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게임문화에 대한 예방교육적 접근Ⅰ. 들어가는 말Ⅱ. 본론1. ‘호모루덴스’ - 나는 놈 위에는 노는 놈이 있다.22. 게임문화와 교육4가. 모바일 미디어의 확산으로 더욱 확장된 게임의 영역4나. 스마트폰 이용의 연령별 격차 심화5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장르별 이용 현황53.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의 등장6가. 에듀게임(edugame)7나. 에듀게임(Edugame)의 새로운 영역84. 게임 리터러시 교육 9가. 게임중독을 바라보는 관점9나. 게임 리터러시 교육의 실제 105. 부모세대를 위한 제안13Ⅲ. 결론제안14청소년 게임문화에 대한 예방교육적 접근Ⅰ. 들어가는 말스마트폰과 모바일 게임, 인터넷 게임이 단순한 여가 생활의 일부를 넘어 삶의 필수가 되어버린 이 시대. 그리고 첨단기술 사회의 선두를 달리며 스펀지처럼 신기술을 빨아들이고 열광하는 청소년들의 문화를 부모세대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다.무서워하는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 두려움이다. 놀이문화로서의 게임을 접해보지 못한 기성세대는 게임이 주는 역기능(부정적 측면)과 심각한 폐해에만 집중하기 쉽다. 신기술에 자신이 없는 부모일수록 자신의 자녀가 게임 근처에만 가도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가 이것이다.청소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의 논리만 강요하다 보면 대화는 점점 어려워지고 관계는 단절되게 마련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논리로 게임이나 인터넷 문화를 회피하는 부모는 반향 없는 일방적인 강요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성적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은 입시경쟁과 학업제일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은 이들을 사이버 세상으로 몰아넣고 있다.대한민국은 세계 2위의 온라인 게임 강국이다. 게임을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이만큼 우리나라는 더 재미있고 인기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여 게임을 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람을 '노는 놈'이라 부르고 싶다.‘노는 놈’이라는 말에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노는 놈이라 하면 일은 안 하고 술 마시고, 계집질하고, 놀음에 빠진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 안에서 ‘노는 놈’이란 말은 매우 부정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하지만 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본성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이다.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있다. ‘호모루덴스’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유희를 즐기는 것이 특징이라고 보는 관점으로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는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가가 제창한 개념으로 그는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았다. 자신이 탐구해 온 예술사와 종교사 등 인류 문명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동원하여 인류의 문화를 놀이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사실 놀이는 지구 상의 어떠한 문화보다 오래되었다.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며,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언제나 함께 해왔고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 곧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 동시에, 놀이하는 인간 곧 '호모 루덴스(Homo Rudens)'였던 것이다.인간의 몸과 영혼을 동원해서 사물을 표현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에서 발생한 놀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놀이는 약속된 질서를 요구한다. 엄격한 '게임의 규칙' 아래에서 진행되는 놀이가 사회질서와 사회제도를 만들어내는 시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 삶의 재미를 적극 추구하는 활동인 놀이가 법률, 문학, 예술, 종교, 철학을 탄생시키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호이징가의 주장이다.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일과 놀이가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죄악시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남아 있는 놀이마저도 삶과 유리된 채 상업성으로 점철되고, 본래의 건강용 빈도가 높았다.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장르별 이용 현황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게임 애플리케이션이다.애플리케이션 전문 조사/분석업체인 Distimo가 2011년 12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1년 내려받기 된 Top 10 애플리케이션 중 5개가 게임 애플리케이션이었다.Rovio라는 회사의 ‘Angry Birds’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Facebook과 Twitter 등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애플리케이션도 상위에 랭크 되었다.미국에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이용 점유율이 가장 높은 것은 게임(64%)과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56%)였다. 게임과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외에는 음악(44%)과 엔터테인먼트(34%), 동영상/영화 관련(26%) 애플리케이션 이용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쾌락적 이용 패턴이 업무의 생산성 향상이나 정보 수집 등의 도구적 이용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한국의 경우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게임의 비중이 높았다. 2011년 11월 발표된 Distimo의 조사 결과,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된 유료 애플리케이션의 50%, 무료 애플리케이션의 43%가 게임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무료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순위에서 상위 10위권 중에서 7개가 게임 애플리케이션이었으며, 상위 3개는 모두 게임 애플리케이션이었다.그림 , 2011년 Top 10 애플리케이션, 출처: Distimo(2011. 12. 21).*앱스토어 순서: 왼쪽부터 “Amazon-아이패드-아이폰-블랙베리 앱 월드-안드로이드 마켓-오비 스토어-윈도우 폰7 마켓플레이스”오늘날 게임문화는 놀이와 유희의 개념을 넘어서 종합 예술로 발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술 환경의 발전으로 더욱 향상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이 등장했고 이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기존의 모바일과는 달리 "똑똑한 손전화"라 일컫는 스마트폰은 더 이상 핸드폰이 아닌 "내 손안가 담긴 교육매체 혹은 교육적인 요소가 담긴 오락물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즉 에듀테인먼트는 ‘오락적 요소와 교육적 요소를 갖춘 게임물, 방송물, 영상물, 출판물 등의 콘텐츠 또는 교육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네트워크와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세대를 n 세대라고 부른다. 빠르고 재밌고 시청각적이며 환상적인 감동을 좋아하는 n 세대 교육관을 가진 학생은 체험성·상호작용성·창의성 등의 특징을 가진 교육과 게임에 흥미를 느낀다.) 이러한 n 세대는 학습자가 교육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자신이 스스로 교육의 중심에서 책·경험 등을 통해 학습하는 특징을 가진다.)가. 에듀게임(edugame)‘에듀게임(edugame)’은 에듀테인먼트의 하위개념으로, ‘그 안에 교육적인 내용을 포함하여 이용자가 오락을 즐기며 지식·정보를 습득하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게임 콘텐츠’를 말한다.'에듀게임'은 교육(education)과 게임(game)의 합성어로서 재미를 통해 교육적 효과가 발생하는 게임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에듀게임의 필요조건은 ‘재미’이고 충분조건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재미가 먼저 우선시된 후 그 위에 교육적 요소가 올려져 있는 것이 바로 에듀게임인 것이다.) 결국, 에듀게임은 '게임 내용 속에 교육적 요소가 있는 것'과 '교육적 목적으로 제작된 게임' 두 유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게임은 참여자들에게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은 경험을 시키면서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고 학습효과 증진에 이바지한다[Lackney, 1998]. 게임과정에 몰입하게 되는 이 도전적 과제들은 대부분 학교 교육에서 주로 추구하는 논리 분석적(logico-analytical) 특성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지능을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놀이는 다중지능발달에 도움을 준다(Veenema,1996). 나아가, 놀이를 통해 참여자 또는 학습자들 각각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장하고 자극하게 된다. 비고츠키라는 학께 들어와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 속에서 자신들만의 놀이문화를 만들어 간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게임 공간에서 친구찾기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또한 그들만의 놀이를 만든다. 마치 운동장에서 반대항 피구대회를 하듯이, 온라인게임에서 반대항 레이싱을 즐긴다. ‘킬러’들이 등장하는 게임에서조차도 같은 게임을 즐기는 부부의 ‘가상 결혼식’을 치러주기도 한다. 급하게 혈액을 구하는 광고도 요즘은 온라인 게임 공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이처럼 게임은 단지 오락이나 놀이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 문화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 청소년들의 게임문화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청소년들에게 있어 게임이 여가문화의 하나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청소년들과의 대화를 물꼬를 틀 수도 있으며, 또한 그들의 문화에 참여할 여지가 생겨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모들이 게임문화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온라인게임은 본질적으로 개방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오히려 아이들을 더 열악한 환경의 PC방으로 내몰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온라인 게임 이외의 다양한 여가문화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물론 가족들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문화를 경험하도록 함으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이 병행될 수 있어야한다.이 같은 노력 속에서 청소년들의 게임문화에 대한 우려 점들은 점차 희석화 되고, 새로운 공동체와 놀이문화로서 성장할 것이다. 덧붙여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입장이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나 부모의 타율규제가 통용되는 공간이 아니다. 따라서 청소년 스스로 자율규제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결국, 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은 중독치료와 같은 사후치료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사전예방교육차원에
『한국 신종교 현상의 사회학적 이해』- 저자: 노 길 명한국 신종교 현상의 사회학적 이해.이 글은 한국의 신종교를 가치판단적인 입장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한국의 신종교 현상의 전개과정, 교리와 사상, 참여자의 측면을 통한 종교의 성격 등을 살펴보고 한국의 신종교 운동이 최근 들어 변화하는 모습과 그 원인을 연구한다.한국의 신종교는 대단히 많다.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신종교 수는 500개가 넘는다. 아직도 약 400개의 신종교가 현재 전국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신종교의 연구가 어려운 이유.① 한국 신종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연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② 많은 신종교는 제도화(制度化=Institutionalization)의 초기 수준에 있기 때문에 교리체계나 의례 또는 조직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③ 명칭만으로 신종교인지 아닌지 구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④ 대부분의 신종교가 도피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그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이상의 여러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신종교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 세계에 직접 들어가서 관찰하는 참여관찰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종교는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발생하고 기능하고 변동하는 사회현상의 하나이다. 신종교는 그 자체가 사회운동 내지는 집합행동의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1. 한국 신종교 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국가 이념으로 채택된 유교는 신유학(新儒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불리는 송(宋)의 주희(朱熹)가 완성시킨 성리학(性理學)이었다.조선 왕조 5백년간 한국 문화의 핵(核)으로 작용했던 주도적 가치는 유교주의였다. 조선 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유교를 사회의 구심점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제도와 조직은 유교적 가치와 규범에 의해 그 의미와 방향을 부여받았다.조선 왕조의 지배계급은 성리학적 가치와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 철저한 제장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그 효시는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1824-1864)가 창도한 동학이다. 동학은 민중세계에 전개되어 온 다양한 형태의 종교운동체험이 축적됨으로써 나타난 근대 신종교 운동의 효시였다.동학운동이 지역적 한계성을 넘어 범민중적 규모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삶과 밀착되어 있던 토착신앙이나 주술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교리나 의례에 수렴하고, ‘한울님’이라는 신 관념을 통해 신앙 대상으로서의 초월적 존재를 갈망하던 민중의 종교적 욕구에 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사회질서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전개되리라는 혁세사상(革世思想)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갈망하는 민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혁세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신종교 운동의 또 다른 형태로는 남학(南學) 또는 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로 불리는 정역(正易)을 들 수 있다.한국 신종교 운동사에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1871 - 1909)의 증산교는 동학혁명의 전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된 신종교 운동이었다. 증산교 운동은 동학혁명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에서 이 혁명의 실패 직후에 등장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참여자들 또한 동학교도로서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 이었다.한편 동학운동에서 표출되기 시작한 신종교 운동의 반침략 ? 반외세적 성격은 일제의 침탈이 노골화됨에 따라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가중되는 일제의 억압과 수탈은 항일독립운동과 같은 세속적 차원에서의 사회운동뿐 아니라 종교적 차원에서 구원을 얻으려는 경향을 증대시켰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는 한국 신종교 운동의 발흥기였다고 할 정도로 수 많은 신종교 운동이 전개된 시기였다. 동학 ? 정역 ? 증산교 그리고 단군신앙에 바탕을 둔 신종교 등 이미 개항기에 발생했던 신종교는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종파로 분파 되면서 민중세계에 교세를 넓혀가는 한편, 새로운 신종교 운동도 다수 발생했다. 오늘날 한국 신종교 운동의 계보는 대부분 이 시기 사회적 확산에 유리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증대하는 반면에 그와 다른 입장에 있던 종교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개신교나 천주교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사회적 영향력은 확대되는 한편, 민족자주통일노선을 지향하거나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나타내던 천도교와 대종교를 비롯한 신종교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유교나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도 종교적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이승만 정권의 등장과 6 ? 25전쟁 체험 그리고 전후 미국으로부터의 막대한 구호물자 제공으로 인해 친미 반공주의가 사회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화됨에 따라 더욱 고착화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종교시장에서의 그리스도교의 독점상황은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한편 이러한 정치적 ? 종교적 상황은 신종교의 발생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서구문화 수용과 전달에 주력하는 기성교회의 활동은 전통적 사고나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민족분단과 6 ? 25전쟁의 체험은 그리스도교 일각에서 ‘고통의 신정론(神正論=the theodicy of suffering)'으로 체계화 되면서 일본 강점기부터 전개되던 반(反)선교사 운동, 반(反)교권 운동, 신학적 이단운동, 신비주의 운동, 민족주의 운동 등을 신종교 운동으로 현재화(現在化)시키도록 촉진했다. 1950년대에 등장한 통일교 ? 전도관 ? 용문산 ? 기도원 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등장한 신종교라 할 수 있다. 이와같은 종파운동은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나타난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열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파운동의 발생은 이승만 정권의 종교전략으로 인해 발생했다.1960년대에 시작된 정부 주도하의 경제개발정책은 신종교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보편적 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종교시장의 활성화를 촉진했다. 사회적 ? 종교적 상황 변화는 기성종교의 양적 그들의 욕구가 동일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2. 한국 신종교의 공통 교리와 사상한국 신종교 운동의 공통 교리나 사상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개벽사상(開闢思想)과 민족주체사상이다.현세질서을 개편코자 하는 한국 신종교의 열망은 흔히 개벽사상 또는 종말사상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내세에서의 구원보다는 오히려 현세에서의 구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내세에 대한 교리가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대단히 미약하다. 이들의 관심은 현세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심이 개벽사상이나 종말사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서구 종교와는 달이 한국 신종교 교리나 사상은 일원론적이다. 서구인들의 사유형식은 서로 모순 ? 대립되는 요소가 극복 과정을 통해 전체의 통일로 이르는 논리구조, 다시 말해 변증법적인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사유형식은 대립과 투쟁보다는 조화와 융합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의 신종교는 이러한 한국인들의 사유형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역사관만큼은 이분법적이다. 그들은 우주와 세상의 역사를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시대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 설명방식은 전통종교사상과 민간신앙을 강조하는 비그리스도계 신종교와 그리스도계 신종교간에 약간의 차이를 나타낸다.비그리스도계 신종교는 역사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 시기로 구분하면서, 그 방향은 선천으로부터 후천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현대는 선천으로부터 후천으로 넘어가는 ‘선후천교역기(先後天交易基)’에 해당된다.개벽사상과 종말사상에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려온 민중의 한(恨)과 새로운 세계의 도래에 대한 원망(願望)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 속에는 강한 민중사상 내지는 인존사상(人尊思想)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겠다. 서구 종교에서는 신 중심적인 사상의 토대 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신종교, 특히 비그리스도계시 말해 신종교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풍조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상처받은 것을 위로받기 위해 기성종교를 찾았지만, 중산층화된 기성종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또한 기성종교로부터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중의 실패자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대해서나 기성종교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들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신종교의 주장이나 가르침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법을 찾고 있으며,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간의 공동체적 분위기를 통해 급속한 산업화 ? 도시화 과정에서 상실한 마을이나 친척과 같은 잃어버린 1차 집단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신종교 운동은 한국 사회가 겪었던 급격한 사회변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전개되어 왔다. 조선 후기의 해체상황, 외세 열강의 침략과 조선 왕조의 멸망, 일제의 강점과 식민체험, 나라의 분단과 6 ? 25전쟁,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등 한국 사회가 겪었던 급격한 사회변동은 그러한 변동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산출했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경험이나 고통을 해석하고 설명할 새로운 준거틀과 함께 삶의 의미와 방법을 되찾을 가치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이와같은 발생사적 특성으로 인해 한국의 신종교 운동의 교리나 사상 속에는 인권 ? 사회정의 ? 평화 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근면 ? 금욕 ? 인간애 ? 해원상생(解寃相生) 등과 같은 윤리규범이 분명하게 강조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신종교 운동은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새로운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4. 한국 신종교 운동의 새로운 양상예전의 신종교 운동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민중을 중심으로 전개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하는 신종교 운동에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둘째로 과거의 신종교 운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윤리 규범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했는데, 최근의 신종교 운동은 이와 달리 개인의 정신적 ? 육체적 건강과 평화를 약속하는 비술(秘術)이나 영술(靈術)을 강조하면서 전개되이다.
“서양 미술사 안에서 나타나는 예수탄생(Nativity)”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예수탄생의 신학과 사상의 변화.서양미술사 안에서 종교화는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제작되어왔다. 특히 제단화의 경우는 교리를 가르치는 목적, 다시말해 신학적 메시지를 일반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이었으며, 이와 함께 아름다움의 추구(미(美)를 통한 하느님 찬양)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서양미술사 소감문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예수탄생(Nativity of Jesus)’이라는 주제는 특히 교리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이교도들의 축제일(태양절)인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한 교회의 의도부터 시작해서, ‘육화강생’(Incarnation)의 신비를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위한 (교회의 가르침 아래 기울여진) 종교화가들의 치열한 노력은 각각의 시대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창조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가장 소외받고 낮은 이들로부터 존귀한 신분의 왕들까지 인간이 되어오신 신에게 경배를 하고 있다. 이 육화강생의 신비를 직접 체험하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역할, 신학적 · 도상학적 가르침은 교회가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었으며 초자연적 계시로부터 알려진 신비, 나아가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신비였다. 신은 손수 미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기까지 이렇게나 ‘인간을 사랑한 것’이다. 대중에게 가르쳐지는 이 간단한 교리가 적립되기까지 교회는 숱한 우여곡절과 신학적 논란의 역사를 겪었다. 그 수많은 우여곡절의 굽이굽이 마다 담긴 다양한 사상들 또한 도상에 반영되어 가톨릭교회의 일부가 되었으며 때로는 이미지 자체가 교회의 가르침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다시말해 이미지는 그 자체로도 실재하는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실재가 된다. 바로크 미술에서 표현하는 현실 공간으로의 확장과 성과 속의 만남이라는 형이상학적이고 변증법적인 철학마저 수렴하는 미술은 이미지의 효용과 역할이 그 만큼이나 강하다는 증명인 것이다.종교개혁 이후 전체 서양미술 안에서 교회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화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우리가 살펴보는 바와 같이 바로크 대가들의 작품에서부터 대중화되는 표현들을 나타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실제로 바로크 이후부터는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등 이전시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장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는 더 이상 예술이 종교의 도구가 아닌, 예술 자체로서 자립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17세기로부터 이미지가 가지는 기능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스도교의 구원’과 ‘불교의 열반’의 관계에 대한 사색들어가는 말솔직히 “구원”이 나에겐 막연하기만 하다.하지만 문제는 필자가 가톨릭 수도자로 살아간다는데 있다.수도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 넘고 어느새 종신서원이란 걸 하고난 ‘수사님’이 이런 말을 하면 창피한 얘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좀 솔직해 지고 싶다. 물론 오랜 시간을 신학생으로 살아온 사람이 구원에 대한 강의라도 못하겠는가마는......! ‘깨달음’이나 ‘행복’, ‘존재에 대한 물음’은 기꺼운 반면, “구원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요?”란 질문은 소홀히 여기며 살아온게 사실이다.얼마전 가톨릭 대학에서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개신교 신자들의 60%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라고 답했고, ‘구원을 얻기 위해’라고 대답한 신자는 약 20%정도였다”라고 전한다. 반면 가톨릭교회의 경우는 ‘평화 : 구원’의 비율이 “90% : 5%”였다고 한다. 통계의 정확도나 신뢰도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조사를 한 이유부터가 오늘의 신자들은 ‘구원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평화라는 현실적 위안에만 만족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이라고 본다.가톨릭 신자들이 구원문제를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개신교인들의 모습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기도 하다. 왠지 ‘종말’이나 ‘구원’이라는 주제를 논하는 것은 고급문화의 자기네 교리에 비하면 천박한 것으로 느끼는 모양이다.논의 자체가 자신들의 종교심이 격하시킨다고 보는 분위기 속에서 일반 가톨릭 신자들의 구원론은 그 실체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개신교 신자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맹신적인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구호 덕분에 나를 비롯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거부감 비슷한게 자리 잡고 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상대적인 고난의 현실 안에서 꿈꾸는 절대적 미래상대적 세계관 안에서 흔들리는 실존, 죽음과 시공간의 위협 앞에서 늘 불안한 인간은 이 모든 제한을 넘어서는 절대적 세계(존재론적 장, 지평)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사유는 매우 현실적인 역사 안에서 시작된다.인류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대상 앞에서 ‘구원’이나 ‘열반’의 개념을 요청해왔다. 만일 인간이 고통이나 질병,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을 자신의 힘만으로 모두 극복할 수 있었다면 구원의 필요성이나 종교적 의미의 구원론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인간은 여러 재난을 혼자의 힘이나 협력한 문화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엘리아데와 같은 학자들은 종교적 인간이 이해하는 재난이 “자연의 부조화에서, 혹은 성(聖)으로부터 속(俗)이 분리되는 데서 온다”고 하면서 “고대의 종교인들은 완전성으로부터의 분열이 모든 재난의 원인이라고 믿었다”고 본다.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위기(crisis)라는 말의 그리스어 크리시스(κρισι?)가 분열(to separate)을 뜻하고 라틴어 체르네레(cernere)도 역시 분열을 뜻하는 데서 많은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구원이란 분리된 고통의 상태에서 이전의 성스러운 완전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구원이라는 ‘동사’와 열반이라는 ‘목적어’의 차이언어적 분석으로만 보더라도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자력과 타력의 상호협력적 개념으로 이해된다.“구원되다”, “구원 받는다”, “구원하다”라는 문장에서 보는 것처럼, 구원은 스스로 획득하는 능동태인 동시에 어떤 초월적 존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수동태이기도 하다. 이렇게 구원은 인간을 하나의 존재양상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때는 주도하는 존재나 이끌리는 존재자 모두에게 변화를 가능케하는 힘이 요구된다. 이것이 존재자에게 요구되는 믿음이고 초월적 존재가 행사하는 은총이다.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을 ‘타력구원’이라는 단순한 설명으로 대신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상보적 자타력 구원’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의 구원의지가 절대적이라고는 하나, 받아들이는 인간이 끝까지 거부하면 성사되기 힘든게 구원이란 거다. 쉽게말해 지옥이라는 개념이 “자신의 오만과 죄 안에 갇혀 마지막까지 신을 거부하는 고통스런 상태”라고 볼 때 거기에서는 완전한 타력구원이 거부되는 것이다.
한국 신흥종교의 도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대책신흥종교운동의 도전 Report- 가톨릭 청소년들과 한국 가톨릭교회를 위한 대처 방안 중심-필자는 가톨릭 교육수도회인 살레시오회의 수사이다. 본인이 사목일선에서 만나게 되는 주대상자들은 젊은이들이고 신흥종교의 주된 선교대상도 젊은이들인 경우가 많은 만큼 청소년들을 위한 대책을 우선적으로 마련하고자 한다.이러한 시도는 신흥종교의 도전에 대한 예방교육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질병이 치료보다는 예방이 우선인 것처럼, 우리의 신자들을 신흥종교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예방교육’을 통해 젊을 때부터 건강한 신앙을 가지도록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미 신흥종교에 빠졌던 이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회심시키고 치료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긴 시간을 요구한다. 신흥종교를 만나기 전에 그들의 위험과 잘못된 점을 확실히 알도록 교육할 때 우리 신자들은 흔들림 없는 신앙인의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1. 한국 가톨릭교회를 위한 대처방안 제안첫째, 올바른 토착화로 한민족의 정서에 공감하자.우선 두 가지 차원의 토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한민족의 정서와 문화에 대한 토착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토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글의 주 대상자가 청소년인 만큼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교육과 토착화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한국의 신흥 종교들은 민족사 속에서 민족이 받아 온 수난과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안을 제시한다. 이들의 교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선민사상(選民思想)과 해원사상(解寃思想)은 이러한 노력의 표현이기도 하다.한국 교회가 민족사 속에 살아 숨 쉬는 민족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이 민족의 현실과 만나야 한다. ‘복음의 토착화’는 인간의 총체적인 삶과 그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 전체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일치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위배되는 것을 바로잡고, 종말론적 약속의 실현에 필요한 가치들을 역사와 현실의 상황에서 찾아내어 보완하고 구현시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한국인의 심성에 맞도록 하는 ‘전례의 토착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사목적 제안: 현재 살레시오 수도회는 젊은이들을 위한 전례토착화 차원에서 “기쁨의 미사 빅 매스”(찬양미사)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청소년들이 가톨릭 전례 안에서도 큰 기쁨과 매력을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본당의 청소년 미사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예전에 많은 호응을 얻었던 국악미사의 활성화도 매우 좋은 토착화의 예가된다. 예수고난회의 강수근 신부와 같은 의식 있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활동들이 전개되길 기대해 보며 이러한 시도에 청소년 지도자들도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가요계에서는 퓨전 국악 밴드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안에서 우리 것을 바탕으로 한 전례와 신심운동이 전개되길 기대해 본다.둘째, 가난한 민중과 함께 사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신흥 종교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민중의 종교로 등장한다. 신흥 종교 신자들 대부분은 사회에서 갖는 소외와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기성 종교를 찾았으나, 거기에서 치유를 받기는커녕 또 한 번의 소외와 상처를 받아 결국 신흥 종교로 개종한 자들이다.중산층이 중심이 된 종교에서는 모든 가르침이나 활동이 중산층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하류 계층은 적응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또 한 번의 소외와 상처를 받기 쉬운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교회가 억눌리고 상처받은 이웃을 찾아 그들의 고통과 한(恨)을 함께 나누는 것뿐이다. 이 점에서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가 전개하고 있는 ‘한 마음 한 몸 운동’은 복음의 실천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비만증과 동맥경화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계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목적 제안: 가난한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 물질적 가난도 문제지만 마음의 가난, 정신적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신흥종교의 유혹에 약하기 마련이다. 아울러 영적 공허함을 가지는 청년들이 스스로 신흥종교를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셋째, 공동체 의식의 강화.신흥 종교에는 창시자와 추종자간의 결속뿐만 아니라, 추종자들 간에도 강한 공동체 의식이 존재한다. 신흥 종교가 소외 계층에게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들의 교리보다도 이러한 집단 구조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한국 교회는 점차 거대화되고 있다. 툭히 대도시의 교회들은 수천 명 내지는 수만 명 이상의 신자들을 가진 거대한 집단으로 변보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건물은 맘모스화되고 조직은 관료제화되기 쉽다. 이러한 물리적 조직적 맘모스화는 소외 계층에게 교회를 이질적인 존재로 체험케 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최근 한국 교회 일각에서 보여지는 엄격한 권위주의, 기초 공동체의 부재, 형식적인 반 모임, 유사한 계층들만의 단체 구성, 엘리트 중심의 사목위원회와 사도직협의회 구성 등은 크게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목적 제안: 일반 신자들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우리 교회에서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중에 하나는 인간적인 유대감 형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가족정신’을 강조하고 실제로 더 자주 만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본당을 가정과 같은 분위기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단순히 외적인 변화가 아닌 사목자들의 마음과 신자들의 정(情)이 필요한 것이다.넷째, 신자 재교육의 강화.(청소년을 위한 성경교실 시급)신흥종교로 개종하는 신자들의 대부분은 성서와 교리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교우들이 많다. 현재 한국교회는 입교 예비자들에 대한 교육은 비교적 활발하면서도, 입교 이후의 신자 재교육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소에 성서를 읽는 신자들의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의 강화, 성서 교육의 강화, 1신자 1단체 가입운동의 가속화, 대자 대녀에 대한 대부 대모의 역할 강화 등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무엇보다도 신흥종교의 위협에 대처해 나가려면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성서에 관한 지식과 함께 성서를 가까이 하면서 필요한 구절들을 찾고 실제 생활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은 신흥종교의 침투를 막는 매우 효과적이고 견고한 처방이 될 수 있다.아울러 오랜 종교체험과 역사체험을 바탕으로 신학과 교리적 지식을 키워나가야 한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무지와 오류에서 벗어날수록 그리스도교계 신흥종교로 이탈하는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 사목적 제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성경교실’의 마련은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신앙인의 여정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성경 말씀에 맛들이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뿌리를 굳건히 뻗어 내리기 힘들기 마련이다. 오늘날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경을 즐겨 읽는 청소년을 찾을 수 있을까?? “부모들이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배우지 못한다”라는 회의적인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면 첫영성체를 시작하는 학령기의 아이들부터 성경과 친해지게 만드는 사목이 절실히 요구된다.다섯째, 신흥종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상담기구가 마련.한국 개신교에는 이미 이러한 기구들이 조직되어 있으며, 신흥 종교에 관한 신자 재교육 사업도 활발하다. 또한 교파간의 난립과 경쟁에도 불구하고, 신흥 종교의 도전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다.현재 가톨릭을 떠나 신흥 종교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 곳을 나와 고민하는 방황자들도 수없이 많다. 그들은 신흥종교에 입교한 후 자신이 잘 아는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쉽게 가톨릭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또한 신흥 종교로 인한 가정 불화, 가족 해체, 학업과 직장포기 등의 사례들도 대단히 많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신흥종교 연구기관과 상담기관의 설립 그리고 신자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