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키의 역사1) 세계의 스키사스키의 기원은 우랄 알타이지만, 시베리아 등의 동굴벽화나 바위의 조각 등을 통해 추측해할 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4, 5천년 이상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분포는 북유럽, 시베리아 중동 극동, 알래스카까지 퍼져 있다. 고대의 스키는 수렵 또는 동계 교통기구로서 쓰인 용구 같은 것이었으며, 그 후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특이한 발달을 보였다.스키에 관한 신화에 스키의 신으로 남자 신인 울과 여자신 스카디가 전해 내려온다. 노르웨이의 고시집 『엣다』에서는 오프라 1세(재위 995∼1000년)가 스키의 명수로 전해지며 그 밖에 시글슨왕(재위 1184∼1202년)도 오슬로의 빙상전쟁에서 스키를 사용했고, 하룰왕자와 헤밍도 스키로 경쟁했다는 말이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그 후 스키는 농민과 사냥꾼에 의해서 전해졌는데, 1740년 군대가 스키부대를 편성한 것으로 다시 성행하게 되어, 경기스키에 대한 발전을 보기에 이르렀다. 1860년 노르웨이 왕실이 스키의 승자에게 상을 주게 되면서부터 한층 더 성행하게 되어 노르웨이에선 스키가 국가적인 스포츠가 되었다. 1877년 크리스챠니아에서 스키 그룹이 결성되어, 제 1회 점프대회가 1879년 하스비힐에서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정식 스키경기의 시작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텔레마크 지방의 소년들이 멋진 폼으로 점프와 착륙을 한 후 부드럽게 급회전하여 정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키는 유럽 각국에 보급되었고, 특히 오스트리아에서는 마시알 즈달스키(1865∼1940)가 알프스 산악지대에 맞는 스키기술을 연구하고, 동시에 이것에 맞는 용구를 개발함으로써 급격한 발달을 가져왔다. 즈달스키는 노르웨이의 프리죠프 넌센(1861∼1930)이 쓴 『그린랜드 횡단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스키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리리엔펠트식 체구를 고안해서 짧은 스키와 짧은 지팡이의 제동회전을 특징으로 하는 리리엔펠트스키술을 고안해 냈다.즈달스키의 연구 결과를 한네스 슈네이더(1890∼1955)에 이스키도 1958년 1월부터 육군 3군단 산하에 「육군 산악 스키 부대」를 창설하여 진부령에 주둔시켜서 진부령 스키장을 개발시키는 한편, 그 곳에서 훈련하게 하였다. 당시 부대장 유기주 대위와 김춘석 중위, 이석환, 조장휘, 김진호 등이 복무 당시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이후부터 육군 공수 부대가 대대적으로 스키훈련을 시켜왔다.대한 스키협회 주최로 1947년 2월에 제 1회 전국 스키 선수권 대회가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리고, 제 2회 대회는 서울 광장리 광율성에서, 제 3회 대회는 울릉도 성인봉에서, 제 4회 대회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제 5회는 6.25사변으로 유산되고, 제 6회는 태백산 정거리에서, 제 7회(1953년)부터는 계속 대관령에서 개최되어 오다가 제 25회(1971년) 대회가 강원도 고성군 진부령 스키장에서 처음 열리게 되었다.(2) 국제스키연맹 가입제 21회 FIS(국제스키연맹) 총회(1957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개최될 때 KSA(대한스키협회)가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였으며, 제 11차 국제 스키 지도자 연맹 총회가 일본 국자오에서 개최될 때 KSA도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이 때 단장에는 전락원 회장과 임원 11명이 참가하였다.스키는 최근에 와서 레저 스포츠의 확산과 계절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로 스키가 대중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3. 스키 장비1) SKI PLATE플레이트의 기본 형태는 최근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그 구조나 재질은 급격히 변화되어 왔다. 구조나 재질에 따라 각기 그 용도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본 형태는 같다. Top, Center, Tail 부분이다. 초급자에게는 넓고 유연한 스키가 적당 하겠고 회전 동작이 빠른 좁고 단단한 스키는 상급자나 선수용이다. 적절한 스키 길이의 선택은 자신의 실력, 키와 체중을 고려하여 선택한다. 길이가 길수록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조절하기가 힘이 든다. 우리나라 스키장의 설질은 프랑스의 그것과 비슷하므로 프랑스제의 스키가 우리나 가까이 끌어당기고 양 스키를경사면에 직각이 되도록 나란히 한다.- 나란히 한 스키를 앞,뒤로 미끄러지짖 않도록 사면에 안정시킨 다음 눈이부드러울 때는 폴을 산쪽에 모아 짚고 일어나는 방법과 눈이 단단할 때는 엉덩이옆에 손을 짚고 일어나는 방법등이 있으며 슬로프에서는 엉덩이 옆에 손을 짚고일어서는 방법이 있다.- 혼자서 일어설수 없을 때는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요청한다.- 부상을 당했으면 곧 패트롤에게 연락을 해서 그 지시에 따른다.3) 오르는 법(1) V자 오르기V자오르기는 스키 앞부분을 벌리고 양쪽 스키의 내측 에지를 세워서 뒤로 흐르지 않게 주의하며 스키를 교체하여 계속 올라가는 방법으로 폴의 보조를 받으면서 오르는 것이 편리하다. V자오르기는 급사면에서 효력이 좋다. 완급사면을막론하고 직등행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이다.(2) 옆으로 오르기산의 최대 경사선에 직각으로 오르는 방법이다. 즉, 스키로 경사선을 한발한발 오르는 방법이다. 산쪽 에지를 강하게 세워서 한발씩 위로 올려 밟으며 올라야 한다. 양폴은 시차를 두고 찍으며 걷는 요령으로 오르는데 밑을 폴로 힘차게찍어 밀면서 올라 가는 것이 편하다.(3) 대각선 오르기옆으로 오르기하는 요령으로 사면을 대각선을 그리듯이 오르는 등행방법이다.옆으로 오르기와 대각선 오르기로 오르다가 방향을 바꿀때는 킥 턴 또는 리버스턴을 사용하여 다시 오르는 것이 좋다.에지는 강하게 세워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정확하게 찍어 밀면서 올라간다.4) 방향전환(1) 제자리에서 돌기스키를 설면에 평행하게 양폴을 찍으면서 균형을 유지한다음 스키 앞부분을돌고자하는 방향으로 내측스키부터 조금씩 이동시켜서 목적방향까지 회전한다.(2) 킥턴편안하게서서 양폴을 찍고서서 좌우어느 한쪽 스키를 앞으로 차듯이 들어세우면서 180o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음과 동시에 양폴은 몸뒤로 찍고 방향 바꾼스키에 체중을 실은 다음, 남은 한쪽 스키를 10cm정도 들어서 180o 방향으로 돌리며 스키를 평행하게 다시 모아서는 방법이다.(3) 리버스 턴리버스 턴은 정지 간 패러렐턴의 전반적인 리듬을 연습한다.스키 기초 기술 스키기술의 기본은 밸런스, 조작, 자세의 세 가지가 있다. 밸런스란 활강하는 스키위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몸을 지탱하는 능력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전후, 좌우, 상하의 밸런스를 말한다.밸런스는 저속보다는 고속도, 완사면 보다는 급사면, 정지사면 보다는 요철사면, 활강하기 좋은 설질 보다는 활강하기 거북한 설질이 보다 어렵고, 고도의 밸런스 감각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초심자의 밸런스 능력은 낮고, 상급자가 됨에 따라 밸런스 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다음은 조작인데 스키 조작에는 에징, 밀어내기, 하중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조작 요령이 있다. 에징 조작이란 스키의 에지를 세웠다 늦추었다 하는 것이다. 밀어내기 조작이란 스키의 테일을 바깥쪽으로 또는 안쪽으로 밀어서 끌리게 함으로써 스키의 방향을 바꾸는 조작이다. 다리의 비틀림이 따르는 데서 비틀기 조작이라고도 부른다. 하중 조작이란 스키를 누르는 힘(체중·근력)을 세게 하는 것인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을 옮겨 놓는 조작(하중 이동이라 한다)까지를 포함한다. 자세란 밸런스나 조작에 가장 적합한 몸의 자세를 말하며, 똑바로 활강할 때(직활강, v자형 활강)의 높은 자세와 낮은 자세, 그리고 사면을 비스듬히 활강할 때라든가 턴할 때에 필요한 외향경 자세를 말한다. 이러한 기본 동작의 습득은 물론, 상황과 장소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알아보기로 하겠다.1.초보동작(1)스키의 착탈과 스톡잡는 법가. 스키착탈스키를 신을 때는 스톡을 세우고 스키를 평행하게 맞추어서 한쪽씩 확실하게 부착한다. 경사가 있는 장소에서는 경사면에 대해 가로로 해서 골짜기 쪽 스키부터 부착한다. 이때에 산쪽의 스키는 뒤집어 놓아두든가 설면에 세워두든가 해서 스키가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 주의한다.○방법①바인딩을 아래로 누르며, 신발의 뒷부분이 닿는 부분을 위로 올라오도록 한다.②신발의 앞부분은 앞 바인딩 틈에 끼워 넣은 다음 스키의 몸체와 가지런히 한다.③발 뒤꿈치를 눌러 신발과 바인딩이 형을 유지하면서 내려간다.멈추고자 할 때에는 더욱 스키의 테일을 크게 벌리고, 눈을 밀어내면서 눈의 저항을 강하게 하여 제동을 건다.○방법①스톡을 꽃아 상체를 받친다.②스키의 양끝을 조금씩 양끝을 향한다.③스키를 평행하고 가지런히 하여 활강하기 시작, 테일을 크게 벌려 브레이크를 걸어서 정지한다.④스키를 v자형으로 벌리고 활강, 더욱 크게 벌려 브레이크를 걸어서 정지한다.⑤초보적인 브레이크 조작은 양발의 뒤꿈치 안쪽을 밀어서 벌려, 스키를 v자형으로 한다.(8) 직활강의 기본자세두 스키를 평행으로 가지런히 하고,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직활강이라고 한다.스키어에게는 제각기 체형상의 차이가 있다.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야윈 사람, 다리가 O형인 사람. X형인 사람 등,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기본자세라고는 하지만 획일적인 일정한 자세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우선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있어서 가장 안정되고 편한 자세를 취하는 일인데 이는 상체를 편히 하고, 두 스키 위에 무리없이 선 자연스러운 자세를 말한다.기본자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스키를 가지런히 하고 서서 차렷의 긴장자세를 취한 다음, 힘을 빼고 무리가 없는 편한 자세로 되돌린다.스키화는 평상시에 신고 있는 운동화와는 달라서 발목을 펼 수가 없는 이른바 전경각도를 유지하므로 구두를 신고 서면, 그 구조 탓으로 두 무릎이 약간 앞으로 굽은 자세가 된다. 그 이상 억지로 발목이나 무릎을 앞으로 밀어내려고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단계에서 무릎이나 정강이를 앞으로 내밀려고 의식하면 도리어 허리가 당겨지고 두 팔이 앞으로 나온 엉거주춤한 나쁜 자세가 되기 쉽다.양스키로 꼭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약간 간격을 두는 편이 자연스러우며 안정성도 높아진다.그리고 두 팔은 좌우의 밸런스를 취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몸에서 떼고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방법①양팔은 팔꿈치르 가볍게 굽히고 몸에서 떨어지게 자세를 취한다.②무릎은 가볍게 앞으로 굽히기만 하면 턴을
◆ 목 차 ◆일본요리의 역사시대별로 본 일본요리의 역사일본요리의 특징일본요리법의 기본일본요리의 종류국물재료조미료조리도조리 테크닉식사예절일본요리의 역사수렵과 어업 민족이었던 일본인의 식생활은 3년경 중국에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700년경(우리 나라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궁중(宮中) 의식과 신(神)에 대한 의식 등의 필요성에 의해서 일본 요리의 규범이 제정되었다.다이호우리쓰료우가 제정된 이래, 일 율령은 927년(우리 나라의 고려 건국 후) 요우로우리쓰료우에 의해 보정(補正)되어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는 방법과 요리를 만드는 방법,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방법 등이 세밀하게 규정된 연희식이라는 것으로 완성되었다.연회식에는 향응(響應)의 선형식과 연중행사 오절구(①성인의 날 ②여자 어린이의 날 ③어린이날, ④칠석날 ⑤중앙절) 등의 각종 계절 행사 요리도 정해졌다. 이때에는 조리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에서도 현저한 변화가 어우어지고 있었다. 밥과 부식을 담는 그릇을 시작으로 술잔, 받침대 등에도 고도의 예술성이 가미된 작품이 등장하게 된 시기였다.또한, 이 당시에는 신분에 따라서 그릇이 달라지는 도구의 계급제도 가 생겨나 귀족은 청동기, 은기, 옻기 등을 사용하였다.이 무렵은 헤이안지다이(平安時代)라고 불리는 귀족 지배의 시기였다. 당시의 고고덴노우가 요리를 좋아하여 요리 연구를 후세에 전해 주었는데, 이것이 <시죠쥬우나곤후지와라죠우신산이교우>이다. 고고덴노우는 현대에 전해져 오는 요리도의 四條類의 開祖로서 요리의 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이와 같이 요리의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왔지만, 귀족사외의 식사가 아칭, 저녁 두끼로 형식화됐고, 이와 함께 살생금지령 등 포유동물의 식육금지로 인하여 영양의 균형이 맞지 않아 영양실조와 같은 상태가 생겨나게 되었다.이때에 지금까지의 공가(公家) 귀족의 사치로 여겨져 왓던 형식적인 식사 풍습 등를 혁파하는 질실강건(質實剛健)을 첫째로 하는 무가정신(武家精러 가지 조리법이 발달하여 일본 식생활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다.단백질원으로는 물고기류가 상용되었다. [일본서기]에는 할선이라 하여 신선한 어패류를 생식하는 방법이 적혀 있는데 이것은 최고의 조리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리는 외양에 치우치고 세시식이나 식사의례도 규정되고 금기식의 사상도 생겨났다. 귀족층은 조석의 식사와 간식으로 과자를 먹었으나 서민들은 간식으로도 밥을 먹어서 일 3-4식이 되었다.5)가마쿠라 시대(1192-1333)사냥으로 멧돼지, 사슴, 토끼, 들새 등을 잡아먹고 생활하였다. 무사의 식사는 평상시는 조석 2회였으나 전쟁터에서는 3식이 되었고 이것이 일본인의 3식제의 기원이 되었다. 정진요리가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두부가 수입되었고 차는 송에서 들어와 재배하게 되었다.6)무로마치 시대(1338-1573)일본요리의 주류가 되는 가이세끼[차를 내놓기 전에 먹는 간단한 음식]가 등장하였다.7)아츠치, 모모야마 시대 (16세기 후반-16세기말)차의 생활화에 따른 가이세키 요리의 확립이나 남반요리[파와 쇠고기, 닭고기, 생선들을 섞어서 조린 요리]의 도래등이 일본요리를 발전시켰다.8)에도 시대(1603-1867)요리의 발전에 있어서는 서민이나 도시의 일반사람들의 문화적인 영향이 컸다. 각 시대의 여러 가지 요리를 흡수, 소화하고 이를 발전시킨 일본요 리의 대성의 시기이다.9)메이지 이후(1868-현대)우육식이 유행하고 우유, 유제품과 더불어 빵, 커피가 널리 식용되고, 서양 요리도 점차 증가한 시기이다.일본요리의 특징○ 일본의 주식인 쌀밥은 부드럽고 광택이 있고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는다. 쌀은 거의 모든 식사에 제공되고 전분함량이 높고 조리후 끈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먹는 방법으로는 그대로 밥을 먹기도 하나 식초를 섞어 초밥으로 먹거나 초밥에 날 생선을 얇게 져민 것을 얹어서 먹기도 한다. 쌀 다음으로 콩이 많이 사용되는데 대두는 왜 된장의 주원료이다. 콩의 이용에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아부라아게(두부튀김), 미소(일본된장), 으로도 되며 추운 겨울날 하나의 냄비에 들러 앉아 즐기는 분위기는 다른 요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더 없는 친근감을 더해준다.재료도 계절의 것을 여러 가지 준비하여 영양가도 높다.○ 맑은 국가장 먼저 먹는 요리로서 식욕을 돋우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맑은국의 맛으로 요리를 한층 돋보이게 해줄 수 있다.맑은국에는 다시 국물을 그대로 쓰는 맑은국과 된장을 풀어 끓은 탁한 국으로 나눌 수 있다.국은 뚜껑을 여는 순간 향기와 계절감을 느낄수 있는 색깔과 맛이 일치되야만 휼륭한 요리라 할 수 있다.○찜증기를 이용하여 재료에 열을 가하여 익히는 조리로서 열이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감칠 맛도 달아나지 않고 겉보기 좋고 부드럽게 마무리되는 이점과 재료에 포함되어 있는 영양과 풍미의 손실이 적은 조리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조림양념하여 간을 맞춘 다시국물에 생선, 고기, 야채 등을 넣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면서 연하게 익히는 조리법이다. 조림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조절이라 할 수 있다.처음에는 강하게 중간에는 중간불, 마지막에 약하게 조절하여 맛을 강함과 국물의 혼탁함을 잘 조절하여 조리하여야 하고 조림은 크게 담금조림, 간장조림, 푹조림이 있다.○ 구 이구이는 높은 열에 의해 재료가 지닌 맛을 살려 알맞게 구워진 맛과 향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조리법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하지만 지방과 조미료가 구울 때 떨어지는 그을린 독특한 맛이 스며들어 특이한 맛을 내는 요리법이다.구이에는 재료의 간에 따라 소금구이(시오야키) 간장구이(쇼유야기키) 된장구이(미소야키)로 구분되며 생선구이는 형태에 따라 통구이(스가타야키), 두장뜨기, 세장뜨기와 토막내어 구운 토막구이(기리미야키)가 있다.○ 튀 김단시간 안에 익히므로 재료 자체에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을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해 기름의 풍미가 식욕을 돋구어준다.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튀김은 씹을 때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도 좋고 주 요리를 살려주는 장식효과도 있다.일본튀김은 그냥튀김(가라아게)와 튀김옷을 입힌 (고루량 넣어 가열하면 보수 능력이 좋아져 부드러워진다.▶좋은 식초 고르는 법그릇에 식초를 부어 냄새를 맡아 본다.1. 양조식초: 3~5퍼센트의 초산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다. 순하고 향기가 좋다. 뒷맛이 산뜻하다.2. 합성식초: 쓴맛이 너무 강해 신맛이 코를 찌른다. 초를 조금 떠서 입 속에 머금어 혀 위에서약간 오랫동안 맛을 보면 나쁜 것을 물냄새 같기도 하고 톡쏘는 맛이 너무 강하다.○술술을 요리에 사용하는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재료(특히 생선)의 비린맛을 없애고 동시에 시원한 맛을 낸다. 술을 넣는 방법은 재료와 동시에 같이 넣고 긁이는 방법과 요리가 완성되기 직전에 소량을 사용한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합국을 끓일 때 완성되기 직전에 소량의 술을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한층 맛있는 국물 요리가 된다.○미림미림은 일식 요리에서 맛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조미료로서, 미림만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다른 조미료와 함께 사용한다. (간장, 소금, 식초, 설탕등). 은은하고 깊이 감추어진 맛을 내는 미림은 알코올, 아미노산, 찹쌀, 포도의 특이한 화학 구조에서 나는 것이다. 테리 야키나 바다장어, 냄비류, 소스류 등에 사용하면 다른 조미료로는 낼수 없는 좋은 맛이 나름대로 일식 요리에 폭 넓게 사용되고 있다.○된장된장은 재래식과 개량식이 있다. 재래식 된장은 삶은 대두를 여러 가지 균에 의해 자연 발효시켜 메주를 만든 후 간장을 뺀 찌꺼기를 다시 계속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 단맛과 감칠맛이 적다.그에 비해 개량식은 대두와 쌀 또는 보리, 누룩을 섞은 후 물과 소금을 넣어 일정 기간 숙성시킨 것으로, 숙성 중에 누룩에 있는 효소에 의해 단백질과 전분이 가수 분해되므로 아미노산과 당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된장이 숙성되는 동안 유산균과 효모에 의해 발효가 일어나 유기산과 알코올이 생성되어 된장 특유의 독특한 맛이 만들어진다.음식을 요리할 때 재래식 된장은 오래 끓여야 깊은 맛이 나고 개량식 된장은 오래 끓이지 않는 것이 좋다.또 된장은 대두와 쌀 깎기 할 때 사용한다. 칼날이 얇기 때문에 뼈가 있는 것, 단단한 것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 칼을 사용할 때는 자기 몸 바깥쪽으로 밀면서 자른다.관동식 야채칼은 칼끝이 각이 졌고, 관서식 칼은 칼끝이 둥글스름하다. 사진의 왼쪽이 관동식, 오른쪽이 관서식 칼이다. 칼을 갈 을 때 는 시아게싱시(마무리 숫돌)로 간다.-야나기보초(사시미 칼)생선회를 잡아당기면서 자를 때 사용한다. 관동 지방에서는 다코히키보초를, 관서 지방에서는 야나기보초를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야나기보초를 사용하는 추세다. 다코히키보초는 손잡이 부분에서 칼끝까지의 폭이 똑같고, 야나기 칼은 끝이 뾰족하다.사시미용 칼은 다른 칼들에 비해 가늘고 긴 것이 특징이다. 칼날 길이는 27~30㎝정도가 사용하기 편리하고, 갈 때는 시아게이시에 간다.-데바보초(큰 칼, 날이 두껍고 넓은 칼)생선을 포뜨기할 때나 생선의 굵은 뼈를 자를 때 사용한다. 칼등이 두껍고 꽤 무겁다. 크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재료에 따라 나누어 사용하고 갈 때는 아라이시에 간다.-우나기보초(장어칼)바다장어를 잡을 때 사용한다.⑶조리도 사용의 바른 자세칼질하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로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시간에 다른 자세로 칼질을 해보면 바른 자세로 한 사람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①도마를 마주하여 앞쪽 도마 끝에서 수직선상에 양발 앞꿈치를 낮추어 차려 자세로 선다.②오른발의 뒤꿈치를 축으로 오른발 앞을 오른쪽으로 90°벌린다.③이 상태에서 다시 오른발 앞을 축으로 오른발 뒷꿈치를 오른쪽으로 90°돌려 몸을 앞으로 약 15°숙이면 자연스럽게 안정된 자세가 된다.⑷자르는 법어떤 재료나 요리의 잘려진 면이 매끄럽지 못하면 보기에도 맛이 없어 보인다. 또 무채와 같은 날 것이나 살아 있는 것을 매끄럽지 않게 자르면 선도가 오래 가지 못한다.어떤 재료를 위에서 수직으로 눌러 자르면 아무리 칼이 잘 들고 힘이 센 사람이라고 해도 매끄럽게 자르기 힘들다. 예를 들면 김밥을 자를 때에는 칼의 안쪽 끝을 재료
블라쉬( Vidal de la Blache, Paul 1845-1918)- 프랑스의 지리학자로 인문 지리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그의 지리학적 사상은 지역적 통일로 표현되는 지역 개념과 생활 양식으로 표현되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요약됨 환경가능론을 체계화함- 그는 환경을 인간 활동을 위해 준비된 기능체로 보고, 그 가능성 속에서 선택에 의해 인간에 이용되며, 그 결과 세계 각 지역의 다양한 생활 양식이 나타난다고 믿고, 지역연구(지지)를 통하여 그 원리를 실증하고자 노력하였다.비달의 지리적 사상과 인문지리 이론의 전통비달은 지리학 분야를 독립된 학문으로 발달시키고 인문지리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학자이다. 그는 도보로 야외조사가 가능하고 직접적으로 잘 알고 있으며 통계나 기록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작은 지역을 연구단위로 하여 그 지역 내에서 사람과 자연을 서로 결합시키는 접근방식을 마련함으로써 역사학과 지질학 사이에서 지리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는 동질성을 갖는 소단위지역을 대상으로 연구함으로써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환경과의 밀접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그는 근대 지리학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흄볼트(Humbolt)와 리터(Ritter)의 핵심적인 사상인 '지구통일체(l'unite terrestre)'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즉 부분을 전체와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각 부분들은 전체의 각 다른 부분들과 상호의존되어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지리학이 다른 학문들과 교류하며 다른 학문들로부터 다양한 개념을 도입하고 있지만 지리학이 학문적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은 지구전체 환경이든지 혹은 국지적인 환경이든지 간에 총체적인 자연을 부분으로 분해시키지 않고 사물이나 현상들간에 연관성과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문지리학에 대한 그의 사고는 「인문지리학 원리」에 나타난 각 장의 제목과 소제목을 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서론과 3개의 장 제3장에서는 지표상의 지역적 기틀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교통과 통신을 포함하는 '순환(circulation)'의 개념을 다루었다. 비달은 당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지배적인 사조였던 라첼(Ratzel)의 환경결정론을 반박하면서 가능론적 사고를 전개하였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거주의 한계를 결정짓지만 또한 가능성도 제공하고 있으며,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반응하거나 적응하는 방식은 그 자신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바꾸어 말하면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많은 가능성의 범위를 제공해 주며, 인간이 단지 그의 욕구와 능력에 따라 이를 선택하여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그는 신칸트 철학의 관점에서 자연세계의 메카니즘에 의해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인간생활의 자유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사회와 자연은 이원화되어 있는 상태이며 인간은 유기체의 한 부분으로서 자연 속에서 활동하는 가장 능동적인 협력자라고 보았다. 이러한 논리는 그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생활양식으로 표출되었다. 비달의 생활양식(genre de vie) 개념은 인류학자들이 흔히 사용해 온 문화라는 용어와 유사한 것이다. 이 개념은 제도, 전통, 태도, 목적, 사람들의 기술 등등 복잡한 구성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비달은 같은 자연환경도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활양식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보았다.비달은 생활양식이란 문명화의 산물로서, 이는 특정한 장소의 주변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이 통합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보았다. 특히 그는 자연환경(natural milieu)의 개념을 언급할 때는 농촌사회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 삶의 생물적 하부조직과 비유기체들의 통합된 관계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생활양식과 자연환경의 개념을 연결시켜 환경양식(milieux de vie), 즉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환경의 자원을 선택하는 방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조하였다.그는 어떻게 이 환경양식이 다양하고 차별적인 생활양식으로 의 변화는 인간사회의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비달의 생활양식 개념은 사회적 행위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또한 자연환경과 관련되어 있는 메카니즘으로서의 사회적 습관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환경결정론의 핵심인 '비유기체의 통제-유기체의 반응'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가능성 가운데서 인간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에서도 전체론적 접근방법을 옹호하였다. 즉 지리학자는 지역 전체를 연구해야 하며 각 지역은 상호간에 서로 의존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에서 그는 주변환경(milieu), 생활양식개념 이외에도 순환개념을 중시하였다(그림 참조).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달은 인간을 지리적 요인으로서 능동적 역할과 수동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행동은 지구상의 비유기체와 유기체 모두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전제하고 인간이 비유기체를 이용하는 사례들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그의 가능론적 사고는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었으며, 더 나이가 역사학자인 루시앙 페브르(Lucien Febvre)가 그의 사상을 보다 확대·발전시켜 「역사에 대한 지리적 입문(Geographical Introduction to History」이란 저서에서 가능론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가능론(possibilism)의 원리를 피력하게 되었다.비달의 지역연구비달은 프랑스 지리학의 특성을 지역연구의 전통으로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환경결정론적인 견해의 약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자연현상과 인문현상들은 서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을 각기 분리하여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각각의 지역사회는 주어진 자연상황에 대해 그들 자신들의 고유한 방법에 따라 적응하면서 살고 있으며, 그 결과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발전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지역사회라 하더라도 다른 장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는 같은 그의 지역연구에 대한 견해는 1903년에 출간된 「프랑스 지리서」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문현상과 자연현상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고 이를 향토(pays)라고 정의하였다. 이 책은 프랑스 전국을 인식할 수 있도록 지역단위로 구분한 후 각각의 지역이 독특한 농업방식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독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토양과 물 공급량, 그리고 그 지역주민의 수요에 따라 이루어진 경제활동의 전문화 때문이라고 풀이하였다. 더 나아가 전문화에 따른 지역간의 교역은 농업의 전문화를 가속화시키게 되므로 오히려 향토의 개별성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음을 밝혔다. 따라서 지역의 특성은 부여받은 자연적 기틀 위에서 이루어진 인간활동을 반영하는 것이며, 프랑스 농업이 그 동안 상당히 바뀌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이루어진 지역의 고유성은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비달이 의미하는 향토란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이나 사건들이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적인 지역으로서 각 지역은 그 자체의 현상들간의 질서와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명확하게 각 지역의 특성이 전적으로 분별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사실은 지역간에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들이 아니라 현상들의 빈도와 배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가 피력하고 있는 지역연구에 대한 방법론은 먼저 잘 알고 있는 특정지역에 관해 자세히 연구한 후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귀납적인 방법으로 일반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규모의 넓은 지역을 지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규모의 좁은 지역에 관한 상세한 지식이 축적되어야 하며, 순차적으로 상호관계와 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단계적인 방법론으로 첫째, 다양한 사실들간의 관계를 분석하기에 가장 적합한 한정된 영역을 설정하고, 둘째, 지리학자들은 넓은 지역을 여행하기 보다는 주변의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그의 이론을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문제를 진술하한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편의상 지역의 단위를 유사성 또는 고유성의 토대 위에서 지역을 구분하여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각각의 지역은 토양, 대기, 식생, 인간 등의 현상에서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지리적 연구의 목적은 이들 현상들을 분석하는 데 있다. 특히 지지의 목적은 지역의 유형을 분류하면서 상호결속되어 있는 모든 현상을 종합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지역을 기술하는 지리학은 비달리안 전통의 주축이 되었으며, 프랑스 지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비달의 방법론은 귀납적이고 역사적이기 때문에 농업적인 생활방식이 지배적이며 다소 고립된 소단위 지역(국지적인 규모)을 연구하는 데는 상당히 적합하였다. 즉 농업을 위주로 하며 가옥양식이 국지적인 전통을 지켜오고 있고 자연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급자족하는 지역사회의 고유성을 찾아내는 데는 적합하였다. 또한 그는 그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발달해 온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사용되어 온 농기구들을 조사하고 민속박물관을 방문하여 그들 조상들의 과거 생활모습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당시 그의 제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 결과 많은 지지서가 출간되었다. 실제로 비달은 1910년 행정적인 면에서 볼 때 프랑스 전 지역을 17개의 지역 단위로 구분해야 된다고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지역구분은 프랑스가 지역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1950년에 설정하였던 22개의 경제지역과 거의 일치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그림 참조) 그러나 그의 방법론은 19세기의 산업혁명을 겪었던 지역들을 연구하는 데는 적합하지 못하였다. 그 자신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1917년에 저술한 「프랑스 동부지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운하와 철도의 개설로 인해 값싸고 빠른 교통수단과 대량생산방식이 그 지역을 어떻게 재구조화시키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그는 도시와 그 주변지역 간의 경제적인 상호작용과 교통결절지의 역할이 지리적 패턴을 결정하며, 지역단위의 규모도 확.■
< 동부 아프리카 >>♥ 탄자니아 Tanzania위치 : 아프리카 동부면적 : 94만 2799㎢인구 : 3623만 2000명(2001)인구밀도 : 38.3명/㎢(2001)수도 : 다르에스살람정체 : 공화제공용어 : 스와힐리어, 영어통화 : 탄자니아 실링(T Sh)환율 : 792.75T Sh = 1달러(2001.9)1인당 국민총생산 : 260달러(1999)♥ 우간다 Uganda위치 : 동부 아프리카면적 : 24만 1038㎢인구 : 2398만 6000명(2001)인구밀도 : 121.7명/㎢(2001)수도 : 캄팔라정체 : 대통령중심제공용어 : 영어통화 : 우간다 실링(Uganda Shilling)환율 : 1,757 우간다 실링 = 1달러(2001.9)1인당 국민총생산 : 330달러(1999)♥ 수단 Sudan위치 : 아프리카 북동부면적 : 250만 3890㎢인구 : 3608만 명(2001)인구밀도 : 14.4명/㎢(2001)수도 : 하르툼(Khartoum)정체 : 공화제공용어 : 아랍어통화 : 수단 디나르(Dinar)환율 : 258.70 SD=1달러(2001.9)1인당 국민총생산 : 330달러(1999)♥ 에리트레아 Eritrea위치 : 아프리카 북동부면적 : 12만 1100㎢인구 : 429만 8000명(2001)인구밀도 : 35.5명/km수도 : 아스마라정체 : 공화제 / 공용어 : 키그리냐어, 아랍어통화 : 낙파(nakfa)환율 : 13.50낙파 = 1달러(2001.9)1인당 국민총생산 : 200달러(1999)♥ 지부티 Djibouti위치 : 아프리카 대륙면적 : 2만 3200㎢인구 : 46만 1000명(2001)인구밀도 : 19.9명㎢/명(2001)수도 : 지부티정체 : 공화제공용어 : 아랍어통화 : 지부티 프랑(DF)환율 : 177.72 지부티 프랑=1달러(2001.9)1인당 국민총생산 : 790달러(1999)♥ 소말리아 Somalia위치 : 아프리카 북동부면적 : 63만 7000㎢인구 : 748만 9000명(2001)인구밀도 : 11.8명/(2001)수도달러(2001.9)1인당 국민총생산 : 600달러(1998)< 에티오피아 >>♥ 개 관정식명칭 : 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공화국)위치 : 아프리카면적 : 113만 3882㎢인구 : 6589만 2000명 ( 2001 )인구밀도 : 58.1명/㎢ ( 2001 )수도 : 아디스아바바정체 : 공화국공용어 : 암하라어통화 : 버 ( birr )환율 : 미화 1불 = 8.56 버 ( 2002년 3월 현재 )1인당 국민총생산 : 100달러 ( 1999 )인간개발지수 :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매년 각국의 교육수준과 국민 소득, 평균수명 등을 조사해 인간개발 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지수.인간개발순위 : ( 173개국 중 ) 168(위)평균 수명 : 43.9 (세)40세 이전의 사망예상인구 : 43.6 (%)성인문맹율 : 60.9 (%)여성문맹율 : 69.1 (%)AIDS 환자(0~49세) : 2,600,000 (명)안전한 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 : 76 (%)보건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 : 45 (%)위생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 : 85 (%)하루1$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 : 31.2 (%)하루2$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 : 76.4 (%)5세 미만의 유아사망율 ( 천명 당 ) : 174 (명)GNP대비 외채비율 : 160.4 (%)♥ 자 연 환 경1. 고원 지대국토의 절반 이상이 고원4기로 분류온건기 : 4~5월대우기 : 6~9월냉건기 : 10~1월소우기 : 2~3월연중 강우량 : 850mm2. 저지대 : 사막♥ 인 구매우 다양오로모(Oromo), 암하라(Amhara), 티그레(Tigre)인이 전체 인구의 3/4아프리카 中 세 번째로 많음중앙 고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 역 사3,000년 전악숨제국 : 남 아라비아로부터의 이주민이 에티오피아에 고도의 문화를 들여와 이룩한 강대한 제국정치적 : 홍해를 건너 남 아라비아를 영토로 삼아 메카에 따라갈 정도로 크게 세력 떨침문화적 : 아프리이 붕괴되고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1977 : 멩기스투는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1984년 9월 :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에티오피아 노동당(WPE)이 공식 출범1987년 2월 : 국민투표에서 81%의 지지를 얻어 헌법이 통과6월 : 총선에서 885명의 의원이 선출9월 : 의회는 군사평의회 해체를 선포하고 24명으로 구성되는 국가평의회를 구성1988 : 의회는 5개의 자치지역과 25개 행정지역을 두고 그 산하에 356개 소지역을 설정하여 행정구역을 개편1990 :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자 정권붕괴의 위기1990년 3월 : 에티오피아노동당을 에티오피아 민주통일당(EDUP)으로 고치고, 비(非)마르크스주의자도 당원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1991년 2월 : 정부군과 반군세력 사이의 평화협상이 결렬되고 무력충돌이 격화4월 :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이 주요도시를 장악5월 : 멩기스투가 국외로 탈출한 가운데 반군 세력이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1991년 7월 : 반군세력은 국민평의회를 구성, EPRDF의 지도자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를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1994년 : 신 헌법을 제정하고 내각책임제와 연방제를 채택1995년 : 총선을 실시하여 네가소를 에티오피아연방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2001년 10월 : 기르마 월데 기오르기스(Girma Wolde Giorgis)가 임기 6년의 대통령으로 취임♥ 경 제농업이 차지하는 비중 大대부분의 농민들은 원시적인 경작방법에 의존농가의 경작 면적은 매우 적음연평균 수입 : 145달러 정도황금작물 : 커피 ( 요즘에는 콩류, 식용유, 종자 등도 늘고 있다.)축산국 : 소, 양, 산양, 당나귀, 낙타 등의 숫자가 아프리카에서 1위를 차지세계 최대 빈국중의 하나극복하기 위해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 대폭적인 경제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루 2달러 이하의 생활비로 사는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89%♥ 사 회유럽과는 다른 색채의 그리스도교아프리카 유일의 문자라고 하는 문화유산지가 건조북단에 하레르시가 있고 주변에서는 양질의 커피도 재배주로 이슬람교권의 교역중심지로서의 기능동부고원의 남동부는 시굴 중인 석유와 관련한 국경문제 多☆ 다나킬사막북동부의 저지대기온이 아주 높고 건조한 지역수도 아디스아바바로부터 최단거리에 있는 아삽항으로 통하는 도로가 사막을 횡단고원에서 유입하는 하천이 있어 그 물을 이용한 농장이 최근에 개발☆ 대지구대에티오피아 고원과 동부고원 사이에 놓인 저지대단층작용에 의한 함몰로 이루어진 지역남북으로 길게 연속북부 : 다나킬사막남부 : 소림지대고원을 흘러내리는 하천에 의하여 땅이 기름지기 때문에 물이 있는 곳에서는 농경도 행해지고 있다.남부의 지구대 바닥에는 온천·호수 등이 몇 군데 있어 공기가 희박한 아디스아바바로부터 당일 또는 숙박보양을 위한 외국인 관광객 多♥ 문 화인종의 박물관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자랑현존 발견 최고 인류화석(약 300만 년 전으로 추정) 루시(Lucy)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특히 기독교 문명이 일찍이 전래되어 오래된 기독교 전통을 자랑유일하게 수천 년 역사 동안 한번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긍지자신들의 시간과 달력공용어인 암하라어는 아프리카 국가 언어 중 드물게 고유문자를 보유이름 : 성이 없음 ( '자신 이름-아버지 이름-할아버지 이름'의 순으로 쓴다 )주식 : 인젤라주택 : 주로 나뭇잎이나 짚으로 지붕을 얹고 흙으로 벽을 세운 형태로 창문이 없음♥ 보 건5세 이하의 유아사망률은 천 명당 177명5세 이하 어린이 가운데 48%가 영양실조입원환자의 1/3이 AIDS 환자♥ 교 육근대화된 교육은 1908년부터 시작교육비는 무료실제 35%의 학령기 아동만이 초등학교에 진학진학률 : 중학교 16%, 고등학교 1%문맹률 : 남성 52.8%, 여성 69.1%♥ 한국과의 관계6·25 전쟁 당시 유엔 국으로 참전1975년에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자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싸웠다는 이유로 강제퇴역한국마을(Korea Village)< 케냐 >>♥ 개 관·정식명칭:케냐 공화국(Republic 2.7배)·인구 : 3076만 6000명(2001)·인구밀도 : 52.8명/㎢(2001) ·인구 증가율: 연 2.7% (2001년)·수도 : 나이로비(약 2.5백만명)·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공용어 : 영어,스와히리어·화폐단위: Kenya Shilling·종 교: 기독교(70%), 이슬람교(20%), 힌두교(소수)·독립일: 1963. 12. 12(독립기념일)·1인당 국민총생산 : 360달러(1999)·대외정책: 비동맹 중립인간개발지수·인간개발순위 : (173개국 중) 134(위)·평균 수명 : 50.8 (세)·성인문맹율 : 17.6 (%)·안전한 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 : 51 (%)·위생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 : 14 (%)·하루1$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 : 26.5 (%)··하루2$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 : 62.3 (%)·5세 미만의 유아 사망율(천명 당) : 120 (명)♥ 자연환경·북위 4°- 남위 4°와 동경 34°- 41°·습지대, 사막, 화산지역 및 고원 지대 등 모든 형태의 지형을 포함·서쪽의 빅토리아호 연안지대는 인구밀도가 높다·북부는 인구밀도가 낮다·국토의 29.5%만이 경작 가능·자연경관이 다양, 비옥한 고원 보유·야생동물 보호지구♡ 기 후·일년 내내 기후 변화 거의 없음·아프리카의 동부 인도양에 연하여 적도가 가로지르고 있음·열대 해안지대로부터 사바나 초원지대 고원 및 반 사막지대에 이르기까지·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유·수도인 나이로비와 고지대는 날씨가 항상 맑으며 저녁에는 시원♥ 인 구·지역간 인구밀도 편차가 심하다·사망율은 감소추세·인구의 66.6%가 아프리카 중 남부에 거주하는 흑인종인 반투(Bantu)족·나일강 유역 거주인종 (Nilotics) 28.1%, 쿠쉬족(Cushitic) 3.6%, ·코이잔(Khoisan) 0.3% 아시아계는 0.63%, 기타 인종0.77%♥ 역 사·BC 1,000년경까지만 해도 원주민은 부시먼(Bushman) 계통·아라비아 반도 쪽으로부터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경유하여 햄족과 셈족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