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오늘날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TV를 켜도 라디오를 들어도 그 외에 지하철, 버스, 길을 가다가도 우리는 수많은 광고를 접하게 된다. 그만큼 광고주들의 광고경쟁은 치열해져가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방식의 광고들이 있고 또 새로 생기기도 한다. 그 중에 몇 년 전 대중에게 매우 생소하고 신비스러운 이미지의 모델을 통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 건지 전혀 감 잡을 수 없는 SK텔레콤의 「TTL」광고와 흰 바탕에 손으로 쓴 것 같은 글씨로 '선영아 사랑해'라고 적혀있는 종이, 누군가에게 사랑고백이라도 하는 것 같은 종이가 지하철, 가로수, 벽 등 여기저기 붙여져 있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마이클럽」광고는, 뉴스로 나올 정도로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었다. 이렇듯 처음에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 낼 듯한 메시지를 전하다가 차츰 차츰 광고 내용을 밝혀 가 어느 시점에서 모든 것을 밝히는 형식의 광고를 티저광고(teaser advertising)라고 한다. (티저란 `살살 괴롭히다', `애태우게 하다'라는 영어단어 `티즈(tease)'에서 유래된 말로 놀려대는 사람, 또는 짓궂게 약 올리는 사람을 뜻한다.) 예를 들어 광고를 내보낼 때 처음에는 무엇을 광고하려는지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다가 차츰 가격, 회사명, 제품명 등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티저광고를 연작 호기심 광고 라 할 수 있고, 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이나 신제품의 광고에 사용된다. 그리고 티저광고를 내보내면서 광고를 접하는 이로 하여금 이것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애타게 하는 것이 티저광고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티저광고의 역사는 유명한 담배인 camel 에서 시작했다. 처음에 텅 빈 면에다 'they are coming'이라고 쓰고, 그 다음에 사막 사진에 똑같은 말을 써서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보는 사람을 매우 궁금하게 만들었다. 결국 낙타의 모습을 보여주며 camel 담배의 광고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1981년 8월 프랑스의 아브니어 라는 정당의 선면이 그대로 있고 가운데쯤에 물음표와 아주 작은 글씨로 `보아라 내일!! 무엇이 날까?' 라고만 쓰여있는 광고가 났는데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내일을 기대하라는 티저광고였고, 다음날 같은 난에 `별표 고무화' 광고가 실렸다. 이 광고는 신제품도 아니고 그전에도 이미 나왔던 광고인데 독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티저 광고의 기법을 쓴 것이다.한편, 국내 TV광고 중 최초로 티저광고기법을 쓴 것은 캉캉(CAN CAN) 팬티 스타킹 광고였는데, 헝가리안 랩소디에 맞춰 같이 캉캉 걸이 춤추는 애니메이션과 캉캉 영문 로고가 나오는 것으로 1차부터 3차까지 각각 차 단위를 1개월로 했고 1일 무더기로 8-9회의 광고로 반복효과를 노렸다.그 후 많은 상품광고에 티저기법을 이용했고, 최근들어 그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있다.본론티저광고의 조건과 효과사람들은 흔히 티저광고에는 별 다른 기법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제품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으며, 한 상품에 대한 티저광고는 그 수가 많지만 거의 비슷한 형식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티저광고 나름대로 분명한 법칙이 존재하며, 그것을 따랐는지의 여부에 따라 광고효과가 좌우된다.티저 광고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시리즈여야 한다는 것이다. 연속되는 광고로 점차 상품에 대한 정보를 밝혀야 한다. 두 번째로는 제품을 직접적으로 노출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광고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초기 광고에서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숨겨서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극대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셋째 사람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면, 같은 사이즈, 같은 간격을 두어 게재해야한다. 특히 광고의 사이즈는 일반 광고보다 크거나 두드러져야 일관성이 쉽게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한 제품에 대한 티저광고를 광고를 너무 오래 하면 사람들의 궁금증이 짜증으로 변하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궁금증을 밝혀주어야 한다.그렇다면 티저광고의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호기심유발이다. 제품에 대한 좋은 정보만을 수없이 내보내서 사람들을 짜증나고 무관 멀쩡한 남자가 눈에 띄는 색깔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자세로 소비자들을 자극한 광고로 화제가 됐었다.'M'이전의 현대카드 광고는 떠나라... 라는 말로 광고 자체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매출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M'의 티저광고는 현대의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도발과 엽기로 소비자를 자극해서 가입자 수를 늘리는데 큰 공여를 했다.{위의 두 인쇄광고 사진은 티저광고로 대체 M'이 무엇일지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했으며, 별 다른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아래 사진 중 왼쪽에 있는 사진이다. 이 광고를 내보내면서 드디어 'M'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하단 우측에 있는 광고는 멀쩡한 남자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며 빨간 원색이 아주 눈에 띄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보해양조의 《천년의 아침》옆에 있는 두 인쇄광고는 병 모양과 잔 모양의 솜사탕을 연상시키게 한다. (두 번째 광고는 솜사탕 아랫부분의 나무막대기도 보인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부드럽다는 뜻으로 솜사탕의{이미지를 보였고 거기다가 사르르~ 라는 광고문구도 부드럽다는 메시지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아직은 어떤 제품을 광고하는 건지 알려주지는 않고 있다.위의 두 편의 광고가 나온 후, 다음 광고로 드디어 보해양조의 천년의 아침 이라는 소주의 사진과 잔의 이미지가 나왔다. (잔은 여전히 솜사탕이다.)그 동안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광고가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는 그것이 천년의 아침 광고였음을 알고 더욱더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어 구매연결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뉴윈저 12》{뉴윈저 12 인쇄광고에는 그냥 봐서는 술을 광고하는지 잘 모른다. 술병은커녕 술잔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 보게되면, 위스키병의 모양이 광고 중앙에 도발적인 여인의 가슴, 가죽 재킷을 따라 깊게 파인 목선이 눈에 띄기 때문에 위스키를 광고하는지 알 수 있다.비교적 감성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위스키함께 무명 모델들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매우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좋아한다. 빈 공간에 준 이 있을 듯한 느낌만을 남긴 채, 그 이상의 정보를 전달해 주진 않고 있다.{결국{광고주의 의도대로 준 의 광고는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고, 특히 단순한 발음 또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기에 광고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게다가 친숙한 이름에다가 모델이 준 이 있다는 쪽을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연인 혹은 친구를 보며 웃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준이라는 애가 누굴까? 라는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티저광고에 대해 호기심을 넘은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호한 광고는 비교적 짧게 했었다. 결국 많은 전략적 티저광고를 통해서 준 은 성공을 거두었다.많은 영화들{요즘 들어 한국의 영화가 큰 인기를 타면서 영화 기획사에서는 영화포스터제작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에서 티저포스터(teaser poster)는 메인 포스터 공개에 앞서 맛보기로 영화를 소개하는 포스터다.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 메인 포스터보다 높은 유명세를 타기도 하기 때문에 한국의 많은 상업적인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 영화까지도 티저포스터로 영화를 홍보한다.◎ 슈렉 2우측에 있는 슈렉2'의 티저 포스터는 2001년에 나온 슈렉 의 포스터와 비슷하다. 특히 숫자 2의 윗부분에 있는 슈렉만의 특이한 귀 모양을 보면 더욱더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디를 봐도 슈렉 이나 영화 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초록색의 커다란 숫자 2 는 얼마 전 있었던 총선 분위기를 이용한 아이디어이다. 총선 후보들의 포스터를 벽보를 이용해 알리듯이 '슈렉2'도 이와 다르지 않게 슈렉까지 포함한 슈렉 2 의 세 등장인물을 벽보광고 하였다. 물론 여기서 슈렉은 2번이었다.{◎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보통 다른 영화에서는 모든 주인공이 나와 있는데 여자주인공 한 명만이 광고 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여름으로 보이는 계절. (실제로는 한 겨울에 사진을 촬영했다고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비슷한 형식의 광고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많은 젊은 신규가입자를 확보하였고, 그 동안 있었던 011은 아저씨 번호 라는 의식을 깼다.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동통신업체들의 중요한 타겟이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맞는 감성적이고 이미지적인 광고로 소구를 한 것이 큰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함축적인 메시지와 TTL의 뜻을 밝히지 않아 소비자들의 개인적 해석을 하도록 하여 소비자들을 TTL에 적극적으로 만들었고, 모델 비공개 전략 으로 광고의 신비함을 더했다. 광고 제작진의 말로는 대부분의 TTL광고가 젊음과 자유 그리고 성장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단지 TTL의 광고만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샀고, 결국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회를 더해 갈수록 점점 더 해석하기가 어려워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더해진 것이다.박제된 물고기가 갑자기 살아나서 모델 주위를 날아다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다 앞에서 커다란 뼈 사이를 지나는 장면도 있었다. 파도가 몰려오는 바닷가에서 태엽이 달린 잠수복을 입고 바닷물 속에서 힘겨워하는 모델이 헬멧의 깨진 유리 사이로 밖을 본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 난해함이 극에 달해서 보는 사람들이 지쳐갈 때쯤 새로 선보인 광고가 바로 토마토편이다. 흔히 채소와 과일의 중간이라 불리는 즉 20대 전후의 젊은이를 상징하는 토마토가 벽에 부딪치며 터진다. 그리고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의 주 관심사인 공부와 이성문제에 대해 그간 입이 굳게 닫혀있었던 모델이 입을 열었다.요즘 TTL광고주제는 요가 이다. 이것도 TTL의 직접적인 서비스에 대한 설명은 아니며,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정보전달이 전부이다. 얼굴이 작아지는 요가동작을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요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모델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다만 마지막에 TTL제공입니다. 라는 문구만 나온다.(위의 사진 .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 )는 사회의 부(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재산의 사회에 의한 소유와, 노동에 바탕을 둔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려는 사상으로, 사회주의라는 말은 1827년 영국 오언파(派)의 출판물에 socialism으로 처음 등장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32년 프랑스 푸리에파의 출판물에 socialisme로 등장하였다. 사회주의를 주장한 마르크스는 옛날 사회에서는 넘어설 수 없는 신분 계급이 있으며 그와마찬가지로 요즘 자본주의에는 부의 격차가 있다고 했다. 이것은 예전의 신분 계급사회가 사람들을 갈라놓은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부의 격차는 있어도, 상류층의 위치를 누구나 차지할 수 있고 또한 엘리트들은 끊임없이 바뀐다. 자기 자신의 노력에 따라 그 위치를 자신의 지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에는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할 기본적인 자유를 금지하고있다. 사회주의 체제는 경제적 권력이 한군데로 집중되어 있고 이 권력에 의해서생산이 이루어진다. 모든 일이 최고 권력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지혜와 재능과 자질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이런 일반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에 반해, 현대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표적인학자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 (Mises, Ludwig Edler von 1881.9.29~1973.10.10)는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로 사회주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모든 생산수단이 조직화된공동체의 배타적 통제하에 있는 사회. 이것이, 그리고 이것만이 사회주의이다. 모든다른 정의들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즉 사회주의는 궁극적으로 생산수단이 사회화된 체제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정책 이라 말했다. 미제스에 따르면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사회주의의 연구자들이 사회주의의 핵심으로 동의한 것이며, 이 기본적인 핵심요소야말로 과학적 분석의 초점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비로소 경제조직의 원리로서의 사회주의를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된다.미제스는 사회에서 개인의 협력을 조직하는 다섯 가지 체제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다섯 가지 중 정부간섭주의, 명목상 사유인 생산수단의 사용을 정부관료가 통제, 명령하는 체제 . 이것이 미제스가 말하는 사회주의이며 이것을필자가 미제스의 주장에 기초하여 분석할 것이다.우선 미제스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자면 그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아 시장 현상을 개인적인 가치 판단의 소산으로 해석했고, 또한 정부가 시장경제를 간섭함으로 해서 일어나는 경제적 왜곡현상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오늘날사회주의 국가들이 경제 침체와 낙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와 명령 경제체제의 근간을 두고 제한된 시장기능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식때문이라 하였다.미제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업적 중 가장 큰 것이 사회주의사회에서의 합리적 경제계산문제이다. 생산재에서의 시장의 결여는 생산 결정에 이용할 계산의 척도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그는 사회주의의 핵심을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사회주의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취급되던 상이사회철학들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의 문제, 사회주의 계획의 완전한 실행에 필요한 정부의 강제적 통제가 얼마나 광범하여야 하는가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공헌하고 있다.미제스의 경제계산문제에 대한 공헌은 커다란 독창성을 가진 것인데 미제스는 재화가 어떻게 가치를 가지게 되며 재화간의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각 재화의 생산 공정의 한 과정에 놓여있는 반제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을 보이고 있다. 미제스에 따르면 모든 인간행위는 무엇을 가장 가치있게평가하는가에 따른 의사결정에서 비롯된다. 얻게되는 모든 것들과 이로 인해 잃어버리는 모든 것들을 여러모로 비교하여야 하며 이런 비교가 이루어진 연후에야 우리는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하지만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인간의 이런 선택을 통제하며 제한하고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화폐단위에 의한 계산 대신에 현물단위의 계산을 이용할 수 있다는생각이 있지만 현물단위의 계산방법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서로 다른 재화를 비교할 수 있게 하는 단일한 측정단위가 필요하지만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단 한사람혹은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의 가치판단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산의 공통단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합리적 선택이란 그저 불가능할 뿐이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생산재뿐 아니라 경제 내의 대부분의 제품들이 결코 합리적으로 될 수 없다미제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경제계산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유의 진정한 본질과 소유될 수 있는 서로 다른 유형의 재화들에 대해 이해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에서의 소유는 재화를 처분하는 권한이라고 말하였다.이런 소유에 대한 정의를 따르면 사회주의의 이상인 평등한 소유란 실은 평등한 통제 혹은 평등한 사용을 의미한다. 이는 요즘 공공 소유에 관한 논쟁에서 자주 망각되고 있는 중요한 논점의 하나이다.미제스는 소비재의 경우 많은 소비재가 사용되는 순간 소비재로서의 자격을 잃게되어 평등한 사용의 이상에 당장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평동 소유의 이상향을 실현하여 재화의 통제와 사용을 각 개인들에게 평등하게 나누어 줄 수 없을 것이라고말하였다. 이는 내구소비재의 경우나 비내구소비재의 경우나 똑같다. 그렇다면 평등소유에 관한 제안은 생산재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역시 무엇을 생산할지, 그것도얼마나, 무슨 생산방법을 사용해서 생산할 지에 대해 합리적 경제계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서 박탈하게 되는 즉, 생산재의 공유원칙의 실제 운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내재적인 논리적 결함을 안고 있다.예컨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나, 가깝게는 북한 동포의 경우당장 끼니를 이어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일 것이다.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 기초적고민의 해결 없이 고차원적인 행복 추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우선 원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한끼의 음식일 것이다. 동물적이며 본능적인 1차적욕구의 해결 없이는 스스로가 배고픈 문화인이 되기를 자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제스는 부의 증대를 위해서 생산성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생산성의 증대는 재산의 소유형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재산의 공동 소유를 통한 사회총생산량의 공동분배인 사회주의 제도는 결국 생산성의 감소로 부의총량의 감축을 가져온다. 절대적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정부 기구들이 사업의 기획에서부터 사업의 착수 그리고 평가마저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부의독단에 의한 폐해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에 권력이 지니고 있는 속성상 권력유지를위해 사실을 감추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기법의 도입을 꺼리게 된다. 만약 이들이 보다 효율적인 자본주의 적 요소를 인정하기 시작한다면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는 보장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하에서 무정부적 생산을 경제 전반의계획이라는 합리적 체제로 대체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능력이 사회주의의주요 장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제스가 그 누구도 특정한 계산방식의 도움이 없이는, 가치에 관해 이를 직접 명백하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무수한 생산의모든 가능성을 훤히 다 알 수는 없다. 라고 지적하였듯이 사회주의 공동체에서 존재하는 심각한 경제계산문제를 상기해 볼 때 사회주의 하에서의 생산은 합리적인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임에 틀림없다. 그 누군가가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어떤필요가 더 시급한 것인지, 그리고 어떤 생산과정이 목적한 결과를 이루는 데 가장적합한 것인지. 즉 시장이 매우 통상적으로 결정해내는 문제들이 사회주의 경제 하에서는 가장 어려운 장애가 되는 것이다.어떻게 생성되었든,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려는 모든 시도는 순수한 사회주의 경
사회여론조사서Ⅰ. 제 목 :여성 흡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Ⅱ. 조사 목적 :요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금연 열풍이 불며 흡연률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어느 정도의 생활 수준이 만족 돼 가면서 사람들의 건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에 근거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추세와 반대로 여성 흡연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늘어나는 여성의 흡연과 함께 청소년들의 흡연도 큰 문제가 됐었는데, (담배를 피지 않는 수험생에게 대학입시에 좀 더 이점을 주자고 하는 주장이 생길 정도였다. ) 최근에 청소년들의 흡연이 줄어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하지만 여성 흡연은 청소년 흡연처럼 줄어들지 않는 듯 하다.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듯이 보인다. 작년 한국금연운동협의회에서 18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흡연실태를 조사한 결과 18∼19세 여성 흡연률이 10년 사이에 10배 가량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대 여성의 흡연률도 매년 증가 추세인 것으로 드러났고 흡연시작 연령이 대학생 연령인 19∼24세로 가장 많았다. 술집이나 카페같은 곳에 가 보면, 많은 여성들이 담배 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많이 볼 수 있고, 넓은 공간에서는 여성의 흡연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밀폐된 공간에서처럼 많이 볼 순 없다. 사실 흡연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고도 못 본 척 하며 어색함을 감추는 사람들도 있다. 흡연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피우는 여성도 있지만 남을 의식하면서 피우는 여성들도 있다.여성 흡연은 남성의 흡연과는 달리 신체적인 특성상(예를 들자면, 여성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해야한다 생각이나, 남자에 비해서 면역력이 적다는 것 ) 또는 예전부터 이어온 여성에 대한 유교적 인식으로 인하여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여성 흡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반대하여 여성흡연은 남성 흡연과 전혀 다를 것이 없으며, 그러므로 어떠한 제재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여성 흡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서 다른 대학생들의 여성 흡연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고자 본 조사를 계획하게 되었다고 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이 살아 숨쉬는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렇듯 여성흡연에 대한 법적, 사회적인 불인정이 여성흡연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흡연하도록 할 뿐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래서 다른 대학생들의 여성흡연에 대한 의식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본 조사를 계획하게 되었다.Ⅲ. 조사일 : 2002년 9월 26일 ~ 10월 2일Ⅴ. 조사 방법 :설문지를 통한 방법(15명)과 인터넷 이메일(15명)을 통한 방법Ⅵ. 질문 사항1. 여성이 흡연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1)긍정적이다.2)그래도 여잔데... 하는 마음에 약간 꺼리게 된다.3)용서할 수 없다.4)별 생각 없다.2. 답변자가 남성일 경우 : 내 이성친구가답변자가 여성일 경우 : 내 친한 여자친구, 언니, 여동생이흡연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1)개인이 원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겠다.2)끊도록 권유하겠다.3)끊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3. 사회에서 왜 여성 흡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다고 생각하십니까?1)여성은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2)여성이든지 남성이든지 담배는 몸에 해로우므로3)이해할 수 없다.4)기타4. 앞으로 흡연 여성의 수가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1)금연 분위기로 인하여 줄어들 것이다.2)금연 운동에도 불구하고 계속 늘어날 것이다.3)변화 없을 것이다.5. 흡연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1)여자가 담배 핀다고 해서 욕될 것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담배 피십시오.2)건강 생각해서 조금씩 줄여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3)제발 담배 끊으십시오.6. 귀하는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1) 여자2)남자7. 귀하는 흡연을 하십니까?1)네2)아니오Ⅶ. 조사결과{1번2번3번4번5번6번7번1)4599115112)*************93)73298..4)2.4....(응답자 수)이번 여론조사는 흡연 여성에 대한 인식은 남성과 여성에 따라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여성흡연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흡연을 하는 남성일지라도 흡연 여성에 대해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 문항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아무래도 꺼리게 된다고 응답했다. 긍정적이라고 대답한 소수의 사람 모두가 여자였다는 것과, 용서할 수 없다고 대답한 사람 대부분이 남자였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많은 여자들이 유교적 방식의 남녀 인식에 대한 것에 반발하며 여성의 자유를 원하고 있으며, 아직도 남자들은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유교적인 사회의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인다. 두 번째 문항에서는 응답자의 2/3가 끊도록 권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여성흡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의 일부도 끊도록 권유하겠다고 대답했다.) 건강상의 문제에 비춰본 흡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세 번째 문항에서는 1번으로 대답한 사람의 대부분이 남자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에 비해 남성이 여성의 출산의 책임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여성응답자의 대부분은 건강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세 번째 질문의 4번째 보기 즉, 기타란 에서는 건강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보수성 때문에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 에, 또는 담배를 남성의 전유물이라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모두 사회의 남성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응답자의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네 번째 문항에서는 응답자의 40%가 앞으로도 여성 흡연은 줄지 않고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변화 없을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 중 한 응답자는 여성을 상대로 하는 금연운동이라면 '건강한 아기의 출산'을 내세울텐데.. 그 사실을 몰라서 흡연을 계속하는 여성은 거의 없고, 이 사회가 여성의 흡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계속 흡연을 하는 여성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아 금연 운동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라고 말했다. 다섯 번째 문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흡연 여성들에게 담배를 줄여나가길 바랬다. 여성흡연에 대해서 심각할 것 없다고 응답한 사람도 흡연 여성에게 담배를 줄이기 바란다고 한 것은 2번 문항의 분석 결과와 성격이 비슷하다.
인류가 처음 생겨난 때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까지도 인간은 어떤 가치척도에 의해서 인간들의 등급을 매김으로써 개인들간의 구분을 하여왔다. 사람들은 그런 척도 안에 살면서 계급을 지키며, 신장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회에서 살다보면, 삶의 방식이 비슷하면서도 크게 다른 것이 있기도 하다. 계층을 나누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그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계층이 있다는 뜻이다. 계층의 대략적인 의미는 재산, 소득, 지위, 신분 등 객관적 조건이 동일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여기서 필자는 소득을 기준으로 사회계층을 나누어 보았다. 소득은 개인 또는 법인이 노동·토지·자본 등 생산요소를 제공, 사회적 생산에 참가하여 얻는 재화로, 개인의 경우 근로소득 재산소득 등이 있는데, 이 개인에 귀속하는 소득과 유사한 것으로 기업소득 정부소득이 있다. 이것을 국민경제 전반의 기준에서 집계하면 국민소득의 개념이 되기 때문에, 소득은 그 사회에 대해서 얘기할 때 아주 중요한 지표가 된다.{구분5분위별 소득 계층의 소득점유율(%)배율(Ⅴ/Ⅰ)Ⅰ분위Ⅱ분위Ⅲ분위Ⅳ분위Ⅴ분위1997 1/47.913.217.623.238.14.811998 1/47.212.817.323.139.65.521999 1/47.112.316.722.641.35.852000 1/47.312.516.922.540.75.562001 1/47.212.216.622.641.45.762001 2/47.812.817.222.939.35.042001 3/47.412.517.022.740.45.502001 4/47.712.616.922.740.15.182002 1/47.512.516.822.840.45.40위의 표는 대한민국의 최근 6년 간의(1997년부터 2002년) 5분위별 소득점유율을 나타낸 것이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소득계층을 5단계로 구분할 경우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평균소득이 하위20%에 속하는 가구 평균소득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커질수록 소득격차가 심화됐다는, 최상위계층이 5.4% 등으로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높았으나 소득 절대금액 차이가 큰 탓에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소득이 가장 많은 상위 20%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6165만원인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하위 20%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914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상하위 20% 계층 간 소득격차는 6.75배. IMF 사태 이전인 96년에는 이 격차가 4.74배였다. 그리고 상위 20% 가구의 소득 점유율도 96년 37.8%에서 2000년에는 42.6%로 높아졌다. 이에 비해 하위 20% 가구의 소득점유율은 8.0%에서 6.3%로 떨어졌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이 같은 통계들은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는 있으나 그 발전과 성장의 열매가 모두에게 고르게 분포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을 한다 해도 그 결과가 모두에게 고르게 분포되지 않고 소수에게만, 또는 잘사는 사람에게만 간다면 과연 그것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어느 정도 성장한 단계에 이른 우리 경제, 초기에는 무조건적인 성장만을 바라보며 달려왔지만 이제는 분배의 문제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10분위 별로 따져보자면 상위 10%와 하위10%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소득이 높은 상위 10%가 하위 10%에 비해 9배 가량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97년 이후 작년까지 5년간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무려 30% 넘게 늘어난 반면, 하위 10%의 소득은 4% 늘어나는데 그쳤다. 소득이 높은 상위 10%의 소득을 하위 10%의 소득으로 나눈 10분위 배율은 97년 6.98에서 98년 9.41로 급격히 커졌다. 이후 99년 9.34, 2000년 8.86, 작년 8.78로 계속 낮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9배 안팎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기간에 1분위 계층의 월평균 소득은 72만9천200원에서 75만8천원으로 3.9%높아진 반면 10분위 계층은 508만9천800원에서 665만4천400원으로 화됐으나 2001년 0.319로 다시 높아졌다.이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 있는 표는 통계청에 있는 월 소득 계층별 가구분포 라는 이름의 자료로써, 조금 오래된 자료이지만 소득 불평등이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이와 같은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흔히들 우리나라보다 잘산다고 하는 나라에게나, 우리보다 못산다고 하는 나라에게나 그 정도의 차이가 다를 뿐이지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공통된 문제이다.우선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하는,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90년대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됨과 동시에 빈곤층 감소 미미했다는 조사발표가 있었다. 미국 경제가 지난 1990년대에 장기호황을 누리는 동안 기존에도 잘 나가던 미국인들의 경우 수입이 늘어난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빈곤에 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한 가구당 평균 연간 수입은 1989년 3만9천008달러에서 1999년엔 4만1천994달러로 증가했다. 그러나 1989년에 13%였던 빈곤선 이하 주민 비율은 10년 뒤에도 12.4%로 0.6%줄어드는데 그쳤다.미국 기혼남성 연간소득계층별 여성취업의 특성 변화 (1973-1993)----------------------------------------------------------소득 남성 기혼남성 여성경제활동 취업주부 주부평균5분위 평균소득 비율 참가율 평균소득 소득계층 (93년 $) (%) (%) (93년 $) (93년 $)----------------------------------------------------------1973년5/5 11,321 66 57 11,476 4,3424/5 24,140 81 59 12,567 5,9953/5 32,310 87 57 13,424 6,6052/5 41,318 88 53 13,907 6,4851/5 60,617 92 45 14,385 5,940-------------------------------------------------1/5 62,712 83 71 23,435 13,939----------------------------------------------------------1973-1993년간 변화율5/5 -35 -29 25 32 184/5 -25 -25 28 24 203/5 -15 -21 37 37 492/5 - 6 -13 49 46 901/5 3 -10 59 63 135----------------------------------------------------------주: 25-64세 이상 기혼 남자 대상.출처: (Burtless, G., 1996: 287).미국 소득계층별 연평균 실질소득 증가율(1947-1995) (단위: %)기 간 1947-1967년 1967-1973년 1973-1979년 1979-1989년 1989-1995년1/5 계층 2.8 2.2 0.5 -0.3 -0.52/5계층 2.9 2.3 0.5 0.3 -0.73/5계층 2.8 2.9 0.7 0.6 -0.44/5계층 2.6 3.0 0.7 1.2 -0.25/5계층 2.5 2.5 1.1 1.6 0.3평균 2.7 2.5 0.7 1.0 0.1주: 1995년 불변가격으로 계산.출처: EPI(1997: 55), table 1.7.기혼 남성의 소득 증가율을 보나 주부의 소득을 보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여성고용의 증대를 소득계층별로 보면, 저소득층 주부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고소득층 주부의 경제활동 참가율보다 느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앞쪽 위의 표) 1973년 당시에는 저소득층가구 주부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고소득층 주부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나 1993년에는 이 경향이 역전되고 주부의 소득증가 역시 고소득층의 고학력 주부에서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이 현상은 과거 여성의 취업이 주로 저소득층 가구에서 가계보조적인 저임금-저숙련 서비스 업종에 집중되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고소득층의 주부들이 제조업, 하이테크산업, 전문적 서비스산업 등에서 정규직이나 파트타임 고용, 한시적 고용 등의 형태로 활현저히 뒤지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는 상위 1/5계층을 제외한 전 계층에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소득계층의 4/5가 실질소득의 감소를 겪고 있지만 국민 전체의 평균 실질소득 증가율이 (+)로 나타나는 것은 상위 1/5계층의 소득수준이 절대적으로 높은 가운데 소득증가율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미 경제정책연구소(EPI)와 예산정책센터(CBPP)는‘소득경향 분석보고서’에서 1988∼1998년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최상위 소득계층의 소득은 15%(1만7870달러)나 늘어난 반면 최하위소득계층(20%)의 소득증가는 1%(110달러)에 못 미쳤다고 밝혔다. CNN방송은 이 보고서를 인용, 46개주에서 1998년 현재 최상위계층의 평 균 소득은 13만7500달러(약1억6000만원)로 최하위 계층의 평균 소득 1만3000달러(약1500만원)의 10배가 넘었다고 보도했다.이번엔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보자. 아르헨티나는 4년째 지속되는 경제난과 극심한 금융위기로 빈민층이 확산되고 있다. 전체 빈민숫자는 1천 534만 5천여명으로 아르헨티나 총인구의 42.6%를 차지하여 인구 10명당 4명 가량이 빈민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가 어려웠던 지난 70년대 중반에도 빈민층은 전체가정의 5%를 차지했고,80년대말 초인플레 시절에도 전체인구의 12% 정도에 불과했으나 경제난에 찌든 2002년처럼 전체의 약 43%에 이른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초긴축정책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와 고실업률, 예금동결, 페소화 평가절하, 월급 및 연금의 공채지불, 소득감소 등으로 빈민층 증가율은 사상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이 2일 발표한 빈민층 증가현황에 따르면 채무불이행 선언위기에 몰렸던 2001년 10월부터 2002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빈민층 숫자는 154만7천명이 더 늘었다. 이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 것으로 전망되어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난 악화로 빈민층에 새로 편입되는 사회계층이 일반적으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인 점을 놓고 볼 때 그나마 있다.
'역사는 해석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역사는 그 관점에 따라 그 내용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역사의 해석에 관한 논란거리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있다. 이 또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이해관계에 얽힌 관점 차이로 인한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본 기사(「동아일보」2001.4.21 - "崔萬理한글창제 반대 안했다")를 읽으면서 첫 부분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문중(門中)과 학파의 이해 관계, 시대적 상황에 의해 전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라는 문구에 주시하였다. 또한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최만리의 상소문과 이 기사의 본 내용을 보면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아마도 그 '해석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역사'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하여 필자는 인터넷 서핑에 의한 자료 수집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찬성하신 분들을 세종대왕과 같은 한글 지킴이로, 반대하신 분들을 최만리와 같은 한글 훼방꾼~(한글학회 누리집 인용)'과 같은 '罪人 최만리'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과 세종실록에 실려있는 최만리 상소기록, 그리고 본 기사에서 보는 최만리의 시각 차이를 비교, 분석하면서 필자의 생각과 주장을 전개해 볼까한다.먼저 최만리에 대해서 알기 위해선 최만리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최만리는 최하의 아들로 태어나 1419년(세종1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에서 집현전 박사를 겸임하였다. 그리고 1427년 교리로서 문과중시에 1437년 집현전 직제학을 거쳐 부제학에 올렸다가 1439년 강원도 관찰사로 갔다가 이듬해 다시 부제학이 된다. 이러한 그의 발자취는 그만큼 그가 학문적 자질이 출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만리가 있었던 홍문관은 사간원과 사헌부와 같이 3사에 해당하는 중요한 기관이었으며, 홍문관은 학문·문화사업분야의 주도적 기관이었다. 또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의 산실로서 유명한 학문연구기관이라는 것을 보아도 그의 학문적 자질을 짐작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청백리라는 칭호까지 듣던 당대 고급학자가 세종대왕에게 버림을 받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죄인취급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한글과 관련된 여러 문서에서도 최만리는 한글창제에 있어 가장 큰 반대를 한 사람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최만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진정한 충신이라기보다는 한글반대인물로 기억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다. 정말 그는 그토록 비난을 받아야할 죄인인가?그는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한글창제의 과정에서 분명 혁혁한 공헌을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한글공표를 얼마 남겨두고 그러한 상소문을 올렸던 것일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첫째, 만들어진 한글에 대해서 진심으로 그 결과를 반대하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적으로 중국의 문화를 몸에 익힌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어쩌면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글창제 과정에서 그가 참여한 정도나 그의 의견은 알려진 바가 없어 짐작을 할 수는 없지만 오직 남겨진 기록(비록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을 비추어보았을 때 그가 한글창제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에 서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하기엔 그 비약이 크다고 할 수 있다.둘째, 한글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상소문이었다. 특히 이번 기사를 통해서 더욱 붉거져나온 시각이라 하겠다. 최만리는 한글 사용에 대한 반대를 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건강악화를 우려해 그러한 고육책을 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상소문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문장을 통해서 이러한 주장은 뒷받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사와는 다른 설명이지만 최만리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한글의 사용은 결국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 공표와 사용에 있어서 시간적 여유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 올린 상소문이라는 주장(「조선사」2000년12월)도 있다.이렇게 최만리라는 인물의 본심에 대한 판단을 위한 해석은 크게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시각으로는 전자의 주장보다는 후자의 것이 좀 더 그 주장의 뒷받침이 약해 보인다.일단 최만리에 대한 몇 가지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후자의 주장은 좀 더 짐작에 그 증거를 맡기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그가 통정대부에까지 올랐고, 청백리로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그가 무능하거나 무덕했다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가 청렴결백한 사대주의자, 보수주의자였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기 학문적 자질이 뛰어났다고는 하나 결코 청렴결백과 신시대적인 사상을 결부시킬 수는 없다. 학문의 판단에 있어서 사대주의자나 보수주의자가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그리고 기사 중에서 보면 '그는 어느 신하보다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사업을 대단한 업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최만리 상소문에서 '신등(臣等), 신등(臣等)이 엎드려 언문의 제작을 살피옵건데, 지극히 신묘(神妙)하와 창물운지(創物運智), 창물운지(創物運智)가 멀리 천고에 뛰어나나, 신등의 구구(區區)한 관견(管見), 관견(管見)으로는 오히려 의심스러운 바가 있사옴으로, 감히 위간(危懇)을 베풀고 삼가 뒤에 조목(條目)을 드는 바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는 바, 거룩한 재결(裁決)을 바라는 바입니다.'라는 부분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한글을 직접 창제하는데 건강까지 받히면서 노력한 세종대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필자의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인해 너무 최만리를 낮게 폄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상소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예절을 매우 중시여겼다. 또한 세종실록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세종대왕과의 대화에서 최만리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대해 '기이한 재주'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단지 문장을 따라가다가 이 말을 한 것에 불과하며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한 말은 아닙니다.'라는 것을 보아도 그가 말의 사용에 있어 허구적인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게 한다.그리고 기사는 이 상소문이 합소라는 점을 들어 그의 상소 취지를 보호할 수 없다. 당시 정황으로 보아 최만리 혼자 그 일을 책임질 수 없다라는 것이 이 기사의 주장이나 그가 진정 청렴결백한 선비, 학자였다면 상소문의 내용은 자신의 생각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 청백리라는 그의 수식어는 이 근거에 인용되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또한 이 기사에서는 최만리가 세종대왕의 건강악화를 염려하는 부분을 또 하나의 주요한 근거로 제시한다. 다시 한 번 그가 진정한 청백리였다면 악화되는 임금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그 건강 악화 때문에 한글창제에 대한 반대를 했다는 것도 짐작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예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최소한의 임금에 대한 걱정과 충고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