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으로의 비상- 2004 춘계 학술 답사기 -실로 8년 만이었다! 중학교 2학년 나는 클럽활동으로 문화유산 답사반을 하고 있었다. 시험 때를 제외하고 격주 토요일은 답사반원 30여명과 함께 충남 지역 유산을 답사 했었다. 서산 마애삼존불, 수덕사의 대웅전, 정림사지……. 고불고불 한 길이 도시의 대로보다 더 넓게 느껴지던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대학에 오면 자유롭게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겠지 했지만, 새장안의 날갯짓 일뿐, 4년간 돌아 본 곳은 계룡산과 대천 해수욕장뿐이었다. 그래서 일까 이전에 지도 선생님이 주시던 답사자료집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답사 전날, 답사팀 동아리 후배로부터 답사 내용을 들은 다음 나는 민중가요 mp3를 은은히 틀어 놓고, 책꽂이에서 오랜만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을 넘겨보았다. 책과 함께한 예비 답사, 그렇게 나는 날개를 추스르며, 비상을 준비 하였다.5월 22일 토요일, 드디어 답사 날의 해가 밝았다. 생각해 보면 그리 챙길 것도 없었지만, 나는 분주해 졌다. 아침 8시 출발! 아침 수업을 갈 때 면 그렇게 길던 집에서부터의 길이 이었지만, 오늘은 2시간이나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단 걸음에 모임 장소까지 내딛었다. 건네주는 답사자료집을 손에 꼬옥 쥐고 차에 올랐다.대전을 벗어나 남도 땅으로 열린 대로를 따라 날갯짓을 시작 하였다. 5월의 햇살이 이렇게 포근하던가! 창 밖 햇살은 아랑곳 하지 않고 주위의 눈빛은 무시한 채 커튼을 열고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기분에 아침잠은 쏙 들어가 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 와보는 전라도 땅. 이국 같을 것 같았던 이곳도 역시 들 판 곳곳 옹기옹기 솟은 아리따운 봉우리들, 종기종기 소담스런 집들은 우리네 향토적 전원의 풍경이었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나는 ‘아따 좋냐잉?’ 하는 말로 말을 걸었다. 전라도 친구들을 많이 있어서 일까? 입에선 전라도 사투리가 나오며 나는 어느새 전라도 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쉴 새 없이 날아온 우리가 처음 날갯짓을 멈춘 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나무의 최고 수령은 최고 300여년, 정말 서너 명이 아름 져야 앉을 수 있는 나무들이 여럿 관방제림의 전경있었다. 인조 때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심은 나무들. 이 나무들은 그 나무들의 아들 아니면 손자뻘쯤은 되겠구나!시원한 숲길을 거닐 으며, 문뜩 이 자리는 농사를 짓다 제방 둑에서 죽그릇 으로 물 한바가 축이고, 앉아 시원한 냇물을 보며 농가를 부르며 쉬고 있는 머슴의 자리는 아니었을지……. 아니면, 죽세품 짊어진 보부상의 다리를 쉬어주던 그 자리는 아니었을까?먼저 지나온 곳은 죽물 시장, 담양하면 죽물이라고 하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장이 서는 22일 이었는데, 우리가 지나온 시간 때에는 죽물 시장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중국산의 바람이 그렇게 세었더냐! 옛 모습은 간데없고 축소되고 축소된 죽물 시장, 옛 죽물 장인의 저승에서의 표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문뜩 집의 대발도 Maid In China였지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여름이 오면 먼저 대발부터 갈아야 겠구나.우리는 이제 광주의 동쪽 무등산 기슭과 맞대고 나 있는 길을 따라 정자문화권 그리고 옛 정자와 함께한 우리 가사문학의 산실을 둘러볼 예정이다. 나는 정자하면 일단 전망대라는 기분이 든다. 그러기도 할 것이 전망 좋은 언덕이나 강변의 한쪽, 보통 시원하게 트인 장소, 한편에 머물러 주위를 둘러보고 싶은 곳이면 여지없이 정자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길을 따라 지나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바로 면앙정이다.차에서 내려 아담하게 난 언덕길을 따라 면앙정으로 향했다. 운동 부족이 이리도 심했던가? 조금 다릿심 좀 썼다고 이내 숨이 차왔다. 그것도 잠시 정자에 다다르니 탁 트인 하늘 그 아래 평야를 보니 마음이 트이고, 살며시 부는 솔바람에 숨결을 맡기니 가슴도 트였다. 다시 그 바람에 봄을 맡겨 정자를 휘돌았다.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 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이 면앙정의 옛 주인은 바로 송순. 관직을 은퇴한 뒤 바람을 쐬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게, 김성원, 기대승, 박준 등 이 드나들며 호남 제일의 가단을 이룬 곳이라 한다.송순의 면앙정가를 읊고 다시 길을 따라 내려왔다. 글로 수놓은 면앙정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이곳은 400여 년 전 송순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것이었다. 오랜만에 시원함에 취해 내려온 뒤 처음 맞이한 아스팔트길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곳만큼은 흙길이면 좋으련만, 자연에 취한 것도 잠시 다시금 현대 문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송강정과 소나무차를 타고 잠시, 우리는 송강정에 다 달았다. 송강 정철의 정자. 송강 정철은 중학교 때부터 많이 들어온 관동별곡의 저자로, 가사 문학의 선두자이며, 한국 시가사상의 대가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가사를 지었으리라. 면앙정이 유유자적했던 곳이라 한다면 이곳 송강정은 정철이 은거했던 곳. 이곳에서 왕에 대한 그리움, 자연에 대한 찬탄, 고요한 생활에 대한 동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할말은 해야 했고, 허물을 보면 용서함이 없었던 그의 정기를 대변하는 듯 송강정 둘레에는 소나무가 무성했다.사미인곡 과 속미인곡을 접하며, 잠시남아 그 옛날 정철이 되어 보았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에는 정철의 임금에 대한 애틋함의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의 심경대로 물고기가 되어 물밑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다시 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해 소쇄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우리는 일단 우리나라 원림 중 으뜸이라 하는 소쇄원을 뒤로하고, 근처에 자리 잡은 흑두부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팔도 중 전라도 음식이 으뜸이라 했다. 그러기도 할 것이 황해와 남해, 넓은 호남평야, 온난한 기후 등 좋은 자연조건에서 풍성한 식재료가 공급되고, 남쪽에 있어서 기후 상으로 따뜻하기 때문에 요리를 한때 금방 시지 않게 하려고 조미료와 양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 나온 재료로 전라도 사람이 만든 흑 순두부찌개. 기대와 흥분으로 처음 접한 전라도 음식, 말 그대로 시원한 느낌이었다. 대전의 어느 맛집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직은 술맛을 알지 못하는 나이, 그래서 여러 번 들이켰지만, 그 느낌을 글로 그려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식사 후, ‘마치 속세를 떠나와 신선이 거닐고 있을 것 같다.’ 는 그곳 소쇄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색한 시멘트 길이 이어지고, 좌우로는 울창한 대밭으로 시작 됐다. 시골집 대나무 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울창한 대숲은 남도의 5월의 땡볕은 무색하게 할 정도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면, ‘쏴’ ‘서’ ‘소’ 하는 대숲의 노래는 내 귀를 간질였다.대숲을 뚫고 나오는 한줄기 빛을 따라 가니, 실로 눈앞에 무릉도원이 펼쳐졌다. 소쇄원의 기막힌 전경, 소쇄원의 아름다움,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나 뿐만은 소쇄원 입구의 대숲아닐 것이었다. 자연 속에 가만히 흡수 될만한 인공의 광경이 펼쳐졌다.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바로 계곡. 이곳이 바로 만화 영화에서만 보았던 선녀가 멱을 감고 간다는 그곳은 아닐지……. 나무속을 파낸 대를 타고 온 계곡물은 먼저 작은 못을 채우고 그 물이 넘치면 다시 큰 못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큰 못에서도 넘쳐난 물은 돌로 만든 수구를 통해 계곡으로 떨어졌다. 그 계곡위의 돌다리를 건너 우리는 광풍각에 앉았다. 큰 못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 가만히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혹시 꿈이 아닐까 꼬집어보기도 했다.사화로 낙향하게 된 양산보가 만들어낸 소쇄원. 멋 옛날 이 자리는 당대 명문장가인 기대승, 송순, 정철, 김인후 등이 모여 거문고를 뜯으며 시한 편을 고르고 있었던 그 자리가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군자가 되고자 했던 그들은 바로 이곳에서 매난국죽을 즐기며 마음을 씻었던 장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덩달아 나는 군자가 된 듯 곧 시조 한조를 읊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소쇄원의 연못시간의 짧음을 한탄해 하며 나는 미처 소쇄원의 정경을 반도 느껴보지 못한 채 내려 와야 했다. 내려오는 길, 손에 닿는 대나무 마다 구역질 날 듯한 낙서들이 내게 시비를 걸었다. ‘아름다운 것을 느낄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듯 했다. 다음 날에 꼭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대숲과 인사를 한 뒤 다시 차에 올랐다.식영정에서 본 자미탄, 전신주와 전선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다음 행선지는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란 뜻의 식영정이다. 식당이 있는 곳 한편에 있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그곳에는 상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주위에서 “멋지다”라는 말을 연발할 수밖에 없을 만큼 이 광경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자미탄 여울가에 잇는 정자 중 언덕배기 벼랑에 위치하여 가장 좋은 전망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식영정이라 했다. 주위에는 낙락장송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멋쟁이 소나무도 여럿 있었다. 식영정은 말 그대로 그림자도 쉬어 갈만한 곳이며, 자연을 벗 삼은 선인들의 풍류를 느껴볼 수 있음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 나또한 정자 한켠에 누워 처마 살을 타고 오는 따스한 햇볕에 몸을 맡겼다. 일어나서 식영정에서 자미탄을 바라 보았다. 언덕배기에 불쑥 솟아난 전신주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전선들을 보고 있노라 하니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곳은 전선들은 땅 밑으로 묻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의 21세기 문화능력이 이처럼 삭막한 것이었단 말인가!식영정에서 조금 만 더 가면 가사 문학관이 위치한다.가사(歌辭)란, 경기체가의 붕괴와 조선 초 시조의 본격적인 창작 과정에서 생겨난 운문으로, 그 내용은 다분히 산문적이다. 따라서 가사는 운문과 산문의 중간적 존재라고 한다. 담양은 그 가사 문학의 산실으로 18편의 가사가 전승 되고 있다고 한다. 담양이 가사 문학의 산실이 되었던 이유는 남도의 정자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기도 할 것이 정자는 여럿이 모여 자연과 함께 정서를 교감하고 흥을 나눈다. 열띤 토론도 이어지기도 했을 터이고, 기분이 나면 노래 한 곡 뽑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시 한 수쯤은 거뜬히 지어낼 수 있을 정도로 문학이 발달 하게 된 것으로 생각 된다.이곳 가사 문학관에는 가사 목판, 가사 관련 도서 및 유물, 친필 유묵 등이 전시 되어 있었다. 한자어를 모르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