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축제1. 주제 선택의 목적“축제의 나라”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페인 사람들은 축제를 즐긴다.200가지가 넘는 전통 축제, 다양한 페스티발 과 50개가 넘는 도시에서 열리는 박람회도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이러한 축제 분위기는 일과 여가 모두를 중요시하는 그들의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또 스페인이 최고의 관광국으로 발전하는 데에 일조를 해온 부분이다.일반적으로 축제가 사회생활에서 주는 의미는 잠시나마 제한된 시간 동안 일상생활을 잊고 하나의 다른 삶을 맛볼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또한 축제가 여가생활과 다른 점은 마을이 중심이 되어 사회적 행동으로 집단적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축제는 그것이 행해지는 지역공동체 공통의 속성을 보여주며 그들의 걱정이나 속박 혹은 억압에 대한 저항을 집단적으로 은유로 표현한 것도 있다.축제가 가지는 다른 의미는 지역 공동체를 둘러싼 불안과 억압에 대항하거나 그들 자신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한 행동 양식이다. 이러한 축제의 표현 방식으로 해학과 풍자를 통한 삶의 과정에 있게 마련인 주위를 둘러싼 각종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거나, 금기를 파괴하거나 억압된 본성을 표출함으로써 힘들고 피곤한 삶을 잠시나마 잊고 신나는 놀이 한마당을 펼치며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전통적인 전통축제의 문법이다.누구나 그랬겠지만 난 월드컵 기간 내내 즐겁지 않는 날이 없었다. 수업을 빼먹고 다리가 탱탱 부어도 길거리에 붉는 악마가 있고 휘날리는 태극기가 내 마음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난 지난 월드컵이 다시 오기를 빌고 지나간 TV화면에 가슴벅차하며 우리나라가 모두 하나 됨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혀 지곤 했었다. 이렇듯 축제의 역할이나 기능은 단지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자유롭고 평등한 소통을 매개하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축제의 특별한 의미가 우리로 하여금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 역시 그 매력 속에 빠져 그들의 하나 됨을 확인 한다고 생각한다. 라는 나라는 해마다 열리는 축제 또한 다양하다. 200가지가 넘는 전통 축제, 다양한 페스티발과 50개가 넘는 도시에서 열리는 박람회도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이렇게 축제며 각종 국제적인 행사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 그 많은 축제 중에 대표적인 축제중의 하나는 La Tomatina 와 San Fermines 축제이다. 모두 스페인을 대표할만한 축제로서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축제라고 한다. 물론 축제라면 열광적으로 미치는 스페인 국민들에게도 이 두 축제는 인생의 또 다른 '맛' 을 보여주는 일종의 진수성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페인에는 200여가지가 넘는 다양한 축제들이 있지만 유명한 축제들 중 몇 가지를 뽑아 설명 하겠다.① 카니발 행사2월 마지막 주에 카니발 행사가 Cadiz에서 시작된다.Cadiz는 아마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도시의 당당한 건물들은 17세기 미 대륙 에서 스페인으로 오는 모든 배들이 많은 상품들을 실고서 항구에 도착하던 황금시대를 (los tiempos de esplendor) 기억나게 한다.도시 전체가 축제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각자의 분장을 준비를 한다. 가게에서는 분장을 위한 수백미터에 망토 천등과 호루라기, 색종이, 축제용 테잎 등의 축제를 위한 전형적인 도구들을 판매한다. 카니발은 기독교적 의미의 전통이지만, 기원적으로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에 더 관계되어있다. Cadiz에서는 카니발의 역사는 17세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이태리 상인들의 방문이 잦았고 그들에 의해서 Venecia의 카니발 전통이 전해졌다. 하지만 19세기부터 Cadiz의 카니발 축제는 매우 특별한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했다. 이 카니발 기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카디스 사람들이 이 축제기간에 노래하기 위해서 준비한 노래들 속에 들어있는 해학이다. 이 노래들은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나 아주 우스운 우스갯소리 등으로 이야기하고 비꼰다. 그리고 아무도 이 풍자에 대해서 하고 이야기 한다. 사람들끼리 모두 뒤섞여 농담을 주고받고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춘다.② 발렌시아의 불꽃 축제 -라스 파야스이 축제의 기원은 발렌시아의 목수들이 그들의 수호신인 성 호세 축제일 3월 19일 전야에 밝거나 쓸모없는 나무들을 길에 쌓아 어마어마하게 불길을 일으키며 태웠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해가 지나면서 이 쓸모없는 나뭇가지나 장작들은 마분지로 대치되었으며 이 마분지는 그저 못쓰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건이나 지역의 풍습, 또는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을 풍자, 우롱하기 위한 형상을 만드는 데 사용된 것들이다. 하나의 예술품으로 공들여 만든 700개가 넘는 이 인형들이 일주일 동안 도시 전역에서 전시되다가 3월 19일이 되면 거대한 불꽃 속에 사라지면서 이 축제는 마무리 된다. 이렇게 큰 불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밤 12시가 되면 도시 전체가 정말로 붉은 불꽃으로 활활 타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도시를 진동시키는 폭죽이 어머 어마한 굉음과 함께 밤 내내 폭발한다. 정말로 어느 나라에서도 불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③ 세비야의 4월의 축제4월 18일에서 23일까지 세비야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안달루시아만의 모든 것들이 한 마당에 모인다. 포도주와 투우와 말과 플라멩꼬가 거리에서, 그리고 일주일 동안 마시고 놀 수 있게 개인이나 시에서 마련한 천막인 ‘까세따’에서 고삐가 풀려 난무한다. 개인 까세따에서나 시 까세따에는 친구들과 방문객들이 모두 함께 모여 ‘따빠’를 곁들여 술을 마시면서 웃음꽃을 피운다. 물론 음악과 춤이 빠질 리 없다. 초롱불로 장식된 ‘까세따’들은 옛날 종교재판소가 믿음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종교극을 상연하던 쁘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 거리에 줄지어 있다.④ 빰쁠로나의 San Fermines7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가 빰쁠로나에서 열린다. 이 축제의 기원은1591년 이전인 나바라 왕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이 축제는 빰쁠로나시의 수호성자이제 3세기말 주교였던 산페르민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성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종교적인 배경 외에도 빰쁠로나 시는 14세기 이래 매년 10월 10일이 되면 일주일간 상업적인 성격의 시장을 열고 있었고 또 이 기간만큼은 죄인들마저도 체포하지 않는 특혜를 부여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산페르민 축제의 또 다른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매년 열리는 투우경기이다. 그리고 위의 세가지 요소들이 1591년을 기점으로 하나로 결합되면서 지금의 산페르민 축제가 된것이다.산페르민 축제의 내용은 처음에 7월 6일 정오 정각에, Pamplona 시청사 앞 광장에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다. 시청사 발코니에서 한 시청직원이 “성 페르민 만세”라고 외치며 거대한 폭죽에 불을 붙인다. 참석자들은 수백병의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산 페르민 축제일정중 가장 유명한 행사는 축제기간 중 매일 아침 8시에 반복되는 소몰이 축제이다. 오후에 투우장에 들어설 소들을 거리에 풀어놓고 하얀색 의상에 빨간색 허리띠를 두른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성난 소와 함께 거리를 달리며 투우장으로 소를 유인해 간다. 소몰이경기에 참가하는 것은 신체에 대한 도전이고 물리적 저항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무척 위험하며 가끔 사상자들이 나온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위험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이나 감격적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며, 스릴을 즐기려는 관광객들과 젊은이들로 매년 참가인원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보통 때는 Pamplona에는 약 185,000명이 거주하지만, 일주일 동안의 San Fermines 축제 기간에는 관광객들을 포함하여 50만명이 넘는다. 한편 산페르민 축제때는 “리아우 리아우”라고 하는 거인 인형 행렬도 볼 수 있다. 빰쁠로나 시장과 의원들이 커다란 인형들과 음악대와 함RP 행진하는 것으로, 1591년 처음 축제 때는 시 당국자들만이 그 행렬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15년부터 오늘 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 행렬이 있을 때면 주민들은 시 당국자들에게 그들의 실정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고 심지어 물세례마광객이고 서로 아무나 때림으로써 누구든지 구경꾼이 아닌 축제의 참가자가 되도록 부추긴다.이 측제의 특이한 점은 이 행사에서 다치는 것은 모두 자기 책임이기는 하지만, 주최 측에서 모든 치료를 처리해 주고 보살펴 준다. 이 행사에서 다친 사람들은 마치 전쟁의 훈장인 양 이 상처들을 큰 자랑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축제의 인식차이와 국가적인 지원이 있기에 스페인의 축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는 원동력으로 발전된 것이다.⑤ 발렌시아의 La Tomatina ( 토마토 축제 )이 축제의 기원은 해석이 분분하지만 그 가운데서 보다 역사적이고 사실에 근접한 해석은 1945년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다. 마을 광장에서 전통의식이 거행되고 있고 마침 시 당국자들이 음악대를 비롯하여 가장행렬에 참가한 사람들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을 때 한 청년 집단이 행렬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에서 대열 중에 있는 사람들을 밀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장 행렬의 한사람이 바닥에 넘어졌고 그가 일어났을 때 는 보복으로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어 싸움은 곧 만인 대 만인의 양상으로 확산되었고 누군가가 마침 근처에 야채 노점에 진열된 토마토를 무기 삼아 집어던지는 일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전쟁”은 결국 공권력의 개입으로 끝이 났지만 이때 참가했던 사람들은 이 날의 독특한 기억을 잊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듬해 똑같은 수요일이 되었을 때 마을의 청년들은 다시 광장에 모여들었고 이번에는 아예 각자가 집에서 가지고 온 토마토로 “전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 당국은 이를 금지했으니, 주변에는 어느새 “토마토 전쟁의 날”로 알려져서 그때부터 브뇰마을은 해마다 토마토 던지기를 벌였다고 한다. 한동안 당국의 금지 조치로 토마토 전쟁은 순탄하게 전개되지 못했지만 1957년 청년들이 풍자와 코믹의 의미로 토마토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결국 당국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토마토 전쟁을 허가하기에 이른다. 1980년 이후에는 양상이 바뀌어 오히려 시청이 이 축제를 주도적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