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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음악] 기독교음악의 역사(고대~르네상스)
    말과 문자가 생긴 이후에야 비로서 인간의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인간 본능의 하나로서 말과 문자보다도 먼저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음악의 기원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C 후반에 여러 학자들이 모여 음악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하였는바* 언어 기원설 : 영국의 철학자, 사회학자 스펜서 (Herbert spencer :1820~1903) 프랑스 사상가, 문학자 루소 (Jean. J. Rousseau)는 “인간의 내면적인 감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음악의 기원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노동과 리듬에 관한 제창으로 독일의 경제학과 뷔허 (Karl ucher 1847~1930)가 주장한 것으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일할 때 힘과 보조를 같이하기 위해 불러대는 소리가 결국 노래 가 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진화론 입장에서 영국 다윈 (Charles R. Dorwin (1809~1882)은 “사람들이 새와 동물의 이성을 끌기위해 부르는 소리를 본받아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며* 기악설 : 오스트리아 발라체크 (Richard Wallscheck : 1866~1917) “사람의 리듬적인 충동을 음악발생 원인”으로, 독일의 작스 (Curt Sachs : 1881~1959)는 “음악은 노래 하는 데서부터 발생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모방설: “자연계의 음향을 듣고서 사람들도 노래를 만들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원시인들은 속이 빈 물체를 두들겨 소리를 낸다든지 막대기를 흔들거나 나무나 돌 조각을 맞부딪쳐 소리를 내는 등 그들에서 있어서 무언가 이해하기 힘든 것 (or) 신비적 마술적인 것으로 생각 했으며 여기서 생기는 리듬에 흥겨워 했고 이에 도취하여 마침내 간단한 가락을 지어 노래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징으로는 비교적 단조로웠으며 짧은 하나의 가락을 되풀이 했다는 점입니다.고대 문화 민족의 음악B.C 34,000여년 전부터 각 민족은 제 나름대로의 음악과 악기를 가지고 빛나는 음악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 이집트와 유대, . 예배의식도 유대의 시나고그(Synagogue)의 예식과 밀접하다고 하며 서로 주고 받으면서 응답식으로 노래하는 방법도 그곳에서 전하여 왔습니다. 교회음악에 많은 영향을 준 곳은 이탈리아의 밀라노였으며 그 곳에 암브로시우스(Ambrosius:339~397)사교가 교회를 개혁하고 동방 여러 곳의 성가를 수집, 연구하여 음악을 일신시켰으며 그리스 음계를 기반으로 확고한 그리스도교 음악의 선법을 처음으로 제정했습니다. 시편이나 찬송가를 2개로 나누어 합창하였으며 시편의 노래 방법에는 응답가(음악에 능숙한 승려와 성가대의 응답)와 교창가( 2개의 성가대가 서로 교대로 노래하는 것)로 전하여 집니다.그는 4선법을 사용하여 찬미가의 규칙을 정하였으며 4선법이란 피타고라스가 정한 7종의 음계 中 Phrygia ­ Doria ® Hipo-Lydia &hibar Hipo-Phrygia 선법을 선정하였고 고전적인 장단의 음률에 의한 찬송가를 만들고 (간단하고도 간소한 노래. 이것이 찬가Hymonody와 시편 Psalmody로 됨) 가사는 라틴어로 고쳤으며 시의 율동을 중심으로 가요적이라 할만한 음률적인 합창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천년 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코랄(Choral)의 본보기가 되었지요.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13세기를 안전과 통일의 시대라 한다면 14세기는 변화와 다양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음악의 세계에 새 공기를 도입함으로써 음악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성향으로 등장합니다. 인문주의는 인간을 억제하고 억누르는 중세적인 정신을 타파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연구하여 고대정신으로 되돌아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단 음율로 된 세속음악이 성행했을 무렵 다른 한편 대위법적인 복 음악이 현저하게 발전했고, 낡은 것에 대한 반항에서 새로운 것이 나왔으며 14C는 변화와 다양성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사회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4C에 이르러 로마 교황의 중심세력이 쇠퇴하는 징조가 나타나고 봉건제도의 붕괴와 도시중심아름다운 작품과 샹송(chanson)등을 많이 작곡했는데 여기서 번성한 집단을 부르고뉴악파(Burgundian)라 했으며 14C 이탈리아 프랑스의 새로운 예술과 15C후 네덜란드 악파로 연결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집단이었습니다. 특징을 살펴보면 악곡형식은 미사곡. 성모마리아 찬양곡마니파카트(Mainificat). 모뎃토 프랑스어의 가사로 된 세속적인 샹송이었으며 뒤파이:인벤션. 카논등의 수법을 사용했고 영국의 포부르동 양식 배합. 플랑드리악파 나아갈 음악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세속곡 에서 정선율을 따서 미사곡으로 작곡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고, 그 위의 성부의 가락도 가요식으로 다뤘습니다. 중세 이래의 전통을 잇는 발라드, 론도, 비틀레 등의 형식에 의해 3성 기법으로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4성부를 제정한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으며 세속음악은 보수적인데 비해 종교음악은 진보적이며 섬세하고 유화하며 서정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그는 복음악의 수를 향상시켰고, 15.6C의 고전적인 성악인 복음악의 기초를 확립 시켰습니다.플랑드르악파15C~16C(Flemish School) : 종래에는 네덜란드 악파(Netherlands School)로 불려졌으며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통해 세계음악을 지배한 집단 입니다. 캄브레(Cambrai)성당이 음악의 중심지였고, 음악에 있어 독립적인 성격을 띠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완전한 반음계와 모든 성부 and 악기의 실제적인 온 음역을 활용하였고 독립된 기악 양식이 발전하였습니다. 4성의 기법을 중심하여 각 성부의 균형있는 대위법적인 악곡을 개척, 카논형이 완성된 때 입니다. 음악가는 뒤파이의 제자 오케겜(Johannes Ockeghem: 1410경~1497)이 있으며 ‘음악의 왕’ ‘오르페우스의 재헌’으로추앙받았으며 치밀하고 대위법적인 기술의 전형을 이뤘습니다. 오브레히트(Jacob Obercht: 1450~1505)는 분명한 꾸밈새를 즐겨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며 대위법 8도 5도의 모방 형식은 근세의 푸가형식을 유도하였습니다. 그외세속음악에는 이른바 테이블에 둘러 앉아 노래한다고 해서 ‘노래하는 새둥지’, ‘테이블 뮤직’ 이라는 마드리갈 그룹이 성행하였으며 돌림노래(cannon)도 민간에서 유행하였으며 스피넷(Spinet)이라는 피아노 전신 발현 악기가 등장하였습니다.5. 기악곡 :버지넬(virginal)(클라비어와쳉발로 일종)과 같은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이 발달.페르룻치(1466~1539 O.Petrucci)악오의탈전 인쇄를 생략. 가장 오랜 악보 성공 출판된 작품 : 1501 이자크. 쇼스캥. 오브레히트 등의 세속음악 96곡. 베네치아에서 출간되고, (17C.18C타인기(punch)가 고안되어 19세기에는 석판인쇄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오프셋(offset)사용) 이 되어지며 악곡보급 및 보존이 가능하여 음악문화 발달에 크게 기여케 됩니다.그 배경서유럽의 음악 역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음악이 대부분 첫 부분을 차지한다. 종교음악은 예배의 전례에 꼭 필요했고 교의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뜻을 지녔으므로 교회의 본질에 관련되는 문제였다. 음악은 매일 예배의 일부였고 철학자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교육체계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곧 모든 계층의 성직자들에게 있어 기초적인 지식이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전례의 기본적 구조는 유태교 예배 진행 방식, 그것도 주로 시나고그(유태교회당)의 관습에 기원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전례는 기본적으로 그 가르침과 목적의 새로운 부분에 맞게 옛 유태교 전례에 새로운 요소를 덧붙인 것이다.초기 그리스도교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고그의 집회에서 시편을 노래하고 성전을 읽는 것이었다. 시편은 그리스도교의 신앙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예배의 중요 부분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전의 관습과 관계없이 추가된 것이 성찬식인데 이것은 그리스도교 교의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며 매일의 전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예배인 미사의 중심이 되었다.로마의 주교가 교황의 지위에 오르자 예배들은 로마식 전례를 따르는 전체 교회에서 정규적인 것이 되었다.하루의 예배를 구도 비슷한 현상을 일으켰는데 중요한 예가 '할렐루야' 이다. 할렐루야에 새로운 가사, 선율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성가는 세퀜티아(시퀀스:속창)로 불렸고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현재도 위령미사곡(레퀴엠)속에 포함된 디에스 이레(분노의 날)인데 이 선율은 베를리오즈, 리스트, 라흐마니노프에 머물지 않고 그 밖에 수많은 나중 시대 작곡가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또 하나 전례에 덧붙여진 것이 전례극이다. 특정 축제일을 축하하기 위해 성경 속의 한 장면을 연극으로 상연하는 것인데 한 동안 번창하다 14세기 사회의 세속화에 따라 시들어졌다.세속의 단성음악세속음악이 기보된 형태로 후세에 전해지게 된 것은 세속적 일반 기술이 종교계의 기보 기술 수준에 따라간 다음이다. 중세 시초무렵 성직자가 쓴 세속적 라틴어 시가 있는데 대부분 고대 로마의 황금시대에 저술한 시를 본보기로 한다. 그 가운데 노래하기를 목적으로 한 대중적인 시도 있는데 '운'이 점차 중요한 요소로 소개되고 있으며 고전 라틴어의 특징인 옛날의 장단에 의한 악센트에서 버젓이 쓰이게 된 유럽 각자의 본국말이 갖는 강약에 의한 악센트로의 이행은 그러한 변화의 표시이다. 세속 노래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골리아르두스(유력 서생, 유랑시인)이란 불리는 시인 겸 작곡가들의 작품인데 그들은 12세기에 생겨난 대학이라는 세계의 일익을 담당하던 사람들이다. 대학의 학생들은 어떤 종류든 성직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으며 당시의 전형적 학생의 생활은 도시에서 도시로 방랑하며 어디건 가는 곳곳의 대학을 다닌다고 하는 말하자면 보히미안적 존재들이다. 이들 작품의 다수는 카르미나부라나라는 사본에 수록되어 있다. 연예의 서정가나 술 마실 때의 음란한 노래 따위도 포함되어 있다. 그 가사의 다수는 종교적인 것을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세속적인 뜻을 억지로 갖다 붙여서 그 본이 되었던 성가와 별 관련이 없다. 종교상의 체제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시, 음악을 만드는 일에 최초로 관심을 돌린 지역은 프로방스어 또는 랑그 도크(오크어)로
    예체능| 2004.09.20| 15페이지| 1,000원| 조회(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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