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와 저항의 문화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저항의 현장들디지털을 매개로하는 저항은 아날로그 저항과 다른 모습인가?아니면, 기존 저항운동의 디지털 버전인가?인터넷생존게임 -관음증을 자극하는 디지털판옵티콘, 디지털 감시 사회의 모순훔쳐보기 쇼하나의 거대한 세트속에 모든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는 한 보험세일즈맨의 이야기.미국의 한 평화로운 섬 시헤이븐의 시민 트루먼 버뱅크는 간호사인 아내 메릴과 함께 지극히 무난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보험 세일즈맨. 소년 시절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은 경험으로 물을 두려워하게 된 트루먼은 본래 품었던 탐험가의 꿈을 접고 시헤이븐을 한번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한편 그는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은 조작”이라는 수수께끼의 말을 남기고 정신병을 이유로 피지섬으로 보내진 첫사랑의 여성에 대한 기억을 떨치지 못한다. 트루먼이 알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면, 자신이 태어난 순간 크리스토프라는 야심찬 TV쇼 제작자에게 입양돼 30년간 카메라가 곳곳에 잠복한 거대한 세트와 배우들에 둘러싸여 220개국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24시간 실황 TV쇼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라디오에 잡힌 ‘트루먼 쇼’ 연출진의 음성을 실마리로 진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트루먼은 가까스로 크리스토프의 카메라 시야에서 탈출해 배를 몰아 바다로 나서고, 폭풍우를 뚫고 마침내 세계의 끝, 아니 세트의 모서리에 다달아 생애 최초의 진정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판옵티콘(panopticon) : (한 곳에서 내부를 전부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교도소.미국 MTV ‘REAL WORLD’: 뉴욕의 평범한 시민 일곱 명을 모아놓고 그들의 생활을 생중계독일 RTL2TV ‘빅 브라더 쇼”: 참가자들과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속출시키는 방식미국 CBS TV ‘ 서바이버’ :무인도에서 생존을 위해 동료들과 시청자들의 투표로 살아남는 자가 상금을 차지한다.미국, 독일 합작기업 엑스트라 마일 ‘리얼리티 턴’ : 1명의 참가자가 24일동안 특수부대 출신의추적자를 피해 시내를 돌며 과제를 수행하여 상금을 탄다.영화 ‘다이하드’ :테러리스트 사이언에게 감시당하고 통제되어 사이언이 던지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뉴욕 전체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감시를 통해 공표를 야기시켜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순응하게 만든다.CCTV동거동락 생존 서바이벌 게임몰래카메라‘동의된 감시’와 ‘동의하지 않은 감시’가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교차되어 일어나고 있다.본질적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사회적 감시시스템에 대한 자발적 순응, 위와 같은 감시와 노출을 전제로 한 쇼들이 이벤트가 되 수 있다는 사실은 미디어 권력을 위험성을 경고한다. 영화 트르먼 쇼의 트루먼은 안락한 삶을 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위해 험난한 풍랑을 헤쳐가지만 우리는 디지털 판옵티콘에서 평온과 안락을 추구하지는 않은가?그들을 해커라 부르지 마라, 현실을 뒤흔드는 디지털 저항문화-안티사이트, 냅서트,GNU 그리고 카피레프트온라인시위를 언론과 정부는 사이버 상의 폭도, 해커로 규정하고 있다. 말이 좋아 온라인 시위지 해킹의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불법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시위는 분명 호기심과 자기 과시의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해킹과 달리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념성을 지닌 집단 행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가상연좌시위의 예더이상 온라인 시위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반항이 아니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지배하려는 자에 대한 네티즌들의 저항방법으로 자유와 질서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징표라 볼 수 있다.최근들어 안티사이트들이 점점 더 확산되어가는 추세이다. 예전의 권위와 권력에 맞서는 운동의 형태가 이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익명성을 기반으로 현실적 제약을 벗어나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실천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안티사이트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거시 권력과 자본에 이르기까지 비판과 거부로 저항하고 있다.연예인 안티사이트각종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안티사이트정치인 안티사이트소비자 운동형 안티사이트노동운동형 안티사이트정치운동형 안티사이트안티사이트가 익명성을 이용하여 욕설과 저질적 발언이 난무하고 욕설과 비속어가 상당부분을 차지하여 진정한 토론도 없고, 서로 물어뜯기 식의 이전 투구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안티’는 그저 삐딱하기만한 저항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담론의 형식, 다양한 대안 문화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 안티현상이 진정한 저항문화로 자리잡지 못한 것은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며 이러한 이유로 안티사이트 전체를 비판하기 보다 권위적 사회를 해체하고 모든 네티즌이 동등하게 참여하여 자신의 생각을 자류로벡 펼칠 수 있게 하는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안티사이트는 사이버스페이스상의 단순한 하위문화가 아니라 현실을 뒤흔하는 하나의 실천이다. 이제 우리는 화염병을 들고 돌덩이를 던지는 아날로그적 저항의 시대를 뒤로 하고,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서 논쟁과 풍자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저항을 시작하고 있다.정보의 공유가 더욱 쉽고 가속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냅스터의 대한 사건은 많은 여론을 조장하게 한다. 원래 정보란 공유할 수록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이러한 정보를 상품화하고 소유한다는 명목으로 냅스터는 저작권침해판결을 받았다. 폐쇄 경고가 나온 뒤 냅스터가 위기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주요 음반사들이 잇따라 회원제 유료 음악서비스를 발표하고 나섰다. 이들은 5년내 지금보다 열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온라인 음악시장을 놓고 이미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공짜로 음악을 듣는데 익숙해 있는 기존의 온라인 음악팬들이 과연 지갑을 선뜻 열 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아울러 일부 대형 음반회사들이 호언하는 대로 과연 한달에 5달러 정도의 이용료만 내면 거의 제한없이 모든 음악을 즐길 수 있을 지도 확실치 않으며, 음반사와 독립적 온라인 서비스사간에 라이선스 계약조건을 둘러싼 마찰이 일 수도 있다. 정작 문제는 냅스터가 폐쇄된다 해도 과연 냅스터의 기발한 파일 공유서비스(P2P)가 사라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라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또한 파일을 주고 받을 때 중앙서버에 흔적이 남는 냅스터와는 달리 요즘 새로 등장한 그누텔라.아이메시.프리넷 등의 P2P 사이트에는 음악파일을 교환해도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이들을 추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이러한 파일 공유 시스템은 모든 저작물을 대상으로 점차 그 영역이 확장되는 추세이다. 따라서 저작권 문제를 디지털 정보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점점 무의미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Emily Dickinson의 시 감상문I heard a Fly buzz ─ when I died ─The Stillness in the RoomWas like the Stillness in the Air ─Between the Heard of Storm ─The eyes around ─ had wrung them dry ─And breaths were gathering firmFor that last Onset ─when the KingBe witnessed ─ in the Room ─I willed my Keepsakes ─ Signed awayWhat portion of me beAssignable ─ and then it wasThere interposed a Fly ─With Blue ─ uncertain stumbling Buzz ─Between the light ─ and me ─And then the Windows failed ─ and thenI could not see to see ─내가 죽었을 때─ 파리가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방 안의 고요가폭풍이 굽이치는 사이대기의 정적과 같았다.둘러선 눈에 눈물이 말라붙고숨소리가 한데 모아졌다.왕이 방 안에나타나실─ 마지막 순간을 위해나는 기념품을 유언하고양도할 수 있는내 물건에 서명을 하자─ 그 때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우울하고 비틀거리는 어렴풋한 소리내며불빛과 나 사이로그 후 창문이 사라지고─ 다음에는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나는 개인적으로 Emily Dickinson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깥의 외부의 모든 것과 차단하고 흰 옷을 입고 유령처럼 사는 에밀리 디킨슨 같은 사람은 조용하고 움울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에밀리 디킨슨과 같은 사람과 함께 지낸다고 생각만 해도 그 암울함과 지루함의 공기에 숨이 막혀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들 –특히 죽음에 관한 시-는 내가 사춘기적에 상상하고 느꼈던 생각들과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였다. 죽음에 관한 그녀의 관조적이면서도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순간, 삶과 시간에 대한 관찰 등은 나도 한 번쯤 고민하고 ‘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에밀리 디킨스의 시를 쓰는 기법 중에서 ‘─’를 사용하여 문장을 생략하거나 여운을 주는 효과를 내는 것은 내가 편지를 쓰거나 일기를 쓸 때 말줄임표 ‘…’을 쓰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나에게 주는 느김이 어쩌면 더 친숙하고 어쩌면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물론 전적으로 내 관점에서 이해한 것이지만 말이다.)그 중에서도 수업 시간에 배운 ‘when I died-‘ 를 읽었을 때는 그 죽기 직전의 순간과 딱 죽었을 때 그 찰나의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으로 그려져 마음속에 깊이 남게 되었다. 그 시에서는 먼저 내가 죽었을 때 방 안에 파리의 윙윙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 때 파리의 등장은 책에서나 수업시간에 배웠을 때는 파리는 하찮고 초라한 미물로써 죽음으로 모든 감각의 기능이 정지되는 인간의 상황과 정적의 순간에 생명력을 과시하듯 나타난 파리의 등장은 매우 대조적인 효과를 전달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 세상 삶을 종결한 후 다음 세상을 기다리는 임종의 순간은 내세에 대한 기대감과 현세에 대한 미련으로 복합되어 매우 절박하고 초초한 시기인데 그 때에 나타난 파리는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이 갖는 내세에 대한 기대감을 하찮은 것으로 조롱하는 듯 보인다고 하였다.그러나 내게 가장 먼저 연상되는 파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시체를 방치해 두면 그 곳에 떼지어 모여서 들끓게 되는 존재다. 물론 내가 죽을 때 나의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 두지는 않을 테지만 여기서 파리의 등장은 나의 죽음을 알고 내 죽음의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이다. 파리는 나를 이승에서의 삶에서 저승에서의 삶으로 데려다 주는 혹은 암시해 주는 죽음의 사자(使者)일지도 모른다. 내게서 풍겨져 나오는 죽음의 냄새를 감지하고 나의 영혼을 저승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파리의 등장은 죽음과는 전혀 생소한 대조적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누군가가 죽었을 때 그 방안에의 침묵, 고요, 조용함은 아마 사람의 임종을 지켜보았던 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안의 정적이 폭풍, 아니면 거대한 파도의 굽이치는 그 사이- 한 번의 폭풍이 지나가고 거대한 폭풍이 하늘 꼭대기에서부터 어마어마한 크기로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을 휩싸여 삼켜버릴 것 같이 다가오는 그 사이에 느껴지는 공중에서의 정적은 그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긴장감과 공포감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눈물을 너무나도 많이 흘려서 더 이상 눈에서 눈물이 말라 건조해지고 나의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죽음의 왕이 방 안으로 보여지는 죽음의 순간, 그 last Onset을 위해서 숨소리가 딱 멈추었을 때. 나는 유품들을 남길 것은 남기고 지정하여 유언을 했을 때 다시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어온다. 나는 누워있고 창문 밖의 푸른 하늘 사이로 파리 한마리가 보이는 것이다. 바로 죽음 직전의 순간, 파리의 그 우울하고 비틀거리는 어렴풋한 윙윙 거리는 소리는 시체, 죽음의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불빛과 나 사이로 그리고 불빛과 하늘 사이로 그 불확실한 더듬거리는 듯한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 다음에 먼저 창문이 사라지고… 빛이 꺼져버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보았던 것도 보려고 했던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을 어렸을 적에 나는 자주 상상해 보았다. 내가 만약 나의 육체가 죽게 되는 순간, 그 순간에는 어떻게 될까? 육체는 죽었지만 나의 정신은 살아있는…그런 순간을 처음 접하게 될 때는 가장 먼저 시각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마치 연극이 끝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갑자기 탁 꺼지고 사방이 온통 까맣게 되겠지. 그리고 청각이 없어지고 후각이 없어지고 모든 감각이 사라지게 되고… 마침내 육체와 분리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내가 볼 수 있던 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온통 주변이 깜깜하게 되는 순간에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시를 다 읽고 나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조금 공포스럽기도 했다.이 시가 나에게 무슨 교훈을 주거나 감동을 준 것은 아니였다. 그렇지만 이 시는 나에게 죽는 순간의 그 장면을 인상깊게 남겨주었기 때문에 이 시에 대한 내 느낌도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에밀리 디킨슨도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 보면서 이 시를 썼을 때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현대 시를 읽고 감상문 쓰기Emily Dickinson 의 ‘when I died ─’를 읽고학과:문헌정보학과학번:1999310510이름:김민영교수님:안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