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말다듬기 사업정경학부 2001150090유지은언어관▶ 일반적으로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고의 바탕이며 인품을 가늠하는 척도로 보는데 반해 북한은 언어를 경제와 문화,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힘있는 무기 로 보는 도구적 언어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언어정책의 방향과 민족어 교육에 있어서도 사회의 전체적 맥락과 일관되게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적과 맞물려 통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시작▶ 1946년에는 한글 전용 정책의 일환으로 신문이나 잡지 등 모든 매체에서 모든 한자를 배격하고 순 한글만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한자나 외래어 등의 사대주의적 언어 요소를 배격하게 되었다. 때문에 한자에 바탕을 둔 한자어는 이해를 돕기 위해 고유어로 바꿀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소위 말다듬기 사업인 것이다. 그리하여 언어의 민족적 특성을 살리고, 현대의 요구에 맞게 하며, 외래적 요소를 배격하고 어휘체계를 고유어체계로 바로잡는 방향으로 어휘정리 작업을 하게 된다.{과정▶ 흔히 문화어 운동으로 일컬어지는 말다듬기 사업은 언어학자들에 대한 김일성의 제2차 교시(1966)가 있었던 60년대 중반부터 북한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앞장선 기관은 내각 직속의 국어사정위원회와 사회과학원 어학원 산하 18개 전문용어 분과위원회였다. 이 기관들은 자기들 내부에서 가능한 것은 내부적으로 결정하여 다듬은 말을 정하였으나, 쉽게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로동신문 민주조선 , 그리고 언어생활 계몽지(啓蒙誌) 계간 문화어 학습지 를 통하여 전국적으로 의견을 수렴하였다. 이를 말다듬기 지상토론이라고 하는데 강원도에서 지상 토론에 참여한 한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에 대한 의견은 , 과 같이 어떤 전문기술지식을 알아보기 편리하 도록 간단히 묶은 책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라고 고치는 것이 좋겠다 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원산시 리팔암)결과▶ 이렇게 전국적으로 펼쳐진 말다듬기 사업의 결과는 『현대조선말사전』(1968) 『조선문화어사전』(1973) 『현대조선말사전』(제2판 1981) 등 국어사전으로 정리되었으며 또 이론적으로는 『조선어어휘론연구』(1980. 최완호 외) 『우리나라에서의 어휘정리』(1986. 박상훈 외) 등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말다듬기의 결과는 어휘집으로 묶여진 것을 살펴보면 『다듬은 말』(1973. 표준할 초고) 『다듬은 말 묶음』(1977) 『다듬은 말 묶음』(1978) 『다듬은 말』(1982. 재검토한 용어) 등의 첨삭을 거쳤는데 이의 결정판은 『다듬은 말』(1986)이다. 이의 머리말에는 1973년의 다듬은 말 이후 1982년까지의 다듬은 말은 다 리용하지 말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1986년의 다듬은 말은 총 406쪽으로 과학, 백과사전출판사에서 간행하였는데 여기에는 1964년과 1966년의 교시 이후 다듬은 5만개의 단어들 가운데 모두 버리고 엄선된 2만 5천 단어가 들어있다. 그런데 6년 뒤인 1992년에 북한에서 조선말대사전이 발간되었다. 다듬은 말(1986)에 들어있는 말 가운데 언중이 따르지 않는 많은 수의 말이 조선말대사전에서 본래말로 환원되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다듬은 말을 강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언중의 언어생활도 고려하며 언어정책을 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예는 다음과 같다.(본래말) (문화어)만숙 ← 늦익기만곡부 ← 굽은곳모유 ← 어머니젖무기호흡 ← 산소 없는 숨쉬기의의▶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한자말과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노력이나 방언을 연구하여 좋은 우리말을 지켜나가려는 시도와 고유어를 적극 찾아 쓰고 고장의 이름도 일제 강점기에 많이 변화되었던 것을 다시 되찾으려는 움직임 등이 남한 언어학자들 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계획성 있게 일찍이 진행되어 나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말 다듬는 사업의 대상의 선택에 있어서 다분히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그 기제로써 작용하였고 이러한 취지에서 북한의 국어순화운동이 사회주의의 문화적 혁명 작업이며, 국가의 중책 사업으로 중점을 두어 발전 추진하게 되었지만 500여 년 동안 홀대와 천시를 받던 한글을 민족어로 발전시키고 여기서 강한 민족적 자긍심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와 우리말을 지키고 다듬어 가려는 노력만은 분명 높이 사야 할 것이다.남한의 언어정책▶북한의 말다듬기 사업과 대별되는 남한의 언어정책은 국어순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먼저 국어 속에 침투된 일본어의 잔재를 대상으로 하였다. 문교부(군정청)는 국어정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운동을 추진하였는데, 그 결과는『우리말 도로 찾기』(1948)로 나타났다. 이 책자는 그 당시 우리말 속에 자주 쓰인 일본어 단어들에 대신할 우리말 단어를 제시했는데, 우동, 스시, 벤또에 대하여 가락국수, 초밥, 도시락 등을 쓸 것을 처음으로 권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위에 든 「가락국수」나 「초밥」이 오늘날 뿌리를 내린 사실만 보아도, 이 운동이 조직적으로 꾸준히 추진되었더라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운동은 민족정기를 세우는 매우 중요한 사명을 띤 것이었는데, 좀더 조직적이고 강력하게 추진되지 못한 것이 못내 유감스런 일이다.광복 뒤에 일본어추방운동이 착실하게 진행되지 못한 원인으로는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으나 문교부가 이 운동보다 한글전용 쪽에 중점을 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것은 특히 북한의 말다듬기 사업과 유사한 형태로서 글을 한글로만 쓰도록 하는데 그치지 않고 순수한 우리말로 신어(新語)를 만들어 한자어를 대신하자는 것으로 확대된 형태의 운동이었다. 1962년 문교부 안에 한글전용특별심의회가 구성되고 거기서 1만을 넘는 한자어 및 구미외래어를 심의하여 이들에 대신할 신어를 만들어 공표한 일이 있었다. 이 시안(試案)이 그때 신문에 보도되었는데 「공처가(恐妻家)」를 「아내 무섬장이」,「교포(僑胞)」를 「나그네 동포」, 「수입고(輸入高)」를 「들여옴 돈머리」, 「로맨스 그레이」를 「늘그막 멋장이」로 고치자는 것과 같은 예는 심심찮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서투른 신어들은 도리어 큰 저항감을 느끼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