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사상1. 노자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노자의 인물과 生存時代(생존시대)에 관해서나 「道德經」(도덕경)의 저자 및 저술의 정확한 시기에 관해서는 많은 異見(이견)이 있다. 노자에 대한 자료는 司馬遷(사마 천)의 「史記列傳」(사기열전) , 第 3 章(제 3장), '老子傳'(노자전)에 기술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노자는 초나라 고현 (지금의 하남성 녹읍현의 동쪽을 말함) 사람이다. 성은 李씨, 이름은 耳, 자는 伯陽, 시호는 聃이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 천의 기록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가장 정통한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노자는 노담(老聃), 태사담(太史膽), 이이(李耳) 등의 여러 이름으로 나온다. 즉 사마천 자신도 노자라는 인물의 실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이죠. 사마천은 노자의 사상이 모든 제자백가의 사상중에 가장 심오한 사상이라고 평가했지만 실제 자신은 노자라는 사람의 실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라고 한다.) 「도덕경」이 대략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에 나타난 중국의 古代思想(고대사상)이라는 점에는 異論(이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 전체가 5천자로써 시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노자」는 그 글이 정밀하고 사상이 심오하여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한 哲學(철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 철학이 나타나게 되는 시대적 상황의 인식이 중요하다. 周王朝(주조왕)가 周室東遷(주실동천)이후 약 550년 간을 東周時代(동주시대)라 말하는데, 동주시대는 다시 춘추시대(B.C, 770∼403)와 戰國時代(전국시대)(B.C, 403∼221)로 구분할 수 있다. 그 당시 시대상의 모습은 전쟁과 흥망의 격동기였다. 기존 사회체제는 신속히 해체되어 가고 아직 새로운 사회체제는 건립되지 못한 채 학술 사상계에서는 百家(백가)가 爭嗚(쟁오)하며 학술토론과 사상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왕권을 중심으로 한 郡縣支配(군현지배)로 대체되었으며 富國强兵(부국강병)을 위한 제후들의 토지 쟁탈전이 에서 철기 시대로 이행되고 있는데, 발달된 철기 무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경우가 발생하였다.이와 같은 상황에서 백성들은 출세하여 이름을 떨치기 보다는 온전히 생을 유지하고자 하는 保身主義(보신주의) 풍조가 팽배하게 되었고 이는 노자사상이 출현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배경 아래에서 「노자」는 생겨난 것이고, 또 동시에 이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체계를 형성시켰다.2. 노자의 사상과 원문해석(1) 무위자연노자는 도에 의해 천지만물이 생겨나지만 그 도는 그에 의하여 생겨난 사물들을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그것은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하려 한다. 그러나 도는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만물을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에 의해 생겨나게 된 사물들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지배하려고 들지 않는다.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대도는 넘쳐흘러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두루 흐를 수 있다. 만물이 그에 의지하여 생겨나지만 간섭하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이 자기에게 있다고 하지 않으며 만물을 입히고 기르면서도 주재하지 않는다.도가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사상은 당시 사상계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가진다. 당시 중국에는 하늘에 있는 제(帝) 또는 상제(上帝)가 이 세상을 결정하며, 국가를 다스리는 왕은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노자가 생각하는 천(天)은 단지 지(地)와 반대되는 자연물일 뿐이며, 세계의 형성과 전개는 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상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노자는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그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道常無爲而無不爲.)라는 명제를 제기했다. 노자에 의하면 천지만물 가운데 어떤 것도 도(道) 없이 존재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데, 그런 면에서 도는 무불위(無不爲)하다. 그러나 도는 어떠한 의지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 또한 무궁극적 표준임을 말하고 있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2) 도(道)노자는 “천지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라고 하며, 도를 만물(萬物)이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우주 만물의 근원과 법칙이라 설명했다. 이 명제는 먼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만물에서 출발한다. 노자가 보기에 만물은 각기 다르고 지극히 복잡하지만, 복잡한 사물은 모두 간단한 사물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즉, 만물은 모두 간단한 사물에서 발생하며 이 간단한 사물이 위에서 말하는 ‘유(有)’이다. 또한 형상이 있는 ‘유(有)’의 시작은 형상이 없는 ‘무(無)’라고 본다. 따라서 노자는 우주 최초의 기원은 ‘무’이며, ‘무’는 즉 ‘도’를 말한다. 결국 도가 만물을 발생하게 하는 근원인 것이다.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하며, 만 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이 세 가지는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뒤섞 여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이다.이(夷)는 자취가 없는 것이고, 희希(微)는 소리가 없는 것이며, 미(微)는 형질이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아무런 형상도 없고 어떠한 자취도 없다.(3) 덕(德)노자가 말하는 덕(德)은 덕성을 가리키며, 덕성은 사물의 본성을 가리킨다. 천지만물의 근본이 도라고 하면,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은 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나의 본성인 덕을 회복한다면 천지만물의 근원인 도와 막힘없이 통할 수 있다고 했다.노자는 우주의 본원인 도의 덕성과 도를 체현한 성인의 덕성을 ‘현덕’이라고 하고, 천지만물(인간을 포함해서)의 덕성을 일반적으로 ‘덕’이라하며 현덕과 일반적인 덕성을 구분했다.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은 자기가 덕을 가지고 있다고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덕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덕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덕을 잃지 않았다 주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덕이 없는 것이다. 상덕은 덕이 있는 사람이고 하덕은 덕이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덕이 있는 사람과 덕이 없는 사람이 구별된다.1.장자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그의 생몰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에 의하면 위혜왕(기원전 370--317년 재위) 및 제선왕과 동시대인이라 한다. 또 학자에 따라서는 기원전 369--286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연구가들이 에 나오는 역사상의 실존 인물과 전국 시대의 문헌을 비교함으로써 그의 생존 기간에 대한 고증 작업을 하고 있으나 앞의 것과 큰 차이는 없다.그의 생존시기는 이른바 전국 시대 중기로서,춘추 전국 시대는 급격한 변혁기였다. 후대의 한유가 말했듯이 천하를 혼란 속에서 건지려는 사상가들 탓에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질 겨를이 없고, 묵자의 굴뚝은 검어질 수가 없는' 다망한 시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상을 받은 것은 새로운 지배 계급이고, 하층민들은 다시금 조여드는 속박 속에서 노예의 노예로 전락할 뿐이었다. 혼란이 휩쓸고 간 그 황폐한 땅은 장자에게 누적된 반성과 실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염세적인 경향을 띠게 하였던 것이다.장자의 출생지는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 부근인 몽 땅으로서, 당시엔 송나라에 속해 있었다. 송나라는 주나라에게 멸망한 은나라 주왕의 서형, 미자를 시조로 오랜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나, 당시엔 한낱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임금 자리를 둘러싼 골육 상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춘추 시대 이래 약육 강식을 거듭하여 전국 칠웅이 중원의 패권을 다투던 시대다. 장자는 이러한 극도의 혼란상을 초래하게 된 원인을 명실(名實)의 괴리 주(周)의 예(禮)의 붕괴, 사회 계층 간의 갈등에 있다고 보고 정명론을 폈고, 주의 예의 복귀를 주장했으며, 인의 실천을 역설했다. 또 인의 실천도 다름 아닌 주의 예에 부합하는 보수적인 도덕적 실천을 의 하고 나선다. 일체의 혼란은 인위(人爲), 유위(有爲)에 있다고 전제하고 나서 공자의 예 및 인은 인위, 유위의 대표적인 것이며, 모든 유위의 사상은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시켰다.장자사상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회의와 그 현실의 혼란을 초래케 한 원인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그가 비판하고 거부한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혼란을 초래하게 한 원인, 즉 일체의 인위적 요소를 부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위적 요소를 부정하는 무위자연 사상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2. 장자의 사상과 원문 해석(1) 도(道)장자는 도를 우주 만물의 근본으로 보았다. 도는 어떤 사물이 아니라 일체 개별자들의 근거이다. 이러한 도를 장자는 물물자(物物者) 또는 형형자(形形者) 또는 생생자(生生者) 등의 말로 표현했다. 물물자는 천지만물로 하여금 천지만물로 되게끔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형형자는 형체 있는 것들로 하여금 형체를 지니게 하는 것을 뜻하고, 생생자는 생명 있는 것들로 하여금 생명을 가지게 하는 것을 뜻한다. 즉, 도가 일체 존재자들로 하여금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 실체임을 뜻한다. 노자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원히 변치 않는 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장자도 도는 언어로 정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道不可聞, 聞而非也. 道不可見, 見而非也. 道不可言, 言而非也. 知形形之不形乎! 道不當名. 도는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이니 들을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니 볼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 형제를 지닌 물건들의 형체를 지니게 하는 것이 형체가 없는 도임을 알겠지요? 그러니 도란 이름을 붙여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이처럼 언어는 통발이나 토끼그물처럼 사상(事象)을 포착해 그 의미를 전달하는데 쓰이는 도구이다. 이 언어는 유형의 사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런 유형의 사물들의 존재 근거인 도는 언어로 포착해 정의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