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문화남북 아메리카 대륙 중 과거에 라틴민족 국가의 지배를 받아 라틴적인 전통의 배경을 지니는 지역의 총칭.본문중남미 라고도 한다. 남북길이는 1만 3000km. 동서길이 5,000km. 총면적 2,053만km2. 총인구 약 4억 6438만(1993). 앵글로아메리카와 대비하여 부르는 호칭으로, 그 범위는 북아메리카의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의 칠레에 이르는 지역과 카리브 해상의 서인도제도를 포함한다. 북위 33°에서 남위 54°, 서경 34°에서 118° 사이에 위치하며, 파나마 지협(地峽)으로 남북 아메리카 대륙이 연결되고 세계 육지면적의 약 1/5을 차지한다. 30개의 독립국과 남아메리카 북동부 및 카리브해에 산재하는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구성된다.라틴아메리카라는 명칭이 단순하게 지리적 영역을 지칭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서 연유하는 동질성을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제국에는 몇 가지 공통성이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별칭 ‘이베로아메리카’라고도 불릴 만큼 에스파냐문화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아 브라질은 포르투갈어, 그 밖의 거의 모든 나라가 에스파냐어를 쓰고, 역시 거의 모든 나라 주민이 가톨릭교를 믿어 언어 ·종교 ·풍속 ·습관 등에 많은 공통성이 있다. 또 라틴아메리카의 사회는 광범위한 인종적 혼혈로 형성된 혼혈족 및 그 혼혈로 인하여 생활 속에 침투한 많은 인디오적 ·니그로적인 요소도 대개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한편, 각국은 공통의 식민지사와 독립운동사를 거쳐서 독립국이 되었다. 식민지 지배의 유산으로 말미암아 각국이 다같이 중산계층의 발달이 미약하고, 따라서 지배층인 대지주와 농목업에 종사하는 농업노동자 간의 빈부의 격차가 현저하다. 게다가 국민의 의식수준도 낮아 각국에서 쿠데타와 독재정치의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국민생활이 압박을 받고 있다. 그와 같은 정국불안은 대개 사회 상류계층 상호간의 권력투쟁으로 시종일관하여 민주정치발전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경제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오의 선조는 수만 년 전에 시베리아로부터 베링해협을 거쳐 파상적으로 이주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후 아메리카의 문화는 아시아와의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15세기 말까지 라틴아메리카에는 각종 문화가 생겨났는데, 대별하여 코르디예라산계(山系)의 고원이나 분지에서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영위된 고도의 조직을 가진 사회의 문명과 열대우림이나 온대초원에서 카사바 재배와 수렵 ·채집을 하면서 영위된 소부족사회의 원시적인 문화로 나눌 수 있다.고원문명은 BC 2세기∼AD 9세기의 멕시코고원의 테오티우아칸, 4∼8세기의 유카탄반도의 마야, 10∼13세기의 멕시코고원의 톨테크 등 도시문명을 거쳐 14세기에 멕시코고원에 아스테크제국(帝國)을, 또 15세기에 안데스산지에 잉카제국을 이룩하였으나, 그 제국의 문명은 16세기 초기에 에스파냐에 의해 정복 ·말살되었다. 1492년의 신대륙 발견 이후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신대륙 정복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지속되어 온 이슬람교도로부터의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민족과의 공존 및 문화적 ·인종적 혼효(混淆)에 익숙해진 국민성이 인디오나 흑인과의 융합을 용이하게 하여 새로운 문화나 혼혈족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였다.그리고 절대왕정은 권력강화의 기초가 되는 금(金)의 산출에 주력하는 한편 식민지의 독점을 목적으로 본국의 종교, 즉 가톨릭교와 생활양식을 이식하고, 정복자들의 대토지소유제와 원주민의 예속화를 정착시켜 나갔다. 에스파냐는 코르테스 ·피사로 등 정복자들의 모험에 의해 반 세기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을 그 지배하에 넣고, 19세기 초 독립 때까지 약 300년간 식민지로서 통치하였다. 16∼17세기에 반출된 금 ·은은 가격혁명을 야기시키고, 카리브해 연안에서는 흑인노예가 수입되어 심한 혼혈이 이루어졌다.1500년 카브랄의 도착으로 시작된 포르투갈의 브라질 식민지경영은 16세기 후반에 사탕수수농장의 번영을 계기로 본격화되어 노예사냥에 의한 인디오의 노예화와 흑인노예의 수입이 이 없었다.라틴아메리카의 독립은 중상주의에 대한 반발 외에 크리올(Creole:식민지 태생의 백인), 특히 에스파냐 사람의 본국인에 대한 반감이 근본원인이 되었고, 그 밖에 계몽사상 ·프랑스혁명 ·미국독립혁명 등의 영향을 들 수 있으나, 직접적인 동기는 나폴레옹의 이베리아 침입에 의한 본국 정부의 권위실추에 있었다. 독립운동은 시장확대를 원하는 영국의 지원을 받은 것이 많았으나, 시민혁명의 성격은 띠지 않았고, 아이티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대중인 인디오 ·메스티소 ·흑인의 적극적인 참가도 적었다.독립 후 각국은 민주적인 헌법을 채택하면서도 소수의 백인에 의한 수탈은 계속되었다. 대개의 국가는 군인수령(軍人首領)들에 의한 정권쟁탈이 반복되어 경제발전이 저해되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 선진제국의 경제적 침투가 진척되어 신기술의 도입과 자본의 투하로 급속한 개발기를 맞게 되었다. 개발의 진척에 따라 새로운 이민이 쇄도하게 되고, 인디오의 공유지가 해체되는 한편, 노예제도도 폐지되었다.먼로주의의 발표 이후에는 미국과의 관계가 깊어졌으나, 특히 19세기 이후의 강력한 미국경제의 진출이 범미주의정책(汎美主義政策)이나 달러 외교와 더불어 정치적인 압박으로 가중됨으로써 각국 국민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20세기에 들어 라틴아메리카 각국에서는 내셔널리즘의 대두와 후진성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노력이 현저하게 나타나게 되었다.2. 문화라틴아메리카의 문화는 토착민의 인디오문화와 식민자의 이베리아문화 및 수입노예의 아프리카문화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세 문화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인디오문화가 우세한 지역을 인도-아메리카라고 하는데, 아스테크문명과 잉카문명을 낳은 멕시코고원과 안데스산지가 그에 해당된다. 그곳에서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고 판초를 걸치며, 햇볕에 말린 벽돌로 지은 집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생활이 과거와 별로 다름이 없고, 정복 이전의 행정구분이 현재도 존속한다. 또 혼혈이 심하여 메스티소문화를 형성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메스티소문화는 유럽문화가 약 3세기에헨티나와 우루과이 등지를 말한다. 그곳에서는 인디오문화와의 접촉이 적었기 때문에 현재도 남(南)유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아프리카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지역을 아프로아메리카라고 하는데, 주로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흑인노예가 수입된 카리브해 주변 및 브라질 연안 등의 지역이다. 그들 흑인은 백인과 혼혈하여 물라토(Mulato), 인디오와 혼혈하여 샘보(Sambo)가 되어 다양한 니그로계(系)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주민들의 낙천적 성격이나 춤 ·음악에서 볼 수 있는 리듬감각은 아프리카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아이티에 전해지는 부두교(敎)나 브라질의 칸돔블레 ·마쿰바 등은 아프리카의 민속종교가 살아남은 것으로, 여기서는 유럽의 가톨릭교가 변질되어 있다. 근래 내셔널리즘의 고양과 더불어 새로운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전통의 근원을 인디오의 문화와 역사에서 찾으려는 인디헤니스모운동이 활발한데, 이러한 운동을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한 것은 리베라 ·시케이로스 ·타마요 등 멕시코의 화가들이다. 한편, 독재정치 ·봉건체제의 타파 및 반(反)제국주의의 정신을 고양하여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에 큰 영향을 준 선구적인 사상가로는 사르미엔토(아르헨티나), 마르티(쿠바)를 들 수 있고, 현대문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문학자로는 노벨상을 받은 두 시인 네루다(칠레), 아스투리아스(과테말라), 단편작가 보르헤스(아르헨티나), 마르케스(콜롬비아) 등을 들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삼바, 쿠바의 룸바 ·맘보 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애호되고 있는 민족음악이다.3. 정치독립 이래 라틴아메리카 제국의 정치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카우디요(caudillo)의 등장과 함께 정치에 무력이 개입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라틴아메리카 각국은 독립 이래 190회에 가까운 정변을 경험한 볼리비아를 비롯하여 카우디요에 의한 쿠데타에 휘말리지 않았던 나라가 한 나라도 없다. 그러나 근래 제3세계의 대두와 더불어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변혁의 기운이 각국에서 급속히 고양되고 있으며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새로운 원조정책을 폈다.그러나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13개국에서 쿠데타 및 내란에 의한 정변이 있었으며, 그 동안 칠레에서는 1970년 10월부터 1973년 9월까지 사회주의정권이 성립된 바 있었고, 니카라과에는 내란 끝에 1979년 6월에 좌익정권이 들어섰다. 군사정권 가운데서도 반미(反美)민족주의하에 외국자본의 국유화 ·농지개혁 등을 추진하는 좌익정권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선구가 1968년 10월에 성립된 페루의 군사정권이었고, 1969년 10월에는 볼리비아에도 좌익군사정권이 탄생하여 1971년 8월까지 집권하였다. 그 동안에 쿠바와 국교를 재개하는 나라의 수도 늘어 미국의 쿠바 고립화정책 및 역내(域內) 국가의 좌경방지정책이 크게 도전을 받았다.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는 군사독재에서 사회주의까지 각종 체제의 정권이 존재하고, 경제발전의 정도도 나라에 따라 다르며, 미국과의 관계도 다양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추세는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으로부터의 자립, 자원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결속, 사회주의제국과의 접근 등으로 비동맹제국의 입장에서 국제사회에서의 새로운 그룹화(化)를 추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4. 경제라틴아메리카 각국은 일반적으로 농업 ·광업의 제1차 산업 중심의 경제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근래 외자도입(外資導入)으로 공업화에 착수하여 경제의 고도성장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멕시코를 비롯하여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산업구조의 다양화를 보이고 있으나, 그들 국가 역시 공업의 중심은 경공업부문이고, 중화학공업은 거의 선진국의 기술도입과 자본합작의 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자립할 수 있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그 중 브라질은 외자도입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960년대 말부터 수년 간 계속하여 경제성장률 10% 내외를 기록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나, 그 성장이익의 분배, 즉 전체국민에 대한 소득재분배의 효과라는 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남기고 있다. 특히 산업의 근대화 ·다각화가 진행되는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