대 국가의 총리로서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갔던 헌신적인 '가정주부'―실제로 장정기간에 그의 별명은 주부였다.― 였다. 그는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자상한 보살핌과 강인한 인내심으로 수십 년간에 걸친 국내외의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으로 하여금 21세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국제사회에서의 현저한 지위와 함께 획기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이미 1970년대 초 그의 통찰력에 크게 힘입었음을 아무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그는 4대 현대화 계획이 꽃을 피우는 광경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유지를 받든 정치적 후배들에 의해 중국은 현재 괄목할만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5. 등소평 등소평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치열했던 20세기 중국의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도 그를 어떠한 인물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개성을 유형화하여 모택동은 반항아형, 주은래는 외교관형이라 했으며 유소기는 관료형, 임표는 무인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등소평은 그중 어느 한 유형에 속한다고 단정짓기가 곤란하다. 그는 위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항일전과 내전에서 보여주었던 군인으로서의 활약은 결코 임표의 업적에 못지 않으며,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인민해방군의 '10대 원수'의 반열에 꼽히는 전쟁영웅이었다. 이후 당과 정무원 내에서 40년 이상 동안에 쌓은 행정가로서의 경험과 경력은 그를 유소기 이상의 유능한 관료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세기에 걸친 국내외의 대립과 투쟁 속에서 조정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는 일찍이 모택동과 주은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맡았으며, 당의최고 지도자가 된 후에는 국내의 보수세력과 개혁세력 사이의 균형자요 완충자였다. 대외정책에서도 그는 침체된 미국과의 국교를 정였다.
    인문/어학| 2002.07.11| 10페이지| 1,000원| 조회(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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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경기 평가A좋아요
    폐경기Ⅰ.들어가는 말근래에 들어 의학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우리 나라 여성의 평균 수명도 75세로 늘어나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의 경우 일생의 1/3 이상을 폐경 상태로 지내게 되므로 폐경기 여성의 관리는 중요한 의학적 및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폐경이란 월경이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을 뜻하며 의학적으로는 나이가 듦에 따라 여성생식기인 난소의 노화 때문입니다. 이러한 난소의 노화는 여성호르몬의 결핍을 야기하며 이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일으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여성호르몬 결핍이 여러 폐경기 증상들뿐만 아니라 뼈와 심장, 혈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폐경의 관리가 사회 경제적 문제점으로까지 대두하게 되었습니다.Ⅱ.본문1.폐경은 왜 일어나는가?(1) 폐경의 원인폐경의 원인은 난소의 노화입니다. 여자 아이가 출생할 때 원시난포 등의 형태로 난소 속에 가지고 있는 난자수는 거의 백만 개에 이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수는 빠른 속도로 감소합니다. 배란에 의하여 소모되는 난자수는 적지만 난소 안에서 그대로 또는 성숙하다가 중도에서 죽어가는 난자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숙과정을 거쳐 배란되면서 폐경 전까지 소모되는 난자수는 수백 개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수 많은 난자들 중 일부는 저절로 퇴화되고 일부는 성숙되어 배란되어 가는 난자를 따라 같이 성숙하다가 도중에 퇴화해 버리는데 이러한 난자의 자연소실은 폐경기까지 계속됩니다. 자궁 속에서 태아가 형성될 때 난자수가 결정되고 난소가 완전히 형성되는 초기 태아 시기부터 난자수는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세포 분열을 통하여 자체 세포수를 늘리지 못하는 현상이 난자세포의 특징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난소에서 난자수가 계속 감소하는 현상은 난소의 노화를 의미합니다. 폐경기가 되면 난소에는 불과 수백 개 정도의 난자만이 존재하는데 이 난자들도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난소의 무게와 크기도 35세 지나면 점차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난소가 노화되면 건강한 난되었다고 해서 에스트로겐 생산이 중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트로겐 생산량은 현저히 감소하지만 난포 외의 난소세포나 부신 등에서 생성되는 남성호르몬이 피하지방세포 등에서 에스트로겐으로 전환되는데 이때 생성되는 에스트로겐은 난포 등에서 생산되는 에스트로겐과 그 종류가 다릅니다.여하튼 폐경 몇 년 전부터 에스트로겐의 감소 등 일련의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오면서 정신, 신체적으로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데 이들 변화를 갱년기 변화라 하고 갱년기 변화중의 하나가 바로 폐경기입니다.(3)폐경기 월경의 변화폐경이 가까워지면 흔히 월경이 불규칙해집니다. 불규칙해지는 원인은 에스트로겐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성선자극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는 현상과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규칙적인 월경이 갑자기 없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월경주기가 불규칙해지거나 때없이 출혈이 반복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몇 달 월경이 없다가 갑자기 많은 양의 출혈이 있을 수도 있고 이제 폐경이구나 하고 생각할 때마다 소량의 출혈을 보이는 현상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또는 월경주기가 길어지고 월경량이 점차 감소하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폐경 전 불규칙한 월경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한 유형은 배란성월경이고 또 다른 유형은 무배란성월경입니다. 난포자극호르몬의 분비는 증가되고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는 감소되나 황체형성호르몬의 분비는 정상일 수가 있습니다. 이때 월경주기는 짧아져 20일 만에도 월경을 하고 23일 만에도 월경을 하지만 이런 월경주기는 배란성 주기이고 폐경 몇 년 전부터 시작되는 월경은 흔히 이 유형입니다. 만약 황체형성호르몬 분비도 증가하고 황체가 형성이 안되면서 소량의 에스트로겐 분비만 계속되면 주기도 매우 불규칙하고 예고 없이 소량의 출혈이 계속되는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출혈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무배란성출혈유형에 속하고 폐경 직전에 흔히 경험하게 됩니다.여성들이 폐경을 맞이하면서 "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여자가 아니구나......"라고 허전해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절망m으로 줄어들게 되어, 이러한 위축은 작은 것에서 중간 정도의 자궁근종(자궁에 생기는 양성살혹)을 갖고 있던 폐경 이후 여성들에게는 실제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2)외부 생식기 및 비뇨계의 변화1 질 건조증, 노인성 질염에스트로겐의 감소로 질과 요도계의 가장 겉에 있는 세포인 상피세포가 얇아지고 건조해지며 탄력성과 유연성을 잃게 됩니다. 질외부는 늘어나지만, 질내부는 좁아지고, 질분비물도 감소되어 부부관계시 통증을 느끼고, 상피세포가 벗겨져서 출혈이 있거나 염증이 생기기 쉬운 상태가 되어 냉이 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음부에 가려움증이 생기며, 질벽에 붉은 반점과 갈색의 분비물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2 방광염폐경이 되어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적어지면 소변이 나오는 길인 요로 역시 질과 같은 변화가 생겨, 요로의 상피세포가 얇아지면서 작은 외상에 의해서도 손상을 쉽게 받으며, 염증이 잘 생겨서 소변볼 때 통증을 느낀다든가 소변을 자주 보거나 피가 섞인 소변을 보거나 소변보기가 힘들고, 소변본 후에도 시원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3)골반 구조의 변화1 요실금증에스트로겐의 결핍에 의해서 탄력성이 감소하여 골반 장기와 함께 요도가 늘어나고 방광 조절 능력이 떨어져서 생기며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소변이 새어나오는 증상인 긴장성 요실금증도 생기게 됩니다. 정도가 심한 것은 비뇨기과적 치료를 할 수 있으나, 가벼운 것은 약물치료도 가능합니다.2 자궁 하강 및 골반장기의 탈출(자궁탈, 방광탈, 장관탈, 직장탈)생식기관을 지지하고 버티고 있던 골반의 인대와 구조물들은 에스트로겐이 감소함에 따라 긴장력, 즉 팽팽함을 잃게 됩니다. 그 결과로 점점 골반이 늘어나 방광탈(방광이 질벽을 통해 빠져나온 것), 장관탈(장이 질벽을 통해 빠져나온 것), 직장탈(직장이 질벽을 통해 빠져나온 것) 등이 생깁니다.노년기에서 자궁전체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자궁탈(염불이 빠져나옴)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변비나 배변곤란과 뒤무지.(2)비뇨생식기의 위축나이가 들면 피부와 점막이 위축됩니다. 특히 여성에서는 폐경 후 에스트로겐의 결핍이 비뇨생식기 위축 현상을 촉진시킵니다. 그리하여 외음부는 피부가 얇아지고 피하 지방이 소실되어 움츠러든 모양이 되며, 질은 점막이 얇아지고 팽창력이 감소되며 짧아지고 좁아집니다. 이런 위축이 심해지면 위축성 질염 또는 노인성 질염 상태가 되어 질분비물(피가 섞이는 수도 있음), 가려움증, 작열감(후끈후끈한 느낌) 및 성교통 등이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쉽게 손상되며 동시에 에스트로겐 작용에 의한 질내 산성도 유지가 안되기 때문에 병균의 번식억제 작용이 없어지므로 쉽게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질에 나타나 것과 비슷한 변화가 요도에도 옵니다. 즉 요도도 점막이 위축되고 팽창력이 감소되기 때문에 소변이 자주 마려운 빈뇨, 소변이 잘 안나오는 배뇨 곤란, 야뇨증, 소변을 본 후에도 시원하지 않는 잔뇨감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손상받기 쉽게 되고 재발성 요도염을 동반하는 수도 있습니다.이런 위축의 시작과 정도는 개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부인은 폐경 후 몇 년 안되어 성생활이 곤란할 정도로 질이 위축되어 버리는 반면에, 폐경기가 훨씬 지나서까지 호르몬 치료 없이 정상적인 성생활이 유지되는 부인도 있습니다.(3)골다공증골다공증은 뼈 내의 캭슘 대사이상에 의해 광물질이 감소된 상태를 말하는데, 심해지면 척추가 굽어지고 키가 작아지는 변화가 오며, 골절이 쉽게 발생할 수 있으며 잘 치유되지 않아 오랫동안 침상을 벗어나지 못하여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일단 변화가 온 골다공증을 개선시킬 수는 없으며, 그 이상 진전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만 연구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 예방해야 할 중요한 질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폐경 후의 여성에서는 뼈로부터 빠져 나오는 칼슘량이 증가되어 소변 중 칼슘 배설이 증가합니다. 50세 이후에도 월경이 있는 부인에서는 골내의 광물질의 감소를 볼 수 없으나, 폐경 후에는 연령에 관계없이 뚜렷한 감소가 있고, 이 감부 여성들은 수줍음과 부끄러움 때문에 대답을 꺼리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불필요한 검사 등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폐경기의 증상은 다양하며 개인차가 많으므로 한두 가지 증상만으로 본인의 판단에 의하여 섣불리 폐경기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진단은 반드시 부인과 의사의 문진과 진찰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2)호르몬 검사월경의 불규칙성과 폐경 그리고 이와 연관된 안면 홍조, 식은땀, 외음부 염증 등의 임상증상 등이 폐경기를 반영하는 주요 소견이지만, 혈중에 포함되어 있는 난포자극호르몬, 황체형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수치를 검사하여 폐경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폐경 전 난포자극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의 정상치는 40U/ml 이하이며 에스트로겐은 50∼500pg/ml인데, 폐경된 여성에서는 난포자극호르몬이 100mlU/ml 이상이고 황체형성호르몬은 75mlU/ml 이상, 에스트로겐은 25pg/ml 이하로 낮은 수치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호르몬들은 하루에도 주기적으로 분비량의 변화하고 그 폭이 크기 때문에 두 종류 이상의 검사를 동시에 실시해야 하며 임상증상과 연관지어서 진단에 이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호르몬 검사 그 자체만으로도 유용한 진단의 수단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조기 폐경된 여성이나,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던 여성 그리고 월경이 비교적 규칙적이며 특징적이 폐경기 증상인 혈관 운동장애에 인한 안면 홍조가 나타나지 않는 여성 등에서 호르몬검사를 통하여 폐경기를 예측하거나 진단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여성에서 호르몬검사 결과가 폐경된 여성의 수치에 와 있다 하더라도 때때로 1∼2년이 지난 후에 폐경기에 와 있다고 판단되었던 호르몬검사 수치들이 정상으로 되면서 월경이 다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호르몬검사와 1년 이상의 관찰이 정확한 진단에 필요하기 때문에 부인과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면서 본인의 증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3)기타검사질세포검사, 자궁입구 점액검사, 자궁내막조직검사, 프로
    의/약학| 2002.07.09| 13페이지| 1,000원| 조회(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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