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작가 소개샬로트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의 빈농의 집안의 아홉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초등교육을 마치고는 직공으로 일하면서 생활을 돕다가 독지가를 만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하고 영국 국교파의 목사가 되었던 분이었던 만큼 근검착실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었고, 어머니 마리아 브란웰은 콘월 출신으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기숙하면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여성이다. 이들은 요크셔의 하츠헤드에서 결혼하여 장녀 마리아 (1813년)와 차녀 엘리자베드(1884년)를, 돈튼으로 옮긴 후 3녀 샬로트 (1816년), 장남 패트릭 브란웰(1817년), 4녀 에밀리(1818년)와 5녀 앤(1820년)을 낳았다.샤롯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갖은 고생 끝에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와 1820년 4월 목사보(牧師補)로서 요크셔주의 호워드로 부임했다. 이들이 호워드로 옮겨온 이듬해인 1821년 어머니 브론테 부인이 암으로 죽었다. 이때 샬로트의 나이 다섯살에 불과했고 에밀리는 세 살, 앤은 겨우 한 살이었다. 또한 1825년에는 큰언니 마리아와 둘째 언니 엘리자베드가 병사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와 언니를 잃은 어린 딸의 상대가 되어 주지 못했다. 가사와 아이들을 돌보아주려고 온 이모 엘리자베드 브란웰 역시 완고하고 편협한 메더디스트 신자였으므로 인정에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상냥하고 자비스런 여인은 못되었다.외롭게 나날을 보내던 샬로트은 코우원 브리지에 있는, 목사의 자녀를 수용하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들 자매들의 유일한 낙은 변두리의 거친 고원을 뛰어 다니며 노는 것과 문학에 대한 유별난 흥미였다. 코우원 브리지에서 비교적 엄격한 교육을 받은 뒤, 1831년 샬로트는 로우 헤드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 후로는 비교적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를 하였고, 1년6개월의 과정을 마친 뒤 이 학교의 조교가 되었다. 그 후 약 8년 동안 그녀는 유복하지 못한 가정을 도울 겸, 어머니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가정 교사직을 얻어 집을 떠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사건과의 공통성보다, 작가의 성격과 작품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성격의 유사점이다. 실제로 우리는 고아인 제인 에어의 성격과 샬로트의 성격에서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유사한 성격은 어쩌면 브론테 세 자매에게 공통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전적 『제인 에어』는 작가가 자라온 환경과 생활을 알지 못하고는 정확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없는 작품이다. 따라서 그 배경을 안다면 『제인 에어』의 복잡한 해석이 자명해진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낭만주의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의 작품에서도 기괴성과 신비성을 드러내고 있다. 밀실에 감금된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의 이야기라든가, 먼곳에 있는 애인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이 이런 것을 풍기고 있다. 이런 요소가 내재해 있는 한 엄격한 의미에서 자전문학이라고는 할 수 없다.2 성장소설『제인 에어』를 성장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성장소설(成長小說, 통과제의 소설, 이니시에이션 소설)이란 주인공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 과정을 형상화한 소설을 말하며, 소설의 발단은 대체로 주인공의 지적(의식적) 미성숙, 사회적 지위의 미천함, 애정의 결핍 등으로 인한 증세가 갈등의 양상을 보이며 전개되다가 주인공이 이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의 단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제인 에어』에 있어서 이러한 정의는 어느 정도 옳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제인의 출생이 고아였고, 그녀가 별로 예쁘지 않은 외모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은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며 자신의 주체로의 삶을 살아가는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소설에서 제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일인칭 주인공시점의 소설 상 특징으로 인해, 제인의 성장과정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내면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이 되는 까닭에 독자들은 주인공의 신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3 제국주의적 소설그리고 『제인 에어』를 자서전적 소설나 성장소설로 보는 견해 이외에도 작품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분, 계급, 나이 등을 초월한 연애소설, 사랑소설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이상과 같이 소설『제인 에어』는 한가지 주제로 일관되게 쓰여진 글이 아니라 그 시대배경과 상관되어 여러 가지 사회적, 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Ⅲ. 작품 감상『제인 에어』는 프론테의 제 2작으로 작가의 나이 31세 때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대단한 호평을 받아 문학적으로 주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맹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이다.이 작품은 불쌍한 고아 제인이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로체스터가의 가정 교사로 고용되어 오만 불손한 주인 로체르터와 온갖 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연애와 모험의 로맨스이다.이 작품은 작가의 자서전과 같은 것으로 그녀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하여 격정적인 정열과 풍부한 상상력을 구사하여 참신한 언어로 독자층에 널리 어필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작자 자신의 인간성이 강렬하게 부각되어 있으며, 그녀의 생활 경험이 생생하게 묘사되었고 당시의 위선적인 교육 제도와 함께 여자의 격분과 정열과 비탄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호소하였기 때문에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이 작품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다만 이 작품의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내용이 너무 허황되고 줄거리의 전개에 우연성의 남발이 심하여 소설로서의 성공작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작품이 출판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일반적인 소설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자유분망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상상이 황량한 광야에 펼쳐져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룬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이 작품이 출판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독자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 고 있는 까닭은, 이 작품이 멜로드라마적이긴 하지만 격렬한 정열이 넘쳐흐르는 로맨틱한 줄거리와 융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제인이 작가 자시의하여 제인은 그 청혼을 기쁜 마음으로 승낙한다. 하지만 로체스터에게는 비록 미쳐 있기는 하지만 엄연한 아내가 있었다. 로체스터의 처남이 그 사실을 알고 영국으로 달려와 제인의 결혼을 중지시킨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제인은 새벽에 아무도 몰래 돈필드를 떠난다.돈필드를 뛰쳐나온 제인은 가까스로 무어 하우스에서 피난처를 찾게 된다. 그 곳에서 리버즈 가족과 얼마 간 사귄 후에 제인은 목사인 센트존 리버즈를 위해서 그곳 여학교의 교사가 된다. 그러다가 리버즈 가족이 자기의 사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데이라의 존 삼촌으로부터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제인은 상속받은 재산을 사촌들과 나눈다. 센트 존이 제인에게 결혼해서 전도 사업의 동반자로서 함께 인도로 선교하러 가자고 끈질긴 구혼을 한다.고민하던 제인은 어디선가 자신을 외쳐 부르는 로체스터의 음성을 듣는다. 제인은 홀린 듯 로체스타를 찾아 돈필드로 달려간다. 하지만 저택은 이미 불타 버리고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는 죽고, 그는 불붙은 저택 속에서 눈이 멀고 불구가 되어 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사랑을 다시 찾은 제인은 로체스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해서 행복을 찾는다. 결혼한 지 2년 후에는 첫 아기를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로체스터의 한쪽 눈이 회복된다. 이러한 모둔 사건들이 제인 에어가 10년 후에 회상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Ⅴ. 현실에의 대입우리 사회에서는 요즈음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문화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착된 구조에 대해 도전하는 시도도 많이 목격된다. 문화 형성의 주요 매개체인 글쓰기 행위에 있어서도 가부장적 전통은 역사적으로 그 뿌리를 깊이 박고 있어 여성작가를 그 전통에서 배제된 주변부로 내몰았다는 반성을 낳게 한다. 문화의 중심권에서 소외된 여성작가들의 자의식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중심 권력과 절충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방자로 영원한 떠돌이가 되기도 하여, 그들의 글에서 타협과 대립이 복합된 미묘한 심리적 긴장을 발견하게 된다. 두터운 어넘어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는 신데렐라의 로맨스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다. 여성의 존재를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이러한 환상적 로맨스 뒤편에는 언제나 남성의 절대적 권력과 권위가 도사리고 있어 가부장제 구조는 영구히 지속된다. 이와 똑같은 상황에서 우열의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여성의 독립된 자아의식을 작가는 여성 주인공을 통해 모색한다. 19세기 빅토리아조 사회가 남성에게 부여한 모든 권력에 대항해 남녀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아니면 남성의 권력을 무력화시킬 여성 원리는 무엇일까.열렬한 사랑과 깊은 이해로 사회적 간극을 넘어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청혼하지만 그래도 그의 의식 속에 지워지지 않는 희미한 남성중심 사고를 제인은 끝까지 파헤치며 고발한다. 자신이 비록 가난하고, 평범하고, 내세울 것은 없어도 남의 부추김에 따라 움직이는 단순한 꼭두각시나 수동적 기계가 아니라 고귀한 영혼과 뜨거운 감정을 지닌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제인은 일깨운다. 사랑의 열정에 휩싸여 자신을 신비화하거나 추상화에 빠지지 말기를 또한 강조한다. 절대자 앞에서는 너와 나가 동등한 존재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오히려 작가는 도덕적 측면에서 제인이 로체스터보다 더욱 우월한 정당성을 갖게 한다. 비록 자신의 몸보다 더욱 사랑하는 로체스터지만 그가 미친 여인에게 속아 결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제인은 공동체의 윤리성을 내세워 그의 곁을 과감히 떠난다. 도덕성이 공동체적 규범에 너무 얽매여 있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준다면 여성이 지적이지 못하고 감상에 빠지기 쉽다는 사회적 편견을 뒤엎는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는 제인을 통해 여성에게 발휘되는 특유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남성 원리가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이를 치유하고 새 생명을 부여하는 여성원리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한다. 말에서 떨어진 로체스터를 치료하며 두 사람이 처음 대면하는 장면, 이후 불 붙은 침대에서 잠자는 로체스터의 목숨을 구하는 제인, 미친 아내의 방화로 두 눈이 멀고 팔이 잘린 로다.
1. 조직론에 있어 목표에 관한 연구가 왜 중요한가? 또, 연구되어야 할 주요 초점은 무 엇인가?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자신이 달성하고자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표달성을 위해 해야할 세부사항을 생각하고 그에 맞춰 노력하여 목표를 달성코자한다. 그 목표가 달성되었다면 또 다른 더욱 높이 있는 목표를 설정하게 되고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만약 그 목표가 실현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되었다면 조금 낮은 목표를 설정할 것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조직과 인간을 분리해 보았을 때에도 분명 인간과 목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일반적으로 조직에서 또한 분명한 목표가 있다고 간주된다. 예를 들어,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표하고, 행정은 시민에 대한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학교는 학생에 대한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조직의 목표는 조직이라는 실체가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집합성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따라서 조직구성원의 개인적 목표와 집합체로서 조직의 목표는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적인 노력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목표에 관한 여러 연구방향 중 조직의 목표와 조직 안에 속해 있는 개인의 목표가 다를 경우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가 주요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과 그 조직에 속해있는 조직원의 목표가 다를 경우 조직원 공동의 목표인 조직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목표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고, 개개인의 목표에 맞춰 조직의 목표를 수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2. 조직이란 무엇이며 그 조직이 인간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를 고려하여 조직론이란 학문을 왜 연구하여야 하는지 밝혀라.I. 조직의 정의조직은 각각 다른 목적과 역할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조직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조직관, 즉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다양하다. 따라서 학자들의 조직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 정의가 다양한 것은 당 보았다.c Daniel Katz와 Robert Kahn는 『조직은 사회체계의 한 유형이다.』라고 정의하고 조직을 개방체제의 입장에서 파악하였다. 그들의 체계로서의 조직은 생산적구조와 생산지원적 구조, 공식적 역할구조, 통제 및 관리기능의 형태를 반영하는 구조, 관리구조의 일부로서 규제장치와 적응구조를 지니는 속성을 갖는다고 보았다.d David Silverman은 『조직은 특별한 특징을 지닌 사회적 제도이다.』라고 정의하였다.Silverman의 조직은 시간적으로 확인 가능한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창조된다. 조직의 창조자는 합법적인 상징으로서 중요한 목표를 제공한다. 합법적인 권한의 원천과 구성원간의 관계는 비록 논의와 계획된 변화(조정하거나 통제하고자 하는 구성원에 의한)의 주제이지만 비교적 잘 규정되어있다.e Dwaight Waldo의 조직은 『행정체제에 권위적, 관습적, 개인적 상호관계의 구조』로 정의될 수 있다.f F. Sherwoodd와 J. Pfiffner는 『조직이란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대면적 접촉(Face to Face contract)이 곤란하고 많은 과업을 행하며, 구성원들이 상호과업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합의된 목적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g G. R. Terry는 『조직은 목적달성을 위해 필요한 활동들을 결정하고 집합하여 배열하는 일이며, 여기에 사람들을 배정하고, 적절한 물질적 요소를 준비하며, 각기 책임을 맡은 개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일이다.』라고 정의하였다. Terry의 정의는 목적달성을 위한 분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h James March, Johan Olsen과 Michael Cohen의 조직은 『문제나 이슈를 찾고자 하는 선택, 의사결정 상황을 찾고자 하는 감정, 해답을 줄지도 모를 단서를 찾는 해결책, 그리고 일할거리를 찾는 의사결정자의 집합체』이다. 그들의 조직관을 조직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또한 조직의 비공식성과 비합리성을 강조하였다.i Karl Weick에 의하면 『조직화(조직에 제라고 조직』을 정의하였다.m Richard Hall(1982)은 『조직이란 대체로 확인이 가능한 경계, 규범적인 질서, 권한의 계층, 의사전달체계 및 구성원을 조정하는 체계를 가진 집합체』라고 정의하였다.n Scott(1964)은 『조직이란 비교적 특정적인 목표를 다소간에 지속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구성한 집합체』라고 정의하였다.o Talcott Parsons(1960)는 『조직은 그 조직이 속해 있는 더 큰 조직(사회)의 기능에 공헌되는 상당히 영속적인 사회체제이다.』라고 하였다.2) 조직이 통합적 정의앞에서 살펴본 주요 학자들의 조직정의를 통합하여 조직을 정의하면 , 조직이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정립한 체계화된 구조에 따라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며, 경계를 자기고, 외부환경에 적응하는, 인간들의 사회적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적 조직정의에 포함된 요소들을 좀더 상세히 고찰해보면 다음과 같다.a 조직은 목표 지향적이다. 조직은 목표 달성을 위해 존재한다. 조직구성원들의 목표는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조직의 목표가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은 이런 목표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조직은 그 자체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목표에 따라 조직 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직구성원의 행동을 통제한다. 조직의 목표란 조직이 달성하려는 미래의 바람직한 상태로서, 조직에는 일반적으로 서로 상충될 수도 있는 복수의 목표가 있다. 또한 이러한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는 거의 상충되어 존재하는데, 이것들을 통합시키는 것이 조직관리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b 조직은 체계화된 구조와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조직이 공동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수행하여야 하는 과업을 여러 부서에 분담시키고 분담된 과업에 대한 구성원들의 역할을 규명하며 그 역할간의 관계를 결정하는 규정과 절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체계화된 구조가 있음으로해서 조직내의 여러 가지 활동이 분관리 등이 포함된다.e 조직은 인간과 그러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없는 집단을 우리는 조직이라고 하지 않는다. 통합적으로 조직정의에 포함되는 네가지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그것을 조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데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은 조직의 형성이 일단 공식화되고 정착화되면 조직구성원들의 존재와는 별도의 실체를 갖게되어, 조직구성원들의 사망이나 교체 등에도 불구하고 수세대나 수세기를 존속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조직은 인간이 하는 일에 영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II. 조직론이란 학문을 왜 연구하여야 하는가대부분의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조직에 몸담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 처음 접하는 장소인 병원도 하나의 조직이며 유치원이나 초·중·고등학교도 하나의 조직이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재화는 기업이라는 사조직에서 생산된 것이며, 일생동안 적어도 한번은 가게되는 관공서나 지하철 등은 정부라는 공조직에서 운영되는 것이다. 결혼식을 올리는 예식장도 하나의 조직이며 죽어서 묻히게 되는 공동묘지도 하나의 조직이다. 조직을 접하는 것 외에도 조직을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한 사람이 어느 조직에 장기간 몸담게 되면 그 기관에 몸담고 있는 사람 특유의 특성이 나타나게 되며, 또 그 특성으로 그 사람의 직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군인은 군인의 특성을 나타내고, 의사는 의사의 특성을 나타내고, 운동선수는 또 그와 같은 특성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조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개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조직은 인간에 대한 영향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준다. 정치인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어떠한 조직을 기반으로 정치에 뛰어들고, 또 특정한 정당에 소속되어 정치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 조직목표의 정의조직목표란 조직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미래의 상태이다. 조직의 목표란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의 목표가 아니고 인간의 집합체인 조직이라는 실체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그러나 조직 그 자체만으로는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조직의 목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목표가 달성되고 나면 그 목표는 목표로서의 존재가치가 상실되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목표는 결코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언제나 추구되어야 할 상태인 것이다.이러한 조직의 목표는 조직에서 합법성 및 정당성의 제공, 조직구성원 행동의 지침과 동기부여, 의사결정지침의 제공과 불확실성의 감소, 그리고 효과성의 평가기준을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한다.II. 조직목표의 변동조직의 목표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정치적·사회적 환경이나 조직인 조직구조가 변하는 경우, 또는 조직목표가 달성되었거나 달성이 되지 않는 경우 변동되는 수가 있다. 조직목표의 변동으로서 목표의 비중변동·목표의 승계·목표의 다원화·목표의 확대 및 축소·목표의 대치 등을 들 수 있다.1) 목표의 비중변동(specific change)이란 조직이 여러 개의 목표들을 지니고 있을 때, 조직목표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목표간의 비중변동 원인으로는 조직내 집단간의 세력변동, 정책의 변화 및 환경의 압력·변화 등이 있다.a 한라그룹이 정몽원씨가 회장을 승계하게 됨에 따라 새해부터 소그룹운영체제를 도입, 그룹조직을 둥화학공업-시멘트공업-건솔 및 엔지니어링-자동차 부품-유통·서비스군 등 5개 소그룹으로 개편하고 책임경영체제를 적극 시행키로 했다. (1996.12.23)b 코오롱 그룹이 이웅렬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맞추어 「안정적 성장」 에 역점을 두었던 과거의 기업문화에서 탈피, 「완벽주의」와 「일등주의」를 정착시키기로 하고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 대한 국제화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1995.12.18)c 금융회사들이 여성 전용 대출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지.
{Report< 과제 >Karl Marx와 max Weber의 이론들을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입장에서살펴보고 (내용을 나열하고)양자가 사회과학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라.(말하자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중심으로자신의 판단을 포함하라).과목 ; 행정 조직론담당 ; 송재석 교수님학부 ; 법정학부학번 ; 52010434이름 ; 박 새 롬제출일 ; 2002년 4월 17일{< 목차 >Ⅰ.베버............. 1. 생애2. 사상3. 사견Ⅱ.마르크스......... 1. 이론2. 사상3. 사견참고문헌매혹적인 오류 - 칼마르크스의 사상과 그것이 가져온 것 (문우사) 클라우스 호르눙막스 베버의 학문과 사상 (한길사)마르크스주의의 비판과 반비판 (일월서각) 사끼사까 이쓰로바르크스냐 베버냐 ( ) 강신준 이상률한국행정론 (법문사)행정학 백완기인터넷 사이트http://home.mokwon.ac.kr/~philkwon/marxism.htmhttp://myhome.naver.com/lsh2955/http://posths.posef.or.kr/~makeme/http://www.nobelmann.comhttp://was.pe.kr/du.htmⅠ. 막스 베버1. 생애막스 베버는 사회학, 정치학, 기타 사회과학의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장으로 받아들여진다.막스 베버는 1864년 4월 21일 독일 튀링겐주의 에르푸르트에서 상인출신의 국회의원 아버지와 경건한 청교도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베를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하이델베르크·괴팅겐 대학 등 독일 각지의 4개 대학에서 법학·철학·역사학·경제학을 공부하였고, 1889년 골트슈미트 교수 및 크나이스트 교수의 지도 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졸업 후 한때 사법관 시보로 법원에서 근무하다가 1892년 베를린 대학에서 골트슈미트를 대신하여 로마법과 상법을 강의하였고, 189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추천받아 다음 해 동대학에서 취임하여, 1987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국민경제학교럽 각지에서의 투병생활 끝에 1902년 무렵부터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연구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교수직은 사양하고 학문연구에만 전념하였다.1904년 이후 [사회과학·사회정책잡지] 편집에 관여하면서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1904)을 기고하였고, 1905년 러시아 제1혁명에 대한 러시아의 자유주의화에 기대를 가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을 발표하였다.1909년 독일사회학의 창립에 관여하였고, 이해부터 홍서 [사회경제학강요]의 편집을 맡았으며, 그 제3권 [경제와 사회](1921~22)라는 대작을 저술하였다.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하고 퇴역 후 정치활동에 투신하였다. 패전 후에는 독일민주당결성에 참여하여 계몽활동을 하였고, 헌법작성위원회에도 참가한 후, 1919년 베르사유강화회의에 전문위원으로 나가서 전쟁책임 추궁의 논거를 비판하였다. 한편, 1918년에는 빈 대학, 1919년에는 뮌헨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하다가 20년 6월 14일 폐렴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2. 사상1) 이념형베버의 방법론에 대한 논의의 중심개념이며 자주 논의된 이념형 은 현실의 일부 요소들을 논리적으로 정확한 개념에 의해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이 말은 원래 옐리네크에서 유래하지만, 베버에 있어서는 규범적 의미는 전혀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방법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베버에 의하면 사회학적 인식은 경험적 현실의 사유에 의한 정서 를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현실을 그 문화의의와 인과적 연관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 을 구체적인 목적으로 한다.베버는 기본적으로 리케스트의 가치 관계적·개성 기록적이라는 문화과학의 규정으로부터 출발하면서 그것을 한층 더 발전시켜, 오로지 개성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나 사회의 개성적 특질을 보편적 연관이라는 역사적인 형태를 통하여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으로 구상된 것이 이념형론 이다.이념형은 대양하게 산재해 있으며 서로 무관한, 대체로 현재하며 간혹 부재한 구체적인 개별현상들을 어느 한이 특징이다.근대의 관료제는 관청의 권한의 한계는 법령에 의하여 확정함으로써 나마용이 방지되고 안정성과 예측성이 높다는 것, 상하간의 권한이 다르고 지휘감독관계에서는 상하 계층제, 모든 사무는 문서에 따라 처리되는 것, 사무에의 전념을 요구하는 것, 안정되고 빈틈없는 관리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3) 자본주의 정신자본주의 정신이란 표현이 적용되어 그 어떤 의미를 가지며, 사람들에 의해서 찾아낼 만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단지 역사적인 개체 뿐이다. 곧 이 개체는 우리가 그 개체의 문화적의미라는 관점 아래에서 역사적 현실가운데 존재하는 복잡한 관계들을 개념적으로 통일성을 이루도록 결합시킨 것이다.그의 초기저작인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에서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가 도덕과는 무관한 개인적 이득추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로서의 일에 대한 엄격한 책임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의 문제제기는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칼빈교에서 거의 정확하게 발전되어진 종교윤리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자본주의 정신을 비롯해 천직이라는 관념의 토대인 합리적 생활장식은 기독교 금욕주의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전통주의를 극복하는 근대자본주의의 경제의식을 설명하는데는 두가지 학설이 있다. 즉, 근대자본주의는 합리적·금욕적 경제윤리에 의하여 영리의 획득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베버·트뢸치 등의 학설과, 인간의 자주적 의욕에 따라 끊임없이 영리욕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정신이라고 주장하는 좀바르트·브렌타노·토니 등의 견해가 그것이다.좀바르트는 경제사를 수요충족과 영리라는 기본원리에 의하여 구별하고, 수요충족을 전통주의의 의미로, 영리를 추구하는 사회를 자본주의사회로 규정하였다.베버는 근대자본주의 정신이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를 계승하였음을 밝히고, 자본주의정신의 본질은 직접노동으로 인하여 육체적 쾌락을 희생하는 금욕적·윤리적 활동이라 하였다. 이 밖에도 베버는 자본주의정신은 영리획득의 행위를 생활윤리·경제윤리화하며, 없다. 즉.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적 정신을 지닌 중산계급이 발흥한 데서 영향을 받고 자유주의의 승리를 가져온 주된 요인은 부르주아를 중요한 존재로 만든 경제적 발전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프로테스탄티즘이 어떤 자본가들에게 그들이 삶의 촉진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렇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Ⅱ. 칼 마르크스1. 생애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칼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프랑스와의 국경인 트리에(Trier)에서 성공한 유태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1835년 독일 트리에의 김나지움의 졸업 논문으로 인류전체의 복지에 힘쓰는 것이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명 이라는 휴머니즘적 사상을 토로했으며, 같은 해 본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법학·역사·철학을 공부하고 헤겔철학을 접하게 되어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헤겔 좌파에 가담하였고, 특히 헤겔의 종교관에 반대하여 무신론자가 되었다. 1841년 대학과정을 마치면서 데모크리스토의 자연철학과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의미 라는 철학박사 학위논문을 발표하였다.1842년 10월 퀼른으로 이주하여 급진적인 신문인 [라인신문(Rheinische Zeitung)]의 발행인으로 취임하여 혁명적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프로이센의 절대주의를 비판하고, 출판의 자유, 목재절도 단속법, 모젤강 농민문제 등을 다루었다. 이 시기를 통해 관념론적 견지에서 벗어나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고, 혁명적인 민주주의자에서 과학적 공산주의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라인신문]은 1843년 3월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폐간되었다.1843년 부친의 친한 벗의 딸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였다. 그녀의 가족들은 마르크스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실재로 그의 가족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생활하였으며, 여섯 명의 자녀 중에서 세 명은 굶어 죽었다.같은 해 10월에 파리로 이주하여 루게와 함께 [독불연감]을 발간, 이 잡지에 헤겔의 법철학 비판 , 경제철학논고 , 경제학 노트 , 유대8년 2월 파리에서 시작된 혁명이 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제국에 파급되자 마르크스는 브뤼셀·파리·쾰른 등지로 가서 혁명에 참가하였으나, 각 국의 혁명은 좌절되고 그에게는 잇달아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는 마침내 런던으로 망명하여 수년간 고립생활을 하게 되었다.1850~1864년까지 마르크스는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인 빈궁 속에서 지냈다.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다니면서 경제학을 연구하는 한편, 51년부터 미국의 [뉴욕 트리뷴 지]의 유럽 통신원이 되었다. 이 때 맨체스터에서 아버지의 방적공장에 근무하고 있던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재정적 원조를 계속하였으며, 마르크스 부인의 친척과 W.볼프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이 사람에게 바침) 등의 유산을 증여받아 마르크스 일가는 경제적 곤란을 덜었다.1859년, 여러 해에 걸친 정치경제학 연구의 최초의 수확인 [정치경제학비판] 제1분책을 완성하였다. [자본론] 제1권은 67년 함부르크에서 출판되었으며, 72년 제2판이 출판되었다.1850년대 말부터 1860년대에 걸쳐 노동운동이 다시 강화되자 마르크스는 노동자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기 위하여 1864년 9월 28일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를 창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치 아래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다. 오언주의·프루동주의·바쿠닌주의·라살레주의 등 각종 유파의 사회주의자와 영국의 트레드유니언주의·차티즘·급진공화주의 등 사회주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유형의 노동운동 단체까지 망라된 세계적 노동조직을 위해, 창립 선언·규약을 기초하고 그 주도권을 잡았다.1871년 마르크스는 [프랑스 계급투쟁]에서 파리코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형태의 하나라는 것을 밝혔다. 1875년 [고타강령]을 발표하여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여 노동자의 계급투쟁 의식에 필승의 신념 을 고취시킴으로써, 그 결과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병존하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빈궁 속에서 학구적 정열을 불태워, 건강을 해치다.
Ⅰ. 序유목민은 BC 2000~1000여 년경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유목민인 스키타이와 흉노(匈奴)에 대해 헤로도투스·사마천(司馬遷) 같은 고대의 역사학자들은 그들의 문화적 특징을 이동생활과 목축으로 묘사하였다. 이동과 목축은 유목사회의 중요한 특징이지만, 이것만으로 유목의 정의가 분명하게 내려진 것은 아니다.유목사회란 아프라시아(Afrasia)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지역에서 생활한 유목민 사회의 총칭하는 말이다. 아프라시아는 아라비아·사하라 사막 및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 해당되는 곳으로 오아시스 생활자와 유목민이 공존공영했던 지역이고, 유라시아는 북극해에 붙어 있는 툰드라와 타이가 지대 아래에 위치하여, 동은 만주의 대싱안링산맥에서, 서는 러시아 남부의 킵차크 초원, 북은 타이가 지대의 접경선에서, 남은 내몽골·준가리아를 거쳐 터키의 아나톨리아 평원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유목사회는 전자보다 후자를 가리킨다.이렇듯 세계 각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목민 중 몽골의 유목민과 아프리카의 유목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本1. 몽골1) 언어(言語)몽골은 언어 사용 면에서 거의 통일이 되어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구의 90%가 몽골 방언 중의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몽골이 과거 70년 동안 소련 연방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몽골어는 터어키, 우즈벡, 터키, 카자흐 그리고 한국, 일본 등과 유사한 알타이 언어 계통이다. 서부의 바양얼기에 거주하는 카자흐 종족과 바이칼 호수 근처에 사는 브리야트(Buryat) 종족을 제외하고 몽골의 여러 종족들은 몽골인들의 문자를 판독할 수 있다.칼카(Khalkha) 몽골은 몽골 전체 인구의 대다수인 77.5 %를 차지하고 있다. 방패(Shield)를 뜻하는 "칼카"는 16세기 중반부터 고지대 스텝지역과 산악을 따라 이동하던 몽골 유목민을 지칭하던 말이다. 20세기에 중부 지역과 동부 지역 먹는 음식이다. 몽골인들은 가축의 보호와 체내의 노폐물을 정화시키는 목적으로 여름에는 차강이데만을 먹는다.올랑이데는 가축을 도살하여 얻은 육류를 총칭하는 말로 추운 계절에는 육식을 주식으로 한다. 몽골인들이 가장 맛있게 여기는 고기는 양고기이며 다음으로는 소고기, 염소고기이다. 그러나 말이나 낙타는 식용을 목적으로 도살되는 일은 거의 없다.겨울의 도축기에 도살한 고기 중 양은 덩어리째 보관하고, 소는 대부분 육포와 같이 갈기갈기 찢어 말리는데 이처럼 찢어 말린 고기를 보르츠라 한다. 보르츠를 갈아만든 가루는 훌륭한 휴대식량이 된다.요즘 여름철의 별미요리나 특별한 손님이 왔을 때 쇠통이나 가축의 몸통에 달군 돌멩이를 집어넣어 양고기를 요리하는데 이를 조마 혹은 보도크, 호르호크 라고 한다. 이때 조리에 사용된 돌은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조리 후 꺼낸 뜨거운 돌을 손으로 비비기도 한다.몽골인들은 귀중한 손님이 오면 보즈(buja)라 불리는 고기만두를 대접한다. 몽골인들은 종종 물만두 즉 반시(bansi)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또 먼길을 떠날 때에는 호쇼르(khuusuur)라 불리는 튀김 만두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 가지고 간다. 이 음식들에는 모두 실파가 들어간다.양을 통째로 요리해 먹을 때는 여덟 개 부위로 해체해서 삶은 후, 살아있을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릇에 담아 놓는데 이것은 최고의 접대요리로 슈우스라 한다.일반적으로 차강이데는 하얀 색깔 때문에 청렴과 진심을, 올랑이데는 차강이데에 더하여 풍성함을 상징한다.대부분의 몽골사람들은 4계절 내내 차를 즐겨 마시는데 이는 육식을 하는 이들이 기름기를 없애기 위함이다. 수탸차는 벽돌처럼 된 차를 나무절구 속에 넣고 가루로 만든 다음 물을 넣어 끓이고, 물이 끓으면 신선한 우유와 소금을 넣고 잘 저어 만든 것으로 때에 따라서는 양기름을 첨가하기도 한다. 몽골인들은 수태차를 마실 때 약간의 고기 덩어리나 차강토스 혹은 샤르토스를 섞어서 먹기도 한다.몽골의 술은 일반적으로 아이락, 아르히 등이 있는데 이는 비교적 알수 있다. 그러나 이 소의 2대는 1대처럼 품종이 우수하지 않다.몽골에서 키우는 낙타는 쌍봉낙타로 주로 화물의 운송수단으로 사용된다. 종마와 마찬가지로 종자가 되는 낙타가 무리를 통솔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특별히 낙타치기가 필요하지 않다. 낙타는 많은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순화시키는 것이 용이치 않기 때문에 낙타를 다루는데는 큰 숙련을 필요로 한다. 낙타는 새끼를 매우 사랑하는 동물인데, 고대의 몽골인들은 낙타의 이 같은 점을 이용하여 조상의 무덤을 찾아내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즉 장례 후 어미낙타가 보는 앞에 새끼를 죽여 무덤 위에 던져둔다. 그리고 1년 후 조상의 忌日에 어미낙타를 데리고 매장추정지로 와서 풀어주면 어미낙타는 자기새끼가 살해된 곳을 신통하게 찾아내 슬피 운다. 어미낙타가 슬피 우는 곳이 바로 조상의 무덤이다.양떼는 수백마리의 단위로 큰 무리를 이룬다. 그러나 종자가 되는 양이 무리에 개한 구심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무리가 흩어져 버리고, 이때 무리에서 떨어진 양은 이리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그래서 양떼에 약 25% 정도로 염소를 섞어놓는다. 염소는 호기심이 강하고 스스로 영양가 있는 풀을 찾아내거나 위험을 피할 수도 있다. 또한 양과 염소를 함께 방목하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늘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염소가 한 곳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양을 이리저리 이끌고 다님으로써 초지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불까기는 가장 기본적인 목축기술로 가축의 우수한 형질을 보존하고 보다 나은 것으로 바꾸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또한 불까기는 암수관계를 규제하고 무리를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불깐 수컷들은 여러 용도로 이용되는데 불깐 말은 인내심이 강해 승용마로 쓰고, 불깐낙타, 불깐소는 똑같은 이유로 운송용으로 쓰인다. 또한 불깐 양은 신체가 커 연회시 차림고기로 이용된다.6) 여흥(餘興) 문화몽골의 어느 곳에서든 옛날의 고사를 강연하는 것을 아주 환영한다.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마두금을 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호르치라 에는 휴대하고 있는 코담배를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신년 하례식이 끝난 뒤 해가 떠오를 때까지 모두 차를 마시면서 환담을 즐긴다. 날이 밝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라마사원으로 가 라마승과 부처에게 예를 올린다. 그리고 이웃을 방문하여 신년인사를 올린다. 몽골의 이웃이란 아주 먼 곳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신년하례는 한달 이상 행해지기도 한다. 설날은 사실상 가장 추운 계절에 속한다. 몽골인들은 찬바람을 헤치며 도착한 세배객들에게 몸이 녹도록 고기와 함께 술을 대접한다. 따라서 정월에는 술 취해 말 위에 탄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 위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는 일은 극히 드물다. 몽골의 어린이들은 설날에 제기차기를 하면서 노는 일이 많다. 원래 제기차기란 다리의 근육을 풀어주는 일종의 무술로서 기마민족에게만 나타나고 있다.2 나담대회나담대회가 열리는 오보의 남쪽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차치르와 작은 마이항들이 공터를 중심으로 둥글게 건립된다. 큰 천막에는 자사크나 왕공들이 앉는데 이들의 의자는 남쪽을 바라보는 막사의 북단에 위치해 있다. 이들의 자리 앞에는 음식이 풍성히 차려진 상이 놓여져 있다. 또 천막의 정상은 오색의 장식물들로 수놓아져 있다. 귀족들이나 고급승려 및 귀빈들은 지위의 고저에 의거하여 그 양쪽으로 앉는다. 귀빈의 처나 여자들은 대부분 대막사의 옆에 가설된 천막에 않는다. 나담은 씨름, 경마, 궁술과 마술(馬術)로 나누어 행해지는데 그 열기가 아주 상당하다. 매 종목에서 우승한 선수들은 몽골의 최고 길상의 수인 9를 아홉번 곱한 81종의 상품을 타는 동시에 그의 뛰어남을 기리는 찬시도 헌상받는다.3 다를라카의식8월은 유목사회에서는 가장 풍요로운 때이다. 8월이 되면 몽골인들은 "복을 부른다"는 뜻을 지닌 다를라카의식을 거행한다. 원래 이 의식은 샤만의 유풍이지만 라마교의 전입 후 라마승들이 샤만을 대신하여 축수를 해주고 있다. 복을 부르는 법술은 화살을 사용하는데 오래된 화살일수록 효험이 있다. 화살의 상단에 하다크 16세기까지 몽골의 가장 중요한 대표적 종교로서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술적인 전쟁의 전문가들은 그들의 광대한 대륙에서 달, 별, 그리고 태양과 강과 같은 자연의 힘들에 그들의 종교를 기초했다. 오늘날까지도 샤머니즘은 몽골인의 심성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생활 곳곳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샤머니즘은 칭키스칸 시절 즉 초기 몽골 제국 시절에는 국가 무당이 전쟁에 관하여 충고함으 로써 막강한 세력을 발휘하였고 국가 종교로 인정되었다. 몽골인들은 텡게르(TENGER)라는 유일신을 믿었는데 텡게르라는 개념은 '하늘의 신','하늘의 힘센 지도자'라는 뜻이다.무속의 다른 기초 기능들에는 예언, 점, 그리고 잃어버린 가축이나 물건을 찾는 것이었다. 무당들은 춤과 노래 그리고 심지어 마약의 사용 등을 통해 황홀경에 빠져든다. 어떤 이들은 의식에 앞서 굶기도 한다.지금도 어느 곳을 가든지 '어버'라고 하는 성황당 같은 것이 널려져있다. 여전히 무당들이 있으며, 지방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젊은 사람들이 점을 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있으며 최근 도시에서 점술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2 라마불교라마(Lama)는 뛰어난 사람, 혹은 최상자를 뜻하는 것으로 가장 존경받는 승려에 대한 경칭이다. 라마 중에서도 특별한 고승을 활불이라고 하며, 달라이라마는 활불 중에서도 최고의 활불이다라마 불교가 처음 몽골에 유입된 것은 1230년대 오고타이때다. 그후 세조 쿠빌라이가 1253년 티벳을 점령했을 때 당시 라마 불교의 동자 승려인 파스파를 초청하였고 그가 세조의 존경을 얻어 라마 불교는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파스파는 티벳어를 기준으로 하여 몽골문자의 기원이 되는 파스파 문자를 제정하였다.몽골의 라마 불교는 티벳형 불교와 샤머니즘이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대부분의 경전이 몽골어로 번역되지 못했고 간단한 입문서 정도만이 소개될 뿐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라마 법회는 티벳어로 진행되며 참석한 대중들은 거의 그 의미들을 모른 채 예식에 앉아 있는 된다.
▶국정감사권국회가 국정의 공정집행여부에 관하여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국회는 법률의 제·개정이나 예산의 편성 이외에도 행정부를 견제·감시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행정부처의 업무수행을 감사하는 것도 국회 고유의 독립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헌법에서는 이에 대해 국회는 국정을 감사 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제61조제1항)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국회법에서도 국회의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에 관하여 이 법이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국정감사및조사에관한법률 이 전하는 바에 따른다 (제127조~129조)라고 명시되어있다.이는 오늘날 국회의 가장 실효성이 큰 통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국정감사원은 국민주권주의 대의제도에 입각한 의회중심주의, 권력분립에 원칙을 둔 국회의 독립적인 통제기능이다. 아울러 이는 입법·제정·인사기능 등의 국회의 기능을 실현하기 위한 보조기능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국회내의 야당 등 소수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등 기본권의 보장 기능을 가진다.▶국정감사의 목적국정감사는 입법기능과 국정 감시기능, 예산심의 등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료와 지식을 얻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국회는 행정기관을 감시, 비판하여 국정의 잘못한 부분을 적발 및 시정하는 목적도 갖는다. 또한 국정감사 활동을 통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정보제공적 목적도 갖는다. 국정감사의 결과 국회가 국가기관의 비위 사실을 적발하고 그 처리를 위하여 탄핵소추권, 해임건의권 등을 행사하거나 고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국회에 부여된 다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지 국정감사에서 직접 파생되는 것은 아니다.▶국정감사의 유래크롬웰 통치시대와 찰스 2세의 왕정복고시대를 지나는 동안 약화되었던 의회의 권한이 1688년 명예혁명 후에 다시 강화되고 권리장전 과 권리청원 등이 채택되어 인간의 권리와 의회의 조세동의권이 인정되는 등 법의 지배원리 와 의회주권이 확립처벌에 관한 법률도 제정되었다.이처럼 국정조사권의 근원국이라고 전해지는 영국은 전통적으로 양당제에 입각한 의원내각제의 정치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다수당의 간부들에 의해 내각이 구성되고 그들이 동시에 의회까지 지배한다는 정치역학적인 현실 때문에 오늘날 영국의회의 국정조사권은 사실상 별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영국과 같은 정부개방사회에서는 구태여 국정조사권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의회가 얼마든지 필요한 정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아무튼 영국의 의회정치에서 비롯된 국정조사권은 그 후 미국·프랑스에 영향을 미치고, 독일의 국정조사권에 관한 실정법하의 과정을 거쳐 대다수 헌정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국정조사권의 이념적인 바탕이 되고 있다.2미국국회가 정부를 감독하는 권한을 가지지 않는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 있어서 헌법에 명문규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세계 각 국 중에서 가장 많은 조사권을 행사한 국가이다. 미국에 있어서 국정조사권을 빈번하게 행사하게 된 이유는 대통령제에서 연유되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분리로 인하여 상호몰교섭상태에 있으므로, 입법부는 이것으로 책임추궁의 유일한 무기로 삼았기 때문이다.미국은 헌법상 명문으로 규정은 없지만 독립 전 식민지시대로부터 영국의회의 조사권을 보통법의 일부로 관행적으로 재수하였던 것이며, 독립 후에도 헌법상 명문규정은 없으나 의회가 그 권한을 행사하기 위하여 당연히 가져야 할 권한으로 일찍이 인정되어 왔다.3독일독일에서는 1849년의 제국헌법 초안 제99조와 1850년의 프로이센헌법 제82조에서 사실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사권을 인정하였으나 실제로 행사한 것은 1864년까지 4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후 1919년 바이마르헌법 제34조에서 의회에 조사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규정함으로써 국정조사권을 최초로 성문화하여 영·미와 달리 헌법상 근거를 갖게 되었다. 제2차 대전 이후 동·서독으로 양분되고 2개의 헌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서독은 1949년 헌법 제44조에 국정조사권을 규정로 규정하게 되었다.▶국정감사의 주체와 대상기관1주체국정감사권 및 조사권은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양원제에 있어서는 각원이 단원제에 있어서는 국회가 그 주체가 된다. 현행헌법상 국정감사·조사권은 헌법, 국회법,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가 국정일반 또는 특정사안에 관하여 감사·조사하는 권한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주체는 국회본회의·소관위원회·특별감사위원회 등의 국회가 된다.2대상기관국정감사의 대상기관은 정부와 관련된 업무를 집행하는 거의 모든 기관과 단체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감사의 대상기관은 국정감사및조사에관한법률 에 규정되어 있는데 국회의 상임위원회가 행정부 각 부처를 나누어 맡아 감사한다. 이는 위원회선정대상기관과 본회의승인대상기관으로 나누어 진다.위원회선정대상기관은 1정부조직법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 2지방자치단체 중 특별시·광역시·도 (그 고유업무에 관하여는 지방의회가 구성되어 자치적으로 감사업무를 시행할 때까지에 한한다.), 3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정부투자기관·한국은행·농업협동조합중앙회·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이다.본회의승인대상기관으로는 1위원회선정대상기관 외의 지방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 2위원회선정대상기관 외의 감사원법에 의한 감사원의 감사대상기관이 있다.이중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중앙정부가 위임한 업무를 수행하는 까닭에 적게는 2번 이상씩 많게는 4차례까지 감사를 받게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규모가 작은 지방행정기관은 업무부담을 감안해 격년제로 감사를 수행하기도 한다.▶국정감사의 대상사항1입법에 관한 사항국회는 입법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권과 조사권을 가진다. 입법에 관한 사항은 국회입법뿐만 아니라 위임입법의 범위가 지켜지고 있는가, 자치입법이 위임법률의 범위를 일탈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까지도 감사 또는 조사 할 수 있다. 이는 국회가 법률의 개정이나 폐지 또는 새로운 제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제도이 2000년도 국정감사는 정기국회 개회식 뒤 근 40일 동안 거듭된 파행으로 인하여 한 달이 넘게 지난 10월19일~11월27일로 일정을 정하였고 이번 2001년도 국정감사 또한 추석 연휴와 10·25 재·보선 때문에 정기국회 일정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국정감사를 9월10일~9월29일로 앞당겼다.▶국정감사·조사의 방법국정조사위원회는 국정조사를 하기 전에 전문위원 기타 국회사무처 소속 직원이나 조사대상기관의 소속이 아닌 전문가 등으로 하여금 예비조사를 하게 할 수 있다.(제9조제2항) 또한 위원회·제5조의 소위원회 또는 반은 감사 또는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의 제출을 관계인 또는 기관 기타에 요구하고,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을 요구하고 검증은 행할 수 있다. 다만, 위원회가 감사 또는 조사와 관련된 서류제출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재적위원 3분의 1이상의 요구로 할 수 있다. 위원회는 감사 또는 조사와 관련된 서류 등의 증거를 채택 또는 조사를 위하여 청문회를 열 수 있다.(제10조)청문회라 함은 국회의 위원회가 중요한 안건을 심사하거나 국정감사 또는 국정조사를 함에 있어,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판단의 기초가 되는 정보나 자료를 입수하기 위하여, 증인 등을 출석시켜 증언을 청취하는 것을 말한다. 공청회 및 청문회는 상임위원회의 경우 재적인원의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그 개최가 가능하다. 공청회 또는 청문회를 위해서는 그 개최 5일전에 안건·일시·장소·증인명 등 필요한 사항을 공고해야 한다.감사 또는 조사를 위한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절차는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 에서 증인 등의 출석의무,(제2조) 증언 등의 거부,(제3조) 공무상 비밀에 관한 증언·서류의 제출문제,(제4조) 증인 등의 출석요구(제5조) 등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국정감사의 진행정기국회가 개원되면 국회는 여야 총무협상 등을 통해 국정감사 실시 시기와 기간 등을 협의한다. 국정감사는 통상 9월말이나 10월초에 시작하여 상임위원회별로 10여 해서 다른 기본권의 침해가 있을 경우 무조건 국정감사·조사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고, 결국 국민의 알권리 등 국정감사·조사를 통해 달성되는 이익과 타인의 기본권 등 국정감사·조사를 통해 상실되는 이익을 형량해서 판단해야할 것이다. 국정감사 또는 조사에서 침해해서는 아니 되는 기본권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만이 아니고 인신에 관한 실체적 권리와 인신보호를 이한 사법절차적 기본권 등도 마땅히 존중되어야먈 한다.4규범조화적 한계국정감사 및 조사권은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세계를 균형있게 실현시킴으로써 자유민주주의통치질서를 확고히 뿌리내리게 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만 한다. 국정감사·조사권은 국가안보 등 중요한 공익을 명백히 침해하면서도 행사될 수는 없다. 이 경우에도 결국 침해되는 공익과 국정감사·조사를 통해 달성되는 이익사이의 형량을 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국정감사의 문제점과 해결방안▷문제점국정감사에 대한 지난 3년 간의 자료를 찾아본 결과 매해마다 같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1국회에서 요구하는 자료가 너무 많아 이것을 준비하느라 행정부가 할 일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국감에 사용되었던 자료가 다음 해까지 보관되지 않아 작년의 자료를 다시 요구해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이에 대한 행정부의 반발도 적지 않다.2국정감사에 이용되는 자료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국감자료 중 왜곡, 과장, 허위 사례가 적지 않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는 국민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도 있다. 국회의원은 피감기관에서 보내온 자료를 무성의하게 짜집기하여 수치 오류, 분석 오류의 발생이 빈번하고, 언론플레이를 의식한 한건주의식 국감자료 배포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사례) 1자료의 오류 - 보건복지위의 K 의원(한나라당)은 학교급식 식중독 환자가 95년 13명에서 99년3천444명으로 4년 사이에 260배 이상 급증했다는 자료를 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95년 환자 수에서 `1'이 빠졌다며 13명이 아니라 113명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