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예공간예찬 을 읽고....나는 처음 음예공간예찬 이라는 제목을 듣고는 내용이 진부할 것이라 추측하였다. 하지만 책은 의외로 아주 간결했고, 문체도 시원시원해서 읽으면서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읽으면서 많은 것에 동감하였다. 비록 일본의 경우와 우리 나라의 경우 모든 상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자기의 문화를 보호하고 발전시킬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넘어가서 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이유와 문제의 심각성과 방안점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음예 란 영문판 제목에서는 shadow 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이것은 그늘도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 을 일컫는다. 어스름한 창호지와 촛불에 일렁이는 어두운 공간의 아름다움, 양갱과 붉은 된장국과 검은 칠기그릇의 관계는 이 음예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60년 전의 한 일본 지식인이 쓴 이 수필에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근대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서구의 사상이나 문물에 대한 가치관에 이상적인 잣대를 설정하고 실용적, 합리적이라는 이름의 이 잣대에 맹목적으로 의존함으로써 본지의 뜻과는 달리 내팽겨쳐 버렸을지도 모르는 우리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자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이러한 이유로 다시 생각해보며 글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지은이는 일본의 사원의 깨끗이 청소된 변소로 안내될 때마다 일본 건축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곳이 참으로 정신이 편안해지도록 만들어져있다는 것이다. 안채에서 떨어져 신록의 냄새나 이끼 냄새가 나는 듯한 정원수 수풀 뒤에 마련되어 있고 복도를 통해 가는 것인데, 그 어둑어둑한 광선 속에 웅크리고 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장지의 반사를 받으면서 명상에 잠기고 또는 창밖 정원의 경치를 바라보는 기분이 무어라 말 할 수 없다고 한다. 본채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밤중에 다니기 불편하고 겨울에는 특히 감기에 걸릴 우려가 있지만 거기서 풍류의 미를 얻는다고 한다. 그는 조명이든 난방이든 변기든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물론 이의는 없지만, 왜 좀더 우리의 습관이나 취미생활을 중시하여 그것에 순응하도록 개선을 더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이러한 생각은 독자인 나로써도 안타깝다. 만약 동양과 서양과는 전연 별개인 독자적인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있었다면 우리 사회의 모양이 오늘날과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라는 점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아마도 의식주의 양식은 물론이고 정치나 종교,예술,산업 등의 형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우리는 기계에 영합하도록 예술자체를 왜곡한다. 서양인이 발달시킨 기계이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에 맞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점에서 우리들은 실로 여러 가지의 손해를 입고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일률적으로 빛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연하게 선명한 것보다는 가라앉은 그늘이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천연의 돌이든 인공의 기물이든 오랜 시간 동안의 손때로 인한 광택을 좋아한다. 미루어 본다면 풍류는 추운 것 인 동시에 누추한 것 이라는 경구도 성립해 놓고 있다. 또한 작가는 서양인은 때를 송두리째 파헤쳐서 제거하려고 하는데 반하여 동양인은 그것을 소중히 보존하여 그대로 미화한다고 말하지만 숙명적으로 우리들은 인간의 때나 유연, 풍우의 더러움이 붙어있는 것 내지는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색조나 광택을 사랑하고 그러한 건물이나 기물 내에 살고 있으면 기묘하게 마음이 온화해지고 마음이 안정된다고 하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도 어느 정도 동감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는 다다미방이나 건축물 등을 통해서 빛과 음예의 비밀을 이해하고 빚과 음예를 적절히 사용한 그 교묘함에 대하여 감탄한다.우리 동양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음예를 만들기 시작하고 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어두움 속의 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동양인에게만 강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여기에 대한 답 또한 책에서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생각건대 동양인은 자기가 처한 경우에서 만족을 구하고 현상에 만족하려는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어둡다고 하는 것에 불평을 느끼지 못하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오히려 그 어둠에 침잠하여 그 속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미를 발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진취적인 서양인은 촛불에서 램프로, 램프에서 가스등으로, 가스등에서 전등으로 끊임없이 밝음을 추구하고 약간의 음예라도 제거하려고 고심한다. 아마 세계에서 전등을 화려하게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라고 한다. 일본은 무엇이든 미국의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나라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전등에 마비되고 조명의 과잉에서 발생하는 불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 것 같다.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나치게 밝아보이는 것은 어둠 속으로 밀어놓고 쓸데없는 실내장식을 떼내고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