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 가치』에 대하여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은 학술어가 아니다. 이 용어는 70, 80년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서구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소위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이라 불리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모두 유교 문화권이라는 점에 착안해, 유교적 가치를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을 아시아적 가치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개념은 명확하게 정의된 것이 없고, 여러 학자들의 제각각의 주장이 난무해서 철학이나 경제체제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나에겐 그 것에 대해 알기가 쉽지 않았다. 이 개념을 1994년 싱가포르의 전 총리 리콴유와 김대중 당시 이사장이 벌인 지상 논쟁으로 유명해졌다.)『아시아적 가치』본문 중, "문화는 숙명이다", "문화는 숙명인가".솔직히 고백하건 데 책을 읽기 전까지 그들이 벌인 논쟁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그들 논쟁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평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주장하고자 했던 내용을 지문에서 있는 의미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름의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리콴유의 대담내용은 전문적인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읽기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가족이 사회건설의 밑바탕이며, 기본에 충실하여야한다는 것, 문화의 차이 등, 공감되는 것이 많이 있었다. 반면 김대중씨의 글에서는 리콴유가 권위주의 정부를 옹호하고, 문화도 변화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과거에 김대중씨가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 운동에 주력했던 전적으로 보아, 이런 주장을 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것이 유교-민주주의와 유교-자본주의 개념이다. 유교-민주주의의 개념은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는 리콴유가 이끄는 싱가포르가 독재정부를 이루고 있고, 그의 주장이 권위주의를 옹호하기 때문에, 아시아적 가치에 정치적인 관점을 적용한 것 같다. 그간 아시아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내세우던 것들은 예컨대 유신시대의 ‘것도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그리고 유교-자본주의는 동아시아 지역 신흥 공업국들의 경제 성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었는데 동아시아의 발전이 자본이나 자원 같은 순수 경제학적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적 요인, 특히 근면, 성실, 교육, 가족과 집단의 중시와 같은 유교의 덕목들과 연관짓게 됐다. 그에 대한 회의 적인 시선과 비판으로 이는 자본주의의 '생성'이 아니라 주어진 체제에 '적응'하는 차원의 그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석근, "IMF,아시아적 가치 그리고 지식인"유교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관한 한......역시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유교자본주의」라는 용어가 7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좋은 물증이 되고 있다. 단적으로 그것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해 가는데 필요한 기간을 말해주는 것이다.지금도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 진행중이다. 그 주요논점들 중 여기서 집어보아야 할 것은 과연 '아시아적 가치'가 존재하는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많은 학자들이 '아시아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나 역시- 믿지만, 아시아의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서구자본주의의 발달과정에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처럼, 아시아 지역에서도 유교적 요인이 이 지역 자본주의의 발달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입장 그다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먼저, 동아시아라는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는 문화적 핵심요소로서 유교를 강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동아시아에는 유교뿐 아니라 도교, 불교, 회교, 이슬람교, 샤마니즘 등 다양한 종교가 있을 뿐 아니라, 토착화된 기독교 역시 존재한다. 제각기 다양한 종교와 문화와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는 이들 국가 간에 얼마나 공통적인 가치기준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나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학자들의 관점이 각양각색임을 느꼈다. 어떤 이는 정치적인 구호로서, 어떤 이는 아시아적 뒷부분에서 이 부분을 읽고 나와 생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니 선생님께 나의 생각을 검증 받은 듯한 마음이었다.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시아적 가치는 본래 경제학적 관심사로부터 출발하였지만은 본질적으로 특정한 정치체계나 경제 체제가 아니다. 정치적 구호가 아닌 아시아가 지닌 문화와 가치체계로 이해된다면, 도덕적 정당화가 결여된 하나의 정서표현일 뿐이라는 둥, 역오리엔탈리즘 이라는 비난을 일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아시아적 가치론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유교환원주의에 빠지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편의에 따라 포함시키거나 제외하는 모순을 보였다. 게다가 그 유교주의 자체도 '유교적'이란 말을 너무 헤프게 사용하여, 권위주의, 연고주의나 정실주의 등, 유교원리가 본래 목적과는 무관하게 실생활에서 왜곡된 바-예를 들어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정경유착 등-를 마치 유교의 중요한 특징인양 다루었다. 도덕윤리를 아무리 강조한다하여도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고 현실적으로 사회는 도덕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 현상만을 보고 그 윤리의 본질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유교의 본질을 밝힘으로써 타파할 수 있다. 이 모든 논란은 공자와 공자의 사상이 현재에도 우리 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있어날 수 있는 것이다.유교의 사상과 연관시켜볼 때 아시아적 가치 중 주요한 가치는 가족주의이다. 학자들에 따라 가족주의가 권력세습, 집단 이기주의와 연관되어 비난받고, 가족구성원에 대한 책임을 권위적인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가족주의는 정치적 유교주의가 아니라 유교의 본질로써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교는 사회관계로서의 가족을 구성한다. 오륜 중에서도 주자자효의 덕목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서구적 가치관이 유입되었지만 여전히 가족이 중요하다는 사고는 뿌리깊이 남아있다. 서양의 영화나 영상물을 통해 -영상물에 보여지는 모습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더라도 영상물이 가지는 문화의 함축성을수 없고, 예측불허는 무질서와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가족주의는 가부장적 권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핏줄'로 엮인 강력한 협동심을 발휘시키는 것이 가족주의라고 볼 수 있다. 가족주의는 유교의 가족본위사상과 가족윤리에 따라 가족을 단위로 하는 중소형 가족기업을 만들어 내었다. 가족형기업은 점차적으로 발전되어 아시아적 자본주의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것이다.공동체의식도 아시아적 가치 가운데 주요한 가치이다. 공동체 의식이란 여럿이 한데 뭉쳐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하는 조직체 또는 공동사회를 말한다. 유교의 윤리는 친사회적이다.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신도 모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화를 도모하는 것들이며, 그것들은 사회적 행위의 준거이기에 공동체의식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식은 협업을 통해 산업의 경영효율과 작업효율을 향상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시아 국가의 각 민족들이 명망하지 않고 수 천년동안 끈질게 생존해 온 것도 이 공동체의식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국민들은 공동체의식과 연대성의식 속에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했다위의 두 가치들은 유교에서 공자의 여러 덕목들 중 仁 에 해당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공자 사상의 현재적 조명'-자료정리의 미흡으로 작자를 기록하지 못했음공자는 문인들에게 군자가 되라고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 덕목을 제시하였다. 덕목이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의 중요한 항목을 열거한 것으로서, 사람들의 수양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주요한 덕목은 仁·恕·忠·信·孝·弟 등인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仁이다.仁은 공자의 道라고 불릴 만큼 공자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 해석도 다양해서 '說文'에서 보면 仁은 곧 親이라고 했으며, '禮記'의 중용편에선 仁을 곧 人라고 하기도 했다. 또 논어에선 仁을 知와 묶어서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인은 人과 二가 합쳐진 글자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기초적인 덕목이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공자가 인의 개념을 통해 나타내려 했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 사랑의 대전제에서 공자의 학설이나 사상은 융통성과 가변성을 갖는다.이런 유교의 본질적인 요소가 실제에서 적용될 때 아시아적 가치라 불린 만한 경제적인 요인이 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왜곡되어 실제에 적용되면 반유교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최근에는 아시아 가치 가운데 주요한 가치로서 낙천주의(Optimism)가 거론되어 매우 주목을 받고 있다. 조금 수궁가지 않는 면도 없진 않지만, 가능성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70년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진행된 새마을 운동 전개하였었다.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적극 참여했던 것을 볼 때,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낙천주의를 아시아적 가치로 인정하여 이것이 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킨 결정적 요인이라고 밝힌 것은 세계적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이다. 1998년 8월 1일자 이코노미스트지에는 캐나다에 있는 앙거스 레이드(Angus Reid Organization)사라고 하는 여론조사업체 (www.angusreid.com)의 설문조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1998년 5·6월에 실시된 29개국 1만 6천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미래의 번영에 관한 각국 국민의 기대의식조사에서 가장 낙천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대부분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들은 최상위 10개국(Top Ten) 가운데 5개국이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다. 말레이시아, 한국, 태국, 중국, 대만 순이다.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 국가는 두 나라만이 이 최상위 국가에 들어 있을 뿐이다.이 조사를 보면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맞아 심각한 경제적 난관에 봉착되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지역의 국가들보다도 미래의 번영에 관한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낙천적 사고에 젖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