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 위기 후 세계적인 투기 자본의 상징인 조지 소로스가 김대중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국빈급 대접을 받고 돌아갔다. 하지만 국내 노동의 최하층에서 차별을 받아오던 불법 체류 노동자들은 2002년 고용허가제의 실시로 우리나라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외환위기의 사태로 몰고 간 국제 투기 자본의 상징인 조지 소로스와 우리 경제의 하부구조를 맡아 오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강제 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라는 큰 흐름의 상반된 결과물이다. 이렇듯 세계화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자본과 무역, 기술 분야의 유통의 국가간 장벽이 낮아지고 확산되고 있는 반면 노동(특히 저 발개발국의 비숙련공)의 유입은 민족국가들의 엄격한 규제와 관리로 인해 그 흐름이 왜곡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세계화의 현상은 유연생산화라는 미시적 기반과 변동환율제라는 거시적 배경과 긴밀하게 맞물려있다. 경제 통합의 심화만이 아닌 포드주의에서 유연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축적체계의 변화에 기반하여 '시간과 공간의 압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변동환율제로의 전환과 본격적인 자유화, 탈 규제화 정책으로 인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정보화로 인한 자본의 이동속도 증가는 다국적 기업과 국가에 있어 작업조직을 재편하고 노동과정에서 핵심노동자와 주변노동자로 이원화하여 관리하게 하는 추세를 증가시켰다. 자본의 세계화와 연관된 노동의 세계화 추세는 1억 7500만 명의 국외 이주노동자를 양산하였고 이주 노동자 송출국의 높은 실업률과 저임금, 정치적 탄압(push factor)은 이를 가속화 시켰으며 유입국의 인력난과 폭넓은 취업기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삶의 질(pull factor)은 조직화된 브로커를 통해서라도 국외 노동자로 나가겠다는 왜곡된 노동시장을 탄생시켰다.세계화된 노동시장에서 이주 노동자를 바라볼 때는 고급 기술 인력과 저임금 비숙련공을 나누어 논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노동의 세계화에서 발생되는 논의와 문제는 저개발국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국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가 논의가 이주 노동자의 여성화 문제이다. 여성으로 또 이주 노동자로 그들은 성과 계급, 계층 그리고 국적에 따라 삼중으로 차별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기혼 여성이 경제적 이유로 이주노동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가정의 파편화와 이주 노동자와 가족 이주 시 발생하는 취업국의 교육적, 의료적인 복지혜택의 문제 등이 ILO와 국제인권 협회의 논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주 노동자 문제로 악명 높은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주 노동자 자녀의 경우 한국어에 대한 특별한 교육기관이 없을뿐더러 입학 시에도 초중등학교까지만 졸업이 아닌 청강이 가능하고 고등학교는 유학비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실정이다.또한 노동 수입국들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법적·제도적인 미흡으로 인해 정부 정책이 이주 노동자의 인권과 복지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이중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시급한 해결 과제로 논의 되고 있다. 독일의 고용허가제의 경우 이주 노동자에 대한 노동 3권을 부여 고용주의 부당노동행위를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있으며 아일랜드, 덴마크, 네덜란드 등 북유럽의 경우 장기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선거권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도 체류허가와 취업허가 등 이원적 허가체제로 국내 노동시장을 보호 하고 있으며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이 흘러들어 가는 개발도상국의 경우에 외국인 여성 노동자와 자국 남성 간 결혼을 금지(싱가포르, 말레이시아)하거나 강제 임신 테스트(말레이시아)를 하는 등 비 숙련공 세계노동 시장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세 번째로 불평등한 무역 조약에 희생된 가난한 나라들의 국내 경제 정책은 자국민의 해외 이주를 자극하며 이로 인한 노동력 상실이 성장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선진국에 대한 기술의존을 심화시키며 산업의 자생적 발전을 왜곡시켜 빈곤이 악순환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다시 저개발국 노동자를 끊임없이 해외 인력 시장으로 송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고용을 목표로 하는 이주정책과 구조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지 않기 위해 노동의 세계화와 함께 개별 국가간 정치적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며 이러한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필요와 강제성을 띄고 시행되어야 한다.이외 노동의 세계화와 관련하여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의료적 지원에 관한 논의와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이라는 ILO의 국제 조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혹한 노동과 차별적 임금 문제들이 노동의 세계화와 관련된 끊임없는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노동의 세계화와 관련된 미흡한 논의를 노동 송출국에서 수입국으로 급속하게 변화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먼저 우리나라는 고급인력 유치문제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가장 공격적으로 외국인 전문가를 채용하는 나라로 자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약 5분의 1이 의사, 교사,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이고 프랑스의 경우도 97년 합법화 과정과 외국인 학생 고도의 전문기술자들의 입국을 촉진하는 조치를 단행해 IT나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문호를 대폭 개방하였다. 이처럼 고급 인력의 유치노력에 대해 OECD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급인력은 해외로 급속히 유출되는 반면, 외국의 고급 인력은 유입되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2년 발표된 두뇌유출 지수에서 우리나라(4.5)는 미국(8.9), 일본(6.0)을 비롯해서 태국(5.4)보다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두뇌유출지수(1∼10)는 높을수록 국내에 잔존하는 고급인력이 많음을 의미) 이러한 고급인력 유출의 가장 큰 원인은 교육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IMD의 고등교육 이수 인구비중에 대한 대학교육의 효율성 평가에서 고등교육 이수자의 비율(세계 6위)에 비해 대학교육의 효율성(세계 41위)측면에서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이 전문적인 연구에 대한 지원의 부재로 장기적인 교육의 비효율성을 증가시켜 고급인력의 유출*입의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다. 덧붙여보 부족을 꼽았다. 많은 해외 고급인력들이 한국을 노사관계가 어지러운 시위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인 국가 홍보를 통해 한국이 지식에 기반을 둔 사회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급인력의 국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해외로 빠져나간 고급 인력에 관한 체계적 관리 프로그램이 가장 절실하다. 일례로 미국은 이민 과학*기술자의 동향 및 수준을 조사해 연방 정부의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기술 인력들의 숫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급 인력들의 이동은 비숙련공들의 이동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저급 노동자와는 차등화 되는 정책과(비자의 기간과 체류 자격 외 활동의 자유 등) 인센티브지급으로 해외 고급 인력을 적극 유치해 산업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둘째로는 비숙련 이주 노동자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들을 한국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언어와 관련된 문제이다. 한국어와 한국물정에 서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한 작업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가장 절실하다. 또한 이들에게 일정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자체적인 공급으로 충당할 수 없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력이 활용 가능하게 되어 산업의 다양화 측면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교육기관이 국가 차원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가족노동 형태의 정착이 늘어나면서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관해서도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많은 국가들이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자녀의 교육은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는데 비해 현재의 우리나라 법제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학력을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한 형편이다. 이는 한번 저급노동으로 들어 온 이주노동자는 자녀까지 대를 이에 그 신분에 종속 되는 연쇄작용을 유리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셋째로는 노동 송출국과 유입국간의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협약과 이주 노동자들이 자국내 안정적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환 프로그램의 도입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고용 허가제를 도입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여하는 등 형식적으로는 개선된 지원책을 마련하고는 있으나 정작 국가간 국제적 차원에서의 협약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인력 송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최대 인력 송출국 중 하나인 필리핀도 자국 인력에 대한 수출을 용이하게 하는 정책에 관해서만 주로 신경을 쏟을 뿐 자국민의 노동권의 보호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노동권의 보호에 대한 국가간의 성공적인 협약의 선례는 독일과 폴란드의 국가간 노조 자동가입제도가 있다. 이는 두 나라 중 한 쪽 노조에만 가입하면 다른 한쪽의 노조도 자동으로 가입되어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 노조 조합원들도 독일의 조합원들과 똑같은 노동권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국가간 협약이 좀 더 광범위하게 노동 송출국과 유입국간에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또한 귀환 프로그램도 현행 민간단체 수준에서 벗어나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가 되어야 한다. 이주 노동자들은 외국에서의 생활도 힘들지만 고국에 돌아와 다시 정착하는 일은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자국 노동자에 대한 귀환 프로그램(방글라데시의 경우 와베(WARBE)가 있고 약 5000명의 자국 이주노동자가 회원.)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만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 고국에 다시 정착하지 못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국제적 떠돌이가 되는 현실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귀환 프로그램 뿐 아니라 노동 송출국과 유입국 모두에서 정부의 공식적인 귀환정책이 필요하다. 송출국은 출국전 교육을 포함해 이주노동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저축프로그램, 대안투자(MSAI) 프로그램을 시행해야하며 수입국에서는 관련 프로것이다.
대중 적인 스타 벅스와 던킨 도너츠의 최근 가격 상승이 설탕의 가격 상승에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 한다. 열대 지방이나 건조지역, 커피나 설탕 등 환금작물이 주로 생산되는 개도국 지역들이 대부분 기후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이다.한 지역의 특산물에 불과했던 설탕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카페라테 지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설탕은 설탕 산업을 주도하는 세력에 따라 재배지역이 변화했는데, 사탕수수는 뉴기니에서 최초로 재배되고, 인도에서 최초로 가공되고, 콜럼버스에 의해서 최초로 신대륙으로 운반되었다.고대 뉴기니에서 처음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설탕은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으로 확산되었다. 인도에서 아랍인들에게 전해진 후 스페인 남부 연안, 시칠리아등 지중해 저지대에 사탕수수를 경작하고 설탕을 제조하는 기술을 보급하였다. 처음으로 설탕의 대규모 제조를 이룬 아랍인들이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면서 설탕 제조술이 지중해 지역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유럽인들에게 설탕이 알려지게 되었다. 11~13세기에는 유럽의 십자군 원정으로 세워진 라틴제국에서 설탕재배 기술을 관리함으로써 유럽인들은 설탕의 생산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설탕이 대량으로 '생산' 가능하다는 사실이 설탕에 대한 욕구와 수요를 불러와 유럽 각국은 앞 다투어 설탕의 재배지를 물색하게 되었다.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신대륙인 마데이라, 카나리아 제도, 상투메등의 대서양 제도를 발견하고 흑인노예들을 이용, 설탕 플랜테이션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유럽은 유례없는 호황으로 설탕에 대한 수요가 늘어 이를 위해 새로운 사탕수수 재배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새로운 설탕 중심지로 떠오른 아메리카는 설탕이 처음으로 경제적 의미를 가질정도로 많이 재배된 지역이다. 그리하여 16세기 내내 세계의 설탕생산은 포르투갈의 브라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17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이 '서방 계획'의 일환으로 자메이카를 침략하여 카리브해 섬들에 '설탕 혁명'이라 부를 정도의 거대한 플랜테이션이 만들었다. 집약적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사탕수수 재배가 임금이 비싼 백인 노동자들로는 이익이 남지 않자, 흑인 노예들로 대체하였다. 유럽의 설탕 가격은 계속 올라 노예와 설탕을 운송하는 비용을 보충할 수 있었다. 영국은 총, 화약 등을 리버풀에서 서 아프리카로, 총과 바꾼 흑인 노예를 서인도제도로 실어 날랐다. 이러한 삼각무역은 막대한 이윤을남기면 19세기까지 계속되어 영국의 자본축적에 큰 영향을 주게된다.이상 설탕 세계화의 거시적 측면을 살펴보았다. 부유층의 사치품이였던 설탕을 대중과 세계화라는 측면에서면화와 더불어 영국 제국주의의 상징인 설탕이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지는 2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사실 필요의 차원에서 판단하자면 고기보다 설탕이 더 사치스러운 음식일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닌 설탕이 영국을 놓고 보면 1650년 ‘상업 혁명’ 이후 ‘일반화’가 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이미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소비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영국 설탕 소비의 급증 원인과 관련해 거대한 설탕 공급원이 영국과 유럽 열강에 의해 개척되고 있었고 대중들에게 이전에는 소비해 보지 못했던 설탕과 관련된 기호품이 점점 더 많이 공급되고 있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설탕의 세계화에 기여한 것을 비단 수요와 공급의 측면으로만 파악해서는 안될 것이다.가장 먼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설탕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변화이다. 17세기 '상업 혁명'으로 촉발된 가격 혁명 이 일상 속에 설탕을 대량으로 공급하였다. 이러한 설탕의 공급으로 하층민들 사이에서도 설탕이 사치품에서 생필품으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 설탕은 그것을 소비하는 계층을 차별화 시켜주는 힘을 조금씩 상실해 가고 있었다. 17세기 초반 불필요한 사치, 의생활과 식생활을 통제해오던 사치 금지법의 폐지 후 설탕이 일반화되었다는 점, 19세기 노예 해방에 따른 설탕 소비의 비난여론이 감소했다는 것은 일견 설탕의 소비의 증가와 어느 정도의 관계성이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설탕의 보급은 사회 계급 의식의 붕괴와 소비 패턴의 대중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경제학적 환경 뿐아니라 설탕과 그 부산물들은 음식을 마련하는 시간을 절약해 주었다는 점에서 하층 공장 노동자계급에게 각별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설탕에 절인 음식은 보관성이 용이하였고 또한 적은 양의 설탕이 공복감을 해소 시켜 준다는 사실은 하층 노동 계층의 식사 대용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17세기 당시 영국이 곡물 수출국 이였음에도 불국하고 여전히 노동자 계급 전체수입이 낮았다는 것은 충분한 영향은 섭취하고 있지 못했다는 점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적은 양의 빵과 질낮은 설탕을 넣은 홍차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찌든 노동자들에게 간편한 일용식으로 훌륭한 에너지 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폭음을 하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설탕을 탄 홍차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칼로리 제공처로 유용하였다.하지만 설탕이 세계화 된 저변에는 간과해서는 안될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설탕의 중독성이다. 차와 함께 마시는 식습관의 발달과 초코렛, 커피와 같은 기호 식품의 대중화는 설탕 소비를 폭증 시켰고 설탕에 대한 중독성을 가중 시켰다. 오늘날 설탕 중독의 양상을 보더라도 기호식품의 수가 많은 선진국일수록 1인당 설탕 소비가 저개발국에 비해 10배이상 높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현상이다. 19세기 당시 덴마크의 당뇨병 환자수의 증가와 설탕 소비의 증가는 아주 연관성 깊은 자료로 판단된다. 중독성이 있다는 것은 그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자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생산 요소이다. 설탕 생산품들은 가격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하층 계급에 까지 수요가 창출 되게 된다. 이런 수요는 일단 생겨나면 그 뒤부터는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소비량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 세기 내내 급속도로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담배이다. 더불어 습관적인 차의 섭취와 무역의 확대는 곧바로 설탕의 중독과 연결 되었다. 당시 차, 초코렛 등 기호품의 소비가 3배 증가하면 설탕의 소비는 10배 이상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점차 첨가 되기 시작하는 음식은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설탕에 중독되어 갔다. 많은 이들이 설탕 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간과하고 있을 때 세계는 점점 설탕에 녹아 들고 있는 것이다.식생활에서 설탕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설탕의 유해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일명 슈거 블루스(Sugar Blues)로 불리는 설탕으로 인해 발생하는 육체 및 정신의 복합적인 질환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며 이로 인해 몇몇 설탕 대체식품들이 선보였다. 설탕의 유해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식품들이 지닌 높은 경제적 부가 가치 때문에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연구과제가 되었다. 설탕을 대체 할 대체식품이 되려면, 우선 높은 당도를 지니면서도 설탕보다 인체에 덜 해로워야 한다. 대체식품의 하나로 과거에는 사카린(saccharine)과 같은 인공 감미료가 개발되기도 하였으나, 여러 동물 실험에서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와 설탕을 대체할 식품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좀 더 최근에 등장한 아스파르테임(aspartame)은 현재 음료수에 설탕 대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 역시 신경계의 이상을 일으킨다는 유해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들 또한 설탕의 대체식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입맛에 익숙해져 있는 설탕을 사용하되, 그 양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설탕을 완벽하게 대체 할 수 있는 식품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세계화는 과거 국지적으로 일어나던 국제화의 전 세계적인 확산을 의미한다. 즉 국제화의 확장이라는 의미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통합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단일체를 구성해야 함을 기본으로 한다. 한 대륙내의 비슷한 환경을 가진 민족 국가들조차 이해관계, 문화적 환경 등으로 인해 통합이 어려운 현재에 통합에 대한 추구는 위험한 사고이다.(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배경과 역사적 의미? 조원희(국민대 교수?경제학)의 글 인용)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은 대세이다. 왜 대부분의 국가들은 세계화를 진보의 바이블처럼 따르는 것일까?세계화 지지론자들은 세계는 시장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끝없이 진보한다는 발전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현재의 세계화는 이 속도를 증가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최근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극빈층이 1981년 15억 명에서 2001년에는 11억 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극빈층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년 사이에 40%에서 21%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이 중 동아시아는 빠른 속도로 빈곤에서 벗어났다. 세계화 지지론자들은 동아시아의 괄목 할만한 성장을 궁극적으로 세계화의 추세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절대 빈곤층의 감소를 세계화의 주된 순기능으로 본다. 또한 민주화와 인권 확산의 가속화에도 기여했다. 박정희 정권의 붕괴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세계화를 추구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이 독재정권 붕괴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화와 정보의 공유와 개방은 필수 불가결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폐쇄 경제를 고집했던 김정일 정권이 아직도 견고히 독제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자유무역을 위시한 세계화의 바람직한 진행은 비교우위에 따른 자유무역과 교환을 통한 이익. 이를 통해 부의 분배이다. 이것이 이상적인 세계화이다. 이렇게만 된다면야 누가 세계화를 반대하겠느냐마는 이익추구에 대한 동기를 무시해 처참하게 실패한 사회주의만큼이나 인간의 속성을 무시한 허상이다. 부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누리는 행복이다. 내가 10만큼 더 번다면 누군가는 그만큼을 덜 벌어야 부라는 상대적인 행복이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라간도 마찬가지이다. 자국이 부강하기 위해서는 타국이 그만큼 가난해야 한다. 힘이 있다면 힘을 동원해서라고 이를 지키고자 한다. 절대로 다같이 잘 살수 없는 것. 아니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 이러한 부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지금의 세계화이다.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현실을 보자. 94년 NAFTA의 출범으로 자유무역이 자국을 살릴 거라 굳게 믿었던 멕시코는 교역 규모가 두 배에 가깝게 성장했음에도 노동시장의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시간당 임금 40%이상 하락했으며 농업보조금이 폐쇄된 농부들은 경쟁력을 잃고 토지에서 유리됐다.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 IMF의 사장 개방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나라들은 국제 자본투기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핫머니는 점점 이들 국가의 금융시장을 황폐화시키며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다. 자본은 점점 더 많은 곳으로 이동하고 ― 미국으로 매년 2000억 달러에서 4000억 달러가 유입된다 ― 정작 이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에게서는 빠져나간다. 그 사이 자본국들이 막대한 부를 이들 국가에서 거둬 갔음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다. 단지 이윤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자본에 의한 세계화는 애초의 이상과도 자유무역과도 전혀 동떨어진 형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힘 있는 몇몇 강대국들이 추구하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화는 여전히 대세이며 유효하다. 캐나다의 전 부수상 폴 헬리어는?세계화는 무역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힘과 통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가장 강력한 중앙은행들과 상업은행들 및 다국적 기업 등의 자본이 지배하는 국경 없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라며 이에 우려를 표하지 않았던가.요점은 누구를 위한 세계화 인가이다. 지금 같은 세계화는 직접적인 무력이나 어떤 특정한국가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닐 뿐 과거 제국주의의 식민지 만들기와 다를 것이 없다. 이은 세계경제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거대 산업-금융은 극도로 세계화되어 있는 데 반해 그 운동을 적절히 통제할 정치적 구심력을 가진 미국의 통제력이 지나치게 초국적 자본 편향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본을 제외한 모든 것의 소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화는 자본화나 미국화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흔히 말하는 글로벌 스텐다드가 선진국과 최소한의 완충장치도 가지지 않는 후진국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 심지어 자신들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소수의?누군가?만을 위한 세계화라는 잔치에 대부분의 국가들을 들러리를 세우는 꼴이다.지금은 세계화가 주로 경제적인 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세계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적 통합을 넘어선 정치, 문화적 통합이다. 이를 완전히 동일화시키지는 않을지라도 세계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가 간의 무역거래의 편리를 위해 장애가 될 수 있는 문화적?정치적 차이를 최대한 좁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 지지론자의 입장은 세계 각국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다. 민족주의의 어떠한 성격이 세계화와 상충되는 것일까? 민족주의는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지향하며, 주로 대 제국의 식민지인 나라들이 독립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그 정신적 뿌리가 되는 사상으로 원칙적으로 세계제국을 부정한다.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문화와 특징을 토대로 틀을 만들고 이 영역이 개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면 세계화와 큰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사회가 개방되어 다른 사회의 문화가 들어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흡수 동화되는 과정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세계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문화적 차원에서 보면 여러 민족의 문화가 서로 활발히 교류하는 과정에서 융화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화가 소수민족이나 약소민족의 문화가 부강한 민족 문화에 의해서 무자비한 침입을 당하고 있으며, 문화적 침입은 결국 민족 붕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대립은 지금 테러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각 국의 교역이 활발해 지고 본격적인 세계화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미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다. 그동안 미국의 대외무역적자는 세계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미국경제가 침체하는 경우 세계경제는 불황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세계경제의 구조이다. 더욱이 지금은 일본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동안 세계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도 아직은 외환위기의 부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중남미에서는 다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의 경제적 어려움이 모두 미국으로부터 시작한 연쇄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중심이 되는 한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전 세계의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위험한 상황 역시 세계화의 병폐 중 한 가지이다.물론 세계화 지지론자들도 더 이상 간과 할 수 없는 세계화의 폐해에 대해 인식하며 변화의 움직임 대두하였다. 전 세계은행 부총재인 스티글리츠는 그의 책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 세 계화의 중심에 서있는 IMF가 자본에 의해 종속되는 것이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며 현재의 세계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조지프 나이가 쓴 제국의 패러독스에서 미국에 의해 강압적으로 진행되는 세계화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 베이스에 깔린 사고는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몇몇 강대국들이 주체가 되어 이끄는 세계화에 대한 신뢰이다. 강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강자와 약자의 입장은 바뀔 수 있어도 강자가 약자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기란 힘들다. 따라서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세계화에 대해 방법론의 전환이지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절대 빈곤인구가 40%에서 20%로 줄었다고 하는 수치에서 세계화를 긍정적인 진보로 보는 입장에 가깝지 그 20%가 갖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아는 입장이 될 수는 없다. 겉모습이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가 아닌 특정한 국가나 세력에 의해 강제로?행해지는?세계화는 결코 그들이 믿는 진보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실제 세계화를 수용해야하는 제3세계의 입장이 반영되어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막강한 자본과 권력에 의해 진행되는 세계화에 대항하기에는 점점 더 미약하게 그들을 만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세계화의 실체이다.
(1) 들어가는 말시는 언어를 재료로 하는 예술이다. 시에 쓰이는 언어는 개념적 의미보다 내포적인 의미를 더 중시한다. 왜냐하면 시는 객관적인 진리를 밝히는 데 집중하기 보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 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쓰이는 언어는 함축적이어야 보다 감동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시의 언어는 언제나 무한한 함축적인 의미를 지향하는 성질을 갖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몇 가지 장치들이 있는데 은유·상징·역설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시를 언어예술로 규정한다면 광고와의 연관관계도 그 속에서 찾아질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언어를 거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언어들은 우리가 문학적이라고 부르는 방식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다. 시는 언어를 통해 대상을 설명하듯이 광고 역시 자동화된 표현이나 인식을 넘는 그 이상을 가지고 있다. 광고 카피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소비자의 마음을 설득하여 움직이게 하기 위해 작가 이상의 노력을 하고 있다. 설득하되 보다 세련되게 하기 위해 문학적인 노력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광고는 더 이상 상업적인 글쓰기로만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광고의 작업이나 그 결과물들도 문학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고를 응용문학의 하나로써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중 모태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시와의 관계는 주목해보자.(2)시와 광고의 연관관계1 언어의 전략적인 배치시는 흔히 언어의 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이는 시가 언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함을 의미한다. 경제학의 기본원리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것에 있는 만큼 최소한의 언어를 구사하여 최대한의 시적 효과를 가져와야 한다. 가장 적절한 시어를 가장 적절한 장소에 배치함으로써 시적 효과는 증대된다.송화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원 해길다꾀꼬리 울면산직이 외딴 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기대여엿듣고 있다.-박목월, 〈윤사월〉-4연 8행으로 이루어진 박목월의 시는 군더더기가3. 마음은 들떴어도 화장은 들뜨지 않는다4. 오늘도 촉촉하게 먹었습니다5. 생각의 거품을 빼면 파크랜드라 보입니다.{그림 ) 라네즈 지면 광고위의 카피들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매우 친숙한 것들이자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광고들이다. 유명한 카피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마치 박목월이 산골의 봄에 가장 적절한 언어를 선택한 것처럼 바로 제품과 어울리는 언어들을 선택함과 동시에 배치시켰다는 점이다.2 낯설게 하기시는 일상언어를 변형하여 강도 있게 하며 일상적인 말들로부터 계획적으로 일탈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야콥슨은 이에 대해 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인 폭력이라고 까지 말한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데포르마시옹{) 1940년을 전후하여 전쟁에 영향을 받은 실존 문학과 증언 문학이 철학과 고발 정신에 치우쳐 서 고전적인 소설 형태에 나타난 사상 과잉으로 인한 변형, 왜곡을 데포르마시옹이라 한다. 1950년을 전후하여 심각한 철학과 탐구를 불신, 냉소하는 나머지 지나친 불신, 풍자, 희롱, 해 학, 관능 위주에 의한 데포르마시옹 현상이 시류를 타고 유행했다.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낯설게 하기란 문학언어를 일상언어와 구분시켜주는 근본이다. 우리는 일상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상투성으로 인해 우리의 의식은 고여있는 물처럼 새롭게 생성되지 못하고 스트레오 타입으로 고정되고 자동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언어에 다양한 변화(deform)를 주게 되면 우리는 자동화된 의식에서 벗어나 낯선 언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마치 신선한 광고 카피를 만났을 때처럼- 언어에 대한 주의를 언어에서 멈추는 게 아니다. 마치 공기의 중요성에 인식하지 못하다가 공기가 부족하거나 오염됐을 때 공기에 대한 새로운 경각심과 육체적 삶에 대해 강렬한 경험을 하듯, 일상언어를 비틀고 압축해서 낯설게 하면 우리는 낯선 언어를 통해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늙은 비애(悲哀)다.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시인(詩人) 릴케가 만난슬라브 여는 장치인 것이다. {) 박혜숙·이종호·서동수, 「광고 카피의 문학적 기법」,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3, p41-43 참조광고에서도 미찬가지다. 월리엄 번벅은 광고를 예술이라 믿었다. 그는 광고를 과학이라 믿는 것을 부정했으며, 효과적인 광고를 만드는 것은 직관과 예술이라 주장했다. 기존의 식상한 표현을 벗어나 놀라움을 준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 도시적인 공식, 법칙을 파괴하는것은 문학에서 말한 낯설게 말하기의 다른 말인 것이다.{그림 2) LG가스오븐레인지 지 면광고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이용한 광고카피를 보자.1. 가스렌지를 삶자!냉장고를 삶자!(피존 무균무 때)2. 넌 튀니? 난 날아!( 랜드로바 광고)3. 이젠, 빛으로 요리하세요!(LG 가스레인지)4.난 샐러드를 마신다.(남양유업)위의 카피들은 카피 자체에서 오는 낯설음이 있다. 그러나 낯설음에서 끝나지 않고 제품을 더 신선하고 뚜렷한 인상으로 각인시킨다. 반면 카피 자체는 매우 평범하지만 전체적인 광고 내용과는 매우 불협화음을 보이는 광고- 낯선광고라고 말하겠다- 도 있다.{그림 )‘ah-we need calcium’- 와키엔타키 지면 광고‘와키엔 타키 광고’가 그것이다, 차승원이 빠진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다. 카피는‘ah-we need calcium’즉, ‘칼슘이 필요하군요’이다. 비주얼과 카피를 통해 와키엔 타키가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구두와 컬렉션 아이템 제품인 와키엔 타키는 연예인들의 상품 협찬을 통한 스타마케팅을 통해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혀왔다. 또 한편으로는 낯선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캐릭터를 형성해 왔다. 그간의 광고들을 보면 전송버튼이 지워진 핸드폰, 초침이 지워진 시계, 유황이 없는 성냥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비주얼 아이디어는‘ah-we need calcium’이란 한줄의 카피로 엮어진다. 인체에 필요한 칼슘이 없을 때를 가정하고 그처럼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고서의 와키엔타키를 드러낸다.왜 칼슘인가? 칼슘은 하나의 메타포일 뿐이다. 소비자는힘으로 정의하겠다. ‘마당에 내리는 흰눈은 별과 같았습니다’는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는 연상작용수준에 머물지만 ‘낮에 보고온 강가의 돌들이 밤하늘의 별로 박혔습니다’는 분명 상상력의 힘을 보여준다.서정주의 〈연산홍〉과 스페인 서정시인 로스카의 〈절규〉란 시를 비교해보자.영산홍이 꽃잎에는산이 어리고산자락 낮잠 든슬픈 소실댁소실댁 툇마루에놓인 놋요강산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소금밭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서정주, 〈영산홍〉ㅡ절규의 타원은산에서산으로 간다네올리브 밭에서푸른밤중에 일어서는무지개가 된다네아아!비올라의 현인 듯절규는 긴 바람줄을울게 하였네아아!(굴속의 사람들이등불을 드러내 보이네)아아!- 가르시아 로르카, 〈절규〉-전자의 시는 연상의존하고 있다. 연산홍 꽃잎에서 산자락과 그 밑에 잡든 소실댁의 모습 그녀의 처연함을 드러내주는 놋요강과 갈매기를 이용해 한편의 시를 완결하고 있다. 7.5조 민요가락에 서정주 특유의 남도 풍의 정서가 배어 감상적인 시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 아닌 연상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감상 그 이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라는 노래가사처럼 이미지의 연관이 이루어지기에 들을 때는 재밌어도 듣고 나면 넘겨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연상으로만 이루어진 시의 위험성이 이런 것이다.반면 로르카의 절규는 어떠한가. 서정주의 시와 달리 맨 앞의 절규란 단어를 제외한 코노테이션(connotation){) 코노테이션(connotation) : 말에 함축된 숨은 뜻. 내포부분이 독특하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조직됐다. 절규를 타원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기발한 상상력이다. 원에서 움직임의 이미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단순한 원이 타원으로 변형될 때 비로소 움직임이 살아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규란 청각적 요소를 타원이란 시각적 요소로 변형시켜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 〈영산홍〉에서는 시각적인 이미지만이 열거되어 있다.그 즉 굴속의 인간을 불러내고 있다. 이러한 절규는 인간의 감정이 아닌 인간의 정신을 움직인다.{그림 ) 칼스버그 지면광고밑에 있는 두 편의 광고를 비교해 보자.{그림 ) 닛산 지면광고1. 피사에서도 드실 수 있습니다 (칼스버그 맥주)2. 재생 가능한 신형 마이크라 (닛산)전자의 광고는 피사하면 떠올릴 수 있는 기울어진 탑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피사에서도 칼스버그를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광고는 재미있는 비주얼이나광고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으나 〈영산홍〉에서처럼 일차원적인 사고에 머물고 있다.이에 비해 후자의 광고는 환경문제에 민감한, 더구나 자동차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공공연히 인식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물자재생이한 주제를 연관 없을 것 같은 자동차를 소재로 풀어가고 있다. ― 우리가 흔히 물자 재생을 생각할 때는 폐지나 비닐, 캔류를 떠올리기 쉽다. 만에 하나 자동차를 떠올린다 해도 그것이 어떤 용도로 재생될 것인가를 쉽게 생각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이 광고의 장점은 연상이 아닌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딱딱하게 느껴지는 자동차를 심플한 일러스트로 처리함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친근감이 들게 한다. 그런 후 이 광고는 한 대의 자동차가 안경으로 변화되는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자동차 바퀴의 둥근 이미지는 안경알의 둥근 모양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물재 재생이라는 이미지를 효과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로르카의 〈절규〉와 같은 구조이다. 이 광고는 또 하나의 절규로 사람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오인환(편), 『현대 광고론』, 나남, 2001, p285-2874 운율으로 인한 주목시의 중요한 특질중의 하나는 운율이다. 산문과의 차별성으로 거론되는 운율은 운문문학의 대표성이다. 그러나 운율은 시의 독점 영역만은 아니다. 운율이란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움직임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리듬은 문학에도 반영되어 지금 언급하고 있는 운율의 기원을 이뤘다. 그래서 하우트먼은 대해
■ 노르망디 개관우리에게 제 2차 세계대전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친숙해진 이 지방은 10세기 경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바이킹들이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 북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노르망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느강의 하류인 파리분지의 서쪽에서부터 아르모리칸 고원 북부지역에 자리잡은 이 지역은 대서양을 따라 해안을 접하고 있는데다가 산이 거의 없는 작은 구릉들로 이루어져있으므로 수산물과 육류가 풍부하게 수확된다.강한 해풍을 박기 위해서 방풍림이 잘 조성 된 노르망디 지방은 깎은 듯한 절벽을 끼고 아름다운 해안과 비옥한 땅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해안에는 어업, 평야에는 낙농업이 주요 산업이며 생굴 양식장도 많다. 특히 세느강 하구,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Le Havre)는 지중해변의 마르세이유(Marseilles)와 더불어 프랑스 2대 항구로, 품질 좋은 바다생선과 조개 및 갑각류로 유명하다. 높은 파도가 해안의 절벽을 깎아 커다란 굴을 파놓은 모양을 한 에트르다 해안 또한 유명하다. 코로, 쿠르베 등의 화가들이 즐겨 그린 풍경이 되었으며 모파상의 작품 배경이기도 했다.부뎅, 모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화폭에 담았던 옹블뢰흐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아담한 항구이며, 도빌의 휴양지는 영화 〈남과 여〉의 무대 배경이다.{) 황석자 편, 『프랑스 관광문화예술』, 대구카톨릭대 출판사, 2003, p72-73■ 노르망디 지역별 특색◇ 캉캉시는 르 아브르의 남서쪽 강 유역에 있으며 노르망디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하는 영향력 있는 도시이다. 10,11세기에 노르망디 공장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중요해지기 시작하여, 노르망디 남부의 중심지가 되었다. 백년전쟁 때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이차 대전시 독일 군이 연합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이 시를 요충지로 이용하여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그림 2) 여자수도원현재는{그림 1) 남자수도원활기찬 대학, 화려한 현대 조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사시사철 무역 박람회와 전시회가 열린다. 상공회의소가 위치해 터 중요한 지역이 됐다. 백년전쟁 동안 1430년에 소녀 잔 다르크가 영국에 대향해 프랑스를 지켜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해 잔다르크의 교회와 감금당했던 탑, 영국사람들에게 화형 당했던 유적이 있다.{그림 ) 모네가 그린 성당강 오른편의 옛 도시에는 많은 고대 건축물이 있어 박물관 도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루앙의 중심부에 있는 1,600년의 역사를 지닌 대성당{) 중세 불어에서 성모마리아를 의미하는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이 성전은 프랑스 고딕 양식의 꽃으로 불리 우기도하며 1830년대 비올레 르 뒤끄에 의해 복원되어 원전보다 아 름다운 고딕의 웅장함을 보여 주고 있다. 13세기의 고딕양식의 영향을 받은 이 성당은 장장 170여년의 공사 끝에 완성되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3개이다. 모두 성서에 관한 이야기들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그 당시 문맹이었던 많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성당 안은 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성당의 꽃’이라고 할 수 있 는 스테인드 글래스의 북쪽의 것은 구약성서의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은 초기의 고딕 양식에서 후기 플랑부아양 양식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 양식을 지녔고 프랑스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고딕 양식 성당으로 손꼽힌다.인상파 화가 모네가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인상을 주는 루앙 성당을 그린 연작 회화로 더욱 알려져 있다. 레이스 문양의 조각물로 뒤덮인 거대한 정면 양쪽에는 각각 다른 두 탑이 있는데 각각 12세기, 15세기에 지어졌다. 성당 탑에는 55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편종이 있다. 19세기 후반의 뾰족탑이 있는 중앙 꼭대기 탑은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교회 탑이다. 성당 옆 대주교 궁의정면은 15세기에 만들어졌으며 그 뒤쪽에 고딕 양식의 두 교회인 생 마클루교회(15세기)와 생 투앙 교회가 서 있다. 법원도 후기 고딕 양식이다. 구 시장 광장에서는 대성당으로 가는 대 시계 거리에는 그로 조홀로주 라고 알려진 14세기의 금빛 대형 시계가 달린 르네상스 식 아치가 있다. 루앙 박물관에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1874년 아브르의 항구를 그린 작품 이 인상주의의 탄생을 예고하였고 이 작품은 파리의 마르모탕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 이곳을 무대로 쓰여졌고 빅토르 위고의 프로스트등의 소설도 흔적을 남긴다. 괴도 루팡의 집은 당시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모파상과 친구들의 유품이 잘 보존된 집은 관광객들을 맞는다.아름다운 경관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777년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뜨와네뜨의 식탁에 굴을 진상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고 19세기 중엽 시인이자 기자인 알퐁스 까흐가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저 부호나 사업가들의 별장지대로 각광받았으며 현재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장소이다.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작은 마을과 자갈 해안 사이로 양쪽에 크고 화려한 절벽이 마주보고 있고 이를 감상하기 알맞도록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넓게 트인 바다를 보면서 상쾌한 샷을 휘두를 수 있는 절벽 위의 골프장은 애호가들이 선망하는 명소이다.{) http://www.algogaja.com/◇ 도빌{그림 ) 도빌 해안도시의 아기자기한 규모가 전해주는 아담한 분위기와 노르망디 지방 특유의 목조식 건물들의 지닌 따스함이 있는 도시 도빌은 파리유학생들이 바다가 그리울 때면 찾는 휴양지이다. 호화스런 요트들이 정박해있는 해변가의 목조다리의 등대에는 남과 여의 주인공들이 남긴 사랑의 밀어들로 가득하다. 유명한 휴양지인 투르빌 쉬흐 메흐와 까니지 산 사이의 2킬로에 달하는 도빌 해변은 꼬뜨 플레리 중 가장 사교적이고 화려한 해수욕장이다. 상류사회의 사교계의 중심지로 카지노, 요트, 경마장이 발달해있다.{그림 ) 미국영화제도빌은 7월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각 국의 휴양객들이 몰려오고 9월에 열리는 도빌 폴로컵이라고 불리는 국제행사가 있으며 매년 도빌 아시아 영화제{) 도빌 아시아 영화제는 올해로 4회를 맡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영화제이지만 유럽에서 아시아 영화를 모아 상영하오랜 항구 도시이며 화가인 부뎅과 작곡가인 에릭 사티의 고향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15세기 백년 전쟁 당시의 요새였기에 1346년 에드워드 3세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1360년 브레뜨니 협약으로 1369년 수복된다. 1503년 곤느빌의 브라질 상륙과 드니가 이곳을 출항하여 뉴펀들렌드를 점유한다. 1517년 프랑스와 1세가 가까운 르부아르에 항구를 개설하며 많이 위축되었지만 쇼뱅과 뒤퐁그라베에 이어 1603년 사무엘 드 상쁠렝이 캐나다로 출행하여 퀘백을 세웠다.경사지에서 하구의 전경과 센느강 우안의 백색 절벽 아울러 하구의 공업단지를 한눈에 볼수 있다. 옹블레흐는 하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중세의 군사항 16세기 이래에 탐험가들의 정박항 신대륙 발견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상업항해적의 본거지 등 다양한 항구의 역사를 지닌 여성적인 도시이다.{) 남정환, 『프랑스』, 영진닷컴, 2003, p200매우 활기찬 옹블레흐는 17-18세기의 노르망디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거닐다가 어부들이 그날 잡은 물고기를 파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방 음식인 홍합요리에 깔바도스 또는 시드르를 곁들이면 항구도시의 풍치를 만끽할 수 있다.{그림 ) 옹플레흐를 그린 부뎅의 작품 1{그림 ) 옹플레흐를 그린 부뎅의 작품 2{그림) 옹플레흐를 그린 부뎅의 작품3센느강 하구의 경치와 현란한 빛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고 소설가들도 많이 찾았다.이 고장 출신인 부댕은 옹블레흐의 바닷가와 노르망디의 절벽 항구들을 그리면서 모네와 종킨트와 더불어 그들이 모이던 장소의 이름을 따서 ‘생씨옹’ 학파를 만들었고 〈옹플레흐를 배꾸르베· 바질·피사로·루느와르· 세잔느·시슬리 등의 화가가 1864-1870년 사이에 드나들었다.{) http://www.petitefrance.co.kr◇ 바뇰 드 로튼수세기 전에 병을 고치는 효험이 있는 바뇰 샘{) 테스의 영주인 위그가 어느 날, 너무 늙어 퇴물이 된 말 한 마리를 숲에 놓아주었다. 며칠 후 말이 건강한 모습이든 기거이 시도해보는 태도가 노르망디인의 특성중의 하나다. 부두와 창고가 있고 트럭이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는 항구도시 그랑빌은 가족 휴양지로도 손색이 없다. 매끄러운 황금빛 모래와 버터스카치 같은 화려한 색채의 바위넓게 펼쳐져 있다.{그림 ) 점판암 지붕을 가진 집그랑빌의 부촌은 해저 터널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곶에 자리한다. 이 곳에는 웅장한 노트르담 교회를 위시한 많은 옛 건물들이 파도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지어졌다. 도시 전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노트르담 교회는 부분적으로 브르타뉴와 웨일즈 지방의 집과 바찬가지로 짙은 회색의 점판암으로 아주 세심하고 견고하게 지붕을 얹었다.이 점판암 지붕은 맹렬하고 세찬 폭우라도 막아낼 수 있는 지붕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잿빛 점판암 지붕이 자주 눈에 띄는 지역은 자주 폭우가 내린다고 볼 수 있다. 그랑빌처럼 지붕 뿐 아니라 바람막이 벽 전체를 점판암으로 짓는 지방에서는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폭우가 몰려오는 경우가 있다.{) 박광석 편, 『프랑스:파리·노르망디·루아르·남프랑스』, 한길사, 2004, p41-42◇ 훼깡{그림 ) 훼깡 해안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다바람과 은은한 저녁노을을 즐기려는 여행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절벽의 도시 훼깡 120km의 가량의 길이에 100m의 높이를 자랑하는 훼깡과 에스트라 사이의 기암절벽이 유명하고 짙푸른 바다와 기암절벽 사이에 어우러지는 갈매기들의 춤사위는 많은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며 인상주의 회가들이 작품활동을 하였던 훼깡의 절벽 위에{서 연인들이 저녁노을을 감상하며 데이트하기에 좋은 최고의 장소이며 ‘노르망디’지역의 해산물 요리에 시르드를 곁들이면 좋다. 모파상은 이곳에 살았던 할머니 집에 자주 들렸으며 그의 소설에는 훼깡에 대한 일화가 많다.전설에 따르면 예수의 피가 담긴 무화가 성물함이 바다와 신의 가호에 맡기며 라는 문구와 함께 7세기경 이곳 해안에 도착하였고 수도원에 소장되었던 예수의 피로 인해 몽셀미셀보다 먼저 노르망디 최고의 성지 순례 장소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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