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와 한국 전쟁저자: 이상호 출판사: 푸른역사 2012년 판인천 상륙작전으로 한반도의 적화를 막아낸 맥아더 장군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조명한 책이 나왔다. 맥아더의 생애와 그의 사상을 살피는 이 책은 전반부에서 군인 집안이라는 가계와 기독교라는 사상적 배경부터 훑는다. 특히 군인 집안이라는 배경은 1899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했고, 공산주의를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게 했으며, 나아가 세계 평화를 해치는 일종의 전염병으로 인식하게 했다. 맥아더는 이에 대한 유일한 처방으로 기독교 사상의 보급과 강력한 무력응징을 꼽을 정도였다. 맥아더는 자신이 관할하던 중국, 일본, 필리핀, 한국까지도 기독교 국가로 변모시키고자 했을 정도였다.실제로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그 강도를 달리한 채 매우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도 친미에서 반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맥아더다. 이 책은 한편에서는 친미주의자들의 숭배 대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반미주의자들의 비판 대상으로 간주되는 맥아더를 좀더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있다.책은 후반부에서는'한국전쟁과 맥아더'라는 화두에 주목한다. 한국전쟁 발발 후 맥아더사령부가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확전하려고 했을 때 과연 그의 속내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조명한다.그 작업은 세계전쟁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대성공으로 알려진 인천상륙작전이 과연 적에 대한 성공적인 기습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재평가처럼 비쳐진다. 일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이 인민군에게 노출되었으나 그들의 상황 판단 실패로 인해 방어의 기회를 놓친 것으로 의미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이 책은 북한노획문서 등을 통해 그 같은 인천상륙작전의 의미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또 중국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유엔군이 밀리자 핵을 무기로 확전을 구상하게 된 배경을 맥아더사령부 문서철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관련 자료와 문서철을 바탕으로 맥아더와 역사의 순간을 재조명한 이 책은, "맥아더는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한 전형적인 군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어쨌거나 한국현대사의 풍부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책의 핵심기관이자 전쟁의 수행 당사자였던 맥아더와 그 사령부에 관한 연구는 매우 빈약하고 사실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었다. 해방 직후 미국의 한국정책에 관한 연구는 워싱턴 당국과 주한미군정·주한미대사관 사이에 집중되어 있으며 대한(對韓)정책을 집행·감독하던 중개자로서 맥아더와 그 사령부의 역할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상태였다.따라서 이 책은 맥아더와 그 사령부가 가진 한국에 대한 영향력 및 한국전쟁 수행전략을 인식하고 재평가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한국전쟁이 휴전한지 반세기 가까워오지만 맥아더 장군은 한쪽에선 '민족의 구원자'로, 다른 쪽에선 '핵무기를 쓰려했던 전쟁광'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양쪽 주장 모두 상당한 오류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맥아더의 생애, 한국전쟁 시기 그의 활동을 살피면서 맥아더란 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 기독교 신자였던 맥아더는 공산주의를 세계 평화를 해치는 전염병이라고 여겼다. 대응책으로 그는 기독교의 보급과 무력응징을 생각했다. 그래서 맥아더는 제2차대전 전후 자신이 관할하던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을 기독교 국가로 변모시키고자 노력했다.책은 후반부에서 한국전쟁 때 맥아더가 왜 한국에 군사 지원을 했으며, 확전을 바랐는지 짚어본다. 적이 제대로 대비하지 않아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절하 받은 인천상륙작전도 북한노획문서 등을 통해 다시 살폈다맥아더와 한국전쟁…이상호 지음 | 푸른역사 | 458쪽 | 2만5000원더글러스 맥아더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우리 현대사의 중요 인물이다. 6·25전쟁 때는 유엔군 사령관으로 한반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요즘은 인천 자유공원에 세워진 그의 동상의 철거 여부를 둘러싼 한국 사회 진보·보수의 이념대치 전선으로 등장해 죽어서까지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한국 사회 친미보수 진영에 맥아더는 한민족의 은인이다. 한반도를 거의 삼킬 뻔한 '북괴'를 휴전선 이북으로 쫓아낸 영웅은 죽어서도 친미보수의 아이콘으로 빛나고 있다. 물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추앙받을 수 있지만, 맥아더가 한국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친미보수주의자들에겐 안타깝게도 맥아더는 기실 한국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일본의 안위에만 신경썼다.한국인의 시각으로 맥아더와 한국전쟁을 조명한 < 맥아더와 한국전쟁 > 은 맥아더 숭배자들이 애써 외면하려 할 역사적 사실들까지 찾아내 입체적으로 맥아더의 실체를 추적했다. 학술적으로 접근했기에 '제국주의 살인마'란 단편적 규정도 거부한다.한국전쟁 발발 후 패퇴를 거듭한 남한이 극적으로 만든 역전의 계기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다. 적의 후방을 우회해 보급병참선을 공격하는 '섬 건너뛰기 작전(Island Hopping Operation)'은 태평양전쟁에서 맥아더가 즐겨 사용한 전법으로, 인천상륙작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개전 후 몇 개월 동안과 흡사하게, 다만 방향이 북으로 바뀐 상황에서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북진했다. 맥아더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봤기에 한국전 승리를 낙관했으나, 실제 전쟁은 그의 예상과 달리 전개됐다.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가운데)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고 있다.중국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한 1950년 12월30일 맥아더는 중국 보복책을 건의했다. 중국 해안 봉쇄 및 본토 공중폭격, 대만 국민당 군대의 활용 방안 등을 제안했다. 며칠 뒤인 1951년 1월6일 맥아더는 한국군에 추가로 무기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시급한 것은 일본 경찰예비대의 증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즉 자원이 한정돼 있어 일본 경찰예비대와 한국군 모두에 무기 제공이 가능하지 않다면 한국군보다는 일본의 안전보장을 강화하는 데 자원을 사용하는 편이 미국의 전반적 이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이다.그즈음 미 국무부는 한국 관료들을 소개시켜 제주도 등에 망명정부를 수립하는 방안을 합동참모본부와 논의했다. 이때 맥아더는 미군을 최대한 신속하게 한반도에서 철수시키자고 미 정부에 제안했다. 자신의 기본적 임무는 1차적 우선순위로 일본 방위를 맡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군대를 일본으로 철수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물론 맥아더의 희망과 달리 미국의 전쟁정책이 확전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주한미군 철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일본 중시는 장군으로서 일시적 전략적 판단이라기보다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관된 것이었다. 맥아더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전후 배상 문제에 있어 시종일관 일본의 입장을 지지했다. 일본의 전후 배상은 식민지 시기 일제에 의해 고통받은 식민지 국가들엔 자립경제를 이룰 기본 재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맥아더는 일본의 경제부흥을 위해 이러한 전후 배상을 거부했다. 또한 식민지 각국에서 강탈된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도 일본 국내의 반발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애치슨 라인으로 알려진 미국 방위선에는 맥아더의 아시아 전략 구상이 반영됐다. 이 선은 알류샨 열도를 지나 일본 열도를 거쳐 괌으로 이어지는 U자형으로 한국과 대만은 제외됐다. "미국의 서부인 캘리포니아를 보호하듯이 한국을 보호하겠다"는 화려한 수사와 달리 한국은 애초에 안중에 없었던 셈이다. 맥아더의 생각은 미국인 장군으로 자신의 판단력과 국익에 근거한 것이기에 나무랄 이유는 없다. 그는 그저 군인이었고 제국주의 침탈로 인한 식민지 민중의 고통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엘리트 장군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한 전형적인 군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 일각에 존재하는 맥아더 숭모 열기가 매우 희극적인 것만은 분명하다.동시에 맥아더가 한국 내 친미보수 진영으로부터 숭앙받을 토양도 존재한다. 맥아더는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였다. 공산주의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으로 강제적으로 박멸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의 상관인 맥아더의 이런 태도는 안 그래도 공산주의 봉쇄의 일선에 위치한 남한의 미군정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맥아더는 반공주의자이며 동시에 기독교 우월주의에 젖어 있었다. 문제는 개인적인 신앙을 점령지에서 구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어했으며 일본 '천황'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문제로 고민했다. 기독교 신앙의 확산이 아시아를 통합하고 더 나아가 공산주의와 같은 악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불굴의 영적 방어막'을 세우는 것이라는 맥아더의 주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게다가 인종주의적 편견까지 맥아더는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확실히 아니다.대신 맥아더를 단지 한국전쟁 초반을 책임진 군인으로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군인으로서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군인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안치용 | 지속가능사회를위한경제연구소장그동안 한국전쟁에 대해서 궁금함이 있었던 본인에게 ‘맥아더와 한국전쟁’이라는 책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아주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