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두건』과 〈빨간 모자의 진실〉 비교 감상문- 레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동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은 한결같지만, 매번 소중한 것들이다. 그것이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지루하다. 대리 강화와 대리 처벌의 의도를 가진 빤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고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내용의 이야기는 짜증난다. 다 커버린 어른들에게는 더욱 더. 그래서 사람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용해서 이러한 교훈들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간접적인 방식의 교훈의 전달은 화자와 청자의 관심의 중심에 불가피한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과연 우리는 몇이나 『빨간 두건』을 교훈적인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그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만 기억하는 짧은, 그래서 아쉽게만 느껴지는 『빨간 두건』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대어 만든 애니메이션인 은 이런 아쉬움을 날려 버릴 수 있을만한 긴 시간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은 동화를 한편의 추리소설과 같은 내용의 애니메이션으로 바꿈과 동시에 어른들도 즐길 수 있도록 많은 패러디들과 시니컬한 개그 요소들을 가미했으며 신선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원작의 내용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며 새로운 삼자 캐릭터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 해 내었다. 원작의 고정적이며 평면적이었던 롤 모델의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지면서 특별한 각자의 사연을 가지게 되었으며 기대한 만큼의 흥미진진한 결론은 아니었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호기심을 자극 하여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하였다. 더욱이 애니메이션은 원작보다 더 아이들에게 들려 줄만한 이야기로 탈바꿈 한 것처럼 보인다. 늑대는 더 이상 할머니와 빨간 두건을 잡아먹지 않으며 그렇기에 사냥꾼은 늑대의 배를 가를 필요도, 그림동화에서처럼 늑대가 구유에 빠뜨려 죽는 일도 없다. 철저한 전체 관람 가를 고수했다고나 할까. 후반부로 갈수록 많아지는 액션신의 양이 많아지는 구성과 휴식과 진행의 완급 조정도 교과서적으로 충실했으며 각 캐릭터간의 우연적이지 않은 이야기 안에서의 연관성은 이 애니메이션의 단점들을 모두 무시하고서라도 상당한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지막 장면인 동화들 속의 해피엔딩에 관한 은밀한 상상력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단지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장면이 없기 때문에 ‘전체 관람 가’ 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타 작품들과는 차별적인, 확실히 온 가족이 즐길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에서는 원작이 가지고 있던 교훈적인 요소들은 상당부분 희석되어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쉬워 할 이는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이야기’ 이지 ‘교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교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교훈을 얻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원작의 캐릭터들이 겪는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주고자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사람들은 소녀가 길에서 벗어나 숲길로 가서 늑대를 만나고 꽃을 꺾는 장면에서 “엄마가 하는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라는 교훈을 얻을 것이며 늑대와 이야기 하는 모습에서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은 위험하다.” 라는 교훈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사냥꾼을 통해 “배나온 사람은 뭔가 뒤가 구리다.” 라는 교훈을 얻을지도 모르며 소화도 못시키고 배가 갈려 허무하게 죽는 늑대를 통해 “음식은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라는 교훈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교훈이란 받아들이기 나름 이라는 것. 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은 더욱 많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교훈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될법한 교훈이 무엇일지 파악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과연 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할 때는 풍성한 파마 대신 짧은 스포츠 헤어스타일이 유리하다.” 에 관한 이야기 일까? 물론 그런 교훈을 얻은 것이 잘못이라는 건 결코 아니지만.주인공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에서 얻을 수 있는 원작과 차별적인 형태의 교훈은 무엇일까. 원작의 빨간 두건 소녀를 기억 하는가? 철모르고 연약하며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 “나 잡아 가주세요.” 하는 식으로 숲속에서는 정말로 눈에 잘 뜨일 것 같은 빨간색의 두건을 쓰고 다니던 새싹처럼 순수한 아이를. 이 소녀가 도무지 이야기 속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엄마 말 안 듣고 심부름을 자기 방식대로 하다가 사건에 휘말려 할머니와 함께 늑대 뱃속으로 들어가는 일 뿐. 어찌 보면 상당히 동화의 주인공으로는 부적격인, 그저 희생양이 되기 위한 캐릭터랄까. 그나마 그림동화 버전에서는 나중에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해.” 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깔끔함과 매력 면에서는 그림 동화는 페로 동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전달 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미 다 들어가 있는데 해피엔딩과 교훈의 강조를 위해서 어색한 사족이 붙은 느낌이랄까. 빨간 두건의 매력은 그런 백치적인 아둔함과 어떤 정신분석학자가 이야기 했던 내용처럼 가학 적이기까지 한 비극적인 결말에 있다고 생각한다. 페로 동화의 비극적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도 많겠지만 이 동화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대리 처벌적인 이야기를 담기 위한 글 이였다면 그 내용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원작의 이 소녀는 너무도 무력하기에 그저 늑대 뱃속으로 들어가거나 사냥꾼을 도움을 받아서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고전” VS “애니메이션의 고전” 이랄까. 고전이라고 조금 놀리기는 했지만 역시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전과는 달리 분석과 비교를 위한 감상을 해 보니 역시 라퓨타는 단지 과제를 위한 내용 이외에도 상당히 생각할 점이 많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던가. 감독이 이 애니메이션을 “걸리버 여행기” 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섬나라를 모티프로 해서 이 작품을 탄생 시켰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놀랍게도 이름이 같다고 생각했을 뿐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진지하게 생각 해 본적이 없었지만. 그렇기에 어떤 점이 비슷하고 또 어떤 식으로 변형되었는가에 대해서 생각 해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첫 장면은 하늘을 나는 해적선과 비행선이 보이는 하늘에서 시작한다. 감독은 시작부터 원작의 바다에서 일어나던 걸리버의 여행을 하늘로 옮겨 놓았다. (후세에 이 하늘을 나는 해적에 관한 아이디어는 ‘공적’ 으로 변형되어 수많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 이들은 원작의 바다에서 잠시 만나 걸리버를 표류하게 만드는 해적들과는 달리 당당한 주연들이다. 그러나 딱히 ‘걸리버’의 역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짝을 지어 보자면 본의 아니게 고향을 떠나 모험을 하고 있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인 ‘시타’ 와 따지고 보면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사람 좋기에 그 모험에 따라 나선 ‘파즈’ 이 둘이 걸리버의 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타는 정부 기관의 비행선에 잡혀 있다 해적들이 일으킨 난리 통에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이벤트는 ‘비행석’ 의 힘을 관객들에게 소개 할 수 있는 장치임과 동시에 원작과 대비되는 훌륭한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바다에서 바다로 이차원적으로 벌어지던 원작의 표류사건들을 하늘이라는 공간의 활용을 통해 훌륭하게 삼차원으로 옮겨 놓았다. 시타의 낙하와 함께 음악이 나오고, 하늘을 나는 섬들로 추정되는 영상이 나온다. 잠시 고전 소설을 토대로 이러한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영상들을 창조 해 낸 감독의 역량에 찬사를 보내자. 이어지는 영상을 토대로 우리는 하늘을 떠다니는 성이 단 한 개는 아니었으며, 그중 한 개는 추락을 했고, 이 이야기는 걸리버 여행기가 묘사했던 그 성의 모습에서 시간이 더 흐른 훗날의 이야기라는 것을 대강 추측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성들의 모습에서 원작의 막연한 자석의 힘을 통해서 비행을 하던 성의 거주민들과는 달리 애니메이션의 하늘을 나는 성의 거주민들의 과학이 매우 우수한 발전을 이루었음 역시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늘을 나는 성의 비행반경은 세계로 넓혀졌으며 땅에 사는 나라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었고 어떠한 사고 때문에 성이 추락 했지만 하늘을 나는 성들의 비행 반경은 이미 매우 넓어졌기에 성이 추락한 곳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감독이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 또한 감히 추측해 보았다.이후 시타가 파즈를 만나 파즈가 사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100% 감독의 상상력에서 창조된 것들이기에 딱히 이곳에 쓸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으나 단지 파즈의 집에서 파즈가 했던 걸리버 이야기에 대한 말, “걸리버 이야기에 나오는 하늘을 하는 성은 공상일 뿐이었으나 이것은 진짜.” 라는 말만은 역시 만화의 현실성을 강조하는 훌륭한 장치임과 원작과는 다른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중요한 대사이기에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판타지와 현실 사이를 넘나들게 해 주는 감독의 배려는 상당한 용기이며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내가 고전을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렇게 극중에서 당당히 원작의 출처를 밝히면서 차별화를 자신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파즈의 마을에서부터 요새까지의 쫒고 쫒기는 추격전 끝에, 우리가 기대하던 라퓨타의 모습이 드러나기 직전, 원작에서와 같이 파즈와 시타는 해적선에서 따로 떨어져 표류 하게 된다. 아버지의 환영을 보게 되는 극적인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가장 원작과 비슷한 방식의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계승 된 것은 표류 한다는 사실 뿐, 공간은 바다에서 하늘로 변형되어 연출 되고 있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하늘을 나는 섬. 아마도 원작에서 걸리버가 방문 했던 섬과 같은 섬은 아니리라고 단언 할 수 있을 정도로 섬 위의 성과 건물들은 아름다웠으며, 과학력도 뛰어나 보였다. 실용 기하학은 천한 학문이라고 치부하며 삐뚤빼뚤한 건물들을 짓고 산다던 원작의 주민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했을 주민들의 삶의 흔적들이었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원작에서 재미있는 생김새로 묘사 되었던 주민들의 모습을 감독이 그대로 묻어 버렸을 리는 없을 터. 우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라퓨타의 로봇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머리는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하나같이 기울어져 있고, 눈은 하나는 안으로 쑥 들어가고 하나는 이마 꼭대기에 붙어 있다던 라퓨타의 오랜 주민들의 모습은 전투병기, 혹은 일꾼으로 활동하던 로봇들이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다시 자신의 모습을 본떠서 로봇을 만든다고 했었나. 로봇의 모습이 과거 라퓨타의 주민들의 모습을 닮아 있으리라는 사실은 그리 어려운 추리는 아니었다. 물론 오랜 세대가 걸친 후에 땅에 내려온 주민들의 생김새는 평범하게 바뀌었다. 아니, 바뀌어야만 했다. 눈이 하나는 안으로 쑥 들어가고 하나는 이마 꼭대기에 붙어있는 시타의 모습은 딱히 호감 형은 아니지 않았겠는가. 물론 파즈는 착하고 용감한 아이지만 그런 “파즈는 시타를 처음 만난 후 악당들로부터 지켜 주기는커녕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시타의 모습에 놀라 기겁을 하며 도망가 버렸답니다. …….” 라면 곤란하니까.
영상을 끝까지 감상 한 후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러 본다. 우리는 침팬지가 계단을 만드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인간이 고대에 그랬듯 욕구에 의해서 우연찮게 계단이 탄생하게 되는 모습과 흡사하다. “인간의 사고력의 영향으로 계단이 탄생했다 라기 보다는 계단이 인간의 사고력에 더 영향을 주었다.” 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단지 상층으로 오르기 위한 간단한 장치라고만 생각했던 계단이라는 것의 존재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이 장면을 단지 침팬지의 재롱 정도로만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계단을 그저 건축물의 일부로 생각하며 무심히 접했는가? 이 영화는 나에게 계단을 넘어서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그렇다면 어째서 인간만이 계단의 주는 위대한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을까. 침팬지 역시 계단을 만들었으니 현재의 인류처럼 발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안심하자. 영상에서 말했듯 계단을 최초로 만든 것은 인간이며 침팬지의 계단은 단지 우연적인 ‘사고’ 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계단이야 말로 문명을 나타내는 상징인 것이다.계단은 중요한 발명 중의 하나였으며 이후 수많은 발명품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과학을 넘어서 철학적인 의미마저 지니고 있는 계단에 대해서 생각하며 계단이 인류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약간의 충격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삶에 필수적인 컴퓨터마저도 계단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발명품이었다니.톱니바퀴의 영상을 떠올려 보자. 당시 우리는 톱니바퀴는 대단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톱니의 모체는 바퀴와 계단이 발명되었던 수세기 전에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톱니바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톱니바퀴는 우리 생활에 빼놓아서는 안 될 시계의 중요한 부품이고, 늘 같은 빠르기로 톱니바퀴는 맞물려 돌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알 게 해주며, 이러한 계속 된 움직임은 인간의 심장 박동과도 같다. 우리는 기계를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물론 계단이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인간에 대한 탐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계단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소비재이며. 계단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들을 생각 해 보면 자동차 이상이라고 할 만큼 위험한 장치이다.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 건물을 생각해 보자. 사다리를 탄다? 아쉽게도 사다리 역시 계단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위층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동을 되풀이 해야만 할까.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우리는 엄격한 물리 법칙에 따라서 큰 에너지를 가지고 땅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단순한 점점 높아지는 발판의 집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계단을 만드는 방법은 훨씬 더 과학적이며, 정밀하고, 엄격하다. 우리는 계단에 특허가 없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말콤 글래드웰 - ‘블링크 - 첫 2초의 힘’ 을 읽고.제시되어졌던 여러 권의 책 중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블링크의 활용 방법을 배워서 통찰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잘못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블링크, 2초의 미학. 그런 대단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단 말이지?’하며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펼쳐 든 이 책은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만큼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책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려 합니다.책은 총 7장과 들어가는 글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는 글인 ‘세상을 움직이는 첫 2초의 힘’과 첫 번째 장에서는 모조품이었던 조각상과 카드 뒤집기 도박에 대한 일화를 제시하며 통찰력이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불가사의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합니다. 책을 읽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되는 조각상에 대한 일화를 소개합니다.미국 캘리포니아의 폴게티 박물관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박물관이었다. 어느날 이곳에 한 미술상이 찾아와서 기원 전 6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쿠로스 상을 보여주며 약 1000만 달러의 판매가를 제시한다. 박물관 측에서는 유명 지질학자를 초빙해 이 쿠로스 상이 진품인지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이틀에 걸쳐 최첨단 기기를 총동원해 분석을 한 지질학자는 이 석상이 모조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 뒤로도 약 14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폴게티 박물관 측은 이 석상이 진품이라 결론짓고 구입 결정을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조사된 결과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제리’ 는 석상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손톱의 모양이 왠지 모르게 이상하다 느꼈으며 그리스 조각의 세계 권위자인 에블린 해리슨은 박물관 큐레이터가 자랑스럽게 석상의 덮개를 벗기는 순간, 본인도 모르게 감탄이나 축하가 아닌 유감의 뜻을 내비치고 말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관장 또한 이 석상을 처음 보며 ‘새것’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들 모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석상을 처음 보는 순간 퍼뜩 든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의구심이 아테네에 있는 그리스 최고의 조각 전문가들의 의견과도 일치하면서 폴게티 박물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폴게티 박물관은 길고 긴 조사가 다시 시작되었고, 결국 이 사건은 미술상이 박물관을 상대로 모조품을 판매하려 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이 일화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순간적인 판단이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진 조사 결과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운이 좋거나 우연히 찍어 맞추게 된 케이스와는 별도로, 그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전문가들의 '적응 무의식' 이 활동하여 얻어진 결과인 것입니다.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친 과학적 분석이 때로는 순간의 통찰력 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저로서는 어쩌면 쉽게 믿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의 통찰력으로도 얼마든지 알아 낼 수 있는 내용이긴 하겠지만 정확성이나 결과의 신뢰도를 생각해 보면 개인의 통찰력이 과학적 추리 결과보다 뛰어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이 진행되며 이를 통해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통찰력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의 진위가 무엇이든 어떤것이 우월한 방법인가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하려 하기보다는 블링크는 어떠한 방식으로 동작하며 어느 정도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일화 정도로 해석하시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두 번째 장부터는 이 책을 통틀어 조각상 이야기만큼 중요하며 자주 등장하는 ‘얇게 조각내기’ 기법에 대한 설명을 시작합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얇게 조각내기’ 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순간에 이 기법을 사용하는가 하는 정도의 이야기만 나와 있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의도적인 ‘얇게 조각내기’를 실행 할 수 있는지에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그에 대한 반감은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게 됩니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얇게 조각내기’ 란 개인의 순간적인 통찰. 말하자면 어떤 사물이나 사람, 일에 맞닥뜨렸을 때, 왠지 좋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가벼워지는 때가 있거나 반대로 무슨 일을 하기 전, 이상하게 찜찜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하면 그 느낌을 무시하고 계속 나아가다가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맞게 되는 것처럼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체계화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오해였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위와 같은 직감이 매번 들어맞는 사람을 두고 예지력이 좋다거나 잘 찍는다는 말을 하며 동양에서는 이를 사주역학으로 표현하며 과학적 논리보다는 운명이나 특정인의 예지능력으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현상이라 파악해왔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관점으로 볼 때, 저자인 말콤은 그 놀라운 예지력의 바탕엔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깔려있음이 확인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뇌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와 관련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무의식적으로 순간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짧은 순간에 진품과 구별하기 힘든 조각상의 진위여부와 한 부부의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블링크’라는 단어가 가진 힘입니다. 그리고 블링크를 만들어내는 뇌의 영역에는 그동안 축적된 수많은 데이터가 담겨 있어 순간적인 판단을 더욱 정확하게 만들어 줍니다. 말콤은 이 무의식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판단에 바로 '블링크' 라는 이름을 붙이고 블링크를 만들어내는 뇌의 영역을 전뇌 부분의 '적응 무의식'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과는 또 다른 부분으로, 우리의 뇌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신속·정확하게 처리하는 일종의 컴퓨터와 같은 영역이라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적응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생되는 블링크, 즉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이 생성되는 과정과 이 능력이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고 이 순간적 판단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결과가 어떠한지 성공과 실패의 예를 들어 흥미롭게 전해줍니다.책의 3장에 이르러서는 이 섣부른 예지에 따른 실패가 어떤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블링크가 뛰어나고 주목할 만한 능력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과신하거나 잘못 이용했을 때 우리는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요? 3장부터 6장에 걸쳐 나오는 내용인 코카콜라가 펩시를 따라 하기 위해 만든 ‘뉴 코크’나, 미국인들이 첫 인상만 보고 대통령감이라 생각한 워렌 하딩 등이 그 실패의 예입니다. 숙련되지 않은 ‘블링크’의 오작동으로 인하여 무고한 시민에서 마흔 한발의 총을 쏴서 죽인 경찰관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게 어딘가의 어떤 캐릭터와 이름이 매우 흡사한 자동차 세일즈맨 ‘보브 골롬’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저자는 우리가 블링크를 맹신하고 가능성을 섣불리 판단했을 경우 어떠한 일이 생길 수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 우리는 블링크를 따라서는 안 되는지도 설명합니다. 이 세 장에 걸쳐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바로 모의 전쟁에 대한 일화였습니다. 시시각각 전황이 바뀌며 통제 불가능한 전시에 자료를 맹신하고 철저한 분석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 없는가를 사뭇 코믹하게 묘사한 이 글은 올바른 블링크를 사용이 어떤 경우에 중요한지, 왜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철저한 분석 대신 블링크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은 내용이기에 짧게나마 한번 이야기를 소개 해 보겠습니다.미국 연합군 사령부는 워-게임을 통해 새로운 군사 작전을 실험한다. 미군을 청팀과 홍팀으로 나누어 새로운 전략을 시험하고 모의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청팀은 아군, 홍팀은 적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번 실험의 이름은 ‘밀레니엄 챌린지’였다. 미래의 전쟁은 어느 시대보다 단순한 전면전이 아닌 수많은 경제적 정치적 요소가 결합된 것이며 이를 위해 군대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 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이에 따라 군사작전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팀은 ‘작전용 그물망 평가’라는 의사결정 도구를 도입했으며 ‘효과 베이스 작전’ 이라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작전계획 등을 새로 만들었으며 최신예 신무기들로 무장했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홍팀의 사령관은 밴 라이퍼는 이 새로운 시스템은 얼핏 보기엔 효과적일지 모르나 실전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전시의 예측 불능한 특성과 의사 결정에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밴 라이퍼는 유럽 선물거래소의 거래인들을 보며 전시의 의사 결정이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하게 된다. 물량과 정보에서 앞섰던 청팀은 첫날 홍팀을 항복 직전까지 몰아 붙였으나 그 이후에 난항을 겪게 된다. 밴 라이퍼가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라도 파괴당하고 도청 당할 수 있는 기술에 의존하는 대신 대안 책을 찾아서 실행했고 청팀이 우왕좌왕 하는 동안 구식 보트를 이용해서 청팀 함선들의 위치를 추적 한 후 청팀의 함정 16척을 페르시아 만에 격침시켜 버렸다. 물론 모의 전투였지만 만약 실제였다면 미군 병사 2만명이 총 한발 쏴보지 못하고 물귀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결과에 대하여 청팀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시간을 되돌리고 여러 가지 금제를 건 후 억지로 홍팀을 이긴 후 이 작전을 실전에 적용하려 한다. 훗날 군 관계자는 ‘작정용 그물망 평가’ 가 명백한 실패였다고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