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에 대하여1.이광수는 누구인가?이광수(1892∼ ? )연 도내 용1982평북(平北) 정주(定州) 출생1910메이지 학원 중학부 졸업1916와세다 대학 철학과 입학1917에 장편 을 연재1919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1919상해임정 기관지 주간으로 활동1921귀국하여 등에서 언론활동1937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사건으로 안창호와 함께 투옥1939조선문인협회 회장 역임1950한국전쟁 중 납북소설가. 호는 춘원(春園), 고주(孤舟), 장백산인(長白山人). 평북 정주 출생. 1917년 에 습작, 에 '무정'을 발표하면서 한국 현대 소설의 개척자가 되었다. 계몽 의식과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의 글을 많이 씀. 일제말 친일 문학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1940년 일본명 가야마 미쓰오(향산광랑, 香山光郞)으로 창씨개명을 하는 등 친일 행위를 했으며 6.25때 납북됨.그의 문학 세계는 이상주의에 바탕을 둔 계몽적 민족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현대 소설의 문체 확립, 실험적 인물 묘사, 현대적 주제 설정 등 현대 문학의 선구자로서의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체로 이광수의 초기 작품들은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계몽하기 위하여 자유 연예를 고취하고, 조혼의 폐습을 거부하였는가 하면, '무정'에서는 신교육 문제를, '개척자'에서는 과학 사상을, '흙'에서는 농민 계몽사상을 고취하면서 민족주의 사상을 계몽하였다. 그러나 이광수 연구자들은 그가 당면한 사회적 갈등에 철저히 대응하기보다는 이상적인 설교로 힘을 무산시켰다는 부정도 측면도 들고 있다.작품으로는 '무정', '유정', '사랑', '흙', '단종애사' 등이 있음.2. 이광수의 작품(1) ★등장인물* 허숭(許崇):주인공. 농촌 계몽을 위해 헌신하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물. 가난한 농촌태생의 고학생으로 과묵하고 듬직한 성격을 가졌으며 변호사가 되어 부자집 딸 정선과 결혼을 하였으나 부귀영화를 버리고 농촌의 개혁을 위해 헌신함.* 윤정선:허숭의 아내. 신교육을 받은 부자집 딸로 부러울 것 없이 곱게 자란 도시 여성. 사치·허영심에다가 행실이 좋지 않음. 자신의 영화만을 위해 살았으나 부정한 행동을 한 후 깊이 뉘우치고 자살하려다 다리를 잃고 나서 남편을 이해하고 농촌개혁에 헌신함.* 유순: 순박한 시골 처녀. 허숭을 사랑하나 숭의 중매로 한갑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유건영의 모함에 빠진 한갑에게 오 개월 된 임산부 몸으로 죽음을 당함.* 김갑진:귀족 가문에서 곱게 자란, 동경 제대 출신의 인텔리. 남작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가 주색과 투기를 해 남작 예우가 정지되었으며 수재로서 법학공부를 했으나 농촌 사람을 교화 되지 않은 야만인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최고의 남자인 줄 알고 남을 무시함. 주색잡기로 세상을 살다 후에 허숭(許崇)의 영향으로 개과천선하여 농촌 개혁에 뛰어듬.* 한민교:교직자로 재직하면서 뜻 있는 학생들과 친분을 가지며 조선의 발전과 농촌개혁을 하는 데 힘쓰도록 이끌어 주는 지도자.* 이건영: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왔으나 자신의 학벌을 이용하여 부자집 딸과 혼인하여 재산을 얻으려고 여러 여자를 건드리고 따라다닌다. 직업도 없이 빈둥대는 생활을 함.* 유정근:시골 부자집 아들로 동경 유학을 했으나 성격이 거만하고 간교한 사람으로 여자를 좋아하고 가난한 농촌사람들을 이용하여 고리대금과 장리로 많은 재산을 모음 후일 작은갑으로 인해 마음을 고쳐먹고 농촌 개혁에 동조함.* 작은갑: 농민이며 말이 없고 침착하여 허숭이 제일 믿는 사람으로 유건영으로 인해 징역을 살고 나와 유건영이 고장 망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자신의 아내와의 간통을 빌미로 유정근을 위협하여 개과 천선하게 함.* 서선희:정선의 친구로 장로의 딸이었으나 아버지가 죽자 삼촌 밑에서 살았고 아버지의 유산을 삼촌에게 빼앗기고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기생이 됨. 허숭을 만나 개심하여 농촌개혁에 뛰어듬.★줄거리허숭은 보성전문을 다니는 농촌 출신의 고학생으로 윤참판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기거하다 맏 아들이 죽자 참판의 집안 일을 맡아 보게 되고 고등 문관 시험을 통과해 변호사가 된다. 마음속에 시골처녀 유순이 있었으나 신교육을 받고 미모가 뛰어 난 참판의 딸 정선과 혼인하여 살다가 변화사 일에 염증을 느끼고 부귀영화와 개인적 향락에 눈먼 부인에게 실망하여 살여울로 가 농촌개혁에 노력하여 어느 정도 기틀을 잡는다.살여울에 찾아온 부인에게 농촌 운동을 같이 하자고 하고 부인은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경성의 재산을 정리하여 오기로 하고 떠난다. 경성으로 간 부인은 김갑진과 간통하게 되고 정선이 마음에 았었으나 갑진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이건영은 허숭에게 편지를 한다. 편지를 받고 경성에 올라 온 허숭은 부인의 간통을 알게 된다. 감정을 억누르고 부인을 용서하려 했으나 부인의 자세에 실망하여 이혼하고 싶을 때 도장을 찍으라고 부인에게 서류를 주고 시집올 때 가져온 재산은 윤참판 앞으로 공증해 놓고 살여울로 떠난다.경성으로 올라올 때 술집에서 만난 부인의 친구이자 기생인 선화를 기차에서 만나 같이 가다 자살하려고 뛰어든 부인 정선을 보게되고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한다. 정선이 한 다리를 잃게 되자 숭은 자신이 아내를 지켜주며 살기를 결심하고 병원에 찾아온 선화는 숭을 따라 살여울에서 유치원을 경영하며 농촌 운동을 하겠다고 한다.살여울로 온 숭은 정선의 임신을 알게 되고 정선은 김갑진의 딸을 낳는다. 선화는 유치원 경영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 놓게 되고 숭을 받들며 따르는 유순은 숭의 권유로 듬직하고 건강하지만 성미가 불 같은 면이 있는 한갑에게 시집을 간다.어느 날 이 마을에 고리대금과 장리로 돈을 벌다 숭 때문에 이익이 적어진 유산장의 아들 유정근의 동경유학에서 돌아온다. 유정근은 숭을 몰아낼 계획으로 전에 신문에서 보도 했던 내용(유순은 윤참판의 딸 정성을 후려 결혼 했으나 다방골 여의와 유순과 산월을 건드려 부인이 반감을 일으켜 김갑진과 간통했고 산월과 숭이 함께 타고 가는 기차에 정선이 뛰어 들었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한갑에게 숭과 유순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꼬여 임신 오개월 된 유순을 죽이게 한다. 살여울의 공기가 좋지 않아 자신의 뜻을 펼수 없음을 안 숭은 정선에게 개간 사업이 한창인 검물란에 가자고 하고 작은갑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운영권을 넘겨준다.이때 순사가 숭과 선화를 잡아간다. 숭은 맹한갑을 이용해 유순이를 죽였으며 총독정치를 반항하는 죄목으로 선화는 독립을 위해 교육을 했고 경찰에 폭언한 죄목으로 한갑은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한편 정선은 경성집에서 데리고 왔던 하인 몰란과 농촌일을 하며 남편이 나올때 까지 살려고 결심을 하고 농촌 일을 열심히 한다. 숭이 없는 집안을 돌보아 주던 작은갑도 잡혀가게 된다. 숭은 징역 5년 작은갑과 선화는 3년, 맹한갑은 5년 형을 받는다.그 후 시간이 흘러 작은갑은 출소 하여 유정근과 아내의 간통을 알게 되고 이를 빌미로 해 유정근에게 칼을 들고가 위협하여 정근을 개과천선 시킨다. 잘못을 뉘우친 정근은 숭에세 가서 사죄를 하고 숭의 말에 따라 한민교 선생을 지도자로 모시러 서울로 간다.전에 이건영에게 농락을 당하고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심례의 마음을 달래 줄겸 한민교 선생은 친구 정선과 선화가 있는 살여울에 같이 가지고 심례에게 말한다. 한민교 선생과 심례가 살여울로 떠나려고 경성역에 나가자 사오십명이 환송을 나왔고 거기서 한선생은 농부의 차림으로 김갑진을 만나게 된다. 김갑진은 검불랑에서 농민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하며 명년 쯤 한번 와 달라고 한선생에게 부탁한다.★핵심정리* 갈래: 장편 소설, 농촌 계몽 소설.* 배경: 시간(1930년대 초) 공간(서울, 살여울, 검불랑)* 사상: 귀농 사상, 민족주의·계몽 사상* 작품경향: 계몽적, 설교적, 민족적, 인도적*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피폐한 농촌의 계몽과 귀농 의식.▶조국의 발전을 위한 젊은 인재들은 농촌 개혁운동에 참여 계몽.▶농촌 이상향 건설(2) ★등장 인물* 이형식 - 진취적 기상을 지닌 주인공. 개화기의 전형적인 지식인. 신교육을 받았고, 지극히 도덕적인 면을 지니고 있으며 현실적 이익을 결국 받아 들이나 인정적 의리 때문에 방황하는 여린 마음도 지니고 있다. 개인과 민족,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 고뇌하는 인물* 김선형 - 김장로의 딸로 기독교 집안의 개화된 신여성. 부자이고 양반이며 신사상을 본받으려는 집안 상황 속에서 신교육을 받았으나 구습을 완전히 벗지는 못함. 형식과 결혼함.* 박영채 - 유교 교육을 받은 순종적인 여인. 구봉건 세대의 인습에 희생당함. 양반의 집에서 태어나 유교 교육을 받았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기생이 되었고, 구습적인 도덕성 속에 살다가 병옥을 만나 신사상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함.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Ⅰ. 이규보의 생애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본관은 황려(黃驪:驪興)이고, 자는 춘경(春卿)이다.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 지헌(止軒) ·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초명은 인저(仁?), 시호는 문순(文順)이며,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했다. 1199년(신종 2) 전주사록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가 되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에 의해 권보직한림으로 발탁되었다. 참군사 · 사재승 · 우정언을 거쳐 1219년(고종 6) 좌사간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계양도호부부사로 좌천되었다. 1220년(고종 7) 예부낭중·한림시강학사를 거쳐 30년 위위시판사가 되었으나, 팔관회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에 유배되었으며 1232년(고종 19) 비서성판사에 승진하고, 이듬해 집현전 대학사 · 정당문학·참지정사·태자소부 등을 거쳐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감수국사·태자대보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 였다. 시 · 술 · 거문고를 즐겨 삼혹호 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1. 성장 및 경력9살 때부터 중국의 고전들을 읽기 시작하여 문재가 뛰어남을 보였고, 14살 때에는 시를 빨리 지어 이름을 높이는 등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형식주의에 젖은 과거시험의 글을 멸시하여 사마시에는 연속으로 낙방하였다. 16세 부터 약 5년간 자유분방하게 지냈다.1189년(명종 19)에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 다음해에 예부시에서 동진사로 급제하였다.그러나 오랫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25세 되던 해에는 개경의 천마산에 들어가 세상을 관조하며 지낸다.26세(1193년)에 다시 개경에 돌아왔으나, 가난에 쪼들리게 되고, 이 때, 동명왕편, 개원천보영사시 등을 짓는다.1197년에 최충헌 정권의 요직에 있종 3)에 최충헌에 의해 직한림으로 발탁되어, 참군사, 사재승, 우정언을 거쳐 1217년(고종 4)에 우사간이 되었다.이해 가을 최충헌의 한 논단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하는 부하의 무고로 인하여 정직당하였고, 3개월되는 해에는 좌사간으로 좌천되었다.1219년(고종 6)에 좌사간 때,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한 죄로 면직되었다가 최이의 후견 덕분으로 계양도호부부사가 되었다.최충헌이 죽고 최이에 의해 귀경하게 되자 이후 최이에게 절대적공순관계가 된다. 1220년(고종 7)에 예부낭중이 되고 한림시강학사를 거쳐 위위시판사가 되었으나, 1230년 팔관회에서 잘못을 저질러 위도에 유배되었다. 최이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배제하는 또 다른 힘을 알게 된 이규보는 보신을 잘 못한 자신을 통감하였다.8개월 만에 위도에서 풀려나와 이해 9월부터 산관으로 있으면서 몽고에 대한 국서작성을 담당하였다.1232년(고종 19)에 비서성판사에 승진하고, 이듬해 집현전 대학사, 정당문학, 참지정사, 태자소부 등 지냈다.1237년(고종 24)에 문하시랑평장사, 감수국사, 태자대보 로 벼슬에서 물러났다.2. 저서저서에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국선생전》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시(詩)에 〈천마산시〉 〈모중서회〉 〈고시십팔운〉 〈초입한림시〉 〈공작〉 〈재입옥당시〉 〈초배정언시〉 〈동명왕편〉, 문(文)에 〈모정기〉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 등이 있다.Ⅱ. 이규보의 인식세계1. 현실인식이규보 시에서 드러난 현실인식은 비교적 다양하게 드러나 있다. 이것은 이규보 자신이 생존하던 시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의지의 표출이며 동시에 자기가 처해있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그는 우선 오랑캐에 대한 강력한 敵愾心을 품은 동시에 그 당시 하나의 큰 혼란을 일으킨 叛亂軍에 대한 저항감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두가지 면만 보더라도 그는 民族意識 또는 國家意識이 투철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安得天上劍 어떻게 천상의 칼을 가져다가一時墮胡頭 단번에 오랑캐 머리를 자르고盡隨白刃落 시퍼런강화도에 천도하여 있을 당시에 몽고의 침략으로 인하여 초토화된 고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오랑캐 머리를 잘라 둥근 공 차듯 굴릴까’라는 표현이나 ‘회쳐서 우리 백성 먹게 하려나’와 같은 극단적이 표현 역시 강렬한 저항의식의 표출로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규보의 저항의식은 ‘하늘의 뜻이요 사람의 꾀는 아닐세’라는 표현에서 한층 더 심화된다. 즉 이규보의 저항의식은 단순히 개개인 생존이나 침탈에 대한 분노의 차원을 벗어나 국가를 보호하는 문제로 발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 저항의식을 발전적 측면에서 파악할 때 끊임없는 침탈의 결과 역반응적으로 생성된 분노와 침탈에 따른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발전적 의지로 파악할 수도 있다.또 이규보는 오랑캐에 대한 증오 못지 않게 民亂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다음의 시에서 그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婦女哭夫? 부녀자가 죽은 남편을 곡하며?首吊枯骨 머리에 삼베 두르고 마른 뼈를 조상하네荒村早關門 황량한 촌락에 일찍 문닫으니自日行族絶 대낮에도 길가는 나그네 전연 없구나今年況復旱 금년에는 더군다나 다시 가물어서望雨甚於渴 비 기다리는 것이 목마른 것보다 심하구려田野皆赤土 논밭은 모두 붉게 타서未見萌芽出 곡씨싹이 무성한 것을 볼 수 없네-「八月五日 聞群盜漸熾」중에서 -이 시는 그가 29세 되던 明宗 26년 8월에 읊은 것으로 민란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사실적 묘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농촌의 난리중의 모습과 가뭄으로 인한 곤궁한 생활상이 일찍이 이처럼 잘 인식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뒤에 이어 나타나는 그 속에 날카로운 그의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朱門日吐菌 주문에서는 날마다 자리에 술을 토하고百爵耳目熱 백잔을 마시니 귀가 저절로 더워지네高堂森玉簪 고당에는 옥비녀가 늘어서 있고密席擁羅襪 빽빽한 자리에는 비단버선을 개고 있네但門日?灼 문호의 융성한 것만 알고不憂國 机 국가가 불안한 것은 근심하지 않누나腐儒雖無知 썩은 선비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流涕埋鳴咽 눈물을 흘리며 매양 목메어 흐느끼네난다. 흉년이 들어 길에 아이를 버리는 일을 한탄하고 농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이 생산한 곡식에 대한 소중함을 여기는 시를 읊기도 했으며 흉년이 들어 늙은 과수가 겨우살이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는 出仕이전의 각박한 현실에 좌절하고 방황하면서 그의 인식의 한 단면이 백성의 현실 쪽으로 깊이 관심을 돌리게 했다고 생각된다.新穀靑靑猶在畝 햇곡식은 푸릇푸릇 논밭에서 자라는데縣胥官吏己徵租 아전들 벌써부터 조세 거둔다고 성화네力耕富國關吾輩 힘써 농사지어 부국케함 우리들 농부거늘何苦相侵剝又膚 어째서 이리도 극성스레 침탈하는가-「代農夫吟」중에서 -아직 곡식도 익기 전에 조세를 거둘 준비를 하는 관리들은 나무라면서, 마치 시인 자신도 한사람의 농부인 양 서술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인식의 단면을 볼 수 있다.이상과 같이 이규보는 당대 현실의 여러 문제점은 국난으로 인해 피폐된 사회, 관리의 부패와 집권층의 횡포, 흉년 등 그 원인이 사회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모든 것이 그의 시 속에 등장하고 寫實性을 부여해 준 것이다.2. 자연인식이규보 시에 드러나는 자연묘사는 크게 純粹 敍景으로서의 自然과 삶의 한 태도로서의 自然指向이 있다. 그가 읊은 순수 서경으로서의 자연이 고루 나타나 있지만 그의 자연인식은 단지 감정적면이 아닌 사물의 특성의 사실적 표현으로 현실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거나 자신의 이상향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다음 시를 보자木穴得蟲藪 나무 구멍에서 벌레집 찾아剝剝如?戶 딱딱 쪼는 소리 문 두들기는 듯하도다誰能借汝? 누가 너의 부리를 빌어啄去人中蟲 사람벌레를 쪼아 버릴꼬-「啄木鳥」중에서 -위의 작품은 단순히 딱따구리가 벌레를 쪼는 모습이나 그 소리를 나타내려는 시는 결코 아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딱따구리와 벌레는 동일세계에서는 공생할 수 없는 자연계의 天敵이다. 딱따구리와 벌레는 각각 이규보 자신과 부패된 관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동물이 공통적으로 거주하는 나무는 이들이 갖고 있는 각기 다른 욕망의 대상으로 과 마주 앉아 옛이야기 주고받네半壁夕陽飛鳥影 석양이 반쯤 걸린 절벽엔 새 그림자 지나고滿山秋月冷猿聲 온산 가을달에 잔나비 소리 구슬프네幽懷壹鬱殊難寫 겹겹으로 쌓인 회포 다 풀기 어려워時下中庭信步行 가끔 뜰로 내려가 발 가는 대로 다닌다오이 시는 그의 현실 생활의 울적한 회포를 자연을 통해 읊고 있다. 10년 동안이나 발전 없는 생활, 옥당에 올라 사방에 暢達하는 글을 쓸 기회를 열망하는 시인으로서 그런 희망이 좀처럼 성취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러한 시정과 그의 회포가 자연을 통하여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즉 자연과 자아가 현실적으로 동화되어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이규보의 거의 모든 시가 이 자연과 결부되어 있는데 자연과 시와의 관계는 소재적 측면에서 살필 수도 있고 또 보다 근본적인 인생관이나 세계관과 결부시켜 살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규보는 자연을 즐겨 읊었고 폭넓게 자연물을 다루면서 거기에 그의 삶을 투영시켜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탐구하고 당시 삶을 읽어내는 그런 자연인 것이다. 단순히 자연의 경관을 보고 느끼는 정감이 아닌 현실을 불만스러운 세계로 규정한 반면에 자연을 이상세계로 그렸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느낄 때마다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동경하고 전원에서의 삶을 꿈꾸는 것이 비단 이규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당시 문인들의 경향도 이런 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고 고려후기 한시의 한 특징이 아닌가 한다.(봄날)1)柳撚金絲 曉風 금실같은 버들은 새벽 바람에 나부끼고一雙閒燕語2)玲瓏 한쌍의 한가로운 제비는 영롱하게 지저귄다.美人垂起心煩悶 미인은 자고 일어나 마음이 괴로워서皓腕3)擎花吸露紅 흰 팔로 꽃을 높이 들고 붉은 이슬을 마시네.[註解]1) 柳撚(유연): 버드나무가 비비꼬인 것을 지칭함.'撚'은 비비꼬일 연2) 玲瓏(영롱): 맑은 소리를 형용함.3) 擎(경): 높이들 경.(봄날 흥에 겨워)春光蕩起詞人興 봄빛이 마음대로 시인의 감흥을 일으키니淸嘯聲高莫自禁 청아한 휘파람소리 스스로 오게나
1. 도솔가(兜率歌)【歌詞 不傳 詩歌】1)배경 설화유리 이사금 5년 11월에 왕이 국내를 순시하다가 한 할멈이 기한에 쪼들려 죽게 된 것을 보고서 “내가 하찮은 몸으로 윗자리에 있어 백성을 잘 기르지 못하고 노약자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모두 나의 허물이로다” 라고 말하고 자기 옷을 벗어 입혀 주고 자기 먹을 음식을 미루어 먹이고, 따라서 유사에게 명하여 곳곳마다 방문하여 홀아비 홀어미 고아 늙은이 병자로서 자활 할 수 없는 자를 급양하게 하니 이에 이웃나라 백성이 소문을 듣고 오는 자가 많았다. 이해에 민속이 환강 하여 도솔가를 지으니 가악의 시초였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가악은 신라 부족 연맹 국가 시대인 유리왕 5년에 비로서 제작된 것으로서 차사 사뇌격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라 부족 연맹 국가시대의 가악의 일반적 상태와 당시의 사회적 제반상을 고려해 보면 이 가악은 당시 문물제도의 정비를 도모하던 때 이루어진 한 산물로서 치자와 치지자 사이의 자율적 조활을 목적으로 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신라 최초의 인륜 세교적 인 정풍가악임을 알수 있다.그리고 또 이 가악의 성격을 추정한다면 이 노래는 문학면 보다는 음악면이 우세한 가무악으로서 그 가창조는 차사사뇌의 격조에 따라 부른 것인데, 가사는 제 1구나 제 2구 끝에 감탄어미를 붙여 시상을 분절하면서 사뇌가의 낙구 부문에 가서는 낙구 대신에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여음구를 넣고 이어 나간 연장체의 장형의 노래 일 것이다.그리고 가악명의 뜻은 환생 부활 회생의 뜻을 지닌 고대어인 도살로 보는 견해와 두레 노래의 원류 로서 두리로 보는 견해 및 환강의 뜻인 두리로서 동이악의 이름인 조리 주리와는 차자식의 다른 표기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2) 신라 유리왕 때 지은 작자 미상의 가악. 가사는 전하지 않으나, ≪ 삼국사기 ≫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5년조와 ≪ 삼국유사 ≫ 노례왕조에 작품명과 짧은 설명이 전한다.≪ 삼국사기 ≫ 에는 “ 이 해에 민속이 환강하여 〈 도솔가 〉 를 처음으로 지(借字式) 표기라는 설도 있으며,⑥ 두레노래 〔 農樂 〕 의 원류로서 ‘ 두률 ’ , 혹은⑦ 소생(蘇生) · 재생의 뜻인 ‘ 도살놀애 ’ 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⑧ 치리(治理) · 안민(安民)의 노래로서 ‘ 다 基 놀애 ’ 로부터 왔다는 설과⑨ 일본에 전해진 고려악무인 ‘ 도리소 〔 鳥蘇 〕 ’ 와 같은 신악(神樂)으로 ‘ 도릿소리 ’ 라는 여러 풀이가 있다.4) 장르에 관해서는 차사사뇌의 격조가 ‘ 있다 〔 有 〕’ 는 표기에 따라 향가의 하위 장르인 사뇌가 ( 詞腦歌 ) 장르에 포함된다고 보는 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뇌가 장르와는 다른 독립적 장르로 보는 설도 있다.5) 형식에 대해서도 사구체설, 육구체설, 십구체설(사뇌가인 三句六名體), 한 구가 여섯 단어로 이루어지고 여음을 가진 〈 정읍사 〉 형식설 등이 있다.그리고 사뇌가 삼구에 있어서 전구나 중구의 끝에 감탄어미를 붙여 시상(詩想)을 분절하되, 후구 부분에 해당되는 구에 가서는 후구 대신에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여음구(餘音句)를 넣고 이어나가던 연장체(聯章體) 장행의 노래 형식설을 갖는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혹은 삼구육명의 사뇌가 형식과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지만 차사가 개입되는 형식적 장치와 노래의 의미단락이 세 개의 구조적 단락으로 짜여진 정도의 형태일 것이고 보기도 한다.6) 내용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해석상의 차이를 보인다.왕의 어진 정치를 찬송한 것이나 민속환강을 노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송축한 것, 부족연맹국가의 건설에 따른 국가이념과 연맹국간의 자율적 조화 및 연맹국의 무한한 발전을 염원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그리고 악장문학이 가지는 찬미하고 경계하는 양 측면을 모두 지닌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았거나 백성의 환강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을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7) 문학사적 위치에 관해서는 두 사서(史書)에서 시제(始製),시작(始作) 이라는 말로 < 도솔가 〉 를 강조하고 있는 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는 견해들이 있다.①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 도솔이란 무엇인가?도솔 이라 함은 도솔천. 즉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6천중의 제 4천에서 나온 말이다. 통속적인 어원 해석으로는 ‘만족시키다’의 의미로 설명하여 지족, 묘족, 희족, 또는 희락 등으로 번역한다. 그 내원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라고 하여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이전에는 이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현재는 미륵보살이 여기에서 설법하며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정토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미륵정토 신앙은 역사적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크게 성행하였다. 당시는 박씨와 석씨의 왕위 경쟁뿐만 아니라 부족간이나 부족 내부의 쟁투가 상존해 있었으며, 외침도 수시로 있던 불안한 시기였다. 이런 건국 초기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민속이 환강 해져 를 지었다는 기록은 석연치 않다. 이는 나라에 혼란이 야기되었으나 왕의 노력으로 민속환강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라기보다 나라를 평안하게 하자는 기원의 내용을 당시의 기록에 짜 맞춘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는 국가의 기반을 수립하는 시기에 야기된 여러 위난을 극복하려는 일환으로 거행된 제의에서 민속환강을 기축하는 가악이었을 것이다. 조동일 교수도“ 국가적인 안정을 기원하는 재래적인 형태의 노래”라 하여 민속환강을 인정하기보다‘안정의 기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는 전통적인 제의에서 주술과 기원을 곁들이는 노래였을 것이다.그런데 이 재래적인 형태의 노래가 불린 제의란 무족제의가 아니라, 고대국가 형성기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선풍의 제의인 것이다. 신라의 국가적 제사는 제산천의 기초위에 제천과 제시조신을 결합한 것이 선풍이고 이는 국가 형성기에 이미 무속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지배 이념이 되었다. 신라 제 5대 파사왕 30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치므로 왕은 산천에 두루 제사하여 기도를 드렸더니 누리가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는 기록에서풍요와 국가적인 안정을 꾀하기 위해 산천에 제사한 흔적을 볼 수 있다.이 의 전통은 세속 이어져 8세기 경덕왕 대는 민생안정을 통한 국력강화를 목적으로 국가에서 편찬한 노래이다. 또한 유리왕대에 행해진 가무백희와 연결시켜 도솔가는 제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10) 도솔가의 국문학사상 위치의 문학사적 위치를 살펴보면 사회적인 배경에서 볼 때 유리왕 대에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많은 변동이 있었으며 이에 수반하여 종교적인 사제권이 부족장의 직능에서 이전되었다. 이러한 배경적인 변화를 기저로 하여 는 그때가지 전래해온 ‘종교적 신요’가 아닌 새로운‘서정적 가요’의 발생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즉 집단적인 서사문학과 개인적인 서정시와의 교량적 존재 역할을 했다는 것에 국문학사상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하겠으며 낡은 가악인 신요에서 종교적인 요소가 탈락한 민중의 환강을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읊어낸 가요의 발생이라고 하는데 문학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2. 회소곡(會蘇曲)(儒理王) 九年....是時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會蘇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유리왕) 9년......이때에 진 쪽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회소, 회소"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였다. 후에 사람들이 그 소리를 이유로 노래의 이름을 회소곡이라 지었다.< 삼국사기, 권1, 羅紀 1>신라 유리왕 9년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노래. 일명 이라고도 한다.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유리왕 9년조에 관련 설화가 전한다. 왕은 육부(六部)를 정하고 이를 두 패로 가른 뒤,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리게 하여 붕당(朋黨)을 만들어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일찍이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되 밤늦게까지 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를 살펴 진 편에서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서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會蘇會蘇'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도 아담하였으므로 뒷사람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身 聞於人 將何面目以出市朝乎” 遂被髮携琴 入師山 不反물계자(勿稽子)는 나해 이사금 대의 사람이다. 집이 대대로 미미하였으나 사람됨이 기개가 커서 어려서부터 장대한 뜻을 가졌다. 그때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아라국(阿羅國)을 치기로 함께 꾀하자 아라국에서 사신을 보내와 구원을 청하였다. 이사금이 왕손 날음(捺音)으로 하여금 이웃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해주게 하여 드디어 8국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이 싸움에서 물계자는 큰 공을 세웠으나 왕손에게 미움을 샀으므로 그 공은 기록되지 않았다. 어느 사람이 물계자에게 말하기를 “자네의 공이 대단히 컸는데 기록되지 못하였으니 원망하는가?” 하였더니 말하기를 “어찌 원망하리요?” 하였다.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 왕에게 아뢰지 않는가?” 하니 물계자가 말하기를 “공을 자랑하고 이름을 구하는 것은 뜻있는 선비의 할 바가 아니다. 단지 마땅히 뜻을 힘써 연마하며 후일을 기다릴 뿐이다.” 하였다. 그 후 삼년이 지나 골포(骨浦), 칠포(柒浦), 고사포(古史浦)의 세 나라 사람이 갈화성(竭火城)을 공격하여오자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하여 세 나라의 군사를 대패시켰다. 물계자는 수십 명을 목베었으나 공을 논함에 이르어서는 또 얻는 바가 없었다. 이에 자기 부인에게 말하였다.“일찍이 들으니 신하된 도리는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을 만나면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라 하였는데 전날의 포상(浦上), 갈화의 싸움은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바치지 못하고,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고 사람에게 소문이 났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저자와 조정에 나가겠는가?”드디어 머리를 풀고 거문고를 들고 사체산(師山)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2) 삼국유사 피은(避隱) 제8 물계자3) 신라 가악의 하나로 신라 내해왕 때 물계자가 지은 노래로 가사는 전하지는 않는다.기록에 의하면 '물계자가'는 개인적, 서정적 내용으로 지어진 금곡의 가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 초기 부족연맹 국가시대에 개인 작가의 기록으로는.
도덕 윤리 교과서 분석 및 비판1.고등학교 Ⅰ. 시민 사회와 윤리3. 민주 시민으로서의 윤리 의식과 태도(3) 성숙한 시민 의식분석: 시민윤리 교과서의 이 단원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윤리 의식과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민주 시민의 기본 가치를 추구하고 아울러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공공질서를 준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중 질서, 교통질서, 그리고 행락 질서 등을 지키는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 원인을 우리나라의 전통적 문화에서 찾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민들의 학력이나 경제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공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역사적, 문화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 전통 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혈연, 지연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어촌 사회가 중심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그 주민들의 의식은 다분히 인습적이고 감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은 수평적이거나 호혜적(互惠的)이지 못하고 수직적이며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혈연이나 가족 공동체의 내집단(內集團)에서는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외집단(外集團)에서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서구의 시민 사회에서와 같은 평등성이나 합리성은 형성되기가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이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공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첫째, 혈연 중심의 농어촌 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인습적이고 감정적인 면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인습(因習)이란 단어를 살펴보자. 인습은 전통과는 다르며 우리가 버려야 하는 구습(舊習) 및 악습(惡習)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가 혈연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을 인습이라 여겨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부분의 서술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문화적 관습을 ‘인습’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마치 서구의 합리성이 더 우수한 것인냥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감정적’이라는 표현도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는 좋은 의미를 배제하고 순간적이며, 비이성적이라는 의미로만 느껴지고 있다. 또한 수직적이며 일방적인 관계에 익숙해져 내집단 이외의 외집단에게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띤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 민족 고유의 조직인 ‘향약, 두레, 계’와 같은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물론 한 동네, 소규모 집단을 벗어나지 못한 조직이다. 그러나 그 당시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고 일평생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죽었던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이역만리의 사람들과 공동체 의식을 가지긴 쉽지 않았을 뿐더러 필요도 없었지 않은가.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소단원의 바로 뒤에 나오는 ‘(3) 공동체 의식의 함양’ 단원에서는『...더욱이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사회의 축소와 함께 우리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인 향약, 두레, 계, 품앗이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의식의 함양을 위한 제도와 문화가 사라지게 됨에 따라 서구의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의 왜곡된 형태인 이기주의, 배금주의, 향락주의 등이 만연하게 되었다.』라고 서술하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며 서구의 지나치게 합리성과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전통적 문화에서 약점이 있을 수도 있고, 서구의 사상이 강점을 지닐 수도 있다. (또는 그 반대적인 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똑같은 현상을 보고 이 단원에서는 그것이 타문화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다른 단원에서는 또 그것이 타 문화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비판적 추론 능력을 채 갖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혼란을 줄 수 있을 것이다.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또 다른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한국 문화의 뿌리 중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끈질기게 우리 민족의 의식을 지배한 무교(巫敎)를 들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이 노래와 춤, 음주 등을 좋아하고 그 과정에서 신명, 신들림으로 원초적인 상태를 지향하기 때문에 뜨거운 열성은 있어도 냉철한 이성은 상대적으로 빈약하여 질서를 지키는 것이 우리 한민족의 생리에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여기서 말하고 있는 무교(巫敎)는 우리의 전통 신앙이다. 이 속에는 단군 신앙에서 나타나는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불교 및 천주교 그리고 다른 모든 종교를 포함해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사상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준 토속 신앙인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 부분만을 읽게 된다면, 우리의 전통 신앙을 한갓 미신처럼 여기게 되기 십상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음주가무를 즐기며 향락적인 생활을 좋아하는 것처럼 믿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고된 노동 후의 한 잔의 술과, 노동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이 공공질서를 준수하지 않는 원인을 전통적인 민간 신앙과 우리 민족의 혈연적 공동체에서 찾으며, 전체적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것들을 열등하고 미개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교과서의 서술에 있어서 어느 민족의 문화에 대한 우열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 민족 고유의 문화를 그 민족 안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문화적 상대주의’가 필요할 것이다.2. 고등학교 Ⅱ. 현대 사회 문제와 시민 윤리1. 생명 존중과 환경 윤리(2) 환경과 윤리분석: 중학교 교과서든, 고등학교 교과서든, 도덕 윤리 교과서엔 언제나 빠짐없이 환경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은 대략, ‘현대 사회는 심각한 환경위기에 빠져 있으며 그 원인은 서구인들의 인간중심적 자연관에 의한 것이다.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양인들의 자연 중심적 사고관,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일체론적 관점으로 환경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민윤리 교과서의 76 페이지부터 81페이지는 위의 내용을 풀어 설명하고 있다.얼마 전, 천성산의 터널을 내는 국가사업에 한 스님이 장기간에 걸쳐 단식 투쟁을 했다. 국가에서 세운 계획을 한 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반대하는 것이 과연 숭고한 일이었을까? 더욱이 반대 이유가 ‘희귀 도롱뇽’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니(물론, 그 도롱뇽뿐 아니라 습지지대의 보존을 위해서였지만 각종 언론에서는 저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도롱뇽 보호를 위해서라고 떠들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스님의 마음이 더욱 애틋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1.들어가며‘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 한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교육과정이나 교육정책적인 면이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매체인 교사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교사의 지위나 권한이 높았고, 학생과 학부모도 교사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교사들에 대한 평가제도의 개선을 통해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가 실시돼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 전문성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우대 받는 학교사회가 만들어지길 학부모들은 기대한다.`(조선일보 2004. 2. 6, 시론 `학생·학부모가 교사 평가해야`)는 말처럼 교사의 자질과 능력을 학생과 학부모가 평가한다는 ‘교원평가제’가 매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해 학생들에게 좀 더 나은 수준의 학습을 받게 하고, 무능력한 교원을 내쫒아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취지의 이 교원평가제는 시행을 앞두고 여러 가지 문제점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교원평가제 무엇인지, 교원평가제의 개념과 이론적 배경, 논쟁점 및 문제해결 방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2. 교원평가제의 개념 및 이론적 배경(1)교원평가제의 개념교원평가제란 동료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참여해 교사의 수업활동을 평가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때 평가 대상은 평교사뿐만 아니라 교장과 교감도 포함되며 교장은 학교 경영 능력을, 교감은 중간관리자로서의 학교 교육활동 지원 능력을 평가하게 된다. 교사는 교장, 교감과 동료교사, 학생, 학부모가 평소 관찰한 내용과 한 학기에 1회 이상 공개수업을 통해 수업활동 전반을 평가받게 된다. 이러한 평가는 매 11월에 평가 당사자에게 통보하되 인사자료로는 활용하지 않게 된다.(2)교원평가제가 등장한 이론적 배경-근무평정제도① 근무평정제도란?근무평정제도란 교사의 직무수행 능력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승진을 위한 참고 자료일 뿐, 근무 평정의 결과가 교원 전보나 교수, 학습 지도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많은 학교가 공정한 평가를 위해 다면(多面)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은 극히 미미하여 교수, 학습지도 능력 및 생활지도 능력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3. 시행 배경의 논란(1) 교사평가제를 누가 실시할 것인가?우선 학습의 수요자인 학생의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교사평가가 학교 관리자나 교사 상호간의 평가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관리자는 교사를 평가할 수 있지만 객관성이 결여될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교장, 교감 등 학교 행정가의 입장에서 교사에 대한 평가는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수업능력에 대한 것보다는 행정능력, 업무능력에 치우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또 교사 상호간 평가 역시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는 평가로 이루어질 가망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혹 평소 관계가 불편한 교사에 대해 인신 공격성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기 때문이다.물론,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다. 한참 인성이 성숙되어 가는 어린 학생들이 이성적으로 스승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할 수 있다. 1년을 마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선생님 에 대한 평가를 학생들이 일시적인 감정으로 임하지 않을 것임을 믿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 교사들이 이를 의식해서 학생들의 인기를 끌기 위한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교사라면 이런 행동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부질없는 일임을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내에 깨닫게 될 것이다.(2)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교사평가의 내용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지식 그리고 인격 위주로 실시되어야 하며, 최대한 좁은 영역에서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성과급제와. 그렇다고 이러한 사람 모두가 교사를 평가하게 만들 수는 없다. 행정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만약 학생들이 평가를 한다면 개인적인 편견이 평가결과에 반영될 위험이 있다. 또한 평가자의 자질에 있어서도 학생의 소견이 교사의 평가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게 만들지 정도의 문제가 발생한다. 평가자의 자격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 논란이 되고 있는 교사평가제의 개정안을 보면 교사를 평가하는 사람이 학생, 학부모, 상관 및 동료교사 등 세분화 되어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평가자의 자격요건을 고려하는 처사가 필요하다.(2) 공정성의 문제교사 평가에 있어서 공정성은 먼저 학교업무를 중심으로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교실업무를 중심으로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난점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해답은 양자 모두가 다 개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학교일을 한 사람은 학교 일을 열심히 한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교실에서 일을 게을리 했다면 정상참작은 하되 교실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정성과 관련지어서 교사들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양하다는 점이 인식되어져야 한다. 만약에 평가자가 중요시하는 관점과 교사의 관점이 다름으로 인해서 낮은 점수를 부과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평가방법 자체의 공정성 외에도 동료교사가 평가할 경우의 객관성 확보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3) 평가기준의 문제교사평가에서 평가기준은 평가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평가결과의 객관성ㆍ타당성ㆍ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평가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평가할 업무와 자질 및 태도 등의 기준사항이 구체화되어야 하고 평가사항과 항목이 명료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평가기준의 엄격성이 필요한 이유는 교사라는 직업자체, 즉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이 질적인 작업이며, 이를 객관하해서 관찰, 평가 및 기록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4) 교권의 문제교사는 법에 따라 교육을 할 권리가 있으며때에 이러한 교사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은 매우 중요하 다. 물론 이러한 소신은 어느 정도 객관성을 띄어야 한다. 이제 사회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교사의 권위를 살려주자는 쪽으로 각성되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사가 공익이나 사회적 정의를 위해서 소신을 가지고 한 행위가 미숙한 학생이나 과격한 학부모로부터 침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5. 교원평가제에 대한 논쟁(1) 교원평가제 실시 반대 논거교원평가제 실시에 대한 반대 논거는 다음과 같다.첫째, 현행 근무평정제도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교원평가제를 추가로 도입하면 교원에게 이중의 부담이 된다. 현행 근무평정제도는 해당 교원의 근무고과에 직결되어 승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함에도 평가의 내용과 기준이 모호하여 평가권자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많다. 또 학교장이 평가의 전권을 독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평가의 기준과 결과를 일체 비공개로 함으로써 끊임없이 공정성, 객관성 시비를 야기시키고 있다.둘째, 평가항목 역시 교육과 무관한 분야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교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수업능력보다는 행정업무 처리능력과 교직원간 인화 등 교육과 관계없는 능력에 중점을 둠으로써 평가의 실효성 자체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이처럼 현행 ‘근무평정제도’가 현장 교원들로부터 존립의 의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에서, 교육부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새로운 교원 평가제도를 추가로 도입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셋째, 교육활동 전반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교원만 평가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교원통제 수단이 아닌가 싶다. 우리 교육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에 대한 ‘정책 평가’, 교육청에 대한 ‘행정 평가’, 학교장에 대한 ‘학교운영 평가’, ‘교육환경 평가’ 등 교육활동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그에 따른 개선방안 모색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교육부는 교원 평가제도 도입을 말하기 전에, 현재 우리나라의우선, ‘현행 근무성적 평정제도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교원 평가제를 도입하면 선생님들에게 이중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평가제를 도입하려는 취지는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현장 교원에게 자발적 능력개발 계기를 제공하고 전문성 신장을 지원하는 데 근본적 목적이 있다. 또한, 평가 결과는 신분과 관련된 교원관리에 활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검증을 거쳐 정착되면 기존의 근무성적 평정을 대체하게 될 것이므로, 새로운 교원 평가제가 교원들에게 이중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둘째, ‘기존 근무성적 평정의 평가항목이 수업능력보다는 행정업무 처리 능력 등 교육과 무관한 분야에 치중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새로운 평가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이렇게 학생지도와 무관한 평가를 지양하고, 학습지도, 생활지도 등 본질적인 교육활동에 중점을 두고 평가함으로써 교육활동에 충실한 교원이 제대로 인정받도록 하는 데 있다.셋째, ‘교육활동 전반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교원만 평가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교원 통제 수단’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추진하는 정부의 교육정책뿐만 아니라 교육청 및 단위학교의 교육 활동까지도 각각 정책 평가, 교육청 평가, 학교 평가를 통해 주기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교원 평가제도는 교육청 평가 및 학교 평가와 연계하여 교감·교사뿐만 아니라 교장에 대한 평가까지 병행함으로써 학교교육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곧, 교원 평가제는 교원들을 경쟁시키거나 통제하기 위한 기제도 아니고, 교사들에게 학교교육의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님을 밝혀 둔다.넷째, ‘다면 평가제의 한계 때문에 신중히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는 다면 평가제의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도록 새 제도의 도입 단계에서부터 신중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앞으로 우리 부에서는 교원, 학부모는 물론 각계의 다양한 의견수렴과 공청회, 전문가 토론회 등을 통해 학교현장에서 수용 가능한 합리적인 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