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극연기를 전공하고 있지만 영화와 뮤지컬도 좋아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영화에서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표현상의 특성과 한계 때문에 연극이나 뮤지컬보다는 전달력이 약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에 비해 연극은 바로 눈앞에서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현실감 있고 생동감 있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 느낌과 감동이 배가 되는 또 다른 짜릿함을 맛볼 수가 있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로 그냥 소리로만 듣는 음악과 직접 연주회장에서 눈과 귀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연주회는 음악 뿐 아니라 연주자의 표정 하나하나 까지 음악과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심금을 울린다'라는 표현을 왠지 알 것 같다.이번에 좋은 기회로 초대권을 얻어 관람하게 된 "테러리스트 햄릿"이라는 작품은 꼭 보고 싶었던 연극 중의 하나였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총 3시간에 걸쳐서 공연이 되었는데, 항상 대학로 소극장에서 보던 연극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껏 1시간 반 넘게 공연하는 연극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3시간이 굉장히 길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연극을 보았을 때는 연극에 너무 집중해서 인지 3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그 박진감과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해서 조금 일찍 입장해서 무대 곳곳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수업 시간에 연극의 무대에 대해서 배울 때 T자형 무대(또는 돌출 무대)라고 알고 있던 무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항상 일자로 정면에서 보이는 연극을 보다가 이런 무대를 보니 너무나도 새로웠고,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워서 많이 놀라웠다. 이러한 티자형 무대는 콘서트나 패션쇼 같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무대로 무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많아서 객석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연극이 시작되고 암전이 되었다가 드라이아이스가 깔리면서 연극이 시작되었는데, 오른쪽에 스크린이 하나 있어서 외국인들을 위해서 영어로 자막이 나오는 것이 유용하게 만들어 논 것 같았다.재미있던 것은, 연극을 보는 중간에 객석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왔다갔다 거리는 모습이 연출되었고 내가 앉은 자리가 무대 위쪽이었는데 그쪽 주변으로 누군가가 조용히 나타나서 저 사람은 왜 저기 있지? 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배우들이었다. 티자형 무대는 무대가 돌출되어 있어서 배우의 등장과 퇴장이 부자연스럽다고 수업 시간에 배웠었는데 정말이지 객석 한가운데로 갑자기 등장하는가 하면 무대 2층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기도 하면서 관객들이 등장과 퇴장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게 조금은 단점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 앉았던 나는 종종 배우들의 뒷모습을 보게됐었는데 그것은 정말 안좋았던 것 같다. 연극 중간에 새로운 왕 '클로디어스'의 대관식을 축하하는 파티장면이 연출되었는데 마치 관객들이 파티에 온 것처럼 포도쥬스와 오렌지쥬스를 작은 잔에 담아 나누어 주면서 함께 축배를 들 것을 권유하는데 연극이 관객과의 하나됨을 느꼈던 부분이었다. 나도 무대 위에 앉아있어서 포도쥬스를 한잔 받아서 마셨다.이 햄릿이라는 작품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나는 연극의 내용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연극을 관람하였다. 어떤 연극이든 배우는 정말 혼신을 다해 연기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연극의 특징은 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무대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가지 도구가 많이 이용되어서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배우들이 서로 몸을 부딪쳐 가며 싸우는 장면과 따귀를 때리는 장면 등을 정말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아프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기를 하였다. 그래서 인지 더 연기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 햄릿이 무대 중앙에 있는 어떤 곳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보는 나도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무대가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서 그만큼 무대 활용도가 굉장히 높았던 것 같다.처음에 공연을 보기 전에 햄릿이라는 제목을 보고 소설속에서 읽었던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주인공 햄릿이 등장하자마자 약간은 놀랬던 점이 주인공의 옷차림은 그 시대의 기사의 옷차림이 아니라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검이 아니라 권총이었다. 다시 말해서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그대로 만든 게 아니라 현대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켜서 우리 입맛에 맞게 분위기를 업그레이드 시켜서 만든 것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이 작품 제목인 테러리스트 햄릿이라는 말처럼 햄릿이 아버지의 원혼을 보고 삼촌인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마지막 장면 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에 햄릿은 연극 장면속에 또 연극 무대를 만들어 궁에 초대한 어릿광대들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묘사하는 모습을 지금의 왕과 왕비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 점점 더 갈등은 고조되어 간다. 이 작품이 현대에 맞추어 재탄생했다는 점이 가장 잘 나타났던 부분은 이렇게 어릿광대들의 공연중에 왕과 왕비의 모습이 어떨지 햄릿의 오른팔인 호레이쇼란 사람이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여 동영상까지 찍는 장면이었다. 많은 웃음과 재미를 유발했던 장면이기도 했다. 이제 관객의 입장에서 마지막 장면은 비극으로 다가올 것을 예상하면서 기대와 떨림으로 장면을 감상하였다. 검으로 대결을 하다가 검 끝에 독약 때문에 죽는 장면, 그리고 독이 든 잔을 마시고 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왕비,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햄릿이 왕에게 독이 든 잔을 마시게 하여 그토록 바라던 복수를 하게 된다. 이 장면은 정말로 배우들의 몸을 아끼지 않은 열연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이렇게 모두 여섯 명이 죽음을 당하고 무대는 시체로 가득한 모습이 정말 오싹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공 햄릿이 죽고 그는 죽음을 통해 비로소 마음의 번뇌에서 해방이 된다. 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햄릿의 친구이자 믿을을 주었던 호레이쇼로 그가 이야기를 전한다. 호레이쇼는 덴마크 궁전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을 후대에게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침묵뿐이다."라는 유명한 대사로 공연은 끝을 맺는다. 이밖에도 주인공외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모든 배우들 각자의 캐릭터가 정말 잘 살아도록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인물 하나하나가 정말 극에 있어서 빠지면 안되는 최고의 조합을 이루어 낸 것 같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자 마자 박수갈채가 이어졌는데 배우들이 한명한명 인사를 하는 내내 박수소리는 식을 줄을 몰랐다.공연을 보는 3시간 내내 정말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은 관중을 압도하였고 어떻게 저렇게 대사 하나하나까지 실수 없이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나 하는 점과 공연에 이용된 적절한 소도구들과 무대위에서 펼쳐졌던 음향과 조명은 배우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무대 연출과 기법이 쓰였다는 평을 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극의 전개를 좀 더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여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연극에 최대한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였던 것 같다. 왕이 등장할 때마다 테마 음악처럼 등장하는 전자음소리, 각 장면의 분위기를 유도하는 음악, 유령이 등장할 때 오싹함을 더해주는 조명등은 미처 느끼지 못했던 극의 요소들마다 제 역할이 분명히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무대 공간을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무대 2층까지 이용해서 관객의 머리위쪽에서 관객 앞의 무대 까지 연결되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배우의 모습은 마치 서커스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명을 타고 위로 올라가 거꾸로 매달려있는 배우의 모습은 이번 공연에서 빠뜨릴 수 없는 참으로 인상적인 중요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특히, 무덤지기가 무대 아래면을 묜대를 '파내며' 위로 올라오는 모습은 무대 바닥 세트까지도 잘 활용하여 신기 위로 을 많이 보여며' 다. 수업 시간에 배운바로는 무대 장치들이 너무 현란할 경우 배우의 연기가 뭍히는 단점이 있을 수도 있으며 무대 여기저기를 이용하는게 관객의 시선을 흐트려 놀 수 있는 단점이 있다고 했는데 무대 장치의 화려함만큼 배우의 연기는 그 배로 더 열정적이었고, 관객의 시선이 2층의 사다리로 갔다가 무대 중앙으로 갔다가 위것은 조금은 단점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는 있지e거꾸히느 모로 인해서 극 자체고 질루하거나 따분한 느낌이 들지 않듯한슈각적으로 게 관것' 다보여며'객의 더 장점이 크다고 느꼈다. 공연을 위로 많이 고민한 장준비한 연출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지e거전체적으로 극은 '원전'에서 크듯한벗어나지 않대 장치연출가고 '원전'에 충실 위것은 객째이 당연e위것이고 이것은 이런 연출가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 장치제대로 말하면 이 작품은 고전극을 '현대화'로 만든 것이띵고 하는 것 보다는 요리로 치자면 옛거전통의 맛을 현대의 입맛에 맞게 새로운 조미료를 사용하여 한국인수업 잘 스며들쟈치의만들 다고 하는 업 가장 좋은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든 장치언제나 새롭고 다양e위것을 추구하는 것은 연극이띵는 장르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치연출가고 원래 의도e위'서로 다른 세계'가힝뚱어뢍함만큼극의 보편적인 모습은 '전통'에서 크듯한벗어나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즉, 고전극이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가씸모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중심엔, '현대화', '한국화'가 우선이 아닌, '원전에 충실 위연출가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띵고 할 수 있겠다. 또한위연출가의 이러 위노력에 더불대 가힝 킹킹하 연기가 뒷받침되대 관객들로 하여금 큰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며 연극이띵는 장르의 매력을 물씬 풍기게 해며'객 '연극이란 이런 것이 '가힝 중껏다보여준 작품이띵는 생각이 들었다. 려함만원래 연극을 좋아했지e거원래 연극에 별로 관 올라없던 사람들이 관람하더띵도 가의 공연으로 연극에 푹 빠져서 연극 매니아가 될 지도 모르겠다.
1. 유진 오닐(Eugene O'Neill)유진 오닐은 1888년 10월 16일 뉴욕시의 배럿 호텔에서 제임스 오닐(James O'Neill)과 메어리 엘렌 퀸란(Mary Ellen Quinlan)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오닐가는 아일랜드 이민 가정이었다. 오닐의 할아버지 에드워드 오닐은 아들 제임스가 4살 되던 1850년에 고향을 떠나 뉴욕주의 버팔로에 도착한다. 무일푼으로 낯선 땅에 발을 디딘 할아버지는 60여세의 나이로 막노동을 하여 대가족을 부양하는 힘겨운 생활을 하였다. 이민 온 지 5년이 되던 어느 날 그는 식구들을 버리고 홀로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얼마 후 사망한다. 제임스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그 후 가족이 겪게되는 궁핍 때문에 더욱 심화되어 그의 일생을 좌우할 정도로 가슴속에 강한 흔적을 남긴다. 우연한 기회에 연극의 엑스트라 역을 맡게 되었다. 그 뒤, 1872년경 제임스는 당대 미국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는 에드윈 부스(Edwin Booth)와 공연하며 셰익스피어의 비극 에서 이아고와 오델로 역을 교대로 맡기도 했다.제임스 오닐은 1883년 뉴욕에서 알렉산더 뒤마의 의 주역을 맡아 공연한다. 제임스는 후에 이 연극의 공연권을 매입하여 순회공연에 나서는데 이 공연은 19세기에 가장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되며 제임스는 결과적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으게 된다. 어린 시절의 가난의 교훈이 너무 큰 탓으로 돈을 모으는 데 집중하는 동안 제임스는 어느새 안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고 보다 나은 배우로 발전할 기회를 놓쳐버린다.오닐의 어머니 엘라 퀸란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훌륭한 교육을 받은 처녀였다. 제임스 오닐은 돈을 잘 버는 미남 배우로 엘라의 배필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인정되었다. 그러나 엘라의 결혼생활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연극배우 남편은 다른 여성들과의 염문으로 그녀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연극이 아닌 현실의 문제가 많은 상처를 주었다. 엘라는 배우와 결혼한 것에 대해 늘 죄의식을 느끼고 살았다. 자신의 일생을 신에게 바치기를 꿈꾸며 살아온 그녀로서 배우들의 불건전하고 부도덕한 생활방식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둘째 아들 에드먼드가 부모가 공연여행 중이었을 때 사망하자 엘라는 서서히 현실도피 증세를 보이며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남편 제임스는 공연수입으로 부동산에 투자하였으나 정작 그들에게 살림집은 없었고 대부분의 생활을 뉴욕의 호텔에서 하였다. 그들이 살던 집이라곤 코네티컷주의 뉴 런던에 있는 여름별장이 전부였다. 의 무대는 바로 이 별장이다. 1888년 엘라는 막내인 유진을 낳았는데 난산의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처치하기 위해 의사는 그녀에게 아편을 놓아주었고 그 결과 엘라는 차츰 아편 중독자가 되었다.작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어머니의 아편중독은 온 가족에게 적지 않은 걱정거리였다. 큰아들 제임스는 어머니의 약물중독을 견디지 못해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한다. 막내인 오닐은 15세 때 이 사실을 알게되고 그것이 자신의 출생 때문이라는 죄의식으로 끝없는 번민을 겪게 된다.2. 작품 분석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족의 위치는 과연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전통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대가족,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다함께 시간을 보내며 밥을 먹고,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더 이상 일상적인 것이 아닌 특별함이 되어가고 있다. 즉, 가족의 단합이 더 이상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일 순위가 아니라, 각자의 개인적 삶의 비중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현대사회 속에서의 가족의 의미와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것은 유진오닐(Eugene O'Nell)의「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난 이후였다.「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4막 5장, 1941년 작, 1956년 초연). 1912년 8월 어느 날 아침 8시 30분부터 타이런 가족의 안개 자욱한 여름 별장에서 약 18시간에 걸쳐 4인의 가족이 각기 자기의 실패와 죄의식과 대결하다가 욕구불만의 무익한 결과를 낳지만, 결국 사랑과 증오라는 상반되는 감정의 병존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동정과 이해에 도달하는 하루의 고된 과정에 삼일 치의 법칙을 엄격하게 적용시킨 자전적인 작품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온갖 고생을 했기 때문에 푼돈 한푼까지도 악착스레 아끼고자 버둥대는 구두쇠가 되어버린 은퇴한 배운 제임스(James)가 긴장으로 가득 찬 집안을 지배하고 있다. 허약하고 상냥한 아내 메어리(Mary), 알코올중독에다 방탕아여서 언제나 아버지의 화를 돋구는 큰아들 제이미(Jamie), 몇 년 동안 방랑과 무절제한 생활 끝에 폐결핵에 걸린 작은아들 에드먼드(Edmund) 및 하녀 캐슬린(Calthleen)이 등장인물 전부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한 가정에서 단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이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오랜 가난으로 인해 인색해진 아버지(제임스 티론),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시술로 마약에 빠져버린 어머니(메어리), 생에 대한 좌절로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린 큰아들(제이미), 니체와 보들레르에 심취한 폐결핵 환자인 둘째아들(에드먼드), 이들은 서로를 위해주고 걱정해주는 척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결핍을 합리화하기 위해 서로를 욕하고 상처주고 서로를 파괴해간다.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주제를 더욱더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들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극중의 술은 티론 가족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선적 가족관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형 제이미와 동생 에드먼드가 아버지의 눈을 위해 술을 마시고는 눈속임을 위해 술에 물을 타는 장면이나,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사이 메어리와 하녀가 술을 즐기고 역시나 티론을 속이기 위해 위스키에 물을 붓는 장면이 있었다. 물탄 술이라는 것이 금방 탄로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위는 결국에 티론 가족의 애증적 관계, 즉 사랑하지만 결국에 그들이 내뱉는 말이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상징한다. 둘째, 뿌연 안개는 현대인들의 은둔심리를 대변하는 듯 했다. 극중에서 메어리는 안개 속에서는 편안하고 안정된다는 말을 했다. 현재 마약에 중독되어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삶속에서, 가족들로부터는 의심을 눈길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개라는 존재는 메어리가 선택한 은둔처 같은 곳이다. 아버지와 큰 아들이 술을 통해 현재 삶의 고통을 잊고 자신을 감추고 싶었던 것처럼, 어머니와 작은아들은 뿌연 안개 속에서 그들의 오점을 숨기려고 했다.
내가 처음 소리와 리듬이라는 과목을 접했을 때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소리란 것은 필요하단 것을 알았지만 리듬을 왜 배우는지 잘 이해가 안됐고 필요성을 몰랐었다. 하지만 소리와 리듬에 대해서 배우면서 배우에게 리듬이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일단 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목소리 또는 물체의 진동에 의하여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을 뜻하고, 리듬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되는 움직임을 이르는 말, 또는 음의 장단이나 강약 따위가 반복될 때의 그 규칙적인 음의 흐름, 선, 형, 색의 비슷한 반복을 통하여 이루는 통일된 율동감, 즉 농담, 명암 따위가 규칙적으로 반복되거나 배열된 상태를 가리킨다. 라는 뜻을 의미한다.소리 안에 리듬이 있고, 움직임 안에 리듬이 있다. 그래서 나는 리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먼저 움직임의 리듬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신체적 행동 속에 나타나는 외적인 리듬을 보기 쉽지만 내적 경험 속에서의 눈에 보이지 않는 리듬은 단지 감각적인 지각 대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리듬들도 결국 눈에 보이게 될 것이다. 연기하는 데 있어서 항상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마디 안에서 수없이 많은 리듬의 조합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과 말은 시간에 의해서 진행되는데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을 여러 가지 움직임과 포즈로 채운다는 것을 말하고, 어떤 말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을 다양한 길이의 소리들과 그 소리들 사이에 나타나는 포즈로 채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를 구성하는 아주 간단한 조합의 예를 들어 1/4 더하기 2/8 더하기 4/16 더하기 8/32는 4/4라는 시간의 한마디를 만들고, 4/16은 더하기 1/4 더하기 2/8은 3/4이라는 시간의 한 마디를 만든다. 이 리듬은 한마디가 가지고 있는 시간을 다양한 부분으로 분할하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길이의 집단이 모여서 이뤄진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무대에서는 행동과 말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니까 배우들은 그 리듬의 혼돈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리듬을 찾아내고, 재편성해서 자기가 연기하는 역의 움직임, 말, 정서적 경험이 자신만의 독립적인 속도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무대 위에는 빠름과 늦음이 뒤섞여 있는 혼란이 항상 있게 마련인데, 배우들은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여야 한다. 리듬을 제대로 사용하면 올바른 감정을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잘못된 감정이 생겨나게 되고, 적절한 리듬을 찾을 때까지는 그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리듬은 정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리듬은 정서 기억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기억과 이미지에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따라서 리듬이 단순히 박자와 속도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리듬은 어떤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주어진 상황과 연관되어서도 필요하고, 리듬 속에 있는 내적 본질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군대의 행진, 산책, 장례 행렬이 모두 같은 리듬으로 처리될 수 있지만, 그것들 사이에는 내용이나 분위기 등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개개의 특성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리듬은 외적으로는 사람의 기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내적으로는 사람의 정서를 풍부하게 해준다. 리듬은 이런 모습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고, 그래야만 창조적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말하거나, 무슨 일을 하거나 간에 우리는 리듬속에 있다. 물론 우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누워 있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기다리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에도 리듬이 있다. 그런 모든 것들은 우리의 삶의 표현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있는 곳에 행동이 있고, 행동이 있는 곳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이 있는 곳에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배우들이 행동이나 대사를 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강세를 받아야 할 음절이나 움직임이 내적인 리듬과 일치하는 순간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만약 배우가 무대에서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제대로 알고 있다면 올바른 리듬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올바른 리듬은 중요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적절히 배분하고 템포와 리듬이 일치하는 순간을 찾아준다. 만약 배우들이 그런 일을 직관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면 리듬을 기술적인 방법으로 찾아내야 한다. 밖에서부터 안으로 접근하는 작업 방법으로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리듬을 스스로 찾아야한다. 물론 리듬을 찾으려면 사람의 정서를 자극하는 내적인 이미지, 상상력을 통한 창조, 어떤 상황의 창출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렇게 움직임의 리듬은 직관적으로, 직접적으로, 즉각적으로 우리를 적절한 감정으로 유도해주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창조 능력을 고양시킨다고 할 수 있다.우리는 리듬의 미묘한 부분을 사용하다보면 무대에서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리듬과 자신의 리듬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 서로 다른 리듬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상충하는 두 개의 리듬이 행동에 조그만 변화를 줌으로써 잘 드러나기도 한다. 서로 상충하는 리듬은 우리가 구축하는 인물에 힘과 현실감을 실어주고, 그 다음에 우리는 작품 전체와 행동의 관통선 속에 있는 리듬, 리듬의 미묘한 변화, 그리고 리듬이 잘 살았을 때 나타나는 하나의 통일성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 연극계 최대 걸작의 하나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더 밀러의 은 현대 산업 사회를 배경으로 한 사회극이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사회극(social drama)이란 단순히 사회를 고발하거나 규탄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 문제점이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그 바깥의 세계에도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인간과 사회적인 인간 둘 다를 다루려면 불가피하게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세일즈맨의 죽음에 등장하는 윌리는 자신의 꿈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스스로를 전혀 다스리지 못하게 되어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가 한 덩어리가 된 가운데 자기의 참모습을 모르고 꿈속에서 죽어간다. 그는 산업 사회에서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을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윌리 로먼은 예순 세 살 먹은 늙은 세일즈맨이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또한 부지런히 일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세일즈맨의 성공자로서 자기의 비즈니스를 가지게 되고, 전화 한 통화만 걸면 전국적으로 거래가 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미국, 만민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성공을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이었다. 그에게는 가정적인 착한 아내 린다가 있었다. 월부로 집 한 채도 샀다. 십 여 년 지나면 그것도 자기 소유가 될 것이다. 그 위에 그는 장래의 희망을 기탁할 수 있는 두 아들이 있었다. 가정은 항시 밝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로먼의 이런 꿈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희미해져 갔다. 세일즈맨으로서의 수입은 줄어들 뿐이었고, 그 위에 삼십여 년 근무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희망을 걸고 있던 아들들도 빗나가기 시작했다. 배반당하고 만 기대에 대한 슬픔, 피로, 늙은 육체로 비롯되는 절망감, 잃어버린 인생에 대한 뉘우침은 그로 하여금 미치게 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좋았던 때의 그 지나간 환상과 현재의 냉혹한 생활이 뒤섞여져 음산하게 춤의 삶을 동경하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은 그를 언제나 과거의 자연적 삶을 그리워하게 하고, 이로 인해서 그를 더욱 사회적 부적응자로 만든다. 그의 행동 동기는 그 자신 스스로의 힘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 혹은 조직에 의해 부여되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성공이나 소속 집단에서의 승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직장 상사나 동료, 고객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가 다른 직업들 중에서 세일즈맨을 택한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개성과 존경심을 얻는 것이었는데, 이 생각은 후에 윌리에게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갖다주게 된다. 윌리의 비극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형성된 시대착오적인 헛된 꿈과 공상에 집착하여 자신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과대평가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와 현실사이에서 타협하지 못하고, 계속 헛된 꿈만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오류를 깨닫지 못하고, 단지 그 꿈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죽어갔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인간의 비극을 볼 수 있다. 윌리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그의 형 벤은 억세고 개척자적인 정신을 갖고 있는 인물로, 자신의 생활을 계획하고 주도하며 스스로 부를 축적하였다. 죽은 아버지에 대한 윌리의 존경심은 형 벤에게로 이어져 있다. 윌리가 라이벌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친구인 찰리다. 그는 아들에 의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비프는 인생에서 낙오되고, 성공한 찰리의 아들 버너드에게서 윌리는 그 비결을 묻게 되고 버너드는 윌리에게 진실을 깨우쳐 준다. 결국 윌리의 고독감과 소외감의 해소를 위한 불륜관계는 자신을 죄의식으로 몰아넣고,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포부를 꺾어 버리는 주원인이 되고, 아들의 실패는 자신의 실패를 가져온다.린다는 윌리 로먼의 아내로 이 극에서 결국에는 그를 파멸의 경지로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 인물이다. 린다는 극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아내인 듯 보인다. 그 환상에 빠지도록 한다. 린다는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하기보다는 꿈이 좌절될까봐 윌리 못지 않게 조바심을 내며 그의 파멸에 동조하는 것은 그녀 또한 환상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윌리가 벤의 말에 솔깃해 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는 윌리에게 이렇게 말한다."그런 말씀하시지 마세요. 여기서 이대로 사는 게 행복해요. 세계를 정복해야 맛 인가요? 남들도 당신을 좋아하겠다, 애들도 따르고 또 누군가가-- 맞았어요, 일 전에도 와그너 사장 말이, 이대로만 간다면 사원이 된다고 했는데요. 그랬죠, 여 보?"위 대사에서도 보여지듯이 린다는 물질적 안정을 위해 이해와 협력을 고의적으로 회피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그녀가 윌리와의 대화에서 끝에 자주 쓰는 말 "그렇죠, 여보!"는 그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한다. 그녀는 윌리가 알래스카로 떠나는 것을 막았으며, 남편의 자살 기도까지 은폐하려는 면모를 보인다. 린다에게는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녀는 부자간에 싸움이 벌어 질 때에도 대면을 서로 피하게 만들고, 충돌을 피하게 하여 오히려 그들 관계가 더욱 멀어지고 악화되게 하고야 마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녀의 소극적인 성격은 극의 처음에도 약간 제시되어 있다. 사실상, 그러한 욕망은 그녀 자신도 가져보는 것이지만, 그러한 의사 표시를 하고 끝까지 추구할 만한 기질은 없다. 린다는 윌리의 헛된 환상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데, 후에 큰아들 비프에게 막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보스턴에서의 윌리의 정사는 그들 부부관계가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지 못함을 단적으로 시사해 준다.비프는 윌리 로먼의 큰아들인 비프는 미국 현대사회의 성공의 꿈을 아버지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고 성장하게 된다. 물질문명이 초래한 잘못된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올바른 자녀 교육에 대한 신념이 서있지 못하기 때문에 비프는 올바른 도덕관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비프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의 계승자로 기질을 하게 되는데도 윌리는 그것마저 비호하기에 이르러 그를 후에 좀도둑이 되게 하고, 따라서 윌리의 불투명한 도덕관은 비프가 올바른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기대와 잘못에 대한 두둔하는 행동,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환상에 젖어드는 태도는 결국 비프를 나약하게 만들고 혼자 일어설 수 없는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또한,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가 비프를 좌절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이다.윌리 로먼의 둘째아들인 해피는 이 극에서 별로 부각되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형과 함께 윌리의 기대와 어떤 목적 하에 양육되어 버린 희생물이다.이 작품은 물질주의에 의해 희생이 된 윌리 로먼의 인생을 보여 주면서 산업화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 사회에 살면서 사라져 가는 구세대의 가치관에 집착하는 시대착오적인 사회부적응자의 내부적인 심리상태를 극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로에드워드 올비쒼 홑존하는 미국 표적 극작가 중의 한 사람 촁 뫈 潮차 작품인 동물원 이야기 로 1960년에 데뷔 랸 4번 낼 퓰리쳐상을 수상했고 현재도 극작, 연출 dㆋ학의 강연 d토론회 다양 활동을 하潮작가 촁 뫈1980년대 초에는 쳬가냥라 와서 직접 농 작품에출 한 적이 누枋밑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는 올비 최초의 장막극으로 1962년 뷰로드웨이의 빌리 로즈 극장에서 초연된 랸 2년에 걸쳐 공연된 작품 뉴욕 연극비평가 노티 또 외국기자협회상을 받은 문제작 촁 뫈1966년에 다시 최기자협명배우였던 엘가쟝베스 테일러와 리차드 버튼 주연 영화 메어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기檎하이 작품은 환상과 리얼리티의 문제枋중심다 작품이 올비쒼 겹뽁허서 살아가서 잘기귿만 목뺑 현대인을 한다. 뫈 潮최기 지 요람인 대 캠퍼녀 중산층 가정의 거실 목액션을 설정함써 상징의 힝배가슈키고 있a N}가족이N}자체의 조건가가僑 남과 극자없이N굣제함 써 체힝밝히는 시합장에서 가정의 환상과분석하고 있음을 암 한다.배역의 구성원 사이에 직업상의 관계는 바로 그 본질상 구하는데 논리적으로 맡겨질 수 있는 사람의 종류를 반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닉크와 하니가 그들의 초대자들보다 더 어린 부부라는 사실은 대학이라는 사회에서의 결혼생활의 일종의 이중노출을 기대하게 한다.마서는 52세의 중년여인으로 조지보다 6살이 더 많은데 이 사실은 그녀를 격노케 한다. 그녀는 교육을 잘 받았으나 우아하지는 않다. 사실 그녀는 순수한 여성의 매력이 거의 완전히 결여된 여자이다. 귀에 거슬리는, 종종 외설적인 언어와 노골적인 성적 공격은 그녀를 지극히 불쾌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녀의 거칠고 방종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아있는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 것은 그녀의 강한, 때로는 냉소적인 자의식이다. 마서는 남편 모욕주기 게임을 통해 조지의 부적절성에 대해 비난하고 과소 평가한다. 분명한 것은 극의 제한된 분위기를 채우는 끊임없는 모욕, 말의 잔인성, 그리고 폭력이다. 이 공격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무기는 물론 남편의 눈앞에서 실제적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것 같은 간통행위이다. 하지만 관객은 그녀가 닉크로부터도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극적 갈등에 대한 기초를 형성하는 것은 마서가 계속해서 조지를 지배하고 모욕을 주려고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생긴다. 즉 이 결혼생활의 불화를 극화한 것에 포함된 더 깊은 원인이 있는가? 당장 분명한 것보다 마서에게 더 큰 복잡함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마서가 가족 단위에서 지배적 인물이지만 관객은 3막에서 모든 인물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상하기 쉬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극의 마지막 장면까지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이 불행한 가족의 심장부에는 모욕게임과 상호비난에 대한 맞서기가 아니라 훨씬 더 악성의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관객은 마서가 리얼리티를 못보고 빠뜨렸거나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녀가 리얼리티에 직면할 수 없게 되었으며 가공의 아들의 인상적인 환상 주위에 삶의 기초를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숨어버린 리얼리티는 조지에게 실망한 것뿐만 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와 느낀점이 소설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열두개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70년대 한국의 도시 변두리의 철거민촌, 계층적으로 비숙련 노동 계층의 비참한 생활상과 잘사는 계층의 화려하고 타락한 생활상을 대조적으로 제시하고, 못 가진 자의 비참한 삶과 그들의 회의와 방황, 의식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첫 번째로 나오는 소설은 "뫼비우스의 띠"이다. 한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굴뚝을 청소하는 이야기와 뫼비우스의 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곱추와 앉은뱅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헐값에 팔아버린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아 오기위해서 입주권을 구입한 사나이를 기다렸다가 둘이 합작하여 포획한다. 그들은 사나이의 이득을 뺀 나머지 이십만원을 자신들의 몫이라며 챙기며 사나이를 죽여 버린다. 살려줬다간 어떻게 될지는 뻔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나이를 죽인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었을까? 한편으론 꼭 죽여야만 했는가를 생각했다. 일단 묶어놓고 하룻밤 안에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과연 돈이 무엇인가...... 돈 때문에 불쌍한 자들의 재산을 뺏는 일이나, 그 돈 때문에 한 사람의 생명을 뺏어가는 일은 둘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저런 일이 나에게도 닥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하게 됐다.두 번째로 나오는 소설은 "칼날"이다. 신애와 현우는 부부이다. 둘은 결혼을 해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부부간의 의사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신문만 보는 현우,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큰아들, 라디오를 켜 놓고 공부하는 딸, 이 네 가족은 공무원, 제과 회사 차장 집들 사이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이웃들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자가 수도를 놓고 밤에 물 받는 걱정을 안 한다. 신애는 매일 밤 물을 받기위해서 잠도 못잔다. 신애는 수도꼭지를 낮춰 달면 물 받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난쟁이의 말을 믿고 그에게 일을 맡긴다. 자기들의 돈 벌이를 방해하는 난장이에게 화가 난 자가 수도 설치하는 사내들은 신애의 집으로 찾아와 난쟁이를 두들겨 팬다. 신애는 부엌에 있는 생선칼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내들은 신애에게 살의를 느껴 도망간다. 수도꼭지를 낮춰서 단 그 날 밤 난쟁이의 말처럼 정말 수돗물이 일찍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신애는 자기들을 마치 난쟁이 같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런 이유에서인가? 난쟁이를 보호해줬다. 난쟁이의 정직함에 감동한것인가?세 번째는 "우주 여행"이다. 윤호의 아버지는 윤호를 A대학 사회계열에 보내기 위해 지섭을 가정교사로 데려왔다. 하지만 윤호는 지섭을 만난 뒤로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하게 되었다. 지섭은 우주인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윤호를 데리고 난장이의 동네로 데려가 난장이의 가족들을 보여줬다. 지섭은 달나라에가면 지상에 없는 행복이 달에 있을 거라고 했다. 윤호는 대학에 떨어졌고 지섭은 쫓겨났다. 윤호는 학원에 나가서 강의를 받고 고유층 집안의 자녀들만 모인 개인 그룹 과외도 배웠다. 윤호는 그중에서 맑고 깨끗한 은희를 알게된다. 윤호는 그룹중에 가장 타락하고 쓰레기같은 인규가 은희에 대한 관심을 끊겠다고 대신 답을 보여달라고 거래를 한다. 윤호는 허락을 했고, 자신의 답안지에 인규의 이름을 적어내서 둘다 불합격하게 한다. 윤호는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껴 자살을 하려고 아버지의 권총을 찾아서 자살을 하려한다. 그때 은희가 윤호를 찾아오고 윤호는 은희에게 권총을 쏴서 자신을 달나라로 보내 달라고 한다. 그런 윤호를 은희는 마치 어머니처럼 윤호를 안아주었다. 난 우주여행을 읽고 느낀점은 역시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들은 만족할 줄을 모른다. 윤호라는 아이가 난장이의 가족들을 보고나서 깨닳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어떤 것이 윤호를 저렇게 되게 만들었을까? 윤호는 돈과 명예보다는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이 그리웠던 것일까?네 번째로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소설이다. 난장이 가족이 사는 행복동은 재개발 사업이 진행중이다. 물론 난장이 가족도 하루 빨리 집을 팔거나 철거를 해서 나중에 분양을 받던지 해야한다. 하지만 돈이 없는 그의 가족들은 분양받기는커녕 전세금을 빼주고 나면 남는돈도 거의 없는 상태이다. 행복동 주민들은 하나, 둘씩 입주권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주권의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옆집에 살고있는 명희네 어머니는 명희가 죽고 저축해놓은 돈 15만원을 난장이네 집에 전셋돈을 빼주라고 빌려준다. 명희는 살아있을 때 영수와 서로 좋아했다. 명희는 영수에게 공장같은곳에서 일하지 말고 공부를 해서 큰 회사에 취직하라고 하고 영수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한다. 하지만 영수는 결국 학교를 관두었고 명희는 이런 저런일을 하고 다니다가 자살을 하고 만다. 영수와 영호는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공장 사장은 불황을 빌미로 삼아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일하게 했다. 영수와 영호는 사장을 찾아가서 힘든 노동 시간에 대해 협상하려고 하다가 시도도 못해보고 회사에서 쫓겨난다. 난장이는 자식들에게 큰일을 한것이라고 자꾸 칭찬해주었지만 영수와 영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격이 계속 올라가자 난장이 가족들은 25만원일 때 팔아 넘겼다. 그리고 나서 영희는 그 돈 많은 남자를 따라갔고 그 남자는 영희에게 돈을 줄테니 시키는대로 하라고 하고 영희와 동거를 시작한다. 영희는 꿈에서 어머니가 뭐하고 있는거냐라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고 그 남자 몰래 자신의 집의 표찰을 되찾아와서 동네로 돌아왔다. 영희는 일단 아파트 입주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신애아줌마를 찾아간다. 신애 아줌마는 영희를 간호해주고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난장이가 죽은 사실을 알리자 영희는 오열을 하며 오빠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른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라고 한다. 이 단편소설은 이 책에 있는 단편 소설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내가 작년부터 방학만 되면 항상 재개발구역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는 그런것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있기 때문이다. 요즘 현실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지만 읽으면서 그 상황들이 어떠한지는 상상이 갔다. 저런 상황들은 정말 말로만 들어왔고 내가 재개발 지역에서 일을 하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70년대에는 정말로 저런일들이 가능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난장이 가족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