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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막론 연구
    -성막론연구-1.성막뜰의 체험+------------------ 암 송 성 구------------------------------------+|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 섬기는 자로 그 양심 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 || 할때까지 맡겨둔 것이라 |+------------------------------------ 히브리서 9:9-10 -------------+서론첫 언약이 체결된 후 (출24: ), 하나님은 성막 건축을 명하셨다(출24:1-9).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겠다고 장담했지만(출 24:7), 그러나 그들에겐 속죄의 피뿌림이 여전히 필요한 존재요(출24:8),그들이 결국 율법에 의해서 정죄될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성막과 제단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율법과 언약 후 성막을 계시하신 것이다. 성막 속에는 숨겨진복음이 흐른다. 성막은 속죄를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설계요,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그림이요,계시다.1.성막의 경계┌────────────────────┐│바깥뜰(성막뜰)은 교회의 경계와 영역이다.│└────────────────────┘성막에는 세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지성소와 성소 그리고 성막의 뜰이다.사람이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성막뜰을 거쳐 성소를 통과해야만 지성소에들어갈 수 있다.제일 먼저 성막에 들어서면 성막뜰이 있는데 성막뜰에는 두가지 중요한 성구가놓여져있다. 첫 번째 만나는 성구는 제단이요, 두 번째 만나는 성구는 물두멍이다(출40:29-30).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려면 누구나 성막뜰에 첫 발을 디디게 되는데 먼저 제단에서 처리 받고 물두멍에서 씻음받아야한다.성막의 제일 경계는 60개로 세워진 기둥에 쳐진 세마포가 경계선이다. 성막 경계 안쪽에 속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성막 경계 바깥쪽에 속한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다.우리는친히 기도하고 탄식하시며 우리를 드러낸다(롬8:26). 번제단에서 불로써 심판받은 후 물두멍에서 중생의 씻음이 필요하다(딛3:5). 우리의 타락한 상태는 물두멍에서 드러내야하고 그 드러난 상태는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정결케 씻어야 한다. 번제단이 심판이라면 물두멍은 중생의 씻음이다.제단에서 불로써 살라지는 심판을 체험하고 물두멍에서 씻음을 체험해야한다.결론성막뜰의 기둥에 걸려잇는 세마포는 성막의 기초 벽이며 세상과 교회의 경계다. 우리가 성막뜰을 통과하지 않고는 성소에 들어 올 수 없다. 이것은 교리의 문제가 아니고 체험의 문제다.성막뜰에서 십자가와 심판을 체험하고 불태워져야하고 물두멍에서 깨끗하고 정결케되는 중생의 체험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운 길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이 심판받고 씻음받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성소의 3누림을 갖게 되는 것이다.2.성소의 체험───── 암송성구───────────────────────────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둘째 휘장 뒤에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히9:1-3 ────────────(서 론)우리는 지난 시간 성막 뜰의 체험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성막 뜰은 하나님의건축을 위한 분계선을 구축할 뿐이며 성막 자체의 실제 건축은 아니다. 성막뜰은 주건물이 아니고 성막을 짓기 위한 터요,경계선이라 할 수 있다.성막 뜰 안에 있는 항목은 번제단(심판)과 물두멍(씻음)이다. 성막 뜰에서죄인에겐 심판과 성령의 씻음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준비과정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준비가 갖추어질 때 성소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성막 뜰에서 불사름의 심판과 중생의 씻음을 체험했다면 이제 성소안으로들어가 하나님의 거룩을 체험할 단계에 이른 것이다.성막 뜰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체험이라면 성소안의 체험은 성결에 관한 체험이다. 오늘은 성막뜰의 체험 후 성소린다. 육신의 요구를 따라 별미를 먹어서는 안된다.(민11:4-7) .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인제사장)은 기록된 말씀 만이 양식이되어야한다.(요6:47-55) 철학적 설교를 듣거나 율법적 설교를 들으면 곧 영혼에 갈등이 오고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40년동안 임재의 떡(출25:30), 배설의 떡(왕상 9:32)만 먹었다.(수 5:11-12) 오직하나님이 주신 말씀(떡)중심의 삶을 살 때만 그리스도의 누림이 있다.4.생명의 빛 등대┌───────────────────────────┐│성소 안의 등대는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성소 안에 진열된 성구의 두번째 항목은 성소 안을 밝히는 등대다(출25:31-39)성소 안은 입출구도 창문도 없는 완전히 인봉되고 차단된 방이다. 여기 자연적인 빛이 들어 올 수 없다.오직 등대에서 밝히는 빛만이 유일의 빛이다.성막 안에는 세층의 빛이 있다.성막 뜰에 비치는 자연적인 빛이다. 이는 해와 달의 빛이다. 여기는 지붕이 없어서 자연의 빛이 그대로 있다.두번째 성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다.성소 안에 등대의 빛은 거룩한 빛신성한 빛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다(요1:4,12:35-36)그리스도의 신성안에 거하게 되면 자연적인 빛 인간적인 이념이다. 사상의빛으로 사물을 보지 않는다. 철학이나 문화적 배경을 따라 교육의 견지와 정도에 따라 사물을 보던 것을 버리고 주님의 회복 안에서 사물을 보고 조망하는 등대의 빛을 받는 것이다. 등대는 성소 안의 유일의 빛이요 성도는 빛의 자녀다(살전5:4-6) 생명의 빛을 통해 어둠이 물러가게 되고 사물이 확인된다(고후4:6)등대는 성소 안의 사물을 밝히고 확인하는 능력이 있다. 등대는 우리에게 생명의 분별과 확신의 누림을 누리게 한다.5.기도의 분향단┌──────────────────┐│분향단은 성도들의 기도를 가르킨다. │└──────────────────┘향단은 아침저녁으로 불그리스도안에계시는 참 실재이신 하나님을 체험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가장 깊은 지성소의체험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성소 깊은 곳에 하나님의 궤인 완전한 그리스도의체험을 영안에 갖게 된다. 옛 성품 옛 자아가 끝나고 우리의 총체적인 누림이지성소안에서 이루어진다. 온전한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게 된다. 지성소만이 하나님의 임재의 유일한 장소다.3.속죄소의 체험┌─────────────────────────────────┐│ 속죄소는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의 덮개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증거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덮개였다. 증거궤는 지성소안에 설치되어있는 유일의 항목이다(출40:20-21).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가장 거룩한 궤이며,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이 증거궤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법궤와 그 법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시은좌)이다(출25:21-22). 속죄소는 엄격히 말하면 법궤를 덮고있는 뚜껑인데 이 속죄소는 법궤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소가 되셔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셨기에 율법의 입을 막으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이 만나시는 것이다(출25:22). 율법은 두가지 요구를 가진다. 하나는 율법대로 완전히 살것에 대한 요구요, 다른 하나는 율법대로 살지 못하면 피 흘리는 죽음이요구되는 것이다. 율법은 지키다가 하나만 걸려도 사망을 면치 못한다 (약2:10-11,갈3:10). 인간의 힘으론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시14:2-3,롬3:10).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속죄소가 되셔서 율법을 완성시키신 것이다(마5:17-18). 대제사장은 반드시 번제단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그 속죄소에뿌렸다(출25:17-22).4.법궤의 비밀┌──────────────────────────┐│ 지성소안에 법궤가 주인이 될때 생명율을 따른다. │└──────────────────────────┘우리는 먼저 성소안의 3가지 항목에 대하여 공부하였면 제사장이란 죄를 위하여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었다(레1:5).그런데 처음 사람 아담은 무죄하였음으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담을 제사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사경해보면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임무란 성막 뜰에서 행해진 일부요, 제물드리는일은 그의 직무의 1/3에 해당되는 것 뿐이었다. 제사장은 단순히 제물만 바치는 사람만은 아니었다. 성소에 들어가면 진설대에 진설병을 준비하고 등대에불을 켜야하며 향단위에 향도 피워야 한다.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분을 만나고 그 분 앞에서 그분만을 섬기게 된다.그러므로 아담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분을 섬기고 그분 앞에 사는 자였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 그는 항상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앞에 서 있었으며 그는 전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은 창조된족속의 머리일 뿐 아니라 그의 최대 직무는 하나님 섬기는 제사장적 직무였음을알 수 있다.2.제사장의 나라┌──────────────────────────────────┐│ 이스라엘은 부르심을 받은 족속이요, 제사장의 나라로 선택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머리다. 아브라함이 성경에서 제사장이라 불리운 일은 없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임은 확실하다(창12;1-3). 아벨,노아가 그랬듯이 아브라함도 제물을 드렸다(창22:1-2).그는 제물을 드린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전문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삭도 그러했고 야곱도 그러했다. 물론 야곱의 경우 그의 생명이 지성소에 있지 못하고 항상 뜰밖에 있었다. 하나님은 끝없는 훈련을 시켜 결국 지성송의 위치로 끌어들여 마침내 하나님의 왕자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 것이다(창32:28). 그리하여 결국 전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된 것이다.하나님은 이 야곱의 자손 모두를 제사장으로 만들기 원한 것이다유월절(출12:1-1은
    인문/어학| 2002.09.25| 19페이지| 1,000원| 조회(2,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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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른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 바른 교회의 성장요인 ) 평가B괜찮아요
    {{제 목 : 바른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바른 교회의 성장요인 ){- 차 례 -{Ⅰ. 들어가는 말3Ⅱ. 교회의 정의와 본질31. 교회의 정의32. 교회의 본질41)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교회52) 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53)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교회64)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75) 증거 공동체로서의 교회7Ⅲ. 교회성장 81. 교회성장의 정의82. 교회성장의 원리91) 성장의 성경적 원리92)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9(1) 성경의 권위 인정9(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10(3) 기도의 영력10Ⅳ. 나가는 말101. 선교지향적 교회102. 말씀중심 교회113. 가정치유 교회114. 평신도사역 교회115. 복음전파 교회116.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11바른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바른 교회의 성장요인)Ⅰ. 들어가는 말{바른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얼마 전 갤럽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내의 기독교인의 수가 전체인구 비례 20.2%를 차지하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중앙일보, 1998. 6. 2일자여기에 따라 수많은 교회들이 이들과 함께 존립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교회들 중 과연 바른 교회로서 올바로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될 지 의심스럽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한국교회의 성장속도는 매우 둔화되었고, 많은 이들이 카톨릭이나 불교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이러한 모습에 이른 것이다.그러나, IMF로 인해서 교회의 성도들이 다시금 서서히 늘어가고 있는 사정에 접하고 있는 교회는 올바른 교회관을 확립하고 다시는 이들을 놓치는 불행한 모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바른 교회가 어떠한 교회이고, 올바른 교회성장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의 교회성장의 역기능적인 신앙구조의 문제-수직적 신앙(vertical faith)만을 강이후 국가가 파멸되고 또 많은 유대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게 되면서부터 히브리용어인 카할 이 종교적인 의미를 얻게 되었고, 특별히 예배를 드리거나 율법을 듣기 위해 모인 유대인의 성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 Ibid., p. 13.즉 카할 은 단순히 유대인이나 유대사회와는 구별되게 계약에 충실한 백성들의 모임을 나타내는 말로 정착된다. 이러한 카할 의 언어적 특성은 자연히 남은 자 사상 에로 우리의 관심을 이끈다. 왜냐하면 남은 자 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배반과 타락에 물들지 않은 경건한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남은 자 에 대한 구약성서의 언급은 주로 예언자의 글에 언급되어 있으며(사1:9, 7:9, 6:7, 14:32, 습3:12-15, 학1:12-14, 슥8:6, 스9:8, 14-15, 느1:2-3), 중간기 유대교 묵시문학에까지 계속되었다.{ ) 이종성, 교회론, (서울:대한기독교서회,1989), p. 32-33.남은 자 에 대한 사상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 피할 길을 얻은 경건한 소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사명을 가진 공동체로서 보호되어 남겨져 하나님이 그들을 중심으로 의로운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역사 안에서 여러 가지의 역경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남은 자 로 생각하게 되었고, 교회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Ibid., 305.이런 의미에서 카할 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담아 신약에서는 에클레시아(Ekklesia) 란 말로 번역하였다. 초기 기독교의 공동체는 결국 의식적으로 그들 자신을 히브리적 유산과 관련시키면서도 유대적 예배 공동체들과 구분하여 에클레시아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 부루스 라이츠먼, p. 14.유대적 예배 공동체는 에다 란 말을 제한시켜 유대인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장소와 건물을 의미하도록 하여 시나고그(synagogue) 로 사용하였다. 결론적으로 통하여 봉사하는 구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2) 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성서의 기자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일어난 모든 사건을 구약시대에 야훼 하나님이 약속한 언약의 성취라고 생각했다.{ ) Ibid., p. 55.사람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새 백성, 곧 독특한 임무와 주체성을 가진 새 공동체가 되었고, 예수도 추종자들은 새 이스라엘로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의도적으로 열두 제자를 택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상징적으로 대표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이 제자들과 새 언약을 맺고, 모세의 언약과 율법을 토대로 새 계명을 주었다.{ ) 부루스 라이츠만, p. 55.이러한 의도는 예수 부활 사건과 성령강림 사건을 기점으로 낡은 율법시대는 지나고,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 주었다. 이들은 새 시대에 적합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새 공동체가 곧 새 이스라엘 백성으로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믿었다. 이 새 이스라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 이방인 할 것 없이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새 생명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이스라엘, 곧 새 이스라엘이다.{ ) 이종성, p. 56.새 이스라엘은 외면적 유대인이 아닌 내면적 유대인으로{ ) G.E. 래드, 신약신학 , 신성종, 이한수 역, (서울:기독교대한출판사, 1984), P. 604.혈통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따라서 할례는 육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가 된다.{ ) Ibid., p. 604.교회가 참된 이스라엘, 곧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은 교회가 새로운 계약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첼만은 초대교회와 관련하여 교회가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존재 로 인식하는 동시에 세상 안의 존재 로 이해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 H. 콘첼만, 신약성서신학 , 김철손외 2인역,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82), P. 48.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상 안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는 예수께서 내가 너희에에서 거룩성의 근거를 빌려온다. 그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자체가 하나의 생명이며, 따라서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역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완성되고, 예전을 통해서 신도가 신과 하나가 되어 신적 존재가 된다{ ) Ibid., p. 157.고 하여, 현재 지상에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를 존재론적으로 연결시켜 교회의 권위를 절대시하려 한다. 하지만 교회의 거룩성이 과연 어떤 유형적 기구, 제도, 조직이나, 또는 교회가 신성하고 구성원이 거룩하기 때문에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요, 합리화이다. 성서는 교회가 성스러운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하지 않는다. 교회가 거룩한 것은 성령이 임재하시기 때문이며, 교회가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 속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 Ibid., p. 158.또한 신자가 거룩하기 때문에 교회가 성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교회는 결코 개개인의 신자가 아닌 구체화되어 있는 살아있는 전체 공동체의 유기적인 통합이 거룩한 성전인 것이다.{ ) 부루스 라이츠먼, p. 53.4)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구약성서에서는 신약성서가 뜻하는 교제(κοινονια)에 해당하는 개념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스라엘인들이 신을 지극히 거룩한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신과 대화하거나 교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모독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종성, p. 69.그러나 기독교의 교제는 수직적이면서도 수평적인 교제를 의미한다. 수평적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상대로 가지는 수직적인 교제가 전제된다는 측면에서 구약적 회합, 회중의 의미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코이노니아를 제공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수직적 차원으로 성령의 사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코이노니아는 연결하여 상합하여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움으로 성령 안에서 주신 개인적 은사를 이 땅 위에 나타내는 몸인 것이다.{ ) 하워드 스나이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이강천 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교수를 초빙해서 세계선교학원(School of World Mission)을 세움으로써 풀러신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선교이론과 교회성장학을 발전시켰다. 그래서 풀러신학교 교수들을 중심으로한 교회성장학의 흐름을 교회성장학파 또는 풀러학파 라고 칭한다.{ ) 크리스찬생활백과편집위원회,크리스찬생활백과 ,(서울:성서교재발행사,1986), p. 812.대표적인 학자로서는 P. Wagner, D. McGavran, G. Hunter, D. Miles, D. Kelly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사상이나, 강조점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종합하여 정의하면 성장의 원리를 성경에서 찾고 있다. 즉 맥가브란과 헌터는 교회성장의 방법을 보여주는 몇 가지 성경적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이원규,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친 교회성장학에 대한 임상적 평가 목회와 신학, (서울:두란노서 원,1993년 7월), pp.44-45.우선 성경을 교회성장적 사고의 근원으로 보면서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므로 그리스도밖에 있는 잃은 자를 전도하는 것이 성장과 배가의 이유가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향해 있으나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은 잃은 자를 찾아 교회성장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비슷하게 헌터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 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복음화의 목적이요, 교회성장의 목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장론자들은 교회성장은 하나님에의 충성의 표시이며, 기독교는 잃은 자를 찾고 구하기 위해 보내졌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는 것이다.성경에서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의 명령을 하고 있다. 하나는 문화명령 이요 또 하나는 복음명령 이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로 문화명령은 창1:28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명령으로서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가
    인문/어학| 2002.09.25| 11페이지| 1,000원| 조회(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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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칼빈의 교회관을 읽고
    칼빈의 교회관을 읽고이 글은 오토 베버가 프린스톤 神學校에서 1966년 워필드 講義에서 강의한 原稿 이다. 이글에서 베버는 칼빈주의적 敎會觀을 明確하게 說明하고 있다. 오늘날의 韓 國敎會의 長老敎 牧師들이나 平信徒들의 槪念속에서의 敎會觀은 正統 칼빈 주의적 이지는 못하다.敎會를 신앙인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 로 강조하는 것은 루터교에서 온 개념이다. 오토 베버는 칼빈의 교회 이해가 루터교의 교회관과는 다르다고 하는 것을 잘 설명한다. 칼빈에 의하면 교회는 신앙인의 공동체 일 뿐 아니라 하나님 께서 그의 택한 백성을 위하여 制定하신 기구(institution)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主權을 강조하는 칼빈은 하나님을 믿고 信仰告白을 하는 신앙하는 主體인 사람에 역점을 두는 신앙인의 공동체 의 개념보다,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시고, 사람들에 게 신앙하도록 말씀을 주시며,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고 保存하시기 위하여 制定하 신 機具로서의 교회 개념이 先行함을 말한다. 칼빈은 敎會 理解에 있어서도 철저 하게 하나님 중심이요, 말씀 중심임을 알수 있다.칼빈 자신이 어떤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宗敎改革을 생각하지 않았다. 칼빈은 秩序와 傳統을 尊重했다. 그의 교회관은 두가지 중요한 개념 즉 그리스도 의 다스리심과 신자들의 脂體됨이라는 개념으로 전개된다. 칼빈의 교회론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說敎이다. 그리고 그의 교회는 職 分을 中心한 교회(Amtskirche)이다. 칼빈은 萬人祭祀長論 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 다. 1541년, 1561년의 敎會 憲法에 보면 칼빈은 네가지 형태의 職分을 말한다. 즉 牧師(pastores), 敎師(doctores), 長老(presbyteri), 執事(diaconi)이다. 그리고 칼빈은 牧 師職을 敎人의 共同體보다 優先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칼빈의 聖禮論의 特徵은 그가 두 聖禮의 共通된 性質을 發見하려고 試圖한 데에 있다고 하겠다. 칼빈은 이 두 성례를 하나님의 言約의 徵表로 이해한다.오늘날의 韓國 長老敎會를 바라다 보면서 改革主義 혹은 칼빈主義的이냐는 물음 에 선뜻 그렇다 라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대답은 더 할 수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칼빈주의 교회인 長老敎會에서 그런 대답을 할 수 없다 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 이런 물음을 심각하게 물어야할 必要性을 느낀다. 長老敎의 政治와 組織은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본래 장로정치제도가 없는 각 敎派 敎會에서도 장로교회의 조직과 제도가 채용되어 있지만 장로교회의 根本的인 意味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물론 칼빈주의가 기독교를 전부 포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聖經的이고 가장 初代 敎會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칼빈주의를 따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칼빈 당시의 狀況이나 선교사들이 피선교국 인 한국에 복음을 전할 상황이나 오늘날의 상황과의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 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글은 칼빈의 당대적 상황과 관련시키면서 그의 교회관 을 잘 설명했다고 보여진다.
    독후감/창작| 2002.09.25| 2페이지| 1,000원| 조회(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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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성신학
    무엇이 참된 영성인가? 또는 무엇이 신령하고 영적인 삶인가에 대해 바른 성경적 관점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영성 개념의 혼란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마땅히 지향해야 될 영성의 윤곽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기독교적 영성(spirituality)이란? 일상적인 삶과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일상적인 삶이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삶으로 메말라지지 않는 어떤 신비성이 유지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은 기초로서 이해하고 총체적 관점에서 보아야 된다. 영성이란 말은 "한 사람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의 성격"을 가르친다면 영성생활이라는 말은 그러한 성격의 관계를 이루어가기 위하여 행하는 일련의 신앙적이 노력들을 가리킨다. 모든 종교가 인간으로 하여금 현재의 인간 실존을 넘어서서, 좀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영성도, 인간으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서 초월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게 하고,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와 전혀 다르지 않다. 기독교적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안에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은 시작되는 것이다.일반적 영성은? 어떠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든지, 또는 누구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자기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정신을 자기의 정신으로 받아들여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영성은 우리의 인생은 무엇과 같을 때에 가장 이상적이 될까? 또는 인간의 최고의 덕과 가치와 목표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과 깊은 연 관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고의 가치와 이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차이는 영성의 차이를 가져온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자기의 정신과 삶의 스타일은 우리가 버리겠다고 작청하면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로운 정신과 삶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는 옛 경험할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훈련이 없다면 오히려 새로운 정신과 삶의 스타일을 받아들인 것이 유익이 되지 못하고 내적인 갈등만 초래하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내가 보는 영성의 의미와 나의 신앙적 영성은 금욕적이고 고립적이다. 그러므로 아주 수용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독선적인 면이 강하다. 그 영성이란 나에게 있어서 지식적으로 객관화된 설득력이 있는 것이어야 된다. 이것은 내가 내세적, 신비적, 신유적인 요소를 배격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나의 신앙적 배경이 보수적 경향을 받고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를 적에 손뼉 치거나, 드럼 등, 악기를 연주하거나, 기도회 시간에 지나친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삼가야 되는 것들로 배웠던 것이다. 기도도 할 적에 별 감정이 없다. 이 말은 절실함이 결여됨을 뜻한다. 굳이 애써 빌어서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결투 적인 자세가 미약함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함에 신중치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 면에서 대개 자유로이 교회에서 주는 기도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지금도 이성적으로 용납되어지는 것이어야 잘 적응이 된다. 반대로 감정적인 극한 호소적 분위기는 질색이다. 그래서인지 신앙적 열정, 뜨거움이 없다. 이것이 인간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보면 인간적인 사랑함의 부족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곡 그렇지만은 아닌 것은 상대방이 분명할 경우는 의외로 쉽게 가까워짐을 발견한다. 친구관계로 비유하면 많은 친구는 없어도 내 생명처럼 아끼는 친구는 1-2명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 중에 경쟁적인 사람에게 뒤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과는 냉랭한 관계일 수밖에 별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내심으로는 없지 않아 가까워지고 싶은 부분도 있다. 또 다른 습관 중에는 뭐든지 쉽게 바꾸는 습관이 있다. 오래 뭘 사용을 못한다. 금방 좋아해 보다가도 금방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예수의망했던 새 창조의 현실이다. 새창조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시대에 이르기까지 종말론적/메시아적 대망 속에서 늘 기대되어 왔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 이르면, 타락된 원 장조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종말론적 새 창조의 현실이 자신의 사역 안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즉 인간의 죄로 인하여 생긴 모든 기형이 치료될 것을 기대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 즉 원 창조의 회복이 실현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창조의 영성"이 무엇일까? 새 창조의 영성은 원 창조 시대에 주어진 순결성을 회복하고, 그 순결성 안에서 내적 생각과 의지가 하나님의 본뜻에 완벽하게 조율된 상태이다.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했던 그 완전한 교제의 상태를 회복했다는 듯이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새 창조의 사역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음으로써 원 인간의 상태를 회복하는 하나의 모델로서 사셨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는 바로 회복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은 깨어져 버린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다. 이것을 신약성서의 용어로는 "새로운 창조"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창조의 맥락 안에서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완전한 상태로 보여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뜻이 된다. 그 분은 성령과의 관계가 곧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령께서 활동하고 있는 곳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자리 잡는다는 사실이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예수의 권위적인 죄 사함 선언도 역시 하나님과의 하나됨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중요한 증거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비밀을 받았다는 확신, 다시 말하면 자신이 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그 권위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아무 거리낌없이 율법을 폐기하기도, 수정하기도,서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과 완전한 소통을 이루는 관계, 신비적이 합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전이되는 관계, 그리하여 그의 생각과 행동이 곧 하나님의 생각과 행동과 일치하는 관계 바로 이것이 예수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하나님과의 하나됨의 영성"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 사는 것을 영성의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은 훨씬 더 내재적이었고 자애로우신 분이었다. 하나님은 언제라도 기댈 수 있고 안길 수 있는 너그러운 분이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완전한 하나됨을 이루었다 하더라고, 예수는 예수요.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신적 합일의 목적은 신성을 얻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비움을 통해 즉 내적인 정화의 형태로 표현되었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삶을 통해서 표현되기도 했다. 내면적인 욕망의 비움 없이는 참된 영성의 추구란 불가능한 것이다. 영성에의 추구란 결국 더욱 풍요로운 생명을 일구어 가는 일이므로, 그 생명의 참된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수에서 있어서 자기 비움은 단순히 영적이 태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수도사적 내적 비움뿐만 아니라, 그의 영성과 삶 전체를 지배했다. 자기 비움의 의미를 삶의 모든 영역에 실천했던 것이다. 영성이 윤리의 뿌리라면, 윤리는 영성의 열매이다. 영성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현실 도피적인 신비주의 혹은 열광적이 광신중의에 빠져 있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영성에의 추구가 더 우선되는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영성은 아무래도 마음 혹은 내면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영성적인 노력이 어떠한지에 따라서 윤리적 삶의 수준도 결정될 수 있다. 윤리적 삶의 원동력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로주의가 아니라 행동이 없는 거짓 경건이다. 영성이란 윤리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며, 반대로 그 분에게 있어서 윤리란 영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동적인 추구였다. 예수께서는 구원의 현재성과 하나님의 무상 적인 은혜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종말론은 달랐다. "곧 심판이 온다"가 아니라, "이제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공적에 따라서 차등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주신다는 것이다. 예수께 있어서 영성적이 노력이 고행이 아닌 또 다른 이유는 성령의 내주 때문이다. 성령은 그의 내적 힘의 원천이 되었다.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영성적인 노력은 기쁨이요, 축제인 것이다. 실존하고 변화를 받은 이후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사는 사람은 이미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영성적인 추구가 타락한 존재로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짐이요,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변화된 사람에게는 그것이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요 즐거우이다. 예수의 삶은 축제적인 삶이었다. 즉 공생에 전체의 분위기로 볼 때 예수는 웃으시는 분이었다.예수의 사역에서 일어 났던 종교적 엘리트는 예수의 복음을 배척하고 땅의 사람들이 더 열렬히 응답했다는 현상에 대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엘리트가 하나님 나라에로의 초청에 응답하지 못했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었던 까닭은, 그들이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영성적 삶을 살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영성적 수단에 집착해 있었기 때움이다. 반면 땅의 사람들은 율법이나 제의에 대하여 아무런 희망을 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그러한 종교적 시스템 때문에 죄인으로 분류되어 좌절감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율법도 제의도 필요없는 새로운 복음이 선포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게 응답을 했겠는가? 예수께서는 스스로 "성령자"였을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었다. 믿는 자들은 그를 통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악한 영을 물리치고 비어 있는 마음에 성령을 받아들여,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살아가야 한다고 암시하셨다. 성령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다.
    인문/어학| 2000.10.06| 4페이지| 1,000원| 조회(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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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교육 평가C아쉬워요
    목 차Ⅰ. 서 론‥‥‥‥‥‥‥‥‥‥‥‥‥‥‥‥‥‥‥‥‥2A. 문제제기‥‥‥‥‥‥‥‥‥‥‥‥‥‥‥‥‥‥‥ 2B. 연구목적 및 연구 방법………………………………… 3Ⅱ. 본 론…………………………………………………‥4A. 뉴 에이지 운동의 기원과 배경………………………‥41. 뉴 에이지 개념과 기원…………………………………‥42. 뉴 에이지 역사적 배경…………………………………‥5B. 뉴 에이지 운동이 청소넌에게 미치는 영향…………… 51. 뉴 에이지가 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는 원인…………‥52. 뉴 에이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6(1) 교육 관점에서 본 뉴 에이지…………………………… 6(2) 서적 관점에서 본 뉴 에이지…………………………… 7(3) 대중문화 관점에서 본 뉴 에이지………………………‥7(4) 예술적인 관점에서 본 뉴 에이지………………………‥8ⅰ) 음 악………………………………………………‥8ⅱ) 미 술………………………………………………‥9ⅲ) 영상매체(영화, T. V)………………………………‥9C. 뉴 에이지 운동에 대한 대처 방안………………………… 9Ⅲ. 결 론…………………………………………………10Ⅳ. 참고도서………………………………………………11Ⅰ. 서 론A. 문제제기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이며, 귀한 가능성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희망이며 가능성의 존재라 할 지라도 그들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의 기대는 물거품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사회 교육은 단지 의무적인 학식에 불과하며, 한 인간이 사회생활 하는 데에 생계수단이 되겠지만 그 삶은 바람직한 삶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교회 교육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동시에, 청소년들에게는 영적인 지식, 한 인격체를 신앙으로 형성하는 데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손병준 『미래의 청소년상』2천년대를 향한 기도교 교육의 비전 서울: 기독교교육협회. 1980, p. 최낙중 『청소년 목회의 이론과 실제』 서울 : 성광문화사. 1993. 9. 1.그러므로 사람인 청소년들을 하나님의 형상을그러나 이 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는 영적 도덕인 " 뉴에 이지" 라는 것이다. 사실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이 육체적으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지만, 뉴 에이지는 정신적 혼란을 넘어 정신적(영적)으로 죽어 가는 심각한 문제이다.뉴 에이지에 있어서 다양한 유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먼저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으나 대중매체(영화, 음악, 서적, 텔레비전, 등)를 통해 뉴 에이지 사상을 퍼뜨리는 점, 두 번째 유형은, 요가, 명상, 마인드 컨트롤, 강신술, 최면술, 등 동양 신비주의 종교에서 도입된 심령술을 사 용하다는 점, 세 번째 유형은, 세계 단일정부 수립을 통해 기독교를 세속화시키자는 점에서 뉴 에이지 운동은 문화적인 측면에선 그 뿌리를 동양에 두고 있지만, 꽃과 열매는 서구 사회를 통해 전개된 일종의 종교와 문화의 통합적인 운동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규모에 있어서는 인류사에 등장한 거대한 두 운동, 즉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종태, "최근 미국내의 뉴에이지 운동과 교회 대응" 『목회와 신학』 1992, 9월호 p,69뉴 에이지 사상은 한 마디로 사탄의 음모이다. 왜냐하면 그 사상에 있어서 화려한 옷과 매혹적인 얼굴을 병들게 하는 독소를 뿜어내며 기독 청소년들에게는 교회를 떠나게 하는 동시에 비기독교 청소년들에게는 교회에 발을 옮기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이러한 현실에 "뉴 에이지 운동'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바로 인식하고, 반성하며, 새롭게 문화에 대해 올바로 받아들이기 함에 연구의 목적이 있다.연구 방법에 있어서는 뉴 에이지 운동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중점을 두면서 여기에 관련된(교육, 서적, 대중매체, 예술(음악, 미술, 영화, T. V), 등) 자료를 인용해서 뉴 에이지 운동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운동에 대해 적당한 대처 방안을 언급하면서, 이 논문의 결론으로 마치고자 한다.Ⅱ. 본 론A. 뉴 에이지 지, 즉 우주에 떠 있는 힘을 어떻게 소유하느냐에 따라 신성이 결정되어진다고 믿고 있다.) 신상언,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낮은 울타리, 1996. p872. 역사적 배경뉴 에이지(New, Age)라는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생성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뉴 에이지 운동의 근원은 1875년 뉴욕에서 러시아 사람 헬 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Helena Persona Blavatsky)에 의하여 창설된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이다.이 신지학적인 기본 명제들 중의 하나는 "모든 종교는 그들 사이의 차이점 불구하고 공통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 는 것이다. 즉 이 협회의 회원들은 특별히 감수성이 개발된 예민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는 것이다.뉴 에이지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1975년부터 새로운 세계질서와 임무를 위하여 "계획"을 공개하라는 지시를 받음으로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은 광범위하게 퍼졌고 "새로운 시대"의 구세주의 선언과 연결되어 전 세계적으로 사용 가능한 모든 매체를 통하여 선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뉴 에이지 운동은 생활에 밀접한 문제들에 중요하게 보이는 것들을 계속 새로 만들어 내어 우리 사회를 체계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전체적인 교육’이란 명목으로 명상과 심리기술 등을 가르치고 ‘전체적인 의학’으로는 건강식, 자연식, 생체리듬 등을 포함하며, 생태학은 환경보호와 동물보호 그리고 군비축소운동까지 포함한다. 또 산업계, 경제계의 지도자들을 위한 전문경영훈련 과정에서 가르치는 새로운 종류의 경영 이론, 기아퇴치 운동과 대중문화의 접목, 그 외 복지를 내건 활동들 가운데 상당수가 모두 뉴 에이지(New Age)운동의 일환으로 겉으로 드러난 활동목표가 진실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사회를 해체하는 주된 목적성을 지니고 있다.B. 뉴 에이지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1. 뉴 에이지가 왜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원인뉴 에이지의 운동이 공헌할 수 치는 데 더 많이 쓰이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뉴 에이지 운동을 드러내 놓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촌 교육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적인 지리학적, 역사적, 정치적, 철학적, 연구라는 통로이래 자신들의 특수한 가치가 실린 세계관을 가르치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뉴 에이지 교육자들은 도덕적 전래들에 대한 자신들의 고의적 반항을 다 숨기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에서 왜곡된 어법으로 "가치정화"(Values char titration)라는 술어를 사용하고 있다.즉 "가치정화"는 한 교육에서 훈계 없이 학생 자체가 가치관을 결정하고,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기존의 어떤 도덕적 권위나 절대 진리와도 상관없이 온전히 자신만의 개인적 가치들을 형성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자아는 본질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인간의 죄성을 분명히 지적하는 기독교 교리와는 절대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결구 "가치정화"는 학생들에게 절대진리나 절대 윤리와 객관적 체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맞는 주관적 가치들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유익한 것으로 판단하게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즉 일에 있어서 유익한 것은 선이고, 그 반대인 악이라는 것은 극단적인 가치 체계를 형성되어 진다는 것이다.이것은 인간 자신이 세계관의 중심이 되는 세속적 인본주의의 극치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하나님의 절대 보편적인 도덕률에 대한 경의와 순종을 기대하기는 힘든 일로 보고 있다.(2). 서적 관점에서 본 뉴 에이지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뉴 에이지 운동 서적 중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잘못된 가치, 종교 구조 속에 갇혀 있고,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포, 억압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것은 모든 것을 초월하면서 결국에는 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크리슈나무르티 이후 또다시 서점 가에 화제가 된 명상가는 라즈니였 뉴 에이지문화란, 기술과 물론 문화인 문명을 제외하고 자연을 이용해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정신적인 분야의 "과학, 예술, 정치, 법률, 사회, 경제, 풍속과 종교문화 등 인류의 정신적 사회적 소산"이라고 김용욱은 말한다.) 김용욱, "문화속에 침투한 뉴에이지 운동" 『목회와 신학』, 1992, 9월호, p. 56즉 뉴 에이지 운동이 문화에 미친 현황을 보면은, ‘세계평화’를 위한 지구촌의 ‘세계정복’수립의 목표로서 지구의 사람들을 포섭하여 조정해 왔다는 증명하고 있다.이것은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신문, 라디오, T. V, 비디오, 컴퓨터, 등)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인간을 시녀(노예), 허수아비의 존재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들에 조정 당하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물결에 순응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특히 대중문화(Mass culture)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목숨을 걸어도 좋을 만큼 중요한 것이 되었다. 즉 이것은 사탄이 대중문화 속에 죽음의 메시지를 집어놓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어둠의 세계, 죽음의 세계로 내몰고 있는 증거들이 흔히 청소년이 접하는 문제점이다.(4). 예술 관점에서 본 뉴 에이지ⅰ) 음악뉴 에이지 음악이 대중음악 속에서 그 영역을 급속도로 확산되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뉴 에이지 음악에 있는 영적인 요소나 이런 요소들이 사람들을 유익하게 준다는 오해 때문이다. 뉴 에이지 음악은 사상적인 측면에서 만들고 연주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즉 이것에는 ‘인간의 신’이라는 사상이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뉴 에이지 음악은 사람을 매혹하는 힘이 있어서 블랙홀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뉴에이지 음악을 듣게 되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변화 단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초기 단계인데, 이 단계는 조지 원스톤이나 데이비드 란쯔의 음악처럼 바르고 가볍고 경쾌한 음악을 듣는 단계를 말한다. 두 번째는, 명상음악 단계인데, 이 단계는 기타로감이다.
    교육학| 2000.09.01| 12페이지| 1,000원| 조회(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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