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세상살이와 그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지표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의 삶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과거의 나는 페르세포네 원형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원형이라는 점과 코레 와 지하의 여왕 이라는 이중성을 지닌 점에서 가장 유사하다.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매우 수동적인 청소년기를 보냈다. 정해진 커리큘럼 속에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와 가정 안에선 착한 학생, 착한 딸이어야 하지만 마음속에 숨겨놓은 반항심이 있기에 이중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활성화되는 여신들이 달라지는 동시에 나의 사고방식은 변하게 되었다. 가슴 깊이 숨어있던 아프로디테의 원형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로디테에게 타인과의 영원한 관계보다도 사랑의 경험을 갖는 것이 더 소중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지속적인 관계보다는 여러 번의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프로디테적인 무대조명과 같은 의식이 없었다. 마치 극장을 비추는 빛과 같은 그녀의 의식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반응함으로서 일치감과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나에겐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아르테미스와 아테나의 원형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목표를 세워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테나 원형을 키우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공존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아테나 원형은 다른 원형들과 공존하는 형태일 때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아테나와 더불어 아르테미스 원형을 키우고 싶은 이유는 아르테미스의 삶의 방식에 있다. 그녀는 항상 끊임없이 매진하는 삶을 즐겼다. 목표를 향해 매진했고 자신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함으로서 스스로 만족을 느꼈다. 하지만 모든 원형의 여신들에게선 단점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아르테미스는 가족 이라는 터전을 소홀히 여긴 것과 페르세포네 원형은 수동적이었다는 것처럼 말이다.그렇다면 앞으로 나 자신을 위해 어떠한 원형을 키워나가야 할 것인가? 아마도 어느 하나의 원형이 아닌 복합적인 원형일 것이다.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 헤라, 데미테르, 페르세포네 마지막으로 아프로디테의 원형 속에서 그녀들만의 강점을 복합적으로 섞어놓은 원형이 앞으로의 사회가 원하는 또 내가 원하는 여성상일 것이다. 아르테미스의 자신감과 독립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기질과 힘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 아테나의 전략가적인 면모와 논리적인 사고방식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심어주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여성으로 이끌어줄 것이며 이러한 성향에 헤스티아의 인내심과 마음의 여유는 여성을 더욱 강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데미테르와 헤라의 성향을 지닌 페르세포네 원형은 가정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지킬 수 있는 동시에 넓은 이해심과 융통성을 지닌 현명한 아내, 어머니가 될 것이며 이러한 여기에 아프로디테 원형이 추가된다면 더욱 매력적인 여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Paris, le 31 mai 1935Cher Henri Matisse친애하는 앙리 마티스님저는 튈드리 정원에 위치한 오랑주리 미술관의 관장 xxx입니다. 저희 오랑주리 미술관은 1563년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드 메디시스가 궁전과 이탈리아식 정원을 꾸민 데서부터 시작되었고 현재 모네의 과 세잔, 르누아르 등의 다수의 훌륭한 작품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제가 편지를 드리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마티스님께서 1906년에 완성하신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이라는 작품에 대해 문의드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가 마티스님이 작품에 대해 갖고 있던 느낌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이 작품은 마티스님의 대 담하고도 자유로운 사상이 작품에 색채에 고스란히 나타나는 세기의 걸작입니 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 들의 형태를 단순화한 이 작품은 종교성을 배제한 신화의 인용으로 사회적 잇슈를 낳기도 했습니다.자유롭고 여유로운 사람들 의 모습에는 저마다의 행 복이 가득합니다. 누워서 이야기는 나누는 사람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목욕을 하는 여인, 춤을 추며 즐기고 있는 사람들, 이 들은 저마다의 꿈을 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또한 붉게 채색된 나무와 하늘에선 마티스님의 열정이 느껴지며 이 나무들 역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즐기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생명체로 느껴집니다. 마티스님의 그림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관적인 색채이며 과감한 붓놀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은 파란색이고 나무는 푸른색이라고 말할 때 당신은 당신만의 주관으로 세상 만물을 바라보았고 모두의 고정관념을 파괴하셨습니다.마티스님의 작품엔 빨간색과 노란색, 파란색이 매우 많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인간 감각의 깊숙한 내면까지 큰 감흥을 주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에서는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자연 그 자체의 사람들이 태초의 모습으로 흥겹게 춤을 추며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을 때 당신의 그림은 노래를 부릅니다.이는 당신의 자유로운 사상을 담은 노래이며 누구에게나 행복한 노래입니다.또한 마티스님께선 색채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화폭으로 고정관념을 파괴하셨습니다. 그림의 크기만으로도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인물의 세심한 묘사를 가능하게 하셨고 건축분야에서의 능함도 보여주셨습니다.이렇듯 저는 당신의 이라는 작품을 매우 높이 평가하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도전정신과 독창성을 존경하듯 당신의 자유로운 사상을 담은 그림 또한 매우 존경합니다.
-피아니스트를 보고-La pianiste피아니스트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영화를 끝난 후 머릿속은 멍해졌고 영화의 끝에 대한 나의 의문은 깊어져만 갔다.영화는 모녀의 싸움으로 시작된다. 서로에 대한 미움이 가득 찬 모녀이지만 이 미움은 지나친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집착으로 집착이 애증의 관계에까지 이르게 했으리라 생각된다.주인공 에리카는 어머니의 의해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평생 딸을 위해 살았고 그 집착은 40세의 딸 에리카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관심을 넘어선 집착은 에리카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사회적인 명성과 교양을 갖춘 에리카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피아노 앞에서 그녀는 제자에게 엄격한 교수이며 자신의 통제에 능한 사람이다. 하지만 에리카의 내면세계는 병들어 있다 못해 썩어 있는 상태이다. 그녀는 수업이 끝난 밤에 홀로 섹스샵에 가서 포르노쇼를 감상하고 자동차극장에서의 은밀한 연인의 데이트를 훔쳐본다.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내면은 클레메를 만나면서 서서히 내면세계의 밖으로 등장한다. 에리카의 연주에 반해버린 순수한 대학생 클레메는 자신을 볼트에 박힌 너트로 표현하며 그녀의 사랑을 갈구한다. 에리카는 자신의 세계에 어느 누구의 침해도 받지 않길 원했기에 그를 철저히 외면하지만 서서히 그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영화가 처음에 내게 준 인상만큼이나 에리카와 클레메의 사랑 또한 충격적인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둘은 화장실에서 오랄섹스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며 그 순간 에리카는 클레메가 자신의 피아노가 되길 원한다. 자신이 연주하는 대로 음을 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인형을 만들고자 클레메에게 자신의 성의식을 강요한다. 에리카가 클레메에게 요구했던 행위는 어느 누가 들어도 정상이 아니지만 이것은 이제껏 에리카가 지켜오고 믿어온 사랑이었다. 변태적이고 자학적인 그녀의 요구에 클레메는 깊은 상처를 입으며 그의 순수한 영혼은 에리카처럼 병들어간다. 그의 사랑이 애증으로 애증이 증오로 바뀌는 순간이다. 자신의 사랑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클레메는 에리카에게 잔인한 복수를 한다. 그녀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파괴, 그것은 에리카에게 있어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절망이었을 것이다. 거실에서 피를 흘리며 앉아 있었던 에리카의 모습은 무척이나 힘들어보였지만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던 억압과 가치관으로부터의 해방은 아니었을까?그녀는 클레메로 인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으며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메는 그녀의 곁을 떠나고 그녀는 또 다시 절망에 빠진다.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내게 있어 아직도 의문거리이다. 연주회가 시작하기 전 그녀는 칼로 가슴을 찌른 뒤 피를 흘리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또 다시 내면세계에서 방황하게 될 에리카를 그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동안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모습인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봤지만 감독(미하일 하네케)은 메시지는 우체국이나 가서 찾아라. 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영화는 유감스럽게도 현대인이 지금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따른 결과물이다 라고 말했다. 짧은 소견이지만 현대인의 단절된 삶과 쳇바퀴 돌 듯이 돌아가는 삶,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에리카는 현대인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변태적인 성의식이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정의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현대인의 욕망, 지나친 집착이 사랑이라고 믿는 현대인들의 문제점을 깨닫게 해주려는 영화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광고는 공기다. 사람이 숨을 쉬듯 현대인들은 광고 속에서 호흡하며 산다.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즐기는 현대인들의 모든 행위는 예외 없이 광고로부터 시작된다.현대인에게 있어서 광고한 도대체 무엇일까? 광고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대체 우리 현대인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일까? 광고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기업 활동의 활성화에 더불어 정비례하고 증가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현대 산업사회는 생산력의 비약적 성장에 따르는 물질생활의 향상과 쾌락문화의 대두, 성의 표면화 등의 현상을 가져왔다. 그에 대한 과도한 노출 즉, 성의 시각화, 영상화, 왜곡된 지식의 과잉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인간의 진정한 성본능의 표출인 에로티시즘의 본래의 의미는 왜곡되고 남용되어 범람하는 육체주의의 한 방편으로 전락하고만 것이다.이러한 현상은 특히 광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애정표현의 강도가 점점 깊어지고 노골화되어 소비자의 눈길을 끌려는 섹스어필(sex appeal)광고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특히 프랑스는 대표적인 성 개방 사회이다.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성의식은 광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의 TV광고에서는 전라에 가까운 여성이 쉽게 등장한다고 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광고를 대하는 일반 대중들의 태도이다. 이들은 그러한 전라의 광고를 습관처럼 받아들임은 물론이고 이를 표현의 자유라 여기는 프랑스인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하지만 최근 광고에 나타나는 여성의 이미지가 성차별적이고 부정적, 퇴폐적으로 변모해가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의 법적 개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고 한다. 본론에서는 에로티시즘의 정의, 역사, 프랑스의 성 풍조, 프랑스의 광고에 대해 알아보겠다.1. 에로티시즘이란?그리스 신화의 사랑의 신 에로스에서 유래된 말이다.고대의 에로티시즘은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을 포괄하는 개념의 용어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정신적, 예술적 가치보다 성을 상품화하는데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며 폼페이의 벽화에는 고대인의 성생활이 조형적이며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다.중세 유럽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정신적 가치가 더욱 중요시되면서 에로티시즘은 잠시 쇠퇴한 듯했으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의 본성을 한층 더 강조한 예술이 발전하였다. 미켈란젤로,라파엘로 등의 화가는 건강한 육체에 대해 조형적 에로티시즘을 표현했으며, 보카치오, 아레티노 등은 문학으로 에로티시즘을 표현하였다.18세기 프랑스의 사드,카사노바 등은 성을 종교적 속박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표현하려 하였는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부르주아혁명으로 이어지고 문학적으로는 19세기 낭만주의 대두로 이어졌다.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에로티시즘은 종교와 금기로부터 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엘리스,프로이트는 성 심리를 연구함으로써 에로티시즘을 과학 학문으로서 체계화하였다. 특히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리비도(성본능)가 존재함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여 에로티시즘은 과학적인 기초를 얻었다.오늘날 에로티시즘은 고전적 표현 예술인 문학,미술뿐 아니라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사진,광고, 패션, 영화, 컴퓨터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화되었다. 특히 광고는 에로티시즘을 상품의 이미지 전달을 위한 매개체로 자주 사용한다. 패션에서는 속옷뿐 아니라 겉옷에서도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둔 디자인이 개발되었고, 사진 예술은 피사체에 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장치들을 고안해냈다.현대의 에로티시즘의 문제는 예술적 가치보다 성을 상품화하는데 치우치는 것이다. 특히 광고는 성 이미지를 이용하여 주로 제작되며 영화도 성행위 묘사하는 것 자체만을 상품으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3. 광고 속 에로티시즘광고는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적인 작업을 하게 된다. 특히 설득 커뮤니케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심리에 호소하며 심리상태를 변화시켜 구매 라는 구체적 행동을 유발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수도 없이 많은 광고물들 중 소비자의 눈에 띌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기억에 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최초의 서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인류는 오랜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문명을 이룩했지만 그렇다고 원시 야만 시대의 자유분방한 성본능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성본능을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것이며 표면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는 일이 드물어진 것뿐이다. 그러므로 에로티시즘한 광고들은 성본능을 잠재적으로 충족시켜 주며 간접 경험을 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누드나 성적인 이미지, 풍자, 이중의미 등의 형태를 취하는 고아고의 섹스어필은 광고표현방법의 하나로 채택되어 신체 위생용품에서 중장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품광고에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광고들은 종종 여성단체 등을 통해 반발을 사지만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며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자극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4. 프랑스의 광고-프랑스의 대표적인 생수업체 에비앙{우리나라 사람들도 한번쯤은 마셔봤을에비앙의 광고이다. 이 사진에선 외설적인 여인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듯 여인의 나신으로서 물의 생명력과 건강함을 표현했 다. 구름 위의 날개를 달고 있는 여인은여성의 성을 상품화한다기 보다 에로티 시즘의 본질적 의미를 살려 신화적으로표현함으로써 광고의 예술적 가치를 높 인 경우라 하겠다.{욕조에 한 소녀가 전라의 모습으로 기대어 있다. 아마도 욕조엔 에비앙의 청정수가 가득 담겨 있을 것이다.이 광고는 여인의 나신을 이용했음에 도 불구하고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청순한 소녀와 물의 요소를 결합하여 순수성을 만들어냈기 때문 이다. 욕조 아래 수 많은 빈 용기들은에비앙의 물로써 목욕 중이라는 의미 이며 이로써 소녀는 더욱 투명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 또한 소 녀의 세심한 발과 손동작은 자신을 고귀한 존재로 승화시키기 위함은 아 닐까?이 밖에도 1996년 에비앙의 광고에선 전라의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물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광고의 컨셉은 자연 그대로의 물이었으며 여기서 여성의 나신은 결코 성을 상품화하기 위한 설정이고의 기업으로 거듭났다.-프랑스의 대표적인 패션업체 루이비통{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우아한 포르노 풍의 광고가 늘어나고 있다. 1981년 의류업체 myriam의 옥외 광고는 광고 속에 표현된 여성의 이미지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최초의 광고로 알려져 있다. 내일, 난 웃옷을 벗어요 라는 카피는 대중매체를 통한 첫 스트립티즈식 광고를 의미한다. 베르사체, 구찌, 크리스챤 디올, 루이비통, 샤넬 등의 고급 브랜드들을 선두로 이른바 우아한 포르노 를 표방하는 광고가 증가하는 이유는 경제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낙천성, 자유의식이 밀려왔고 이로 인해 동반되는 쾌락이 관용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아함은 천박함과 매우 거리가 멀다. 여성운동가들과 사회단체에서 비판받고 있는 광고들은 아래에서 살펴볼 여성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저질광고이다. 프랑스는 매우 성이 개방된 사회로 단순히 여성의 몸이 노출되었다고 해서 그 광고를 저질광고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술성 짙은 광고들은 그들의 몸과 정신에 깃들어 있는 한 문화인 것이다.-여성 의류 브랜드 라시티(la city){라시티의 광고에서는 여성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형 옥외광고를 주요 매체로 하는 라시티의 누드컨셉트 캠페인은 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라시티의 광고에 적신호가 켜졌다. 여성의 존엄성을 문제삼은 이 광고는여성을 동물(양)과 동격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팬티만을 입고 양처럼 네발로 기어다니는 모습은어느 누가보아도 긍정적일 수 없을 것이다.구름모양으로 흩어져 있는 단어들은 스웨터를 원해라는 카피이며 이 광고는 여성 존엄성 침해로 광고자율심의협회(BVP)의 경고를 받은바 있다.최근 시민단체들은 여성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저질광고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점점 높이며 정부의 법적 개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도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부적절한 광고(저질광고)로 지적하는 것은 지극히 본능적, 동물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는 등 여성 존엄성을 침해하는 광고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5. 프랑스 광고 속 여성의 이미지 변화50~60년대: 현모양처상, 남편과 시부모, 아이에게 그림자처럼 동반되는 조연의 역할70~80년대: 아름다운 미소로 한 자리를 지키는 가족의 일원이기 보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모습90년대: 아이들과 친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증가함에 따라 가사 일을 분담하고 아내는 한인격체로서 존중받음90년대 중반: 여성의 이미지가 급속도로 변화했으며 매우 다양해짐예)푸조106 자동차 광고-남편이 아내의 푸조106을 빌려 타기 위해 철저히 노력하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됨.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스듬히 차에 기대어 있는 광고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지만 자동차 구매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여성을 타켓으로 하는 광고가 점차 늘어간다.-장점: 조연에서 주역으로 여성의 위치 상승. 이상적, 신화적 이미지에서 점차 인간적, 감성 적 이미지로 변함.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기 시작-단점: 본능에 스스로를 맡기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에로틱한 이미지로 변함. 사도매키니즘 이나 새디즘과 같은 변태적 섹슈얼리티 이미지로의 하락. 동물적, 자학적 이미지로 존엄성을 위협받음6. 이제는 남성이다! 남성들도 벗을 준비를 하자{우리나라 뿐 아니라 프랑스 또한 남성중심의 사회이다.. 남성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성차별적 광고들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여기에 아주 통쾌한 광고가 있다. 이 광고는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쿠가이 광고이다. 여성의 비키니라인을 잔디 깎는 기계로 정돈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그려냈다.이 밖에 쿠가이 광고에서는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는 여자와 그 발가락 사이에 솜 대신 끼워진 채 노예로서 아우성치는 남자들의 모습이 대비되고 있다. 또 여자가 화장실 변기에서 물을 내리자 그 안에서 떠내려가는 남자의 모습 등을 그려 남성이 여성의 일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유머있게 표현하여 이다.
?The Masque of the Red Death?는 1842년에 에드가 앨런 포우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다. 에드가 앨런 포우는 공포, 추리소설의 원조라 불리는 작가로서 ?The Masque of the Red Death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The Masque of the Red Death?는 죽음을 피해 도망가는 인간의 심리와 죽음의 공포 앞에서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이어질 본문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도망치는 행위로써 해결하려는 프로스페로 왕자의 심리, 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심리와 드러나 보이는 외면심리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더불어 두 심리의 모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다.또한 왕자를 포함한 귀족들의 집단심리와 죽음이 다가오면서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그로 인한 심리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행동과 집단행동의 차이점을 ?The Masque of the Red Death?를 통해 분석해보겠다.결론에서는 등장인물의 심리변화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와의 연관성을 이야기할 것이다.인간은 누구나 외면에 나타나는 자기와 내면에 숨어있는 자기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프로스페로 왕자는 양면성을 지닌 전형적인 인물이며 이는 그의 행위를 통해 잘 나타난다.?The Masque of the Red Death?에서 프로스페로 왕자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심리변화를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적사병 때문이었다. 주인공 프로스페로 왕자는 겉으로 매우 현명하고 용감하게 묘사되지만 실은 현명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은 인물이다. 오히려 어리석고 무모한 인물이었다. 몇 문장을 통해 왕자가 느끼는 내면심리에 대해 알아보겠다.But the Prince Prospero was happy and dauntless and sagacious. When his dominions were half depopulated, he summoned to his presence a여 분석해보면 대표적인 반어법의 문장인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독자에게 왕자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겉으로 표현한 마음과 자신의 속마음에 있는 내용을 반대로 말한 것이다. 적사병으로 인해 그의 영토 인구가 반 이상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1천명의 측근들을 데리고 성으로 둘러싸인 사원에 숨어버린 왕자를 그 누가 현명하다고 말할 것이며 용감하다고 말하겠는가.또한 이 문장은 왕자의 내면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왕자이지만 그 이전에 한 인간이기에 그에게도 적사병은 큰 공포였던 것이다. 적사병으로 인해 그는 불안장애를 느끼게 되며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도망을 선택한다.불안장애란 특정상황이나 대상을 회피하게 되는 증상으로 프로스페로 왕자는 적사병이라는 특정상황에 공포감을 느꼈고 그 대상을 회피함으로써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왕자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강박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 문장은 왕자가 극도의 강박증세를 느끼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A strong and lofty wall girdled it in. This wall had gates of iron. The courtiers, having entered, brought furnaces and massy hammers and welded the bolts. They resolved to leave means neither of ingress nor egress to the sudden impulses of despair or of frenzy from within.사원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사방에 철문이 있었다. 하지만 극한의 공포로 인한 강박증으로 인해 더 이상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게 성문 자물쇠를 용접하기에 이른다. 성의 위치상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성문 자물쇠를 용접하는 행위는 적사병이란 병마의 출입마저 막아보려는 왕자의 발버둥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다음으로는 드러나 보이는 왕자의 외면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겠다.Thhout was the "Red Death."프로스페로 왕자는 겉치레가 매우 심한 인물이며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다. 왕자와 그의 측근 1천 명의 은신처인 사원 안에는 적사병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존재했다. 그가 초대한 1천 명의 신하들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 이 모든 유희를 준비했을 것이다. 자신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는 더욱 완벽해져야했기 때문이다.The Prince Prospero entertained hid thousand friends at a maked ball of the most unusual magnificence.프로스페로 왕자에게 가면무도회는 공포를 잊기 위한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초대받은 이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프로스페로 왕자의 웅장한 파티는 왕가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무도회장에서 즐거움으로 인해 마음의 위안을 얻은 이들은 왕자의 용맹함,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대한 가면무도회를 개최하는 행위를 드높게 평가했을 것이다.또한 가면무도회 도중에 나타난 정체, 즉 죽음의 사신 적사병이 나타났을 때 왕자가 취했던 행동에서도 그의 외면심리가 잘 느껴진다.It was then, however, that the Prince Prospero, maddening with rage and the shame of his own momentary cowardice, rushed hurriedly through the six chambers, while none followed him on account of a deadly terror that had seized upon all.어느 순간 나타난 정체모를 사람이 적사병이란 것을 알아차린 뒤 사람들은 극한에 공포에 떨며 그 누구도 그에게 가다가려 하지 않았다. 이는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며 왕자도 같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왕자에게 스쳤던 것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남들프로스페로 왕자는 내적심리와 외적행동의 갈등을 겪었다. 왕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기에 죽음의 공포를 피하려했던 내적심리와 자신의 체면을 위해 남에게 보여야 할 외적행동의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그의 선택은 죽음을 피해 외딴 성으로 도망가되, 자신의 측근 1천 명을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에게 자신의 용맹함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풍족한 음식과 성대한 가면무도회를 개최하는 등 갖가지 유희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자신의 두려움은 마음속 깊이 숨긴 채 겉으로만 용맹했던 왕자, 그의 행동은 그 자체로 모순이었다.다음은 개인행동과 집단행동의 차이점을 ?The Masque of the Red Death?를 통해 분석해 보겠다.죽음, 적사병의 공포는 프로스페로 왕자 뿐 아니라 사원에 초대받은 1천 명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했다. 그들은 왕자가 베풀어주는 탐스러운 음식과 갖가지 종류의 유희로 잠시나마 죽음을 잊은 채 즐겼지만 한 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시계의 종소리에 현식을 자각했다.…while the chimes of clock yet rang, it was observed that the giddiest grew pale, and the more aged and sedate passed their hands over their brows as if in confused revery or meditation.시계는 ?The Masque of the Red Death?에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시계의 종소리는 자신들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망각한 채 흥청망청 즐기는 그들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며 시계를 통해 이들은 심리적 변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음의 문장에선 집단행동을 통한 심리의 변화가 잘 나타난다.But when the echoes had fully ceased, a light laughter at once pervaded the assembly; the musicians looked at each other and smiled a절할 것이다. 또한 상식적으로 혼자일 때 보다 여럿이 있을 때 두려움에 대한 공포가 감소하듯이 프로스페로 왕자는 그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시계의 종소리가 울릴 때 흥겨워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모습과 종이 그쳤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신경과민을 비웃는 모습에서 그들의 집단심리가 엿보인다.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집단심리와 개인 심리의 차이이다. ?The Masque of the Red Death?에서는 개인의 공포를 이기는 방법으로 집단이라는 개체를 사용했다. 사람들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심리적으로 비이성적인 행동을 많이 보인다. 적사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만의 쾌락과 안위추구가 이상적인 행동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왕자는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집단이라는 개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공포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과 함께 즐길 때는 적사병이란 죽음의 공포를 망각한 듯 했지만 종이 울리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자각시켜 줄 때는 집단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으며 자신들의 두려움을 비웃는 행위는 개인 심리에서 집단심리로의 이동인 것이다. 집단 속에서의 개인의 행동은 매우 달라지기 마련이다. 평소에 얌전하고 겁 많던 사람이라도 집단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용감하게 때로는 무모하게 공격성 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물론 집단심리가 ?The Masque of the Red Death?처럼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G.보카치오의 ?10일간의 이야기?라는 책의 경우에는 집단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었다. 이 이야기의 전개는 The Masque of the Red Death?와 사뭇 유사하다. 페스트로 고통 받는 상황에서 7명의 숙녀와 3명의 신사는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의 한 별장에 모여 10일간 함께 지내며 서로 한 가지씩의 재밌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과 지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