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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미술가 탐구
    미술가탐구-빈센트 반 고흐과목명:유아미술교육교수명:김정원이름:200001048 조주연200002004 김새롬200002027 오신애200004024 백혜정제출일:2001,10,22(월)-목 차-Ⅰ.서론Ⅱ.본론1.고흐의 삶1)네덜란드 시기2)파리 시기3)아를 시기4)생레미 시기5)오베르 시기2.작품의 특징3.고흐의 작품 및 해설1)해바라기2)요람을 흔들고 있는 어머니3)노란집4)자화상4.고흐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5.고흐가 삶에서 중요성을 부여한 것들Ⅲ.결론Ⅰ.서론'후기인상주의' 라는 용어는 인상주의 직후의 화가들을 지칭하기 위해 1910년에 영국의 미술비평가인 로저 프라이가 만들었다. 그들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인상주의의 원칙을 거부했다. 또한 한때 인상주의 이념을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그것을 버리고 독자적인 길을 걸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후기 작품도 후기인상주의라고 부른다.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통일된 하나의 그룹을 이루지 않았으며, 그 이름 자체도 미술의 '기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이 밖으로 드러난 모습을 중시했던 것과는 달리 그 이면의 세계를 추구했다는 것이다.빈센트 반 고흐(Gogh, Vincent van, 1853.3.30 ~ 1890.7.29)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한적한 시골 마을인 그로트 춘데르트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형제로는 동생 안나와 테오가 있었다. 1869년부터 1876년까지 구필 화랑의 점원으로 근무했고 1876년부터 1878년까지는 성서공부에 전념한다. 1879년부터는 탄광촌에서 전도사로 일한다. 이 시기에 그는 화가로서의 길을 결심한다.이후로 약 1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그는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이룩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가 남긴 작품의 수는 방대하다. 소개하고 싶은 그림은 많으나 그 많은 작품을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그 중에서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 한 두 점만을 대표작으로 뽑아서 설nvas, 65*78cm,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그가 네덜란드에서 그린 또 하나의 중요한 작품으로 성서가 있는 정물화가 있다. 왜 성서를 그렸는지, 그리고 에밀졸라의 책을 왜 같이 그렸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당시 고흐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을 독실한 신앙심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목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려진 것임을 고려해 본다면 목사인 아버지에 대한 추도의 의미가 더 강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옆에 놓여진 에밀졸라의 삶의 기쁨이 놓여져 있는 것을 아버지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이는 그의 기독교와의 단절과도 연결된다. 어떤 이유로 기독교와의 단절을 결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 그의 정신적 고통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2) 파리 시기 (1886.2-1888.2)네덜란드를 떠나 파리로 온 고흐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접촉하게 된다. 특히 폴 시냑과 에밀 베르나르를 자주 만났고 쇠라의 미학에 대한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들의 영향을 받아 고흐의 그림은 색깔이 좀 더 밝아지고 빛을 표현하기 위해 점점이 끊어서 표현하는 방식도 시도해 보았다.파리에서 인상주의의 영향과 함께 고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일본풍을 들 수가 있다. 당시 서구 미술에 일본화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데 이를 일본풍이라고 불렀다. 고흐도 일본화를 좋아해서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매혹적인 작은 일본화들을 많이 걸어놓은 덕분에 내 작업실은 그리 나쁘지 않아보였지윤곽선 안에 단조로운 색을 칠하는 일본화풍은 이후 고흐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리고 일본화들로 전시회를 몇 차례 열기도 했다.그림3. 탕기 영감의 초상, (1887, Oil on canvas, 74*93cm, Musee Rodin, Paris, France)파리에서 그린 작품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 탕기 영감의 초상이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로는 노란 불빛을 행복의 불빛으로 표현하였다. 세 번째 빛은 밤하늘에 영롱하게 축복의 빛을 발산하고 있는 별들의 빛이다. 이 세상의 영혼들을 축복해주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런 불빛에 반사된 길거리의 돌들이 기쁨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쁨의 장소에도 그림자가 있다. 웨이터를 대칭으로 서 있는 검은 그림자가 있다.그림5. 열 네 송이 해바라기, (1888, Oil on canvas, 73*93cm, National Gallery, London, UK)일본화를 통해서 그는 단순미를 배웠고 그의 작품 가운데 해바라기는 단순미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노란색만을 사용한 것으로 그 채도만을 달리하여 표현하고 있다. 배경마저도 노란색으로 그린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해바라기꽃을 희망과 기쁨으로 상징하였고, 일곱송이는 기쁨의 웃음을 짓고 다른 일곱 송이는 사방으로 손을 뻗치고 얼굴을 흔들며 흥에 겨워 춤추는 듯하다. 이 것들이 더욱 빛나도록 뒷배경을 온통 노란색의 환희, 태양의 축복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 고흐의 인생의 목적을 상징하며 기쁨을 상징한다. 그러나 꽃들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 꽃은 희망차게 솟아오르던 기운이 실망으로 변한 것을 의미한다.그림6. 별이 빛나는 론 강변의 밤 풍경, (1888, Oil on canvas, 72.5*92cm,파리 오르세 미술관)낮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밤을 표현하였다. 낮에는 볼 수 없는 별빛과 달빛을 볼 수 있으며, 낮에는 느끼지 못하는 신비감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연인을 강물에 비친 별빛과 강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등불들이 잔잔한 물결 위에 반사되어 두 연인을 축복하고 있다.그러나 아를에서 그는 절망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데서 오는 고독, 오랫동안의 이국 생활로 인한 신경의 긴장, 기대가 컸던 만큼 큰 절망을 안겨다 준 고갱과의 만남으로부터 그의 정신은 이성을 잃고 만다. 1888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는 고갱과의 언쟁 끝에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귀를 잘사이프러스나무 한 그루가 그 하늘의 진동에 미친 듯 손짓하며 하늘로 치솟고 있다. 피를 토하며 절규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절규는 하늘 끝까지 이러지고 흰 빛무리를 이루고 있는 큰 별 하나가 절규하는 사이프러스나무 옆으로 다가오며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이 그림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고흐의 절규만이 메아리치고 있다.5) 오베르 시기 (1890.5-1890.7)쌩레미에서의 생활에 싫증을 낸 고흐는 동생의 추천으로 오베르에 오게 된다. 하지만 오베르에 오게 된 이후부터 그의 외로움은 더 커졌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이 시기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낸 시기 중의 하나이다. 결과적인 해석일지는 모르나 이 시기의 그림은 그의 불행한 종말을 암시라도 하는 듯 짙은 어둠의 이미지가 강하다. 오베르의 교회(그림9)에 나는 무거운 하늘의 이미지가 그렇고 까마귀가 나는 밀밭(그림10)의 하늘이 또한 그러하다.그림9. 오베르의 교회, (1890, Oil on canvas, 34*42cm, Museum of Art,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Providence, US)이 교회는 오베르 사람들의 영혼의 안식처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의 광장이며 하나님께 바치는 사랑의 성전이다. 하나님은 거기에 항상 계시며 그들의 기쁨, 슬픔, 울부짖음, 그 모든 것을 그 크신 영원한 사랑으로 감싸 주시며 위로해 주신다. 그러나 교회가 서글픈 느낌을 준다. 교회를 중심으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왼쪽 길은 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교회의 무덤으로 가는 길로 인생의 갈림길을 상징한다. 그 인생의 갈림길에 인간들의 수많은 발걸음이 보인다.그림10.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Oil on canvas, 103*50.5cm,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그 역동적인 이미지만큼이나 불길한 이미지도 크게 느껴진다. 바람에 쓰러질 듯 흔들리는 밀밭과 파도 치듯 고흐는 좌절한 채 곧바로 런던을 떠나버렸다.슬레이터 존스 목사: 구필 화랑에서 해고된 후, 영국에 돌아가 교사 생활을 할 때, 빈센트에게 도움을 주었다. 토머스 슬레이드 존스 목사는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교직 생활을 하던 고흐에게 1년에 15파운드와 함께 숙소를 제공했다. 목사는 고흐의 신교도적 열정을 알아채고 그를 격려해주었다. 슬레이드 존스와 그의 부인 안나는 고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브뤼셀의 목사들: 고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전도사 양성 학교를 다녔다. 그 이후, 전도사는되지 못했지만, '가난한 자들, 굶주린 자들에게 성경말씀을 들려주기 위해' 보리나주로 떠나게 되는데, 피터센 목사와 데 용 목사의 도움을 받았다.크리스틴: 고흐가 헤이그에 있을 때, 매춘을 하며 살아가던 클라지나 마리아 후르닉(시엔이라는 별명을 지녔으며, 고흐는 크리스틴이라 불렀다)이라는 시골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 연락이 단절되었으며, 그의 외사촌 안톤 모브와도 관계가 끊어졌다.마르고트: 고흐가 누에넨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 때, 그녀는 이웃에 살고 있었다. 고흐의 일생에 있어 고흐를 사랑하려 했던 유일한 여자이며, 둘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녀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고, 그녀가 자살하려는 소동이 있은 후, 고흐는 앙트워프로 떠나게 된다. 참고로 그녀의 나이는 고흐보다 10살이 많았다.파리 시절의 화가들: 고흐가 테오와 함께 파리에 살고 있을 때, 테오의 주선으로 당시의 많은 인상파 화가들,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려는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네, 시슬리, 파사로, 드가, 쇠라, 고갱, 베르나르 등. 이 중 고갱은 나중에 아를에서 함께 살기도 했으며, 베르나르는 고흐가 자살하기까지 절친하게 지낸 친구 중 한 사람이 되었다.탕기 영감: 탕기 영감은 미술 재료상이었으며, 재료값으로 화가의 그림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고흐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탕기 영감도 고흐를 적극 후원했다.조셉 룰랭: 아를에서 보낼 때, 친하게 지내던 우체부였다. 비단 현이다.
    예체능| 2001.10.25| 18페이지| 1,000원| 조회(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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