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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민정음] 훈민정음 창제 배경, 의의, 동기 평가A좋아요
    Ⅰ 서론훈민정음은 세종 25년 세종과 집현전학자들이 창제한 하나의 새로운 문자체계이다. 이 훈민정음은 대부분의 다른 문자들과는 달리 만든 사람과 그 기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훈민정음은 세종대 이루어진 다른 제도나 문물과 달리 그 제작동기나 과정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세종 25년 『세종실록』에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그 동기나 과정을 알려주는 단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창제 후의 기록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이 유일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먼저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한 동기와 목적을 밝힌 훈민정음 어제서문을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은 거기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겨 익히기 쉬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에 대한 견해가 아직도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는 그런 여러 견해와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배경에 대해 고찰하여 조금 더 가까이 훈민정음을 이해하려고 한다.Ⅱ 본론조사한 자료들에 의하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원인과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순전히 민중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과 조선 왕조가 민중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의견에는 반대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훈민정음'이 세종이 만든 것이 아닌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정음'의 형태를 본딴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정음이 널리 쓰이지 못한 이유로 중국의 발달된 한문이 수입되어 쓰이지 않았다는 것과 일부 적은 수의 권력자만이 문자를 사용하고 문화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여간에 분명한 것은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이전까지는 민중들이 자신의 의견을 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훈민정음'이 등장하자 민중들은 사회 의식을 갖게은 민중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교육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창제되었고 이것을 통하여 왕조에서는 민중들에게 충효 사상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윤리 도덕을 가르쳤다.조선 시대의 중요 사상은 성리학이었기 때문에 민중에게 충효 사상을 가르치는 일은 중요하였고 성리학을 민중에 널리 보급하여 나라의 건국 이념을 알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훈민정음이 창제되었고, 이 시기의 훈민정음은 단지 성리학 뿐 아니라 농서의 간행, 보급을 가속화 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조선 왕조가 민중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으로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하였다는 주장에도 당시의 사대부들이 반대하였다는 자료가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 역시 민중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고 권리를 주장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사대부들이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를 반대하였다는 데에 근거한다. 그러한 이유로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의 사용을 꺼려하였고, 그 예로 서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기록을 비롯한 각종 문서에 계속 이두를 계속 사용하였고, 사대부들은 한문을 계속 사용하였으며 한문과 언문을 쓰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판가름 났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현상과는 관계 없이 민중들 사이에서는 훈민정음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민중들이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위 두 가지 주장을 종합해보면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와는 관계없이 훈민 정음은 서민들이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어려운 한자의 사용으로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자로 28자의 훈민정음이 창제됨에 따라 '이르고자 하는 바' 능히 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1. 창제 배경1) 시대 배경조선은 고려의 여러 폐단을 개혁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국가 지도이념으로서 '유교'를 책택. 한편으로 사당주의(事唐主義)에서 탈피, 숭명정책(崇明政策)으로 전환했다.세종조에 이르면 유교의 확고한 기반이 갖추어 진다. 세종은 집현전(集賢殿)을 설치(세종2년 3월)하여 유교교육과 새로운 제도의 조사 연구에 힘을 쏟았다.시 성리학은 명 초기에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고려말에 안향에 의해 도입, 조선조에 그대로 계승되어 정치이념, 학문의 원리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때에 명에는 3대전(大全)이 있었는데, [사서대전(四書大全)], [오경대전(五經大全)], [성리대전(性理大全)]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성리대전]) [성리대전]은 1415년에 명의 제3대 성조때 출간, 4년 후 세종 원년에 전래된 책임이었다. (강신항 교수 견해)훈민정음 해례의 음성이론이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및 여기에 대한 여러 선비들의 주석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 많다. 해례의 음성이론 뿐 아니라 여러 운서의 서문(序文) 등은 일반적 이론에서는 주자 등의 이론을, 성음(聲音)이론에서는 앞의 [황]를 바탕으로 했다.) http://ipcp.edunet4u.net/~koreannote/ 참조2. 창제 동기1) 강신항의 견해① 표면적 동기) 표면적 이유를 뒷받침하는 문헌들에는 [훈민정음] 어제 서문, [훈민정음] 정인 지 후서(後書), 강희맹의 [보간재집(保間齋集)] 권 11 부록 행장(行狀), 최만리의 반대 상소에 대한 세종의 답변 내용이 있다- 표기수단을 갖지 못했던 백성들에게 표기 수단을 만들어 주기 위해- 문자가 없는 국가적 체면을 생각해서- 이두(吏讀) 사용의 불편 해소- 애민정신(愛民精神)에서② 이면적 동기 : 한자음 정리를 위한 언어정책적인 면- 한자음의 혼란 언급 : [동국정운] 서(序)(신숙주, 1447)於是 調以四聲 定爲 九十一韻 二十三字母 以御製 訓民正音 定其音 又, 於質勿諸韻 以影補來 因俗歸正 舊習 謬 至是而悉革矣- 세종의 한자음 정리에 대한 고민* 운회(韻會) 번역 : 세종 26년 2월 14일* 세종 26년 2월 20일에 최만리(崔萬理)의 반대상소가 있었음* 동국정운 편찬 : 세종 29년 9월* 홍무정운 역훈(譯訓) : 세종 말 ~ 단종* 사성통고(四聲通攷) 편찬 : 세종 말 ~ 단종2) 김완진(金完鎭)의 견해 : 훈민정음 서문의 은 한자음의 표기에 있었다. (우리 나라의 한자어음은 중국과 달라서 한문자와 더불어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② 정인지(鄭麟趾) 훈민정음 해례 서愚者可浹旬而學 (어리석은 자도 열흘만에 훈민정음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고 한자의 성운(聲韻)을 두고 한 말이다.③ 훈민정음의 자모체계 : 오히려 동국정운의 편찬을 위한 주음(注音) 체계임 : 동국정운의 초, 중성 체계와 완전 일치됨(동국정운에는 종성에 해당하는 한글字가 '가, 가, 가, ㅭ, 가, 가, 가, 가 '의 8자인데 이것은 해례의 종성부용초성과 동일함)- ㆆ: 국어음 기술에는 불필요한데 초성체계에 넣음- 가, 가, 가, 가은 가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데 초성체계에 포함시킴- 고유어 표기에 반드시 필요한 초성이 합용병서 (가가,가가,가가, 가,가가, 가가 등)는 초성체계 속에 포함 안됨※ (요약) 창제목적은 당초 한자, 한문을 스승의 도움없이 누구나가 쉽게 익히고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 운서(韻書)에 주음(注音)하는 데 쓸 기호를 만드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그후 훈민정음 해례가 나올 무렵에는 고유어도 기록할 수 있게끔 그 용도가 확대되었다 보아야 한다.6) 서병국① 국가주의적 동기 : 국어표기에 적합한 국자(國字)의 필요를 느낌② 민주적 기회균등주의 : 우민(愚民)의 의사발표가 불여의(不如意)함③ 실용적 문화주의 : 새 문자 창제로 문화발전 촉진④ 사법 공평주의 : 치옥청송(治獄聽訟)에의 고통을 덜어줌※ (요약) 훈민정음은 어디까지나 국어의 표기와 국민교화를 위해, 문자생활의 혜택을 균등히 하고, 선진문화 섭취에 도움을 주며, 민중의 불편을 제거하고 민중의 문화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데 창제의 동기가 있었다.7) 박병채 : [한국문화사대계] Ⅴ 언어문학편 上① 국어, 국자관 확립② 일반 언중의 정상적 문자 생활의 도모③ 대중성, 관용성에 입각한 문자의 보편화) http://ipcp.edunet4u.net/~koreannote/ 참조3. 훈민정음 창제의 반대론자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상소하현전에 들어가 박사(博士)를 거쳐 직제학(直提學)이 되었고, 1439년에는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잠시 임금의 곁을 떠났다가 이듬해 집현전 부제학이 되어 서울로 돌아와 세종의 사랑을 받았다.그는 늙어서 고위직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고 청백리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무능하거나 부덕했던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1443년이 저물어 갈 무렵, 세종은 오랜 노력 끝에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이듬해 연초가 되자 최만리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세종실록’ 갑자년(1444) 2월 20일(庚子)자에 실린 그의 상소문을 읽어보면 우리가 그의 진심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신하보다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사업을 대단한 업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는 상소의 첫머리에서 ‘한글을 창제한 왕의 업적이 지극히 신묘해 사리를 밝히고 지혜를 나타내심이 천고에 뛰어난 업적’이라고 경하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상소를 이어가면서 몇 가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첫째, 한글을 쓰노라면 한문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장차 중국의 예법을 모르게 될 것이니 그 점이 걱정스럽다고 말하고 있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최만리에게 두 가지 잘못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 선 한글을 쓰게 되면 한문을 쓰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이 지나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로부터 560년이 지난 지금도 한문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 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고, 또 그들의 주장이 잘못 됐다고만 볼 수 없다면, 당시 최만리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크게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또 한 가지, 그가 중국의 제도(예법)를 버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부분은 비난을 받을 만하다.한글의 창제가 중국의 제도를 버리는 것도 아니려니와 중국의 제도로부터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국가의 운명을 바꿔 놓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중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걱정한 것은 그가 한때 총명을 잃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당시의 정다.
    인문/어학| 2002.09.30| 9페이지| 1,000원| 조회(4,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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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작품] 이춘풍전
    Ⅰ 서론1. 기존 연구 검토은 창작 연대와 작가 미상인 조선후기 소설로 풍자와 해학적인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표현 등으로 인하여 폭넓게 독자층의 애호를 받으면서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또한 은 희극적 흥미뿐 아니라 등장 인물의 개성과 작품의 사회의식 및 풍자의 특이성으로 인하여 고전 소설의 마지막 시기를 장식할 만한 의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 받아왔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53년에 시작되었고 작품도 5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그러나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7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활발한 작품연구가 진행되어 훌륭한 연구성과를 거두기로 하였다. 그리고 80년대에서 근년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많은 개별적 연구가 이루어져 십이 편의 연구성과를 갖게 되었다.의 기존 연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장덕순은 「이춘풍전 연구」에서 이 작품의 주제를 동양적 윤리사상에 입각하여 부녀의 최고 미덕인 烈 을 내세우는데 그 주목적이 있다 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烈 은 봉건제도 하에서 남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이른바 신시대에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타입의 열녀를 내세우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장덕순, 「이춘풍전 연구」, 『국어국문학』5(국어국문학회), 1953, p1.하순철은 「이춘풍전의 일고찰」에서 작품을 개관하고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 他작품과 비교하여 나타나는 풍자성, 현실성과, 판소리 계열로서 나타나는 특징, 남장여인의 재판과, 여권신장의 측면에서 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조선 말기의 사회상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 보고, 자아의 발견, 신분 이동 등 당대의 사회적 변화와 관련지어 작품을 평가하였다. 다방면의 작품 논의 중에서 춘풍 처가 남장을 한 것은 남성이 되어 권력을 동경하던 여인들의 꿈이 집결된 것으로 여성의 무의식적 표현이라 하였다. 또한 춘풍 처는 현실적 인물로서 스스로 자기 운명을 바꿔놓은 적극적인 여성이며, 새로운 여성의 길을 신 시대의 여성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이상에서 의 연구 결과를 보면 대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논자간의 작품 연구경향은 크게 80년을 전후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것은 대체로 상반된 성격과 생활태도를 지닌 주인공 중 어느 한 인물의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전자에는 풍자적 소설의 성격이나 능력있고 적극적인 춘풍 처의 활동이 의미하는 바에 따른 관심이 작품의 주제해석으로 직결되고 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이춘풍을 중심으로 사회변동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춘풍의 사회적 활동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고, 그것에 주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논자간이 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 전통적 소설형식과 다른 풍자적 수법, 사회사적 배경, 인물의 일상성을 중시하는 같은 태도와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2. 연구 방향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에 대한 기존 연구는 작품의 주제, 구조, 인물, 사회사적 측면, 풍자의 양상, 그리고 소설사적 위치 등이 논의되고, 판소리와 관련도 단편적으로 검토되었다.여기서는 먼저 이 작품의 성립시기를 추정해 그 당시 사회적 배경을 알아본 후, 어느 한 인물에 치중하지 않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중인물의 의식과 성격을 고찰해 전체적 의미를 파악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 나타난 근대지향적 성격에 대해 살펴보고, 작품의 한계점을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異本과 작품 성립시기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춘풍전은 창작연대와 작가가 미상이다. 다만 이춘풍전 서두에 숙종대왕 즉위 초 라고 명시된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이 작품의 성립시기를 이본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이춘풍전의 이본으로 지금까지 일곱 종류의 필사본만이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소장자에 따라 편의상 城山本(장덕순), 김종철본, 가람본(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 국립도서관 소장본, 나손본 1 2 (김동욱), 임형택본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판소리계와의 과거제의 문란과 매관매직에 의한 신분질서의 동요현상을 엿볼 수 있다.셋째, 부 축적을 위한 고리대금업, 상업 성행이다.춘풍의 가산탕진으로 인해 기울어진 가세를 춘풍 처가 임금노동을 하여 돈을 모으고, 고리대금을 통해서 재산을 증식한다. 이처럼 이시기에 부의 축적 수단으로 고리대는 봉건 지배층의 부업적 수치형태 또는 일련의 고리대금업자에의 재산 집중으로서, 고리대금의 운영으로 상당한 재산의 축적이 진행되었다. 이처럼 영리에 눈을 뜬 자들과 농민 중 토지를 상실한 자들은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보다 많은 이익을 추구해서 고리대금업이나 상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3. 작품의 줄거리의 줄거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1)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서울 다락골에서 이춘풍이 살고 있었다.2) 춘풍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많은 재산을 이어받게 된다.3) 춘풍은 주색잡기로 방탕한 생활 끝에 재산을 모두 탕진한다.4) 춘풍은 하는 수 없이 부인 김씨에게 집안 일을 모두 맡기고, 주색잡기를 청산하겠다는 수기를 써 준다.5) 김씨는 침재와 길쌈 등으로 열심히 治家에 힘써 가정이 다시 넉넉해 진다.6) 그러자, 춘풍은 이전의 못된 행실이 되살아나고, 호조돈 2천냥을 빌려와 평양 장사길에 떠나려 한다.7) 만류하는 부인을 폭력으로 저버리고 부인이 모아놓은 돈까지 몽땅 가지고 평양으로 장사하러 간다.8) 춘풍은 평양 기생 추월에게 빠져 가져온 돈을 모두 탕진한다.9) 춘풍이 빈털터리가 되자 추월은 춘풍을 구박하면서 내쫓으려 한다.10) 춘풍은 서울로 돌아갈 면목도 없으므로, 추월에게 애걸하여 그 집 하인으로 전락한다. 11) 한편, 서울에 있는 김씨는 소문을 통해 남편의 소식을 듣는다.12) 김씨는 뒷집 참판이 평양감사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감사댁 대부인을 극진히 모신 끝에 신임을 얻고, 비장으로 평양가기를 청한다.13) 김씨는 드디어 남장을 하고 평양감사의 회계비장으로 평양에 간다.14) 김씨는 평양에 가서 춘풍과 추월을 문초 끝에 추월에게 이자까지 합쳐 5천냥을 받아낸다.15) 김씨는황과 환경에 맞게 그때 그때 대응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진취적인 여성인 동 시에. 조선시대 전통적인 여인상인 현숙하고 마음씨 좋은 여인이기도 하다.하지만 기존연구에서는 춘풍의 아내 김씨가 무능한 춘풍에 의해 부여된 열악한 상황을 타개 하기 위해 택하는 전근대적이고 보수적이며, 비윤리적·비도덕적 방법들을 긍정적 시각으로 바 라보아 작품 곳곳에 나타난 부정적 모습들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뒷부분 작품 의 한계점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1 현실적이고 생활력이 투철한 모습가산을 탕진한 남편 대신 자신의 경제적 활동을 통해 가정을 이끌어 가기로 작정하고 바느 질과 길쌈, 이자놀이 등에 손을 뻗치며 피나는 노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부분에서 잘 드러 난다. 특히 대금업 쪽으로 진출한 모습에서는 김씨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담하고 용감한 경제 활동을 한것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사환이 되어 고생하고 있다는 남편의 소식을 듣고 처음 에는 절망하지만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하는 부분에서도 현실적인 여성임을 볼 수 있다.2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김씨는 평양으로 장사간 남편이 뜻밖에도 기생 추월의 하인으로 전략하고 상거지가 되었다 는 소식을 듣게 되고는 통곡하고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팔자소관으로 돌리는 숙명의식을 버리고 남편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특히 이댁에 부치 어서 가장을 살려내고 추월을 설치하여 보리라 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3 전통적인 여인의 모습추월을 질투하는 대목에서나 춘풍이 평양에서 돌아오자 공손히 맞아 들이는 모습에서 잘 드 러난다. 특히 예전의 나쁜 모습을 버리지 못한 춘풍을 비장으로 변신해 호통을 칠 때, 그때 맞던 매가 아프더냐? 에서 그래도 마음 속에는 지아비를 걱정하고 위로하고 있는 정숙한 여인 임을 알 수 있다.3) 추월추월은 지조와 의리는 없이 재물만을 탐내는 기생으로 우리 고전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악인형에 속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추월은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만큼 각자가 하나의 소설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편의상 단락을 나누어서 살펴보면1 춘풍이 주색잡기로 재산을 모두 탕진하다.2 아내 덕으로 살다가 호조돈을 빌려 평양으로 장사를 떠난다.3 평양에서 추월이와 지내다가 돈을 모두 없애고 사환이 된다.4 춘풍의 처는 감사의 도움으로 비장이 된다.5 춘풍의 처는 춘풍과 추월이를 혼내주고 호조돈과 이자까지 받아낸다.6 춘풍부부는 잘 살게 된다.여기서 1, 2, 3 은 전반부로 4, 5, 6 은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이춘풍이 주인공이고 다른 등장인물로는 아내와 추월이가 등장하는데 아내는 서울에서 춘풍을 지금의 상태로 지내기를 바라는 인물이고, 추월이는 평양에서 춘풍을 타락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춘풍은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가게되고 평양에서 추월의 집에 사환이 되는 것으로 전반부를 마무리하게 된다. 후반부에서는 춘풍의 아내가 주인공이며 등장인물로는 노마님, 감사, 춘풍, 그리고 추월이가 등장한다. 김씨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로는 노마님과 감사이며, 춘풍과 추월은 비장에게 혼나는 역학을 맡고 있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남편을 아내가 구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부부가 잘 살았다는 내용이 후반부이다.전반부에서는 춘풍이 주인공이고 후반부에서는 춘풍의 아내 김씨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춘풍의 처가 한 행동을 춘풍이 맡았다 해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본래는 전반부에서 끝나는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후반부가 첨가된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두가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두가지의 경우가 가능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이유를 여성 독자층의 증가와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지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전반부에서 주인공을 타락시키는 역할을 추월이가 맡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로 감사가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주인공인 김씨를 춘풍으로 바꾸어도 이야기에는 커다란 무리가 생기지 않으며, 다만 춘풍이 감사를 만나게 되는 동기가 문제가 되다.
    인문/어학| 2002.09.29| 13페이지| 1,000원| 조회(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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