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기능주의―고고미술사 전공석사과정 3학기 이순영1. 머리말기능주의자들은 共時的인 사회연구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발전시켰으며, 과대전파이론과 함께 진화이론을 비판하였다. 기능주의(functionalism, 이후 구조기능주의[structural functionalism])는 사회체계의 요소간 상호의존 관계를 정식화시킴으로써 그것이 갖는 제도적 측면을 분석하는 연구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구조기능주의학자로는 에밀 뒤르켐(Emile Durkeim, 1858-1917),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 1884-1942)와 래드클리프-브라운(E. R. Radcliffe-Brown, 1881-1955), 에반스 프리차드(E.E. Evans-Pritchard, 1902~1973) 등이다. 말리노프스키와 래드클리프브라운은 기능주의 연구법을 발전시키면서 프로이트의 생각을 활용하기도 하였지만,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뒤르켐이었다. 따라서 뒤르켐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하지 않고서 인류학에 있어 기능주의의 발달을 파악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뒤르켐과 대표적인 구조기능주의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살펴보고, 구조기능주의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 언급하겠다.2. 에밀 뒤르켐(Emile Durkeim)뒤르켐은 사회학의 창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었는데, 사회학에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전문화시켜 대학에 자리잡는데 기여하였다. 뒤르켐은 칼 맑스(Karl Marx)처럼 사회를 상호의존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체계로 보았으며,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이나 상징들에 관심을 갖고, 무엇이 사람들을 하나로 집결시키는가 하는 사회적 응집력(social solidarity)의 본질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사회적 응집력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행위를 통제하고 형성시키는 신념이나 가치의 공유된 체계(shared system)의 참여로부터 일어나는 어떤 힘의 결과라고 말한다.뒤르켐은 《사회분업론(The Division of Labour in Siciety)》(1893)에서 사회변화에 대한 역사적인 틀을 제시하면서 ‘기계적’인 것에서 ‘유기적’인 연대로의 변화를 제안하였다. 기계적인 연대를 가지는 단순 사회는 마치 생물체가 세포벽을 형성하듯이 일련의 동일한 단위들로 이루어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단위들은 친족집단, 씨족 등으로 분리되지만 각 개인은 여전히 ‘집합의식(conscience collective)’에 종속되기 때문에 개별화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즉, 그는 한 사회의 성원들 간에 겪는 공통적 경험과 상호작용으로부터 일어나는 共有된 생활방식, 信念, 情緖 등을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ence)이라고 불렀다.) 뒤르켐에 따르면 개인들 자체를 있는 그대로 분석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으며, 개인들을 언제나 더 폭넓은 사회적인 힘 안에 속해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그는 이같은 개인의 신념, 감정, 정서, 그리고 행위 등을 그 사회의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산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종교생활의 원초형태》는 뒤르켐 만년의 대작으로 종교의 사회학적 기반과 성격을 집요하게 밝힌 노작이다. 뒤르켐의 사회학적 종교론에서 종교라는 것은 사회집단에서 발현했고 집단을 통합하는 기능을 가진 제도이며, 사회를 반영하는 상징체계이다. 이러한 종교론에 입각하여 종교의 시원적인 형태를 실증적으로 명확하게 분석한 것이 《종교생활의 원초형태》이다.) 다시 말하면 공유된 신념의 체계가 바로 집단의식인 것이다. 현대 사회과학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중앙가치체계(central value system)라고 부르고 있다.오늘날의 시각에서 뒤르켐의 관점은 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뒤르켐은 토테미즘을 정의하면서 단 하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집단(아룬타족)의 예를 통해 전체를 이해함으로써 다양성을 축소하였는데, 스펜서와 길런은 이런 지나친 단순화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구분은 이원적인 대립으로 생각하기 힘든 예들도 많으며, 신성과 세속의 두 요소가 일상생활과 의례에서 서로 뒤섞여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서도 그렇게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더 추상적인 측면에서 뒤르켐은 사회안에서 권력투쟁같은 충돌의 작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뒤르켐 이전까지 인류학자들의 관심은 문화의 유사성과 상이성의 기원과 그 변천과정에서의 어떤 보편적 법칙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르켐의 현지인의 입장에서 현지조사를 하면서 한 사회의 특정한 문화적 요소들, 즉 사회제도나 관습이 반복적으로 실행되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기능적 측면에서 문화를 분석해야 한다는 방법론은 이후의 말리노프스키, 래드클리프브라운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3.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와 래드클리프-브라운(E. R. Radcliffe-Brown)폴란드 태생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뉴기니아의 근처에 위치한 트로브리안드섬에서 약 2년동안(1915~1918) 현지주민과 생활하면서 전례없이 자세한 현지조사를 실행했다. 그 뒤 자신이 기록한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정리하여 《서태평양의 뱃사람들(Argonauts of the Western Pacific)》(1922)을 출판하였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특색은 아마도 그 철저한 현장주의, 바꾸어 말해서 현지조사의 방법과 그 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또 하나는 ‘쿠라’라는 트로브리안드섬 사람들의 교환체계를 명확하게 밝혀 기존의 원시경제 이론이 추론해왔던 ‘야만인의 교역’문제에 대하여 하나의 돌을 던진 것이다. 즉, 의식도 질서도 없이 유용하고도 불가결한 물자를 불규칙하게 주고받는 교환이 아니라, 신화와도 전통적인 법에 기초하고 주술적인 의례에 둘러싸인 공적이면서 규칙적인 교환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몇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두사람씩 결합하여 공동관계를 맺게 한다. 이 공동 관계는 여러 가지 특권과 의무를 포함하고, 서로간의 매우 높은 신뢰관계와 상도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더구나 쿠라의 교환물자는 전혀 실용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장식품으로조차도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쿠라의 실태를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훗날 증여론, 교환론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한편, 영국의 인류학자 래드클리프-브라운은 현지조사보다는 이론을 더 강조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연구는 궁극적으로 구조기능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래드클리프-브라운은 1906~1908년까지 안다만섬에서 현지조사를 행하면서, 어떻게 사회제도들이 한 사회의 균형과 결집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고 했다. 그는 사회제도들이 개인적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것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구조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특히 사회구조라는 개념을 중요시했는데, 그가 말하는 사회구조(social structure)란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개개인이 전체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행동원리이다. 따라서 그는 한 사회에서 개인을 연구하기보다는 친족체계같은 사회제도를 연구할 것을 권장한다. 왜냐하면, 비록 사람이 죽어 세대가 바뀐다 해도, 친족체계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래드클리프-브라운의 기능주의는 구조기능주의라고도 불린다.)밀라노프스키는 래드클리프-브라운과 함께 기능주의적 인류학자로 분류되고 있다. 1922년은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의 책이 출판된 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똑같이 기능주의자로 불리기는 하지만 연구방법은 대조적이다. 인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회를 무기질하게 비교 연구하는데 뛰어났던 래드클리프-브라운이 자기가 조사한 사회를 단순한 비교자료의 하나로 밖에 취급하지 않았던데 반해, 말리노프스키는 일생동안 트로브리안드 섬에 몰두했다. 그가 문화의 비교연구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문화이론은 모두 이 트로브리안드섬의 사례에서 나온 것이었다. 말리노프스키에게 인류문화는 모두 트로브리안드섬 문화로 대표되는 듯이 보인다.