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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사마천과 사기를 읽고...
    『사마천과 사기』를 읽고.....이 책에서 사마천과 사기 절을 읽었다고 해서 사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거나, 사마천을 다 알게 되었다거나 하는 그런 것은 분명 아니나 이 책을 통해서 참으로 운 좋게도 사마천을 접하고, 사기를 적으나마 접해보았다는 것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둔다.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지만 사실 중국의 역사, 아니 동양역사 전반에 관해선 어쩐지 - 사대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 등한시해왔고 누구보다 비판적으로 보았던 터였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이 수업을 들은 후 - 사마천과 사기에 대해 알게 된 후부턴 중국을 알고 싶다는 강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어제 TV를 보면서 워렁 이란 곳의 자이언트 펜더를 소개하는 한 프로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마천은 이 신비로운 동물을 과연 사기에 기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을 보더라도 이젠 중국에 대한 편견과 일종의 역사적 열등감이 중국에 대해 알고자하는 욕구로 변해 가는 것 같다.사마천을 얘기하자면 그의 아버지 사마담을 빼고 얘기할 순 없다. 대대로 사가(史家)의 집안이었던 사마가(司馬家)는 사마담에서 사마천으로 그 맥을 이어가며 사마담의 사상과 역사철학은 또한, 그대로 사마천에게 이어졌다. 사마담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의 유언은 사마천을 더욱더 진정한 사가의 길을 걷게 하였으며, 후에 있을 사마천의 역경에서도 이 불세출의 역사가를 지탱하게 하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사마천은 어렸을 때부터 사마담을 따라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그 지방의 풍토와 문화를 살피는 기회를 갖게 되며, 이는 관직에 올라 황제의 순행을 따르면서도 계속된다. 뿐만 아니라, 낭중이 되기 전 20세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각지방을 답사하며 2년여간 천하를 여행한다. 이런 일련의 여행들은 후에 명저 사기 의 집필에 더 없는 밑거름이 되어 사기의 완성됨을 돕게 된다. 사마담의 죽음이후 역사서 집필에 대한 사마천의 집념은 더욱더 강해진다. 오히려-사견(私見)이지만-역사서 집필에 대한 집념이라기보다 아버지에게 바칠 저서라는 신념이 다. 사기에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서명을 붙인 것으로 보아도 그러하다.사기를 집필하는 중에 사마천은 큰 역경을 맡게 되는데 그것이 이른바 이릉의 화 이다. 수많은 전장에서 공을 세운 이릉의 집안은 물론이고 그 자신 또한 눈부신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정쟁의 틈에서 사지로 내몰렸던 이릉을 사마천은 변호하였고, 이에 황제를 무고한 죄로 사형에 명해지나 치욕을 감수하고라도 궁형을 받게 된다. 이는 사기완성의 신념 때문으로, 죽기보다 더 뼈아프고 굴욕적인 형을 받으면서도 끝내 목숨을 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에 얼마나 고통과 번민의 세월을 보냈는지는 그의 벗 임안 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잘 나타나있다. 몇 가지를 인용하자면, 「내가 죽지 못한 것은 삶에 대한 구차한 애착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던 일을 하지 못한 데 대한 한을 풀기 위함이었습니다.」, 「궁형을 받은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창자가 뒤집힐 지경이며, 집에 있으면 마치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였고, 그것을 못 견뎌 밖에라도 나갈라치면 어디를 갈지도 모르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헤매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굴욕감에 빠질 때면 식은땀이 등허리를 적시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내 몸은 무덤 속에 깊숙이 갇힌 채 호흡을 멈추고 있으나, 그렇다고 깊은 동굴 속에 아주 숨어버릴 수도 없어 비참합니다.」그 자신도 말했듯, 참으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고뇌로 점철되는 매 순간마다 사기의 완성만이 자신을 편히 눈감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던 듯 하다.「죽음은 한 번이지만, 다만 그 죽음이 어느 때는 태산보다 무겁고, 어느 때는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에게 안겨진 그러한 고통이 오히려 사기를 불후의 명작으로 나게끔 그를 인도한 듯도 싶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고서야 하늘을 날듯 말이다. 모든 일을 쉬운 쪽으로 살고자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이 참으로 곱씹어 되뇌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보석으로 탄생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현대인들뿐만 아니라, 나 또한 쉽게 이 사실을 잊어버리니 그야말로 범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리라.사기(史記)라는 제목은 앞서도 언급하였듯 사마천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그의 사후 태사공서(太史公書) 또는 태사공기(太史公記)라고 불리우다 삼국지위지의 왕숙(王肅)전기에서 사기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기는 모두 130편으로 되어 있는데 크게 다섯 부분으로, 본기(本記) 12편,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오제(五帝)로부터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제왕의 정치와 행적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이고, 는 각 시대에 대한 역사를 도표화한 것이며, 는 일종의 문화사나 제도사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여러 문물제도의 연혁과 변천을 적은 분류사라 할 수 있다. 는 제왕보다 낮은 제후들의 가문의 내력과 사건, 전성과 몰락과정을 시대순, 나라별로 기록하였으며, 은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전기로, 사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기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데, 사마천의 명성을 더욱 빛내게 한 불후의 역작이 바로 열전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그의 독특한 역사 인식과 철학이 그대로 담긴 정수(精髓)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사기체제를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으나, 이러한 형식으로 비로소 역사 기록의 체계를 확립한 것이 또한 사마천의 사기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누구나 사기를 더없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기가 담고 있는 사적기록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이렇게 역사기록의 체계확립이라는 점에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히, 2000여년 전의 그의 숨결이 아직도 그대로 미치고 있음에 감탄할 따름이다.나는 가끔 "역사"라는 두 글자를 두고 생각해볼 때가 있다. 사마천과 사기 라는 모티브는 더욱 많은 생각거리 를 안겨주었다. 유난히 많은 유린을 당했던 우리 국사를 생각하며, 또는 당쟁과 음해가 난무했던 조선의 속국과도 같았던 충~왕 시절의 고려. 요즘같은 국제화 시대에 왠 민족주의며 국수주의인가 하는 스스로의 의문도 드는 것이 사실이나, 저네들의 역사를 한껏 화려하게 내세우려는 일본과 그들의 극우를 보호하려는 일본당국의 태도를 보면서 내심 부럽기도 한 것을 어찌하랴. 올림픽에서, 또는 우리 돈을 주고 우리 무기를 사는 국제무역에서 어디까지 비굴하게 굴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나라를 볼 때, 그러면서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당국자를 볼 때, 가끔은 슬퍼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굳건히 살아가는 서민과 축구에서 골을 넣고, 마라톤에서 국위(國威)를 선양(宣揚)하는 모습에서 환희에 부둥켜안으며 함성을 지르고, 손바닥이 얼얼할 만큼 박수를 치면서 이 나라 국민임야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하나의 사건을 놓고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는 것인가. 바로 같은 역사를 가진, 다시 말해 같은 뿌리를 가진 한 나무의 가지들이기 때문이다. 때론 썩은 가지가 있긴 하나,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한 나무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수백, 수천년도 전의 일들을 들추어내고 잠든 이들을 무덤 안에서 끄집어내는 것인가. 짧은 식견이나마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를 거울로 삼아 현재의 나아갈 바를 알고 미래의 견실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이겠다. 바로 교훈을 얻고자 함이다. 인간의 역사만큼 또 새로운 역사를 써 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교훈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곧 우리의 발자국이며 또한 앞으로 내디딜 길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순환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훌륭한 역사는 훌륭한 교본이 되고, 훌륭한 사가가 훌륭한 저자가 되는 것이다. 고로, 잘못된 역사는, 거짓된 역사는 잘못된 교본이며 거짓된 교본이기에 아무리 보잘것없는 역사라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가르침이 더욱 지혜롭다. 내가 이 수업을 듣기 전에는 민족사관이니 식민사관이니 하는 것에 얽매어 굴욕적 역사에 대해선 될 수 있는 한 잘 치장된 역사만을 믿으려 했다. 그러나 사라도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미약하나마 깨닫게 된 것이 큰 소득이다. 그것은 과거의 화려함보다 현재의 현명함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재의 현명함이 바로 훌륭한 역사가 됨을 믿기 때문이다.사마천과 사기를 이 시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어쩌면 내게 큰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대한 나의 시각을 새로이 하고 안목을 길러준 것도 하나의 소득이나, 무엇보다도 사마천의 생을 통해서 나태했던 내 자신을 뒤돌아볼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세태(世態)만을 탓하고 제자신의 못남은 꾸짖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4학년이 되면서 오히려 더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요즘 대학가의 현실이다.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것이 한 어려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목표의식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 결과가 아닐까 한다. Better late than never. 결과가 무엇이든,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부딪쳐 나가보는 것이 방황하는 어리석음보다야 낫지 않겠는가.참으로 역사는 위대한 스승이 아닐 수 없다. B.C.세기를 살던 사마천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 역사 가 아니고서야 가능하겠는가. 사마천에게서 한 가르침을 받았으니 오늘밤에는 잠이 잘 올것 같다.■참고:「지혜로 읽는 사기(푸른숲)」-김영수 저HTTP://web.hanyang.ac.kr/~pendar (중국학 센터)HTTP://giant.x-y.net (사마천의 사기세계)♣사마천 연보♣B.C. 156년 한무제 유철 태어나다.1세(145년) 사마천 하양현(현 섬서성 한성시 남쪽)의 농촌에서 태어나다. 이 때 한 무제의 나이는 12세2세(144년) 부친 사마담은 농사를 지으며 사마서원에서 공부를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4세(142년) 사마천, 아버지를 따라 서원에서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다.5세(141년) 경제가 세상을 떠나다.
    인문/어학| 2004.01.29| 6페이지| 1,000원| 조회(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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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 '역사앞에서'를 읽고... 평가A+최고예요
    『역사 앞에서』를 읽고.....서명: 역사 앞에서.부제: 한 사학자의 6.25 일기이 일기를 읽고 내게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전쟁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나 소설 등등을 통한 이야기로서의 6.25는 죽은 증언이었다면 이 일기는 살아있는 증언이었다. 그것은 일기라는, 그리고 사가로서의 저자의 눈을 통한 전달이 가지는 특성이 내게 솔직함과 현실감을 그대로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일기라는 형식은 다분히 독백적이고 주관이 개입된 기록형태이나 이 "역사 앞에서"에서의 저자는 그 스스로도 노력함이 역력하게 객관적 시각을 일관되게 지향하였으며, 그 자신의 눈으로 본 6.25를 생생하게 남겨준 것이 이 책의 진가라 할 수 있겠다. 이에 역사가라는 그의 안목은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며 탐구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사료를 남겨 주었다.저자 김성칠 선생은 6.25동란 당시 불혹의 나이를 넘기지 안은 젊은 사학 교수로서 6.25에 대한 역사의식(동시대의식?)이 남달랐으며 시대 상황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중립성을 시종일관 굳게 유지하려 했음을 면면히 엿볼 수 있으며 이는 전쟁 이전의 정국이나 시대 상황을 얘기하는 데서도 잘 드러나 있다.거짓말을 쓰는 일기는 일기가 아닐 터이니 아예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번쇄한 일상생활을 기록함에 있어서 도저히 생활의 전면을 지면에 재현시킬 수는 없는 일이고 자연히 생활 중 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실을, 그 중에서도 일기를 적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을 기록 하게 될 것이니 이는 나의 경험으로 보아 부득이한 일이 아닐까 한다.그러나 그 가장 인상적인 사실을 추리는 데 있어서 사심의 개재가 있을 수 있고 또 있기 가 쉬운 일이다. 이리하여 일기에 거짓말을 쓰지 않는다더라도 생활의 본연의 자태는 나 타나지 않고 왜곡되어서 표현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도의 문제이니 일 기가 사진일 수 없고 그림인 바에는 화가의 보는 눈에 따라서 소재 중에서 적당한 취사 선택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리함으로써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서투른 화가가 자기의 주견을 고집해서 소재의 어떤 부분을 고의로 강조하 는 결과는 화면에 자연의 진실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왜곡된 표현을 하게에 이를 것이다. 내가 일기를 쓰는데 있어서도 이와 같은 화가의 과류를 범하지 않는가 나는 늘 반성한 다. 그 자신도 말했듯 일기라는 형식에서 자신의 사견이 물론 개입됨을 부인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러한 사견을 잘 여과하여 볼 줄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나 나는 이러한 역사가로서의 사견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도 한 재미요 배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견의 개입을 지양하고자 하는 투철한 의식에서 김성칠 선생의 사가로서의 면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또 하나의 것이라면 한 민족의 입장에서 본 좌와 우의 대립양상을 그동안의 멸공제일주의 하에서 교육받은 시각에서 탈피하여 볼 수 있었던 즐거움이었다. 무조건 한쪽의 손만을 들어주는 편협에서 벗어난 선생의 일기속의 한문장 한문장은 흑백논리를 싫어하는 나의 가치관에 너무도 "옳구나"하는 맞장구를 치게 하기도 했다. 대립구도, 경쟁구도, 정과반의 양상은 서로를 발전하게 하는 순기능도 있으나 지나친 대립구조는 자칫, 문제의 해결이나 또는 그 본연의 자세를 잃고 서로를 죽이는 데에만 열심인 역기능도 허다하다. 조선사의 파당도 처음의 세계관, 철학관의 논쟁과 함께 공존을 걸었던 그들이 후엔 당의 이익이 무엇보다 위에 군림하는, 그럼으로 해서 서로를 도륙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폐단으로 변질된 바를 우리는 잘 안다. 세상엔 절대선, 절대악이란 없다. 인간은 완전치 않은 존재로 자신의 허물도 볼 줄 알아야 하며 남의 장점도 인정하고 배울 수 있어야한다. 이를 통한 공동의 발전이 대립으로 한 나만의 발전보다 우선함은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론이었든지 동족의 머리에 총탄을 박는 전쟁은 일어나고야 말았으니, 후세를 사는 우리들이 참으로 온고지신의 자세로 역사의 교훈을 삼켜서 뼈를 만들고 살을 만들어 민족 공영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인민공화국 측과 한국민주당 측이 서로들 민족반역자라 욕하고 죽일놈 살릴놈 하는 격 렬한 삐라를 돌리는 것이 마음 아픈 노릇이다. 이 우매한 정치광(政治狂)들과 탐권배 (貪權 輩)들이 선량한 동포들을 항쟁의 구렁으로 몰아넣고 조국의 광복에 일말의 암운(暗雲)을 끼치게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집집마다 인민공화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혁명과 해방을 상징한다는 붉고 푸른 바탕 속에 붉은 별이 반작이는 이 기폭이 얼마나 많은 우리 나라 젊은이의 동경의 표적이었던가, 또 증오의 과녁이었던... 이들에게 실제로 중요한 것은 결국은 어느 쪽이 이길 것이냐, 그럼 어느 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냐, 그보다도 당장 어느 쪽인 척 해두는 것이 우선 위험도 모면하고 나중에 가서도 말썽이 없을 것이냐, 이리하여 선결문제가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 둘 중의 어느 편이 구극의 승리를 거둘 것이냐에 있다. 석달동안 낯선 인공기가 펄럭이던 바로 그 깃대에 다시 태극기를 달아놓고 저윽이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끼었으나 해바라기인 양 이 깃발 저 깃발을 갈마 꽂는 내 몰골이 몹시 서글프기도 하다. 시대상황이 어려울수록 소위 말하는 지식인의 나약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지식이 왜 사람을 나약하게 하는가'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고 행동의 결과를 뻔히 아는 데서 오는 거부도 있겠다. 세평은 중도를 나약함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도가 나약함으로 오해받기는 억울함이 있다. 중도란 말 그대로 어느 한쪽에도 편중하지 않음이다. 이는 둘 다 옳다는 양비론일 수도 있고 둘 다 그르다는 양시론일 수도 있다. 또한 모두 옳고 그름이 있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사실 이 때의 시대는 누가 옳고 누가 그런지도 구분하기 힘든 그야말로 시대의 아픔일뿐 어느 한쪽도 옳지 않았으며 어느 한쪽도 그르지 않았다. 그 잔상속을 사는 우리는 모두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한 피해자일뿐......
    독후감/창작| 2003.10.06| 3페이지| 1,000원| 조회(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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