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流의 經濟效果머리말중국에서는 韓流가 한국에서는 漢流가 거세게 일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중문화를 중국에 진출 시키는 반면 경제파트너로서의 중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각 기업들은 앞 다투어 대중투자비중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 중국에 대한 밝은 전망으로 인해 조기유학 마저 유행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韓流가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정착할 수 있을 것인가? 또 경제적인 효과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문화의 수출을 경제적인 효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알리면서 이미지 창출을 통한 간접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본 보고서는 韓流의 경제적 효과를 초점으로 전개될 것 임을 미리 말한다.1) 한중 문화교류와 韓流한국과 중국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이웃이다. 양국은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고 문화적으로 일맥상통한 바가 있으며 양국국민은 타고난 친밀감을 갖고 있다. 문화적 전통이 가깝다는 것은 양국국민이 기타 다른 나라 국민들과 비교 했을 때 더 쉽게 상호이해와 소통을 할 수 있게 하며 "우의도모, 문화번영"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해준다. 2002년은 중한수교 10주년의 해로 수교 10년간 중한 양국의 문화교류는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1994년 3 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중국방문기간에 양국정부는 에 조인하였고, 2001년 말에 4차 문화공동위원회의를 소집하여 협정에 의거, 연도교류계획에 서명하여 양국문화교류를 끊임없는 발전의 궤도에 올려놓게 된다. 수교 초기, 중국과 한국의 문화교류는 정부의 주도하에 민관이 함께 진행하였고 교류 분야는 체육, 예술분야에서는 교향악, 서커스공연, 연극, 나무인형극 등 이었고 전시분야로는 서화, 칠화(漆畵), 자수 및 병마용 등 고대유물이주를 이루었다. 한국 영화계와의 교류도 이어져 중국중앙TV와 한국방송공사(KBS)는 에 조인했고 1994년 4월, 9월 각각 양국에서 영화주간을 개최하여 영화, 연속극 합작촬영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했다. 정부의 문화교류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교류인원과 내용이 부단히 증가했으며 정부 주도하에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러 형식의 문화교류관계가 성립되었으며 문화교류의 질적, 양적 수준도 향상되었다. 1994년 10월 유충덕(劉忠德) 중국문화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듬해 주돈식 한국문화체육부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1996년 유덕유(劉德有), 애청춘(艾靑春), 반진주(潘震宙), 상극인(常克仁) 중국 문화부차관 등 지도자가 중국정부 문화대표단과 각급정부 공무원을 이끌고 잇달아 한국을 방문하였으며, 남궁진, 신낙균 한국문화관광부 장관, 김순규, 윤형규 차관도 연이어 중국을 방문하게 된다. 광주현대무용단과 무용가 양려평(楊麗萍)의 공연, 중국 서커스 모두 호평을 받았으며 한국의 현대무용단, 코리아나예술단, 대전시립예술단도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주간행사의 중국개최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중국 국가급 예술단인 동방가무단, 민족악단, 인민예술연극단, 서커스단과 한국 국가급 예술단인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등 수준 높은 대형 예술단들도 상호 방문했고 또 서로 "중국문화대전"과 "한국 문화의 달" 등 대형 전시회역시 성황리에 치루어졌다. 양국문화관련부문의 힘을 합친 협력을 통하여 양국 문화교류는 관의 주도에서 민간으로 확대된다. 한중교류의 영역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교류 내용과 형식도 다양해 지게 되는데 ,중국의 "하얼빈 빙등(氷燈)제"와 한국의 "HOT" 그룹 등 공연과 전시가 양국 국민들에게 신선한 정신적 향수를 제공하면서 본격적인 한류의 형성을 촉진하게 되었다.2)韓流의 영향위와 같이 한국과 중국은 다년간에 걸친 문화적인 교류에 의해 양국의 우호를 다지고 있다. 또 여행자와 유학생의 왕래는 양국 문화의 이해와 전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1999년 클론의 대만 진출과 함께 시작된 한국의 대중문화산업의 중국 진출 열풍은 중국의 본토와 대만을 모두 흔들고 있다.한류란 "한국의 음악, 드라마, 패션 등의 대중 유행문화가 중국에 매섭게 파고들고 있다" 는 뜻으로, "한류(寒流)"와 동음이의어이다. 이 신조어는 1999년 11월 클론과 2000년 2월의 H.O.T 의 북경 콘서트 대성공으로 중국 언론에서 "한국 음악" 과 "한국 문화"를 대신하는 말로 통용되었으며, 2000년 7월 NRG와 안재욱 공연을 계기로 중국의 매스컴을 온통 새까맣게 뒤덮기도 했다.대중문화라는 무기를 갖고 중국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류의 주역들의 인기는 그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한국문화의 전도사임에 틀림 없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막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틀림없다. 한류가 한창이던 2000년 남경에서 1년을 보낸 나는 한류의 열풍을 몸소 체험하였다. 삼성전자의 광고에 출현한 안재욱은 “三星 永遠選擇” 라는 문구로 작게는 삼성이라는 기업을 중국인들에게 알렸고, 크게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상품을 판매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그렇다면 한류는 유행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그 맥을 이어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수출로 이어져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인가? 문화산업의 수출은 성공할 경우 그 효과가 막대하다. 허리우드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활발한 마케팅과 막대한 자본으로 대중문화 수출에 성공하였다. 한국도 미국과 같이 대중문화산업의 수출에 성공해 경제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까?3)韓流현상의 실체첫째, 최근 한국 언론에 소개된 바와 같이 중국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해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류는 주로 청소년층에서 나타나는 문화 현상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이는 공연장, 한국 드라마 등 한류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한류의 열기가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한류가 일반 도시주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님을 의미한다. 둘째, 중국인이 한국 대중문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부 한국 대중문화(댄스가요, TV용 드라마)의 경쟁력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내(內)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홍콩과 대만의 대중문화가 식상해진 중국인들은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그 부족함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셋째, 위와 같은 '대체문화'적인 성격으로 인해 한류 현상은 일정기간 지속된 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4)韓流현상의 경제적 효과여부첫째, 문화산업의 진출에는 지적재산권이 반드시 보호되어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중국정부차원에서 지적재산권 보호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복제품과 모조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는 상태이다. 실례로 어학연수 시절 한국 가수의 음반을 수 없이 봤으나 정품은 하나도 없고 모두 ‘따오반’이었다. 곧 한류는 한국대중문화의 전파를 통한 나라와 상품의 이미지 창출에는 간접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나 경제적인 수익 창출에 대한 기대는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
< 미국의 對北 협상전략에 관한 연구 >1. 머리말아시아게임의 북한의 미녀 응원단과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한지 불과 몇일 만에 켈리 미국 특사의 대북 방문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북한이 제네바합의를 무시하고 농축우라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 국민에게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켰다. 또 북한이라는 한 핏줄의 형제에게 다시 한 번 배신감을 느끼는 사건이기도 했다.한반도는 독립 이후부터 미국의 원조와 간접적인 지배를 받아온 미국의 전략적인 중요성을 갖는 지역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아시아의 관문으로 여기고 과거 냉전시대에는 대한민국이 일본과 함께 중공, 소련의 견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가 되기도 했었다. 현재는 미국패권주의의 걸림돌이 되는 북한을 견제해야 하는 골머리를 앓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이 과거와는 달리 강경보수의 외교정책을 구사하는 지금 한반도는 그 어느 때 보다 불안하고 이것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암시한다.불과 7년 전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제네바합의를 통해 사태를 마무리 헸던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NPT 탈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와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현 부시정부는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한반도와 동북아 더 나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과거 클린턴 정부와 현 부시정부의 협상형태를 분석해 봄으로써 2003년의 한반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 좁게는 대북 협상젼략은 일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줄 곧 끌려다녔다는 자체는 부인할 수 없고 이 또한 현 부시정부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이 보고서에서는 두 정부의 협상형태 차이의 원인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에 어떤 정책, 협상태도가 더 유리할 것인가에의 임시·일반사찰(1992. 5∼1993. 2) 결과 북한측이 국제원자력기구에 제출한 최초보고서와 사찰결과간에 `중대한 불일치'가 발견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는 1993년 초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특별사찰의 요구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을 직접적으로 야기시켰고, 미국과 북한간 갈등의 발단이 되었다.북·미간에 제1단계 고위급회담(1993. 6. 2∼11), 제2단계 고위급회담(1993. 7. 14∼19), 제3단계 고위급회담(1994. 7. 8. 개최연기, 1994. 9. 23∼10. 21)을 통해 1994년 10월 21일 북·제네바합의를 계기로 북한의 핵문제 해결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합의를 통해 미국이 단계적인 경제제재 완화와 경수로 건설지원 및 상호연락사무소 개설을 약속함에 따라 북·미간 관계개선을 위한 토대가 일단 마련되었다. 그러나 1998년 8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대포동 1호)발사 실험 및 금창리 의혹시설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었다.그 후 1999년 3월 금창리 지하 핵의혹시설의 사찰을 둘러싸고 한반도 정세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으나 이 지하 핵의혹시설의 성격규명을 위한 협상을 타결 지음으로써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식량 60만 톤을 지원받기도 하였다.또한 미사일 재발사문제와 관련하여 1998년 11월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하여 대북정책권고안을 작성하게 한 바 있다. 이러한 페리보고서에 바탕을 두어 1999년 9월 12일 베를린에서 미국과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후속회담이 11월 15일 베를린에서 재개됨으로써 북·미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 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명록 차수의 방미로 북·미간에는 `10·12 북·미공동선언'이 나오는 등 북·미관계개선은 더욱 활기를 띠고있다. 북·미간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 북·미관계가 크게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 공화당 `대북한견해서'(2000. 8)가 잘 시 고무적으로 받아드리지만 선 핵 폐기를 강조하면서 협상의 성립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문제의 심각성은 북한의 소위 벼랑끝 전략이 1990년대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는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으나, 2000년대의 부시 행정부에서는 제2의 제네바 기본합의를 얻어낼 수 없다는 데 있다.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 외교의 핵심으로서 대량살상무기 테러를 미국 안보의 최대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 능력을 더 이상 협상 대상이 아니고, 선제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3)4. 클린턴의 대북협상전략한·미 두 나라에 새 정부가 갓 출범한 직후인 1993년 2월 IAEA는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을 결의했다. 강제로라도 대북 사찰을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북한은 3월 12일 ‘핵 확산 금지조약(NPT)’ 탈퇴라는 강수(强手)로 맞섰다. 핵 보유국과 비보유국을 경계짓는, 세계 안보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는 NPT로부터의 탈퇴 선언은 한마디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클린턴 민주당 정부는 그해 5월부터 미·북 고위급 회담을 시작, 결국 1994년 10월 제네바 핵 기본합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전쟁 직전까지 가는 위기 상황을 몇 차례 맞았다. 그같은 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것이 1994년 봄이었다. 미·북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고,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핵 연료봉 추출이라는 도발을 시작하면서 미 정부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제한적인 북한 핵지대 공습 방안부터 전면전에 이르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당시 클린턴 정부는 한반도 전쟁이 가져올 파괴적 측면 때문에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 쪽으로 기울었지만, 북한이 ‘안보리 제재는 선전포고’라고 맞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북한 대표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1994년 5월 ‘라면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는 등 온 국민이 전쟁에 대한 위기 의식을 직접 느낄 만큼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었다. 그러 對北외교는 무엇보다 대화의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링 밖의 신경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6월6일 「對北정책 再검토 결과」를 통해 4개항의 「협의」 아젠다를 북한에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북한 核동결에 관한 제네바 합의의 이행 개선 ▲북한의 미사일 개발계획에 대한 검증 가능한 억제 ▲북한의 미사일 수출 금지 ▲북한 재래식 武力의 위협 감소 등이다.5)2) 부시정부 지원세력의 특징미국의 정책은 대통령의 참모진이 누구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부시 행정부의 지지 기반과 돈줄이 군수산업체를 비롯한 대기업들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국내적 요인은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 및 한반도정책 결정과정에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우려는 부시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군수산업체들과 직·간접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로 짜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코언 국무장관의 F-15기의 구매 압력 파문에서 보듯이, 이들은 사실상 군수산업체들의 로비스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상 및 위성방송장비 회사인 제너럴 인스트루먼트사(General Instrument Co.)의 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제너럴 다이내믹스 전자시스템(General Dynamics Electric System)의 이사를 역임했다.부시 행정부는 육 해 공군 3군의 장관을 대표적인 군수산업체의 전 현직 임원으로 임명했다. 해군장관(Secretary of the Navy)에 지명될 것으로 알려진 고든 잉글랜드(Gordon R. England)는 미국의 대표적인 군수산업체인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에서 30여년간 근무하다 일주일전 사표를 낸 부사장 출신이다. 공군장관 임명이 유력시되는 제임스 로쉬(James G. Roche)는 노스럽 그루먼(Northrop Grumman)의 전자센서와 시스템부문 현직 사장이다. B-2 스텔스 폭격기를 생산한 노스럽기도 했다. 이는 그 동안 북한의 협상전략이 주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제사회의 중심인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더 이상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 94년 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다시 핵무장을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 더 이상 관용과 이해를 베풀지 않겠다는 의도가 비추어지고 있다. 북한이 켈리 특사에게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것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로 그 의도를 분석하려 하지만 가장 유력한 분석은 역시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라는 견해이다. 현재 북한은 자국의 힘으로는 인민의 생존권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국제적인 차원의 원조이고 그 선두에는 미국이 서있다. 북한은 이번에도 역시 폭탄발언을 통해 미국의 원조를 이끌어 내려 함이 내포되어 있다. 즉 과거 클린턴 행정부의 개방유도정책의 협상체계를 이용하려 했던 그들의 습성이 이번에도 다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부시 행정부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극우, 패권주의, 일방통행으로 대표되는 정책으로 국제무대의 협상에 임하고 있다. 또 현재 북한의 대화 재계마저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협상은 당사자간에 이익이 상충되는 가운데 당사자의 협상요구가 강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의 아쉬운 입장에서 벗어나 북한의 ‘배짱전략’을 역이용 해서 협상 전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즉 양 당사자는 협상전의 우위를 점해 협상에서 우월한 능력을 발휘하려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신뢰성이다. 합의를 무시한 북한의 행동은 이미 하루 이틀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기조 자체가 보수적이고 극우성향을 띠고 있어 북한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가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협상력의 기초가 되는 것이 내부협상력이 정책이라고 할 때 북미간의 협상은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미국은 과거 클린턴 정부와 다르게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을 종종 비추고 있다.6. 맺음말북미간 협상의 쟁점은 핵 문제이다. 그 외에 재래식무기 관련 문제도 상당각한다.
Use Behavioral Science31960182 중어중문과 하돈겸서비스에 행동과학을 사용하라 ! 품질경영 책의 많은 챕터 중 한 눈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고객만족 부분이었는데, 특히 나에게는 가장 종사하고 싶은 서비스업이라는 부분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고객과의 만남이라는 것에 행동과학을 응용함으로써 얻는 이점에 대해 이 논문은 다섯 가지 원칙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많은 분야에서 소비자와의 만남을 중요시 생각해 왔으나, 정신적인 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에 간과한 것은 사실이라고 작자는 서술한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행동과학이란 것이다.본문에서 설명하는 행동과학은 결론효과, 지속효과, 이유부여효과가 있다. 이 내용들은 다섯가지 원칙 내에서 간단한 예로 잘 설명하고 있다.첫 번째 강조하는 소비자와의 만남은 끝을 강하게 하라는 원칙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와의 만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약간은 용두사미식의 형태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현실이다. 간단하게 음식점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손님을 끌기 위해 호객행위를 한다. 그러나 일단 식탁을 차지하고 음식을 시키게 되면 마치 모든 것이 끝난 양 손을 때버리기 일 수이다. 차를 빼기 위해 주인은 날뛰어야 하고 맛있게 먹은 음식도 소화가 안 될 지경에 이른다.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서비스에 있어 실수 인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집 근처의 한 음식점에 차를 가지고 간 적이 있다.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좁은 길에서 이리 저리 차를 피하며 몇 바퀴를 돌고 난 후에야 겨우 주차를 시킬 수 있었다. 한 숨 돌리고 음식을 시키고 냉면 한 그릇으로 더위를 달랠 수 있었다. 난 그 집을 다시 찾으려 한다. 내가 그 냉면집을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맛 때문만은 아니다. 계산할 때 사장님의 친절과 차를 뺄 때 선 듯 나서는 그 모습이 다른 곳과 너무 달랐다. 그렇다. 나 역시 서비스를 받는 사람으로 그 서비스의 마지막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사람들은 일찍 불쾌한 경험을 하고 나중에 즐거운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고 행동과학은 말한다. 앞에 말한 것과 비슷한 내용이다. 즉 나쁜 경험을 빨리 없애라는 얘기이다. 이왕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불편, 나쁜 소식이 있다면 소비자에게 빨리 전달해서 최종에는 그것들이 감소한 상태로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약간은 눈속임 같지만 어째든 일리 있는 얘기이다. 사람의 심리를 정확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인간은 복잡하지만 때로는 정말 단순하기 그지 없다.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이 원리가 적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스크림 하나는 세상 모든 것을 얻는 것과 같은 큰 역할을 했다. 대부분은 하나의 바에 여러 맛을 첨가한 모습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나와 내 친구들 대부분은 가장 맛있는 부분을 끝에 먹었다. 처음에는 그저그런 맛의 부분을 약간의 고통을 감수하며 먹고는 결국 맛있는 부분에 이르러 행복해 하며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끝내곤 했다. 그렇다. 행동과학은 이런 사람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소비자의 기억을 만족할 수 있게 하라고 한다. 먼저 고통과 불편 안 좋은 소식을 부여하고 서비스의 최종단계에는 비교적 만족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기쁨은 분리하고 고통은 합해라! 이 원칙의 논리는 경험이 시간의 연속성에 어떤 영향을 받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경험은 부분으로 나누어 질 때 길게 간직되는 경향이 있다. 작자가 예로 든 디즈니랜드의 예로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놀이기구 탑승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소비자 즉 고객에게 더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물론 놀이기구 특성상 자극이란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되겠지만 이것 역시 시간이 길어지면 그 영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기쁜 경험은 부분으로 나누어서 서비스 상의 만남을 좋은 경험으로 이끄는 것이다.선택의 부여는 서비스의 느낌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 즉 선택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서비스 공급자에게 즉석에서 얻는 답 보다 자신의 스케줄이나 여러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많은 서비스 공급자가 이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의 세트 메뉴는 각각을 주문하는 것 보다 싸다는 장점이 가장 크지만 또하나의 즐거움이 존재한다. 세트메뉴에 포함되는 것 중 하나 정도를 개인의 구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각 서비스에 호감을 갖을 수 있게 유도하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