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와 더럽게 살자 - 11983960 독일어독일문학과 민병선위에 쓰인 두 책 중 전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생각 없이 소비하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어지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환경에 어떤 방식으로 얼만큼이나 나쁘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침으로써 인간의 끝없는 욕구와 맞닿아 있는 생산과 소비라는 현상을 통해서, 후자는 제반 환경문제를 인간의 행위에 의한 인풋(input) 과 그에 따르는 결과들을 아웃풋(output)이라는 간단 명료 하면서도 논리적인 방법으로써, 또한 전자와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해왔기 때문에 환경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던 또는 가지고 있었더라도 일생생활에 까지 환경의식을 접목시키지 못했던 다시 말해 실천적이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이 두 책은 환경문제를 구체적인 인과과정과 호소력 있는 수치를 제공해 주면서 무지몽매한 군중들로 하여금 설득력을 듬뿍 느낄 수 있게 다가간다. 전자는 구보씨라는 평범한 사람이 겪는 하루동안의 소비과정을 통해 현대문명에 대해 혐오감 마저도 들게 해줄 수 있다. 예를 들면 구보 씨는 하루를 커피로 시작한다. 구보 씨의 커피를 위해 자라난 커피 나무는 콜롬비아의 울창한 원시림 대부분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작은 숟가락으로 떠 넣은 설탕은 사탕수수밭으로 하여금 대규모 억새풀 습지를 대신해 땅의 주인 노릇을 하게 했으며 크림은 대관령 산간 계곡에서 방목된 젖소들로 하여금 맑은 시냇물을 진흙 투성이와 배설물이 넘쳐나는 물고기들이 살 수 없는 죽은 물로 만들게 한다. 그리고 마신 컵은 더 많은 물로 닦아야만 하는 인간의 무지함 속에 자행되는 소비에는 어떠한 결과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커피의 예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인간소비 하루 수십 또는 수백 가지 소비과정 중 단 한가지 예에 불과할 뿐이다. 더럽게 살자 는 전자와 같이 한 개 한 개를 모두 인과 관계별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역시 우리가 생산, 소비하며 생활하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인류의 괄목할상당 부분 진행되었으며 앞으로도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환경관련 보도가 떠들썩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역시 환경문제를 편할 대로 갖다 붙였다 띠었다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믿을 구석도 없으면서 언젠가는 개선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하고 굴절해석 하게 만드는 언론의 반짝 쑈에 불과 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보도를 보면서 어린마음에 걱정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셨다. 달나라에도 가고 별짓을 다 할 수 있는데 그 것쯤 언젠가 또 대응책이 나올것이야 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발언이었고 인간의 생각이 대부분 그런식이기 때문에 지구 환경문제가 여기까지 왔나 하고 생각이 든다. 이렇게 더럽게 살자 는 아웃풋에 대한 염려에 초점을 두어 문제해결을 하기 보다는 인풋을 효과적으로 통제 조절함으로써 아웃풋 발생을 최소화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두 책 모두가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 욕망과 관련된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환경오염은 첫째로 생산수단을 쥐고 생산물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환경문제는 생산물의 생산과정과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라고 직접적 암묵적으로 독자에게 의미를 던진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는 자본주의를 사회주의에 대응되는 특정 이데올로기로써는 명시적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생산 소비의 시스템 속에서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다. 더럽게 살자 에서는 환경과 이데올로기 로써의 자본주의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즉 개인의 윤리와 도덕에만 모든 것을 떠맡기는 식의 환경대책과 비판자 세에서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체제와 이념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한다. 환경문제란 사람이 일으킨 인풋의 결과이기 때문에 해결책 역시 사람이 제시해야만 한다. 더럽게 살자 에서는 사람과 사회적 관계와는 무관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써 환경파괴의 원인 구조를 아는 일은 곧 사회구조를 밝히는 일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더럽게 살자 를 읽음으로써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바로 전기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으로써 핵에너지를 제시한다. 우리 대부분은 핵무기하면 그저 그 어떤 무기보다도 대량으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고 방사능이 잔존해서 끊임없이 위험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폭탄의 순간 파괴력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개인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 욕구로부터 오는 두려움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느 나라가 보유하고 있건 어느 나라에서 터지건 또 핵폐기물이 어디에 버려지건 간에 그 피해는 전 인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음도 빠뜨리지 않고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고 말한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에 이러한 핵에너지니 전쟁이니 하는 어찌 보면 아주 커다랗게 다가올 수 있는, 인류역사를 가장 빨리 중단시킬 장본 요인으로써의 말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좀 더 지구 환경에 동정심을 가지고 지구 환경을 생각 할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 아마도 글의 제재가 자본주의나 핵과 같은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일상적인 소비생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가지 예로써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신문의 경우 이 책에 의하면 한국의 재활용 신문지의 비율이 35% 이다. 신문이란 친근한 소재에 새로운 환경파괴에 관한 정보를 접함으로써 환경문제에 대한 성찰을 주변적인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왜 한국의 비율은 35%밖에 안 되는가 하는 문제도 더럽게 살자 에서 보다는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녹색 시민 구보씨의 하루 는 녹색시민 으로서의 실천사항이 될 구체적인 대안도 각 주제별 내용 속에 제시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커피의 대안으로써 녹차를 마시고 자동차를 탐으로써 에너지 낭비 대기 오염, 수질오염을 시키느니 보다는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가는 자전거를 타는 것 이라던지 하는 것들과 같은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대안들을 왜 강력하게 실천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 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은 책임감이다. 우리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칭 지성인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 대면서..아마 그들 중 인도네시아나 캐나다의 원시삼림에서 수십 년씩 된 나무들이 하루에도 수천 그루씩 잘려 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설령 안다해도 그것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면 일반주택 지역에서는 청소차가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이 재활용품 수거하는 날이라고 구청에서 발표를 해놓고는 정작 각각 분리되어서 길 한쪽에 시민들이 내다 놓은 재활용품은 일반쓰레기를 처리하는 것과 똑같이 압축식의 쓰레기 차로 요란한 깨지는 소리 터지는 소리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종이고 병이고 캔이고 할 것 없이 한데 섞여 들어가 버린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누구에게 무엇에 귀착되어야 하는 문제란 말인가.- 수거된 양조차도 제대로 재활용이 안되고 있다. 사람들의 재활용품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문제와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의 논리가 상호 작용하는 결과 우리나라에서 재활용품의 시장은 아주 작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재활용종이 재활용휴지 하면 막연하게 돈 없는 사람들이나 쓰는 그런 것 쯤이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재활용품을 내놓아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물건을 생산 안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재활용에 대한 환경에 대한 성숙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럼 자본주의 논리는 보완되어질 수도 있고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부족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이 지구상 곳곳에 사람들의 무책임함과 이기적임, 종국적으로는 그 원인이 또 다시 돈으로 귀결되는 환경문제들이 부지기수이고 모든 환경문제를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인 시급한 문제이지만 멀리 예를 들 필요 없이 우리 나라를 생각해보자. 어제 캐나다에서 온 영어강사 두 명을 만나서 나눈 얘기이다. 그들은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하면다가 온갖 반환경적 맹독성 농약들을 뿌려대고 극소수의 부유층을 위해 밀려나간 꽃들과 나무들은 과연 그 땅에서 다시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요즘엔 집은 없어도 차는 다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차가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에게 인기 품목이고 필수품의 자리까지 올라온 문명의 이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커다란 공해덩어리 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차라는 것이 제조 과정에서 그리고 그것이 쓰이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반환경적 결과들을 낳게 되는지를 알고서 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녹색시민... 과 더럽게 살자 에서 나온 자동차의 반환경적인 면을 발췌했다. 구보씨는 자전거로 출근을 한다. 회사까지 달려서 210칼로리를 소비한다. 만약 그가 자동차로 출근했다면, 1리터 정도의 휘발류를 소비했을 것이고 그것은 자전거로 출근하는데 드는 에너지의 40배에 달하는 8천 칼로리의 에너지를 발생시켰을 것이다. ........ ....한국의 자동차 이용 빈도 및 연간 평균 주행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배기가스와 소음, 낡아서 수리, 교환되면서 버려지는 폐 오일, 폐 배터리, 폐 타이어, 폐 유리 등 여러 가지 오염 물질을 만들어 낸다. 뿐만 아니다. 자동차는 인명을 살상하고 건강장애를 유발하고 보행자에게서 도로를 빼앗고 이웃 간에 주차를 위해 다툼을 벌이는 인간성 상실 문제가 있고, 작게는 교통체증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등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동차를 사랑한다.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이 공해덩어리 역시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친지 오래다. 자동차 문제 역시 오랜 시간을 두고 인간이 생태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세를 가질 때 그동안의 무한해 보이던 팽창을 그치고 자정 작용으로 들어 갈수 있는 것이다. 더럽게 살자 와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에서 공통적으로 도출해 낼 수 있는 결론은 지구와 인간의 관계는 피지배와 지배의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 또는 상호 보존의 법칙 속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
사회심리학을 연구해왔던 저명한 학자들의 입장에 따라서 그리고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을 이용하여 인간 행위에 대한 정의를 규정지을 수 있겠으나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한도에서 사회심리학 이론 간의 비교와 그를 위한 각 이론을 조금씩이나마 정리해 보았다. 비교의 쟁점은 네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각 이론이 연구대상을 인간의 의식세계에 초점을 맞추는가 무의식세계에 초점을 맞추는가. 둘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주체성에 관한 비교. 셋째, 인간의 합리성 여부를 각 이론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에 관한 비교. 넷째, 인간의 인격형성에 관한 이론 비교 이다.첫째 -연구대상의 비교-1920년대를 풍미하던 대표사회심리학 사상인 행태주의는 실험과 관찰이라는 방법을 통해 인간의 의식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사조였다. 행태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의 의식이란 어떤 외부 자극을 가했을 때 일정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관찰 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에 반해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였던 Sigmund Freud의 에서는 인간은 타고난 속성인 무의식의 세계의 지배를 받는다고 역설하며 실험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하여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의 표출에 불과하며 무의식의 세계를 갈등과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 본능, 심적 에너지로 규정했다. 각각의 요소들에 대해 그가 표명하는 바는 이러하다. 첫째 무의식의 세계만이 심리학의 연구대상이 되어야 하며 의식이란 무의식의 표출에 불과하다 . 둘째 심적 에너지 한 하나의 복잡한 체계로써 그것에는 Id, Ego, Superego 라는 에너지들이 있으며 심적 에너지란 개인의 성격을 구성하는 토대라고 말한다. (셋째 본능 에 관해서는 인간의 합리성여부를 어떻게 규정짓는가에 관한 비교에서 자세히 논하겠다) 이와 같이 Freud가 주장한 의 전제가 되는 연구대상은 인간의 무의식 세계였으며 1920년대 행태주의에 가려 별 지지를 얻지 못하다가 30년대 사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 주체로써의 인간을 인정하면서도 타인과의 언어 상호소통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자아를 덧붙이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언어체계라는 상징 속에 담겨있는 의미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이 의미를 이해하고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으로 된다고 보고 있다.둘째 - 연구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주체성에 관한 비교-행태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이라는 행위의 주체는 S(자극)-R(반응)' 이라는 단순 구조로써 묘사된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각도의 사고 방향을 외면함으로써 행위 주체로써의 인간을 무시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극은 개인의 행동의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외부나 내부사상이고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반응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행태주의적 입장에 대한 반론으로써 제기 되어진 것이 인지이론 이다. 1920년대 독일에서의 Gestalt(형상, 모습)학파의 이론이 토대가 되어진 인지이론은 행태주의자들의 인간의 주체성 무시를 정면 반박하면서 인간을 사고하고 행위하는 주체로써 규정지었다. 인간은 인지과정, 즉 정신활동을 통해 정보들을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아가 특정 행위를 하게 된다고 역설하였는데 이는 Gestalt학파가 말한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들을 모으고 각하는 과정을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정보들을 흡수한다. 즉 인지과정을 통해 정보들을 흡수하고 그 정보들을 통합시키고 하나의 형상, 고정된 관념 혹은 관념의 틀을 형성하게 된다 라는 요지를 상당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일상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 에게 친한 친구가 있는데 같이 어느 날 같이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 친구가 주정을 부렸다. 나 라는 주체는 주정부리는 모습을 보면서(정보를 인지과정을 통해 하나의 관념형성) 다음번에는 그 친구와 술을 안 마실 것이다. 여기에서 나 는 친구가 술을 마시면 주정을 부리는 것 에 어떠한 형상을 형성한 것이며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시 술을 같이 마시지 않는 행위로 옮겨지게 되 사이에는 주체로써의 나 에 사회적인 맥락의 어떤 작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지이론의 선두주자인 Lewin은 Field theory(장이론)에서 자극과 반응이라는 관점에서는 결코 인간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면 인간의 행위는 특정시간에 작용하는 세력들 즉, 여러 요소들이 정체의 장(Field)의 함수이다 , 인간의 행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행위가 발생한 시점에서 행위자가 처했었던 life space 즉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행위를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써 이지 개인이 지닌 속성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셋째 -인간의 합리서 여부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에 관한 비교-S. Freud에 의하면 인간은 기쁨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는 쾌락추구 원칙의 지배를 받는 본능적 욕구 즉 성충동에 따르는 비합리성을 따르는 1차적 속성으로, 합리성을 주변적 2차적 속성으로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이간은 비합리적이면서도 본능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비합리적, 비이성적 생명체로써 본다. 그는 에서 아이의 모든 행동을 성본능에 따르는 비합리적 존재로써 말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본능이란 무엇인가. 무의식의 세계의 구성요소인 본능에 대해 설명하겠다. 인간에게는 본능이라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는데 이 본능은 모든 심리현상에 충당되는 에너지의 모든 원천이며 이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면 Id(이드)-충동적 에너지, Ego(자아)-합리적 에너지, Superego(초자아)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즉 본능은 심적 에너지의 원천이며 이것의 최종 목표는 쾌락, 신체적 욕구이다. 또한 이것은 Id와 Ego 등 심적 에너지의 양을 조절하고 규제한다. 이러한 본능에는 Eros(삶의 본능), Thanatos(죽음의 본능), Libido(성본능)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며, 그것을 위한 모든 신체적 욕구의 표현이자 쾌락추구의 원칙에 지배를 당하는 삶을 지탱해 주는 에너지가 바로 Eros이다. 같이 S-R의 체계를 가진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행태주의적 입장에서의 인간과도 대조를 이루며 특히, 인지이론의 입장과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입장과도 대조된다. 인간의 1차적 속성을 합리성, 이성성으로 규정하는 인지이론은 인간을 판단력, 사고력을 가진 합리적 생명체로써 간주한다. 인간의 행위를 파악함에 있어 과거보다 현재의 상황을 중시하며 환경이 인간의 인지과정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지각되고 인식되는 가에 관심을 둔다. Lewin은 환경과 자신의 행위를 상호복합적, 연관적인 관계속에서 인간의 행위를 연구할 때에 비로소 객관적이다 라고 말해 인간의 천성(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성본능 )은 인지이론에서는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여러 요인들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장을 통해서 특정한 개인의 행위를 연구하는 것을 함수 관계로 역설하는 Field theory(장이론)을 Lewin은 말하고 있다. 인지이론의 발전 형성에 크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Gestalt학파 역시 Lewin과 같은 맥락으로 인간의 합리성을 말하고 있다. 그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인간이란 자신이 행한 행위나 타인들이 행한 행위의 원인을 분석하고자하는 초보적이며 상식적인 과학자이다. -인간의 심리현상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있는 여러 요인으로 구성된 Field에서 일어난다. -인간의 심리과정은 여러요인으로 구성된 장 의 상태를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고자 하는 경향을 가진다. 또한 인지부조화 이론, 사회 비교이론, 균형이론, 귀인이론은 공통적으로 인지부조화 를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합리성을 역설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 심리적으로 좋지 못한 상태를 나타내는 인지부조화 이론(Festinger)의 인간의 합리성 역설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인지들 사이의 부조화 상태를 제거 혹은 감소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 그리고 인지부조화 상태는 새로운 인지를 첨가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던 인지를 변화시킴으로써 제거 될 수 있다.- 셋째, Heider의 균형이론(Balance theory) 역시 앞의 두 이론과 거의 상통하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인간은 복잡한 환경을 질서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며 어떤 특정현상을 나름대로 해석 할 줄 아는 단순심리학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지적 균형을 추구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지적 부조화를 피하고자 한다- 이에서 볼 수 있듯이 균형이론도 인지적 부조화를 피하고자하는 점을 말하고 있다. 넷째, Heider의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이다. -인간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행한 행위 혹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자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인과적 관계를 설명하며 이를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정보를 종합하여 연구한다- (균형이론에서는 주의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바로 인과관계이다. 이점은 행태주의자들의 S-R 과 완전 대조가 되는 것이다.)넷째 -인간의 인격형성에 관한 이론 비교-우선 또 다시 S. Freud의 을 들어야 하겠다. 인간의 무의식세계를 중시했던 Freud는 인격형성에 있어서도 역시 인간이 성본능에 지배되는 비합리적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Freud는 1923년 에서 인성을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 Id, Ego, Superego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Id란 쾌락을 추구하는 충동적 욕구로써 즉각적 행동으로 표출하여 즉각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서 충동 에너지 라고 한다. 따라서 Id는 이성이나 논리보다는 비사회적, 이기적이라 할 수 있는 맹목적 충동에 지배되는 요소이다. Ego(자아)란 쾌락추구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욕구를 유보시키는 현실원칙에 의해 지배되며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합리적 에너지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원칙으로 인해 쾌락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보류하는 것이며 인간이 처한 환경의 상호 작용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 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