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고 서행정과 정보우리는 정보의 물결 속에 있다.(빌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우리는 지금 정보고속도로를 단지 약간의 통행료만을 내며 달리고 있다. 즉, 우리는 정보라는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겪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물결 속에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보의 혁명이라는 시대에서 산업혁명의 시대를 깨버리고 그 물결 속에서 허우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우리는 그 정보고속도로에서 가까운 이득만을 원해 작은 국도로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젠 우리는 인간의 편익만을 추구해서 양성되어나가는 시대를 올바른 가치관으로서 바로 잡아야한다.빌게이츠의 말대로 혁명이 시작된다 라는 말보다는 아마 혁명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벌써 시작되어 우리생활의 깊숙한 곳에 뻗어나가져 있다. 비록 정보화혁명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왔었던 융합사회(미분화사회,농업사회)와 분화사회라는 틀 속에서 항상 거창하게 혁명이라는 주제로 정보화를 앞세우는 그런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것은 아마 정보화가 산업사회의 틀 속에서 인간의 편익과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기계와 과학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정보화라는 물결을 단지 산업사회에서 뻗은 작은 가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명 그 이전의 융합사회와 분화사회의 정보전달·교육·가정·가치관 등 사회전반이 전혀 다른 방식을 띠며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정보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의 하나는 시간의 제약에서 좀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융합사회에서의 정보전달수단이라고는 말이나 사람의 단순적인 일에 의한 전달방식이었다. 또한 구조의 기능이 전문적으로 분화된 분화사회조차도 정보전달수단이라고는 전화선을 이용하거나 무선을 이용하여 짤막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보고속도로의 정보전달방식은 우리가 살아왔었던 시대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정보전달방식을 택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난다는 것만 아니라 양적인 면에서도 다른 어떤 사회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분량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서버(server)를 이용한 각종 디지털 정보를 서버에 저장하는 방식에 의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언제나 네트워크에서 뽑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정한 영화를 보고 싶거나 어떤 사실을 확인하고 싶거나 전자우편이나 홈페이지 등 자신의 요청에 그런 정보를 서버 또는 서버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 500여 년 동안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는 종이문서로 일일이 자신이 기록하는 방식으로 저장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종이나 펜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넣어 다니는 작은 판모양의 디스켓이나 CD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일대혁명을 가져온 정보화시대의 산물이다. 종이에 의한 정보수단은 비록 오랜 세월 동안 보관할 수는 있다하여도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부패로 인한 정보의 손실이나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시간의 제약 등 문제점이 한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디스켓이나 CD는 정보의 지속성 및 항상성과 그리고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전자문서의 발달로 종이문서보다는 좀더 효율성을 가진 생활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전자문서로 인해 기업의 환경 및 과정은 컴퓨터의 문서에 과한 여러 응용프로그램(워드프로세스,엑셀,SPSS 등)의 개발로 더욱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 등 사회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낄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자문서의 발달로 눈에 띠게 사회에 대한 영향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종이문서에 관한 자료의 총체. 즉, 책이나 신문, 잡지 등 여전히 이런 매체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18세기 말 애덤스미스는 에서 모든 구매자가 모든 판매가격을 알고 모든 판매자가 모든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을 알고 있다면, 시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완전한 정보를 기초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 따라서 사회의 자원은 효율적으로 분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스미스의 시장에 관한 개념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의 완전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고속도로에서는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스미스의 이상적인 시장이 이루어질 수가 있다. 손가락 하나로 정보고속도로는 전자망을 이용한 시장을 확대시켜 물건을 실제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만이 거래에 관여하고 중간에서 소개료를 받는 사람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우리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건을 구경하고 싶으면 클릭으로 모든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그런 장점을 가질 수가 있다. 즉, 우리는 쓸데 없는 낭비가 없고 중간마찰단계가 크게 줄어든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시장에서는 정보가 흘러넘치고 거래비용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소비자의 천국이 되는 셈인 것이다.
보 고 서국가론과목 : 정치학의 이해담당교수 : 황감용대학 : 행정대학학과 : 행정학과학번 : 20005660이름 : 김도경제출일자 : 2000.05.18Ⅰ. 국가이론의 개념 및 발전과정ⅰ)국가이론의 발전사ⅱ)국가의 본질Ⅱ. 고전적 국가이론ⅰ)계약이론과 자유주의 국가이론ⅱ)부르주아와 국가이론의 전개Ⅲ.정통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ⅰ)마르크스의 국가론ⅱ)레닌의 국가론 : 지배계급 기관설Ⅳ.조합주의 국가이론Ⅴ.국가실패와 시장실패ⅰ)과부하 국가이론과 정당성 위기이론ⅱ) 강한국가 와 대처리즘Ⅵ. 결론Ⅰ.국가이론의 개념 및 발전과정1.국가이론의 발전사현대사회에서 국가는 권력구조를 지탱해주는 바탕이며 국가의 정책결정에 의해서 정치의 전반적인 상황이 조성된다. 아무리 시대와 역사의 변화 속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국가는 여전히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전체의 핵심이자 본질적 기반이 되고 있다. 먼저 국가에 대한 중요한 개념을 국가의 발전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규명하기로 하자. 먼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회과학에서 국가 라고 할 때 그것은 근대국가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국가나 중세 봉건국가와는 구분해서 인식하게 된다.이러한 사실은 간단히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ⅰ)고대국가는 귀족권력의 핵심기관이며 정치는 귀족중심의 지배세력이 일반국민 을 약탈하는 체제였다. 이러한 성격의 국가는 부족국가나 도시국가와 같이 한정 된 좁은 지역에서 통치기능을 행사했다.ⅱ)봉건국가는 중세 봉건영주들이 정치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군주는 단지 형식적이거나 의례적인 존재에 불과했다.그러므로 국가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위 치에 놓여 있었다. 그 당시 국가에 대한 교황의 통제권이 막강했기 때문에 국가 는 일정한 지역에 한정된 영향력의 독점적 행사는 사실상 미미했다.ⅲ)근대국가는 봉건제가 몰락하고 부르주아가 대두했던 시기부터 등장했는데 이 시기의 중요한 권력행사자는 귀족과 부르주아와의 연합세력이었다. 근대국가에 들어와서부터 군주의 권한이 강화되었으며 이는 곧 봉건영주의교회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전환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1) 가령 페스트{(1) 15세기이후부터 시작된 열강들간의 식민지정벌로 인한 세계에 관한 시야의 변화와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인 르네상스운동과 교회의 부패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였다의 전염병으로 인한 인구가 격감했기 때문에 경제의 침체가 일어났으며 국민의 생활고의 가중 현상과 빈번한 전쟁으로 지배세력 자체까지도 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정치체제의 등장으로 점차 중세적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탈출에 의해서 이루어진 구체적인 제도가 근대국가의 등장이다. 물론 근대국가의 등장은 여러 가지 사회 요소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즉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빚어낸 귀결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1.경제적으로는 중세봉건제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발전했 다.2.새로 부르주아가 중요한 사회계급으로 부상하게 되었다.3.농촌중심의 생활환경이 점차 도시 중심으로 옮아가게 되었다.4.교권중심에서 벗어나 계몽주의와 인권사상이 대두하게 되었다.5.과학 발전에 힘입어 이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사고가 대두하였다.이러한 요소가 뒤섞여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근대국가가 대두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5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15세기는 여전히 중세의 봉건제도가 지배적이었다. 지배세력은 귀족, 영주와 교회가 양대산맥으로 세습적인 권력행사가 자행되었다. 이들 지배세력의 농민 수탈과정에는 교회의 지원이 뒷받침되었으며 이들의 지배를 합리화해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국가라는 말은 군주의 권한이 미치는 일정한 영역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함을 의미했다. 그런데 중세말기에 들어서면서 영주의 권한에 군주의 제약이 가해지기 시작하며 이때부터 국가의 위세는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자본주의가 나타나게 된 초기 단계에 들어서게 되면서부터 군주의 권한은 영주의 영향력을 셈이다. 특히 절대주의 국가관에서 벗어나 현대 민족국가 개념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막스 베버의 이론적 기여가 컸다. 그는 근대 세계에서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권위가 지배적인 권위로 대두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이전의 군주중심의 절대주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이거나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대체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민족국가에서는 관료가 국가권력행사의 집행자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Gerth and Mills, ed.,1958).민족국가로의 발전에는 국가의 유일 절대성으로서의 주권이 전제되었으며 주권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1.국가 최고의 권력이다2.다른 국가로부터 대등하게 인정받아야한다3.국가 구성원의 자발적이고도 합의적인 의지의 구현이다4.그것에 의해 부여된 권력의 행사는 그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제약받지 않아야한 다.5.그것의 형성이나 소멸은 국가의 존재와 일치한다.2. 국가의 본질위의 내용과 같이 국가이론은 시대와 역사적인 변천으로 수없이 변화되어왔다. 하지만 국가의 본질 또한 그렇게 변천에 따라 변화 되왔었고 국가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논리에도 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왔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국가의 기능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서 그 국가 제도내에서 국민의 위치가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국가실력론 … 국가를 정치의 현실성 속에서 파악하는 논리인데, 국민을 지배하 기 위한 강력한 힘의 행사로 인식하며, 국가만이 정치의 효율성과 지속성을 가지 고 있다고 믿는다.2)국가의 법적 인식론 … 이 주장은 국가의 행위나 의미를 법의 형성과 그 법에 의한 영향력 행사자로 파악한다. 즉, 법에 따라서 관료의 행정 집행이 가능하며, 관료의 행정집행을 국가의 기반으로 파악한다.3)국가 정당성론 … 국가의 기보원칙과 행위는 국가 구성원의 자발적인 지지로서 이루어진 것이라 주장한다.위 3가지 국가인식론 중에서 실력론은 지배자 중심의 논리로 흐르게 되었다. 법적 인식론은 관료국가의 성격을 중요시하라 불리는 사상체계로부터 부르주아와 민족국가의 기초가 마련되도 있었다. 이 이론의 대표적인 주창자로서는 홉스, 로크, 루소 세 사람이다.(2)ⅰ)홉스 :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무정부적 상황으로 파악,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기본적으로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필요해졌다. 그리하여 국가라는 조직체를 세우므로써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양도받은 권한을 중심으로 일정한 주권을 가지게 되며 그 주권은 국가영역내의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된다고 주장했다. 즉, 국가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보유했던 자연권보다도 상위에 있을뿐 아니라 심지어 교회의 권위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홉스의 국가론은 그 뒤 개인의 자유보다는 왕권을 강화하는 데 복무하는 이론적 성격을 보여주게 되었다.ⅱ)로크 : 자연상태의 인간은 조하롭게 자신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면서 생활할 수 있었지만 전쟁과 같은 외부집단의 위협이나 파괴 등의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 개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주권과 자유를 부분적으로 양도해서 계약을 통해 조직체를 형성시켰으며 이것이 국가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국가는 개인들로부터 완전하게 자연권을 양도받은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지켜준다는 조건으로 위임받았다는 것이다.ⅲ)루소 : 로크가 제한 군주적 성격을 주장했다면 루소는 이보다 더 나아간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우선 자연상태와 시민사회를 구분했다. 그는 본래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성격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자연상태에서 개인의 사적소유가 행해짐에 따라 불평등이 조성되었고 이러한 불평등의 상황이 곧 시민사회로 전개되었다고 설명하였다.2)부르주아와 국가이론의 전개절대주의의 국가는 1900년 초기부터 사실상 부르주아의 국가로 변모되었다. 부르주아국가를 분석하면서 보수적 시각으로 의회주의를 옹호했던 에밀 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며, 이는 자연히 중앙집권제적인 성격이 등장하게 됨을 의미하며, 나아가서 이전의 분권적이고 혼재되었던 정치적 성격이 한편으로는 통합되면서 전문화되는 체계성을 보이게 될 것으로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그가 국가를 합리화된 중앙집권적 정치기구로 파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이전의 전통적인 종교의 통제하에 놓였던 교육이나 감시 등 도덕적 기능까지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베버도 국가는 사회발전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가는 걔급적 지배나 약탈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근대 사회의 공동체적 안전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역사적 산물로 생각했다. 그렇듯이 그는 국가는 일정한 영역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성을 가지며 그 영역내에서는 강제력과 통치권을 행사하는 최고의 감당자이며, 실제로 구가 운영은 관료가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체제의 종말과 함께 국가도 소멸될것이라 예견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반대했다.Ⅲ.정통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자유주의 국가이론과 대립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특정계급의 지배도구로 파악하였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도 초기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1)마르크스의 국가론국가는 사회구조의 가장 중요한 부르주아의 경제적 이익을 지속시키면서 지배권을 보장해 주는 도구가 곧 국가라고 여겼다. 이렇듯 단지 국가는 경제적 이익을 다루는 조직체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소 논리적인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한 변화는 국가가 부르주아의 경제적 이익을 기계적으로 반영해 주는 기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국가도 부분적으로는 자율성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마르크스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이 다시 한번 정리할 수가 있다.1국가는 한 사회의 사상이나 관념의 산물이기보다는 경제적 생산양식의 반영물이{(4)기계적 사회는 전근대적인 전통사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