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OO 블랙박스 발표자 : ---------- 알아두면 유익한 상식 과 제품선택 포인트 ! 운전자를 위한 제 3 의 눈 “ 블랙박스 ”2 블랙박스의 기원 블랙박스의 아버지 : David Warren David Warren [ 호주의 항공기 연료 화학자 : 1925 ~ 2010 ] 항공기 사고분석에 쓰이는 블랙박스 개발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 항공기의 고도 및 속도 등을 분석해 금속 테이프에 기록하는 FDR 발명 현재 블랙박스의 일반적 형태 ( FDR + CVR ) 확립의 기초를 마련 1953 년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 코멧 (comet) 의 추락사고 발생 사고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장치의 필요성 인식 1956 년 블랙박스의 원형인 FDR(Flight Data Recorder) 개발 CVR(Cockpit Voice Recorder) 과 결합 블랙박스 시스템 완성3 블랙박스는 검은 ( Black ) 색이다 ? 블랙박스는 색이다 !! ? 블랙박스 (Black Box) 본래 공학용어 에서 유래 사용법이나 역할은 잘 알려져 있지만 내부의 구조나 작동 원리 가 숨겨진 장치 를 일컫는 말 Black 항공기 블랙박스 소수의 국가기관이나 전문 기업에서만 내용 해독이 가능하도록 설계 블랙박스의 색깔은 ?? = 비밀4 EDR 의 진실 ! 이젠 알아야 한다 . 차량용 블랙박스 (EDR) 의 구분 EDR (Event Data Recorder) “ 사고기록장치 ” 라고 하며 자동차 충돌 전후의 상황 ( 브레이크 , 악셀 ,RPM, 속도 ) 을 기록해 사고 정황 파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로 차량 제조사 가 장착한 내부 EDR 과 사용자가 임의 설치한 개인용 EDR 로 구분 제조사 EDR 개인 EDR EDR5 EDR 의 진실 ! 이젠 알아야 한다 . 제조사 EDR 의 불편한 진실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의 Key 제조사들의 EDR 기록 = 영업상의 비밀이다 급발진 피해는 언제나 소비자의 몫 ??? “ 국민은 죽어도 차는 팔아야 한다 ???” 제조사 EDR 『 자동차관리법 』 시행규칙 제 30 조의 2 자동차 제작사는 사고기록장치 (EDR) 가 장착된 차량을 판매시 안내문 을 구매자에게 교부 해야 한다 . 자동차 제작 사 는 사고기록장치 (EDR) 기록내용의 제공을 요구 받으면 15 일 이내에 제공 해야 한다 . 2013.12.18. 개정안 신설 , 2015.12.19. 시행 ) [2013 . 10 월 미국 오클라호마 법원 ] 최초로 “ 급발진 문제가 제조사 에 있다 ” 판결 토요타 ! 사망 유족에게 300 만달러 배상하라 ! 깜짝 퀴즈 1 : 국내 급발진 1 위 차량 ? 깜짝 퀴즈 2 : 국내 제조사 중 EDR 미장착 회사 ?6 블랙박스는 어떻게 변해 왔을까 ? 국내 차량용 블랙박스의 발전 국내 최초 개인 차량용 블랙박스 탄생 (’03) 국내국내 MOA-VBOX 국내 최초 개인 차량용 블랙박스 제조 : 에이치케이이카 사고발생 전 14 초 + 사고 후 6 초 이미지 및 가속 데이터 저장 ( 사고 이미지 10 개까지 저장 ) 블랙박스 시장의 성장 (’07~’14) 2007 ~ 2010 - 1 채널 ( 전방 ) - SD (640 * 480) - 2 채널 ( 전방 + 후방 ) 등장 - HD (1280*720) + SD (640 * 480) - 모니터 ( 버튼 / 터치 : 2~3 인치 ) 2011 ~2012 2013 ~2014 - 2 채널 ~ 4 채널 ( 주 2 채널 ) - full-HD (1920 * 1080) 등장 - 모니터 ( 터치 : 3 ~ 4 인치 )7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감시구역 Pont : 1 채널수별 감시구역 감시구역 : 카메라 채널수와 화각에 의하여 결정 1 채널 ~ 4 채널 까지 있으며 카메라 위치에 따라 달라짐 추천사양 2 채널 채널수가 많고 , 화각이 넓을수록 좋으나 차량 운행 용도와 제품가격을 고려해야 .. 1 채 널 2 채 널 전방 후방 전방 3 채 널 전방 측면 4 채 널 전방 후방 측 면8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기 초 성 능 Pont : 2 해 상 도 이미지 표현의 픽셀 수 : 녹화영상의 정밀도 측정 지표 SD (640*480) - HD (1280*720) - Full HD (1920*1080) 추천사양 HD (1280*720) 이상 해상도가 높으면 무조건 좋다 ?? NO!! Full-HD(1920*1080) 선택시 고려사항 !! 녹화 영상의 화질은 좋다 !! 그러나 1. 메모리 수명 을 단축 시킨다 . 2. 차량 배터리 소모 가 많다 . 3. 제품 가격이 비싸다 . SD (640*480 ) 는 번호판 식별 이 곤란 하다9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기 초 성 능 Pont : 2 f ps( 초당 프레임 ) / 화각 fps : 1 초의 영상을 구성하는 화면의 수 자연스러운 영상 : 25~30 프레임 (* 참고 : 영화 24fps) 추천사양 30fps 25fps 미만은 화면의 미세한 끊김현상 발생 화각 : 화면 좌우 측면에 걸친 시야의 각도 사람 눈의 화각 : 120 도 , 120 도 ~ 140 도 제품 권장 120 도 144 도 화각이 좁으면 사물이 크게 보이고 , 왜곡이 적으나 , 사고시 좌후측면 판단이 어려움 화각이 넓으면 사물이 작게 보이고 , 왜곡이 있지만 한번에 넓은 범위를 녹화 할 수 있음10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기 초 성 능 Pont : 2 저장장치 및 용량 블랙박스용 : 주로 Micro SDHC 사용 기록과 삭제가 잦은 블랙박스 : 용량 및 메모리 방식 중요 추천사양 16G 이상 , Class 10, MLC 방식 Class 4/6/10 중 반드시 10 으로 ~~ SLC, MLC, TLC 타입중 반드시 MLC 로 ~~ 주차감시 기능 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 최소 16G 이상 사용 (HD 급 (1280*720 / 15fps / 16G) 화질로 약 15 시간 ) 저장장치는 수시로 저장과 삭제를 반복하기에 소모품 이며 값 싼 TLC 메모리 사용은 지양 !! 메모리 수명 연장 방법은 ? 주기적 포맷 이 필수 하지만 귀찮다 ~~11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녹 화 방 식 Pont : 3 전원이 연결된 순간부터 영상을 지속적으로 저장하는 기본적인 녹화방식 3 축 G 센서를 탑재해 일정수준 이상의 충격이나 급가속 , 감속 시점의 영상을 분리하여 저장하는 방식 - 사고순간 가장 중요한 기능 주행중 상시녹화와 동일하나 영상의 프레임을 절반으로 줄여 저장용량을 최소화 ( 차량 배터리 방전 위험 주의 ) 특정시점의 영상을 저장하고자 할때 별도의 버튼을 눌러 영상을 저장하는 방식 [ 주행중 ] 상시녹화 [ 주행중 ] 이벤트녹화 [ 주차중 ] 주차녹화 [ 주행중 ] 수동녹화 주차테러 걱정 되시죠 ? 주차녹화 기능 은 필수 상시전원케이블 별도 설치 필요 단 , 배터리 일정 전압 이하로 떨어질때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도록 설계된 제품 ( 차량 배터리 방전 방지 )12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부 가 기능 Pont : 4 GPS 탑재 차량속도 , 위치정보 , 진행방향 등을 기록하여 웹지도와 연계 주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음 고온시 자동 차단 기능 여름철 실외 차량 장기 주차시 일정 온도에서 블랙박스 전원 자동 차단 여름철 차량 실내 온도 : 80 도 까지 상승 60 도 이상시 전원 자동차단 제품 권장13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부 가 기능 Pont : 4 내장 Wifi 탑재 스마트폰에 제조사의 전용 어플을 설치하면 블랙박스에 내장된 wifi 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기기 환경설정 , 실시간 촬영영상 , 메모리카드 재생 등을 할 수 있음 차선이탈 경보 장치 운행시 졸음운전으로 차선을 이탈하는 경우 경고음을 통해 알려주는 장치 ( 깜빡이를 넣으면 경고음 미발생 )14 블랙박스 선택시 체크 포인트 !! 부 가 기능 Pont : 4 전방 추돌방지 시스템 전방의 차량과 거리를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일정 거리로 가까워 지면 경고음으로 알려주는 시스템 Dual Save 사고시 외장메모리 와 내장메모리 에 동시저장 사고로 인한 녹화영상 소실을 원천적으로 예방15 모든 차량에 블랙박스를 장착하면 교통사고 30% 감소 사망자수 1,500 명 감소 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
서 론고객만족 서비스리더십의 의미를 알아본다기본의미 : 개인과 조직에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며 강제성 없이 기꺼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 - 더한 힘 리더십 중에서 -고객만족을 우리가 왜 해야하는 것인가?남보다 앞장서서 행동해 몸소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됨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급여와 직책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일을 통해 내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성공은 중요하다.본 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비스마인드 요건마음을 열기위한 준비를 하는 것. (반가움의 표시 ^^) 무언으로 “당신이 좋아요” ,“만나서 반가워요” 라고 외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웃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사람에게 전염되어 기분을 좋게 한다. 항상 밝게 웃는 표정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귀를 기울여서 듣는 것 상대방의 감정, 사고, 신념등을 이해하는 것 비언어적인 것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까지 듣는 것 선입관과 편견을 버려라
내 심장을 관통한 에너지버스1. 나, 에너지버스에 탑승하다.내 앞을 바라본다. 불과 몇미터 내에 나의 일상이 있다. 그토록 강렬했던 첫사랑의 느낌도, 학창시절 끝임없이 그리던 가슴설렌 미래의 내 꿈도 이제는 타들어가는 흑백사진의 혼탁한 연기처럼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진다. 허나 나의 일상은 불행하지 않다. 남들에게 뒤 쳐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으로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 후 공무원으로 순탄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적당한 때 결혼하여 곧 태어날 둘째딸과 큰아들이 있는 지극히 정도를 걷는 모범적인 인생이라 자부할 수 있다. 흐르는 시간의 발자욱을 그대로 따라 밟아 온 나의 여정은 이미 익숙하고 길들여저 다른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이는 곧 안정이요, 평안함일거다.그런데 무언가가 없다. 딱히 잡히지는 않지만 항상 마음속에 공허한 그 무언가가 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은 돌부리에 치여 쓰러지는 길도 아니며, 길을 잘못 들어 우회하여 다시 돌아가는 먼 길도 아니지만 좀 더 빨리 전력질주 할 수 있게 하는 가속패달의 연료가 고갈된 것이다. 이러한 때 바닥나 있는 나의 연료통에 너무나 충격적인 메카톤급 연료를 채우준 것이 있었으니 이 한 권의 책이 바로 그것이었다.2. 에너지버스의 열가지 Rule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위를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조지. 불만이 가득한 가족들, 최후의 카드를 내민 아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같은 포화상태의 팀.... 게다가 이 모든 짐 더미에 압사당하기 직전인 조지의 등 위에 바늘하나를 떨어뜨린 듯한 타이어 펑크 사건... 도저히 돌파구가 없을 듯한 그의 인생에 불현듯 찾아든 희망의 빛. 바로 에너지버스의 운전사이자 에너지전도사인 Joy와의 만남이 그것이었다.이책의 이야기는 일상에 지칠대로 지쳐 한발 나아가기도 힘겨워 보이는 주인공 조지가 가정과 직장에서의 패배를 다시 성공으로 이끌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 조이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조이는 조지로 하여금 에너지버스의 10가지 룰을 통해 긍정에너지의 힘이 얼마나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조지라는 인물이 위기속에 처한 자신의 팀을 10가지 룰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이야기구조로 이끌어가며 주인공의 내면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마치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쾌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기존의 책들과는 차별화를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위기에 봉착하는 순간 우리는 어느덫 다음날 아침 조이가 제시하는 다음의 룰을 기대하는 주인공이 되어있음을 알게된다.2-1 【Rule 1】당신 버스의 운전자는 당신 자신이다.내 인생에 나는 주체이지 결코 객체가 아니다. 묻어가는 인생? 편할순 있어도 변화와 혁신은 없다.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관망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 상대방에 대한 책임전가와 결정적인 순간 발을 빼는 비겁한 자기합리화에 빠져있다.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의 주체는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에너지버스에 탑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첫번째 룰인 것이다. 당신의 버스에게 말하라. 진정으로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2-2【Rule 2】버스를 옳바른 곳으로 이끄는 것은 "열망"+"비젼"+"집중"이다.E+P=O (E=Event : 사건, P=Perception : 태도, O=Outcome : 결과)사건은 의지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이며, 결과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P 즉 태도이다. 태도는 비젼을 향한 강한 열망과 그 열망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 생각은 자석과 같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을 할 때마다, 생각은 그 생각한 대상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생각에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2-3【Rule 3】당신의 버스를 긍정 에너지라는 연료로 가득 채워라.아마도 10가지 룰 중 가장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골프"를 예를 들어 우리들의 뇌리에 긍정 에너지라는 연료의 개념을 확실히 각인시켜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를 치고 난 후, 형편없었거나 실수를 했던 샷은 잊어버린다. 대신 그 날 멋지게 날렸던 한 방만을 기억한다." 그렇다. 나이스 샷 한방으로 부정 에너지는 사그러지는 것이며, 또다시 그날의 한방을 기대하며 골프장을 찾고, 그렇게 중독이 되는 것이다.2-4【Rule 4】당신의 버스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목적지를 향한 당신의 비전에 그들을 동참시켜라.버스 티켓을 발급하자. 그리고 내 버스가 어디를 향해 달리려고 하는지, 내 비전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동참을 권유해 동승여부를 판단하여 Rule 5, 6을 위한 판단의 척도를 가지는 것이다. 주인공 조지의 팀이 해체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바로 팀장으로서 초대의 티켓을 발급하지 않고, 무조건 동참을 강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2-5【Rule 5】: 버스에 타지 않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2-6【Rule 6】: 당신의 버스에 에너지 뱀파이어 탑승 금지 표지판을 붙여라.비젼을 향한 여정속에 항상 부정적 마인드를 갖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구성원이 있기 마련이다. 긍정에너지를 갉아먹는 사람, 바로 에너지 뱀파이어로 포용해서 동승시키지 못할 바에야 과감하게 포기하고 가는 것이다. 버스가 펑크날 것 같으면 과감히 불필요한 물건들은 차창밖으로 버리고 가는 것이다.2-7【Rule 7】: 승객들이 당신의 버스에 타고 있는 동안, 그들을 매료시킬 열정과 에너지를 뿜어라.최고에너지 경영자(Chief Energy Officer), 즉 에너지 CEO가 되어 이제는 에너지를 경영해야 한다. 티켓을 발급하여 동승을 시키고, 동승하지 않는 사람들을 탑승 금지시켰다면 이제 날 믿고 한버스에 탄 이들을 열정의 에너지로 전염시켜 뜨거운 감성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2-8【Rule 8】: 당신의 승객들을 사랑하라.저자는 승객을 사랑하는 5가지를 제시한다. 이는 조직의 CEO이든 일반직원이든 모든이에게 대인관계를 위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본다.첫째, 시간을 내어라. 이 시간은 서로에게 한 인격체로서 일대일 대화의 물고를 트라는 것이다.둘째, 귀를 기울이라. 자신만의 울타리에 갗혀 독단에 빠질수 있으니 항상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라는 것이다.셋째, 인정해주어라. 개개인이 한 일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라.넷째, 섬겨라. 한 위대한 리더는, 진정으로 높은 사람은 아랫사람들 위에 군림하기보다, 숱한 사람들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그들을 섬기는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다섯째, 장점을 이끌어내라. 우리는 인정받고 있을때 에너지는 배가 되기 때문이다.2-9【Rule 9】: 목표를 갖고 운전하라.일방적으로 정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승객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와 비전을 구상하여 각각의 에너지를 모두 합해 하나로 발산할 때 지치거나 지루해지거나 엔진이 꺼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2-10【Rule 10】: 버스에 타고 있는 동안 즐겨라."삶의 목표는 여정 자체를 즐기는 것, 젊고 즐겁게 살다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렇다. 어차피 리허설 없는 단 한번의 인생이 아니더냐! 아마도 에너지 뱀파이어보다는 에너지 전도사의 종착역이 더 멀리 있지 않을까?3. CS평가와 에너지버스현재 내 직장에서 가장 큰 화두는 CS평가로, 나름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평가결과만 나오면 모든 직원의 입에선 한숨이 나온다. "이번에도 꼴치야?"노력한만큼 결과가 있어야 하건만, 야속하게도 매번 평가결과가 나올때마다 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니 어느덧 직원들 사이에서는 자포자기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의욕도 상실한 상태이다. 어쩌면 주인공인 조지의 직장 분위기와 어느정도 닮아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방법으로 에너지버스의 룰을 적용해 보고자 한다. 현재 나는 우리과에 과장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에너지버스의 운전기사가 되어 보겠다.먼저 내 자신이 변해야 한다. 이제부터 나는 "CS평가 우수국"이라는 비젼을 위해 험난한 여정의 선두에 서서 부정적 에너지가 만연된 직원들을 내버스에 탑승시켜야 된다. 조직의 특성상 상급자들과 부하직원들 사이에는 의사소통 채널에 한계가 있으며, 이는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시키는 시발점이 되곤 한다. 하여 현상황에서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부분들, 특히 고객과의 접점에서 근무하는 창구직원들이 그동안 나의 방식에 문제점이 무엇이었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될지 등에 대한 생각들을 알아보기 위해 아래와 같은 초대장을 만들겠다.
1900∼1920년까지의 작가와 작품 조사-------------------------------1. 개 괄1900년대에서 1920년 전까지의 문학사를 조사함에 있어, 이렇듯 선을 그어 조사한다는 것은 역사의 연속성 측면에서 어쩌면 시작부터 오류를 범하는 것같아 조심스럽다. 다행히 정해진 작가와 작품만 가지고 조사를 하는 것이니, 이러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1900∼1920년 전까지라면 3·1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전까지를 소설과 그 작가를 중심으로 하되 김억이나 1910년대 시인인 최승구와 같은 작가, 최남선의 《태백산 시집》과 같은 신체시계열의 작가와 작품을 첨가하여 조사하는걸로 조사의 골격을 세우고, 가능한한 문학사중심으로 이시대{) 조동일 『한국문학통사』권 4(제 3판)에서 조동일 교수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 제 2기」로구분하여 서술하고 있다. 1860년(철종 11) 동학농민운동을 기점으로 그 이후를 말하여, 본 조사의 시기는 그의 책 9.8. 국문시가의 새로운 양상(p.262) ∼ 9.13. 방황하는 세대의 소설(p.446)까지의 내용을 많이 참고했음을 밝혀둔다.의 문학사 흐름을 파악한 후 그에 해당하는 작가와 작품을 끼워넣는 식으로 기술하고 한다.먼저 이 시기를 개화기문학을 시작으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이라 할 수 있는데, 창가(唱歌) ·신소설(新小說) ·신체시(新體詩) ·신파극(新派劇)·최초의 근대소설인 이광수의 《무정》과 신소설과 《무정》사이의 과도기 단편소설(현상윤, 양건식, 백대진 등)등으로 대표되는 문학예술 활동으로서 고전문학과 신문학 사이의 과도기적 구실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 조사에서는 위의 창가, 신파극은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남은건 신소설과 신체시, 최초의 근대소설인 이광수 《무정》을 포함한 그 사이의 단편소설이다.신소설은 최초의 신소설이라 일컫는 《혈의 누》를, 신체시는 최남선의 《태백산시집》과 작가 최승구(현상윤도 신체시를 썼으나 과도기 단편소설에 비중을 두고자 한다.), 김억을 과도기이나 가치로 보아 근대소설의 효시로서의 신소설은 이것이 최초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상편은 《만세보》 연재로 끝나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牡丹峰)》은 1913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났다.한국·일본 및 미국을 무대로 옥련 일가의 기구한 운명의 전변(轉變)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묘사한 작품으로, 자주독립·신교육사상·자유결혼관 등을 다루었다. 구성이나 이야기의 전개방법이 미숙하고 고대소설의 문체를 탈피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나, 묘사의 사실성 및 내용의 반봉건적인 면에서 근대소설 영역에 접근했다고 평가된다.2.2. 歷史 傳記小說{역사전기소설은 이른바 경험적 서사체로서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고 있다.이는 신 소설이 확보하지 못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고 하겠다. 역사전기소설은 위기에 처한 나라의 운명을 한몸에 걸머진 뛰어난 영웅의 활약을 통해 당시 조선, 즉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이 상실되어가는 위기적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지식인 들의 시대 대응력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영웅소설, 그리고 3.1운동 이후 유행했던 역사전기소설의 중간단계를 잇고 있는데, 다만 한 개인의 영웅적인 행적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작위적인 경향이 노 출되는 아쉬움이 남는다.【작가】-1 : 신채호본관 고령(高靈). 필명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호 단재(丹齋)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대전 출생. 1897년 신기선(申箕善)의 추천으로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皇城新聞》에 논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大韓每日申報》 주필로 활약하였으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다. 1907년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등에 가입 ·참가하고, 이듬해 순 한글 《가정잡지》를 편집 ·발행하였다.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 의정원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 상하이로 돌아와 《국시일보(國是日報)》의 주간이 되었는데, 이때 《안중근전》과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지었다.1924년 11월 ‘독립운동을 위한 전민족 통일’을 당부하는 유촉(遺囑)을 남기고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의 독립활동과 많은 저술들을 통해 독립정신을 함양하고 민족해방운동의 정신적 지주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주체적인 역사서술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비록 정신주의적 ·관념적 역사관에 머물긴 했지만 역사 연구와 서술을 민족해방운동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였다.【저서】《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안중근전》, 《한국통사(韓國痛史)》《서사건국지(書史建國志)》등【작품】-2 : 《꿈하늘》(신채호)【줄거리】【주인공 한놈은 하늘로부터 큰 무궁화 꽃에 내려앉는다. 그때 동편으로 우리나라 군사가 나타나고 서편에는 괴물 같은 다른 군사가 나타나 일대 접전을 벌린다. 싸움을 이긴 후 동편 장수가 무궁화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장수는 바로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乙支文德)이었다. 을지문덕과 한놈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가 사라지고 한놈은 민족사의 여러 영웅들을 만난다. 한놈은 진정 나라를 위해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라고 탄식하면서 작품은 끝난다.】1916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한글체로 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며 단재 자신의 자전적 내용을 소설화한 근대문학 초기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민족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일제에 대한 무한한 투쟁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는데 단재의 우국충정과 당대에 실현할 수 없는 민족적 열망을 환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단군기원 4240(1907)년 어느 날로, 단재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한놈을 내세워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찾으려는 강렬한 의지를 담아냈다. 이 작품은 환상적 기법을 사용하여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개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근대소설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라사랑의 주제를 표현하려를 그 형태상으로 보면 대개 7 ·5조의 자수율(字數律)로서 이루어 놓은 정형시이다. 즉, 신체시는 창가적 정형성과 후렴이 있으나, 고전시가의 율문적(律文的) 표현을 지닌 준정형시(準定型詩)라고 볼 수 있다.【작품】-3 : 《태백산시집》(최남선)육당 최남선의 《태백산시집(太白山詩集)》은 최초의 신체라고 일컫는 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이후 2년 후인 1910년 2월호에 실린 작품으로 단군 건국의 성스러운 산인 太白山의 웅장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상징으로 그린 연작이다. 형식을 위한 배료도 각별하게 해서 제목이 따로 붙어 있는 다섯 편을 연결시켜 형식을 다르게 하는데 특히 유의했다. 그러나 당대의 시련과 고민은 여전히 배제하고 애국정신을 추상화시켜 신비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이고자 해서 大倧敎적인 발상의 일면만 갖추었고, 그래서 생기는 공허함을 형식 시험으로 메우려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권 4, p423 : 조동일교수는 먼저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다루며 국권상실의 위기를 외면하고, 일차원적인 언사로 추상적인 희망을 노래하면서 형식시험에 몰두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태백산시집》도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태백산시집》에 들어 있는 〈태백산가〉 첫수와 〈태백산과 우리〉는 7·5조이다. 〈태백산가〉 둘째 수는 글자 수가 5·4·4·3으로 되풀이되도록 한 특이한 형식이며, 말뜻과 어긋나는 인위적인 띄어쓰기를 해서 그런 겉치레가 돋보이게 했다. 세 번째로 실린〈태백산부(太白山賦)>와 그다음 작품인 는 산문을 줄바꾸어 적기만 한 자유시이다. 글자 수를 맞출 때에는 조여놓던 생각을 자유로운 형식을 택해서 마구 풀어놓았는데, 그 어느 쪽이든지 직설직인 설명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따름이고 시적인 감동을 줄 만한 표현을 갖추지 못했다. 두 호 뒤에 실은 은 영탄하는 말이 자주 들어가도록 하고 이따금 줄을 바꾼 것 외에는 산문과 다름이 없다. 모든 형식을 두루 시험한 것 같지만, 정도를 벗어난 양쪽 극단에서만 머물러 시가 해체되는 위기에 이르렀다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2.5. 過渡期 短篇小說{과도기 단편소설은 신소설, 역사전기소설 및 토론체소설과 근대소설 전까지의 과도기에 나타난 소설형태이다. 과도기 단편소설이라는 용어를 임의로 적지만, 달리 부를 용어를 찾지 못해 편의상 그렇게 쓰기로 한다. 이광수의 《무정》에 와서야 근대소설이 최초로 확립됫다고 보는 이유는 이러한 과도기 단편소설들이 기존 신소설의 틀안에서 형식과 내용이 약간 달라졌을뿐 큰 변화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작가】-6 : 현상윤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18년 중앙(中央)학교 교사가 되었다. 민족대표 33인 외에 3·1운동의 계획과 추진에 중요한 구실을 한 16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참가, 2년간 옥고를 겪었다. 출옥하자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에 취임하고, 1922년 이상재를 대표로 하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광복 후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 부장을 지내고, 1946년 보성(普成)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가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으로 승격됨에 따라 초대 총장이 되었으나,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현상윤이 20대 초반 몇 해 동안 왕성한 창작력을 보이면서 슨 글은 성격이 다양하다. 신체시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논설이 적지 않고, 단편소설도 6편이나 된다. 신문명의 충격을 받고 일본 유학을 해서 새로운 지식을 섭취한 세대가 문필활동을 통해서 시대적인 과제를 다루고 자기 인식을 하고자 한 자취가 여러 갈래에 걸쳐 나타나 있다. 그의 작품들에는 자기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슨 글이든지 쓰는 낭만적인 젊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민족적인 자각이 뚜렷하지도 않았고, 문학 창작방향을 확고히 정립시키지도 못한 듯 관념적으로 들뜬 문장과 설득력이 부족한 영탄을 늘어놓는 듯한 한계가 있다. 저서로는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가 있다.【작품】-4 : 《핍 박》(현상윤)【줄거리】【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쉽 비교연구Ⅰ. 서 론1945년 해방과 분단, 1948년 정부수립을 시작으로 1922년 12월 18일 제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30년 만에 직선 민간인 대통령 등장까지의 우리 역사는 함성과 총성, 피비린내 속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배반, 집념과 야당, 가슴 벅찬 감동과 찬란한 광채.... 격류처럼, 질풍노도처럼 굽이쳐 왔다. 한국 현대사의 초창기에 두 대통령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이승만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박정희는 그 작품에 뼈와 살을 붙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방 후 살벌한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을 끌고 가야했던 우리 대통령들을 과연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시각보다는 어느정도 시대상황을 고려한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두 대통령의 리더쉽 연구에 있어 먼저 'Leadership'에 대한 개념정의와 통치자의 유형을 간단히 살피고, 본격적으로 정치적인면에 있어서의 통치스타일과 용인술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겠으며, 두 번째로 경제적인면, 세번째로 외교면과 통일정책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총체적 시각에서 나름대로 두 대통령의 리더쉽을 평가한 후 결론에서 논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제시한 후 개인적인 시각을 보태면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Ⅱ. 본 론1. Leadership의 개념과 통치자의 유형리더쉽에 대한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여기서는 주제와 가장 근접하면서도 여러 학설을 수렴하여 정의를 하고 있는 신승권의 설{) 신승권 《Leadership에 대하여》,오름출판사, 1997 p.16∼17 : 이 책에서는 테리(G. R Terry) 와 쿤츠(H. Koontz), 오돈넬(C. O'Donnel)등의 견해들을 제시하고 이러한 견해를 종합하여 Leadership 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을 따르고자 한다.Leadership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조직목표의 달성을 위해 개인 및 집단을 조정하여게 반항하는 행동주의를 태동케 하였다.{) 《秘錄·한국의 대통령(大統領)》, 조선일보사 출판국, 1993, 방우영 p.292∼293이는 곧 박정희 대통령처럼 정치적 개입주의를 성장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다.결론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초기로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런대로 국부의 카리스마를 유지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향유할 때에는 군부의 충성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산정치파동 이후 비민주적이고 탄압적인 수단에 의해 정권연장을 꾀함으로써 점차 군위가 실추되어 군부의 충성과 지지를 상실하게 되었고, 따라서 군부의 일각에서는 정치적 개입주의가 성숙되어가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2) 朴正熙 전 대통령의 길들이기 {) 위의 책 p. 295∼297統治박정희 대통령의 권력강화에 있어 최대의 과제가 서로 다른 인맥으로 구성된 5·16쿠데타의 세력을 길들이는 것이었다. 강인한 카리스마적 권위의 소유자인 그는 중앙정보부의 창설을 등에 업고 반발한 서북파 중심의 경비사관학교 5기를 반혁명 음모로 거세시켰다. 그리고 민주공화당을 사전 조직한 데 반발한 해병대를 포함한 동북파 일부를 거세시키는 등 16차례의 거세를 통해 육사 8기 중심의 중남부파가 주도권을 장악케 하여 군부정권을 수립하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가 정권초기부터 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쉽으로 제 2의 쿠데타의 싹을 거세했던 것이다. 시대상황을 염두해 볼 때 이와 같은 그의 강력한 리더쉽은 비록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했지만, 혼란기 한국 정세의 다양한 권력의 뿌리를 어느정도 통일시켰다는 점에서 무조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사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그는 육사 8기 중심의 정군파가 구축한 군부 내의 기반을 그대로 두고서 군 통수권의 행사와 김종필 일파의 통제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최고회의 의장 때부터 비서관으로 활용하여 은고의 관계를 맺게 된 전두환, 노태우 등 영남 출신 육사 11기를 친위세력으로 육성함으로써 군 내에 「하나회」(일명 一心會)라는용한 용인술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朴대통령은 이떤 장관이 잘못하면 화가 나서 쉬게 하지만 인정이 많이 사람을 보내 계속 사후관리를 했다는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작은 수첩에 천명 가량의 명단을 적어놓고 수시로 어떻게 지내는지,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알아 보았는데, 그 중에서 반성하고 있다는 좋은 보고가 올라오면 다시 발탁해 쓰기도 했다.朴대통령의 용인술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정치적 요직을 항상 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복수 경쟁을 시켰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종필(金種泌)씨를 등용하면서 동시에 반(反) 김종필 세력을 키우고,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둘 다 총애하면서 충성 경쟁을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공화당을 만들면서도 김재춘(金在春)씨에게 또 다른 당을 만들도록 지시해 잘한 것을 선택하려 했다. 정보기관도 정보부와 보안사를 상호 경쟁시켰다. 어느 한 쪽이 커지면 반대세력을 키워 견제토록 한 것이다.3) 政治的 Readership에 있서의 意義와 限界두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쉽에 있어서 강력한 카리스마적 통치스타일이라는 공통분모와 더불어 구체적 통치스타일과 통치이념에 있어서는 각각의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된다.먼저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정치의 중심부인 워싱턴에서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항상 국제정치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통찰하였다. 李대통령은 또 체험적으로 공산주의 노선에 함정을 간파하였다. 이런 안목과 통찰력이 해방후 정국에서 그를 건국의 지도자로 만들었다. 李대통령이 해방 뒤의 혼란의 소용돌이 후에 단독정부수립을 강행한 배경에는 공산당의 전략과 본질을 꿰뚫어본 자신만의 남다른 통찰과 소신에 의한 리더쉽이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 일본에 대한 저항, 소련에 대한 거부 등을 부분적인 정치적 의의로 들 수 있다.그러나 그의 반일이나 반공이 구호만을 앞세웠을 뿐 내실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정치적 리더쉽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평생에 걸쳐 반일·반공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수립 후엔 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해 준것이었다.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50년 초에 실시된 농지개혁, 50년대 후반부에 실시된 물가안정 정책, 그리고 꾸준히 계속된 교육 등은 계속된 미국원조와 농민들의 경제부담 등과 결합되어 60년대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정책은 그의 반공이데올로기의 주류에 조그만 객류정도에 불과했다는 한계를 지닌다.2) 박정희 :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의한 절대빈곤의 탈피와 부작용朴대통령의 권력욕에 의한 장기집권 등과 같은 정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하는 학자들이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경제성장이다. 그는 나름대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었는데 李대통령의 반공 국시가 냉전의 50년대의 시대정신이었다면 朴대통령의 5천년 가난의 한을 씻고 우리도 잘 살아보자 는 경제성장 제일주의는 개발의 60년대와 70년대를 이끈 시대정신이었다.박정권은 정치적 정통성의 결핍을 보완하고자 국가의 안전보장과 더불어 경제성장을 수단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1962년에서 1979년까지 연평균 약 9%의 고도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GNP도 1962년 87달러에서 1979년 1,644달러로 18배의 상승률을 보이는 등 상당한 경제적 리더쉽을 발휘했다. {) 1962년에서 1979년까지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 통계는 《중경제지표》, 경제기획원, 1990, p.3을 참조했다.이러한 경제적 리더쉽은 더 나아가 군(軍)을 통해 민간사회부문에 대한 행정관리기법의 전파, 전문 기술인력의 배출 및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사업 등을 통해 급속한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기여하였다.반면 경제의 질적 성장 개념이 경시됨으로써 한국사회 내부에는 황금만능주의 풍조가 만연되고, 경제정의와 도덕성이 결여되어 사회 전반적으로 정경유착 등 천민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초래되었다. 또한 경제성장의 부산물인 소득격차, 지역·계층간의 불균형은 사회갈등을 야기시켜 사회통합의 저해요인이 되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4. 外交와 統一政策的인 面에서의 Readership외교망의 확산과 실리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즉 1961년 당시 불과 16개국에 불과했던 외교망이 1979년, 그가 서거할 당시에는 1백 16개국으로 대폭 확대됨으로써 한국이 세계정치의 흐름 속에 편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1964년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서독을 방문하여 유럽지역에서 한국의 위상을 새롭게 하는 한편 1966년에는 필리핀에서 개최된 월남지원국 7개국 정상회담 을 주도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역국가가 되는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했다.朴대통령의 대미관계 초기는 李대통령이 미국과 온건한 친선관계를 유지한데 반해 반미적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주한 미대사관 및 주한 미군 사령부와의 사이에 곧잘 여러 가지 다툼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5·16 이후 집권자로서의 정치 이념에 어떤 이데올로기의 형태로도 그러한 반미감정을 승화시키지 못했다. 5·16정권이 미국의 승인 내지 뒷받침 없이는 성공할 수도 없고 또 지탱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재빨리 간파했으며, 이런 판단 아래 5·16 모의 단계에서부터 미국의 페이스에 적응하려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朴정권 집권 2기가 되는 63년 민정이양 선거 이후, 미국의 구미에 맞는 정책개발로 한일국교 정상화를 했다. 이는 李대통령의 12년간 정권유지 시기에 미국이 주선과 영향력 행사등으로 이루려고 했으나 진전시키지 못한 과제 였기 때문에 朴대통령의 실리주의적인 대미 외교적 리더쉽이 잘 발휘된 것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미국간에 밀월(蜜月)관계가 시작된다.그 밀월의 절정이 월남파병이었다. 다른 자유진영 국가들이 뒤꽁무니를 빼는 가운데 미국만이 외로운 전쟁을 치르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이 연인원 30만명을 파병한 사실은 미국에 더 없는 힘이 된 것이다. 이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도움을 받았고, 이를 경제개발에 투입했던 것으로, 이는 朴대통령의 실리주의적인 대미 외교적 리더쉽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이 월남파병은 朴대통령이 3선개헌을 단행할 때 견제보다는 두둔을 이끌어 낼 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