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322 손용준인간자체의 선악을 논할 수 있는가? (인성에 관하여)인간자체는 선한가 악한가?최근에 들어서 강조되고 있는 교육의 이념 중에서 더욱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성 교육이다. 전인 교육도 새로운 인간형 창조도 모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인성 교육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이런 인성 교육이 한 개인의 평생을 좌우할 가치관, 사고방식의 형성시기인 아동기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옛 성인들의 인성론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올바른 인성론의 정립과 올바른 교육관의 정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럼 먼저 맹자의 인성론을 살펴보자. 맹자는 인간이 본래 착한 본성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의 혼란은 그 착한 본성에 기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의 입장에서, 인간 개인과 사회의 본래 모습(자연 상태)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 주며, 옳은 일을 좋아하고, 옳고 그름의 구분이 명확하게 인식되는 이상적인 질서의 상태라고 생각하였다. 맹자가 생각한 인간의 착한 본성은 결국 인(仁)과 의(義)라는 두 가지 덕목으로 요약된다. 인이 가족과 마을에서의 소박한 윤리 의식에 기반한 따뜻한 사랑을 의미한다면, 의는 보다 차가운, 즉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따지는 사회 정의의 관념을 표현한다. 맹자는 이러한 두 가지 모두다 인간의 내면적인 본성이라 생각했다. 맹자는 인간의 이러한 착한 본성을 발견하고 그를 실현함으로써 현실의 무질서와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하지만 문제점이 있다. 그는 금수와는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성으로 도덕적 가능성을 들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당연히 선하다. 그러나 그 본성은 맹아의 상태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존양과 확충의 공부가 필요하다. 즉 이 말은 사회 혼란 원인인 욕심과 두려움을 억제하는 인과 의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실현할 만한 구체적인 수단이 제시되어 있지 않고 단지 추상적으로 인과 의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적인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그는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덕을 의미하는 본능적인 지각을 너무 감정적인 것에만 치우쳐서 보고 있다. 본능적인 지각이 감정적인 이유에 의해서만 판단된다는 것은 너무 편파적이다.그리고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보았다. 순자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이익을 좋아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욕구는 이기적인 것으로, 채워도 끝이 없는데, 그 욕구를 채워 줄 세상의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사회의 각 개인이 저마다 모두 자신의 욕구를 채워 나가려 한다면, 더 많은 재화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이 바로 현실의 무질서, 혼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혼란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그런 이기적 욕구에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으나, 그 제한에는 정당한 이유와 기준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에 순자는 능력에 따른 차별의 논리로써 또 다른 개념의 예(禮)를 도입했다.여기서 순자는 욕망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으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이에 순자는 능력에 따른 차별의 논리로써 예라는 개념을 설정해 두었다. 하지만 이 예라는 것이 과연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억제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인간의 악한 본성을 태어날 때 갖추고 태어나는 이지로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럼 이런 이지를 갖지 못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결코 선하게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서게 된다. 즉 요는 이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개념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또한 고자는 인성을 무선무불선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무선무불선한 본성으로부터 직접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가 도출될 수는 없고, 그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그것을 매개할 수 있는 모종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이 말을 바꾸면 인이나 의와 같은 도덕적 행위는 본성과는 무관하게 외재하는 것이며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그는 인간 본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식욕이나 색욕과 같은 것일 뿐 인이나 의와 같은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였다.하지만 고자는 식욕이나 색욕과 같은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한결같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것은 선할 것도 선하지 않을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식욕이나 색욕을 그 내용으로 하는 인간의 본성은 선악 규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 행위도 선천적인 본성과는 무관하게 후천적으로 이뤄진다고 본다.이런 모든 사항들을 종합, 검토해 볼 때 인성에 대한 선악 판단을 기준으로 인성론을 정리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피적인 분류에 따른 단순 나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어떤 두드러진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그 사람 전체가 악인이라고 단정짓는 건 속단이다. 반대로 한 인간이 두드러진 선행 한가지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선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인간의 어떤 한 기질과 성격의 선악을 확정짓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단정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약간의 악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또한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한 요소는 가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선한 사람이나 극단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다. 인간이란 자기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존재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곧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와 같은 물음을 던지곤 한다. 이처럼 철학적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곤 할 때, 이미 철학적 사유는 그 깊이를 더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벌써 대상세계에 대한 나름의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