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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공학] 새만금사업
    새 만 금 사업,,,,,1. 새만금 간척사업 개요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은 국토확장, 산업용지 및 농지조성, 치수 등의 목적으로 당시 농림수산부에서 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2조, 제93조 및 제96조와 공유수면매립법 제4조의 규정에 따라 계획된 대규모 간척사업이다.현재 새만금 사업의 총괄기획과 매립면허는 농림부에서 맡고 있고 설계, 공사, 감리 등의 업무는 농어촌진흥공사에서, 지역개발과 보상업무는 전라북도에서 담당하고 있다.1998년 말, 56%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으나 주관측인 농림부와 농어촌진흥공사는 공유수면매립법과 환경영향평가법 규정에 의한 사업계획의 변경이나 영향평가 등 절차를 무시하고 '농지조성'이라는 매립면허 된 내용과는 달리 도시, 공업단지 및 농수산용지가 포함된 '복합상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토지이용계획을 1994년도부터 변경추진중이다.현재는 환경단체의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촉구 운동으로 총리실 산하 수질개선기획단에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반이 구성되어 새만금 간척사업의 타당성조사를 하고 있다.2. 간척사업 현황(1) 현황▷위치 : 전라북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일대 갯벌▷개발면적 : 40,100ha-여의도의 140배 규모(토지조성 28,300ha, 담수호 11,800ha)▷사업기간 : 1991년-2004년(공사기간은 향후 늘어날 것으로 보임.)▷사업비 : 2조 510억원(현재까지 9,000억원 이상이 방조제 공사와 보상비로 지급된 상황, 전체 공사비는 공기연장과 환경시설의 추가로 늘어날 것임.)(2) 사업추진경과▷1987. 12. 17 : 새만금지구 간척사업 타당성 조사완료▷1989. 5. 22 : 새만금지구 간척사업기본계획(안) 관계기관 협의▷1989. 11. 6 : 새만금지구 종합개발사업 기본계획 확정(구 농촌근대화 촉진법 제92조)▷1991. 8. 13 : 사업시행 계획확정(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3조)▷1991. 10. 17 : 공유수면 매립면허 획득(공유수면 매립법 제4조)▷1991. 11. 13 : 사업시행인가(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으며 갯벌의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91년부터 시작해 2001년 방조제를 완공한다는 목표로 공사에 들어갔다. 현재 8천6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물막이공사 공정률 40%에 이르고 있는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은 새만금호 오염, 예산낭비, 갯벌파괴, 어획량 감소 등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제2의 시화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갯벌의 가치가 고려되지 않은 세계 최대의 갯벌파괴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전라북도 지역에 존재하는 갯벌의 90%이상이 사라지게 되는데 갯벌이 간척사업의 대상이 아닌 보전해야 하는 미래자원이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갯벌은 물과 육지가 만나는 지대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영양염류와 에너지가 풍부하다.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연안해양생물의 66%가 갯벌생태계와 연관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어류들은 이곳에서 먹이를 구하고 서식한다. 생산성과 생물다양성이 높아 어업활동의 90%가 갯벌에서 직·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갯벌은 자연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생태계의 하나로 외해양에 비해 10∼20배가 높으며 농경지나 산림지역의 3∼10배 정도의 높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조류시간이 2시간 이상 늦어지고 다양한 생물종들이 사라지는 해양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갯벌에서 얻어지는 수산물의 수확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89년 5천8백99톤에 이르던 패류의 생산량이 96년 9백78톤으로 84.5%가 감소되었다. 전국 최고를 자랑하던 백합류와 가무락은 사라지고 바지락은 1천톤 규모에서 60∼70톤으로 급감하고 있으며 한때 일본으로 대량 수출하던 갯지렁이는 판매실적이 전무한 상태이다. 향후 새만금물막이공사가 완료되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커져서 갯벌로부터 얻는 어패류가 사라짐으로써 수산자원의 고갈과 지역주민 소득감소가 예상된다.둘째, 갯벌은 유지에서 쏟아내는 육지에 주는 피해를 적게 하는 역할을 한다.이렇게 갯벌이 갖는 가치는 대단하다.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사업은 갯벌을 쓸모없는 땅으로 인식하여 개발하려고 할 뿐 갯벌의 생태적 가치, 보전가치, 경제적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개발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갯벌이 갖는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매립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 보전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7년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에서 평가한 갯벌가치에 근거하여 환경부가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한 자료에 의하면 연간 1ha당 2만7천3백16달러로 평가하고 있는데 새만금 갯벌 40,000ha는 10억9천2백64만달러(1조4천2백억원)에 이른다.경제성이 없는 간척사업으로 국민의 세금 낭비되고 있다.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은 공사허가시 사업비가 8천2백억원에서 현재 외곽시설비 1조5천7백10억원, 내부개발비 4천8백억원을 합해 2조5백10억원으로 2.56배 증가했다. 여기에 수질개선비로 환경기초시설비 8천2백억원, 하수관거시설비 6천5백6억원을 합해 1조4천억원의 투자계획이 있어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이 완공될 때까지 3조4천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어야 한다. 그러나 88년 가격으로 계산된 내부개발비 4천8백억원을 98년 가격으로 산정하면 1조4천억원으로 늘어나 4조3천2백억원이 된다. 여기에 농어촌진흥공사에서 계획하고 있는 담수호 오염방지시설 (저층수 배제 시설, 금강호 희석수 도입수로, 인공습지, 환배수로, 만경·동진강 연락수로 제수문)이나 사후수질개선비를 예상하면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 사업이 경제성이 있느냐에 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특히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은 지난 87년 이루어진 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는데 갯벌의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경제분석 결과에 의하면 "본 사업은 농지의 외연적 확장과 동시에 항구적인 수리시설과 근대적인 생산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식량증산을 달성하여 농가소득을 증대시킬 것이며 또한 본OD 17.6ppm로 농업용수 수질기준 8ppm의 2배 이상이다. 특히 만경강과 동진강의 경우 호수의 부영양화의 원인이 되는 총인과 총질소의 양이 만경강의 경우 총질소가 12.772ppm으로 기준치(1ppm)의 12.9배, 총인은 0.892ppm으로 기준치(0.1ppm)의 8.9배, 동진강의 경우 총질소는 4.621ppm으로 기준치의 4.6배에 이르고 있어 새만금호로 유입되는 상류지역(전북지역 전체를 통과하는) 하천의 수질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새만금호는 제2의 시화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그러나 지난 98년 12월 농어촌진흥공사가 환경부에 제출한 '새만금호 수질예측 및 대책(안)을 분석해 보면 수질개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농어촌진흥공사는 농업용수 사용시기인 2011년에는 COD 5ppm, T-P 0.08ppm로 농업용수 수질기준(COD 8ppm, T-P 0.1ppm)을 만족한다는 대책안을 내놓았다. 이를 분석해보면 실효성과 현실성이 없는 보고서에 불과하다. 이 보고서는 새만금호 오염발생부하량을 점원, 비점원 모두 적게 산정하고 있고, 호소의 부영양화물질인 총인의 농업용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점오염원에 의한 T-P의 오염발생부하량을 낮은 수치로 조작하고 있다.97년 23,364kg/day, 2003년 23,311kg/day, 2011년 29,588kg/day 로 전체적으로 오염원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이유없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93년 금강호 담수이후 부영양화되고 있는 금강을 희석수로 도입할 계획이나 인공습지에 의한 2011년 T-P 삭감 부하량 90.5% 달성 계획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농림부와 전북도는 새만금호 수질 개선을 위해 상류지역 환경기초시설 조기 확충계획을 세워 52개소 환경기초시설에 8천억원의 사업비를 예상하고 하수처리율을 90%로 끌어 올린다고 한다. 그러나 환경기초시설을 조기 확충한다고 하더라도 새만금 유역의 오폐수 차집관로가 오접, 파손, 관리부실과 하수처리 효율을 고려하면도 되찾을 수 없는 것이며 천혜의 자원을 파괴한 자리에 들어서는 생태농업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서산AB지구 간척농지에서 이루어지는 농법은 대규모 농지에 적합한 기계농과 화학농법으로, 주위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사람의 보살핌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농업은 대규모 간척농지에서 불가능하다고 본다.특히 개발의 욕구를 앞세워 매립한 땅위에 대규모 공장을 유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전라북도는 간척농지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규모 자연생태계를 파괴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발상은 이미 구시대적인 유물이 되고 있다. 개발과 보전의 조화는 구호로만 내세울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지금 대규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하여 조성한 대불공단과 같은 공단은 공장이 불하되지 않은 채 허허벌판이 되고 있는 실정인데 과거 개발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장기적인 지역경제를 전망하지 못하는 발상이다.지역 천혜의 자원을 현명하게 이용하면서 미래세대들에게 그 자원을 지속적으로 물려줄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개발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우선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은 그 사업이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보는 타당성 검토를 다시 해야 하며 이는 사업 시행주체만의 몫이 아니라 민간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토가 되어야 한다. 갯벌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고려했을 때 사업의 타당성이 있는지, 갯벌매립으로 파괴되는 갯벌의 가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담수호 수질개선을 위한 기술과 예산을 충분하게 마련하고 있는지 등이 정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일정한 예산이 이미 들어간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옳고 그름을 가려내지 못한다면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지 못하고 제2의 시화호와 같은 환경재앙을 불러오고 그 피해는 우리 국민들과 미래세대들이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다.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을 중단하고 그 다음 대안을 세우는 것은 갯벌보전과 현명한 이용,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이라는 대전제를 세우고 출발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2) 새만.
    공학/기술| 2003.01.02| 15페이지| 1,000원| 조회(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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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소유] 무소유 평가C아쉬워요
    교수님께서 이 책을 레포트로 내 주실 때 내 입가에는 미소가 띄었다.법정 스님의 ' 무소유 ' ... 난 일주일전에 이 책을 이미 구입했었다. 일단 저자에 끌렸고 다음 제목에 끌렸다. 하지만 나 역시 세속인 이라 아직까지 들춰보지도 못한 채였다. 그래서 난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고치려 한다. 나도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날씨가 많이 선선해 졌다. 이른 추석을 지내고 나니 가을이 더 성큼 다가 온 것 같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 그렇다. 뭔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고 연유하게 되고, 늘 묘한 기분이 감돌게 하는 그런 날들이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맘이 너무나 횡 해진다. 공허할 정도로 뻥 뚫려 파랗기만 한 하늘과, 온몸을 다 씻겨주는 듯한 시원한 바람.. 어느 누가 이 청명하다 못해 멍하게 까지 하는 이 계절에 메마를 수 있겠는가?,,, 나두 나의 모든 친구들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조차도 따스한 눈웃음을 주고 싶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인가 보다.."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난 뭘 갖고 있을까? 뭘 갖고 있지? 법정 스님이 이 글귀를 읽고 몹시 부끄럽다 하셨는데 난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처럼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 하나 하나 물건들을 장만해 가지만 장만한 만큼 마음이 쓰인다.얼마 전 난 강아지 한 마리를 친구한테 받은 적이 있다. 새끼 강아지라 귀엽고 애교도 곧잘 부렸다. 부모님들도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뒷치닥 거리가 싫어서 안 키운 던 차에 갑자기 생긴 강아지라 부모님들도 첨엔 반대했지만 지금은 고놈의 애교에 웃곤 하신다. 그저 귀엽기만 하던 그놈이 살아 있다는 증명을 하려는지 똥을 자꾸 거실 카펫에 눈다. 물론 오줌도 예외는 아니다. 한두 대 때리고 했지만 워낙 아기 강아지라 그것조차도 안쓰럽게 여겨졌다. 밥을 먹이고 나서는 꼭 고놈을 화장실에 갔다 놔야하고, 언제까지나 둘 수 없기에 좀 있다 발 다 씻겨 꺼내 놓으면 그새 카펫에 실례하고,,, 늘 내 눈은 고놈의 행동에 집중되게 되었다. 귀찮더라도 때되면 밥 주고, 놀아주고 정해지지 않은 곳에 실례했을까 신경 쓰고... 그렇다.나두 이 강아지를 소유하게 되므로 써 집착하게 되고 그 물건에 마음을 쓰고 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빤 결국 그 강아지를 다른 집에 주셨다. 물론 거기에는 또 다른 한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 흔히 말하는 그 개는 잡종, 똥개였다. 헤헤하지만 난 역시 세속인 인가 보다 . 그리 홀가분하고 편하게 됐지만 난 다시 친구에게 부탁할 참이다. 새끼 강아지를 낳으면 달라고....'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 소유하면 할수록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한발 짝 떨어 서서 보지 못하고 자기 코앞에서 나를 보려 한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무소유의 의미.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했지만 난 아직도 소유하고 싶은가 보다.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며칠 전 석 달 후면 제대하는 오빠가 휴가를 나왔다 길래 만난 적이 있다.얘기를 나누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참 세상 빠르다... 내가 군대 들어간 후 지금까지 가장 크게 바뀐 게 두 가지가 있어.. 뭔 줄 아니? 하나는 휴대폰에 대중화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터넷에 빠른 확산이야. 제대하면 제대로 적응이나 할 수 있을까? " 그렇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다닐 때 만 하더라도 대부분이 삐삐를 사용했다. PC방조차도 흔치 않았지만 지금은 거짓 좀 보태서 두 건물에 하나 정도는 생겼을 정도다. 세상에 격리 된 채 2년 넘게 살아 온 그로써는 약간의 적응도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도시는 날로 갈수록 비대해지고 편리하게 만 되어 가고 있다.옛 흙탕길을 걸으며 탁 트인 벌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넓다 란 길에서 마주 오던 사람에게 어설픈 눈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길. 한 번의 상상으로 내 맘은 여유로 워 지고 입가에 미소가 띄워진다.' 흙과 평면공간.. ' 흙이란 정말 쉬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오늘날 접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정말,,, 흙을 어디서 밟아 봤지? 떠오르지 않는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그 수 킬로미터의 길이 중에 흙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없다. 온통 아스팔트 뿐.살아 있는 대지의 기운조차 힘없는 우리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수직 공간은 있어도 평면 공간은 없다. '우리 집은 3층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집 만한 것이 서 너 채이고, 나머지는 모두 서 너 층씩 더 올라가 있다. 시야를 둘 곳이 없다. 그것도 모잘 라서 우리들은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커튼이나 발 같은 것을 창가에 달아 논다.
    독후감/창작| 2003.01.02| 4페이지| 1,000원| 조회(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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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사] 한국미술이야기
    "우리나라 미술이야기"요약: 14세기말 이전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미술은 각기 다른 특성을 보여 준다. 삼국시대의 미술은 다양하게 발전하였으나 고분 중심의 예술이다. 고분 내부의 벽화 및 부장품에서 그 시대 미술의 세련된 미의 특성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 미술이 크게 발달하여 사원 건축.불상.불화.범종 등의 고상한 조형물이 많다. 석굴암과 불국사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여기에는 불교 세계의 이상이 잘 나타나 있다. 고려시대의 미술은 불교 문화에 젖은 귀족 생활을 기반으로 하여 발달하였다. 석탑. 석등. 불상 등에서도 엿볼 수 있으나, 조형품의 특성은 귀족들의 생활기구를 중심으로 한 공예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 예로 청자의 경우는 고귀한 비색과 형태의 완벽한 대칭성, 정교하고 섬세한 제작 기술이 그 특성이다.우리나라의 근대미술은 조선시대의 실용성과 자연성을 존중하는 선비들의 미적 취향과 서민생활의 멋과 가락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미의식은 건축과 공예 분야에 잘 나타나 있다. 건축에서는 불필요한 장식이나 사치를 배격하고 간소한 실용성을 추구하는 독특한 개성을 궁궐과 성문, 서원, 주택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림은 선비들의 교양과 취미를 반영하는 안견의 등과 그 밖에 서민의 생활을 소박하고 익살스럽게 그려 미의식의 주체를 서민 속에 정착시켰다.1.한국미술의 여명석기 시대 사람들은 뗀석기와 간석기, 골각기, 장신구 등의 실용적인 생활도구를 만들어 썼고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토기도 만들어 썼다. 그들은 자연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사상에서 자연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정 동물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신앙을 바탕으로 예술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특히 토기는 표면에 색채를 발라서 갈거나, 점.선.원과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를 압각(押刻)하였다. 기교적으로는 비교적 세련된 형태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금속문화 초기에 있어서는 대륙문화의 영향으로 이미 청동기가 사용되 세공한 허리띠의 고리이다. 한 마리의 어미용이 일곱 마리의 새끼용을 어르는 모습이 황홀하게 부조로 새겨져 있다.3. 고구려의 미술고구려는 19대 광개토대왕 시대에 만주 통구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광대한 지리적 풍토와 외세의 영향을 받아 길러진 늠름하고도 분방하며, 용맹스럽고 고구려인의 기상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되어 패기에 찬 미술을 이루었다.회화는 만주 집안현 통구 지방과 평양 일대 옛 무덤의 벽화와 유물을 보면 고구려 미술이 확실히 대륙적이고 남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옛 무덤 속에는 현실(玄室)과 연도에 벽화와 천정화가 그려져 있다. 이들 벽화의 종류는 천상도,신비도,풍속도,장식 무늬도 등으로서 석회를 벽이나 천장에 입혀서 그리거나 직접 돌 위에다 그대로 새겨서 그렸다. 그림의 주제는 주로 영생사상을 반영해 주는 죽은 사람의 생활기록이 가장 많다. 선이 굵고 강직하며 주제를 상징적이고 박력있거ㅔ 다루어 대담하고 웅혼(雄渾)한 고구려인의 대륙적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고구려의 벽화는 초기에 중국 한나라의 미술과 중앙아시아의 서역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대체로 상념적이고 두식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후기로 내려오면서 표현수법도 추상화되고 다체로우며 리드미컬한 묘사를 보여줌으로써 독자적인 미술이 형송되었던 것이다.조소의 유품은 매우 적다. 금동일광삼존불과 원오리에서 출토된 전불은 초기불상의 일정한 형식을 밝혀 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균형이 잡힌 옷자락과 소박한 연화좌의 양식, 단엄한 얼굴과 도드라진 육계의 표현 등이 특징인데 여기서 북위의 불상양식을 엿볼 수가 있다.건축은 '투팔천정'을 비롯한 페르시아, 인도지방의 천장 구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옛 무덤의 구조나 벽화에 그려진 건축 모양에서 추측할 수 있다. 흙무덤으로는 쌍영총, 무용총, 사신총 등이 대표적이고, 돌무덤으로는 통구 지방에 있는 광개토대왕의 무덤이 특이하다. 공예는 통구와 평양지방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에 새겨진 장식무늬에서 힘찬 고구려의 기상과 특징은 고졸한 미소를 띠운 온화한 표정과 날씬한 자세이다. 이러한 불상은 일본에 전하여져서 아스카시대 조각의 터전을 이룩해 놓았는데, 나라의 법륭사 백제관음과 광륭사의 목조반 가사유성등 훌륭한 작품을 낳게 하였다.건축에 있어서 오늘날 전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백제의 공장들이 신라의 황룡사 9층탑과 일본의 법륭사, 사천왕사, 법륜사등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건축에서 백제시대 절의 건축원형을 찾아볼 수가 있다. 백제의 옛땅에는 몇개의 석탑만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부여 정림사 터의 5층석탑은 그 구조가 목조 건축의 양식으로 되어 있는 백제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 탑은 각층의 체감률이 심하여 안정감을 강조하면서도 단순하고 명쾌한 균형미를 잘 나타내고 있어서 내강한 힘이 전체에 흐르고 있다. 미륵사터의 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탑으로서 9층이며, 백제탑과 함께 우리나라 탑 건축의 원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이들 백제탑 양식은 신라와 일본에 전하여져서 그 완성을 보았다.공예는 대표적 유품으로 화상전이 있다. 이 화상전은 산경문, 귀형문, 번용문, 봉황문, 화운문, 연화문 등으로 나눌수 있다. 여기에 부각된 조각의 조형감은 청아하고 단순하며 부드러운 형과 세련된 구도러서 무르익는 완성기 백제 미술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 외에도 부장품으로서 귀걸이, 구옥, 관식금구 등의 금속공예품과 토기가 있다. 부여 능산리 백제왕릉이라고 전하는 곳에서 출토된 금동관식금구등은 그 무늬의 원류가 그리스적인 당초무늬와 한국적인 산악, 하늘과 구름의 무늬 등이 섞인 양식으로서 일본 법륭사 소장 다마무시즈시에 나타난 장식무늬의 원류가 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5.신라의 미술한반도의 남동부를 차지한 신라는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된 지역적 조건 밑에서 독자적이고 장려한 미술문화를 이루었다. 대체로 신라는 삼국통일을 분수령으로 하여 전기 고신라와 후기 통일신라로 구분 할 수 있다. 고신라는 중국 강남의 문화와 교류되어 대륙적인 것을 소화하고 한민족적인 생활 감정향을 받고는 있으나, 원만하고 부드러운 감각과 신비로운 미소는 신라 고유미의 절정이다. 또 고구려와 백제와는 달리 고신라 말기부터 불상 조각외에도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 주위에 둘러 쌓은 돌과 십이지신상등이 만들어 졌다.통일신라의 건축은 탑과 사원 건축으로 대별된다. 탑으로는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영주 부석사의 3층 석탑 등이 있다. 이중에 불국사의 석가탑은 치밀한 계산과 조형감각으로 깊은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단순하고 명쾌한 남성적인 직선미가 있다. 한편 다보탑은 특수한 탑으로서 직선과 곡선을 교차하고 대비시켜 풍부한 구성 감각과 미묘하고 우아한 여성적 곡선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석굴암은 조각과 건축이 이루어 놓은 통일신라 미술의 정화라고 할 수 있다. 석굴암의 모형은 중국이나 인도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것들처럼 자연의 바위벽을 이용하지 않고 석재를 다듬어서 축조한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자연과 조화시켜 지은 것이므로 실로 신라의 독창성이 발휘된 건축 양식이다.공예품으로서는 금관과 귀걸이 등 금동장신구류, 곡옥류, 토기류 등이 고신라의 대표적인 공예품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금속공예가 발달하였다. 제기, 항아리, 병 등 토기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이국풍의 맛을 간직한 토우는 아직 유약을 바르지 않은 상태로서 그 형은 세련되고 질감에서 풍기는 소박함을 지니고 있다.통일신라의 공예품은 종과 오지그릇, 와전, 등이 있다. 이중에는 봉덕사 종과 상원사 종이 유명하다. 봉덕사 종은 황동 6천 킬로그램으로 주조된 구경 2m의 거대한 종으로 주둥이와 어깨는 아름다운 연꽃무늬와 보상당초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중간에는 부처에게 꽃을 올리는 비천문양이 낮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이 두 종은 한국식 종의 독특한 것으로서 풍부한 양감과 웅대한 기상, 섬세한 조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6.고려의 미술고려는 신라를 그대로 계승하여 약 450년 동안 개성에 자리잡고 한반도의 통일국가를 유지하였다.고려의 미술은 신라의 미술을 계승 사원을 중심으로 한 불교 건축이 신라시대의 질서 정연한 비례감각을 잃고, 잡다하고 뒤섞인 집과 궁전 건립으로 기법이나 외관이 치졸해 진다. 대표적인 목조건물은 영주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 황주 성불사의 극락전 등이 있다. 그 중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엔타시스(entasis) 기둥과 포작구조에서 보이는 단순미와 지붕의 선이 이루는 느낌은 송나라를 통해서 들어온 천축계양식이면서 풍토적이며 조용하고 평안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석탑으로는 오대산 월정사의 8각 9층석탑, 묘향산 보현사의 8각 13층 석탑등 다각다층탑과 경천사터의 5층석탑 등과 같은 훤나라 라마탑 양식의 특수탑이 대표적인 것이다.공예 미술품에는 범종이나 동종등 금속공예와 칠공예도 있지만 상감청자를 비롯한 도자기 공예는 고려미술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고려의 미술은 신라에 뒤떨어 지고 있으나 공예미술만은 단연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고려의 도자기는 병, 항아리, 대접, 주전자, 향로, 술잔, 도침등 다양한 형태와 투명하고 청아한 짙푸른 빛깔 및 부드러운 선이 조화되어 우리 나라 전통미의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송나라 자기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으나 바탕에 무늬를 파고 거기에 이징의 재료를 박아 넣어 굽는 상감청자는 송나라 자기를 뛰어넘는 기술과 조형미가 깃들어 있다.7. 조선의 미술조선은 고려를 계승하여 사회적으로 퇴폐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사상적 발판으로 삼으면서 숭문천기사상(崇文賤伎思想)이 예술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소박하고 겸손하며 청결한 서민적인 미술이 성하였다.회화 부분에서 보면 태조때 도화서가 설치되었는데 이를 중심으로 한 전문적인 경향의 화가들을 원체파라 불렀다. 한편 사대부계급의 아마추어적 경향의 문인화가 성해하여 이 시대의 감각을 잘 표현하였다. 전기의 원체파 회하는 북화풍이 성하였고 우수한 화가들이 많았다. 안견, 강희안, 최경, 이상좌 등의 그림은 기품이 높고 필치가 강경하다. 다.
    예체능| 2003.01.02| 10페이지| 1,000원| 조회(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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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중국문화
    중국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강의시간을 통해 많은 중국문화에 대해서 알아봤다.음식 문화, 영화, 음악, 역사 등등.... 중국에 대한 레포트를 쓰자니 다룰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모습, 즉 의.식.주를 통합적으로 다루고, 그렇게 살아온 중국인들의 현재의 모습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세계의 중심무대에 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겠다.5천여년이나 되는 시간과 우리 나라 면적의 45배를 차지하는 중국. 과연 중국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먼저 중국인들의 식생활을 알아보자.세계 인구의 1/5을 차지하는 중국인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먹으며 살아왔고, 먹는 문제가 과거 중국인들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또 중국인들의 정치와 문화는 중국인들의 먹는 문제에 어떤 음영을 남겼을까?자연 조건은 그 지역사람들의 식생활을 결정한다. 중국 대륙은 지역마다 지형, 기후, 토양 등 자연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산되는 물산도 다르고 지역마다 먹거리가 다르다. 중국인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농경생활을 시작하여 곡물을 주식으로 하고 부식으로는 채소와 육류를 먹었다. 먹거리의 종류가 지역마다 다양한 만큼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요리법이 이용되었고, 각 지역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맛이 있다. 먹는 일은 단순히 본능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중국인들은 그들의 영양학인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으로 음식 역시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고, 대부분의 중국요리가 육류와 야채가 어우러져 있는데, 이것도 이러한 사고 방식의 반영일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일상 행동거지에서도 형식과 예절을 중시하는 유교에서는 음식 예절이 매우 까다롭다. 또, 살생을 죄악시하는 불교에서는 음식을 꺼리고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한다. 특이하게 도교에서는 음식을 부정하고 불로장생의 한 방법으로 보았다.밥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곡물, 그 중에서도 쌀을 주식으로 했다는 사실이 자급 자족적 농경사회를 차의 맛과 향이 중시되어 차의 제조기술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차의 종류와 품질도 다양해졌다. 중국인들이 차를 마시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 같았다.최초의 차는 약재로 간주되었다. 중국인들의 일상음료인 차는 중국의 정치, 외교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차의 생산, 유통을 독점할 권한을 가진 차상인들이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도 하였고 풍류를 즐기는 사태부나 문인들은 차 맛을 음미하며 인생과 문학을 논하였다. 중국에서의 차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도 변함없이 중국인들과 생활을 함께 해 온 것임이 틀림없다.중국 사람들도 술 잘 마시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술은 공적, 사적 회합에서 자리를 부드럽게 해주는 훌륭한 교제 수단으로 생각되어 왔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날로 늘어가자 술 만드는 기술도 날로 정교해졌으며 술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또한 고급술집에서 선술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점이 발달하였다.소금은 인류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물품이다. 소금은 간을 맞출 수 있고 음식의 부패를 방지해 준다. 땅이 넓고 기후와 토양조건이 다양한 중국에서는 바다뿐만 아니라 내륙 호수에서도 소금을 채취할 수 있었다. 중국의 여러 왕조들은 일찍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소금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고 그것을 국가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사실 국가가 소금을 관리하기란 매우 번거롭다. 그래서 국가는 특정한 상인에게 생산과 판매를 맡기고 그 대가로 세금을 받았다. 소금의 판매권을 얻은 특허 상인들은 독점권을 배경으로 엄청난 부를 이뤘다. 그러한 부를 배경으로 때로 권력자와 결탁하기도 하고 권력의 핵심에 서기도 하였다.다음으로 중국인들의 의생활을 살펴보도록 하자.인간이 옷을 입는 행위는 단순히 자연적인 본능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문화적행위이다. 의생활은 생산력과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 사회제도, 종교, 사회계층, 정치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명초기의 중국인들은 칡이나 마와 같은 식물 줄기로 원시적인 형태의 방직장식하는 수와 무늬를 통해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또 머리카락의 형태나 머리에 쓰는 장식, 모자를 통해 신분을 표시했다. 귀걸이는 원래 여성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 의복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저항의 표시로도 이용되었다.만리장성을 경계로 서로 다른 자연적, 문화적 환경에서 살았던 유목민과 농경민은 옷 모양과 머리 모양 옷입는 방법 등도 서로 달랐다. 유목민과 농경민이 교류함에 따라 의복에 관련된 문화가 상대방에게 자민족의 자존심과 우월함의 상징이 되어, 목숨걸고 자민족의 복식을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자민족의 복장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유행과 개성은 현대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거 중국에도 오늘날 못지 않게 개성있는 옷차림과 머리모양으로 유행을 선도한 인물이 있었으며, 시대에 따른 독특한 유행이 있었다.중국의 여성들은 오래 전부터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연지를 찍어 바르는 등 화장법이 발달하고 또 유행하였다 양기와 그의 처 손수라는 여성은 후한시대에 상류사회의 유행을 선도한 부부로 유명하다. 육조시대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아름다운 외모가 중요시되었는데, 그래서 이 시기의 남자들도 분을 바르고, 요즘의 향수와 같은 향낭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들도 많았다.당나라는 경제가 발달하고 생활도 풍족하여 영양상태가 비교적 좋았고 상층민들은 생활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당대엔 풍만한 육체를 가진 여성이 아름답게 여겨지고 그래서 여성들은 살갗을 드러내며 자신의 풍만한 육체를 과시하려 했다. 전족이 성행하게 된 이유는 작고 섬세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중국인들의 미의식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전족은 여성을 봉건적인 족쇄에 가두고 성적 대상으로 삼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봉건적인 통치체제를 비판하는 자들은 어김없이 전족의 폐지를 주장하였다.상해의 유행을 선도한 치파오는 시대가 흐를수록 양식이 유행에 따라 계속 변화되었다.현대 중국은 개혁. 개방이 급격하게 진행되어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의복에 멋을 이루고 살아가기 적합하게 되어있다.황토고원 지대 주민들은 그 지역의 지질, 기후, 지형 등의 조건에 알맞는 요동이라 불리는 독특한 동굴집을 짓고 살았다. 어떤 지역에서는 거대한 원형탑과 같은 고층의 성채건물도 볼 수 있다. 이런 특이한 건물들이 이 지역 객가들이 모여사는 토루라는 건축이다.객가의 고향인 복건 서남부와 광동 동부지역은 삼림이 울창하여 도적 떼들이 출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생활환경 속에서 객가들은 가능하면사람들의 눈에 잘 띠지 않는 외진 곳에 거주하여 자신들을 은폐시키려하였다. 또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지역의 다른 주민들과의 무력투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종족들끼리 모여 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높고 견고한 담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성채와 같은 집을 짓고 종족 단위로 모여 살았다. 또 변방지역에는 한족에 동화되지 않은 소수민족들이 각자의 사회조건과 자연환경에 따라 나름대로 독특한 주거생활을 하였다.현대 중국의 주택문제는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가 날로 많아져 주택의 건설과 보급이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적인 도시의 건설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 도시경관이 많이 훼손되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개발을 위한 물량위주의 주택건설도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도성의 변천은 역사의 흐름을 대변한다. 중국 지도 위에 역대 왕조의 수도 위치는 시대를 내려갈수록 수도의 위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간다. 이것은 경제의 중심이 서서히 강남지역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서안은 더이상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은나라의 수도는 은허라 한다. 은허의 중심은 궁실 유적이다. 건물 터는 황토 기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방법은 이후 중국 건축에서 성이나 벽을 쌓는 핵심적인 기법이 되었다. 은허의 유적지를 통해 중국 전통 궁전과 민가의 건물배치의 기본적인 틀이 이 때 이미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은허에서는 오늘날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이 발견되었다. 갑골문 역시 당시 건축 형태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 세 번째 황제 영락제이다.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으로 그 광장은 포로를 헌납하고 황제의 명령을 반포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명청대 상업중심지는 북경성 남쪽 통혜하와 좀더 근접한 곳으로 옮겨갔다.중국의 도시는 대부분 시종일관 황제를 정점으로 한 통치의 중심이었으며, 군사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점차 대도시들은 정치와 군사의 중심지에서 상공업 중심지의 성격까지 겸하여 단순한 소비도시만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까지 겸하는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송대 이후 상업과 수공업의 중심지로서 순수한 경제적 기능을 하는 시진이 전국 각지에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도시는 오히려 정치에 종속되어 버렸다.북송 당시 개봉에서는 청명 때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교외로 유람하는 풍습이 있었다. 청명상하도는 명절날 놀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바로 방제가 해체된 후 도시인들의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송대 번화한 가시에는 여러 상점과 함께 와자라고 하는 곳이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집시를 의미한다. 와자의 중심은 구란인데 집시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여러 가지 공연을 하는 곳이다. 이곳은 상인을 비롯한 일반대중을 위한 공연장이었다. 도시인들의 오락과 사교장으로 와자 외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관과 술집, 기루 등이 있다.당대 장안에서는 통금제도가 실시되었다. 청대 통금제도에는 융통성이 있었다. 도시에서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한 까닭은 치안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대도시가 번영하면서 화재가 도시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였는데, 이 때문에 소방활동을 위한 조직이 개봉에서 처음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이때 등화관제를 실시하였다.중국이 일찍부터 침대생활을 한 이유는 유목민족의 영향 때문이었다. 유목민들이 쓰던 호상은 입식의자의 선구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인들은 전통적인 좌식 생활을 입식 생활로 바꾸었다.북방의 석기시대 유적들을 보면 주거지 중앙이나 가장자리에 화덕있다.
    인문/어학| 2003.01.02| 11페이지| 1,000원| 조회(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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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공학] 바이오테크시대 평가A좋아요
    ⊙ 바이오테크 시대바이오란 그리스어의 Bios에서 유래한 말로 생명, 생물을 의미한다. 바이오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 미생물에 이르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그 대상으로 한다. 바이오테크놀러지 또는 그 줄임말인 바이오테크라는 용어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부터 쓰기 시작했다.다른 신조어들과 맞찬가지로 바이오테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의미를갖게 되었다. 생명현상을 분자 단위인 DNA수준에서 연구,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과 유전자 치료, 새로운 특성의 동식물 개발, 신기능성 물질 방출 등 광범위한 영역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바이오테크의 혁명은 1973년 허버트 보이어와 스탠리 코언이 한 유기체의 DNA와 다른 유기체의 DNA를 재조합하는데 성공하면서 시작되었다.바이오 산업은 거의 한 세포가 자신을 수백 배로 복제 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다가오는 바이오테크 혁명은 지금까지의 어떤 기술 혁명보다 가장 글로벌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지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산업 시대의 기술은 인간의 삶을 많이 변화 시켰다. 그러나 산업기술이 발전해서 완전히 성숙한 산업 사회를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세기 반이었다. 정보 시대의 기술은 1800년대 후반 전보와 전화의 발명을 시작으로 1947년 트랜지스터가 발명 될 때까지 근 100여 년간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 소재 시대의 기술은 여타의 주요기술과 비교해 그 영향력이 훨씬 넓고 강력할 것이다. 바이오 사회는 불과 20년 ,아무리 길어도 30년 이내에는 성숙될 것이다.바이오 산업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1950년대 페니실린, 인터페론 등 생명공학의 의료이며, 1970년대 유전자 암호 해독으로 유전자 공학기술의 본격발전, 1980년대의 생명공학 본격 투자 시작, 1990년대 기존의 부분적 유전공학에서 유전체 염기 서열 연구로 전화, 2000년대 정보 통신 산업과 함께 미래 성장 산업으로 부상하여 바이오 산업의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되었다.는 지식 스필오버의 효과가 이미 상당히 나타나고 있음이 밝혀졌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워싱턴, 뉴욕, 뉴저지 등 여러 곳에서 바이오테크 연구와 산업이 몰려들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에는 단연 일본이 앞서가고 있다. 바이오 경제학 제 3법칙은 이런 바이오테크 성장 곡선이 수직을 이룬다는 점이다. 정보 시대의 변화 속도는 지속적이었지만 바이오 소재 시대의 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가속도가 붙게 된다는 것이다.지난 100여 년 동안 소재 과학은 전자공학의 뒷전에만 머물러 있었다. 주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를 새로운 목적에 맞게 변형시키는데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 단계 진보한 소재 과학은 과학의 최첨단에 서있다. 소재과학의 발전과 함께 유기물이나 무기물로 만든 제품간의 구별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과거의 소재 과학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소재를 연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오늘날은 신소재를 연구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9년 5월초 스탠포드 대학의 선형 가속기 센터 과학자들은 지 금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물질은 구성하는 가장 작은 입자인 "퀘크" 및 이의 반물질을 연구하다고 발표했다. 계속되어지는 물질의 가장 작은 조각 찾기연구는 인류가 물질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게 해불 것이다.한때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물질의 최소단위를 "원자"라고 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그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정보의 시대는 소위 "마이크로"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마이크로라고 불리는 것조차 다소 크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노"의 세계가 일반 대중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바이오 소재 분야의 연구원들은 나노보다 더 작은 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나노 세계에서 일하기 위하는 과학자들은 특별한 도구를 만들어 냈다. STM이 대표적이다. 이 원자 현미경은 마치 원거리 계측 장치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컴퓨터 화면에 샘플의 형상을 사진으로 나타낸다. 다 유독한 화학 제품의 사용 없이 위험한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바이오테크놀러지의 산업적 이용은 폐기물이 적게 나오고 에너지 소모가 적고 깨끗한 공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화학 ,펄프, 섬유, 식품, 에너지, 금속 그리고 무기재료 등과 같은 산업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예컨대 현재 판매되고 있는 면직물의 대부분은 바이오 효소를 사용하여 생산되고 있다. 바이오테크놀러지의 일종인 유전자검색기술은 범죄 수사 및 법의학 분야에 적용되어 그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이루학과 야생동물의 관리에도 이용되고 있다.그러면 좀 더 자세히 바이오 농업에 대해서 알아보자.바이오 농업이란 농작물 육종과 재배에 유전체 기술 및 규명된 생명 메카니즘을 활용하는 미래형 첨단 농업 분야이다. 농업분야에서 바이오테크널러지 기술이 가장 집중 연구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품종 개량, 이 분야이다. 전통적 품종 개량은 교잡이나 돌연변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유용 품종을 만들어 내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성과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바이오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품종개량은 전통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던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식물에 외래 유전자를 도입하여 유전자가 조작된 형질 식물을 만드는 기술이 1983년 처음 개발되었다. 중국은 세계 최초 유전자 변형 쌀 개발의 성공을 성공하여 다수확성, 고영양성, 해충과 도열병에 강한 벼를 상업화하고 있다. 1996년 미국 몬산토사는 제초제에 강하도록 유전적으로 변형시킨 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몬산토와호키스트사는 제초제에 강하도록 유전적으로 변형시킨 옥수수 등의 작물을 판매했다. 또한 보통 옥수수들 중 그에 비해 크기가 수배는 큰 슈퍼 옥수수등 수확량이 많은 신품종이 다수 개발되어 재배 둥이다. 제초제에 강한 농작물 제조기술은 제조체에 저항성을 보이는 유전자를 이용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초제 종류는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성분의 활성을 저해시켜 결국 필요성분의 결핍으로 죽게 만 규모이다. 그러나 20세기에 개발된 백신과 항체의 도움으로 전염병의 피해가 감소하였고 인간 수명도 47세에서 76세로 증가하였다. 지금은 검사 대상자의 유전자 정보를 DNA칩 위에 놓으면 검사자가 어떤 유전적 질병을 자지고 있는지, 발병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 정보는 확인되고 있고, 병원성 세균의 감염 여부 및 항생제 내성 여부, 약효의 개인별 차이 등도 유전자와 관련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으므로 DNA칩으로 한번에 진단 할 수 있다. DNA칩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면 병원성 미생물의 동정을 파악하고 사람의 ID,친자 확인, 장기 이식을 위한 기능 조직 검사, 화학물질의 독성검사, 환경오염 물질 검사, 동식물의 검역 등에 이용할 수 있다.유전적인 질병이나 기형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약 4천 가지가 알려져 있다. 신생아의 약 3%정도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서 질병을 앓거나 유전에 의한 기형이다. 10 여년의 짧은 역사지만 유전자 차원의 질병 치료는 확대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는 질병의 원인을 유전자 차원에서 해석하여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난치병 극복은 물론 기존 의료 방식 자체를 대체 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대되고 있다. 게다가 유전자 지식의 발달로 유전자와 관계가 있는 질병의 종류도 많아지고 있다.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발생 메카니즘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 지식이 나날이 발전함에 따라 유전자 치료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상 유전자를 벡터라는 운반체 바이러스에 주입한 후 바이러스로 목적세포를 감염시키거나 정상세포가 아닌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유전자를 주입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약물이 유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약리유전학은 특정 유전자 형질을 가지고 있는 환자를 위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60억 인구 중에 동일한 얼굴, 체질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약품의 치료 효과나 부작용도 사람마다 상이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현대 의학은 증상에 대하여 동일한 처방을 하여 왔다. 위한 주요 방법으로 주식투자가 있다. 예를 들면 제약회사가 바이오 회사에게 은행이나 보증인 혹은 자금 모금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신해 줌으로써 특별한 지원을 해 주는것이다.한시대의 기술은 다음 세대에 이어지는 기술의 원천이 된다. 다시 말해 선대의 기술은 다음 세대 기술 개발에 있어 선결 조건으로 작용하며, 종종 핵심 기술 및 생산 기반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기술은 산업시대의 화학과물리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바이오테크 역시 매우 정보 집약적인 기술로서 정보 시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유전자 염기 서열이 대표적인 경우다. 오늘날 바이오테크의 급속한 발전에는 정보 기술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새로운 기술이 이전 세대의 기술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산업 기술은 농업 기술을 변형 시켰으며 정보 기술은 산업기술과 농업 기술 모두를 변형시키고 있다. 그리고 바이오 소재 기술은 농업, 산업, 정보 기술을 모두 변형시킬 것이다.오늘날 바이오테크의 상업화가 가장 활발한 곳은 북미이고 유럽과 아시아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이전의 산업 및 정보 시대와 마찬가지로 바이오 소재 시대는 글로벌 경제 및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 이다. 아마 멀지 않은 장래에 전세계 사람들 각자가 서로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상호 의존하는 바이오 캐피털리스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바이오테크 분야가 뜨면서 제기 되어지는 윤리적인 문제들, 즉 바이오 윤리학은 바이오 산업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몬산토 만큼 바이오 윤리학의 열기를 거세게 느끼는 바이오 기업도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몬산토를 "제1의 사회의 적" "바이오테크 깡패"라고 부르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전공학 식품에 대한 히스테리가 거의 광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아닌 유전공학 산업 전체를 공격하고 있다. 바이오테크와 소재과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유례없는 초고속 발전을 이뤄왔다. 아직 신소재분야에서까지는 대중적인 여론이 미치지 않.
    자연과학| 2003.01.02| 13페이지| 1,000원| 조회(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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