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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청 서경천도운동 평가A+최고예요
    Ⅰ. 들어가는 말몇 년 전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 담임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그 친구가 담임 선생님에 대해 아주 실망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연인즉 어느 사회시간에 고려 시대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묘청 에 대해 못된 중 이라는 표현을 하였다고 한다. 그 친구는 어린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선생님의 역사에 대한 그런 평가에 분개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친구를 만나 그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나는 그것이 왜 그렇게 분개할 정도의 표현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잊고 이었다.그런데 근래에 한국 중세사 수업을 들으며 중세를 산 인물에 관한 과제를 하면서 문득 묘청이 떠올랐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줄곧 반란을 일으킨 대역죄인으로 알고 지냈는데 얼마전 인터넷에서 한국사 강의를 듣던중 묘청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던 정지상과 그의 문학적 라이벌로서 질투심이 매우 많았다는 김부식, 특히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을 괴롭혔다는 이야기들은 흥미를 유발시켰다.친구의 묘청에 대한 평가가 사뭇 궁금해 진다. 아마도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던 듯하다. 아래에서는 묘청-구체적으로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그와 관련한 인물에 대해 고찰하고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따라서 관련 논의로 우선 묘청이 살던 시대인 고려 인종대의 정치 모습과 묘청의 사상적 배경이랄 수 있는 풍수도참 사상, 소위 서경세력과 개경세력의 대결에 대해 고찰한다. 또한 묘청과 김부식, 정지상에 대한 인물 연구도 추가한다. 그리고 묘청에 대한 제평가를 살펴본 뒤 개인적이 평가를 내리도록 하겠다.Ⅱ. 고려 인종대의 정치 모습1. 문벌귀족 사회의 심화와 동요태조의 건국 이후 광종, 성종 그리고 문종을 거치는 동안 왕권이 확립되고 중앙집권 체제가 그 경제적 기반 위에 갖추어졌고 호족 세력은 그 해체과정을 통하여 중앙집권체제 속에 흡수되었다.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체제가 정비되면서 호족 세력은 국가체제 속에되는 등 겹겹의 친인척 관계를 이용해 권력을 독차지하고 문벌귀족의 으뜸이 되었다. 교만해진 이자겸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기에 이르러 무인 척준경과 함께 궁을 불태우고 왕을 유배시키고 신진관료세력들을 제거했다. 그 뒤 이자겸의 횡포는 더욱 심해져 모든 국사를 자신이 처리하고 인종을 시해하려고까지 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인종은 이자겸의 군사적 기반인 척준경에게 은밀히 교서를 내려 그를 이용하여 이자겸 일가를 제거하였다.그래서 조정은 척준경과 그의 지지세력이 장악하였다. 척준경은 이자겸을 제거하긴 하였으나 이자겸과 목적을 같이 한 인물이었으며 이 때 이자겸에게 화를 입었던 지방세력(김찬, 문공인, 문공유, 최유청, 한유총)이 복귀하여 문벌귀족과 신진관료는 또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이자겸의 몰락은 문벌귀족 세력의 주체를 김부식으로 넘어가게 하였다. 척준경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지상의 탁핵을 받아 유배됨으로써 그 일파는 제거된다.이와 같이 이자겸을 제거한 이후에도 인종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질서가 수립되지 못하였다. 그러한 상황의 타개책으로 인종은 당시 구정치 지배세력의 구성원과 성격을 달리하는 신진관료인 정지상, 백수한, 묘청등의 서경세력과 연결을 꾀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3. 인종대의 국제정세인종대의 국제정세는 금이 송을 공격하여 송이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가는 과정이었다. 인종 5년에 금은 송나라 수도 변경을 공략하여 송황제, 휘종, 흠종과 종실귀족 등 3천 명을 붙잡아 갔으며, 하북과 산동지방을 차지하였다. 이에 송은 양자강 남쪽으로 쫓겨가 남송이 건립되었다. 송에 대한 공격과 병행하여 금은 고려에도 끊임없이 압력을 가하였다. 금제국을 건립한 지 불과 2년 뒤인 예종 12년 금태조 아골타는 아지 등 5명을 보내 형인 대여진 금국 항제가 아우인 고려에게 글을 보낸다. 라는 서한을 보낸 바있으며, 인종 3년에는 요를 멸망시키고 송의 수도 변경을 압박하던 금은 고려에게 군신관계를 사대할 것을 요구하였다.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부모의 나라로 고려를 그러한 모순을 제거할 수 있는 체계적인 설명을 마련하고 있지도 못하였다 하는데 다시 말하여 고려 초의 풍수지리는 여러 상충하는 원리들을 동시에 제시하면서도 그것들을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체계적인 논리로 묶어서 말하지는 못하였다는 것이다.그런데 풍수지리에서의 여러 설명들이 정치의 현실 문제에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거의 전부가 당당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바꾸어 말하면 풍수지리와 정치의 만남 속에서 풍수지리설은 자신의 모순을 덮어 둘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굳건한 지위까지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풍수지리설을 말하는 풍수가가 정치가의 권력에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정치가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의 정치적 의도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풍수지리설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럴 경우에 그의 정치적 조치들은 서로 어긋나기도 하였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였을 것이다. 가령 태조가 후백제 유민의 등용을 막은 것과 서경을 중시한 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개경에서 도읍을 유지한다는 것과 그곳을 떠나 서경으로 도읍을 옮긴다는 것과는 서로 어긋난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조는 풍수지리를 끌어들임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가 보다 큰 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풍수지리가의 권위가 힘이 되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정치가의 권력은 풍수가의 권위가 요구되었고, 반대로 풍수가의 권위는 정치가의 권력을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견제에서 고려 초기의 정치와 풍수지리의 관계는 상보적인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그들 사이의 상보적인 관계는 밀접한 것이었다. 풍수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정치가에 더욱 근접하였고 정치가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풍수가를 더욱 가까이 하였다. 이러한 관계의 유지와 추구는 자연히 풍수지리와 정치의 상호 영향을 깊게 하여 주었다. 상대로부터 받은 각자의 영향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또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그렇다면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한 고려 왕실이 이 두 세력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 왕권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묘청의 등장 또한 인종이 권력을 석권하고 있던 개경파에 대한 견제를 하기 위해 사용한 정책이었을 수 있다.Ⅴ. 묘청, 김부식, 정지상김부식은 신라왕실의 후예로서 문종 29년에 태어나 의종 5년에 죽어 천수를 다하였다. 경주김씨 집안은 김부식대에 3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학식과 문장이 탁월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특히 김부식은 관직을 문하시중까지 역임하여 고려사회에서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부식은 숙종 1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주로 한림원등의 문필에 관한 일에 종사하였다. 그는 철저한 유학자로서 유교윤리의 실천을 주장하였고 유교이념 실천에 노력하였다. 그의 삼국사기 편찬도 계속되는 사회변동과 정치변란에 대응하여 지배질서를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에서였다.김부식은 묘청란 수습을 분열주의에 대한 통일주의의 승리로 간주했으며 묘청란과 같은 갈등과 분열을 국가 멸망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는 이 같은 관점에서 삼국사기 를 편찬하여 왕권을 옹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개경귀족과 더불어 현실에 안주하는 수구파 내지 사대파로 불렸던 것이다.정지상은 서경사람으로 유학보다는 노장사상의 도교, 역학, 불교에 조예가 깊었으며 뛰어난 문장가 천재 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시는 맑고 운율이 활달하고 뛰어나 한 대가의 수법을 이루었다고 한다. 김부식과 정지상은 사상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이들의 대립은 중앙 문벌귀족 대 지방 신진세력과의 상반된 이해관계에서 유발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지상과 묘청은 같은 서경출신이면서 자주국을 지향하는 정치노선을 같았으나 시인과 승려, 반란에 대한 입장도 달랐으므로 실제 묘청의 난에 가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묘청의 난 때 정지상이 죽임을 당하자 김부식이 평소에 정지상의 문학적 재능을 미워하여 왕의 허락도 없이 반란을 빌미삼아 빨리 죽여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김부식이 이들 서경파를 먼저 죽이고 출왕들에 의하여 화려하게 건설된 수도 개경이 이자겸의 난으로 무참하게 파괴되어 아름다웠던 궁전들은 많이 불타 없어지게 되고, 그 결과 이제까지 생기있던 수도는 암울한 분위기에 감싸이게 되었다. 당시 개경의 암담한 모습은 바로 왕기가 소진해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묘청등 서경파는 서경천도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이 점을 특히 강조하게 된다. 개경은 지덕이 다하였으니 지덕이 왕성한 서경으로 서울을 옮겨야만 고려왕조가 다시 중흥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당시의 인종은 이러한 묘청파의 주장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인종은 묘청파의 서경천도 건의에 따라 서경에 여러차례 거동하는 한편 새로운 궁전을 짓기 위해 대규모의 토목 공사는 일으키기도 하였다. 가령 서경의 임원역은 풍수지리설에서 대화세에 해당하는 명당이므로 이곳에서 새 궁전을 세우면 천하를 통일 할 수 있다는 묘청 등의 건의로 대화궁을 지은 것도 그 한 예이다.그러나 실상 서경에 대한 깊은 배려에도 불구하고 좋은 징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상서롭지 못한 재앙이 꼬리를 물로 일어났을 뿐이었다. 특히 인종 10년의 서경 거동 도중에는 갑자기 폭풍우가 밀어 닥쳐 인종 일행은 큰 고초를 겼었으며, 수많은 인마가 살상되기까지 하였다.이 사건이 일어난 뒤 정부에서는 묘청을 배척하는 운동이 표면화되기에 이러렀다. 또 묘청과 백수한이 대동강에 기름을 채운 떡을 떨어뜨려 대동강 빛이 유난히 빛나 보이게 하는 술책이 들통나고 마침내 김부식등 개경파는 인종의 서경 거동을 말리는 상소를 올리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인종도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포기하였다. 이로써 묘청일파가 추진해 오던 서경천도 운동은 평화적인 수단으로는 실현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김부식과 묘청의 대립은 더욱 격렬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묘청은 이듬해 서경을 근거로 국호를 대위국으로 연호를 천개, 군대를 천견충의군이라하여 나라를 세워 그 초지를 관철하려 하였다. 또한 칭제건원을 주장고 금국을 정벌할 것을 내세웠다.이에 인종은 김부」
    인문/어학| 2003.11.05| 9페이지| 1,000원| 조회(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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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청소년과 대중매체 평가A좋아요
    1. 대중 매체와 청소년인간은 성장하면서 주위환경의 여러 것들과 접촉을 갖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대중매체는 오늘 날 일종의 거대한 지배권을 형성하며 인간의 생활 영역인 환경을 변화시키면서 인간의 심리, 신체적, 혹은 내적, 외적 성격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청소년기는 전 생애의 발달단계에 있어서 인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초경과 2차 성특징의 발현 등 신체적, 생리적 발달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져 성인과 다름없게 된다. 아직도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자립의 면에서는 아동기와 비슷하게 의존적인 성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청소년기는 성인에도 소속될 수 없고 그렇다고 하여 아동기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경계인 인 것이다. 또한 정체감 형성과 역할 혼란의 기로에서 몸부림치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항상 불안을 느낀 나머지 새로운 자극 을 추구하고 주위 환경의 변화와 자극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된다. 이 때 공격 행동을 촉발시키거나 대중 매체의 폭력과 관련된 사회적 자극들이 청소년들의 자극 추구동기와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욕구를 더욱 촉발시키게 된다.최근 들어 청소년 비행과 범죄가 급증하게 되고 또한 폭력 행동의 정도도 이전보다 더욱 심각해져서 주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것은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대중매체의 영향이 더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2. 대중매체의 일반적 특징대중매체는 수용자의 정확한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시작 및 청각적인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모든 비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대중매체에는 텔레비젼, 라디오, 영화, 신문, 잡지, 서적 등이 포함된다. 비개인적인 통신수단으로 연구, 개인적 회화, 공중연설 등은 제외되며, 대중매체는 매우 값싸게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중매체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1 정보 지식 및 환경 이해를 증대, 강화하려는 욕구와 호기심과 탐구적 욕망을 충족시킨다.2개인의 신뢰성, 자신감, 지위 등을 강화하려는 인격통합 욕구를 충족시킨다3쳇바퀴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생기는 긴장과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함으로써 정 서적 이완의 수단이 된다4대리친구로서 가능하며 친구적,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3. 대중매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1 청소년과 TV일상생활을 통해 쌓인 분노와 증오심은 개인 내에 축적되어 그 압력이 올라가게 되고 공격행동, 격렬한 스포츠 언어적 공격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된 공격행동 등을 통하여 분출함으로 그 압력을 낮추어야 한다. 때로 우리는 화가 나있거나 일이 죄절되어 버리면 누군가를 저주하고 소리지르고 다른 사람을 때리고 열기를 발산해 버림으로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을 경험한다. 따라서 인간이 공격행동을 직접 취하거나 폭력행동을 관찰하는 것은 인간에게 생리적 으로 존재하는 공격 본능을 해소하게 되고 이후의 공격 행동을 감소시키게 된다.축구시합을 한다거나 TV에서 살인장면을 봄으로써 공격 에너지가 발사되는 것이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공격 장면을 시청하는 것이 해소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모방과 관찰학습을 조장하기도 한다. TV 폭력물을 자주, 오래 정규적으로 보는 아이들은 다른 아동보다 공격성이 증가되는데 특히, 남아에 있어서 더욱 자극을 준다고 한다. 폭력화면을 많이 접하면 폭력에 둔감해 지거나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폭력을 당연시 여기며 폭력을 통해 갈등해소를 시도하고 대인 관계에 수시로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데 주로 청소년이 쉽게 영향을 받는다.상업주의적 운영을 하는 방송의 경우 경쟁이 강화되면 오락 지향적으로 되어서 순간적 흥미만을 자극 하는 저급한 프로그램을 대량 공급하게 되는데 이 때 TV는 폭력을 파는 쇼 비즈니스로 전락하게 된다.2청소년과 비디오하루 평균 3백편 이상의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비디오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이미 상식화된 음란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비행 청소년의 87%가 한두번 이상 보았으며 비행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일반 중, 고등 학생도 거의 한 두번 이상 음란비디오를 본 것으로 밝혀졌으며, 가정에서 보았다고 답한 청소년의 비율이 1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일반 가정에도 상당히 많이 보급되어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청소년들이 폭력장면이나 음란물의 비디오를 봄으로 치명적인 해를 받는 것은 그 행위를 모방하고 저속한 정서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서 성적인 흥분과 자극을 경험하게 되며, 때로는 강렬한 성충동으로 인해 성폭력, 폭행 원치 않는 임신, 미혼모 문제, 변태 행위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3 청소년과 영화청소년을 위한 영화 중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가 범죄현상인데 범죄 중에서도 폭력범죄가 , 그 중에서도 인신매매, 가정 파괴등 인면수심의 흉악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런 흉악 범죄자의 상당수가 청소년들이라는 것이다. 이들 청소년들이 이렇게 된 것은 무자비한 살상과 고문, 극도의 증오와 난폭한 복수 등 잔혹한 장면을 담은 영화의 영향도 적지 않다. 아무리 오락이요 허구라 해도 판단능력이 성숙하지 못한 그들에게는 생생한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으며 폭력에 대하여 저항심을 갖기보다 유희의 소재로 받아 들이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4 청소년과 새로운 영상문화 (컴퓨터)비디오게임과 뮤직비디오등 새로운 영상매체가 계속 개발되고 있으며 이 분야는 대부분 청소년을 주고객으로 하고 있으며 기성세대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문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문제점이다. 이런 것들은 사고를 요구하는 당위성의 문화가 아니라 비사고적이고 감각적인 성격이 더욱 강한 문화라 할 수 있다.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컴퓨터 영상문화이다. 이것은 정지 그림이 아니라 활동그림에 의존하고 있어서 청소년의 시각적 기술을 증가시키고, 공간적 기술 같은 지적 발달에 도움이 되는 인지 능력을 키워주며 화면의 시각적 행동이 컴퓨터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놀이자의 능동적 개입이 가능한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어 여가의 수단으로 TV보다 덜 피동적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교육학| 2003.08.07| 3페이지| 1,000원| 조회(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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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 정의란 무엇인가 평가A+최고예요
    Ⅰ.머리말선(善)과 악(惡),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묻는다면 개인마다 약간씩 다른 기준을 가지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바로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는 선 또는 정의가 무엇인지? 부정의가 바로 악이라고 할 수 있는지? 등의 의문을 갖게 만든다. 아마도 윤리에서의 정의는 선과 유사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선에 대한 문제는 덮어두고 사회질서로서의 정의, 즉 법학에서의 정의에 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정의에 관해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코잉, 롤즈, 오경웅 등의 많은 학자들이 그 개념 정의(定義)에 고심해 왔다. 하지만 다른 여러 철학적 용어들이 그렇듯이 그 개념을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과학에서는 실험 등의 정밀한 방법을 통하여 개념규정에 관한 합의가 용이하지만 철학에서는 그 용어의 감정적 색채가 짙어서 때문에 합의를 얻어 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라드부르흐와 카임 페를만의 정의론을 알아보고 법 이념으로서의 정의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럼으로해서‘정의는 무엇이다’라고 일의적(一義的)으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정의문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다.Ⅱ. 법철학자들의 정의론1. 라드부르흐(G. Radbruch, 1878∼1949 독일 법철학자)-법과 정의(1)법의 지위법칙에는 필연칙(必然則)과 당위칙(當爲則)의 두 종류가 있다. 필연칙은 반드시 실현될 것을 내용으로 하며 실재하는 세계의 근본을 가리키는 법칙이고 당위칙은 혹시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을 내용으로하며 보다 좋은 세계의 구상을 그리는 법칙이다. 인간의 정신활동에는 몇 개의 기본적인 터전이 있는데 그 중 인간의 의욕과 행위를 규율하는 윤리적 당위는 셋으로 나누어진다. 즉 착한 행위에는 윤리, 알맞은 행위에는 습속, 올바른 행위에 관하여는 법이 각각 그 기준을 준다. 이 역사적 순서는 이상(理想)과 현실간의 격차(隔差)의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습속적 규율은 예로부터 일어난법률상의 집단의 위에 서는 입법자와 그 법을 적용해야 할 법관을 필요로 하는 외면적, 타율적 입법이나 도덕은 자율성을 특성으로 하는 자기입법(自己立法)으로 초개인적인 평균 규칙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외면적 입법이나 심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서 법의 타율성이란 양심이 자율적으로 발전시킨 여러 규범을 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규범복합체(規範複合體)의 구속력 내지 타당성은 그 규범을 자신의 양심 안에 받아들여 양심의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그 근거가 있다. 만일 자율적으로 의무를 과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로서의 성질을 띠고 있다면 우리는 법에 의하여 의무를 과하는것도 그 궁극적 타당성이 각 개인의 윤리적 의무에 터잡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그래서 법과 도덕의 본질적인 차이를 생각해야 된다. 도덕률은 사실상으로나 상상적으로나 고립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타당하고 법률은 공동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타당하다. 이러한 법의 대사회적(對社會的) 성격으로부터 외면성밖에 또 하나의 법의 특색이 나타난다. 도덕률은 개별화한다. 그것은 각 개인에 따라 또 개개의 경우에 따라 특수화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반적으로 체계화할 수 없으며 직관적으로 파악될 뿐이다. 이에 대하여 법률은 다소라도 일정한 범위의 사람 및 사태를 평등하게 취급한다. 법의 특수화가 아무리 진행된다 하더라도 법 앞에서의 평등과 법규범의 일반성이 항상 어느 정도 법의 본질적 특징을 이룬다. 인간과 사물의 개별적 특수사정에 대한 법의 고의적인 무관심을 우리는 유스티치아의 눈가리개라고 비유하는데 이것이 즉 정의(正義)인 것이다. 보통 정의란 말은 법이 좋은 법이고 옳은 법이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모든 성질을 총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정의, 즉 특수한 것을 일반규칙으로 규율하고 뉘앙스가 고르지 않은 것을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법의 형식적 특질을 문제삼는다. 절대적으로 고른 것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평등은 항상 불평등을 추상한 것에 불과하다. 는 것이 아니고 진(眞)·선(善)·미(美)와 같이 그 자체에 근거하는 절대적 가치다 .이렇듯 정의는 전(前)법률적이며 초법률적인 것인데 그 핵심은 평등사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정의는 평균적 정의(平均的 正義)와 배분적 정의(配分的 正義)의 두가지 정의로 구별되고 있으며 평등은 이 양자 안에서 서로 다른 두 형식으로 명백히 나타나게 된다. 전자는 급부와 반대급부의 절대적 평등, 후자는 다수인 사이의 대우관계의 평등을 의미한다. 평균적 정의는 법적으로 서로 평등한 두 사람의 인격자를 전제로 하고 배분적 정의는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의 인격자, 즉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하위 인격자와 그에 대하여 부담을 과하거나 이익을 주는 상위인격자를 전제로 한다.한편 정의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정의의 본질은 평등(Gleichheit)이며 보편성(普遍性)은 그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의의 본질인 평등은 개개의 경우 개개의 인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타당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니, 이 개개의 경우 개개의 인간에 대해 추구된 정의를 형평성(Billigkeit)이라고 한다. 그러나 형평성이란 요구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며 개별화된 정의란 그 자체가 모순이다. 그리고 정의의 형식인 보편성도 정도가 있는 것이니 특수성은 항상 일반적인 것의 한 유형인만큼 보편성은 개별화에 일치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개별성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형평적 경향은 개별화하는데서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정의는 하나의 형식적 이념이다. 방대한 여러 법규는 만인의 행위의 평등성, 법적 규제의 보편성이란 형식을 정의로부터 받아들이는 한편 그 내용은 법의 이념에 속하는 또 하나의 원리인 합목적성(合目的性)에 의해 규정받지 않으면 안된다. 법은 윤리상의 의무이행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게 할 수는 있는 것이다. 즉 윤리적 결정은 내부적 자유에 의해 행해지는데 이 내부적 자유는 외부적 자유의 척도(尺度)인 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외부적 자유를 에 상응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불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섣불리 정의를 회복하여 오히려 고르지 못한 처리를 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또 부정의(不正義)가 되는 것이니 법적 안정성은 정의(正義)의 형식인만큼 이러한 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대립은 정의 자체의 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충돌은 간단히 해결될 수 없으며 정도의 문제가 된다. 즉 실정법에 의하여 가리워진 법적 안정성이 부정의(不正義) 일반에 대하여 이미 중요하지 않을 정도에 다다랐을 때에는 불합리한 실정법은 정의, 즉 초실정적 법에 굴복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정법을 지키는 법적 안정성은 아마 불합리한 실정법도 그것이 정의의 한 형식이라는 이유로서 그 효력을 정당화할 것이다.2. 카임 페를만(Chaim Perelman 1912∼1984 벨기에 브뤼셀 대학 법철학 교수)(1)정의의 분석카임 페를만의 정의론은 정의에 관해 이성적(理性的)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합리적 담화의 조건과 규칙들을 모색한‘논의 이론적(論議 理論的)’정의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의 관념에 관한 보편적인 합의가 평등 관념의 적용에 있다고 보고 그 적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대해 여러 정의 관념들에 공통되는 요소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 변형의 여지를 두는 방식을 적용한다. 여기서 형식적(추상적) 정의를『동일한 본질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은 동일하게 대우받아야만 한다는 행동의 원칙』이라고 정의하고 구체적 정의로 6개의 공식을 제시하여 분석한다.1 각자에게‘똑같은 것’을이 공식에서 표현된 정의 관념은 어느 정도의 비례성(proportionality)을 요구하는 다른 관념과는 달리 오로지 순수한 평등주의적 관념이다. 즉 정의가 적용되어야 할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동일한 본질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공식은 평등주의적 정의 관념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평등주의적(平等主義的) 인도주의(人道主義)와 어서 후자의 정의 공식은 사회 생활에서 가장 일반화된 것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보편적 기준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과 또 순전히 실제적인 이유로 해서 그적용을 같은 종류의 일과 지식의 비교에만 국한되어야 하는 것이다.4 각자에게 그의‘필요(needs)’에 따라이 공식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필요라는 관점에서 보아 동일한 본질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처우할 것이 요구된다. 여기서는 개인의 변덕 모두를 고려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지 개인의 가장 본질적인 필요들 즉 이 공식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필요들만을 고려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공식을 적용하려는 때는 본질적 필요(本質的 必要)와 기타의 필요를 구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필요의 서열(序列)을 그 중요성에 따라 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필요가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충족의 대가(對價)가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또한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최저 기준이란 관념의 개념 규정이 가능하게 된다. 이 때 본질적 필요한‘각자에게 그의 필요에 따라’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정의(사회 구성원 각자에 대한 사회의 의무를 설정해 주는 정의)에 의하여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필요를 뜻한다.5 각자에게 그의‘계급(rank)’에 따라이 공식의 적용은 우리가 정의롭게 대우하려는 사람들이 계급으로 분화되어 있으며 대개는 위계(位階)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동일한 본질 범주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부여되기만 한다면 여러 계급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상이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정의롭다고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하나의 체제는 상층 계급의 구성원 각자가 자기의 책임을 반드시 느낄 때에만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권리가 그에게 지워진 의무에서 비롯된 것일 때라야만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특별한 권리들이 특수한 책임들과 연계되지 않는 곳에서는 그 체제는 자의적인 요인을 만연케 함으로써 타산적 정실주의(favo문이다.
    법학| 2003.08.07| 11페이지| 1,000원| 조회(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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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어] 영어속담과 문화
    우리 속담과 영어 속담의 문화 차이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한다.Love me, love my dog 라는 영어속담은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친구나 가족까지도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Love me, love my dog는 글자 그대로의 origin을 가지고 있다.westerner들이 미국 서부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때 개는 곧 an integral part of the family(가족의 필수 구성원) 가 되었다. 개는 protector 노릇을 한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유일한 친구 역할까지 했다. 이웃집이 몇 마일씩 떨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면 그들은 즉시 Love me, love my dog 라고 말하곤 했다. 이 말은 Love my friends 나 Love my family 등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울며 겨자 먹기울며 겨자 먹기 ( Eating mustard in tears) . 여기에 꼭 맞는 영어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비슷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You have to what you have to do 혹은 구어체로 You gotta do what you gotta do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To face the music (용감하게 맞서다) 그런데 To face the music 의 유래에 관해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연기자가 무대로 나갈 때 악사들 이 무대 전면에 나서서 음악을 연주하는데서 그런 뜻이 생겼다고 하며, 또 하나는 군대에서 탈영병 (deserter)을 총살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탈영병이 처형장으로 들어갈 때 음악이 연주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누워서 떡 먹기 누워서 침 뱉기우리는 아주 쉬운 일을 일컬어 누어서 떡 먹기라고 한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누워서 떡을 먹는 것은 사실 쉬운일이 아니라서 이 말을 그대로 영어로 직역해 놓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외국인이 많다. 여기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It's a piece of cake 이다. As easy as pie도 같은 의미의 표현이다. 또 한, 누워서 침을 뱉으면 그침이 자기 얼굴에 떨어지듯, 다른 사람을 해치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경우를 누워서 침 뱉기( lying on one's back and spitting) 라 한다. 영어에도 같은 뜻을 가진 표현이 여럿 있다. 곧 Spit in the wind (바람에 침 뱉기)나 Piss in the wind (바람에 오줌 누기) 가 있다 하지만 Piss라는 단어는 상스러운 단어이므로 사적인 자리나 친구간에만 쓴다 점잖은 자리에서 쓰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Cut off your nose to spite your face (코를 깎아 얼굴을 망치다) 가 있다. 이 표현은 옛날에 터무니 없이 큰 코를 가졌던 한 사나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화가 나서 코를 깎아 버려 자신의 얼굴을 망쳤다는데서 유래했다.
    인문/어학| 2002.05.30| 2페이지| 1,000원| 조회(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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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이해] 한 일 음식문화 비교 평가D별로예요
    1. 서론원래 일본인의 선조는 일부 토착 원주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이ㅣ주해간 사람들이며, 일본의 고대 식생활 문화와 비슷할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 있어서는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문화를 고스란히 옮겨갔던 일본은 그 후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한 국가로서 서서히 한반도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 그리하여 일본의 특유한 풍토와 식성에 맞는 식생활 문화를 형성 발전시키는 한편 우리 나라는 우리 나라대로의 고유한 음식을 계승,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떡과 술, 죽과 된장, 간장 그밖에 갖가지 젓갈 따위 일본의 고대 음식은 한반도에서 그대로 옮겨간 것이므로 일본 고유의 음식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일본은 그 후 그들의 풍토와 산물에 맞게 하여 여러 가지로 연구. 개량하여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일본 특유한 새로운 음식으로 발전시키고 있다.2. 본론우리 나라에서는 화식(和食)이라고 하면 누구나가 스끼야끼 와 사시미 그리고 스시 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이 스끼야끼와 사시미는 결코 일본 고유의 요리가 아니다.우리나라에는 스끼야끼와 비슷한 전골이라는 냄비요리가 있지만 일본의 스끼야끼가 전골에서 온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전골 요리는 참으로 버라이어티가 풍부한 요리이다.보통 신선로라고도 불리는 구자 전골을 비롯하여 쇠고기 전골, 두부전골, 낙지 전골, 버섯 전골, 갖은 전골 따위가 옛날부터 있었으며 요즈음에는 곱창 전골이 유행이다.갖가지 전골 중에서도 구자 전골 즉, 신선로의 조리방법은 손이 매우 많이 가는 세련된 것이다. 우선 쇠고기는 너비아니로 구워서 전유어와 같은 모양으로 썰어놓고 남은 고기는 실까이 가늘게 채쳐서 갖은 고명을 넣어서 버무려 놓고 한편으로는 질긴 고기로 맑은 장국을 끓여 놓는데 이 때 통무를 한데 넣고 끓여서 무가 푹 무르면 골패쪽 모양으로 썰어서 갖은 고명과 함께 따로 놓아둔다. 신선로에 담을 때는 썰어놓은 무를 먼저 밑에 깔고 다음에 재어 놓았던 고기를 펴놓고 그 위에 너비아니와 전유어를 색색으로 곁들여 놓고 버섯 볶음과 계란지단도 사이사이에 색깔을 맞추어 끼워놓고 호두와 은행과 실백은 세 군데로 간격을 맞추어 차례로 놓고 단단하게 삶은 계란을 둥근 모양 그대로 얇게 썰어서 역시 세 군데로 간격을 맞추어 놓고 덮개로 덮어 두었다가 상에 내갈 때에 장국물을 붓고 잘 피운 참 숯불을 화롱 속에 넣고 속에 끓여 가면서 먹게 되어 있다. 신선로는 우리 나라 요리상에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정식 조리법에 따라 제대로 갖추려던 너무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 회갑 잔치라든가 혼인 잔치를 할 때에는 정식 신선로를 만들지는 못하고 적당히 생략한 약식 신선로로 명색만 갖추는 수가 있다. 정식 신선로는 한국 일류의 음식점에서도 특별 주문을 하지않는 이상 맛보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신선로와 비슷하지만 보통 냄비에 끓여서 먹는 간편한 전골 요리는 웬만한 한식 집에서는 대개 주문할 수 있다.그런데 전골과 스끼야끼의 차이점이 어디있는가 하면 스끼야끼에는 설탕과 미림 또는 청주를 넣지만 전골에는 통무와 쇠고기를 푹 삶은 맑은 장국이 육수로 쓰일 뿐 설탕이나 청주 따위는 넣지 않는다.다음으로 일본 요리를 대표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사시미일 것이다.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풍부한 생선을 재료로 한 사시미를 즐겨 먹었다. 그러나 사시미 즉 생선회는 일본만의 고유 요리라고 할 수는 없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곰도 즐기는 것인 만큼 강에서나 호수에서는 민물고기를, 그리고 바다에서는 갖가지 어류를 잡아먹는 것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공통된 것이었다. 그런데 보면 실상 물고기를 날 것으로 먹는 이 사시미 즉, 회라는 것은 가장 소박하고 원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원시적인 회가 일본의 사시미라는 이르므로 유명해지게 된 것은 이 역시 별로 오래된 것은 아니다. 도꾸가와 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일본인은 생선을 날 것으로 먹을 때 초에 소금을 넣어 찍어 먹었을 뿐이다. 오늘날처럼 초간장에 무즙과 와사비를 곁들여 먹게 된 것은 불과 2,3백년 전부터이다. 또한 사시미라는 말도 근래에 와서 생긴 이름이며 예전에는 우찌미라고 불렸던 것이다.가장 원시적이며 평범한 생선회가 일본의 사시미라는 이름으로 일본인의 대표적인 음식이 된 까닭은 일본인의 앙징맞도록 꼼꼼한 손재주와 재치에서 나온 것이다.일본인은 생선회를 접시에 담는 방법에도 어떤 격식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7.3.5라 하여 생선회를 떠서 꼬리쪽을 일곱토막, 가운데를 다섯 토막, 머리쪽을 세 토막 담는 것이 옳은 방식이라고 한다. 손재주가 있고 앙징스러운 일본인은 이런 식으로 생선회를 담는데까지 그 나름대로 공을 들이고 재주를 부렸을 뿐만 아니라 도미, 다라어, 삼치, 준치, 잉어, 전복,소라따위 온갖 물고기와 조개를 색깔을 맞추어 접시에 담는다.회를 뜨는 방식에도 [히라쓰꾸리],[이도쓰꾸리], [기리가사네],등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고 더구나 생미역, 땅두릅, 차조기, 띵위를 철따라 곁들여 보기 좋게 꾸민다. 이러한 꾸밈은 본래는 [겐] 또는 [가모가시라] 라고 불렀으나 오늘날에는 [쓰마]라고 부른다.이처럼 실상 먹는 것이 아닌 [쓰마]를 정성스럽게 마치 꽃꽂이를 하듯 꾸며놓고 이것을 담는 접시마저 [이로나베지마]니 [소메쓰께]니 하는 진사자기 또는 청화백자의 접시에 담아냄으로써 일본인들은 사시미의 접시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순화시켰던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생선회를 즐기기는 했지만 일본인들처럼 회를 뜨는데도 온갖 손재주를 부리고 [쓰마]와 같은 장식물을 곁들이는 잔재주를 부리는 일은 없었다. 생선회를 만드는 방법에는 얇게 저미는 방법과 채치는 방법 또는 다져서 베수건에 짜는 방법이 있었을 뿐이다.그래서 그런지 우리 나라에는 일본에 없는 육회가 있다. 육회는 대접살이나 볼기살을 한푼 두께로 얇게 저며 가지고 가늘게 채를 쳐서놓고 간장에 파를 곱게 이겨서 넣고 후추가루와 깨소금과 기름을 치고 이 고명 간장을 채친 고기에 섞고 잘 주물러서 간을 보아 접시에 담고 실백을 뿌려 겨자나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는 것이다. 부드러운 촉감과 살살 녹는 듯한 그 풍미는 도저히 날고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감미로움이 있다. 이밖에 소간이라든가 천엽도 소금과 참기름에 찍어서 먹는데 소간을 회로 먹으면 눈을 밝게 한다고 믿어지고 있다.이처럼 한국 요리는 겉보기 겉치레보다는 맛과 영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하면 일본요리는 스태미너의 원천으로서의 영양이라든가 맛보다는 겉보기에 아름다운 색채의 미만을 쫓는 감이 없지않다.이와 같은 일본인의 미의식에서 생겨난 가장 일본적인 음식이야말로 스시 라고할 수 있다.스시는 기 라고 쓰는 것이 본래의 한문자 표기이다. 옛날 일본의 아낙네들은 이것을 스모지 라고 불렀는데 요즈음은 스시 라고 표기하고 있다.중국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나라 시대에 안록산이 황제에게서 이 기 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헤이안] 중기의 [엔기] 시대이다. [다이고] 천황때에 스가와라노미찌사네가 후지와라노도끼히라에 의해 참소를 당해 다자이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스시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때가 981년이니까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일본의 스시의 기원은 그럭저럭 1천년 가까이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시대의 스시란 것은 물고기나 조개를 초장에 담가서 삭혀서 먹는 것이었으며 오늘날의 일본의 스시와는 이름만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그 무렵의 스시는 시시비시오 또는 시오까라 즉 젓갈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엔기시끼]를 보면 그 무렵의 일본 여러 지방에서 일본 왕실에 진상하던 물목이 적혀 있는데 그 중에 이 스시가 지방에 따라 재료는 비록 다를 망정 중요한 물목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세의 도미스시, 사누끼의 고등어스시, 와까사의 전복스시가 있었다. 이것을 보면 그 무렵 이미 일본 전국에서 스시가 생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무렵의 스시는 오늘날의 초밥이란 의미의 스시가 아니라 [기]라고 쓰는 젓갈이었다.
    인문/어학| 2002.05.30| 4페이지| 1,000원| 조회(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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