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조진숙 여. 36세. 중국집 종업원.·김태남 남. 39세. 진숙의 남편, 중국집 주방장.·조진희 여. 32세. 진숙의 동생, 동네에서 양품점 경영, 미혼.·조진수 남. 28세. 진숙의 남동생. 사법고시 준비중.·김장수 남. 10세. 진숙의 아들.(일명: 짱구)그 외 아줌마, 동네 꼬마들 등장.S#1. 중국집 홀 (여름 한낮)좁고 허름한 중국집에 낡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몇 개 되지 않은 테이블 위에는 아직 손대지 않은 짜장면 그릇이 포장된 채 놓여 있고, 진숙은 그것을 짜증스럽게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랩을 벗겨 후적후적 면을 비벼 먹는다. 이때 한껏 멋을 낸 진희가 들어오고, 진숙과 진희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진희 손에는 양산과 쇼핑백이 들려있다.진숙 (반갑게) 왔어?진희 (약간은 새침스럽게) 응, 아휴∼ 덥네. 근데... (주방 쪽을 살피면서) 형부는?진숙 배달 갔어. 곧 올꺼야. 아참, 시원하게 콜라라도 마실래?진희 아니, 됐어. (진숙이 먹고 있던 짜장면을 힐끗 바라보면서) 짜장면 지겹지도 않아? 보는 것만도 신물이 날텐데.진숙 글쎄, 누가 아니래니. 근데 어떤 망할 놈이 장난 전화를 했지 뭐야! 미친놈. 밥 먹고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잘 것이지 웬 장난전화야, 전화는. 망할놈의 자식. 그래도 양심 은 있었던지 달랑 짜장면만 두 그릇 시켰더라구. 그나마 다행이지, 뭐.진희 정말 별꼴이네. 그래도 먹기 싫으면 버리지, 왜. 이 집에서 흔한게 짜장면이잖어.진숙 (눈을 흘기면서) 얘가 헛살았네. 헛살았어. 음식 버리면 천벌 받아, 이 철없는 것아!진희 치!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짱구는? 어디 갔어?진숙 몰라, 그 녀석.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지…. 밥은? 안먹었으면 (포장된 다른 짜장면 을 본다)진희 (고개를 저으면서) 됐네. 짜장면 냄새도 싫지만 불어터진 면은 더더욱 싫어. 난 사양 할래.진숙 (머쓱한 표정으로) 얘, 얘는. 누가 짜장면 먹으랬니. 근데... 그 옷 참 곱다.진숙은 진희의 옷을 부러운 듯 바라보다 자돌아다녀?!장수 헤헤.태남 (시동을 끄면서) 처제 왔네. 근데 왜 벌써 가? 좀 더 놀다 가지.진희 아, 아니예요. 오늘은 그냥 갈께요. 바빠서….장수 에∼ 좀 더 있다가지.진희 다음에. 조만간에 또 올께.태남 그래, 그럼. 처제, 잘가.장수 이모 가.진희는 성급하게 뛰어내려 간다.S#4. 중국집 홀전화벨이 울리고, 주방에서 성급히 나와 전화를 받는 진숙. 이때 태남과 장수 들어온다. 태남은 주방에 들어가고 장수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은 다음, 방으로 폴짝 뛰어들어간다.진숙 (퉁명스럽게) 여보세요, 만리장성입니다.선(E) 예, 장수 어머님이세요?진숙 예? 예. 근데 누구세요?선(E) 아, 안녕하세요. 저는 장수 담임이예요.진숙 (목소리 바꿔서) 예, 예. 안녕하세요. 한번 찾아 뵙어야 했는데... 우리 장수가 폐끼치 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선(E) 아, 아니예요. 리더십도 있고 친구들끼리 사이도 좋아요.진숙 아, 예. 근데 무슨 일로?선(E) 저기, 다름이 아니구요, 다른건 다 좋은데 학과 성적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떨어져요. 머리가 좋아서 하면 될 것 같긴 한데, 장수가 노력을 안하는 것 같아 서요. 그래서 집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해서 전화 드렸어요.진숙 (얼굴 굳어지면서) 예, 그래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선(E) 아, 아니예요. 그럼 안녕히계세요.진숙 예, 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주방에 들어간 태남은 배달이 잘못 되었냐는 듯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묻는다. 그러나 전화를 끊은 진숙은 아무 대답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파리채를 집어 들고는 방으로 들어간다.S#5. 방안장수는 누워서 만화책을 보며 킥킥대고 있다. 세게 열리는 문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는 장수.방은 약간 넓고, 잘잘한 살림살이가 빼곡이 들어차 있다. 그리고 장수 옆에 만화책과 과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장수 (긴장되듯이) 엄마... 왜?진숙 너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응?장수 (조그만 소리) 만, 만화책 빌리러...라.남2 나, 나두.그 외 다수의 아이들이 서로 많이 사려고 다툰다. 상자를 열어서 구슬과 딱지를 돈과 교환하는 장수. 돈을 받고 흐뭇해하는 장수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된다.S#8. 방안진숙은 거울 앞에서 스킨을 바르다 문득 눈에 띤 달력을 펼쳐 본다. 그리고 6월 16일 토요일이 자신의 생일임을 알게 된다.진숙 아, 하도 생일을 안 챙겨서…. 하긴 이맘때였지.그때 태남이 들어오자 진숙은 달력을 성급히 덮는다.태남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아, 이번주 토요일이 무슨 날인 줄은 알지.진숙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나타내면서) 어, 어떻게 알았데요?태남 (진숙을 내려다보면서) 뭐야, 매번 하는 일인데 새삼스럽게..진숙 (눈을 흘기면서) 자기가 언제 챙겼다구... (히죽거리면서) 그래도 좋네요.태남 지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헛소리말고 토요일날 일찍 일어나서 준비나 해.진숙 (기대가 가득한 목소리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무슨 준비요?태남 이 여편네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인혜원 가는 날이잖아.진숙 이, 인혜원이요?태남 왜? 뭐가 잘못 됐어?진숙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아, 아니예요.태남 에휴∼ 피곤하네. 근데 얼른 월세로라도 방을 따로 얻어서 이사를 가야할텐데 말야. 장수도 지 공부방이 있어야지.진숙 ...태남 왜 말이 없어?진숙 아니예요, 근데 이 놈의 자식은 또 어딜 가서 이렇게 깜깜무소식인지... 저녁밥도 안먹 구….진숙 말 돌리면서 방을 나온다. 그 뒤로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태남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된다.S#9. 방문 밖진숙 (방쪽을 흘겨보면서) 그럼 그렇지. 복도 없는 년이 무슨 생일이야, 생일은.그때 콧노래를 부르면서 들어오는 장수. 주머니에 가득 찬 동전 때문에 바지가 흘러내리는 듯 바지춤을 움켜쥐고 있다.진숙 숙제는 다하고 돌아다니는 거야?장수 어, 엉. (양심에 찔리는 듯한 표정)진숙 밥 먹어야지?장수 응, 나 밥 많이 줘. 아주 많이.진숙 알았어. 얼른 들어가. 근데 바지는 왜 움켜쥐고 있어?장수 아, 아냐. 그냥. 내, 내 버아니야. 그냥 동창모임 가는 길에 선물 전해주려다가... 좀 오버했지만 뭐, 언제까지 그런 얘기 눈치보면서 해야하니? 언제적 이야긴데.진수 (언성이 약간 커지면서) 그런 얘기라니?! 학교?!진희 으, 응.진수 작은누나! 그걸 몰라서 그러는 거야! 큰누나 꿈이 뭐였는데.중학교만이라도 졸업하는 거였는데 우리 공부시키느라 그만둔거...그거 몰라?! 큰누나 이불 뒤짚어 쓰고서 눈물 참던 모습 훔쳐보면서, 나보고 법관되 서 큰누나 기쁘게 하라고 말했던 사람은 바로 작은누나였잖아. 근데 왜 자꾸 그래?!진희 나도 알아. 아는데... 내가 잘못 한 거 아니까 그만해. 나도 그것 때문에 요즘 마음이 안편해.진수 아휴∼ 정말! 그러니까 나보고 대신 큰누나 화 풀어주라는 거잖아.진희 미안...진수 왜 그렇게 마음하고 행동이 항상 따로 놀아, 작은누나는?진희 몰라. 언니가 불어터진 짜장면 먹는 것 보면 속상하면서두... 막상 엉뚱한 말만하게 돼.진수 (미소) 큰누나도 알꺼야. 작은누나 마음. 매형하고 결혼할 때 제일 반대한 것도 작은 누나였잖아. 우리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으면 됐지 또 고생하고 싶냐구. 좀 욕심부리 면서 살면 안되냐고 했던가.진희 새삼스럽게….진수 그때 기억나? 큰누나 했던 말.진희 응. 에미가 자식 키우면서 힘들다 그러는거 봤냐구 했지, 아마.진수 그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진희 신파지, 뭐. 그때 질리게 먹은 수제비 때문에 지금도 밀가루 음식은 안먹어. 생각하기 도 싫다.진수 (동감하는 표정) 응. 아무튼 나두 선물 하나 준비해야겠네.진희 니가 돈이 어디 있니?진수 큰누나 부담 좀 줄어주고 싶어서 아껴서 썼더니... 조금 모아진게 있어.진희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어 진수에게 준다) 이걸로 써.진수 아냐, 나도 있다니깐.진희 누가 뭐래니. 이걸로 옷이나 하나 사입으라구.진수 아냐.진희 (따지듯이) 야! 언니가 주는 돈은 받고 내가 주는 돈은 못받겠다는 거야.이게 아주 괘씸하네. 생각할수록.진수 (웃음) 하하, 알았어. 그럼 잘 쓸게. 고마워, 누나.진희 #13. 집으로 가는 길장수는 핀을 흐뭇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서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꺼내 들여다보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길가에 있는 문방구에 들러 카드를 사는 장수의 모습이 보인다.S#14. 방안연습장을 찢어 핀을 포장하는 장수의 모습. 옆에는 풀과 가위가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다.장수는 대충 꾸깃꾸깃하게 싼 핀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책가방 속으로 집어넣고, 다시 카드를 쓰려는데 진숙이 들어온다.진숙 공작 숙제했어?장수 으, 응.진숙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우리새끼 ( 엉덩이를 두들긴다.)장수 나, 나 잘래.진숙 그래, 얼른 이불펴고 자.장수 근데 아빠는?진숙 에휴∼ 내일 인혜원 가는 날이라서 그거 준비하고 있지.장수 와, 나두 가구 싶다.진숙 (약간의 기대가 담긴 목소리) 너 내일이 무슨 날인 줄 알아?장수 내일? (곰곰히 생각) 음∼진숙 (실망스런 목소리) 됐어. 잠이나 자. 내일 지각하지 말고.장수 응.진숙은 장수가 어질러 놓은 방을 정리한다. 그리고는 멍하니 달력을 응시. 장수의 코고는 소리가 낮게 들린다. 그때 진숙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달력을 넘겨보며,진숙 아버지랑 어머니 기일이 언제였지? 에구, 내 정신 좀 봐. 아무리 사는게 바쁘다고...지 부모님 기일도 안챙기면서 생일은 무슨 생일이야.아버지, 어머니 섭섭하시겠네….S#15. 중국집 주방 (그 다음날 새벽)태남과 진숙은 분주히 짜장면을 만든다. 태남은 면을 뽑아 그릇에 담고 진숙은 짜장을 붓는 반복적인 행동.S#16. 중국집 밖여기저기 흠집이 있는 봉고차에 마지막 짜장면 그릇을 나르는 진숙. 태남은 운전석에 앉아 있다.태남 갔다올게. 가게 잘 봐.진숙 알았어요.봉고차가 떠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안으로 들어온다. 이때 장수가 학교를 가려는 듯 책가방을 메고 방문을 나서고 있다.진숙 지금 가?장수 (성급히) 응. 나 갔다올게. 헤헤진숙 무슨 좋은 일 있어?장수 헤헤. 다녀오겠습니다.진숙 (볼을 살짝 꼬집으며) 조심해서 다녀와.S#17. 방안진숙 이제야 한숨 돌리겠네.그때 낡은 화구.
·제목: 야간열차·기획의도: 80년대 후반,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 산업화의 물결에 휘말려 농촌을 떠났던 사 람들이 꿈의 도시라 여겼던 서울로 올라와 겪은, 또는 지금도 겪고 있는 애환 을 담담하게 그려보고자 한다. 이때 열차는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통로이 자 아픔과 절망, 희망이 살아 숨쉬는 삶의 공간을 상징하고 있다.·시간적 배경: 1980년대 후반, 여름과 겨울·공간적 배경: 농촌과 서울·등장인물최기만(42): 쓰레기 청소부. 고향에서 농사짓다 하나 둘씩 동네 사람들이 떠나자 딸 자영 이를 위해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다. 공사판을 전전하다 간신히 얻은 정규 직 업이 바로 쓰레기 청소부이다.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인간미를 가지고 있다.이순영(40): 기만의 아내로 억척스럽고 생활력이 강한 여자이다. 남편을 도와서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집을 장만하기 위해 쌀통 안에 숨 겨둔 빨간 돼지 저금통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최자영(10): 초등학교 3학년. 나이보다 생각이 깊고 주인집 딸 가희의 놀림에도 불구하 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영리한 아이다.박계덕(42): 기만의 고향 친구로 직물 공장의 공장장이다. 젊은 시절 순영을 남몰래 좋아 했던 인물로 순영에게 물질적 유혹을 제공하는 인물이다.주인집(35): 거만하고 인정없는 여자로서 끊임없이 기만 가족을 괴롭힌다.과부로 딸 순영이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줄거리사람들이 도시로 한 둘씩 떠나가자 기만은 딸 자영이를 위해 서울로 이사갈 것을 결심한다. 단출한 몇 가지 살림을 짊어지고 야간열차를 탄 기만 가족은 희망에 부풀어 달콤한 미래를 꿈꾼다. 태어나서 한번도 고향을 뜬 적이 없던 기만은 교통사고로 잃은 아들에 대한 기억과 농촌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서울행을 결심한 것이었다. 하나 둘씩 떠나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던지라 항상 혼자 놀아야 했던 자영은 창문에 비친 풍경을 보며 마냥 좋아한다. 묵묵히 앉아 기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순영의 표정에도 약간의 설레임이 담겨져 있다. 주위사람들의 모습이 자세히 보여지고, 저마다의 이야기가 기만의 대화를 통해 간간히 들린다. 달리는 열차 소리 아득해 지면, 리어카를 끌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기만과 뒤에서 리어카를 밀고 있는 순영의 모습이 보인다. 경사가 급한 골목길에서 아슬하게 올려놓은 쓰레기가 떨어지면 뛰어가 줍는 순영과 기만의 지쳐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한편, 단칸방에 조촐하게 차려진 밥상을 학교에서 돌아온 자영이 들춰본다. 쌀밥과 김치, 그리고 김과 간장. 혼자 밥을 먹고 집을 치우는 자영이의 구멍난 양말에는 엄지발가락이 삐져 나와 있다. 그 때 주인집 딸 가희가 놀러 오고, 애써 구멍을 감추려는 자영의 구멍난 양말을 보며 양말 살 돈도 없냐며 핀잔을 준다. 자존심 상한 자영은 가희의 머리를 잡아당긴다. 자영에게 냄새가 나는 것은 아빠가 청소부이기 때문이라는 가희의 말에 자영은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영이에게 당한 가희가 주인댁에게 이르자 주인댁은 엄마에게 집을 비워달라는 둥 모질게 굴고, 이를 훔쳐보던 자영은 혼자 눈물을 훔친다. 그 다음날, 기만이 비탈길에서 무게를 견디지 못해 허리를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 꼼짝없이 집에 누워있어야 하는 기만을 대신해 순영은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시다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공장장이 옛날 한 동네 친구 계덕이었다. 계덕 덕택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안도는 잠시, 결혼을 못한 계덕은 순영을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혹한다. 그러나 순영은 일자리를 거부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밥을 해줄 수 있는 자리를 얻게 된다. 자영의 학예회날, 일이 늦게 끝나 허겁지겁 달려 온 순영의 손에는 김밥대신 빵하고 우유가 들려있다. 해지는 운동장에서 헤진 운동화를 싫고 원을 그리며 혼자 놀고 있는 자영이는 순영을 보자 뛰어든다. 배를 굶었을 자영은 엄마가 사가지고 온 빵 반쪽을 잘라 도로 순영에게 내민다. 빵을 먹는 자영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순영은 돌아가자며 자영의 손을 꼭 붙잡는다. 정문을 향해 오랫동안 걸어가는 순영이의 뒷모습이 보여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등장인물·정복남 (34)·김태수 (25)·이우길 (40)·안나 (28)·회상 인물들(어머니, 아내, 친구, 여자, 고용인 등) - 남, 녀 각 한 인물이 여러 역 소화.때1999년 한겨울 그리고 1년 후의 봄무대뒤로는 제법 큰 강이 흐르고 있는 배경이 설치되어 있고, 전면에는 큰 전봇대와 쓰레기 더미만이 가득한 초라한 다리가 있다. 각기 다른 조명과 음악을 통해서 주인공들의 삶을 조명했으면 한다. 이 연극은 밤부터 그 다음 아침까지 일어나는 이야기로 사건이 구성되어 있고, 1년 후의 어느 따뜻한 봄날, 이곳에서 그들의 만남이 다시 이루어지면서 막은 내린다.제1장막이 오르면 한 쪽에는 복남이 있고, 맞은 편에는 태수와 우길이 있다. 복남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듯한 촌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고, 얼굴에는 피곤한 표정이 가득하다.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복남의 모습만이 나타나고, 태수와 우길은 강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다.복남 여, 여기가 그 신문에서만 보던 그 곳이구만. (강물을 내려다보며) 오메, 기, 깊네. 여 기서 죽으면 누가 죽었는지도 모르겠네. 시체가 제대로 뜨기나 할까... 아, 내가 무 슨 생각을 한대. 죽을려구 온 사람이... 그게 뭔 상관이여. 우리 엄니 맘만 아프재. (눈 감고 뛰어 내릴려고 강물을 보다) 아이구, 아이구. 거참. 맨정신으론... (메고 있던 가 방을 뒤적이며) 먹다 남은 막걸리가 있을건데... 여깅구만. (막걸리를 꺼내) 캬야∼ 역 시 막걸리는 포천이 제일이여. 이때 엄니 김치만 있음... (상상하듯) 으메, 소름이 짝 돋는구만. 가만, 이 미친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구 있는건감. 이럴때가 아니지. (안 절부절) 에, 에라이∼ 가, 간다.복남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폼 잡는데, 그때 우길이 나타나 복남을 붙잡는다.우길 (놀라며) 안돼요, 안돼. 제발... 제발 참아요.복남 (다행이라는 표정, 못이기는 척 강물에 빠지려는 듯) 아, 아니어유. 지는 죽어야 해유.우길 제발, 진정 좀 하세요. 부탁입니다. 예?태수 우리에겐 그를 답답해서 일주일 전에 무작정 상경했구만유. 근데... 중핵 교도 못 나온 지가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무것두 없더구만유. 더구나 시골 촌놈이...조명 어두워지고 복남 밝은 조명.고용인(남) 등장.고용인(남) 이력서 가지고 오셨습니까?복남 이, 이력서유? 안가지구 왔는디...고용인(남) 그럼, 질문에 답해주세요. 고향은 어딥니까?복남 충남 서산이어유. 바다를 끼구 있어서 아름답구만유. 거...고용인(남) (말을 자르면서) 대학은 어디를 나오셨습니까?복남 대학유? 안나왔구만유. 그래두 제가 농사밥은 20년두 더 먹어서 아주 힘은 세구만유. 그래서...고용인(남) 죄송합니다. 자격미달입니다.복남 (힘없이 무대를 향해) 아, 알았구만유. 저, 그래두 지가...고용인(남) 아니요, 됐습니다.복남 저기 말이라도 한번... 들어보세유. 예?고용인(남) 퇴장.복남 저 이력서 써왔시유, 봐유.고용인(여E) 죄송해요. 저희는 20대만 가능하거든요.복남 지가 나이는 먹었어두...고용인(남E) (경멸하는 어조) 지금 장난하세요. 얼른 나가세요.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별 시덥잖은 게 사람 속을 긁구 난리야.복남 (객석을 향해 항의하는 어조) 시덥잖다구유? 누가유? 지가유? 서른 넷이나 먹구서는, 아직두 결혼두 못하구... 변변한 직업두 없어서 그러는 거여유? 그래유? 지가요, 이래 뵈도... (곰곰히 생각하다 체념조로) 그렇구만유. 정말 내세울게 하나두 없구만유. 시골 에서 엄니랑 농사짓다 지겨워서 집을 나왔구만유. 죽도록 일해도 입에 풀칠만 겨우 하는 농사일이 지겨워서, 그래서 홀어무니 혼자 내팽겨쳐 두구 나왔구만유. 서울 가서 돈 벌어 오겠다구 큰 소리 뻥뻥 쳐놓구서, 그러구서 뛰쳐나왔구만유. 농사짓는 지한테는 아무도 시집을 안온대서, 그래서 서울에서 직장잡구, 이쁜 색시 구해서 엄니 한테 보여줄라구 했는디…. 꼭 대학나와야 한대유? 왜유? 중핵교만 나와두 글씨 읽 구, 돈 계산하는데 문제없는디 꼭 대학을 나와야 하는 거여유? 서울사람들은 정말 이상하구만유…. 우리 엄니한테 곰같은 마누라하구, 토끼같은 자식들하구 살구 싶구만유. 우리 어무니 모시구서….우길 그렇군요.복남 근데 댁두 사연이 있는가 본디... 아저씨두 혹시, 그런거여유?우길 예? 아, 아니. 맘은 그렇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못해요. 항상 마음뿐이죠. 매일 이곳을 오지만 한번도 실행은 못했거든요.복남 무슨 일인데유? 양복차려 입는 걸로 보아 회사원인거 같은디... 저처럼 결혼을 못했 시유?태수 결혼 못했다구 다 죽지는 않죠.복남 (울컥하지만 모른 척 한다) 말해봐유.우길 하, 별것 아니예요. 그냥 친구 보증 서 줬다가 망한거죠. 거 왜, 신문에 나오는 그냥 그런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하하. (허탈한 웃음)복남 보증이유? 그거 서주면 안된다구 하던디...우길 예. 하도 친한 친구의 부탁이라... 그래서.조명 어두워지면서 아내 등장.아내 당신 또 보증 섰어요? 당신 우리 망하는거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예?우길 (목소리 나는 쪽으로) 아니, 그녀석은 믿을 수 있는 녀석이야. 믿어줘.아내 그 믿을 수 있는 당신 친구 보증섰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사는거 몰라요?우길 미안. 미안해. 하지만...아내 지긋지긋해요. 정말 지긋지긋해.우길 미안해, 여보. 그래도 그 친구가 고향 친군데 의리 하나는 믿을 수 있는 친구야. 꼭 갚는대.아내 우리 갚을 빛이 얼마나 많은데...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더 보태기만해요. 이렇게 살려 고 당신하고 결혼했는 줄 알아요?우길 (뺨을 때리며) 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 (후회하듯) 미, 미안해.아내 우리 이혼해요.우길 여보!아내 욱이는 제가 키울께요.우길 내가 잘못했어. 제발 가지마. 가지마.아내 하루종일 꾸중물통에 손 넣는거 지겨워요.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요. 저도 사람사는 것 같이 살아보고 싶다구요. 당신 만나 지금까지 살면서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제 대로 해본 적 한번도 없이 이제껏 살았어요. 아니, 그건 아무것도 아냐. 그런 건 아무 래도 좋아요. 제발 당신 뒤치다꺼리 그만 하게 해줘요. 부탁이야. 오히려 제가 (무릎 끊으며고는 상관없어요. 선천적인 거니까. 군대 가고 싶어도 못가요.복남 하이고, 평발이구만. 땡잡았어. 땡. 히히우길 다들 군대 가기 싫어 난리인데, 오히려 다행이지, 뭐. 나도 젊은 시절에 가기 싫어서 얼마나 가진 쇼를 했는지 몰라.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니었는데... 결국 방위로 빠졌지만 말야.태수 선택하는 것과 선택받지 못하는 건 엄연히 틀려요. 같은 결과라 해도...간...질이예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죽음밖에 없죠.복남 아! 미안하구먼.태수 (말 자르면서) 제일 싫은게 동정과 친절이예요.우길 그래서... 여기 온건가? 죽을라구?복남 그라믄 쓰나. 안되지. 안되고 말구. 비록 몸은 성치 않아도... 그, 거시기...태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어제까지는요.우길 헤어졌나 보군.태수 제가 부잣집 아들같아서 사겼는데... 엄마는 파출부, 아빠는 다리 병신. 그것도 모자라 서 하얀 거품 물며 쓰러지는 제가 혐오스럽데요. 이해해요. 이해는 하는데, 그래두...조명 어두워지면서 여자 등장.여자 (쌀쌀맞게) 나 얘기뱄어. 2개월이래. 이상해서 병원에 가봤는데...태수 정말? 그럼 우리 부모님께 인사드리구서 결혼하자. 우리 부모님도 좋아하실꺼야. 아니 지, 니네 집에 먼저 가서 허락을 받아야 겠지. 그게 도리같다. (설레이는 듯) 하하.여자 너 미쳤니? 지울꺼야.태수 왜, 나 졸업이니까 바로 직장 얻으면 우리 세 식구 먹고 살 수는 있을꺼야. 돈이야 내 가 열심히 하면...여자 너 정말 순진하다 못해 바보같다. 돈이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 모아지면 이 세상에 가 난한 사람없겠네. 미친자식. 꿈깨. 아무리 벗어날려고 발악을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게 가난이야.태수 혜수야, 왜, 왜그래... 너 답지 않게...여자 나다운게 뭔데. 아, 순진하고 깨끗한 척 얌전떠는 그런 여자. 그건 너에 대해 몰랐을 때지. 지금은 아냐.태수 나에 대해 뭘 알았는데...여자 몰라서 묻니? 끝내.태수 혜수야, 다시 한번 생각해. 나 널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결혼해서 우리 행복 하게 을 삼긴다.복남 (갑자기) 뭐 어때유, 좀참지. 죽기로 했던 사람들이 시방 이정도가 문제겠어유? ....우길 그렇네요.이때 무대 안쪽에서 안나 뛰어온다. 약간 헌 옷을 입고 있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신발은 신고 있지 않다.안나 사, 사, 사, 살려주세요.복남 무슨 일이래유?안나 저, 저, 저기서 이, 이상한 사람이 쪼, 쫓아와요.복남 이상한 사람유? 아무도 없는디?우길 아가씨가 고양이라두 봤나보네.태수 (멀리 내다보듯) 아무도 없는데.안나 저, 저, 저정, 마, 말이예요?복남 안심하세유. 근디 신발두 안신구... (발을 유심히 보며) 피가 나는디...우길 정말이네.복남 (발을 잡으려 하자) 빨리 치료해야 겠네.안나 무, 무, 무슨 짓이예요. 무, 무슨.(경계)복남 우린 착한 사람이어유. 얼굴을 봐유. 착한 사람이라구 써있잖아유.태수 범죄자라구 써있는데유. 특히 아저씨 얼굴은...복남 (눈을 치켜뜨고) ...우길 자, 자. 아가씨, 집이 어디예요? 우리가 데려다 줄께요.복남 시방 이 새벽에 정말 뭔 일나믄 우짤라구... 간뎅이두 크구먼, 참.안나 (경계하듯) ...태수 그냥 두고 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우릴 경계하는데...복남 저 자슥이 또 그러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구먼. 위험에 처해 있는 색씨를...우길 그건 그렇군.태수 (그럼 어떻게 해보라는 듯 제스쳐) ...안나 이, 이따 우, 우, 우리 아빠랑 어, 엄, 엄마가 데리러 올꺼예요.우길 그럼 아가씨 엄마, 아빠 올 때까지 기다려 줄께요.안나 (울 듯이) 저, 정, 정말 우, 우리 어, 엄마랑 아, 아빠가 데릴러 온다니까요.태수 겁먹었나봐요. 말도 온전치 못하고 ... 무, 무슨, 아! 저기 치마에 피가 얼룩져 있네요.어디 다쳤나.우길 정말 그러고 보니 저 아가씨 조금 이상하네.복남 그려? 색씨 어디 다쳤시유? (안나가 상처 입었는지 살펴보려고 다가가는데)안나 (비명) 아, 아, 악! (강물로 뛰어내리려 한다)복남, 우길, 태수 모두 놀라서 필사적으로 붙잡고 안나는 몸부림친다.안나 주, 주,
200110047 문예창작학과 B반 최규리제목: 실존, 그 우울의 깊이에 대해▲ 생애손창섭 (1922∼ ): 평양 출생. 일본 니혼 대학에서 수학. 1949년 단편 를 발표했고 1952년에 단 편 과 로 '문예'지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1955년 로 현대문학 신인 문학상 수상. 1959년 으로 제4회 동인 문학상 수상, 1959년 소설집 '낙서 후기' 발간, 1960년 자신의 생애를 담은 자전적 소설 을 발표한 이후부터 서서히 작품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1969년 장편소설 을 발표한 이후 뚜렷한 작품활동이 없었다. 그 후 1937년 일본으로 귀화했고, ,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을 일본에서 써서 연재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해방후의 혼란과 6·25라는 민족사의 비극 속에서 불구적인 육체와 비정상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등장 시켜 인간에 대한 부정과 야유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인간의 따스한 애정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다.▲ 작가와 작품세계손창섭 개인의 구체적 약력에 대해서는 거의 밝혀진 바 없다. 손창섭은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일체 대인관계를 끊다시피 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렇기에 단편적 사실의 나열만으로는 그의 내면이나 행적에 대해 세심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가 자신의 성장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바도 없기 때문에 손창섭의 성장기는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신의 희작』을 통해서 확인 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므로 작품 속에 투영된 그의 모습을 통해서 작가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작가의 삶이 작품 속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신의 희작』은 하나의 엄연한 작품이고 그래서 그것이 실제 사건의 문환적 환치가 아니라 허구적 서사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난점이다. 그러나 트릭일 수도 있겠지만 서술자가 작중 주요인물을 S - 구체적으로는 손창섭이라 명명하고 있고 작품의 현실적 계기들이 변형되어 『신의 희작』외의 작품들에 다양한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작품 속의 S의 내면 풍 있다는 점, 예컨대 “나의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작가의 정신적 수기요 도회 취미를 띤 자기고백의 과장된 기록”등으로 하여 그의 성장기 규명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신의 희작』은 하나의 허구적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자전적 구성물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손창섭 해석의 중요한 해석소로 기능한다고 하겠다.손창섭은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친할머니와 함께 창녀촌에서 자랐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그는 낯선 남자와 어머니의 성교장면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데 그것이 그렇게 심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어머니의 '콱 뒈져 버려라' 는 저주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충격은 그로 하여금 자살로 몰고가게 했다. 그러나 그 자살은 미수로 그쳤고 그러한 그에 대해 무서움을 느낀 그의 어머니는 '어떤 남자'와 같이 만주로 도피행을 감행하게 된다. 어머니를 찾아 단신 만주행을 떠난 그는 1년 가까이 각처를 전전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하며 고학으로 중학교에 다녔다. 이러한 유년기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돈의 질서에 의해 발생하는 물신화현상을 내면화하는 중요한 원체험을 형성케 했다고 보여진다. 창녀촌에서의 생활이란 돈에 의해 자신의 육체까지 내다 파는 비윤리적 생활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번번히 문제를 일으켜 퇴학이나 중퇴를 할 수 밖에 없어 중학교를 네 번이나 옮겨야 했다. 그는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여기저기서 싸움을 벌이는데 그 주요한 원인은 야뇨증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러한 야뇨증은 어머니의 낯선 남자와의 동침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와 분명히 연관된 것인데 그 사건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자율적인 의식구조를 혼란으로 이끈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 사건은 그가 충동과 불안으로 현실과 대면하게 된 최초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야뇨증이 야기한 심리적 현상은 수치심과 복수심이다. 그것이 그에게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안겨주게 되는데 별명이란 자신의 의지가 동반된 것이 아니라 타 그것을 받아들일 때는 사디즘적 가학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그는 야뇨증으로 두 번째 자살미수극을 벌이게 된다. 그것은 야뇨증이란 현실의 부정적 기표에서 그가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또 영어 시간에 영어 선생님이 life work라 하는 것을 굳이 work life라고 우겨 모욕을 당하고 영어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그의 딸을 강간하게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손창섭의 고착된 의식구조이다. 그는 하나의 기표에 고착되어 그 외의 현실적 연관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착성은 손창섭의 소설에서 '누워있다' 는 지배적 어휘로 나타난다. 이는 갇혀 지내고 누워지내는 것으로 조선에 대한 노골적인 배척에 대항하여 반항하나 그로 인해 경찰에서 곤욕을 치러 갇혀있게 되는 결과로 귀착된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자신을 동정하는 여자 미요꼬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 오인해 강한 수모를 당하게 되는 것은 상상계적 욕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느끼는 수모는 그의 현실에 대한 소외를 가중시킨다. 그는 또 군대에 나간 친구의 안부를 묻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갔다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앞으로 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충동을 느껴 친구의 여동생을 성폭행하게 되는데 이처럼 그에게는 현실에 대한 좌절이 성욕과 폭력으로 나타난다는 특성을 볼 수 있다. 그의 현실에 대한 소외의식은 그로 하여금 현실 속으로 강한 동화를 추동하게 하지만 그 동화는 항상 실패하게 되고 그 실패는 그에게 현실에 대해 더 적대적인 감정을 품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사랑의 결핍이 현실 속에서 대상을 찾게 하지만 그 대상과의 합일은 언제나 좌절로 끝나 현실 바깥에서의 이상적 질서를 찾게 되고 그것이 그의 작품에 과도하게 나타나는 유토피아식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지금까지 살펴본 손창섭의 개인적 체험 중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유년기의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S의 유년시절의 체험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와 낯선 남자와의 동침사건이다자와 어머니와의 웃음소리가 들려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S는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문을 흔들었으나 낯선 남자는 도망치듯 달아나고 어머니는 증오에 찬 눈으로 "캭 뒈져라, 뒈져, 이 망종아"하고 머리를 세차게 쥐어박는다. S는 이에 대해 "캭 뒈지고 싶도록 싫고 중대한 사건인 것만은 직감"으로 알게 된다. 이 사건과 더불어 S의 어린 시절의 체험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근친상간적인 부분이다. 자고 있는 S의 사타구니를 주무르는 손길에서 어이없게도 그 조그만 부분은 맹렬한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 반응에 놀란 어머니는 그를 밀어버리데 여기에서 그는 수치감을 느끼게 된다. 이 수치감은 "어머니의 동침사건과 결부되어 극히 희미하나마 일종의 까닭 모를 공모의식"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그 공모의식이란 자신 안에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혐오에 마지않는 멧돼지 같은 사내의 영상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이 수치감은 다시말해 자신과 어머니와의 붕괴를 의미하게 된다. 이 단계는 오디푸스 단계인데 S는 어머니가 욕망하는 사랑의 대상이며 어머니에게 결핍되어 있는 '남근'이라는 기표를 추종하려 한다. 이 시기를 무난히 넘기면 정상인으로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비사회적 상상계적 고착관계에 머물게 되고 자신이 동일시해야 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 사회화에 실패하게 된다.손창섭의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체험은 사회에서의 관계정립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아버지의 부재이며 아버지의 자리에 '멧돼지 같은 사내"가 차지하게 되어 그가 동일시 해야 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 계속 어머니라는 대상에 고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손창섭의 작품에 나타나는, 화자가 상상적 관계를 맺으려는 여성들과 결코 행복한 합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방해하는 지배적인 요소는 그의 야뇨증과 그로 인한 수치심과 복수심을 들 수 있다. 그의 야뇨증은 어린 시절에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된 것이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는 『신의 희작』에 나타난이 복수심으로 전환되어 단순한 아이들의 싸움이 아닌 소름끼치는 잔인한 격투를 벌이게 되며,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러한 소외체험이 신문 보급소 2층에서, 선배의 집에서, 지즈꼬와의 동침 중에도 이부자리에 일을 저지르고야 마는 그는 "숱한 사람 가운데서 유독 저만이 저주받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은 암담한 심정으로 타인과 벽을 쌓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싸움닭이요 배타적인 시선만을 받을 뿐이지만 근거 없는 우월감을 보상받으려는 복수심에는 의협과 명분이라는 근거가 있었다. 이것이 있어야만 자신을 소외시키는 현실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S가 어머니라는 대상으로 분리되어 새로운 대상으로 환유되어 갈 수밖에 없을 때, 그러나 자신의 야뇨증으로 현실 속의 대상을 추구하지 못했고 싸움닭이라는 비난속에서 그가 찾은 기표는 세속적인 것이 아닌 의협심과 명분이라는 기표였던 것이다. 곧 이 기표를 통해 그가 파악한 현실은 수난받는 민족과 그것을 억압하는 학교당국으로 나타나는데 학교당국은 일제의 경찰력과 맞물려 있어 억압하는 실체의 총체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그의 극한적인 궁핍체험으로 인해 보다 강화되는데 절대 빈곤의 체험은 사회의 억압구조와 '나'를 소외시키는 '남'의 허위의식으로 그것들 모두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란 현실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구체적이기도 하지만 보다 충동적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S는 응시의 존재가 아니라 시선의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시선으로만 현실을 바라볼 뿐 보여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극한적인 궁핍함은 해방된 조국이라는 이미지만을 갖고 출국한 후에 더욱 처절하게 나타나 있다. 그가 생애 처음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것도 이 당시의 절대적 궁핍의 현실이 낳은 구조적 범죄였던 것이다. 이러한 궁핍의 경험이 손창섭 소설의 물신화 현상에 대한 비판과 인간경시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손창섭으로 하여금 현실적 질서에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